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해야할 습성 (출16:1-8)
본문
인간은 만족을 추구하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끊임없이 자기 만족을 성 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자기 만족을 채우고자 하는 속성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그대로 인간 심성에 내재하고 있습니다.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불만족스러운 환경을 만나면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데,그것이 바로 원망입니다.사람이 원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과거보다 현재가 못하다고 느낄 때 원망합니다.그렇게 하지 않았 으면 더 잘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 원망하는 것입니다.
둘째,자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 을 하게 될 때 원망합니다.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서 어려움에 빠지게 되 면,그 상황을 변명하면서 잘 넘어갑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되면 반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광야로 접어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번째로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 면입니다. 첫번째 원망은 물 때문이었는데,두번째 원망은 음식에 대한 불만 때문에 생겼습니다.이들은 현재를 과거에 비교하며,다른 사람에게 잘못 의 탓을 돌려 원망합니다.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3절 상반절).먹을 것이 변변치 않은 현재의 광야 생활과 애굽에서의 풍족했 던 생활이 비교가 됩니다.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자 이들 은 과거를 들먹이며 현재 형편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너희가 이 광 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3절 하반절).너희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말합니다.자신들이 이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은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모세와 아 론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두 지도자를 원망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광야 생활 도중 도합 열 번 원망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하나님은 아홉 번씩이나 참으셨습니다.그러나 열 번째 원망에 대해서는 두 가지 벌을 내리셨습니다.즉,광야에서 재앙으로 쓰러져 죽는 벌과 약속의 땅 가나안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 에 다 죽는 벌이었습니다(출 14장).원망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에 주목하십시오.하나님께서 원망이 죄가 아니라 서 아홉 번의 원망을 그냥 듣고만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참으셨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열 번째 원망의 소리가 들려 올 때,광야에서의 재앙과 죽음을 통해 원망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원망할 때,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그 원망 이 죄가 아니라서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늘 원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원망이 죄임을 깨닫고 돌아서기를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계속되는 원망은 하나님 앞에 죄의 덤불을 높이 쌓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원 망이 죄가 됩니까 현재가 과거보다 못하다고 느끼므로 원망하는 것,다 른 사람에게 탓을 돌려 원망하는 것,이것들이 왜 죄가 됩니까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 현재와 과거를 비교함 3절 말씀을 봅시다.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 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 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이스라 엘 군중이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지금은 여행 길이므로 곡식을 재배 할 수가 없습니다.잡아 먹을 가축도 한정되어 있습니다.이들은 자연히 고기를 먹을 수 없고 떡을 만들어 먹을 수도 없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애굽에서의 생활을 회상합니다.과거에는 고기도 곡식도 풍부했습니다.현 재와 비교하니 현재가 과거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일 과거 에 힘든 노예 생활만 했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면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러나 애굽에서 누리던 물질적 풍요와 현재의 광야 생활을 비교하 니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잘못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과거와 현재를 비교한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은 과거에 애굽으로부터 받은 혜택이 무엇인지 를 생각한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했습니다.만일 애굽에서 누리던 혜택 대신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면,자신들이 당면한 현재를 바 라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게 세 가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첫째,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음을 맞던 날,이스라엘 백성들은 손끝 하 나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둘째,홍해를 건너는 기적으로 애굽의 종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품속으로 ,곧 창조주께 속한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셋째,낮에는 구름 기둥,밤에는 불 기둥으로 늘 동행하여 주셨습니다.만 일 이스라엘 군중이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이 세 가지 은혜를 생각했더라면,원망이 아니라 과거에 받은 그 놀라운 은혜 때문에 감격과 감사가 넘쳤을 것입니다.그리고 그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현재의 환경을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체험할 수 있는 복된 기회 로 여겼을 것입니다.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망각한 데서 온 것입니다.현재의 어려움을 보는 눈은 열려 있었지 만,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들을 회상할 수 있는 눈은 닫혀 있었 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망각하고 현재의 환경을 원망 하게 된 것입니다.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망각과 불신이 원망하는 마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죄입니다.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 그리고 현재의 환경 속에 다시 역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 ,이것이 원망의 깊은 의식 속에 깔려 있는 죄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 들도 자신의 만족을 채워 주지 못하는 환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불만족 스러운 환경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현재와 과거를 비교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현재 상황이 어렵고 괴롭고 불만족스럽다 할지라도 과거보다 못하 지 않으면 원망하지 않습니다.사글세방에 살던 사람이 전세집으로 옮겨 가면,전세집이 불편하더라도 참습니다.원망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자기 집에 살던 사람이 전세를 살게 되면 원망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월세도 제대로 못내며 장사를 하던 사람이 월세 낼 만큼의 수익을 올리면,불평이 나 원망은커녕 오히려 안심을 합니다.그러나 매달 천만 원씩 벌던 사람이 오백만 원으로 수입이 줄어들면 불만과 원망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쉽습니다.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할 때 현재와 비교하는 사항은 대부분 세상으로 부터 얻고 소유했던 것들입니다.과거에 얻었던 명성,높은 지위,많은 소 유,성공 등 이 모든 것이 세상으로부터 얻은 것들입니다.과거에 획득했 던 세상적인 것들과 현재 가진 것을 비교하여 현재가 낫다고 생각하면 뿌 듯해 하고 자신 만만해 하지만,과거보다 오늘이 못하다고 느낄 때는 불안 해 합니다.안정된 마음을 상실합니다.미래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어 있으 므로 현재의 처지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현재를 원망하는 사람들은 대부 분 예전에 좋은 시절이 있었다는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과거에 세상에서 얻었던 것과 현재를 비교하므로서 불안과 짜증과 원망 가운데 사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그리스도인들은 불만족스런 상황에 처했을 때 당연히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재조명해야 합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과거를 회상하는 기준이 세상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었나가 아니라,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는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만일 영적인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여 보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도움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 손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는 날부터 체험했던 세 가지 은혜 와 동일한 것입니다.
첫째,이스라엘 백성들을 열 번째 재앙인 죽음에서 구출하셨듯이,사람들 에게 갑자기 닥치는 위험한 순간들,원치 않는 죽음,질병,불행스러운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방패막이가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유다서 24절은,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을 보호하여 주심을 이렇 게 밝히고 있습니다.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둘째,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건너게 하심으로 애굽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 만드셨습니다.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땅 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지옥에 갈 자가 아니라 천국에 갈 자로,제한된 육신을 입었지만 영생에 속한 자로 만들어 구원의 은혜를 베 푸십니다.그리스도인이 거할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입니다.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셋째,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밤에는 불 기둥 으로 인도하며 한시도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마찬가지로 그분은 예수님 을 구주로 고백한 그리스도인에게서 한시도 떠나지 않으십니다.성령님께서 우리 마을에 내주(內住)하여 계십니다.즉,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를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과 항상 함께하여 주십니다.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 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바울은 현재의 자신 됨이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여 주신 은총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 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 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그리스도인은 과거를 회상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영적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영적 은혜를 통하여 현재를 판단하면,원망이나 불안,낙심,짜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새 신앙의 힘이 솟아날 것 입니다.당신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원망하십니까 바로 그 원 망이 죄입니다.왜 죄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상황이 원망스럽다면,하나님께서 당신이 이미 받은 은혜를 회상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원하시는 때임을 깨달으십시오.불만스러 운 삶의 환경은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 고통의 가시가 아니라,하나님의 능 력을 다시 체험할 수 있는 복된 기회입니다.하나님의 그 크신 은총의 손 길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영적 감성의 촉진제입니다.과거에 받은 은혜를 세어 보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무장하십시오.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원망스런 상황은 하나님과 당신을 다시 가깝게 만들어 주는 복 된 순간이 될것입니다. '' 잘못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림 7절 하반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 하여 원망하느냐.군중의 원망을 들은 모세와 아론이 다시 군중에게 왜 우리를 원망하느냐,우리가 잘못해서 너희들이 이 지경에 빠졌느냐 고 항변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를 여행하다음식이 부족하게 된 것이 두 지도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자기들이 지도자였 다면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부족하고 사막뿐인 광야로 나오지 않았 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자신들이 처한 환경이 자신들 때문이 아 니라 두 지도자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모습입니다.백성들의 원망을 들은 모세는 이 상황이 자기 때문이 아님을 7절에 밝히고 있습니다.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모세는 자신이 이 길을 택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 뿐이므로,왜 우리를 원망하느냐고 담대히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광 야로 가게 하셨습니까 출애굽기 13장 17절 말씀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 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 라.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가게 된 것은 모세와 아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중을 헤아리셨기 때문이었습니다.겉으로 보면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을 광야로 가게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첫 째,이스라엘 군중이 전쟁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 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큰 문제를 피하는 대신 작은 문제를 겪으 며 자신들의 약한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이 두 가지 목적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훈련 과정으로 인도하셨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 뒤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알지 못 했습니다.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모세와 아 론을 도구로 사용하시어 자신들을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며 감사해야 마땅 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앞에 닥친 어려운 환경만을 생각하였지,자신들이 왜 그런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근본 이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자신들의 문제점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데서 나왔습니다.감당할 만한 작 은 문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에 무지하여 원망하는 것입니다.자신의 문제점이나 고칠 점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한 모습,자신의 허물과 약점에 대하여 무지한 모습,이것이 원망하는 자세에 포함되어 있는 죄입니다.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무지한 것이 원망하는 자세 가운데 들어 있는 죄입니다.이스 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은,그리스도인이 믿음 가운데 살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 완전히 타락해 버리는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일입니다.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약한 모습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은,그리스도인이 영적 성장의 길로 전진해 가는 데 방해되는 속성을 제거하게 하는 일을 상징합니다.신앙을 방해하는 속성이란,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면 쉽게 신 앙 생활을 포기하는 마음입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다 할지라 도,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끌려 과거처럼 죄 된 생활에 탐 닉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그 가능성은 인생의 괴로운 문제를 만날 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속성을 극복하고 흔들 림 없는 신앙인이 되도록 훈련시키기 위하여,그리스도인에게 그가 원치 않는 삶의 환경 혹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큰 문제가 아닌 작은 문제를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그런 시험을 통해 내적 갈등을 이 겨 내고 연단된 새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더라도 신앙 생활을 포기하고 싶 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훈련되기를 원하십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은 어리석게도 왜 자신이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원망의 한숨만을 내쉴 때가 있습니다.정작 우리에게는 원망이 아 니라,왜 이러한 훈련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의 속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고자 하는 눈이 있어야만 합니다.감당할 만한 작은 문제를 허락하 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생각하는 마음의 눈이 있어야만 합니다.원망하고 탄식하는 모습은 자신의 문제점,고칠 점,훈련받아야 할 점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큰 문제를 막아 주시며 감당할 수 있는 연단의 환경만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하신 손길에 무지하다는 것입니다.자신들의 문제점을 바로 보지 못하는 무지가 원망 밑에 깔려 있는 죄입니다.큰 고통의 문제를 피하게 하시며 대신 감당할 만한 작은 문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무감각,이것이 원망의 저변에 있는 죄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장소는 하늘이 아니라 땅입니다.이 땅은 한 순간도 인간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불만족스러운 환경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인가 하며 그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내고자 합니다.부부도,형제도,동업자도,서로 너 때문이야라며 모두가 잘못된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내고자 합니다.이런 태도가 신앙 생활하는 데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불만족한 상황에 부딪 히면 주위 사람을 원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는 중요 한 사실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즉,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 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에는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모세도 아무런 지시를 할 수 없었듯이,오늘날도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에게 어떤 유익도 해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히브리서 13장 6절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어느 누구도 자의(自意)로 영 향을 끼칠 수 없음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 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자체에 문제가 있기에 모세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백성들에게 고칠 점이 있었으므로 모세 로 하여금 그 백성을 험난한 광야로 인도하도록 하셨습니다.그리고 그러 한 상황 가운데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새롭게 무장하는 훈련의 시간으 로 삼기를 원하셨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개선해야 할 점을 보시고 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괴로움을 주는 사람,아픔을 주는 사람,부담을 주는 사람을 허락하십니다.그런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하 여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여기서 문제란 ,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면 쉽게 예전의 생활,세상의 생활을 생각 하며 신앙 생활을 포기하는 마음입니다.이 문제를 개선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와 연관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고통의 원인을 그 사람들로부터 찾아내고자 합니다.그러나 영 적인 눈을 크게 뜨고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면,그 사람 때문에 더 큰 고통의 문제를 피하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오히려 그 사람 덕분에 영적 무장을 새롭게 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당신이 다른 사람을 원망하게 된다면,당신 내부에 신앙의 성장을 방해할 요소를 제거키 위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 으셨나 생각해 보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더 큰 문제로 인해 영원히 실패하지 않았을까를 고려해 보아야만 합니다.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에게는 그를 원망스럽게 만들 사람이 가까이 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누군가를 원망한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요라고 스스로에 대해 무지한 판단을 내 리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감당하기 쉬운 작은 고통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마십시오.하나님께서 주위 사람을 통하여 당신을 훈련하고 계심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지금 다른 사람이 원망스럽 다면,그 상황이 당신의 미래를 위하여 연단하시는,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적 용광로임을 알아야 합니다.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상하심에 대하여 감사의 찬송을 드리 십시오.그리고 그 환경을 능히 이길 힘과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굳 게 의지하십시오.도움을 간구하십시오.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이미 받은 은혜로 감격하게 하시며,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속 성을 내어 버리게 하옵소서!
첫째,과거보다 현재가 못하다고 느낄 때 원망합니다.그렇게 하지 않았 으면 더 잘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 원망하는 것입니다.
둘째,자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 을 하게 될 때 원망합니다.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서 어려움에 빠지게 되 면,그 상황을 변명하면서 잘 넘어갑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되면 반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광야로 접어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번째로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 면입니다. 첫번째 원망은 물 때문이었는데,두번째 원망은 음식에 대한 불만 때문에 생겼습니다.이들은 현재를 과거에 비교하며,다른 사람에게 잘못 의 탓을 돌려 원망합니다.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3절 상반절).먹을 것이 변변치 않은 현재의 광야 생활과 애굽에서의 풍족했 던 생활이 비교가 됩니다.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자 이들 은 과거를 들먹이며 현재 형편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너희가 이 광 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3절 하반절).너희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말합니다.자신들이 이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은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모세와 아 론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두 지도자를 원망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광야 생활 도중 도합 열 번 원망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하나님은 아홉 번씩이나 참으셨습니다.그러나 열 번째 원망에 대해서는 두 가지 벌을 내리셨습니다.즉,광야에서 재앙으로 쓰러져 죽는 벌과 약속의 땅 가나안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 에 다 죽는 벌이었습니다(출 14장).원망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에 주목하십시오.하나님께서 원망이 죄가 아니라 서 아홉 번의 원망을 그냥 듣고만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참으셨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열 번째 원망의 소리가 들려 올 때,광야에서의 재앙과 죽음을 통해 원망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원망할 때,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그 원망 이 죄가 아니라서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늘 원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원망이 죄임을 깨닫고 돌아서기를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계속되는 원망은 하나님 앞에 죄의 덤불을 높이 쌓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원 망이 죄가 됩니까 현재가 과거보다 못하다고 느끼므로 원망하는 것,다 른 사람에게 탓을 돌려 원망하는 것,이것들이 왜 죄가 됩니까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 현재와 과거를 비교함 3절 말씀을 봅시다.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 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 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이스라 엘 군중이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지금은 여행 길이므로 곡식을 재배 할 수가 없습니다.잡아 먹을 가축도 한정되어 있습니다.이들은 자연히 고기를 먹을 수 없고 떡을 만들어 먹을 수도 없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애굽에서의 생활을 회상합니다.과거에는 고기도 곡식도 풍부했습니다.현 재와 비교하니 현재가 과거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일 과거 에 힘든 노예 생활만 했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면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러나 애굽에서 누리던 물질적 풍요와 현재의 광야 생활을 비교하 니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잘못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과거와 현재를 비교한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은 과거에 애굽으로부터 받은 혜택이 무엇인지 를 생각한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했습니다.만일 애굽에서 누리던 혜택 대신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면,자신들이 당면한 현재를 바 라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게 세 가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첫째,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음을 맞던 날,이스라엘 백성들은 손끝 하 나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둘째,홍해를 건너는 기적으로 애굽의 종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품속으로 ,곧 창조주께 속한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셋째,낮에는 구름 기둥,밤에는 불 기둥으로 늘 동행하여 주셨습니다.만 일 이스라엘 군중이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이 세 가지 은혜를 생각했더라면,원망이 아니라 과거에 받은 그 놀라운 은혜 때문에 감격과 감사가 넘쳤을 것입니다.그리고 그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현재의 환경을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체험할 수 있는 복된 기회 로 여겼을 것입니다.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망각한 데서 온 것입니다.현재의 어려움을 보는 눈은 열려 있었지 만,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들을 회상할 수 있는 눈은 닫혀 있었 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망각하고 현재의 환경을 원망 하게 된 것입니다.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망각과 불신이 원망하는 마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죄입니다.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 그리고 현재의 환경 속에 다시 역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 ,이것이 원망의 깊은 의식 속에 깔려 있는 죄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 들도 자신의 만족을 채워 주지 못하는 환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불만족 스러운 환경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현재와 과거를 비교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현재 상황이 어렵고 괴롭고 불만족스럽다 할지라도 과거보다 못하 지 않으면 원망하지 않습니다.사글세방에 살던 사람이 전세집으로 옮겨 가면,전세집이 불편하더라도 참습니다.원망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자기 집에 살던 사람이 전세를 살게 되면 원망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월세도 제대로 못내며 장사를 하던 사람이 월세 낼 만큼의 수익을 올리면,불평이 나 원망은커녕 오히려 안심을 합니다.그러나 매달 천만 원씩 벌던 사람이 오백만 원으로 수입이 줄어들면 불만과 원망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쉽습니다.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할 때 현재와 비교하는 사항은 대부분 세상으로 부터 얻고 소유했던 것들입니다.과거에 얻었던 명성,높은 지위,많은 소 유,성공 등 이 모든 것이 세상으로부터 얻은 것들입니다.과거에 획득했 던 세상적인 것들과 현재 가진 것을 비교하여 현재가 낫다고 생각하면 뿌 듯해 하고 자신 만만해 하지만,과거보다 오늘이 못하다고 느낄 때는 불안 해 합니다.안정된 마음을 상실합니다.미래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어 있으 므로 현재의 처지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현재를 원망하는 사람들은 대부 분 예전에 좋은 시절이 있었다는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과거에 세상에서 얻었던 것과 현재를 비교하므로서 불안과 짜증과 원망 가운데 사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그리스도인들은 불만족스런 상황에 처했을 때 당연히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재조명해야 합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과거를 회상하는 기준이 세상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었나가 아니라,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는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만일 영적인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여 보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도움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 손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는 날부터 체험했던 세 가지 은혜 와 동일한 것입니다.
첫째,이스라엘 백성들을 열 번째 재앙인 죽음에서 구출하셨듯이,사람들 에게 갑자기 닥치는 위험한 순간들,원치 않는 죽음,질병,불행스러운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방패막이가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유다서 24절은,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을 보호하여 주심을 이렇 게 밝히고 있습니다.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둘째,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건너게 하심으로 애굽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 만드셨습니다.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땅 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지옥에 갈 자가 아니라 천국에 갈 자로,제한된 육신을 입었지만 영생에 속한 자로 만들어 구원의 은혜를 베 푸십니다.그리스도인이 거할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입니다.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셋째,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밤에는 불 기둥 으로 인도하며 한시도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마찬가지로 그분은 예수님 을 구주로 고백한 그리스도인에게서 한시도 떠나지 않으십니다.성령님께서 우리 마을에 내주(內住)하여 계십니다.즉,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를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과 항상 함께하여 주십니다.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 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바울은 현재의 자신 됨이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여 주신 은총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 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 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그리스도인은 과거를 회상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영적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영적 은혜를 통하여 현재를 판단하면,원망이나 불안,낙심,짜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새 신앙의 힘이 솟아날 것 입니다.당신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원망하십니까 바로 그 원 망이 죄입니다.왜 죄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상황이 원망스럽다면,하나님께서 당신이 이미 받은 은혜를 회상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원하시는 때임을 깨달으십시오.불만스러 운 삶의 환경은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 고통의 가시가 아니라,하나님의 능 력을 다시 체험할 수 있는 복된 기회입니다.하나님의 그 크신 은총의 손 길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영적 감성의 촉진제입니다.과거에 받은 은혜를 세어 보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무장하십시오.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원망스런 상황은 하나님과 당신을 다시 가깝게 만들어 주는 복 된 순간이 될것입니다. '' 잘못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림 7절 하반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 하여 원망하느냐.군중의 원망을 들은 모세와 아론이 다시 군중에게 왜 우리를 원망하느냐,우리가 잘못해서 너희들이 이 지경에 빠졌느냐 고 항변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를 여행하다음식이 부족하게 된 것이 두 지도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자기들이 지도자였 다면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부족하고 사막뿐인 광야로 나오지 않았 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자신들이 처한 환경이 자신들 때문이 아 니라 두 지도자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모습입니다.백성들의 원망을 들은 모세는 이 상황이 자기 때문이 아님을 7절에 밝히고 있습니다.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모세는 자신이 이 길을 택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 뿐이므로,왜 우리를 원망하느냐고 담대히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광 야로 가게 하셨습니까 출애굽기 13장 17절 말씀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 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 라.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가게 된 것은 모세와 아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중을 헤아리셨기 때문이었습니다.겉으로 보면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을 광야로 가게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첫 째,이스라엘 군중이 전쟁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 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큰 문제를 피하는 대신 작은 문제를 겪으 며 자신들의 약한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이 두 가지 목적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훈련 과정으로 인도하셨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 뒤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알지 못 했습니다.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모세와 아 론을 도구로 사용하시어 자신들을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며 감사해야 마땅 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앞에 닥친 어려운 환경만을 생각하였지,자신들이 왜 그런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근본 이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자신들의 문제점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데서 나왔습니다.감당할 만한 작 은 문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에 무지하여 원망하는 것입니다.자신의 문제점이나 고칠 점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한 모습,자신의 허물과 약점에 대하여 무지한 모습,이것이 원망하는 자세에 포함되어 있는 죄입니다.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무지한 것이 원망하는 자세 가운데 들어 있는 죄입니다.이스 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은,그리스도인이 믿음 가운데 살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 완전히 타락해 버리는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일입니다.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약한 모습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은,그리스도인이 영적 성장의 길로 전진해 가는 데 방해되는 속성을 제거하게 하는 일을 상징합니다.신앙을 방해하는 속성이란,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면 쉽게 신 앙 생활을 포기하는 마음입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다 할지라 도,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끌려 과거처럼 죄 된 생활에 탐 닉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그 가능성은 인생의 괴로운 문제를 만날 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속성을 극복하고 흔들 림 없는 신앙인이 되도록 훈련시키기 위하여,그리스도인에게 그가 원치 않는 삶의 환경 혹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큰 문제가 아닌 작은 문제를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그런 시험을 통해 내적 갈등을 이 겨 내고 연단된 새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더라도 신앙 생활을 포기하고 싶 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훈련되기를 원하십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은 어리석게도 왜 자신이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원망의 한숨만을 내쉴 때가 있습니다.정작 우리에게는 원망이 아 니라,왜 이러한 훈련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의 속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고자 하는 눈이 있어야만 합니다.감당할 만한 작은 문제를 허락하 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생각하는 마음의 눈이 있어야만 합니다.원망하고 탄식하는 모습은 자신의 문제점,고칠 점,훈련받아야 할 점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큰 문제를 막아 주시며 감당할 수 있는 연단의 환경만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하신 손길에 무지하다는 것입니다.자신들의 문제점을 바로 보지 못하는 무지가 원망 밑에 깔려 있는 죄입니다.큰 고통의 문제를 피하게 하시며 대신 감당할 만한 작은 문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무감각,이것이 원망의 저변에 있는 죄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장소는 하늘이 아니라 땅입니다.이 땅은 한 순간도 인간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불만족스러운 환경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인가 하며 그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내고자 합니다.부부도,형제도,동업자도,서로 너 때문이야라며 모두가 잘못된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내고자 합니다.이런 태도가 신앙 생활하는 데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불만족한 상황에 부딪 히면 주위 사람을 원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는 중요 한 사실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즉,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 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에는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모세도 아무런 지시를 할 수 없었듯이,오늘날도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에게 어떤 유익도 해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히브리서 13장 6절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어느 누구도 자의(自意)로 영 향을 끼칠 수 없음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 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자체에 문제가 있기에 모세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백성들에게 고칠 점이 있었으므로 모세 로 하여금 그 백성을 험난한 광야로 인도하도록 하셨습니다.그리고 그러 한 상황 가운데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새롭게 무장하는 훈련의 시간으 로 삼기를 원하셨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개선해야 할 점을 보시고 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괴로움을 주는 사람,아픔을 주는 사람,부담을 주는 사람을 허락하십니다.그런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하 여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여기서 문제란 ,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면 쉽게 예전의 생활,세상의 생활을 생각 하며 신앙 생활을 포기하는 마음입니다.이 문제를 개선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와 연관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고통의 원인을 그 사람들로부터 찾아내고자 합니다.그러나 영 적인 눈을 크게 뜨고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면,그 사람 때문에 더 큰 고통의 문제를 피하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오히려 그 사람 덕분에 영적 무장을 새롭게 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당신이 다른 사람을 원망하게 된다면,당신 내부에 신앙의 성장을 방해할 요소를 제거키 위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 으셨나 생각해 보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더 큰 문제로 인해 영원히 실패하지 않았을까를 고려해 보아야만 합니다.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에게는 그를 원망스럽게 만들 사람이 가까이 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누군가를 원망한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요라고 스스로에 대해 무지한 판단을 내 리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감당하기 쉬운 작은 고통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마십시오.하나님께서 주위 사람을 통하여 당신을 훈련하고 계심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지금 다른 사람이 원망스럽 다면,그 상황이 당신의 미래를 위하여 연단하시는,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적 용광로임을 알아야 합니다.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상하심에 대하여 감사의 찬송을 드리 십시오.그리고 그 환경을 능히 이길 힘과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굳 게 의지하십시오.도움을 간구하십시오.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이미 받은 은혜로 감격하게 하시며,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속 성을 내어 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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