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11:9-12:14)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의 말씀 이다(전1:1). 그 솔로몬 왕은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지혜의 은 사를 받은 사람이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지혜를 가진 자 였다. 열왕기상 3:12-13절에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 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솔로몬 왕은 자신이 구하지 아니한 부귀 영화도 하나님이 축복으로 더하여 주셨고, 열왕 중에 뛰어난 왕으로 세워 주셨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많은 예물을 준비하여 지혜의 말씀을 듣고져 찾아오는 이들로 인하여 나라의 부강과 솔로몬 왕의 명예가 날로 날로 높아져 갔다. 참으로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렸고, 명예와 지혜를 가졌다.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았고, 태평성대(太平聖代)의 평화 와 안식을 누렸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성공자로 기록될 사람임 에 틀림없다. 모든 사람이 꿈꾸는 성공자,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성공자로 손꼽힐 솔 로몬이지만, 그가 누린 인간으로서 더 바랄 것 없는 최고의 행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 고백되어지는 말은 인생사가 "헛되다"는 것이다. 전도서 1:2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했다. 이 말은 솔로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솔로몬처럼 인생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맛본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인간의 모든 행복을 다 누려 보지 못하고 "헛되다" 고 한다면, 그 말은 진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솔로몬은 다르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전무후무한 지혜의 소유자이다. 부귀와 영화도 한 몸 에 누린 사람이다. 삼천의 잠언, 일천 다섯의 노래(왕상4:32), 칠백의 후 비, 삼백의 빈장(왕상11:3). 열왕들이 그의 지혜를 사모하는 태평성 대의 평화로움, 이 모두를 누려 본 솔로몬 왕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쾌락은 다 누려 보았지만, 거기에 인생 의 참 만족은 없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은 말한다. 인 생사 그 모두가 "헛되고 헛되다"고 소리친다. 전도서 1:2-4절에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 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 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 고 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인생은 영원히 이 땅 위에 머물지 못하는 것. 언젠가는 가야 할 인생 이기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 것이기에, 영원하지 못하기에 인생은 "헛되다"고 한다.
전도서 1:16-18절에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 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 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고 했다.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었으나, 더 큰 지혜를 알고져 마음 을 섰으나. 이 또한 바람을 헛된 일이었고,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 고 지식이 더해 갈수록 근심이 더해가니, 이 또한 "헛되다"고 한다.
전도서 2:8-11절에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 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 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 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 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했다. 솔로몬은 자신보다 먼저 예루살렘에서 부귀 영화를 누렸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금은 보배, 노래하는 남녀, 많은 처와 첩을 옆에 두 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고 쾌락을 즐겼으나 이 또한 바람을 잡으려는 무익한 일로 "헛되다"고 한다. 전도서 8:16-9:1절에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 서 하는 노고를 보고자 하는 동시에(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 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 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 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 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 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고 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의 말씀은 인생사는 다 "헛되 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인생사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그것은 미래사(未來事) 라고 한다. 그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하고 살핀다 할지라도 능히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사람이 "아노라" 한다 할지라도 사실은 다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미래사를 실상은 인생이 능히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이 전하는 결론의 말씀이다. 우리 인생사는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나의 미래사" 를 그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한다. 전도서 9:1절에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 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 임이니라"고 했다. 바로 "나의 미래사"를 그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한다. 바로 "나 의 미래사"이라고 한다. 곧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랑 받을 일"을 해야 "나의 미래사"를 그 손 에 쥐고 계신 그 하나님께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나의 미래 사"를 그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야 내 삶이 "헛되다"가 아닌 "진실하다", "영원하다"가 된다는 전도자 솔로몬 왕의 말씀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 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가 전하는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말씀 을 살펴 보고져 한다. 전도자 솔로몬 왕이 전하는 "인생의 본분"은 과 연 무엇일까.
1.창조자를 기억하라. 우리 인생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원숭이가 진화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연히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자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쫓아, 당신의 형상 대로 창조한 것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나의 창조자이시오, 나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자식이 그 부모를 잊을 수 없음과 같다. 나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처음부터 배은망덕의 길을 걸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고, 우리 또한 어두움의 자식으로 어두움에 행하 며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고, 그의 부르심에 등을 보이는 자들 이다. 그런 우리 인생에게 전도자 솔로몬 왕은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일러준다. 배은망덕의 길을 걸으며 인생의 꿈과 행복을 찾아 헤매일지라도 "인생의 미래사"를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은 창조자 하나님이시라고 일러준다. 되도록이면 빨리 기억하라고 한다. "나의 미래사"를 그 손에 쥐고 계 신 하나님이 "나의 인생사"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매듭짓기 전에 기억 하라고 한다. 그래서 ".하기 전에" 기억하라고 한다. "나의 인생사" 에 한 매듭이 지어지고 나면, 그 매듭을 풀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인 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1.청년의 때에 기억하라 본문 12:1절에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의 때는 "네 어린 때"를(본문11:9, 10) 지난 시기 를 말하고 있다. 아마도 어린 때의 창조자를 기억하는 신앙생활은 부모 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네 어린 때"는 이것이 사람의 본분 이라는 인생을 책임질 시기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네 어린 때"를 지나 "청년의 때"가 되면 한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스 스로 져야 하고, 어른과 같은 권리와 책임을 가지게 된다. 이스라엘의 인구 계수에서 보듯이 20세 이상이 되어 "청년의 때"가 되면 한 국민으 로서 계수되며 권리와 책임이 주어짐을 보게 된다. 신앙생활 문제도 "청년의 때"가 되면 부모의 지도와 감독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신앙생활 전반에 걸친 문제를 결정하고, 신앙을 굳게 지켜 나 가야 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스스로 정립해 나가야만 한다.
2.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 12:1절에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 하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곤고한 날"은 "청년의 때"가 지나고 "노인의 때"를 말한다. 젊음과 용기가 넘치는 "청년의 때"와는 달리 그 몸에 지치고 곤함이 밀려오고, 고통과 괴로움이 떠나지 않는 나날을 말한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노년기에 처하게 되면 건강하던 몸에도 질병이 찾아오고, 청년의 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육체의 곤고함을 겪게 된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곤할 때 나의 손잡아 주시는 주님이 없다면. 넘어 지고 쓰러질 것뿐인 인생이다.
3.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 12:1절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다. 청년기를 지나고, 장년기를 지나고, 노년기를 지나, "황혼기"를 말한다.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한다. 곧 오늘일까 내일일까 떠나가야 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무언가 한 가지 해 보겠노라고 생각해 볼 수 없는 입장이다. 내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에, 무언가를 이루어 보려고 해도 그 터전이 없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믿을 수 없는 미래에다 꿈을 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확실한 꿈이 무엇일까. 바로 "돌아갈 내 본향"이다.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창조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은 그 곳(요14:2), "돌아갈 내 본향"을 마련하라는 말씀이다.
4.하늘의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 12:2절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했다. 해와 빛과 달과 별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말한다 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한 인간의 차원보다는 "시대적"으로 생각을 해 보고져 한다.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늘의 징조"를(마24:30) 기억하 자. 마태복음 24:29-30절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 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 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했다. 해와 달과 별에 "하늘의 징조"가 나타나고, 하늘에서 "인자의 징조"가 보이리라고 했다. 이 때가 되면 더 이상의 "은혜의 때"도, "구원의 날" 도 없다(고후6:2). 이 하늘의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5.죽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 12:7절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 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했다. 우리 인생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고(창3:19), 우리 인생의 영혼이 그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곧 죽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한다. 죽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할까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 받아 주시지 않으면 내 아버지 집이 아닌 무저갱이요, 영원한 불못이요, 죽음도 없는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우리 인생은 육신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 오 직 심판이 있을 뿐이다. 더 이상의 "내 인생의 삶"이 없기에 내 삶에 대한 잘잘못은 결정 나진 것이다. 선악간에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늦어도 죽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해야 한다. 나의 창조자를 기억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기억 하라고 한다. 노년이 되기 전에, 황혼기가 되기 전에, 죽기 전에, 창조자 를 기억하라고 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2.하나님을 경외하라. 본문 12: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 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종이 상전을 대하는 마음이 아니다. 우상 을 대하는 우상숭배자의 두려움도 아니다. 존경하는 마음이요, 우러러보는 마음이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고, 공경이 있다. 잠언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 세상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지식이 아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아는 지혜 이다. 나의 주인을 알아보는 지혜이다. "나의 미래사"가 그의 손안에 있 음을 아는 지혜이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창조자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왜 그러 할까 바로 나의 창조자를 아는 길이요, 나의 주인을 아는 길이기 때문 이다. "나의 미래사"를 아는 길이기 때문이다.
3.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본문 12: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 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가 있다.
1.맹종 이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무조건적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 의 관계"가 아니다. 자신의 소원과 기대를 가지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이른 맹종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 위에서 따르기를 요구하신다. 맹종은 우 상숭배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2.순종 이는 명령의 요구를 내가 알고 그 요구에 내가 동의하여 자원하는 마음에서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순종에는 불평도, 불만도 없다. 기쁨이요, 즐거움으로 따르게 된다. 로마서 5: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했다. 이 순종의 본은 주님이 친히 십자가 지심으로 보여 주셨다. 높고 높 은 보좌를 비어 두시고, 낮고 천한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시어(빌2:7)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신 주님이시다. 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 십자가를 생각하시며, 그 참혹한 십자가의 부 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시고(히12:2)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원대 로" 순종하신 주님이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우리 앞에서 순종의 본을 보이신 주님, 그는 우리 믿음의 주시오, 또 온전케 하시는 이시다. 우리가 바라보고 달려갈 푯대이시다.
3.복종 이는 명령의 요구를 알지 못하거나, 동의할 수 없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따르지 못하고 억지로 따르는 형태이다. "언약의 관계"에서 이 루어지는 명령이기에 맹종과는 다른 차원이다. 자식이 부모의 뜻을 다 알고 동의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듯, 우리 인 생도 하나님께 복종해야 할 때가 있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기에 때로는 복종해야 한다. 마태복음 7: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 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우리 인간이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기에 부모가 그 자 식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욱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으랴. 그분은 나의 창조자이시니, 필요한 것 아시 고 적절히 채워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의 요구가 이해가 되지를 않고, 좀 손 해나는 것 같아도, 좀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자원하는 마음이 되지 못 하여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고 하기 때문이다. 복종을 하고 보면 그 말씀은 찌르는 채찍같아 순간 순간 잘못을 일깨 워 주고, 복종하고 보면 그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이 의의 길에서 벗어 나지 않도록 삶의 길을 굳게 지켜 주신다. 그러기에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명 령을 지키라. 그 명령에 순종을 하라. 순종을 못하겠거든 복종을 하라. 바로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나의 목자되신 주님이 주신 말씀 이다.
4.심판을 대비하라. 본문 12: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은 한번 왔다가 가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안다. 그래서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외치며 참으로 간 큰 행동을 한다. 그래서 무지한 자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고 한다. 참으로 내세에 대해 서 무지한 자가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우리 인생은 죽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 리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나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선악간에 심판하 신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나의 모든 은밀한 일에도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판하신다고 한다. 누가복음 8:17절에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 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했다. 예레미아 23:24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 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 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라고 했다. 숨긴 것도, 감춘 것도, 드러나지 아니하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한다. 사람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길 수 없다고 한다. 안 계신 곳 없이 계신,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이시기 때 문이다. 고린도후서 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 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한다. 선악간 에 우리의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 하나님은 결코 졸지도(시121:4), 실수하시지도 않으신다. 본문 12: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 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이 전하는 말씀이다. 일의 결 국을 다 들었으니. 인생은 헛된 것이다. 해 아래서 수고하며 애써 추 구하는 모든 부귀와 영화도, 기쁨과 쾌락도, 행복과 평화도,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다"고 한다. 우리 "인생의 미래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니. 사랑을 받을는 지, 미움을 받을는지, 뉘 능히 알 수 있으랴. 그러기에 하나님께 "사랑 받을 일"을 하면서 살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되도록이면 빨리 창조자를 기억 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에 선악간에 심판하실 그 심판에 대비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 니라고 한다.
솔로몬처럼 인생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맛본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인간의 모든 행복을 다 누려 보지 못하고 "헛되다" 고 한다면, 그 말은 진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솔로몬은 다르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전무후무한 지혜의 소유자이다. 부귀와 영화도 한 몸 에 누린 사람이다. 삼천의 잠언, 일천 다섯의 노래(왕상4:32), 칠백의 후 비, 삼백의 빈장(왕상11:3). 열왕들이 그의 지혜를 사모하는 태평성 대의 평화로움, 이 모두를 누려 본 솔로몬 왕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쾌락은 다 누려 보았지만, 거기에 인생 의 참 만족은 없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은 말한다. 인 생사 그 모두가 "헛되고 헛되다"고 소리친다. 전도서 1:2-4절에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 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 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 고 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인생은 영원히 이 땅 위에 머물지 못하는 것. 언젠가는 가야 할 인생 이기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 것이기에, 영원하지 못하기에 인생은 "헛되다"고 한다.
전도서 1:16-18절에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 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 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고 했다.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었으나, 더 큰 지혜를 알고져 마음 을 섰으나. 이 또한 바람을 헛된 일이었고,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 고 지식이 더해 갈수록 근심이 더해가니, 이 또한 "헛되다"고 한다.
전도서 2:8-11절에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 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 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 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 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했다. 솔로몬은 자신보다 먼저 예루살렘에서 부귀 영화를 누렸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금은 보배, 노래하는 남녀, 많은 처와 첩을 옆에 두 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고 쾌락을 즐겼으나 이 또한 바람을 잡으려는 무익한 일로 "헛되다"고 한다. 전도서 8:16-9:1절에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 서 하는 노고를 보고자 하는 동시에(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 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 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 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 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 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고 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의 말씀은 인생사는 다 "헛되 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인생사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그것은 미래사(未來事) 라고 한다. 그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하고 살핀다 할지라도 능히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사람이 "아노라" 한다 할지라도 사실은 다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미래사를 실상은 인생이 능히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이 전하는 결론의 말씀이다. 우리 인생사는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나의 미래사" 를 그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한다. 전도서 9:1절에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 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 임이니라"고 했다. 바로 "나의 미래사"를 그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한다. 바로 "나 의 미래사"이라고 한다. 곧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랑 받을 일"을 해야 "나의 미래사"를 그 손 에 쥐고 계신 그 하나님께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나의 미래 사"를 그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야 내 삶이 "헛되다"가 아닌 "진실하다", "영원하다"가 된다는 전도자 솔로몬 왕의 말씀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 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가 전하는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말씀 을 살펴 보고져 한다. 전도자 솔로몬 왕이 전하는 "인생의 본분"은 과 연 무엇일까.
1.창조자를 기억하라. 우리 인생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원숭이가 진화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연히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자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쫓아, 당신의 형상 대로 창조한 것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나의 창조자이시오, 나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자식이 그 부모를 잊을 수 없음과 같다. 나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처음부터 배은망덕의 길을 걸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고, 우리 또한 어두움의 자식으로 어두움에 행하 며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고, 그의 부르심에 등을 보이는 자들 이다. 그런 우리 인생에게 전도자 솔로몬 왕은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일러준다. 배은망덕의 길을 걸으며 인생의 꿈과 행복을 찾아 헤매일지라도 "인생의 미래사"를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은 창조자 하나님이시라고 일러준다. 되도록이면 빨리 기억하라고 한다. "나의 미래사"를 그 손에 쥐고 계 신 하나님이 "나의 인생사"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매듭짓기 전에 기억 하라고 한다. 그래서 ".하기 전에" 기억하라고 한다. "나의 인생사" 에 한 매듭이 지어지고 나면, 그 매듭을 풀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인 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1.청년의 때에 기억하라 본문 12:1절에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의 때는 "네 어린 때"를(본문11:9, 10) 지난 시기 를 말하고 있다. 아마도 어린 때의 창조자를 기억하는 신앙생활은 부모 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네 어린 때"는 이것이 사람의 본분 이라는 인생을 책임질 시기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네 어린 때"를 지나 "청년의 때"가 되면 한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스 스로 져야 하고, 어른과 같은 권리와 책임을 가지게 된다. 이스라엘의 인구 계수에서 보듯이 20세 이상이 되어 "청년의 때"가 되면 한 국민으 로서 계수되며 권리와 책임이 주어짐을 보게 된다. 신앙생활 문제도 "청년의 때"가 되면 부모의 지도와 감독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신앙생활 전반에 걸친 문제를 결정하고, 신앙을 굳게 지켜 나 가야 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스스로 정립해 나가야만 한다.
2.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 12:1절에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 하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곤고한 날"은 "청년의 때"가 지나고 "노인의 때"를 말한다. 젊음과 용기가 넘치는 "청년의 때"와는 달리 그 몸에 지치고 곤함이 밀려오고, 고통과 괴로움이 떠나지 않는 나날을 말한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노년기에 처하게 되면 건강하던 몸에도 질병이 찾아오고, 청년의 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육체의 곤고함을 겪게 된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곤할 때 나의 손잡아 주시는 주님이 없다면. 넘어 지고 쓰러질 것뿐인 인생이다.
3.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 12:1절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다. 청년기를 지나고, 장년기를 지나고, 노년기를 지나, "황혼기"를 말한다.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한다. 곧 오늘일까 내일일까 떠나가야 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무언가 한 가지 해 보겠노라고 생각해 볼 수 없는 입장이다. 내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에, 무언가를 이루어 보려고 해도 그 터전이 없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믿을 수 없는 미래에다 꿈을 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확실한 꿈이 무엇일까. 바로 "돌아갈 내 본향"이다.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창조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은 그 곳(요14:2), "돌아갈 내 본향"을 마련하라는 말씀이다.
4.하늘의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 12:2절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했다. 해와 빛과 달과 별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말한다 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한 인간의 차원보다는 "시대적"으로 생각을 해 보고져 한다.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늘의 징조"를(마24:30) 기억하 자. 마태복음 24:29-30절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 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 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했다. 해와 달과 별에 "하늘의 징조"가 나타나고, 하늘에서 "인자의 징조"가 보이리라고 했다. 이 때가 되면 더 이상의 "은혜의 때"도, "구원의 날" 도 없다(고후6:2). 이 하늘의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5.죽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 12:7절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 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했다. 우리 인생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고(창3:19), 우리 인생의 영혼이 그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곧 죽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한다. 죽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할까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 받아 주시지 않으면 내 아버지 집이 아닌 무저갱이요, 영원한 불못이요, 죽음도 없는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우리 인생은 육신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 오 직 심판이 있을 뿐이다. 더 이상의 "내 인생의 삶"이 없기에 내 삶에 대한 잘잘못은 결정 나진 것이다. 선악간에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늦어도 죽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해야 한다. 나의 창조자를 기억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기억 하라고 한다. 노년이 되기 전에, 황혼기가 되기 전에, 죽기 전에, 창조자 를 기억하라고 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2.하나님을 경외하라. 본문 12: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 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종이 상전을 대하는 마음이 아니다. 우상 을 대하는 우상숭배자의 두려움도 아니다. 존경하는 마음이요, 우러러보는 마음이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고, 공경이 있다. 잠언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 세상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지식이 아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아는 지혜 이다. 나의 주인을 알아보는 지혜이다. "나의 미래사"가 그의 손안에 있 음을 아는 지혜이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창조자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왜 그러 할까 바로 나의 창조자를 아는 길이요, 나의 주인을 아는 길이기 때문 이다. "나의 미래사"를 아는 길이기 때문이다.
3.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본문 12: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 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가 있다.
1.맹종 이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무조건적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 의 관계"가 아니다. 자신의 소원과 기대를 가지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이른 맹종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 위에서 따르기를 요구하신다. 맹종은 우 상숭배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2.순종 이는 명령의 요구를 내가 알고 그 요구에 내가 동의하여 자원하는 마음에서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순종에는 불평도, 불만도 없다. 기쁨이요, 즐거움으로 따르게 된다. 로마서 5: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했다. 이 순종의 본은 주님이 친히 십자가 지심으로 보여 주셨다. 높고 높 은 보좌를 비어 두시고, 낮고 천한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시어(빌2:7)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신 주님이시다. 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 십자가를 생각하시며, 그 참혹한 십자가의 부 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시고(히12:2)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원대 로" 순종하신 주님이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우리 앞에서 순종의 본을 보이신 주님, 그는 우리 믿음의 주시오, 또 온전케 하시는 이시다. 우리가 바라보고 달려갈 푯대이시다.
3.복종 이는 명령의 요구를 알지 못하거나, 동의할 수 없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따르지 못하고 억지로 따르는 형태이다. "언약의 관계"에서 이 루어지는 명령이기에 맹종과는 다른 차원이다. 자식이 부모의 뜻을 다 알고 동의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듯, 우리 인 생도 하나님께 복종해야 할 때가 있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기에 때로는 복종해야 한다. 마태복음 7: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 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우리 인간이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기에 부모가 그 자 식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욱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으랴. 그분은 나의 창조자이시니, 필요한 것 아시 고 적절히 채워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의 요구가 이해가 되지를 않고, 좀 손 해나는 것 같아도, 좀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자원하는 마음이 되지 못 하여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고 하기 때문이다. 복종을 하고 보면 그 말씀은 찌르는 채찍같아 순간 순간 잘못을 일깨 워 주고, 복종하고 보면 그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이 의의 길에서 벗어 나지 않도록 삶의 길을 굳게 지켜 주신다. 그러기에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명 령을 지키라. 그 명령에 순종을 하라. 순종을 못하겠거든 복종을 하라. 바로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나의 목자되신 주님이 주신 말씀 이다.
4.심판을 대비하라. 본문 12: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은 한번 왔다가 가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안다. 그래서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외치며 참으로 간 큰 행동을 한다. 그래서 무지한 자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고 한다. 참으로 내세에 대해 서 무지한 자가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우리 인생은 죽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 리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나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선악간에 심판하 신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나의 모든 은밀한 일에도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판하신다고 한다. 누가복음 8:17절에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 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했다. 예레미아 23:24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 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 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라고 했다. 숨긴 것도, 감춘 것도, 드러나지 아니하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한다. 사람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길 수 없다고 한다. 안 계신 곳 없이 계신,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이시기 때 문이다. 고린도후서 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 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한다. 선악간 에 우리의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 하나님은 결코 졸지도(시121:4), 실수하시지도 않으신다. 본문 12: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 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 솔로몬이 전하는 말씀이다. 일의 결 국을 다 들었으니. 인생은 헛된 것이다. 해 아래서 수고하며 애써 추 구하는 모든 부귀와 영화도, 기쁨과 쾌락도, 행복과 평화도,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다"고 한다. 우리 "인생의 미래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니. 사랑을 받을는 지, 미움을 받을는지, 뉘 능히 알 수 있으랴. 그러기에 하나님께 "사랑 받을 일"을 하면서 살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되도록이면 빨리 창조자를 기억 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에 선악간에 심판하실 그 심판에 대비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 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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