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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비결 (출17:8-16)

본문

여러차례 말씀드린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하여 가나안까지의 긴긴 여정은 우리가 구원받아 한평생 신앙생활하다가 천국가는 모형이며 그림자요, 이스라엘 백성이 400여년동안 종노릇하다가 해방된 것은 악령 사단에게 노예되어 살다가 해방됨의 예표요,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통해 옛생활과의 작별하고 새생활을 말함이요, 따라가는 애급군대는 육체의 소욕과 사단과의 단절을 의미함이요, 400년 광야생활에서 쉴날이 없었던 것은 비록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육체를 쓰고 죄많은 세상에 개인적,가정적,사회적으로 이런저런 시련의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는 사실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생속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떠나지 아니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비록 이땅에서 시련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임마누엘 역사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진행하다가 아말렉이란 원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말렉은 사냥을 직업으로 삼고 창과 칼과 활을 능숙하게 다루는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이삭이 예언했던 그대로 된것입니다.(창27:40)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가나안가는 길목에서 원수같이 지내는 이 두민족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자기조상의 원수를 그냥 보낼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싸움을 걸어왔고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더불어 싸워 승리한 장면이 바로 본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어떻게 싸워 이겼습니까 그 내용을 더듬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여정에 아말렉과 같은 원수를 만났을때 어떻게 싸워 신앙의 승리를 할 수 있겠는가 그 비결을 얻고자 합니다. 지난 한주간은 참으로 길고도 긴 한주간이었습니다. 사단이 온 가정과 교회를 마구 공격한 한주간이었습니다. 은혜받는데 방해가 없는가 싶더니 부흥회가 끝나자마자 사단이 마구 공격해 옵니다. 그러면 이렇게 무차별 공격해오는 사단과 어떻게 싸워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1. 먼저 승리를 위해서 신앙생활은 전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은 곧 전투입니다. 수양이 아니요 교양이 아니요 낭만이 아니요 입산수도가 아니라 전투요 투쟁입니다. 그럼 누구와의 전투입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누구나 아말렉과 같은 원수가 있습니다. 그 원수가 바로 적입니다. 성경을 보면 신자에게는 원수가 있다는 사실이 태초부터 증명되어 왔습니다. 하와에게는 뱀이 원수였고, 아벨에게는 가인이었습니다. 이삭에게는 이스마엘이 요, 야곱에게는 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아말렉이 원수로 둥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도 세가지 적이 있으니 이를 삼적이라고 합니다.
첫째, 내부의 적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근성, 썩어지고 냄새나 문드러진 타락한 근성이 언제나 우리속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둘째, 외부의 적입니다. 이는 세상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세상이란 곳에 발붙이고 삽니다. 보는 것이 죄악이요, 듣는 것이 죄악이요, 접촉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우리 신앙을 도와주는 환경은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이라는 원수들에게 포위되어 살고 있습니다.
셋째, 영적인 적입니다. 이는 악령 사단을 말합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3적에게 협공과 포위를 당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분도 방심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전신갑주를 입고 방어자세를 취하지 아니하면 언제 당할지 모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현주소입니다. 더구나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가인보다 아멜이 약했습니다. 이스마엘보다 이삭이 약했고, 에서보다 야곱이 약했습니다. 약한 사람이 언제나 원수들에게 시달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약하지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원수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위에 열거한 3적들보다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바른관계만 맺으면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은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싸움같은 전투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러한 적이 있기에 우리는 천국을 향해 더욱 빨리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다에 떠있는 배를 보십시오.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순풍에 돚달고 미끄러지듯 가는 배를 볼 때 차라리 낭만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실인즉 배가 조용하게 떠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한순간 한순간 바다와 생사를 거는 투쟁속에 있는 것입니다. 배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물의 압력과 물이 못들어 오도록 막고 있는 철판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 두 원리가 대치하기에 배는 비로서 물위에 떠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철판이 물을 잘 막느냐 바닷물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달려갈 것이로되, 못막느냐 구멍이 뚫려 배는 침몰하고 말것입니다. 바다와 배는 이렇게 원수지간이면서 동시에 생명지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자가 이땅에 사는 것도 흡사 이와 같습니다.3적과 얼마나 잘싸워 이기느냐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가는 축복을 받습니다. 싸움에 졌느냐 세상의 세력이 침투해 들어와 우리는 침몰하는 배와같이 패자가 되고 말것입니다. 이자리에 앉아있는 여러분의 머리속에, 가슴속에, 아니면 생활속에 싸움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투쟁이요 전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전신갑주를 입고 무장하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고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려 서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치열한 싸움이 우리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과도 그렇고 사단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전신갑주를 입어야만 합니다.
2. 또한 승리하기 위해서는 원수가 우리를 공격하는 때를 알아야 합니다. 원수는 절대로 상대가 강할때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강할때는 주위를 빙빙돌다가 약점이 있을때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없이 승리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여리고성 싸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때는 너무나 강해서 원수가 감히 넘보질 못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합니까 그 이유가 진중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하나님을 불신하고 있는 중입니다.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때를 이용해 아말렉이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원수는 우리에게 헛점이 있을 때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내적인 단결이 무너질때, 안정이 무너질때, 확신이 무너질때 외적이 비로서 “이때구나!” 하며 공격해 들어옵니다. 이 원리는 국가고 개인이고 가정이고 다 똑같습니다. 로마제국이 칼이 없어서 망한것 아니요, 창이 없어서 망한것 아니요, 군마와 병거가 없어서 망한 것 아닙니다. 내적인 부패와 혼란때문에 하챦은 북방의 야만인인 반달족에게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보십시오. 헬라가 무너진 것도, 바벨론이 무너진 것도, 애급이 무너진 것도.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외적이 강함때문이 아니요 내적인 분열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내적으로 내 신앙이 암담할 때, 영적으로 무기력해졌 을 때, 내 마음이 강팍해졌을 때, 바로 이 때가 원수가 공격하는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결여되었을 때, 기도가 끊어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길 때, 교회와 멀어질 때, 사명을 소홀히 여길 때 사단이 공격해 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바른관계속에서 모습이 반듯했다면 아말렉쯤이야 손가락 까닭안하고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어느때 내적이 머리를 들지, 외적이 머리를 들지, 영적이 머리를 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3. 그러면 구체적으로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 모두 맡은 일에 충성을 다했을 때 승리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모세는 모세대로, 여호수아는 여호수아대로, 아론은 아론대로 훌은 훌대로.모두 자기의 직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맡은 일을 다했을 때 비로서 승리가 있었습니다. 가정에, 교회에 원수와의 싸움이 있습니까 각자의 일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승리할 것입니다. 홍해변에서 바로의 군대가 추격할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여호와께서 어떻게 싸우시나 너희는 구경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나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은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실때 때로는 전쟁없이 전진케도 하셨지만 때로는 전쟁속에서 전진케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전쟁없는 승리가 있든 전쟁속의 승리가 있든 어쨌든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은 이렇게 매우 다양하십니다. 때로는 이방법으로, 때로는 저방법으로, 때로는 성공으로, 때로는 실패로, 때로는 건강으로, 때로는 질병으로, 때로는 인기속에서, 때로는 비난속에서 전진케 하시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저것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금 본문에는 전쟁을 통해서 전진케 하십니다.
둘째, 기도할때 승리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왜 올라갔습니까 전쟁을 구경하려 함도 아니요 소풍간것도 아닙니다.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여호수아만 나라를 위해 싸운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하는 모세가 더욱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승패가 모세의 들고 내리는 손에 달렸음을 볼 때 모세가 더 큰일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이 반드시 교역자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누구든 모세의 손이 될 수 있습니다. 배후에서 모세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손이 바로 모세의 손입니다. 모세와 같이 기도하면 장로님도 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사님도, 집사님도, 주일학교 어린아이도.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수아의 모습이 꼭 교인들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교역자일수도 있습니다. 그럴때는 여러분이 산에서 더 큰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의 승리 여부는 모세의 손에 달려있었듯이 교역자의 성공실패 여부가 여러분이 배후에서 얼마나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주느냐에 달려있을 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성공적인 일을 만났을때, 뜻밖의 축복을 받았을때 여러분의 배후에 누군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 사람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성공이 저 산꼭대기의 모세의 손때문이었다면 여러분의 성공은 그 누군가의 기도때문입니다. 그 누구가 교역자일 수도 있고, 여러분의 부모님일 수도 있고,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보좌 우편에서 날위해 기도하고 계신 주님의 기도가 있다는 사실,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동시에 나도 남을 위해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겠습니다. 교역자를 위해 기도의 손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을 위해, 같은 믿음의 성도를 위해, 실패한 사람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의 손을 높이 드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약속의 말씀을 의지했을때 승리했습니다. 모세가 기도할때 지팡이를 높이들고 기도했습니다. 지팡이는 언약의 증거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도장과도 같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로 가기를 주저했을때 지팡이가 뱀이 된 사건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보증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모세의 지팡이는 없지만 이미 보증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뭐라고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 이 지팡이로 애급을 굴복시키지 아니하셨습니까 하나님, 이 지팡이로 바로를 항복시키지 아니하셨습니까 하나님, 이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지 아니하셨습니까 하나님, 이 지팡이로 반석에서 생수를 내지 아니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이 지팡이로 역사하셨던 하나님, 오늘도 이지팡이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약속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미 주신 성경말씀을 붙들고 기도해 보십시오. 당장 여러분 눈앞에 승리가 보일 것입니다.
넷째, 최선을 다했을때 승리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에 얼마나 전심전력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만일 모세가 힘들었다고 팔을 내렸다면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힘들다고 기도를 쉬고, 귀챦다고 쉬고, 시간없다고 쉬고.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두고 얼마나 얼마나 절실히 기도하셨는지 땀방울이 피방울이 됬다고 했습니다. 얍복강가의 야곱같이, 갈멜산의 엘리야같이 사력을 다해 기도할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승리하길 원하십니까 피곤하여 지칠때까지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다섯째, 협조가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피곤하여 자기도 모르게 팔이 점점 내려올때 아론과 훌이 급히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앉히고 서로 한팔씩을 부축하였습니다. 아론이 누구입니까 모세의 형입니다. 훌은 누구입니까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의 남편이므로 모세에게는 매형이 됩니다. 모두 손위 사람들입니다. 만일 아론이 생각하기를 “창피스럽게 형인 내가 동생의 손을 잡고 있어야 하나” 훌이 생각하기를 “창피스럽게 손위 매형인 내가 처남의 손을 붙들고 있어야 하나” 하며 부축하기를 거절했다면 그 전쟁을 과연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 자존심 버리고 자기 지위 버리고 협조와 단결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는 지금 아말렉과 같은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먼저 여러분 스스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오.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되 사력을 다해 기도하십시오. 말씀의 지팡이를 높이 드십시오. 그리고 자기의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서로 협조하십시오. 어떤이는 그물교회에서 모세일겁니다. 어떤이는 여호수아일 것이고 어떤이는 아론이요 훌일 것입니다. 이렇게 협조하면 반드시 승리하여 그물교회 지붕위에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훨훨 날리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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