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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의 하나님 (출1:1-14)

본문

인생에는 항상 평탄함과 번영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예기치 아니한 고난과 환난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나는 고통이 있으므로 존재합니다”-철학자 케에르케고르 “고통이 없는 생명은 상상할 수 없다”-간디(무저항 주의자)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것처럼 희극이 있으면 비극이 있고, 의로움이 있으면 불의가 있고, 평화가 있으면 전쟁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게 마련입니다. 잠언7:1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현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주셔서 병행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 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인생은 고해’ 라 하는 말은 ‘인생이 언제나 풍랑이 몰아칠 가능성이 있는 바다와 같다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택한 선민으로 한 때 애굽 제국의 호의를 받고 평화롭게 번성에 번성을 거듭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로 전락하여 심한 고통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번성해간다는 내용을 대하면 고난속에서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함!
[본론]
1. 적은 수의 시작(1-5) 이스라엘 백성은 선택받은 백성이다. 저들이 가뭄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 저들의 시작은 70인에밖에 되지 않았다. 진정한 성공은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외모의 화려함이나 큰 규모에 있지 않다. 어떠한 인간의 능력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와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에 함께 하실 때에 참성공이 있는 것이다. (욥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시작은 70명이었으나 나중에는 심히 많아졌다. 예수님께서 두세사람이 모인곳에 함께 하겠다 했지, 수십명 수백명 모인곳에만 함께하겠다 하지 않았습니다. 보리떡 5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 5+2 = 5,000 …12 적은 것이었지만 심히 많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적은 우리 교회당 적은 교인 수 적은 재정 적은 역사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곳에서도 창대케 하실 것입니다.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예배하는 생활, 전파하는 생활, 가리치는 생활, 치유하는 생활을 통해서 주님께 큰자로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번성과 고통(6-7) 이스라엘 백성은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시련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하여 부요와 풍성을 누리며 살고 있을 때에 무서운 고통의 바람이 불어닥친 것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극하여 애굽을 치리할 때에 점점 강성하여 가는 이스라엘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그들을 노예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강제노역을 시켜서, 무기력한 노예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그들에게 감독자를 세우고 강제노역을 시킴으로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기려 하였다. 애굽왕은 심한 노동을 통해서
ㄱ.정신력을 파괴.
ㄴ.건강을 파괴시켜 단명하게 하며.
ㄷ.자녀를 나면서부터 노예화시키고
ㄹ.남아 살해정책을 써서 민족의식을 파굏시키고 애굽에 종속된 노예로 만들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어려운 학대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심한 노동력 착취, 남아 살해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통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같이 예수 믿고 거룩한 성도로 세우심을 받은 우리에게도 때로는 생각지 않은 환난이 올 수 있습니다. 성공했다고 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하여갈 때 훼방자인 마귀는 여러 가지 시험으로 우리를넘어 뜨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데 그렇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어려움을 맞게 된것같습니다.
첫째, 바로의 호의를 부분별하게 받아들였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공짜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값싼 동정이나 호의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안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삶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망해가는 과정입니다. 세계적인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코카콜라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나누어 줌 그래서 나중에는 그 맛에 입맛이 길들여져서 다른 음료는 입에 대기도 실고 콜라만 마셔야되는 그야말로 중독상태까지 빠진다는 겁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심지어 밥에 콜라를 말아먹는다고 하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심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것에 맛들여 놓으면 하늘의 신령한 것들이 맛이 없어집니다. 진짜 진맛은 신앙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세상에 빠져버리면 마치 빠리가 꿀을 빨아먹다가 거기에 묻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고 말 듯이 영적인 사망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나를 유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것이 혹시 하나님과는 멀리하고 떠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절제하고 이길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의지만으로는 않됩니다. 절제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론으로만 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는 성령님의 열매이기에 성령님의 충만을 받을 때 절제가 되어지고 절제의 열매를 맺으며 세상것보다 하나님이 좋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질이 풍요롭고 풍족한 이 시대에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심으로 절제하며 주안에서 만족과 기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처음에 고센이라는 땅에 구별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애굽의 문명에 혼합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기억치 못했습니다. 완전히 애굽화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의 손에 붙여 고난의 불속에서 시련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혼합되어 얄팍하고 일시적인 것에 매력을 느껴 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노예, 죄악의 노예, 마귀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있을곳에 있고 있지 않아야 할곳에는 있지 않는 것이 구별된 삶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 물컵이 있는데요, 물컵이 여기 있어야 구별되게 쓰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컵이 쓰레기 통 옆에 있으면 어때요! 추하지요! 또 화장실청소에 쓰는 막대달린 솔있지요 그 솔이 이 강대상위에 올라와 있다면 추한거지요 그러나 화장실에 있을 때는 보기에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주일날 예배시간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시간에 집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든지 놀러가서 산이나 들에 있다든지 심지어 술자리에 있다든지 논밭에서 일하고 있다면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제때에 그 적절한 장소에 있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별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반드시 있어야할 그 시간에, 그장소에 있습니까 이러한 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벧전2:19-21절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서 주님께 인정받고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 고난 속에서의 축복(8-14) 선을 행함으로 인해서 오는 고난은 축복을 가져오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고난은 ‘변장을 하고 찾아오는 축복’이라고 합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터널을 통과한 후에 약속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은 오래가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시편30편5절에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속에서도 고난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용기가 생기고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민족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해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의 모습입니다. 고난중에도 넘어지지 아니하고 실패중에도 낙심치아니하며 오히려 힘차게 불행한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과 승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학대로 고난받는 것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극심한 학정은 이스라엘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고난당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건강문제 직장문제로 생활고로 어려우신 분이 계십니까 남에게 알릴 수 없는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고난에 함께 하시며, 고난받는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이기도록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성도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어찌나 자신의 지난날의 상황과 비슷하지 그리고 지금의 자신의 신앙을 굳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 꿈 내용인 즉 이렇습니다. “어느날 한 꿈을 꾸었는데 모래위에 두명의 발자욱이 쭉 모래 사장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즐겁고 화려하고 신나하던 때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자신과 함께 주님께서 손잡과 걸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발자욱은 없어지고 한 명의 발자욱만이 외롭게 쭉욱 찍혀 있는 장면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병들고 헐벗고 그야말로 고통의 나날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성도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답니다. “왜 주님은 즐겁고 화려하고 일이 잘풀릴 때에는 함께 동행해 주시고 힘들고 아프고 인생의 어두운 그늘을 통과할 때에는 나와 함께 해 주시지 않고 나 혼자만 남겨 놓았는가”하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주님께서 음성을 들려 주시기를 “ 얘야 네가 힘들고 아프고 인생의 고통의 길을 걷고 있을 그때에 나는 너를 엎고 다녔단다” [결론] 성도 여러분! 삶 속의 고통과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서 힘드십니까 하나님은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 가만히 지켜 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개입하셔서 그 고난을 이겨나가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를 등에 엎고 가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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