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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의미 (신8:11-20)

본문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우리들의 삶 속에 여러가지 시련이 다가옵니다. 어떤 성도들은 시련이나 고난이 다가오면 신앙의 배가 난파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오히려 시련과 고난의 풍랑을 만나면 순퐁에 돛을 단듯 신앙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일생을 살면서 고난과 시련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시련과 고난을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시련과 고난 속에는 우리들을 향한 숨겨진 메시지가 있습니다.
1. 시련과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자식이 완전한 인격자가 되지 않은 이상 항상 잘못 된 일을 훈계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어두운 길, 잘못된 길로 갈 때 바른 길을 가도록 경고하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면 부모는 징계의 채찍을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채찍은 사랑이 근원이 된 징계입니다. 하나님도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곁길로 갈 때 징계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성경은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 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 를 받기 위함이가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시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6-8)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양은 목동의 말을 잘 듣고 목동이 인도하는대로 잘 따가오는데 그중에 고집이 센 양이 있다는 것이빈다.
그런데 그 고집센 양이 목동을 잘 따르지 않고 제 길로 가면 많은 다른 양들이 그 양의 뒤를 따라가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동은 제 길로 마음대로 가는 양을 잡아서 많은 양이 보는 앞에서 무릎에 얹어놓고 다리를 부러뜨리고는 버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 놓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리가 부러지고 나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곁길로 가지 않 고 목동의 가는 길을 순순히 따라온다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우리들도 고집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회개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그런 존재들은 아닌가'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이마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 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1-13) 고 명 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깨달아야 할 것은 징계는 사생자에게 내 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미움이 아닌 사랑이 동기가 되는 된다는 사실이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는 징계가 다가올 때 저항하거나 반항하지 말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가지 시련과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사 올바른 길을 걸어가게하고 마귀의 시험에 빠저 영원한 생명을 잃 어버리지 않고 거룩함에 참여케 하려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긍정적 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와 태도로 징계를 대해야 합니다.
2. 시련과 고난은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고 마음을 낮춥니다. 우리들은 성공과 축복의 고속도로만을 달리게 되면 자칫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자만에 빠져 자기가 잘나서 자신의 힘으로 성공했고 그 결과로 축복된 삶을 살게 되는 줄로 착각하고 하나님을 등한히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때 시련과 고난의 태풍의 불어오면 그 자만을 깨어지고 인간은 보 잘것 없는 존재요, 허약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요, 하나님께서 손을 떼시면 금방이라도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속에 살았던 사도 바울 선생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 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고 하려 하심이나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가후양더 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느 다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하심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 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 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7-10). 사도바울은 선생은 자신이 너무 계시를 많이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자고해질 때 싶어 하나님이 자신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하여 사단의 사자 곧 가시를 두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께 크게 축복을 받을수록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같은 육체의 가시를 주십니다. 그 가시가 우리를 찌를수록 우리는 겸허해지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떠나가게 해 달라고 세번이나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는데 하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 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선생은 하나님의 섭리를 깰다고 오히려 시련을 기뻐했습니다. 능욕과 핍박을 당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난당한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약한 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항상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부귀와 영 화를 누리고 성공과 출세의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부귀와 영화, 성공 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어느 미극 목사님의 말씀하신 것을 늘 기억합니다. 음악에 소질이 있는 한 젊은이가 어느 노교수의 마지막 제자로 피아노 수련을 받았습니다. 그 젊은이는 수련을 마치고 여러 공쿨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유능한 피아니 스트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느날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개인 연주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연 주회는 뉴욕에 있는 카네기 홀에서 열리게 되었었습니다. 입추의 여지없이 청중들이 모였습니다. 그 청년이 한곡한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열광을 하고 박수와 함성을 치고 심지어는 돈을 무대위로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그 청년 의 발 밑에는 돈이 수복히 쌓였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돈을 바라보지도 않고 청중으리 바라보지도 않고 항상 2 층에만 시선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2층 발코니에는 노교수가 앉아 청년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노교수느니 "그래 항상 위만 쳐다보아라. 돈도 바라보지 말 고 박수치고 열광하는 청중도 바라보지 말고 항상 우만 바라보아라 그러 면 네가장구할 것이라"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 청년의 얘기를 들려준 그 미국 목사님으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더라도 돈도 바라보지 말고 지위와 명예, 칭찬도 바라보지 말고 항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위와 명예, 권세와 축복이 장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자신과 하늘 아래 것을 바라보는 순간 자만에게 되고 교만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사자인 가 시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그 가시가 우리 옆구리를 찔러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3. 고난과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도구가 됩니다. 진짜와 가짜는 시련의 풀무를 지날 때 밝혀지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시 련과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 모래 위에 지으니 신앙인지 반석 위에 세운 신 앙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형제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족은 참 사랑하고 우애합니다. "그렇 게 말하지만 예를 들어어 물질적인 문제로 시련에 부딪쳐보면 형제우애의 진면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타산의 문제가 생길 때 본 모습으 리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꿀은 굉장히 단 맛을 냅니다. 그러나 꿀으리 불에 태우면 아주 고약한 냄 새가 납니다. 이처럼 평소에는 단맛을 내는 형제나 친구관계라도 시련의 불 에 태워 보면 단맛을 변함없이 내는지 썩은 맛을 내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련과 고난괴 인격의 실제를 밝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이 시련의 불에 태워질 때 참으로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 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좋을 때는 하나님 게 감사하고 열심히 믿는척 하다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하나님 말슴을 저버리고 불순종하고 배반하는 그런 신앙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드락,메삭,아벱느고의 위대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벧론에 포로로 잡혀간 왕족과 귀족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두라 평지에 세웠습니다. 방백과 수 령, 도백과 재판관 등은 신상의 낙성예식에 참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반 포하는 자가 왕의 명령이니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등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엎드려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라고 외 쳤습니다. 만약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겠다고 소리쳤습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들이 악기 소리를 듣자 금신상에 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드락, 메삭, 아벱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갈대아 사람들이 유다 사람인 그들을 참소했습니다.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메삭,아벱느고는 왕이 세워 바벧론 도로를 다 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단 3:12)라 고 느붓갓네살왕에게 고했습니다. 이에 왕은 분개했습니다. 왕 앞에 끌려온 그들에게 느부갓네살왕으니 "사 드락, 메삭, 아벱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 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가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 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단 3:14-15)고 물었습니다. 그때 사드락,메삭,아벱느고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 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 서"(단 3:16-18)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말을 들은 느부갓네살은 분이 가득하여 평일보다 풀무를 칠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령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가운데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세사람은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그때에 느부 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 모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사람이 아니었느냐"(단 3:24) 모사들이 그렇다고 답 하자 느북갓네살은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 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로 같도다"(단 3:25)라고 고백하고는 풀무 아구에 가까이 가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종 사득락,메삭,아벱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단 3:26)고 말했습니다. 사드락,메삭,아벱느고는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불탄 냄새도 없이 풀 무불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이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시련이 왔을 때 단호한 신앙을 지켰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풀무불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 시고 그들을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드락,메삭,아 벱느고 같이 우리도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금을 제련하고 은을 정련할 때 반드시 불 도가니를 통과합니다. 불순물이 위로 올라오면 은장색과 금장색은 그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녹은 은이나 금 에 은장색과 금장색의 얼굴이 비추일 때까지 합니다.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의 불이 다가오면 우리 인격 속에 불순물과 찌꺼기가 제거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 인격이 나 삶 속에 시련과 환난, 고난의 불은 우리를 정금처럼 단련시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4. 시련과 환난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그릇의 준비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는 것은 학생들을 귀찮게 하고 못살게 굴 려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테스트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 좋은 것을 주기 위 함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진학을 위해 반복된 시험을 치르면서 학생들 의 실력을 테스트합니다. 시험이 많을 수록 학생들은 시험준비를 위해 노력 하고 자기 실력을 쌓기 때문입니다. 땀과 노력의 댓가를 많이 지불한 학생 은 거기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축복의 결과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험과 환난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이 당시에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신앙을 인정하시 면서 우리는 시험과 환란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를 받기를 거부하면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만 할 뿐입니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같이 말슴하셨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주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 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 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5-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은총 속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구비시키시기 위해 광야을 지나게 하 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시험과 환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깨 어지고 변화받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릇으로 준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라는 시험과 환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젖과 꿀이 흐 르는 물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의 광야를 잘 지나야 천국의 축복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시련이 없는 크리스천은 결코 발전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향상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시련과 환난을 받아들이고 '더 놀라운 축복의 그릇으로 나를 준비시키시느니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생각하 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불평과 불만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신앙의 재수생이 됩니다. 우리는 결코 신앙의 재수생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시련이 고통과 연단을 잘 이기고 나면 우리는 주님 앞에 깨어지고 회개하고 더욱 순종하 고 감사하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여 생명을 넘치게 얻는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시험과 환난, 고난중에 낙심하지말고 하나님께 감사로 화답 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성숙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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