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의 손길 (출14:1-14)
본문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을 주관하신다면 어떠한 길로 인도하실 것 같습니 까 당신은 그 길을 당연히 축복과 기쁨과 성공의 길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도하실 때,축복 이전에 저주가 어떤 것인지 알게 하시며 기쁨 이전에 슬픔을 맛보게 하시며 성공 이전에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 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그리스도인을 상 징하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놀 라운 경험을 한 후,애굽 땅에서 광야로 나오는 장면입니다.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 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行伍)를 지어 나올 때에(출 13:1 8).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므로 안심하고 희망 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이들의 목적지는 아프리카 북쪽에 위치 한 애굽을 벗어나 중동(中東)지역의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천막을 친 장소는 홍해를 앞에 두고 있는 아프 리카 북쪽의 광야 끝이었습니다.지금의 수에즈 운하 근처입니다.앞길은 홍해가 막고 있고 양 옆은 험한 산지로 막혀 있어 갈 곳이라고는 지금 막 떠나온 애굽으로 가는 길뿐이었습니다.만일 뒤에서 애굽 군대가 공격해 온다면 피할 길이 없어 꼼짝 없이 당하고야 마는 지리적으로 안 좋은 위치 에 천막을 치게 되었던 것입니다.이 위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택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고 인도하신 장소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 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1,2절).
사실 지리상으로 보면 해안선을 따라 가나안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광야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위험스러운 장소에 머 물러 있을 때,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멸하 도록 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첫발을 디딘 이스 라엘 백성이 처음 당면한 사건은,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광야에서 자신 들을 죽이려고 달려오는 애굽 군대의 말발굽 소리를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즉,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신앙인의 인생은 곧장 축복과 성공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라,실패와 고민의 길,괴로움의 길을 먼저 거쳐야 한 다는 사실입니다.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가는 가깝고 쉬운 길, 애굽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난감한 상황에 처하 게 하셨는가이 질문은 오늘의 신앙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왜 하나님께서는 신앙인의 인생을 곧장 기쁘고,안정감이 있고,축복이 넘치는 삶 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괴롭고 힘든 형편으로 인도하신단 말인가 왜 꼭 그 길을 거치도록 하신단 말인가그 이유는 이러한 훈련을 통해 광야 생활 중에 겪을 시험에서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외적인 시험과 내적인 시험으로 나뉩니다.전에 살펴보았듯이,외 적인 시험은 주위 사람을 통해 오는 것이고,내적인 시험은 자신들의 심성 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을 사는 동안 끊임없이 시험을 받습니다.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시험에서 우리가 승리하도록,신앙 생활 초기 단계에 철저 히 훈련시키십니다.
외적인 시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로를 보고(報傑)받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갖힌 바 되었다 할지라(3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때,당연히 홍해 가 아니라 해안을 따라 난 길로 갈 줄 알았습니다.역사 이래로 아프리카 에서 중동 지역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앞은 바다로 막히고 옆은 산으로 막 힌,길이 아닌 길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바로는 이스라엘 지도자의 어리 석음을 흉보며 독 안에 든 쥐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있습니다.3절에 서 그야말로 광야 속에 갇힌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바로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바로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 민족의 행로는 합리적이지 않았 습니다.많은 사람들이 피해 가는 길,사람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 길 을 걷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에게 어리석게 비쳐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그래서 바로가 마병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게 했던 것입니다.이스라엘인들이 홍해 앞에 진을 쳤을 때,모든 애굽인들도 이를 비웃었을 것입니다.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행진을 시작 하였으므로,애굽인들은 혹시 이스라엘 민족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 보다 더 좋은 길을 이스라엘 민족이 택하여 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 기도 했을 것입니다.그러나 막상 이스라엘 사람들이 택하여 간 길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고 비웃고 손가락질 하였음이 틀림없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믿음의 행진 을 시작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처음 들은 소리는 매우 어리석고 비합리적 인 길을 가고 있다였습니다.이것은 신앙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을 말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해 줍니다.사람들로 부터 오는 외적인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 주는 것입니다.즉, 외적인 시험은 주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비합리적인 길을 걷고 있다고 조소(嘲笑)하는 것입니다.비합리적인 길,즉 많은 사람들이 걷 지 않는 길입니다.사람들의 이성(理性)의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길입니다.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길입니다.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로를 어리석다고 조소하였듯이,오늘도 주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걷는 믿음의 길을 비합리적이라고 비웃을 때가 있습니다.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철저히 합리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을 함께 걸어야 하는 시대입니다.이성적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은 될 수 있는 한 하지 않아야 하는 시대입니다.그러나 성경은 시대가 변하 더라도 그리스도인은 많은 사람이 걷기를 거부하는 좁은 길로 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하나님과 함께 가는 신앙의 길은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완전 히 이해되는 길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상 과 철학과 경험에 의하여 살아가는데 당신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살겠 다고 해 보십시오.비합리적인 생활 태도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입니다.다 수의 사람들이 인간의 일은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된다고 하는데,엎드 려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된다고 해 보십시오.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고 할 것입니다.물질 만능과 배금주의에 물든 시대를 살아가 면서 그 귀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철저히 인간 관계를 의지하는 이 시대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생활을 해 보십시오.분명히 당신을 향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비웃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친히 육신을 입고 찾아 오셨다고 말해 보십시오.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셨다고 말해 보 십시오.분명히 말도 안 된다라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사도 바울 도 주위 사람으로부터 극심한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 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행 26:23,2
4).신앙이 좋은 신자라도 주위에서 어리석다고 조소 하면,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무언가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졌다고 느끼면,신앙의 길에서 멈추어 섭니다.외롭게 하나님을 바라며 살던 삶이 세상을 향해 줄달음질 칩니다.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외적인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그리스도인을 신앙의 초기 단계에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신앙 생활 초기에 낙담되고 고민스런 문제에 부딪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당신이 신앙 생활을 하다가 조금 어려운 상 황에 처해 보십시오.주위에서 즉시 그렇게 남 다르게 믿더니 무엇이 그 래,이제 유별나게 믿지 마라고 떠들어 댑니다.비합리적인 신앙 생활의 결과라고 조소합니다.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믿음 없는 사람들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굳건히 지킴으로써,앞으로의 생활 가운데 수없이 다가올 주위 사람들의 유혹을 이겨나가도록 훈련시키 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대로 홍해로 나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바다를 건넜습니다.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다가,생명의 좁은 길을 가다가,위기 일발의 절박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그 길은 잘못된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를 훈 련시키기 위해 섭리의 손길로 이끄신 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말씀대로 살다가 시험을 만나면,하나님의 훈련의 손길 아래 있음을 깨달아 야 합니다.그리고 곧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그 괴로운 자리를 벗어나게 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8,10절은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훈련의 때가 지나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그 고난을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형제들아 우리가 아시 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우리 주 예수께서도 세상에 오실 때 사람들의 이성과 논리에 맞지 않는 길을 따라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다는 말인 가 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창조주이시고 전능자이시 며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뒤집으시며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주님은 인간들의 좁은 이성과 논리로 하나님을 이 해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뜨리셨습니다.신앙의 길이 사람의 논리와 이 성과 합리에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어떤 불신자들은 기독교는 비논 리의 종교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신앙의 길은 비논리,비이성이라 기보다는 논리나 이성이나 합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즉,이성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극히 차원이 높은 길입니다.논리로는 증명될 수 없는 고차원 의 길입니다.당신이 마음으로 행동으로 물질로 시간으로 하나님께 헌신하 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데,당신 주변은 온통 근심과 걱정뿐인 것 같습니 까 그것은 당신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하나님께서 당신을 믿음 없는 주위 사람들의 조소에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는 훈련의 자리인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당신 이 답답하고 괴롭고 암담한 현실을 통하여 사람 앞에는 강하고 하나님 앞 에는 믿음 있는 자로 훈련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주위로부터 비웃음 을 당하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마십시오.사면 초가(四面楚歌)와 같은 상황이 되더라도,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 높은 생 명의 길을 가고 있는 복된 자임을 명심하십시오.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만 굳게 바라보는 자가 되십시오.
내적인 시험 10-12절 말씀을 보십시오.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 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 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 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 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와 산으로 가로막힌 광야에서 자신들을 뒤쫓아오는 바로의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를 듣는 상황 아래서 지도자 모세에게 항의하는 장면입니다.이 난감하고 암 담한 상황 속에서 수십만 이스라엘 군중들의 마음이 어떻게 동요되고 있는 지 보십시오.그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10 절)고 소리칩니다.이들은 애굽 군병들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자신들의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저들이 오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사 실 이스라엘은 장정만 60만이었습니다.뒤쫓아오는 군대는 애굽의 온 군 대가 아니라 기마 부대뿐이었습니다.이왕 죽을 바에야 한 번 목숨 걸고 싸워 보자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맞붙으면 얼마든지 이길 수도 있는 상황 이지만 이들은 싸움은커녕 매장지를 생각합니다.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철저한 무기력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좌절 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또한 그들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 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2절)고 말합니다.이 말은 괜히 애굽을 탈출해 왔다는 것입니다.후회하며 한숨을 쉽니다.믿음의 길을 떠나게 하 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행 진을 해 나가는 중,어려운 일을 만나자 무기력함을 보이며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하여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시험이 무엇인지 밝혀 주는 것입니다.즉,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세상을 살아가다 어려움을 만나면,마음 속에서 신앙 생활 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무기력의 소리 그리고 괜히 신앙 생활을 시작한 것 같다는 원망의 소리 가 들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내적인 시험은 무기력과 원망하는 자세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앙의 길을 간다 할 지라도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리고 세상 안에는 끊임없이 믿음의 길을 방해하는 어둠의 영적 권세들인 사단이 있으며,자신과 다른 기질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자신 내부에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육신적 기질이 있습니다.이러한 방해 요소들 이 그리스도인을 원치 않는 환경으로 이끌어 가며 믿음 생활을 중단하게 합니다.그리스도인들도 연약한 육신을 입은 사람이기에,자꾸 유혹을 받 으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마음을 갖게 되어 신앙의 목표를 포기하게 됩니다.원하는 일이 제대로 안 되면 맥이 빠지게 됩니다.무기력하게 되 면 그 마음 속에 남는 것이 원망의 소리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의 최고의 적(敵)은 영적(靈的)무기력입니다.이 영적 무기력은 신 앙의 목표를 상실하게 합니다.신앙의 의지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주 님 앞에 어떻게 하면 바로 설까 하는 간절함을 상실하는 것입니다.이것 이 그리스도인이 빠지게 되는 영적 무기력입니다.이 무기력은 우리로 매 사를 원망하게 합니다.하나님을 원망합니다.자신의 삶 자체를 원망합니다.환경을 원망합니다.배우자를 원망합니다.부모를 원망합니다.교회를 원망합니다.목사를 원망합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리 힘든 상황을 만 나더라도 가나안을 바라보는 목적 의식을 잃지 말았어야 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자마자 죽겠다라는 말부터 했습니다.그러므로 곧 무기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어렵고 괴로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고 천국의 보좌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을까 하는 믿음의 목표를 상실하지 말아야 합니다.현재의 어려움에 온 마음을 빼앗 겨 영적 목표를 상실할 때,무기력하게 됩니다.그러면 이제는 기도도, 예배도,성경 말씀 배우는 것도,헌신하는 생활도 모두 되는 대로 하자 라는,영적 생활을 포기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가정 생활에서도 신혼 때에는 부부가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아갑니다.서로 인내하고 도와줍니다.말도 선택해서 합니다.그러나 한번 성질을 내고 말을 함부로 하게 되면,그 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어 버립니다.그리하여 부부 사이가 나 빠지기 시작합니다.신혼 시절의 꿈들이 깨어지므로 될 대로 되라는 무기력한 태도를 드러냅니다.무기력은 맥만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의 목표와 신앙의 간절함이 상실되는 것입니다.부부가 서로에게 무기력해 지면 그때부터는 원망만 남습니다.이런 가정은 파괴되고 맙니다.하나님 앞에서도 신앙의 최고의 적은 바로 무기력과 원망입니다.하나님 앞에서 신앙 성장을 위한 목표가 없는 것,영적 성장을 향한 간절함과 애절함이 없는 것,이것이 영적 무기력이고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는 신앙의 원수 입니다.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대신에,자기 생각과 계획과 기대에 조 금만 어긋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태도가 그리스도인의 내면으로부터 솟아 나는 최고의 적입니다.더 나아가 이런 태도는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광야에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축복 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의 대열에서 제외하셨습니다.하나님을 원망하다 하루에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무 기력과 원망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범 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 라(살전 5:18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 무기력한 자,신앙 안에 서 원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합니다.하나님의 손길을 경험 할 수 없습니다.그 무기력과 원망의 자세가 이미 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수 없이 밀려오는 시험에 빠져 무기력하거나 원망하는 모습으로 전락하지 않 도록,신앙의 첫걸음을 디딜 때 괴롭고 답답한 환경으로 몰아 넣어 강한 믿음의 인격자로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당신도 암담한 지경에 처하면, 자연히 내부에서 무기력과 원망의 소리가 나올 것입니다.그럴 때 하나님 의 훈련시키시는 손길이 당신에게 닿았음을 자각해야 합니다.그리고 내부 에서 꿈틀거리는 무기력과 원망의 소리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을 해 나가다가 난관에 봉착하면 자신의 내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오는지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될 대로 되라는 소리가 들 려 오고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줄어들면 즉시 마음을 바로잡으십시오.원 망의 소리가 당신의 마음을 뒤흔들면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 하십시오.지금 처한 환경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당신의 삶의 배후에 서 친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허락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어 떠한 자리에 놓이더라도 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저 하늘나라의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현재 당신이 답답하고 괴롭고 암담한 지경에 있다면,하나님의 훈련하시는 손길을 바라보십시오.그 환경을 통하여 육신의 겉 사람은 괴로움을 당하나,영혼 의 속 사람은 환경을 초월하여 오직 전능하신 주 하나님만 의뢰하는 믿음 의 새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자신의 기대에 어긋난 일과 환경에 처하더 라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자세를 흐트리지 마십시오.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십시오.이스라엘 민족 앞에 놓인 홍해가 갈라지듯 하나님의 오묘한 역사의 손길이 당신의 삶에 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도하실 때,축복 이전에 저주가 어떤 것인지 알게 하시며 기쁨 이전에 슬픔을 맛보게 하시며 성공 이전에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 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그리스도인을 상 징하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놀 라운 경험을 한 후,애굽 땅에서 광야로 나오는 장면입니다.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 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行伍)를 지어 나올 때에(출 13:1 8).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므로 안심하고 희망 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이들의 목적지는 아프리카 북쪽에 위치 한 애굽을 벗어나 중동(中東)지역의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천막을 친 장소는 홍해를 앞에 두고 있는 아프 리카 북쪽의 광야 끝이었습니다.지금의 수에즈 운하 근처입니다.앞길은 홍해가 막고 있고 양 옆은 험한 산지로 막혀 있어 갈 곳이라고는 지금 막 떠나온 애굽으로 가는 길뿐이었습니다.만일 뒤에서 애굽 군대가 공격해 온다면 피할 길이 없어 꼼짝 없이 당하고야 마는 지리적으로 안 좋은 위치 에 천막을 치게 되었던 것입니다.이 위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택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고 인도하신 장소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 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1,2절).
사실 지리상으로 보면 해안선을 따라 가나안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광야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위험스러운 장소에 머 물러 있을 때,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멸하 도록 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첫발을 디딘 이스 라엘 백성이 처음 당면한 사건은,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광야에서 자신 들을 죽이려고 달려오는 애굽 군대의 말발굽 소리를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즉,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신앙인의 인생은 곧장 축복과 성공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라,실패와 고민의 길,괴로움의 길을 먼저 거쳐야 한 다는 사실입니다.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가는 가깝고 쉬운 길, 애굽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난감한 상황에 처하 게 하셨는가이 질문은 오늘의 신앙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왜 하나님께서는 신앙인의 인생을 곧장 기쁘고,안정감이 있고,축복이 넘치는 삶 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괴롭고 힘든 형편으로 인도하신단 말인가 왜 꼭 그 길을 거치도록 하신단 말인가그 이유는 이러한 훈련을 통해 광야 생활 중에 겪을 시험에서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외적인 시험과 내적인 시험으로 나뉩니다.전에 살펴보았듯이,외 적인 시험은 주위 사람을 통해 오는 것이고,내적인 시험은 자신들의 심성 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을 사는 동안 끊임없이 시험을 받습니다.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시험에서 우리가 승리하도록,신앙 생활 초기 단계에 철저 히 훈련시키십니다.
외적인 시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로를 보고(報傑)받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갖힌 바 되었다 할지라(3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때,당연히 홍해 가 아니라 해안을 따라 난 길로 갈 줄 알았습니다.역사 이래로 아프리카 에서 중동 지역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앞은 바다로 막히고 옆은 산으로 막 힌,길이 아닌 길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바로는 이스라엘 지도자의 어리 석음을 흉보며 독 안에 든 쥐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있습니다.3절에 서 그야말로 광야 속에 갇힌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바로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바로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 민족의 행로는 합리적이지 않았 습니다.많은 사람들이 피해 가는 길,사람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 길 을 걷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에게 어리석게 비쳐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그래서 바로가 마병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게 했던 것입니다.이스라엘인들이 홍해 앞에 진을 쳤을 때,모든 애굽인들도 이를 비웃었을 것입니다.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행진을 시작 하였으므로,애굽인들은 혹시 이스라엘 민족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 보다 더 좋은 길을 이스라엘 민족이 택하여 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 기도 했을 것입니다.그러나 막상 이스라엘 사람들이 택하여 간 길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고 비웃고 손가락질 하였음이 틀림없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믿음의 행진 을 시작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처음 들은 소리는 매우 어리석고 비합리적 인 길을 가고 있다였습니다.이것은 신앙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을 말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해 줍니다.사람들로 부터 오는 외적인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 주는 것입니다.즉, 외적인 시험은 주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비합리적인 길을 걷고 있다고 조소(嘲笑)하는 것입니다.비합리적인 길,즉 많은 사람들이 걷 지 않는 길입니다.사람들의 이성(理性)의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길입니다.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길입니다.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로를 어리석다고 조소하였듯이,오늘도 주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걷는 믿음의 길을 비합리적이라고 비웃을 때가 있습니다.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철저히 합리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을 함께 걸어야 하는 시대입니다.이성적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은 될 수 있는 한 하지 않아야 하는 시대입니다.그러나 성경은 시대가 변하 더라도 그리스도인은 많은 사람이 걷기를 거부하는 좁은 길로 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하나님과 함께 가는 신앙의 길은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완전 히 이해되는 길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상 과 철학과 경험에 의하여 살아가는데 당신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살겠 다고 해 보십시오.비합리적인 생활 태도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입니다.다 수의 사람들이 인간의 일은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된다고 하는데,엎드 려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된다고 해 보십시오.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고 할 것입니다.물질 만능과 배금주의에 물든 시대를 살아가 면서 그 귀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철저히 인간 관계를 의지하는 이 시대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생활을 해 보십시오.분명히 당신을 향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비웃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친히 육신을 입고 찾아 오셨다고 말해 보십시오.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셨다고 말해 보 십시오.분명히 말도 안 된다라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사도 바울 도 주위 사람으로부터 극심한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 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행 26:23,2
4).신앙이 좋은 신자라도 주위에서 어리석다고 조소 하면,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무언가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졌다고 느끼면,신앙의 길에서 멈추어 섭니다.외롭게 하나님을 바라며 살던 삶이 세상을 향해 줄달음질 칩니다.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외적인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그리스도인을 신앙의 초기 단계에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신앙 생활 초기에 낙담되고 고민스런 문제에 부딪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당신이 신앙 생활을 하다가 조금 어려운 상 황에 처해 보십시오.주위에서 즉시 그렇게 남 다르게 믿더니 무엇이 그 래,이제 유별나게 믿지 마라고 떠들어 댑니다.비합리적인 신앙 생활의 결과라고 조소합니다.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믿음 없는 사람들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굳건히 지킴으로써,앞으로의 생활 가운데 수없이 다가올 주위 사람들의 유혹을 이겨나가도록 훈련시키 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대로 홍해로 나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바다를 건넜습니다.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다가,생명의 좁은 길을 가다가,위기 일발의 절박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그 길은 잘못된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를 훈 련시키기 위해 섭리의 손길로 이끄신 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말씀대로 살다가 시험을 만나면,하나님의 훈련의 손길 아래 있음을 깨달아 야 합니다.그리고 곧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그 괴로운 자리를 벗어나게 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8,10절은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훈련의 때가 지나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그 고난을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형제들아 우리가 아시 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우리 주 예수께서도 세상에 오실 때 사람들의 이성과 논리에 맞지 않는 길을 따라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다는 말인 가 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창조주이시고 전능자이시 며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뒤집으시며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주님은 인간들의 좁은 이성과 논리로 하나님을 이 해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뜨리셨습니다.신앙의 길이 사람의 논리와 이 성과 합리에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어떤 불신자들은 기독교는 비논 리의 종교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신앙의 길은 비논리,비이성이라 기보다는 논리나 이성이나 합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즉,이성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극히 차원이 높은 길입니다.논리로는 증명될 수 없는 고차원 의 길입니다.당신이 마음으로 행동으로 물질로 시간으로 하나님께 헌신하 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데,당신 주변은 온통 근심과 걱정뿐인 것 같습니 까 그것은 당신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하나님께서 당신을 믿음 없는 주위 사람들의 조소에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는 훈련의 자리인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당신 이 답답하고 괴롭고 암담한 현실을 통하여 사람 앞에는 강하고 하나님 앞 에는 믿음 있는 자로 훈련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주위로부터 비웃음 을 당하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마십시오.사면 초가(四面楚歌)와 같은 상황이 되더라도,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 높은 생 명의 길을 가고 있는 복된 자임을 명심하십시오.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만 굳게 바라보는 자가 되십시오.
내적인 시험 10-12절 말씀을 보십시오.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 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 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 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 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와 산으로 가로막힌 광야에서 자신들을 뒤쫓아오는 바로의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를 듣는 상황 아래서 지도자 모세에게 항의하는 장면입니다.이 난감하고 암 담한 상황 속에서 수십만 이스라엘 군중들의 마음이 어떻게 동요되고 있는 지 보십시오.그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10 절)고 소리칩니다.이들은 애굽 군병들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자신들의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저들이 오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사 실 이스라엘은 장정만 60만이었습니다.뒤쫓아오는 군대는 애굽의 온 군 대가 아니라 기마 부대뿐이었습니다.이왕 죽을 바에야 한 번 목숨 걸고 싸워 보자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맞붙으면 얼마든지 이길 수도 있는 상황 이지만 이들은 싸움은커녕 매장지를 생각합니다.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철저한 무기력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좌절 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또한 그들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 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2절)고 말합니다.이 말은 괜히 애굽을 탈출해 왔다는 것입니다.후회하며 한숨을 쉽니다.믿음의 길을 떠나게 하 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행 진을 해 나가는 중,어려운 일을 만나자 무기력함을 보이며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하여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시험이 무엇인지 밝혀 주는 것입니다.즉,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세상을 살아가다 어려움을 만나면,마음 속에서 신앙 생활 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무기력의 소리 그리고 괜히 신앙 생활을 시작한 것 같다는 원망의 소리 가 들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내적인 시험은 무기력과 원망하는 자세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앙의 길을 간다 할 지라도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리고 세상 안에는 끊임없이 믿음의 길을 방해하는 어둠의 영적 권세들인 사단이 있으며,자신과 다른 기질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자신 내부에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육신적 기질이 있습니다.이러한 방해 요소들 이 그리스도인을 원치 않는 환경으로 이끌어 가며 믿음 생활을 중단하게 합니다.그리스도인들도 연약한 육신을 입은 사람이기에,자꾸 유혹을 받 으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마음을 갖게 되어 신앙의 목표를 포기하게 됩니다.원하는 일이 제대로 안 되면 맥이 빠지게 됩니다.무기력하게 되 면 그 마음 속에 남는 것이 원망의 소리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의 최고의 적(敵)은 영적(靈的)무기력입니다.이 영적 무기력은 신 앙의 목표를 상실하게 합니다.신앙의 의지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주 님 앞에 어떻게 하면 바로 설까 하는 간절함을 상실하는 것입니다.이것 이 그리스도인이 빠지게 되는 영적 무기력입니다.이 무기력은 우리로 매 사를 원망하게 합니다.하나님을 원망합니다.자신의 삶 자체를 원망합니다.환경을 원망합니다.배우자를 원망합니다.부모를 원망합니다.교회를 원망합니다.목사를 원망합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리 힘든 상황을 만 나더라도 가나안을 바라보는 목적 의식을 잃지 말았어야 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자마자 죽겠다라는 말부터 했습니다.그러므로 곧 무기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어렵고 괴로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고 천국의 보좌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을까 하는 믿음의 목표를 상실하지 말아야 합니다.현재의 어려움에 온 마음을 빼앗 겨 영적 목표를 상실할 때,무기력하게 됩니다.그러면 이제는 기도도, 예배도,성경 말씀 배우는 것도,헌신하는 생활도 모두 되는 대로 하자 라는,영적 생활을 포기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가정 생활에서도 신혼 때에는 부부가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아갑니다.서로 인내하고 도와줍니다.말도 선택해서 합니다.그러나 한번 성질을 내고 말을 함부로 하게 되면,그 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어 버립니다.그리하여 부부 사이가 나 빠지기 시작합니다.신혼 시절의 꿈들이 깨어지므로 될 대로 되라는 무기력한 태도를 드러냅니다.무기력은 맥만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의 목표와 신앙의 간절함이 상실되는 것입니다.부부가 서로에게 무기력해 지면 그때부터는 원망만 남습니다.이런 가정은 파괴되고 맙니다.하나님 앞에서도 신앙의 최고의 적은 바로 무기력과 원망입니다.하나님 앞에서 신앙 성장을 위한 목표가 없는 것,영적 성장을 향한 간절함과 애절함이 없는 것,이것이 영적 무기력이고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는 신앙의 원수 입니다.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대신에,자기 생각과 계획과 기대에 조 금만 어긋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태도가 그리스도인의 내면으로부터 솟아 나는 최고의 적입니다.더 나아가 이런 태도는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광야에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축복 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의 대열에서 제외하셨습니다.하나님을 원망하다 하루에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무 기력과 원망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범 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 라(살전 5:18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 무기력한 자,신앙 안에 서 원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합니다.하나님의 손길을 경험 할 수 없습니다.그 무기력과 원망의 자세가 이미 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수 없이 밀려오는 시험에 빠져 무기력하거나 원망하는 모습으로 전락하지 않 도록,신앙의 첫걸음을 디딜 때 괴롭고 답답한 환경으로 몰아 넣어 강한 믿음의 인격자로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당신도 암담한 지경에 처하면, 자연히 내부에서 무기력과 원망의 소리가 나올 것입니다.그럴 때 하나님 의 훈련시키시는 손길이 당신에게 닿았음을 자각해야 합니다.그리고 내부 에서 꿈틀거리는 무기력과 원망의 소리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을 해 나가다가 난관에 봉착하면 자신의 내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오는지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될 대로 되라는 소리가 들 려 오고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줄어들면 즉시 마음을 바로잡으십시오.원 망의 소리가 당신의 마음을 뒤흔들면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 하십시오.지금 처한 환경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당신의 삶의 배후에 서 친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허락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어 떠한 자리에 놓이더라도 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저 하늘나라의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현재 당신이 답답하고 괴롭고 암담한 지경에 있다면,하나님의 훈련하시는 손길을 바라보십시오.그 환경을 통하여 육신의 겉 사람은 괴로움을 당하나,영혼 의 속 사람은 환경을 초월하여 오직 전능하신 주 하나님만 의뢰하는 믿음 의 새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자신의 기대에 어긋난 일과 환경에 처하더 라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자세를 흐트리지 마십시오.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십시오.이스라엘 민족 앞에 놓인 홍해가 갈라지듯 하나님의 오묘한 역사의 손길이 당신의 삶에 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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