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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의 준비 (출12:11)

본문

신앙 생활 초기에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인가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 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 신앙 생활을 잘하다 신앙을 포기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종종 있습니다. 지금 열심을 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때 확신과 열심으로 신앙에 정진하던 사람들이 신앙을 잃는 모습을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확신과 열심이 있던 사람에게 왜 저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하면,우리들도 장차 쓰러지지 않고 신앙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포기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첫째로,교회를 떠나 불신의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입니다.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대답은 간단 명료합니다.그들이 가졌던 구원의 체험과 확신 과 열심은 잘못된 것이었으며,그들은 자신과 남을 속였던 것입니다.이스 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선 후,세상을 상징하는 애굽 땅으 로 발걸음을 돌리려 했으나 홍해 때문에 애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서 죽었습니다.마찬가지로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참된 구원의 체험을 얻은 자는 세상을 그리워하여 돌아가고 싶어해도 세상에 다시 섞이 지 못합니다.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면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둘째로,확신과 열심과 감격을 잃고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열심을 가지고 신앙의 길을 힘차게 걷는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자 들입니다.그렇게 열심히 할 것 없어,나도 전에는 그랬어! 누구나 한 번은 그래 하며 열심 있는 신자들을 방해하는 이들입니다.본문 말씀에 서 우리의 관심과 생각을 집중시키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왜 신앙 생활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걸림돌 역할을 하는 신자가 되었을까 요 저들의 구원의 체험과 확신과 감격은 다 잘못되었던 것이야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하나님 과 올바른 구원의 체험을 한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 음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상징하는 홍해를 건넌 후,광야에서 때때로 더 이상 행진을 못하겠다 하며 불신 을 상징하는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고 모세에게 조르기도 했습니다.모세를 원망하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기도 하였습니다.낙심하여 가나안에 대한 희망의 마음을 상실하기도 하였습니다.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런 모습 은 확실한 구원의 체험을 한 그리스도인도 신앙 생활을 해 나가면서 때때 로 이전의 감격,열심,확신을 잃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그 러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걸림돌 신자로 전락케 하고 과거의 신자로 머 물게 하였습니까그 이유는 준비된 자세 없이 구원의 체험을 하고 신앙의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준비된 자세 없이는,구원의 확신이 있으며 신앙의 길을 가고 있 다 하더라도 도중에 포기하여 신앙의 대열에서 낙오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장면입니다.
11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너희는 그것을 이 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 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어떠한 자세로 구원의 경험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지 팡이를 잡은 자세로 구원의 능력이 임하는 밤을 맞이하라고 지시하십니다 .그 자세는 여행자의 자세였습니다.밤이 지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진 의 준비. .구원에서 성숙까지 21단계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하는 감격 속에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믿음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사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의 행진을 허락했지만 밤 사이에 곧 변덕 을 부릴 것을 아셨으므로 그 밤에 여행의 모든 준비를 갖추라고 하셨던 것 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간밤에 여행 채비를 갖 추었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여 행을 준비하지 않고 밤을 맞은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비록 그들이 하나님 의 지시대로 여행 준비를 하지는 않았지만,동이 터 올 때 구원의 체험과 뜨거운 감격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길을 떠났을 것입니다.그러나 홍해를 건너 광야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허리띠를 매지 않아 거추장스러운 옷이 펄럭이며 거동을 불편하게 하고,먼 여행을 위한 신을 신지 않아 발이 아 프고,바람이 부는 가운데 가시덤불 길을 걸을 때는 지팡이가 없어 전진을 하지 못하게 되어,불평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것입니다.이것은 오늘날 한 사람이 구원의 체험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지시 하시는 준비의 자세가 분명히 있으며,신앙의 길을 나아가기 전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태도가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오늘날 신앙을 포기하는 걸림돌 신자들은 미비한 자세로 신앙의 길을 떠난 사람들입니다.우리 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신앙의 길을 가고 있다면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길을 떠나기 전 영적 행진을 위한 준비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의 행진을 위 한 준비된 자세는 무엇입니까 본문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자세를 살펴보 기로 하겠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옷은 머리와 팔만 끼우게 되어 있는 통으로 된 옷입니다.매우 간편한 옷이긴 하지만 일을 하거나 움직이거나 활동을 할 때면 대단히 불편합니다.
그러므로 옷만큼 중요한 것이 허리띠입니다.활동을 할 때는 허리를 힘껏 동여매야 합니다.허리띠로 활동을 용이하게끔 했던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활동이 심하지 않거나 휴식 중일 때는 허리 띠를 풀어서 한 곳에 잘 보관하여 둡니다.허리띠를 찾거나 매거나 고쳐 매는 행동은 활동을 시작할 자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 라엘 백성들이 집안에서 허리띠를 풀고 쉬고 있을 때 허리띠를 동여매라고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앙의 길로 출발시키기 전 에 쉬는 자세를 떨쳐 버리고 활동의 자세를 취하도록 하셨습니다.어떤 전 설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 중에 특별한 경 우를 제외하고는 언제 어디서나,심지어 집에서도 허리띠를 띠었다고 합니다.사실 하나님께서 허리띠를 띠라는 권고를 통하여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을 광야 생활은 편히 쉬는 삶이 아님을 암시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쉬는 자세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리에 띠를 띠라는 명 령은 쉼에 대한 종결을 의미하며,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날에 역 동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리띠가 주는 의미는 쉼에 대한 종결과 계속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즉,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은 쉼이 없는 그 어떤 새 생활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인생 여정에도 직장 생활에도 어떤 일에든지 쉼이 있습니다.그러나 천성을 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에는 절대로 쉼이 없고 오직 활동만 있습니다.신앙 생활에 쉼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사람이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과거에 하지 않던 새로운 활동을 하게 됩니다.
첫째,예배를 드립니다.
둘째,기도를 합니다.
셋째,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웁니다.
넷째,하나님께서 주신 여건과 재능을 발견하여 교회의 한 지체로서 주께 충성합니다.신앙 생활의 활동이란 바로 이 네 가지를 뜻합니다.신앙 생활에서 쉰다는 것은 바로 이 네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중단하 거나 미루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오늘날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 하게 되는 자는 기질,환경,성격에 상관 없이 이 네 가지의 신앙 생활에 깊숙이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만일 지나온 영적 삶을 회상해 볼 때 이 네 가지 부분에 대하여 특별히 열성적이었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 신의 구원을 의심하여도 무방합니다.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다가오는 속삭 임이 있습니다.너무 바쁘지 않느냐,시간을 너무 빼앗기지 않느냐 ,지금 당면한 현실 문제를 잘 처리하고난 후에 다시 하자,잠시 쉬자.이런 속삭임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들은 예배에 자주 빠집니다.기도를 적게 합니다.성경 말씀 듣는 시간을 줄입니다.충성할 자리를 피해 갑니다.바로 이런 이들은 쉼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한번 쉬기 시작한 자는 다시 일어나기 어렵습니다.신앙 생활이 멈추어 있는 자리에서 자기 합리화를 꾀합니다.신앙 생활 자체의 기쁨과 감격이 사 라집니다.몸은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세상에 있습니다.자신 이 가던 길을 잃어버립니다.드디어 신앙의 길로 잘 가고 있는 그리스도인 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교회 안의 걸림돌 신자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인 무디(D.L.Mood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기도를 쉬게 하거나 미루게 하는 바쁜 사업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업이 아니다.다시 말해,신앙 생활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쉬게 하거나 미루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왜 오늘날 성도들이 신앙 생활을 쉬게 하는 유혹의 그물에 걸리고 있습니까 그것은 신앙의 첫걸음을 내딛기 전에,허리에 띠를 띠라는 주님의 명령,곧 신앙 생활은 절대로 쉼이 없다는 명령을 마음판에 새기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을 해 나가다가 잠시 쉬었다 나중에 다시 하 자는 우리의 겉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신앙 생활의 어느 한 부분을 쉬게 됩니다.그 쉼은 그리스도인을 깊은 영적 수렁에 빠지 게 만듭니다.세상 일은 쉴 수 있습니다.직장 일이나 가정 일,사업 등은 잠시 쉬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신앙 생활은 잠시도 쉴 수 없습니다.이런 사실을 간과하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 험했다 할지라도 쉽게 신앙을 포기하는 신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데 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기도의 쉼 없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또한 히브리서 10장 25절은 끊임없이 모여 예배드 리고 주 하나님을 경배할 것을 가르칩니다.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 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을 시작할 때,영적 생활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준비된 마음가짐은 이것입니다.아무 것도 나의 신앙 생활을 쉬게 할 수 없다.예배,기도,말씀,헌신의 생활을 한시라도 멈추거나 뒤로 미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천국에 입성하는 날까지 쉬지 않고 계속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내일 하자,다음에 하자,언젠가 하겠지라는 말들 은 신앙 생활의 최대의 적이며 원수입니다.자신을 영원히 영적 불구자로 만들 수 있는 독약과 같은 생각입니다.신앙 생활에서 잠시 쉬었다 하자는 속삭임은 마귀의 소리이며 지옥에서 들려 오는 자장가입니다.그러므로 신앙의 첫걸음을 뗄 때,신앙의 길은 쉼이 없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어떤 상황에서도 쉴 수 없는 길이 지금 걷고 있는 신앙의 길임을 마음판에 새겨 두십시오.육신은 쉬더라도 예배드리는 일은 쉴 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직장은 쉬더라도 기도는 쉬지 않겠다고 다짐하십시오.세상 일은 쉬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읽는 것은 쉴 수 없는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사람의 계획은 뒤로 미룰 수 있어도 주 하나님께 대한 헌 신은 뒤로 미룰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발에 신을 신으라 이스라엘 주변에는 광야가 많이 있습니다.모세가 양을 치며 살던 곳은 미 디안이라는 광야였습니다.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지나가야 할 장 소도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신발이 대 단히 중요한 소지품이었습니다.그 당시 사람들은 이미 가죽으로 신을 만 들었으며,특히 먼 여행을 위한 특수 신발도 만들어 신었습니다.만일 신 발이 약하거나 떨어지면 수많은 돌멩이,가시덤불,굵은 모래,바위 등에 걸려 광야 길은 갈 수가 없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밤이 지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시내(시나이)반도로 나갈 것을 아셨습니다.이 시 내 반도 또한 북쪽은 사막이고 남쪽은 많은 산들과 바위로 인해 험난한 지 역이었습니다.발에 신을 신고라는 말은 여행할 때 신는 든든한 신발 을 신으라는 것입니다.발에 신을 신으라는 권고에는 너희는 발에 상처 를 주고 걸림이 되는 험한 땅과 들판을 걷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은 일반 여행자들이 가는 길과 비교 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하나님을 따라가는 믿음의 길,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조금 좋다는 백성들은 아마도 속으로 이 길은 신앙을 위하여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를 돌멩이 없는 길,가시덤불 없는 길,발에 상처를 주지 않는 길로 인도 하실 거야.그러니 집안에서 신는 아무 신이나 신어도 되겠지 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발에 신을 신으라고 명하셨습니다.거친 들 과 바위산,뜨거운 모래,따가운 가시덤불을 의식하고 튼튼한 신을 신으라는 것입니다.가는 길이 비록 믿음의 길이더라도 밟고 가야 할 땅은 일반 사람들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신앙의 목적 없이 광야를 통과하는 이방 민족의 발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발이나 동일하게 상처 와 아픔과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우리는 불신자를 상 징하는 이방 민족의 발이나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이스라엘인의 발이 모 두 동일하게 광야에서 상처를 받을 수 있으며 아픔을 겪을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부르시어 믿음의 길로 인도하 시지만,그들이 밟는 길은 이방 사람들이 밟는 길과 다를 바 없는 동일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신앙의 길은 만사 형통의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을 가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슬 픔,고통,괴로움,아픔,상처 등은 모두 동일하게 겪으며 살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신 후 장애물 없는 편안한 곳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도 지나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발이 부르트고 상처 입어 더 걷지 못하고 쓰러지지만,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며 능력의 손으로 보호해 주시므로 쓰러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과 같은 고통과 어 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특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과 힘든 여행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 을 느끼며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되었던 것입니다.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의 앞날에 슬픔이나 괴로움 ,혹은 고민거리 없는 편안한 길만을 마련해 놓지는 않으십니다.비록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불신자들이 겪는 삶의 문제들과 부딪히며 살게 됩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겪는 슬픔과 고민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그 가운데서 능력을 베푸셔서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불신자들이 겪는 삶의 문제들을 체험하게 하시면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믿음으로 살고 열심히 기도하기 때문에 나의 길이 늘 형통하고 웃음과 즐거움만 있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확신을 갖고 살아갑니다.그러다가 조그마한 괴로운 문제,눈물 나는 일,고통스런 상 황을 만나면 믿음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쓰러지고 낙심하고 회의하고 갈등 하며 신앙의 발걸음을 멈춥니다.일이 잘 되면 하나님 은총 아래 있고 괴 로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 은총 밖에 있는 것이라고 대단한 오해를 하는 이 들이 있습니다.이러한 이들은,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연단하시며 고 통을 통해 강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잊은 것입니다.오늘날 예전의 열심과 확신과 감격스런 신앙 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문제에 걸려 넘 어진 이들입니다.이렇게 신앙 생활을 잘하고 있는데,열심히 기도하는 데,주께 충성하는데 왜 괴로운 일이 닥치는가 문제가 풀리기보다는 왜 어려워지는가이런 이들이 교회 안에서 걸림돌 신자가 되어 오직 주님 만 바라보며 열심히 전진해 나가는 성도들에게 나도 옛날에는 그랬어 하며 그들도 넘어지게 하고 있습니다.무엇이 그 열심 있던 신앙을 잃게 하고 걸림돌 신자가 되게 했습니까 그것은 발에 신을 신지 않고,곧 만 사 형통만을 바라는 잘못된 자세로 신앙의 길을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을 전파하던 사도 바울도 불신자가 겪는 풍랑과 죽음의 고 비를 맞았던 적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행 27:19,2 0).또한 사도 바울의 일생이 형통한 길만이 아니었음을 알려 주는 구절 도 있습니다.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 어지고(고후 1:8).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좋은 일 가운데서만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며 그분의 동행하심에 대한 확신을 지니던 편협한 신앙 의 자세에서,고통스러운 일 가운데서도 그분의 역사와 동행하심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갖는 자리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즐거운 일 속에 서만 찬송이 나오는 어린 신앙에서,괴로운 일 속에서도 찬송을 부를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의 자세를 갖기를 원하십니다.당신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일 속에서만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자부하는 헛된 신앙에서 벗어나 억눌 린 환경 속에서,눈물 나는 답답한 일 속에서 당신을 훈련시키고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며 그 은혜에 감격할 줄 아는 깊고 흔들 림 없는 신앙인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 당신이 걷고 있는 신앙의 길에 주님이 명하신 자세로 서 있는지 확인하여 보십시오.잘 되는 일만을 그려 보며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형통 의 날만을 소원하며 주님을 찾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십시오.고통과 괴 로움으로 연단되지 않은 잘됨과 형통은 당신 자신을 더 교만하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독약과 같은 해로운 요소임을 아십시오.그러므로 당신을 당황스럽게 하는 삶의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 오.의심하지 마십시오.갈등하지 마십시오.영광스러운 날을 위하여,주 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하여 당연히 지나가는 복된 과정이라고 믿으 십시오.그리고 느슨해진 영적 허리띠를 고쳐 동여매십시오.영적 신발을 갈아 신으십시오.이것이 신앙의 행진을 위한 준비된 자세입니다.  1그리스도인이 실족하게 되는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자신인가, 사단인가,타인인가,하나님이신가) 2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에는 쉼이 없어야 하는가 3실족한 그리스도인이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취해야 할 태도는 어떤 것인 가 4번영과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5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는 삶의 어떤 상황에서 더 깊어질 수 있는가 6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이 땅의 축복은 항상 정비례하는가7그리스도인 이 겪는 삶의 고난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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