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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과 인생 (전3:1-15)

본문

I. 하나님의 경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이 다윗 왕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는 바로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제3대 왕으로 주전 9711931년까지 재위에 오른 솔로몬(Solomon)왕입니다. 솔로몬 왕은 예수님께서도 “솔로몬의 모든 영광”(마6:29)이라고 지칭하실 만큼 전무무(前無後無)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쓴”(시 8:5)왕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는 왕으로 즉위 후, 먼저 기브온 신당에 올라가 하나님께 일천(一千) 번제를 드려 응답을 받았습니다. 꿈속에 나타난 하나님께 “백성을 올바로 재판하여 잘 다스릴 지혜”를 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지혜는 물론 거기에 더하여 수(壽)와 부(富)와 영광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솔로몬 왕은 7년에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여 헌당하였고 이어서 13년에 걸쳐 왕궁을 완공했습니다. 그는
3,000잠언을 썼는데, 구약의 잠언, 전도서 및 아가서와 시편 몇 편이 그의 저서로 과히 “지혜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울만 합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단 선지자로 하여금 “여디디야” 곧 “여호와께 사랑을 입음”이라는 호칭을 받게까지 되었습니다. 국토를 12행정 구로 구분하는 등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및 통상과 무역으로 그 부귀가 극에 달하였고 후궁과 처첩은 1,000명이나 되었으며, 사치의 극한 생활은 등극후 죽기까지 40년간 계속되었으나, 결국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는 말을 토하고 이 세상을 떠나 갔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솔로몬도 결국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전대주권을 고백한 것입니다. 여기서 “범사”(凡事)란 인간이 지상에서 취급하고 행하는 모든 산업과 경영을 가리키며, “기한”(期限)은 한정된 시간의 한 부분을 말하고, “때”는 어떤 특정 기간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행1:7; 살전5:1). 세상만사를 우연에 돌리지 않고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로 믿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노력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경륜(經綸)과 섭리(攝理) 가운데서 무상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경륜이란 헬라어로 “오이코노미아”(영,Dispensation)로 “하나님의 우주지배와 천하 통치에 있어서 그 솜씨, 포부 및 계획”을 의미하고, 섭리란 헬라어로 “프로노이아”(영,Providence)로 “인간 및 자연적 세계가 자립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배와 붙드심에 힘입고 있다는 신앙”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람1) 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가고, 모든 강물2) 은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여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전1:6,7)에서 잘 나타납니다. 특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被造物)을 그 구원의 목표에 인도하시려는 영원하신 계획과 인자를 말합니다.
II. 인간사의 때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대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3:1-8). 고 생스터(W.E.Sangster)박사의 “우리의 모든 삶이 시간의 노예이다”고 한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날들과 악몽같은 시간이 겹쳐가며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때에 대해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때” 또는 “시간”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별로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얘들아, 일어날 때다”,“잠잘 때다”,“양치질 할 때다”,“숙제할 시간이다”,“피아노 연습할 시간이다”,“학교갈 시간이다”,“밥먹을 시간이다” 오늘도 우리들의 자녀들은 이 “때”라는 글자 밑에 노예인 것 같습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지니 철이 드는지 “째깍 째깍”거리며 소리를 남기고 달려가는 시계소리가 너무도 아쉽고 때와 시간과 세월의 덧없음을 전도서의 기자와 같이 느껴집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우리는 여기서 인간사의 덧없음을 반복해 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어로 사람 곧 인생은 “아나쉬”라고 합니다. 이 뜻은 “깨어지기 쉽다”, “연약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인생일생(人生一生)은 깨어지고 쉽고 연약한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욥 7:6)라고 욥은 탄식했습니다. 반면에 인생은 매우 강하고 값진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창조된 인생을 삽니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입니다. 꼭 한번 사는 삶인 것입니다. 온 지구가 헌 옷 같이 낡아지는 때까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또는 우주가 몇 천만번 되풀이해서 창조되고 끝없는 영겁(永劫)이 오고 또 가더라도, 여러분과 나의 인생은 꼭 한번, 정해진 때에 살다 가는 것입니다. 단 한번만 살다가는 너와 나의 인생, 잘 났든 못 났든, 좋든 싫든, 잘 살든 못 살든, 이 모양, 이 모습으로, 오늘 주어진 이런 저런 여건과 직장, 생업과 소망 속에 단 한번 사는 나의 삶이기에 남이야 뭐라 하든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도 장엄하고 고귀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못된 노래는 다시 고쳐 부르면 되고, 운동경기는 지더라도 잘 연습하여 다음은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사업의 실패는 재기의 가능성이 있고, 잃어버린 명예나 지위도 되찾을 수 있지마는 한번 탄 편도행 인생 열차(one-way ticket)는 갈아탈 수 없습니다.
III. 터득한 진리 전도자가 터득한 고귀한 진리는 크게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잠시동안 머무르다 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마치 고속도로의 이정표(里程標)와 같이 눈 깜찍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그러나 인생은 짧지만 값집니다. 인생은 영원을 가르치는 교실입니다. 우리가 사는 짧은 날들이 영원을 씨뿌리는 시기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인생에게 현재의 삶은 영원한 미래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입니다(눅 16:26). 우리가 잘 아는 아폴로(Appollo)11호를 달나라에 띄운 주역의 과학자, 미국 우주 항공국(NASA)의 부원장인 베르너 본 브라운(Werner Von Braun)박사는, 콜로라도주 요인(要人) 조찬기도회에서 '과학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라는 제목 하에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자연은 소멸될 줄 모릅니다. 자연이 아는 것이라고는 변형되는 것 뿐입니다. 이제 만약 하나님께서 그 기본적인 원리를 그의 우주의 가장 세미하고 보잘것 없는 부분에 적용시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창조의 걸작 곧 인간의 영혼에도 그것을 적용시킨다는 사실을 어찌 부인하겠습니까라고 역설했습니다. 위대한 증언입니다. 다음으로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3:12)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이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기뻐하고 즐거워 하면서 선을 행함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곤고와 호나난을 많이 겪은 사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로마(Roma) 감옥에서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환경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에 적어도 17회나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이것은 주님 안에서 갖는 성령님의 위로로 말미암은 온전한 기쁨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그 기뻐함은 선을 행함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행은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순수한 기쁨을 안겨다 줍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물론이지만, 장본인에게도 커다란 행복감을 주는 것입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3:27). 일본의 내촌감상 선생도 “하루는 인생이다. 선한 인생이 있음같이 선한 하루가 있다. 악한 인생이 있음같이 악한 하루가 있다. 하루를 짧은 인생으로 보아 이것을 소홀히 할 없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한 사람의 인생이 평가되는 건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 보다는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로, 그가 무엇을 얻었는가 보다는 무엇을 주었는가로, 그의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그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로, 그리고 하나님의 맡긴 사명을 어떻게 완수하였는가로······, 인생의 평가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한 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이 한 번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영존(永存)하는 것과 사후의 심판에 대한 무지 때문에, 얼마나 한 번 사는 인생 곧 편도 승차표 인생을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느냐 말입니다.
두렵고 놀랍게도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形像)을 따라 그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놀랍고 아름다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을 영원한 형태로 만드셨으므로, 인간은 이 짧은 세상에서만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연약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영생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각주)-바람의 순환:1630년 갈릴레오는 지표의 다양성으로 인해 생기는 태양 복사열의 차이와 지구의 자전으로 대기의 순환을 확인했다. 바람의 순환이 불반구에선 오른쪽으로 남반구에선 왼쪽으로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휘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의 순환:16,7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의 페라울(Perrault)과 마리오트(Mariotte)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물의 순환과 강수현상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천문학자 할레이(Halley)도 강수 증발이 평형을 유지하므로 물의 순환이론을 확립했다. 물은 증발, 응결, 강수의 세 단계를 거쳐서 순환한다. 이러한 물의 순환이 항상 평형을 유지하므로 바다의 평균 수위는 높아지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과학적으로 이것을 증명하기
2,600여년전에 이미 성경말씀에서 솔로몬(Solomon)을 통해 이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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