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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자녀는 건강합니까? (신6:4-9)

본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표현이 있는 데 자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자신의 형상을 온전하게 물려받은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녀는 한 가정의 희망이기도 하며,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때로는 우리 인생을 통해 이루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자녀로 인하여 성취하기를 원하고 우리가 심하게 아픔을 당했던 많은 것으로부터는, 자녀에게 만큼은 그 아픔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기 위해 뼈의 진액이 빠지 도록 열심히 일을 하기도 합니다. 자녀가 없는 사람의 손은 그렇게 거칠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이라 면, 마음 만큼이나 손 역시 거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자녀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귀중한 기업임에 틀림없습니다. 솔로몬은 시편 127편 3절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말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레아는 창세기 30장 20절에서 자녀 주심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게 후한 선물을 주셨다 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교육받은 자녀들은 별로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옷에 염색을 잘못하면, 그 염색한 물을 빼기가 힘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자녀교육을 통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교육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동기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교육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육은 개인의 성장의 발 달의 과정이요, 사회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수단입니다. 또한 교육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 성의 완전한 실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은 복음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 을 형성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죄인인 인간을 주님의 훈련과 훈계 안에서 회개시켜 구원받은 인간으로 인도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형성하게 하고 그리하여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반교육의 목 표는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지만 기독교교육의 목적은 하나님 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교육을 실시함에 있어 우리가 범하는 실수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항상 기독교에 관련 된 교육이나 일들을 이중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별개의 것으로 본다든지 가정교육과 교회교육,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데 많은 문제점을 잉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교육이나 사회교육이나, 사회교육 이나, 학교교육의 가장 기본은 가정교육이며 올바른 가정교육 없이는 어떤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깨닳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웁게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애지중지 하는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어떤 기관에 위탁함으로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주일학교나 학생회, 학 교나, 학원이나 말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가정교육 없이 인격적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 양육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얼마 안 지나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히 교회교육에 있어 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자녀의 교회생활을 보면, 그 자녀 의 부모님의 가정 속에서의 믿음의 행위를 볼 수 있으며, 타인에 대한 예절에 관한 면면을 볼 때에도 그 부모님의 사회생활에서 타인에 대한 행위가 그대로 그 자녀로 통하여 거짓 없 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녀는 학적인 면에서는 부모님을 능가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인격적인 면이나 신앙적인 면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녀는 눈으로 본 것을 행하며 들은 것을 말하기 때문 입니다. 상스런 말을 잘하는 부모님이 있는 자녀는 분명히 그 입이 거칠 것이며, 부부싸움 을 잘하는 특히 폭력적인 언사나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님의 자녀는 폭력을 휘두르게 될 것 이며, 폭력적인 언사를 퍼붓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교회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의 모 순을 지적하고 질타하기 전에 자녀교육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우리자신들을 돌아보아 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호렙산에서 백성을 모으라 말씀하시고, 백성들에게 나의 말을 듣게 해서 그들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 치게 하려 하노라 말씀하신 신명기4장10절의 뜻을 깊이 묵상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자녀를 가르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들을 자신의 새끼라는 소유의 개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사람으로 잘 양육하라고 위탁하셨다는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 다는 말입니다. "너희의 자녀는 알지도 보지도 못하였으나 너희가 오늘날 기억할 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징계와 그 위엄과 강한 손과 펴신 팔과 애굽에서의 일들이라" (신명기 11:1-2)
그러기에 자녀를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루게 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거나, 자신의 한을 푸는 도구로 자식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자 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가르치심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온통 관심이 자녀들이 잘먹고 잘사는 데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자녀의 생각이나 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생각을 자녀로 통 하여 이루려, 모든 것을 집중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 앞에 삶을 사는 신전의식을 가 진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기보다, 믿음은 좀 덜 해도, 교회생활이 좀 불성실해도, 타인과 관 계가 원만치 못해도, 잘먹고 잘살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꽉 차있는 듯 싶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유대인의 신앙교육법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라는 의미는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세상은 악하니 세상을 이기는 수단과 방법을 뱀처럼 지혜롭게 습득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라 말합니다. 성품을 다하라 말합니다. 힘을 다하라 말합니다. 그리하여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마음에 새긴 다음에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말씀하십니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행할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든지 말입니다. 이것은 항상, 늘 교육하라는 것 이며, 또한 어디를 가든지 이 말씀을 가지고 다니라는 말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세상의 목표를 따르라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자신의 뜻대로 양 육하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잉태와 산고의 고통을 통해 나의 몸을 통해 낳았으나, 자녀의 생명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희미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확 실하게 우리의 자녀가 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익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도 자녀를 내 뜻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분이 계시다면 생각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생각을 바 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녀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배 워야 만 합니다.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 것이며, 예배시간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고, 교회는 왜 다녀야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세상을 사는데 왜 중요하며, 믿음은 무엇이고, 진정한 회개는 무엇이 고, 구원은 무엇이며, 전도는 왜 하여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물어올 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성경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며 읽어 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경주한 후 자녀를 교육한다면 이 가르침을 받는 자녀들은 분명히 잘 되어질 것이며, 부모의 믿음이 계승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훌륭한 자녀 뒤에는 부모님의 헌신과 눈 물이 있다고들 말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애굽왕 핍박때 기도와 지혜로 아들을 구 출 했으며 유모 노릇을 하며 끝없는 신앙 교육을 시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는 중요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하였으며, 요한의 어머니 엘 리사벳은 평생을 기다려 얻은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독점해 누릴 행복이 아님을 알고 요한을 주님을 위해 내 놓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응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 어머니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생각과 행위, 생활태도 모든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매우 중 요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이방인이 유대인이 될려면 유대인 여자와 결혼해야 했습니다.
만약 유대인 남자와 이방인 여자가 결혼하였다면 그 자녀는 유대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토라, 오늘 읽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까닭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식물로 삼으며, 기도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내하며, 용서하고, 나눔의 삶을 살며, 겸손 함을 보여 주며, 실패하나 낙심하지 않고 꿋꿋이 서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디서 사느냐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 교육 한다면 자녀는 분명히 부모를 닮을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교육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현대의 교육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도 그 속도처럼 나쁘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무엇이 인간을 이처럼 점점 더 타락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교육이 단지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드는 도구로 전락 했기 때 문이며, 인간성을 상실한 교육을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일은 이런 교육 을 받은 우리들도 자신들도 모르게 인간성을 상실한 교육을 자녀에게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이 교육의 결과로 나타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제가 겨울 방학 기간을 이용해 미국에서 체 류하고 있을 때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1993년 1월 한인은 물론 전 미국을 경악케 했던 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7세 중국계 챈군이라는 학생이 동급생인 태이군을 살해한 사건 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 부유한 동네에 위치한 선니 힐 고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빈민지역에서는 많은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모든 뉴스 미디어가 앞 다투어 거의 한달 이상이나 집중적으로 보도 했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가 학교에서 우등생들이었다는 점입니다. 학교 평균성적이 90 점 이상이며 SAT (대학입학하기 위한 수능시험) 점수가 약1.400점이었습니다. 당시 하버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수능시험 평균점수는1.375 점이었습니다.
둘째로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가 부유층 학생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건에 관련된 학생들 의 부모들이 대부분 의사 및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세째로 나이 어린 고등학생의 신분을 가진 그들의 살인방법이 갱단의 살인전문가 보다도 잔 인했다는 것입니다.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엘리트 교육은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적부터 오늘의 본문 말씀을 가르침 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 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은 지금도 전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가장 범죄율이 낮다는 것입니다. 이 들은 자신이 범한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배웁니다. 자유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신실한 부모님으로부터 배워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견책을 두려워 합니다. 혹 마음이나 상하지 않을까. 가뜩이나 가정형 편이 어려워 열등의식에 빠져 있는데 그러나 징계를 아끼는 자식은 결코 올바르게 성장 할 수 없음을 우리는 많은 실례를 통하여 보아 왔으며,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어떻게 징계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 른 징계법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주의 깊게 묵상해 본 부모라면 그 해답을 발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잠언 23장 13절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 리라 그를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육하십시요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자신의 교육방법을 버리십시요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맹목적인 사랑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노동이 없으면 댓가가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십시요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먼저 타인에게 인사하는 법을 가르치십시요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나누어 주는 삶을 살게 연습을 시키십시요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자녀에게 설득 시키려 하지 마시고 언행을 통해 보여 주십시요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부부간에 사랑하십시요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마땅히 자녀에게 가루칠 것을 배우고 익히십시요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 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5:4)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부모이신 여러분 자녀가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끼시면 자녀의 손을 꼬옥 잡고 눈물로 기도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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