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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낙오자 (출17:8-12)

본문

본문 8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 딤에서 싸우니라.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싸움을 벌였습니다.이 싸움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그 와중에서 적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스라엘이 지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1절).이 전쟁으로 인하여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가나안 땅을 향한 신앙의 행렬에서 낙오하게 되었습니다.이스라엘이 르비딤을 통과할 때,아말렉을 만남으로 해서 낙오자가 생 겼던 것입니다.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신앙의 행렬에서 낙오자가 생길 때 가 있습니다.신앙의 낙오자는 믿음을 버리고 타락하여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이 아닙니다.그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성장을 멈춘 사람입니다.오늘날 신앙 생활을 한다는 말은 그저 단순히 믿음을 간직하고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으로 계속 성장해 가고 있는 삶을 일컫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가나 안 땅을 향해 믿음의 행진을 해 나가는 과정은,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체 험한 후 계속 신앙의 성장을 해 나가는 모습을 상징합니다.이스라엘 백성 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까지 수많은 사건들을 겪으면서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하듯,그리스도인들도 하늘나라에 입성하는 그 날까 지 세상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합니다.그리고 그 경험들이 쌓여 신앙의 성장을 도모해 나갑니다.그러나 이 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뜻하지 않은 사건을 통하여 행진에서 낙오하는 자들 이 발생했듯이,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믿음의 길을 가다가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생깁니다.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 으로 인해 가나안을 향한 진군에서 낙오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한 사람 들입니다.이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에서 빗나간 사람들입니다.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성장을 해 나가지 못하고 낙오자가 됩니까 이 질 문은 이스라엘에 무엇 때문에 낙오자가 생겼느냐는 질문과도 연결됩니다.이스라엘에 낙오자가 생기게 된 것은 아말렉 족속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르비딤이었습니다.아말렉의 공격이 이스라엘에 낙오자를 만들었습니다.이스라엘이 르비딤을 지나갈 때,바로 그때 낙오 자가 생겼습니다.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성장을 멈추게 하는 데는 신앙인을 공격하는 존재와 특별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신앙 성장을 멈추도록 공격해 오는 존재가 무 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어느 때가 공격받기 쉬운 위험한 때인지 를 알아야만 합니다.그러면 아말렉 족속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르비딤을 지날 때란 어느 때를 가리킵니까 이 두 가지가 상징하는 바를 살펴보면 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 아말렉 족속 아말렉은 한 부족의 이름입니다.이 이름은 그 부족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었습니다.성경은 이 조상에 대하여 창세 기 36장 12절에서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 손이며.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인 것입니다.에서는 누구입니까 에서는 이삭의 첫아들입니다.바로 아말렉 족속은 이삭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 중 에서의 피를 따라 난 자들입니다.아말렉이 공격한 이스라엘은 누구의 자손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입니다.이스라엘과 아말렉 은 피를 나눈 한 형제의 자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형 에서의 자손이 아우 야곱의 자손을 공격하였습니다.에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창세 기 25장 29절 이하를 보십시오.사냥하러 들판에 나갔다 집에 돌아온 에서는 몹시도 배가 고팠습니다.마침 팥죽을 끓이던 동생 야곱을 본 에서는 그 팥죽을 달라고 합니다.그러자 동생 야곱은 장자권을 양도하면 팥죽 을 주겠다고 합니다.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장자에게 더 많은 복을 주신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사실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장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리시며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장자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표현하는 상징이었습니다.그러나 에서는 배고픔 때문에 바로 그 장자권을 판 사람입니다.현재 자신의 육신을 만족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에서는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장자권을 통하여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긴 자였습니다.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야곱은 배가 고 파 팥죽을 끓였지만 현재의 배고픔보다는 장자권과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소중하기에 팥죽을 내어 주고 장자권을 산 자였습니다.장자권을 사고 팔았다는 것에는 단순히 상거래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장 자권을 사고 파는 행위 속에는 하나님과 육신의 욕구 중 어느 것을 더 중 히 여기느냐를 선택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아말렉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현재의 육신을 더 소중하게 여긴 자의 후손이었으며,이스 라엘은 하나님을 더 소중하게 여긴 자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말렉 은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속성을 상징한다 고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을 잘 섬기는 이삭에게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두 아들이 있었듯이,신앙인에게도 두 가지의 대조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첫째/에서의 속성 에서의 속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더 중하게 여기는 속성입니다.하나님을 사모하는 것보다 육신의 욕구를 채우 고 그 육신을 만족시켜 주는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둘째/야곱의 속성 야곱의 속성은 눈에 보이는 세상 것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간절 히 사모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속성입니다.육신의 욕구를 채우고 만족시켜 주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해 드리며 그분과의 관계를 소중 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속성 이삭에게 먼저 난 아들이 에서였듯이,그리스도인들의 마음 가운데 먼저 자리잡고 있는 속성은 다름 아닌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간절히 사모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에서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을 멈추도록 공격하였던 아말렉 족속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마음 가운데 있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간절히 사모하며 소중히 여기는 속성을 상징 하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에게도 에서의 속성이 그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세상을 사모하는 그 속성의 외적인 형태는 물질일 수도 있 고 명예나 성공,체면,인간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또는 가족이나 자기의 취미,선행,의로움 등으로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이처럼 사람마다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요소가 하나씩은 있습니다.신앙이 생길 즈음에는 이 속성이 잠시 뒤로 물러가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없어진 것이 아니 라 숨어 있는 것입니다.구원의 감격과 신앙의 열정 때문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워 그들을 전멸시키기까지는 아말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신앙 생활을 시작한 그리스도인에 게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그리하여 그가 영적으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해 나아갈 때,공격을 시작하는 것입니다.지금 신앙의 성장을 멈춘 상태로 있는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속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자신이 소유한 물질이나 세상적인 명예와 성 공,체면,가족들 등 하나님보다 우위에 놓은 것들이 신앙을 흔들리게 만 드는 요소입니다.신앙의 성장에 정진(精進)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에서의 속성이 있어 믿음의 행진을 가로막고 멈추게 합니다.어떤 사람은 신앙 성장의 방해 요소를 환경이나 마귀 혹은 사람 등의 외부적인 것으로 돌리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마음에 에 서의 속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마귀가 그 속성을 이용하여 환경과 사람이 방해물이 되도록 만든다는 사실입니다.디모데전서 6장 9,10절 은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사모하고 그것에 더 마음을 빼앗겨 신앙 생활에 큰 타격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부(富)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沈淪)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그
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에서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여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 로를 보호해야 합니다.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도 시험받지 않아야 합니다.그리스도인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의 성장에 최고 의 적이 되는 요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점입니다.사람이나 환경,마귀 때문이 아니라 에서의 속성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있는 에서의 속성은 어떤 것입니까 당신이 하나님보다 중요시 하는 세상 것이 어떤 것인지 속히 알아내십시오.그리고 그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십시오.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이 찾고 바라야 할 존재임을 깨달으십시오.그렇지 않으면 에서의 속성으로 인해 당신의 신앙이 정지하게 될 것입니다.당신의 믿음이 성장해 갈 때,에서의 속성이 당신 의 믿음을 방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 속성을 당신에게 서 제거해야 합니다.세상 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에서의 속성을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그래야 신앙의 낙오 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 르비딤 이스라엘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렀습니다.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8절).르비딤은 평야 지역으 로 북쪽은 물이 없는 건조지이나 남쪽은 여름 내내 물이 있는 아름다운 목 초지입니다.이스라엘은 신 광야의 물이 없는 북쪽 지역에서 고생하다가 남쪽으로 행진해 가고 있었습니다.이 지역의 남쪽은 소문난 곳이었기 때문에 아말렉 부족도 다른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마침 여름이 오자 이스라엘보다 먼저 와서 좋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르비딤의 좋은 땅을 향하여 수십만 이스라엘 민족이 행진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아 말렉 족속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게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이스라엘 의 행군으로 인하여 생존에 위협을 느낀 아말렉은 먼저 군사를 일으켜 이 스라엘을 공격하였습니다.이스라엘이 아말렉에게는 생명과 재산을 위태롭 게 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그래서 자신들이 차지한 땅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한편,아말렉의 공격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낙오자가 생기게 되었습니다.아말렉은 신앙인에게 있는 에서의 속성 을 상징합니다.이스라엘의 행진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장을 상징합니다.그리스도인이 꾸준히 신앙 생활을 해 나갈 때,하나님보다 더 귀중 히 여기던 부분들을 포기해야 할 경우가 옵니다.그러면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있던 아말렉의 속성,곧 에서의 속성이 근심하고 염려하기 시작합니다.지금까지 소중히 해 왔던 것을 잃을까 불안해 하는 에서의 속성이 성 장해 가는 신앙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합니다.내부에 조용히 숨어 있던 에 서의 속성이 활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에서의 속성은 세상적인 것들,육 신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들을 신앙심 때문에 잃게 되리라는 것을 알 고 불안해 하며 걱정에 사로잡힙니다.그리고 영혼의 속 사람이 걷고 있는 믿음의 길을 회의와 짜증 섞인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봅니다.믿음 때문에 이제까지 누려 왔던 세상적인 것을 잃게 될 때,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는 옛 사람이 스스로를 책망합니다.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 며 믿음의 길을 가려는 신앙의 새 사람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르비딤에 서 전투가 일어나는 때는 그리스도인이 성숙해 가는 신앙 때문에 세상적인 것들을 잃게 됨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것에 대해 염려하는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성장을 위해 믿음의 영적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자신이 귀히 여기는 세상 것들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명예와 자존심을 잃고 체면과 위신이 실추되고 인간 관계가 깨어질 수 있습니다.사랑하는 가족을 희생시킬 때가 있습니다.취미 생활과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갈등 하나님은 한 사람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고 흠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 사람이 소중히 여기던 것을 하나님 안에서 잃게 하십니다.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사랑하고 사모하며 추구했던 세상의 것들,육신의 욕구를 버리게 하십니다.그럼으로써 세상 것의 무가치함과 영혼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알게 하시며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앙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하십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생활,즉 천국을 향하여 좁은 길을 가 면서 아무 것도 잃지 않고 희생도 않고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채로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육신도 만족시키고 영혼도 만족시키고 육체의 본능과 욕구들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뜻도 만족시키면서 신앙의 성장을 갈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다가 세상적인 욕 구를 채우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닥치면 낙심합니다.세상을 더 사랑하던 마음을 신앙을 위해 버려야 한다는 사실로 갈등합니다.이처럼 하나님 때문에 잃게 될 세상 것에 대하여 근심하고 염려하는 때가 바로 위험한 때입니다.이 염려는 아말렉으로 표현된 에서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많 은 사람들이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여 신앙의 낙오자가 됩니다.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내적 투쟁에서 패배하여 영적 성숙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이와 같은 내적 투쟁의 한 단면을 로마서 7장 21-23절 말씀이 두 법(法)의 대결이라는 간명한 표현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사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영원 하고 새로운 것을 위하여 옛 것을 잃어버려야 하는 새 세계에서 사는 사람 입니다.그는 하늘의 것을 위하여 땅의 것을 잃어야 합니다.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인간의 뜻은 접어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 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바울은 인간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귀중하다고 말했습니다.또한 영혼의 만족을 위하여 육신의 만족을 포기해야 합니다.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 면,본능의 욕구를 채우려는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그리고 갈등의 순간을 이겨 내야만 합니다.에서의 속성이 신앙의 마음을 뒤흔들 때,이를 극복 해야만 합니다.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갈등의 순간에 패배하여 낙오자가 됩니다.이들은 대단히 중요한 영적 진리를 망각한 것입니다.신 앙은 처음에는 잃는 것처럼 보이지만,나중에는 갑절로 얻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하나님은 처음에 너의 귀중한 것을 나를 위해 잃어다오 하 시지만,잃은 자에게는 그 갑절로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처음에는 받기보다 잃기를 원하십니다.자존심,명예,체면,성공,부귀,가족 그리고 인생의 즐거움 을 하나님 때문에 잃기를 원하십니다.그리고 잃은 자에게 그 사람의 영적 성장과 함께 그 잃은 것에 대하여 수십 배,수백 배,수천 배,수만 배로 다시 채워 주십니다.당대만이 아니라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내리 십니다.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하나님께서는 이미 인간들에게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죄 사함과 영생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로부터 시작한 신앙 생활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것을 잃는 자세 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오기 전에는 하나님보 다도 세상의 보이는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살았습니다.철저히 에서 의 속성을 충족시키는 자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바로 이러한 부분 들을 하나님 앞에서 버리지 않으면,신앙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소중히 여기던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잃은 경험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갑절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복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혹시 그런 경험이 없다면 반드시 잃는 경험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아끼던 에서의 속성을 버 릴 때 밀려오는 염려와 근심은 당신을 신앙의 낙오자로 만들 수도 있으니 주의하십시오.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 사함과 생 명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이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영생의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죄인이 의인의 칭호를 받아 창조주 하나님과 더불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은혜 아래 거하는 자들 입니다.허무와 공포와 영원한 멸망만을 가져다 주는 죽음의 자리에서 영 원한 새 존재로 부활한다는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구원하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잃어야 합니다.그분을 위하여 당신의 시간과 물질과 육신의 본능과 사랑하는 이 들과의 즐거움과 심지어 당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마음의 각오를 하십시오 .잃는 것은 잠시에 불과합니다.하나님은 영적으로 성숙한 당신에게 다시 갑절로 갚으실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당신과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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