중보기도의 축복 (출17:8-16)
본문
우리들이 광야 같은 세상에 살면서 당하는 고통중의 하나는, 악한 세력들을 만나서 싸워야만 하는 일들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살펴본 광야의 축복
첫째는, 마실 물이 없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켜주는 그런 축복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 없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쓴 물이라고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두 번째 축복은, 먹을 것이 없었을 때, 먹을 양식이 없었을 때 하나님은 광야에서 하늘에서 비같이 만나를 쏟아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풍성히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고, 저주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실 물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겪는 일 중에 하나는, 원수들을 만나서/ 우리들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서 전쟁을 하고 싸워야 하는 일들을 겪는 것입니다. 그 얘기가 8절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읽기 시작, (출 17: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그들은 이제 만나를 경험하고난 다음에 또 행진을 계속하는데, 르비딤까지 왔을 때 유목민으로서 토착세력인 아말렉 유목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이 겪는 일들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지만 우리는 본의 아니게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먹느냐 안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예요 전쟁의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의 그런 문제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여러분 만-일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물론 우리 나라는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을 거예요. 서울 불바다 설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먼저 공격하는 데가 여의도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북한은 어떨까요 거의 끝나겠죠. 전쟁이 일어나면은 일방적인 상처는 없습니다. 다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심각한 전쟁상태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모세는 이 위기 앞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이 전쟁의 위기를 극복해 나갑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면 참-당황했을 것 같아요.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라. 그래서 그가 탈출을 시도했어요. 순종하면 좀 좋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 아니고 광야로 하나님이 집어넣단 말이에요. 사실 당황할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모세였을 거예요. 먹을 물이 없는 거예요. 마실 물이 없는 거예요. 그 다음에 또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이런 것들을 겪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백성을 끌고 가야 되요. 지도자는 현실과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멀-리 있는 걸 보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을 보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 먼-약속을 못 봐요. 눈앞에 있는, 코앞에 있는 현실만 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지도자라면 현실만 보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과 미래를 보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위기 앞에서 두 가지 조처를 하게 됩니다.
9절 보시기를 바랍니다.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의 첫 번째 조치는 어떤 것인가 그는 자기의 심복인 여호수아라고 하는 젊은 지도자를 내세워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전쟁터에 내보내는 첫 번째 조치를 합니다. 두 번째 조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 자신은 전쟁에 참여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에 임하게 하고, 모세는 산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런 두 가지 조치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들을 공격하는 사람이나 세력을 만났을 때 곧 잘 양극단 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한극의 방법은 현실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현실의 불만 끄려고 애를 쓰다가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또한가지 잘못된 극단은 현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 된다 이거예요. 금식하고 산에 가면 된다 이거예요.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조처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무조건 산에 가서 하나님 아버지하고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양극단의 실수를 하게 됩니다. 모세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그가 위기를 만났을 때 그는 이두가지를 다 사용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수아를 시켜서 사람들을 동원해서 전쟁에 나가서 최선의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만 잘 한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인가 무기가 있다고 승리할 것인가 전술이 탁월하다고 승리할 것인가 사람이 많다고 전쟁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에요. 에스겔서를 보면, 두로가 왜 망했는가 에돔이 왜 망했는가 그들은 그들의 해군력을 믿었고, 그들의 경제력을 믿었고, 그들은 그들 나라의 부강함을 믿었던 거예요. 무역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또 군사력을 자랑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은 우리는 국가의 위기를 관리할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루아침 순간에 그들을 몰살시켜버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군사의 전략이, 군인이, 무기가 전쟁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쟁을 포기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전쟁에는 윤리가 없어요. 전쟁에는 도덕도 없는 거예요. 생존뿐이에요. 죽으면 모든게 끝난 거고, 살면 모든게 이기는 거예요. 이것이 전쟁의 냉엄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이러한 현실 앞에서, 꼭 전쟁은 아니더라도 생존경쟁 앞에서 삶의 모든 투쟁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깨닫게 되길 원하십니다. 일단 전쟁에 참여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모든 것이 다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모세가 생각했던 믿음이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전쟁터로 보내고 나서 그 다음에 그는 스스로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조심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면 다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전쟁에서 사람을 내보내고난 다음에 산에 올라가는 일이 동시에 있을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악한 사람들을 다 도말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도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자기 아들이 정신 차려서, 공부를 잘 해서 대학을 들어가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공부는 내내 안 하다가 시험볼 때 환상을 보여줘가지고 답을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아니에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해요. ‘우리 아들이 연필을 굴릴 때 딱 정답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
그런데 하나님이 가-끔 그것도 들어주시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은 한두번이예요. 그렇게 안들어주신것도 아니에요. 급할 때는 똑똑히 들어야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녀가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횡재를 얻게 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잘해서, 정상적으로 잘 들어갈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 달라는 그런 기도여야 할 것이에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도피하면 안돼요. 현장에 뛰어들어가야 해요. 여러분, 기도원에 가고 금식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도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현실에 대해서 게으르고 무책임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다 떠맡기고 나는 하나님께 간다” 이것은 광야에서 사는 성도의 바른 생활이 아니에요. 우리는 현실과 직면하고 위기와 직면하고 고통과 직면하면서 하나님이 그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체험해야 합니다. 동시에 내 의지로, 내 노력으로, 내 방법으로, 내 실력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것 가지고 살아갈 것 같지마는 살아지지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원수와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기도하는 것 이것이 모세가 위기 앞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절, 시작 (출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그러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전쟁과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것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냐 하는 문제가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물론 현실은 내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목표입니다. 이상의 성취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꿈을 가지고 이상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이 없는 민족을 망합니다. 꿈이 없는 민족을 방-자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불행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과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있어서 미래의 꿈과 이상을 빼앗아 버리면 그것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이상이 있어요. 도동교회에 주신 이상이 있어요. 도동교회에 주신 꿈이 있어요. 통일을 가져오게 하고 민족을 살리고, 예수 믿지 않는 세계의 모든 종족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그런 이상과 꿈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꿈을 가지고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보면서/ 그리고 자기의 동족들이 피를 흘리며 지금 죽어가며 싸우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발걸음은 전쟁터로 가지 않았고, 산꼭대기로 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도 이렇게 산꼭대기에 같이 올라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굉장히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죽을 것만 같아도, 거기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모세와 같이 그렇게 여러분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본질은/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뭐든 지요, 결제는 제일 높은 사람이 해야 되요. 그래야 뭐가 다 되요. 하나님으로부터 결제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 먼저 받아야 되요. 전쟁에 이기느냐 지느냐 이건 하나-님이 결제하셔요. 사람이 전쟁을 하지만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결론은 하나님이 내리는 거예요. 역사는 인간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은,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세요. 따라서 여러분들이 먼저 만나야 할 분은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어때요. 자기가 해볼 방법 다 해보고 안되면 새벽기도와. 하나님 제일 마지막에 찾는 다고요.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건강할 때 하나님 찾으세요. 사업 잘될 때 하나님 찾으세요. 만사형통 할 때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세요. 당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엎어져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산꼭대기로 먼저 가세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겸손히 그분 앞에 나가시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광야의 삶이 축복과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10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고 아말렉과 싸우고 있었지요. 그러나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갔는데 여기 10절에서 하나 관심 있게 보실 게 있어요. 누구하고 갔습니까 아론과 훌과 함께 갔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모세 혼자 가지 않았고, 같이 갔습니다. 기도에는 동역자가 필요하다. 혼자 신앙생활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내힘으로 버틸 때까지는 버티지만, 내가 힘이 약할 때는 누군가 나를 도와줘야 되요. 이게 영적 원리예요. 그래서 구역이 중요한 거예요. 전도회가 아주 중요한 거예요.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혼자 못해요. 누군가 함께 돕는 사람이 필요해요. 모세라 할지라도, 아론과 훌이 그를 같이 따라 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의 인생의 최-대 위기 앞에 섰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지는 일이에요. 우리 인생에 있어서 보통일 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중요한 사건이 있어요. 태풍 앞에 선것같은 위기도 있어요. 예수님에게도 그런 위기가 있었어요. 그게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너무나 무겁고 힘들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뭐가 되도록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어요. 예수님도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중보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것들이예요.
나는 여러분들의 생애가운데 이런 위대한 중보기도의 경험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땀이 피가 되는, 사느냐 죽느냐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가 필요해요.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의 생애에 그런 위기가 왔을 때에 적-당히 기도하면 안돼요. 금식하며 새벽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고, 목을 놓고 기도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런 기도를 하셨을 때, 재미있는 사실은 혼자 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습관에 따라 예수님이 누구를 데리고 갔어요 제자들을 데리고 갔어요. 잘 보세요.
그런데-제자들이 기도했습니까 졸았습니까 졸았어요. 몇 번씩이나 세 번씩이나. 여기서 우리가 하나 놀-라운 진리를 배우는 거예요. 조는 사람이라도 데리고 가라. 나는 여러분들의 친구가 돈 많은 친구, 지식이 많은 친구, 여러분을 명예롭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보다 기도해 주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그게 있어야되요. 여러분, 가까이 사귀는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둘셋 짝지어서, 정말-무릎꿇고,
그런데요,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보면은요, 좀 이렇게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그거 쑥스러워서 못해요. 에-그냥 기도는 간단히 끝내고 그냥 그런다고요. 그건 아니요. 정말 기도하는 사람.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 아니예요. 같이 일하는 사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러나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줄 사람은 있는가 이거예요. 이 기도의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영적 전쟁에 있어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있어서 여러분이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이것 때문에 모세는 승리할 수가 있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삶을 점검해 보세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은 과연 누군가-11절과 12절에, 모세와 그의 동역자인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11절,12절을 보십시오. 시작 (출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1절과 12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모세가 여기 보니까, 가서 기도했다 이런 표현은 없고요. 뭘 들었다 손을 들었다. 손을 들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모세가 산꼭대기에 왜갔나 이 얘기예요. 손들기 위하여. 간단합니다. 손들기 위하여. 손을 들었다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에게 손을 들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요. 지금 저 밑에서 싸우고 있는 여호수아와 자기 백성들에게 손을 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기도지요. 기도지요.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했다. 그렇게 설명할 수가 있어요. 손들고 기도한 사람이 많아요. 그 중에, 우리는 솔로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선친 다윗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솔로몬이 그 집을 짓게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을 멋-있게 잘 지었고, 봉헌사를 합니다. 봉헌사를 하고난 다음에 그는 봉헌기도를 합니다. 그가 기도한 내용은 이거예요. “ 하나님, 우리 아버지, 선친 다윗과 하나님이 약속한 약속이 있는데 그거 다 들어주십시오.” 그거예요. 혹시오, 여러분들 가운데 부모님이 예수 잘 믿고 돌아가신 분이 계시면요, 그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하고 하나님하고 약속한 그 기도 나한테 다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예요. 아 그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솔로몬이 기도한 걸 보니까. 또한가지, 하나님은 건물보다 크신 분이에요. 어떻게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인간이 지은 건물 안에 있겠습니까 그렇지만은, 또 하물며, 내가 지은 집에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겠습니까 마는 오늘 이 집은 하나님의 집이니, 여기서 하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 다 응답해주십시오. 그렇게 범-죄자가 세상에서 범죄하고 와서 기도했을 때, 용서해주시고, 원수에게 패했을 때 와서 기도하면 원수를 갚아주시고, 포로생활에서 기도했을 때 들어주시고, 염병이나 기근이 닥칠 때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다 들어주십쇼. 이 제단에서 하는 기도를 하나도 놓치지 말고 하나님 다 응답해 주십쇼. 하늘 문을 여시고, 귀를 여시고 이 기도를 다 들어주십시오. 저는 그 본문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 기도할 때마다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도동교회에서 하는 기도를 다 들어주십쇼. 아 그러니까 정말 그럴 것 같더라고요. 나는 여러분이 이 제단에 와서 하는 기도가 다-응답될 수 있도록 솔로몬 같은 심정으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해요. 새벽마다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저 사람들 우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옵소서. 하나님 위로해 주십시오. 솔로몬이 그렇게 기도합니다. “ 그때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라는 표현이에요. “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그렇게 기도했어요. 나는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 기도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이 전쟁이라는 심각한 현실에 이것은 분초를 다투는 시간이에요. 한사람이라도 더 가서 도와주어야 말이 맞지 전쟁 도중에 산에 가서 기도한다는 게 맞습니까 그러나 모세는/전쟁의 현실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영적인 태도도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 양면성을 다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손을 들고, 그리고 아마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하면서 그렇게 기도했을 거예요. 언젠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을 잘 고치는 수사 한 분이 오래 전에 한국에 온 일이 있었어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병고 치는 집회에 제가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성경대로 이렇게 가르쳐요. 병의 원인을 미움으로 봐요. 죄로 보고. 그래서 용-서 하라는 거예요. 원망하거나 마음에 갈등이 있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 예수 이름으로, 용서하라는 거예요. 보혈로. 그것 가르쳐주고요. 죄 회개하고, 그리고 성령님이 임하여 당신을 치료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그분이 하는 일은 손을 들고만 있는 거예요. 이러고 있어요. 이게 10분, 20분, 30분을 가더라고요. 저는 그때 2층에 있었는데, 제옆에 어떤 한 형제가 갑자기 킁킁 하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이렇게 봤더니 뚫렸어, 뚫렸어 그래요. 십몇년 동안 막혔던 코가 뚫렸대요. 이 사람이 손을 들고 한 30분 지나니까 그러더라고요. 저는 거기서 성령님이 역사하는 것을 봤어요. 이렇게 가만-있어도, 뭐 안수 하거나 개인으로 만나지 않아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손을 들고,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기도했고,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했다. 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들도 손을 들고 기도하십시오.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집을 축복해 주시고, 여러분이 직장에 다니십니까 직장에 들어가시기 전에 손을 들고 그 직장을 축복해 주시고, 북한을 향하여 축복을 하고, 우리 민족을 향하여 축복을 하는 그런 모-세의 심정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등산하시는 분들, 산꼭대기에서 진주 시민들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받을찌어다 축복받을찌어다 생기야 들어갈지어다 그러고 나니까 내가 진주 시장이 된 것 같아요 여러분 손을 들어 축복하십시오. 손을 들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다 축복하는 특권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11절과 12절에서 보게되는 놀라운 진리는 모세가 손을 들면 누가 이겨요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는 거예요. 전쟁의 승패는 손에 있었어요. 모세의 손에, 이 논리적으로 안 맞는 말 아닙니까 아 전쟁은 전술이 좋아야 되고, 무기가 좋아야 되고, 군인이 좋아야 이기고, 지형이 좋아야 이기는 건데, 어떻게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집니까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에요. 사실 이게 영적사실이예요. 우리가 기도하면 세상이 변할 거예요. 기도하기를 그치면, 세상은 어두워질 거예요. 우리가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민족 살 거예요. 천명의 선교사, 이천명의 선교사가 나갈 거예요. 우리들이 손을 들고 있으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면 팔아픈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예! 내가 새벽마다 와서 무릎꿇고 기도해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안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여러분, 우리 도동교회가 합심해서 기도해서 세상이 변할 수 있다면 은 뭐가 아깝겠습니까 나는 우리 도동교회가 지금 해야 될 가장-중요한 일은 기도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선교도 많이 하고, 헌금도 잘하시고 다 잘합니다. 전도회도 구역도.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도동교회 최대 약점이 기도하는 사람이 적은 거예요. 개인기도는 많이 해요. 그 증거가 새벽기도예요. 새벽기도. 나는 여러분이 다-새벽기도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벽제단에 이 정도는 나와야 되요. 이 정도는 그리고 한-목소리로 모세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기도할 때, 기도하면 우리가 이기고, 기도하지 않으면 적군이 이기는 이 영적인 현실 앞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 11절과 12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요. 기도는 노동이다 그런 것을 봐요. 이게 참 힘듭니다. 여러분 손들어 보셨어요. 국민학교때 다 . 교무실 옆에서 이렇게 벌받느라고 나는 많이 했어요. 아-손 오래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손들어야 된다는 것 기도 입만 하라고 그러면 참 좋겠는데 손들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또, 집에서 기도하면 좀 좋아요. 꼭 교회까지 와서 기도하라니 이게 힘들지 않아요 그러나 여기는 뭐래요 기도하는데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손을 높이 들 수가 없었다. 모세가 기운이 빠져가지고, 자꾸자꾸 내려오면 자기 여호수아 군대가 자꾸 지니까,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요. 그래서 할 수 없어서 아론과 훌이 너무 급하니까 이 허리도 아팠을 꺼야 하루종일 서있으니까. 돌 의자를 갖다놓고 앉히고, 여기다가 손을 바친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못 내려오게 이렇게 딱 바친 거야. 할렐루야. 이게 기도요. 여러분하고 나하고 그런 기도해야 되요. 여러분, 모세는 아무리 위대해도 인간이에요. 아론과 훌이 없었다면 그 일 못했을 거예요. 저는 요즘 그래요. 우리 목사님 장로님들 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난 건강도 별로 안 좋고, 인간적으로 참 부족하고 연약한 점이 많아요. 여러분이 날 붙잡아 주셔서 같이 기도해야 해요. 같이 힘을 합해서 옆에서 붙잡아 주지 않으면, 어찌 기도할 수가 있겠어요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여러분들이 저를 붙들어 주지 않고, 저의 약점을 보완해주지 않는다면 도동교회 목회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요 이것이 바로 여기서 발견하는 놀-라운 영적 진리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손 내리지 말아라. 정-손들기 어려우면 갖다가 여기다 받쳐라. 그렇게 해서라도 승리해라 이거예요. 그 다음에 12절에 보시면,(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뭐하도록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기서 또 해가 지도록 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보통사건, 내 일상생활에 보통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일생에 한 두 번 일어날 수 있는 큰 사건이 있다고 그랬어요. 이 큰 사건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타임, 때가 있다는 거예요. 이 전쟁은 그날 하루예요. 일일분이예요. 해가 질 때까지 예요. 그때까지 이기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 땀이 피가 되도록 매일 기도하면 어떻게 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혹시 이러한 한 두 번의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는 그 오래가지 안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 곧 끝나요. 끝날 때까지 타협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없어지지 말고,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11절과 12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요, 영적 전쟁은 레슬링과 같다 이런 거예요. 권투는 떨어져서 싸우는 거예요. 그렇지요 레슬링은 어떻게 해요 붙어서 싸우는 거예요. 몸과 몸이 붙어서 싸우는 건데, 레슬링 하는 걸 보면요, 한사람이 이기면 죽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막-이기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에 죽었던 사람이 또 살아나서 또 일어나요. 이게 영적 전쟁이에요. 여러분 항상 승리만 있지 않아요. 항상 패배만 있지 않아요. 지금 패배를 경험하고 절망을 겪는 사람들, 걱정하지 마세요. 곧 일어나요. 이게 영적 전쟁. 당겼다, 밀었다 하는 거예요. 이겼다 졌다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축복만 주시지 않아요. 축복과 고통을 같이 섞어서 주세요. 어떤 때는 축복으로, 어떤 때는 고통으로, 영-원한 축복은 없습니다. 영원한 고통도 없습니다. 이것이 섞여져 있는 거예요.
그러나, 결-론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당겼다 끌렸다 하면서, 영적전쟁을,씨름 하는 거예요. 레슬링 하는 거예요. 몸싸움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결론은 하나님이 이기는 거예요. 그게 13절이에요. 13절 (출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결론이 이겨야 되요. 마라톤은 출발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끝을 어떻게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마라톤 경기를 보면은 요, 시작할 때 항상 먼저 뛰어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지요 폼-잡고 뛰어가면, 또 그것도 카메라가 잡아줘요. 그 사람 보면 30분 못 사더라고요. 보통. 꼭 폼잡고 나간 사람은 뒤쳐지더라고요. 1등 할 사람은, 언제나, 한 서너 그룹 딱 숨어서 이 자기 호흡을 맞춰가면서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뛰다가 마지막 피치를 올려 가지고 일등 하는걸 볼 수가 있어요.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예요. 일등 할 수도, 뒤쳐질 수도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플 수도 있고, 건강할 수도 있고, 잘 살수도 있고 못살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어요. 여러분 이 짧은 성공과 실패, 건강과 병든 것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이 다-결정난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는 영원한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예요. 젖고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우리의 이상이지 광야는 순간이에요. 수단이에요. 다 지나가는 거예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영광스럽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다. 우리 인생의 끝을 하나님이 승리로 만들어 주신다 그걸 가르쳐 뭐라고 그래요. 14절에서 "여호와 닛시“ 이 사건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하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5절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뭐라고 그랬어요 ”여호와 닛시“ 여호와 닛시는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할렐루야. 광야 같은 세상입니다-. 마실 물이 업고, 먹을 양식이 늘 없게 느껴지는, 내일 어떻게 사나 난 직장도 다 잃어버렸는데, 난 지금 암에 걸렸는데, 우리 가정을 보면 눈물밖에 나는 것이 없는데, 내 인생의 미래는 어떻게 갈 것인가 이런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많은 게 광야의 현실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광야에서, 식탁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쓴 물이 변하여 뭐가 되요 단물이 되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 쏟아내 주시는, 비같이 쏟아주시는, 만나를 먹을 것이고, 원수가 여러분들을 쳐서 죽이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승리케 하여 주신다. 이 축복이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는, 마실 물이 없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켜주는 그런 축복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 없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쓴 물이라고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두 번째 축복은, 먹을 것이 없었을 때, 먹을 양식이 없었을 때 하나님은 광야에서 하늘에서 비같이 만나를 쏟아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풍성히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고, 저주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실 물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겪는 일 중에 하나는, 원수들을 만나서/ 우리들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서 전쟁을 하고 싸워야 하는 일들을 겪는 것입니다. 그 얘기가 8절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읽기 시작, (출 17: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그들은 이제 만나를 경험하고난 다음에 또 행진을 계속하는데, 르비딤까지 왔을 때 유목민으로서 토착세력인 아말렉 유목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이 겪는 일들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지만 우리는 본의 아니게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먹느냐 안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예요 전쟁의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의 그런 문제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여러분 만-일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물론 우리 나라는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을 거예요. 서울 불바다 설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먼저 공격하는 데가 여의도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북한은 어떨까요 거의 끝나겠죠. 전쟁이 일어나면은 일방적인 상처는 없습니다. 다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심각한 전쟁상태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모세는 이 위기 앞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이 전쟁의 위기를 극복해 나갑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면 참-당황했을 것 같아요.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라. 그래서 그가 탈출을 시도했어요. 순종하면 좀 좋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 아니고 광야로 하나님이 집어넣단 말이에요. 사실 당황할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모세였을 거예요. 먹을 물이 없는 거예요. 마실 물이 없는 거예요. 그 다음에 또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이런 것들을 겪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백성을 끌고 가야 되요. 지도자는 현실과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멀-리 있는 걸 보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을 보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 먼-약속을 못 봐요. 눈앞에 있는, 코앞에 있는 현실만 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지도자라면 현실만 보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과 미래를 보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위기 앞에서 두 가지 조처를 하게 됩니다.
9절 보시기를 바랍니다.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의 첫 번째 조치는 어떤 것인가 그는 자기의 심복인 여호수아라고 하는 젊은 지도자를 내세워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전쟁터에 내보내는 첫 번째 조치를 합니다. 두 번째 조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 자신은 전쟁에 참여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에 임하게 하고, 모세는 산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런 두 가지 조치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들을 공격하는 사람이나 세력을 만났을 때 곧 잘 양극단 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한극의 방법은 현실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현실의 불만 끄려고 애를 쓰다가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또한가지 잘못된 극단은 현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 된다 이거예요. 금식하고 산에 가면 된다 이거예요.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조처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무조건 산에 가서 하나님 아버지하고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양극단의 실수를 하게 됩니다. 모세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그가 위기를 만났을 때 그는 이두가지를 다 사용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수아를 시켜서 사람들을 동원해서 전쟁에 나가서 최선의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만 잘 한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인가 무기가 있다고 승리할 것인가 전술이 탁월하다고 승리할 것인가 사람이 많다고 전쟁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에요. 에스겔서를 보면, 두로가 왜 망했는가 에돔이 왜 망했는가 그들은 그들의 해군력을 믿었고, 그들의 경제력을 믿었고, 그들은 그들 나라의 부강함을 믿었던 거예요. 무역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또 군사력을 자랑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은 우리는 국가의 위기를 관리할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루아침 순간에 그들을 몰살시켜버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군사의 전략이, 군인이, 무기가 전쟁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쟁을 포기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전쟁에는 윤리가 없어요. 전쟁에는 도덕도 없는 거예요. 생존뿐이에요. 죽으면 모든게 끝난 거고, 살면 모든게 이기는 거예요. 이것이 전쟁의 냉엄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이러한 현실 앞에서, 꼭 전쟁은 아니더라도 생존경쟁 앞에서 삶의 모든 투쟁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깨닫게 되길 원하십니다. 일단 전쟁에 참여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모든 것이 다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모세가 생각했던 믿음이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전쟁터로 보내고 나서 그 다음에 그는 스스로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조심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면 다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전쟁에서 사람을 내보내고난 다음에 산에 올라가는 일이 동시에 있을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악한 사람들을 다 도말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도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자기 아들이 정신 차려서, 공부를 잘 해서 대학을 들어가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공부는 내내 안 하다가 시험볼 때 환상을 보여줘가지고 답을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아니에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해요. ‘우리 아들이 연필을 굴릴 때 딱 정답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
그런데 하나님이 가-끔 그것도 들어주시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은 한두번이예요. 그렇게 안들어주신것도 아니에요. 급할 때는 똑똑히 들어야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녀가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횡재를 얻게 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잘해서, 정상적으로 잘 들어갈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 달라는 그런 기도여야 할 것이에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도피하면 안돼요. 현장에 뛰어들어가야 해요. 여러분, 기도원에 가고 금식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도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현실에 대해서 게으르고 무책임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다 떠맡기고 나는 하나님께 간다” 이것은 광야에서 사는 성도의 바른 생활이 아니에요. 우리는 현실과 직면하고 위기와 직면하고 고통과 직면하면서 하나님이 그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체험해야 합니다. 동시에 내 의지로, 내 노력으로, 내 방법으로, 내 실력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것 가지고 살아갈 것 같지마는 살아지지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원수와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기도하는 것 이것이 모세가 위기 앞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0절, 시작 (출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그러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전쟁과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것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냐 하는 문제가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물론 현실은 내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목표입니다. 이상의 성취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꿈을 가지고 이상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이 없는 민족을 망합니다. 꿈이 없는 민족을 방-자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불행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과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있어서 미래의 꿈과 이상을 빼앗아 버리면 그것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이상이 있어요. 도동교회에 주신 이상이 있어요. 도동교회에 주신 꿈이 있어요. 통일을 가져오게 하고 민족을 살리고, 예수 믿지 않는 세계의 모든 종족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그런 이상과 꿈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꿈을 가지고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보면서/ 그리고 자기의 동족들이 피를 흘리며 지금 죽어가며 싸우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발걸음은 전쟁터로 가지 않았고, 산꼭대기로 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도 이렇게 산꼭대기에 같이 올라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굉장히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죽을 것만 같아도, 거기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모세와 같이 그렇게 여러분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본질은/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뭐든 지요, 결제는 제일 높은 사람이 해야 되요. 그래야 뭐가 다 되요. 하나님으로부터 결제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 먼저 받아야 되요. 전쟁에 이기느냐 지느냐 이건 하나-님이 결제하셔요. 사람이 전쟁을 하지만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결론은 하나님이 내리는 거예요. 역사는 인간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은,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세요. 따라서 여러분들이 먼저 만나야 할 분은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어때요. 자기가 해볼 방법 다 해보고 안되면 새벽기도와. 하나님 제일 마지막에 찾는 다고요.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건강할 때 하나님 찾으세요. 사업 잘될 때 하나님 찾으세요. 만사형통 할 때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세요. 당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엎어져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산꼭대기로 먼저 가세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겸손히 그분 앞에 나가시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광야의 삶이 축복과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10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고 아말렉과 싸우고 있었지요. 그러나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갔는데 여기 10절에서 하나 관심 있게 보실 게 있어요. 누구하고 갔습니까 아론과 훌과 함께 갔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모세 혼자 가지 않았고, 같이 갔습니다. 기도에는 동역자가 필요하다. 혼자 신앙생활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내힘으로 버틸 때까지는 버티지만, 내가 힘이 약할 때는 누군가 나를 도와줘야 되요. 이게 영적 원리예요. 그래서 구역이 중요한 거예요. 전도회가 아주 중요한 거예요.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혼자 못해요. 누군가 함께 돕는 사람이 필요해요. 모세라 할지라도, 아론과 훌이 그를 같이 따라 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의 인생의 최-대 위기 앞에 섰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지는 일이에요. 우리 인생에 있어서 보통일 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중요한 사건이 있어요. 태풍 앞에 선것같은 위기도 있어요. 예수님에게도 그런 위기가 있었어요. 그게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너무나 무겁고 힘들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뭐가 되도록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어요. 예수님도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중보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것들이예요.
나는 여러분들의 생애가운데 이런 위대한 중보기도의 경험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땀이 피가 되는, 사느냐 죽느냐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가 필요해요.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의 생애에 그런 위기가 왔을 때에 적-당히 기도하면 안돼요. 금식하며 새벽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고, 목을 놓고 기도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런 기도를 하셨을 때, 재미있는 사실은 혼자 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습관에 따라 예수님이 누구를 데리고 갔어요 제자들을 데리고 갔어요. 잘 보세요.
그런데-제자들이 기도했습니까 졸았습니까 졸았어요. 몇 번씩이나 세 번씩이나. 여기서 우리가 하나 놀-라운 진리를 배우는 거예요. 조는 사람이라도 데리고 가라. 나는 여러분들의 친구가 돈 많은 친구, 지식이 많은 친구, 여러분을 명예롭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보다 기도해 주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그게 있어야되요. 여러분, 가까이 사귀는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둘셋 짝지어서, 정말-무릎꿇고,
그런데요,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보면은요, 좀 이렇게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그거 쑥스러워서 못해요. 에-그냥 기도는 간단히 끝내고 그냥 그런다고요. 그건 아니요. 정말 기도하는 사람.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 아니예요. 같이 일하는 사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러나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줄 사람은 있는가 이거예요. 이 기도의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영적 전쟁에 있어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있어서 여러분이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이것 때문에 모세는 승리할 수가 있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삶을 점검해 보세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은 과연 누군가-11절과 12절에, 모세와 그의 동역자인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11절,12절을 보십시오. 시작 (출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1절과 12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모세가 여기 보니까, 가서 기도했다 이런 표현은 없고요. 뭘 들었다 손을 들었다. 손을 들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모세가 산꼭대기에 왜갔나 이 얘기예요. 손들기 위하여. 간단합니다. 손들기 위하여. 손을 들었다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에게 손을 들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요. 지금 저 밑에서 싸우고 있는 여호수아와 자기 백성들에게 손을 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기도지요. 기도지요.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했다. 그렇게 설명할 수가 있어요. 손들고 기도한 사람이 많아요. 그 중에, 우리는 솔로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선친 다윗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솔로몬이 그 집을 짓게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을 멋-있게 잘 지었고, 봉헌사를 합니다. 봉헌사를 하고난 다음에 그는 봉헌기도를 합니다. 그가 기도한 내용은 이거예요. “ 하나님, 우리 아버지, 선친 다윗과 하나님이 약속한 약속이 있는데 그거 다 들어주십시오.” 그거예요. 혹시오, 여러분들 가운데 부모님이 예수 잘 믿고 돌아가신 분이 계시면요, 그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하고 하나님하고 약속한 그 기도 나한테 다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예요. 아 그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솔로몬이 기도한 걸 보니까. 또한가지, 하나님은 건물보다 크신 분이에요. 어떻게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인간이 지은 건물 안에 있겠습니까 그렇지만은, 또 하물며, 내가 지은 집에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겠습니까 마는 오늘 이 집은 하나님의 집이니, 여기서 하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 다 응답해주십시오. 그렇게 범-죄자가 세상에서 범죄하고 와서 기도했을 때, 용서해주시고, 원수에게 패했을 때 와서 기도하면 원수를 갚아주시고, 포로생활에서 기도했을 때 들어주시고, 염병이나 기근이 닥칠 때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다 들어주십쇼. 이 제단에서 하는 기도를 하나도 놓치지 말고 하나님 다 응답해 주십쇼. 하늘 문을 여시고, 귀를 여시고 이 기도를 다 들어주십시오. 저는 그 본문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 기도할 때마다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도동교회에서 하는 기도를 다 들어주십쇼. 아 그러니까 정말 그럴 것 같더라고요. 나는 여러분이 이 제단에 와서 하는 기도가 다-응답될 수 있도록 솔로몬 같은 심정으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해요. 새벽마다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저 사람들 우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옵소서. 하나님 위로해 주십시오. 솔로몬이 그렇게 기도합니다. “ 그때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라는 표현이에요. “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그렇게 기도했어요. 나는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 기도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이 전쟁이라는 심각한 현실에 이것은 분초를 다투는 시간이에요. 한사람이라도 더 가서 도와주어야 말이 맞지 전쟁 도중에 산에 가서 기도한다는 게 맞습니까 그러나 모세는/전쟁의 현실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영적인 태도도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 양면성을 다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손을 들고, 그리고 아마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하면서 그렇게 기도했을 거예요. 언젠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을 잘 고치는 수사 한 분이 오래 전에 한국에 온 일이 있었어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병고 치는 집회에 제가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성경대로 이렇게 가르쳐요. 병의 원인을 미움으로 봐요. 죄로 보고. 그래서 용-서 하라는 거예요. 원망하거나 마음에 갈등이 있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 예수 이름으로, 용서하라는 거예요. 보혈로. 그것 가르쳐주고요. 죄 회개하고, 그리고 성령님이 임하여 당신을 치료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그분이 하는 일은 손을 들고만 있는 거예요. 이러고 있어요. 이게 10분, 20분, 30분을 가더라고요. 저는 그때 2층에 있었는데, 제옆에 어떤 한 형제가 갑자기 킁킁 하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이렇게 봤더니 뚫렸어, 뚫렸어 그래요. 십몇년 동안 막혔던 코가 뚫렸대요. 이 사람이 손을 들고 한 30분 지나니까 그러더라고요. 저는 거기서 성령님이 역사하는 것을 봤어요. 이렇게 가만-있어도, 뭐 안수 하거나 개인으로 만나지 않아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손을 들고,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기도했고,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했다. 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들도 손을 들고 기도하십시오.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집을 축복해 주시고, 여러분이 직장에 다니십니까 직장에 들어가시기 전에 손을 들고 그 직장을 축복해 주시고, 북한을 향하여 축복을 하고, 우리 민족을 향하여 축복을 하는 그런 모-세의 심정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등산하시는 분들, 산꼭대기에서 진주 시민들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받을찌어다 축복받을찌어다 생기야 들어갈지어다 그러고 나니까 내가 진주 시장이 된 것 같아요 여러분 손을 들어 축복하십시오. 손을 들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다 축복하는 특권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11절과 12절에서 보게되는 놀라운 진리는 모세가 손을 들면 누가 이겨요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는 거예요. 전쟁의 승패는 손에 있었어요. 모세의 손에, 이 논리적으로 안 맞는 말 아닙니까 아 전쟁은 전술이 좋아야 되고, 무기가 좋아야 되고, 군인이 좋아야 이기고, 지형이 좋아야 이기는 건데, 어떻게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집니까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에요. 사실 이게 영적사실이예요. 우리가 기도하면 세상이 변할 거예요. 기도하기를 그치면, 세상은 어두워질 거예요. 우리가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민족 살 거예요. 천명의 선교사, 이천명의 선교사가 나갈 거예요. 우리들이 손을 들고 있으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면 팔아픈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예! 내가 새벽마다 와서 무릎꿇고 기도해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안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여러분, 우리 도동교회가 합심해서 기도해서 세상이 변할 수 있다면 은 뭐가 아깝겠습니까 나는 우리 도동교회가 지금 해야 될 가장-중요한 일은 기도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선교도 많이 하고, 헌금도 잘하시고 다 잘합니다. 전도회도 구역도.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도동교회 최대 약점이 기도하는 사람이 적은 거예요. 개인기도는 많이 해요. 그 증거가 새벽기도예요. 새벽기도. 나는 여러분이 다-새벽기도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벽제단에 이 정도는 나와야 되요. 이 정도는 그리고 한-목소리로 모세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기도할 때, 기도하면 우리가 이기고, 기도하지 않으면 적군이 이기는 이 영적인 현실 앞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 11절과 12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요. 기도는 노동이다 그런 것을 봐요. 이게 참 힘듭니다. 여러분 손들어 보셨어요. 국민학교때 다 . 교무실 옆에서 이렇게 벌받느라고 나는 많이 했어요. 아-손 오래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손들어야 된다는 것 기도 입만 하라고 그러면 참 좋겠는데 손들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또, 집에서 기도하면 좀 좋아요. 꼭 교회까지 와서 기도하라니 이게 힘들지 않아요 그러나 여기는 뭐래요 기도하는데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손을 높이 들 수가 없었다. 모세가 기운이 빠져가지고, 자꾸자꾸 내려오면 자기 여호수아 군대가 자꾸 지니까,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요. 그래서 할 수 없어서 아론과 훌이 너무 급하니까 이 허리도 아팠을 꺼야 하루종일 서있으니까. 돌 의자를 갖다놓고 앉히고, 여기다가 손을 바친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못 내려오게 이렇게 딱 바친 거야. 할렐루야. 이게 기도요. 여러분하고 나하고 그런 기도해야 되요. 여러분, 모세는 아무리 위대해도 인간이에요. 아론과 훌이 없었다면 그 일 못했을 거예요. 저는 요즘 그래요. 우리 목사님 장로님들 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난 건강도 별로 안 좋고, 인간적으로 참 부족하고 연약한 점이 많아요. 여러분이 날 붙잡아 주셔서 같이 기도해야 해요. 같이 힘을 합해서 옆에서 붙잡아 주지 않으면, 어찌 기도할 수가 있겠어요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여러분들이 저를 붙들어 주지 않고, 저의 약점을 보완해주지 않는다면 도동교회 목회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요 이것이 바로 여기서 발견하는 놀-라운 영적 진리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손 내리지 말아라. 정-손들기 어려우면 갖다가 여기다 받쳐라. 그렇게 해서라도 승리해라 이거예요. 그 다음에 12절에 보시면,(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뭐하도록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기서 또 해가 지도록 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보통사건, 내 일상생활에 보통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일생에 한 두 번 일어날 수 있는 큰 사건이 있다고 그랬어요. 이 큰 사건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타임, 때가 있다는 거예요. 이 전쟁은 그날 하루예요. 일일분이예요. 해가 질 때까지 예요. 그때까지 이기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 땀이 피가 되도록 매일 기도하면 어떻게 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혹시 이러한 한 두 번의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는 그 오래가지 안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 곧 끝나요. 끝날 때까지 타협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없어지지 말고,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11절과 12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요, 영적 전쟁은 레슬링과 같다 이런 거예요. 권투는 떨어져서 싸우는 거예요. 그렇지요 레슬링은 어떻게 해요 붙어서 싸우는 거예요. 몸과 몸이 붙어서 싸우는 건데, 레슬링 하는 걸 보면요, 한사람이 이기면 죽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막-이기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에 죽었던 사람이 또 살아나서 또 일어나요. 이게 영적 전쟁이에요. 여러분 항상 승리만 있지 않아요. 항상 패배만 있지 않아요. 지금 패배를 경험하고 절망을 겪는 사람들, 걱정하지 마세요. 곧 일어나요. 이게 영적 전쟁. 당겼다, 밀었다 하는 거예요. 이겼다 졌다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축복만 주시지 않아요. 축복과 고통을 같이 섞어서 주세요. 어떤 때는 축복으로, 어떤 때는 고통으로, 영-원한 축복은 없습니다. 영원한 고통도 없습니다. 이것이 섞여져 있는 거예요.
그러나, 결-론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당겼다 끌렸다 하면서, 영적전쟁을,씨름 하는 거예요. 레슬링 하는 거예요. 몸싸움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결론은 하나님이 이기는 거예요. 그게 13절이에요. 13절 (출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결론이 이겨야 되요. 마라톤은 출발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끝을 어떻게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마라톤 경기를 보면은 요, 시작할 때 항상 먼저 뛰어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지요 폼-잡고 뛰어가면, 또 그것도 카메라가 잡아줘요. 그 사람 보면 30분 못 사더라고요. 보통. 꼭 폼잡고 나간 사람은 뒤쳐지더라고요. 1등 할 사람은, 언제나, 한 서너 그룹 딱 숨어서 이 자기 호흡을 맞춰가면서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뛰다가 마지막 피치를 올려 가지고 일등 하는걸 볼 수가 있어요.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예요. 일등 할 수도, 뒤쳐질 수도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플 수도 있고, 건강할 수도 있고, 잘 살수도 있고 못살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어요. 여러분 이 짧은 성공과 실패, 건강과 병든 것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이 다-결정난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는 영원한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예요. 젖고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우리의 이상이지 광야는 순간이에요. 수단이에요. 다 지나가는 거예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영광스럽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다. 우리 인생의 끝을 하나님이 승리로 만들어 주신다 그걸 가르쳐 뭐라고 그래요. 14절에서 "여호와 닛시“ 이 사건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하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5절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뭐라고 그랬어요 ”여호와 닛시“ 여호와 닛시는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할렐루야. 광야 같은 세상입니다-. 마실 물이 업고, 먹을 양식이 늘 없게 느껴지는, 내일 어떻게 사나 난 직장도 다 잃어버렸는데, 난 지금 암에 걸렸는데, 우리 가정을 보면 눈물밖에 나는 것이 없는데, 내 인생의 미래는 어떻게 갈 것인가 이런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많은 게 광야의 현실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광야에서, 식탁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쓴 물이 변하여 뭐가 되요 단물이 되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 쏟아내 주시는, 비같이 쏟아주시는, 만나를 먹을 것이고, 원수가 여러분들을 쳐서 죽이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승리케 하여 주신다. 이 축복이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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