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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의 피 (출12:1-14)

본문

내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하신주 날오라하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씻어 주소서 괴로운 내가 주께로 지금 갑니다. 암담하기만 한 내가 주께로 지금 갑니다. 갈등있는 내가 주께로 지금 갑니다. 마음이 평안치 않은 내가 주께로 지금 갑니다. 살맛이 없는 내가 주께로 지금 갑니다.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우리의 몸이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름답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머리는 맑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히 보존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세상 그 어디를 보아도 이같은 우리의 모든 원함을 충족시켜줄 곳도 없고 사상도 없습니다. 있다면 더욱 암담하게 하는 것 뿐이요, 더욱 갈등하게 하는 것 뿐이요, 더욱 살 맛 안나게 하는 것 뿐입니다. 오직 정하고 정한 내 주의 보혈만이 내 죄를 정케하신 후 날 오라 하십니다. 그러니 내가 주께로 지금 갑니다. 우리 모두 주께로 지금 갑시다.
왜냐하면 오직 골고다의 보혈만이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만 모든 약점을 능히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상 어디를 보아도 소망이 없습니다. 내일의 희망을 걸만한데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소망 우리의 생명길은 어린양 예수와 보배로운 십자가의 보혈피 밖에 없습니다. 이 지구의 인류는 태줄이 끝어진 태아와 같습니다. 죽었습니다. 썩었습니다. 그러니 이 지구의 생명길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생명길은 우리 인류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생명길은 예수님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긴 긴 세월동안 정치는 큰소리 쳐왔습니다. 인간의 모든 부정과 부조리는 우리가 해결해 준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어느 정치 어느 사회가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까 경제도 큰소리쳤고 교육도 큰소리 쳤습니다만 인간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유토피아를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인간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론은 있으나, 이상은 있으나 그것을 행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쟁하나만 보아도 누가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전쟁을 좋아 하겠습니까 온 인류가 다 싫어하는 전쟁이지만 전쟁하나도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심각한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구석을 찾아 보아도 희망은 보이질 않습니다. 이 절망적인 땅을 보시면서 너무 참혹하고 비참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인간에게 생명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만일 50억 인류가 한꺼번에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주 날오라하시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온 인류가 이렇게 합창할 수 있다면 이제는 무기여야 안녕, 전쟁이여 안녕, 아사여 안녕, 석유 분쟁도 안녕, 사상 이념 대립도 안녕그래서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어질 것입니다. 목탁소리가 사라질 것이고 공자왈 맹자왈이 사라질 것입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로 만사가 해결되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보혈을 흘려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신구약을 뒤져보면 인류를 성자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약속으로 가득 실어 주셨습니다.
때로는 약속을 지키시고 때로는 율법을 지켜서 깨닫게 하시고 때로는 예언을 주셔서 경고 하시고 때로는 모형을 주셔서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 (아벨의 제사, 노아의 방주, 광야의 구리뱀, 도피성 제도.)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비극에서 구원할 수 있는 예수님의 모형이요 그 중에서도 어린양에 대한 말씀이 구약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유월절 어린양이든 아사셀의 어린양이든 모든 제사의 생축으로 양을 잡아 바치는 일이든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모형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레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이 어린양인 예수님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나 그 방법과 절차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급의 종노릇한 270여년 그저 죽지 못해 마지못해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 이제는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애급에서 해방시켜 주실 일을 착수하셨습니다. 그 첫단계가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서 이제는 정신차려서 하나님의 백성을 약속된 땅으로 보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왕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권고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럴때에 재앙으로 채찍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니까
2,3,4,5,6,마지막에는 10번째 최후의 진노를 부으셨습니다. 언제든지 그렇습니다. 완악한 자는 굽힐줄을 모르다가 꺽어지는 법입니다. 독재자는 굽힐줄을 모르다가 꺽어지는 법입니다. 이제 더이상 바로와 그 왕조가 꺽이지 않고는 안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완악한 바로 때문에 왕궁을 위시해서 모든 집집마다 초태생이 죽어 넘어지는 참혹한 심판이 집행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완악한 자에게 언제나 있습니다.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심판의 밤은 드디어 왔습니다. 인정을 하든 안하든 비웃든 말든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운 밤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십계라는 영화에서 그날밤의 묘사를 보니 깊은 어둠의 밤에 짙은 안개같은 것이 하늘로 부터 소리없이 흘러나와 땅을 휘감기 시작하는데 그 안개가 휘감는 집집마다 여인의 구슬픈 통곡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아침이 되니 온 애급땅에 통곡소리 뿐입니다.
이 말씀을 이만큼 생각해 오다가 나에게는 과연 어떤 시간이 오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한시간 후에 과연 나에게 어떤 상황이 올까요 하루 후에 과연 나에게 어떤 상황이 올까요 한달 후에 과연 나에게 어떤 상황이 올까요 일년 후에 과연 나에게 어떤 상황이 올까요 완악한 바로에게 시시각각으로 마지막 심판의 법이 오고 있었듯이 우리에게는 어떤 밤이 오고 있을까요 우리는 엄숙히 반성하고 엄숙히 자세를 가다듬에야 할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살 길을 지시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12장입니다. 양을 한마리 골라라. 흠없는 것으로 집집마다 골라라. 그리고 나흘동안 집에 잘 간직해 놓았다가 그 심판의 날 밤에 그 양을 잡아라. 그리고 양의 피를 너희들이 출입하는 문설주에 바르고 인방에다 양의 피를 발라라. 그리고 누구든지 그 방안에서 나오지 말아라. 그리고 그 방안에서 그 고기를 먹어라. 양의 고기를 먹데 다 먹으라. 온가족이 다 먹으라. 입 맛 없다고 누구는 안먹고 누구는 먹고 하지 말고 다 먹어라. 남거든 날이 밝기 전에 불살라 버리라. 그리고 쓴나물과 함께 먹으라. 신발을 신고 허리에 띠를 띠고 출발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키는데로 했습니다. 드디에 그 밤에 하나님의 심판은 애급천지를 초상집으로 만드셨습니다. 과연 그날은 심판의 밤이였습니다. 그러나 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저 있는 그 집에는 재앙이 없었습니다. 심판이 없었습니다. 오직 구원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아침이 오자 모두가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270년의 노에생활을 청산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향하여 자유의 사람이 되어 감개무량하게 새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이사건에서 3가지만을 추려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기다리고자 합니다.
1. 절대 유일의 구원은 어린양의 피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심판의 밤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피를 뿌리고 발랐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애급의 전역에 번개불과 같이 임하는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양의 피가 뿌려져 있는 방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 어떤 누구의 집이든(강도,창녀,세리,어부.)상관없이 보배로운 피가 뿌려져 있는 집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과 십자가 보혈안에만 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학문을 자랑했습니다. 지혜로운 말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방법이나 능력이 되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에 와서는 마음이 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었습니다. 그럴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겪려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 그는 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예수와 십자가에 못박힌 것 이외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노라고 말입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배운 학문도 안녕, 가말리아 문하에서 배운 지식도 안녕,오직 예수와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왜 이것만이 인간을 수원할 수 있는 길이요 능력이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미련하다고 할지라도 십자가 뿐입니다.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십자가 뿐입니다.
왜냐하면 죄용서함을 받기 위해서는 이것뿐이라고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콩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납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불은 아래서 위로 올라갑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지구는 스스로 돌고 태양의 주위를 돕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모든 법칙이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지듯이 우리가 구원얻는 방법도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그 길 외에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행4:12, 요3:16) 하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왜 방주에만 구원이 있습니까 왜 도피성에만 구원이 있습니까 왜 구리뱀을 바라보아야만 죽지않고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구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십자가의 보혈앞에 무릎 꿇으십시오. 누구든 좋습니다. 창녀면 어떻고 강도면 어떻고 세리면 어떻습니까 여기에 구원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구원의 길은 어린양의 보배피 외에는 죄용서받고 구원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보혈안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보혈안에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버림 받을 자요 스스로 속이는 자입니다.
2. 그러면 십자가 보혈과 나는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 보혈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지시하셨습니다.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붉게 붉게 칠하라. 이것이 표적입니다. 그리고 모든 식구들은 그 방안에서 나오지 말아라. 즉 보혈안에 있으라는 말입니다. 인방의 문설주에 보혈의 피를 칠하라. 대문의 문설주에 보혈의 피를 칠하라. 그 보혈이 있는 문안에 들락날락 할 때에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은 금으로 대문을 장식하고 명예로 대문을 장식한다고 그 집에 행복과 스윗트 홈이 있을 까요 보혈이 여러분의 대문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보혈이 여러분의 문설주에 있기를 바랍니다. 보혈이 있는 방안에는 불효자가 나오질 않습니다. 보혈이 있는 방안에는 불량자가 나오질 않습니다. 보혈이 있는 방안에는 형무소 갈 사람이 나오질 않습니다. 보혈이 있는 방안에는 기도만 있고, 찬송만 있고, 신앙의 간증만 있을 뿐입니다. 어찌 그 가정에 불효자가 있겠으며 어찌 그 가정에 불량자가 있겠습니까 이 대문안에 어찌 비극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문설주와 인방에 보혈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보혈이 있을때 하나님의 심판은 면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보호만 있을 뿐입니다. 둘재, 양의 고기를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전부 먹으라고 했습니다. 즉시 먹어야 하고 다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지식이 있고 없고에 따라 죽고 살고 하지는 않습니다. 기술습득에 살고 죽는 것이 관계되지는 않습니다. 입고 못입고가 죽고 사는 일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먹는 문제는 사느냐 죽는냐의 문제입니다. 먹을 때 그 양식이 내 영향이 되고 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장식품같이 가지고 다니지 말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장식품이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고상한 인생을 위해서는 종교를 하나쯤은 가져야 겠기에 고작 여러분의 고상한 인생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양분을 내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먹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격속에 내주시키라는 말입니다. 내 영향이 되도록 내 능력이 되도록 그래서 그 능력안에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속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내 삶에서 예수의 윤리가 나타나야 하고(마5장) 예수님의 행위가 나타나야 하고 예수님의 사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먹되 다먹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만 먹지말고 사랑만 먹지 말고 교훈만 먹지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체 다 먹어서 철저히 예수가 내안에 내가 예수안에 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에수의 축복만 먹을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도덕적인 교훈만 먹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신비적인 기적만 먹으려고 합니다. 다 먹으라는 말에는 아들도 딸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남편도 아내도 종도 주인도 다 그리스도의 보혈안에 십자가의 은총안에 살라는 말입니다. 어머니만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만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만 먹으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있은 사람이면 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배불리 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풍성하게 먹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그 가정에 구원이 있고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먹되 쓴마물과 함께 먹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애급생활의 쓰라림을 잊지 말고 그 고역을 당하던 노예생활을 하며 짐승 취급 받던 생활을 잊지 말라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 없이 사는 생활이 마치 종노릇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지난날을 회개하는 쓴나물 먹으십시오. 뉘우치는 마음, 눌물 글썽이는 가슴을 부등켜 안고 “주여, 내가 보혈에 무릎 끓었습니다. 날 용서하소서.”하고 회개하는 것이 쓴나물을 먹는 것이요 그러할 때 예수님 내게 오셔서 능력이 되셔서 늘 승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넷째, 출발하는 자세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발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하는 것은 곧 지난날을 청산하고 새 생활로 출발하는 기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방 생활에 그대로 앉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먹을 수는 없습니다. 엣 생활에 앉아 가지고 보혈안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두운 저 생활을 청산하는 자세로서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발에 신을 신고 급히 먹는 것이 옛 생활을 청산하는 자세로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자에게 오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재, 심판을 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심판이 면해집니다. 양이 죽어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안에 있는 사람은 죽음을 당치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 나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 흘리심으로 이미 심판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자리를 옮겨 내가 그 거처를 정할 때 죄에 대한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로 끝났기 때문에 나는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큰 산불이 났습니다. 불길은 점점 번져 온산을 뒤덥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속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다 타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이 가까와 올수록 우왕좌왕하며 당황해 하고 있는데 그중 한 노인이 사람을 모아놓고 살 길을 말해 줍니다. 빨리 자기집에 불을 놓아 다 태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해가 안갔지만 그 노인의 말대로 집을 다 태웠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그 잿더미 속에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산불이 왔다가 이미 탄 마을은 덮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은 다 살았다는 것입니다. 불이 탄자리는 또 탈것이 없습니다. 불은 한번 태우지 두번 태우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심판은 이미 심판한 곳에는 다시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십자가에서 심판받으신 주님안에 거할 때 비로소 그 심판이 내게 면제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찬송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심판이 나에겐 없네 주의 피로 내죄 사했네 예수님 날위해 돌아가셨으니 심판이 나에겐 없네” 이미 나의 죄로 인하여 심판받으셨기에 예수안에 있는 나에게는 결코 심판이없습니다. 방주안에는 심판이 없었습니다. 도피성안에도 심판이 없었습니다. 아담이 입은 가죽옷 덕분에 심팜이 면해졌습니다. 피가 있는 방안에는 심판이 없습니다. 예수안에 있는 여러분을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송사하리요 예수안에 있는 여러분은 심판과 관계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애급의 집집마다 통곡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집집마다는 찬송소리 우렁찼습니다. 한쪽은 곡성소리요 한쪽은 찬송소리인데 여러분은 어떤 것을 택하시길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도 구원의 찬송이 울려퍼지기를 바랍니다.
둘째, 가나안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지난 세월은 암담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제는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누구도 애급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데 막을 자 없습니다. 전에는 노예였으나 이제는 자유인으로 마음대로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때리고 학대하던 애급사람들이 이제는 금은패물을 주면서 빨리 가라고 손까지 흔들어 주니 가나안 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의 보혈안에 새 생활의 출발이 있습니다. 어제까지 암담했다면 오늘부터 광명이 있을 것입니다. 어제가지 구질구질했다면 오늘부터는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가슴에 고민이 있었지만 오늘부터는 고민대신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 차게 될것입니다. 보혈이 있는 집은 바로 이렇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집이 바로 이렇습니다. 그래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뜻과 정성을 모두어 날마다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저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된 세게에 우리를 동참시키시기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실천하셨습니다. 오직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예수의 보혈밖에는 없습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얻을 이름을 주신적이 없습니다. 어린양 예수의 보혈이 있는 길에 구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문설주에 구원이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방에 보혈이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대문에 보혈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그 안에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그 안에 구원얻은 자의 감사 감격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를 종교의식과 악세사리로 삼지말고, 예수님을 나 부자되는 도구로 삼지말고, 예수님을 내 소원을 이루어 주는 산신령으로 삼지 말고 예수 전체를 먹기 바랍니다. 그리고 먹되 온가족이 먹기 바랍니다. 풍성하고 충만히 먹어 여러분에게 예수가 그대로 나타나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가나안 천국 가는 문이 활짝 열려져 가나안 가는 백성으로 이 땅은 비록 암담할지라도 이 땅은 비록 눈물과 한숨이 있을지라도 광명한 내일을 향해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저 가나안으로 힘차게 전진하시기를 주님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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