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영광 (신6:4-9)
본문
저 유명한 영국의 수상 처칠에게 한 청년이 가정의 출발점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 처칠은 서슴치 않고 대답하기를 “그야 한 청년이 한 소녀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부터이지! 이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바꿀 수 있는 논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가정은 창조 세계의 영광입니다. 최절정의 영광입니다. 그 기원이 그러하고, 그 내용이 그러하고, 그 목적과 결과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I. 가정의 영광은 그 신적 기원에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집이란 어떤 공간 속에 자리잡은 건물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조’하였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로 2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더 구체적으로 창세기 2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2:7)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남자의 시조인 아담이었습니다(2:21). 하나님은 그 사람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했습니다(2:18). 그래서 그를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로 만들었습니다(2:21-22).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그 여자를 보고 말하기를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고 하였습니다(2:23). 가장 깊고, 짙은 혈연 관계성을 나타낸 첫 번째 선언이 됩니다. 그 다음에 또 성경이 말하기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지로다(2:24)고 하므로 가정 성립의 신기원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정은 하나님 자신의 창조적 산물입니다. 가정 설립의 기원이 신적이란 말입니다. 결코 가정은 진화론적 산물이거나, 우연론적 산물이거나, 범신론적 산물이거나, 불가지론적 산물 일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만드신 만물 중에 흙을 재료로 하여 육신의 모양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이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 기원이 신적입니다. 영적입니다. 신비적이요, 기적이요, 이적이었습니다. 하나님 형상의 반영이 가정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형상의 반영입니다.
Ⅱ. 가정의 영광은 그 내용적인 사명에 있습니다. 그 영광된 사명이 무엇일까
1. 경건한 자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2장 15절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한 자손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은 하나님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고 양육하는 축복의 산실이란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이야말로 ‘경건의 고장이요’, ‘하나님 섬기는 거룩한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 창조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 자손들을 통하여 반영되는 곳입니다.
2. 문화적 사명이었습니다. 곧 전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사명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 하반절에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하였습니다.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축복을 허락하였습니다(창2:19). 처음 가정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 곧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영역과 그 자원들을 관리하고, 다스리고, 사용하는 문화적 축복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우 저들은 피조 세계의 선지자적 기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내용과 목적과 계획을 찾아내고 개발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또한 왕적인 기능이었습니다. 그 뜻을 깨달은 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며 관리하는데 100%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적 기능이었습니다. 그 결과의 영광을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사명이었습니다. 바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 보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시19:1-6). 다시 말하면 자연 계시에 대한 창조주(創造主)의 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문화적 사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처음 가정이 받은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경건한 자손의 고장이요 전 피조세계를 관장하는 문화적 청지기의 센터입니다.
Ⅲ. 가정의 영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목적에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전 내용을 종합한 우리 장로교 헌법 중 대(大), 소(小)요리 문답 제 일문에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답은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2 그를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롬11:36, 14:8, 고전10:31, 시73:24-26, 요17:22, 2
4). 하나님이 창조한 가정은 그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 자신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게 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은 만민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길 내용인 축복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출20:3). 너를 위하여 하늘이나, 땅에나, 땅아래 물 속에라도 아무 형상의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그것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출20:4-5).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더럽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출20:7).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구별하고 온 가족과 종들까지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출20:7-10). 여기에 ‘이스라엘 부모의 영예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크리스찬 가정의 영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마땅히 가정을 대표하는 제사장으로써 그 가족의 종교 생활의 책임자요, 모든 종교 의식의 집행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온 가족의 영적, 육적, 건강을 위하여 복을 빌고, 그 집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후손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는 경건한 자손을 얻는 것이
첫째 소원이 되었습니다. 자녀의 어머니가 되는 길만이 이스라엘 여자의 영광이요, 영예요, 행복이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로 9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를 전인(全人)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전력을 다하여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1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성해지는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잊게 되지 않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신6:10-13).
2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세상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신6:14-15).
3 인간의 타락한 본성인 하나님을 의심하는 연약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신6: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가장 원초론적 ‘가정의 영광’을 생각하였습니다. 가정은 하나님 자신의 창조 영광의 절정입니다. 그 이유는 가정의 기원이 신적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정이 받은 경건한 자손의 보존과, 문화적 사명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정 존재의 목적인 하나님 영광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변경할 수 없는 창조 본연의 축복 질서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영광이 과연 그러한가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지음 받은 재 창조된 가정인가 나와 나의 집이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고 있는가(고후5:17). 누가 네 모친이며, 내 형제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그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라고 선언한 예수의 새 영통 가족이 되었는가(마12:49-50). 그 가정은 참으로 영광된 가정입니다. 과연 오늘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경건한 자손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양부모가 다 믿고 모태로부터 언약의 자손이 되어, 유아 세례를 받고, 경건한 영의 자손으로 자라나고 있는가 그 가정은 영광된 가정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영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부권이 상실되지는 않았는가 과연 오늘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막중한 문화적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자원을 엿새 동안에 열심히 노동하여, 다스리며 관리하고 있는가 그것에서 취한 소득의 십일조와 감사 연보와 여러류의 전도와 선교비로 활용하고 있는가 존재하는 세계와 그 가운데 역사 하는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음 선교의 무대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긴 선교 자원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여건들을 모조리 동원하여 선교 수단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이러한 문화 선용을 위한 전략 기지로서 사명을 다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세상 일반 교육을 받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존재하는 그 본질적 목적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에 두고 있는가 우리 가정이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부모인가 남편인가 아내인가 자식인가 아니면 사업인가 명예인가 혈통인가 문벌인가 이런 류의 내용들은 모두 다 이방인들의 것들이 아닌가 의식주의 목적이 주를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롬14:6). 낮의 사용, 밤의 사용, 곧 시간의 사용도 주를 위하라고 하였습니다(롬14:5).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도,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고 하였습니다(롬14:7).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롬14:8).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니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분이란 말은 전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섬김이 인생의 전부요, 가정의 전부요, 존재의 전부라는 말입니다. 현대인은 가정의 본래를 잃어버려 가고 있습니다. 아니 가정 본래로부터 멀리 멀리 떠나가고 있습니다. 가정의 영광을 놓쳐 버리고 있습니다. 잃어버려져 가는 가정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영광된 가정의 본래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가정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의 본래가 경건한 자손을 얻어 양육하고, 주어진 문화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세토록 그를 기뻐함이 그 목적을 두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 기원이 신적입니다. 영적입니다. 신비적이요, 기적이요, 이적이었습니다. 하나님 형상의 반영이 가정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형상의 반영입니다.
Ⅱ. 가정의 영광은 그 내용적인 사명에 있습니다. 그 영광된 사명이 무엇일까
1. 경건한 자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2장 15절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한 자손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은 하나님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고 양육하는 축복의 산실이란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이야말로 ‘경건의 고장이요’, ‘하나님 섬기는 거룩한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 창조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 자손들을 통하여 반영되는 곳입니다.
2. 문화적 사명이었습니다. 곧 전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사명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 하반절에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하였습니다.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축복을 허락하였습니다(창2:19). 처음 가정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 곧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영역과 그 자원들을 관리하고, 다스리고, 사용하는 문화적 축복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우 저들은 피조 세계의 선지자적 기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내용과 목적과 계획을 찾아내고 개발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또한 왕적인 기능이었습니다. 그 뜻을 깨달은 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며 관리하는데 100%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적 기능이었습니다. 그 결과의 영광을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사명이었습니다. 바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 보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시19:1-6). 다시 말하면 자연 계시에 대한 창조주(創造主)의 뜻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문화적 사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처음 가정이 받은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경건한 자손의 고장이요 전 피조세계를 관장하는 문화적 청지기의 센터입니다.
Ⅲ. 가정의 영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목적에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전 내용을 종합한 우리 장로교 헌법 중 대(大), 소(小)요리 문답 제 일문에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답은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2 그를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롬11:36, 14:8, 고전10:31, 시73:24-26, 요17:22, 2
4). 하나님이 창조한 가정은 그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 자신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게 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은 만민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길 내용인 축복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출20:3). 너를 위하여 하늘이나, 땅에나, 땅아래 물 속에라도 아무 형상의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그것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출20:4-5).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더럽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출20:7).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구별하고 온 가족과 종들까지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출20:7-10). 여기에 ‘이스라엘 부모의 영예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크리스찬 가정의 영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마땅히 가정을 대표하는 제사장으로써 그 가족의 종교 생활의 책임자요, 모든 종교 의식의 집행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온 가족의 영적, 육적, 건강을 위하여 복을 빌고, 그 집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후손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는 경건한 자손을 얻는 것이
첫째 소원이 되었습니다. 자녀의 어머니가 되는 길만이 이스라엘 여자의 영광이요, 영예요, 행복이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로 9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를 전인(全人)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전력을 다하여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1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성해지는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잊게 되지 않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신6:10-13).
2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세상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신6:14-15).
3 인간의 타락한 본성인 하나님을 의심하는 연약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신6: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가장 원초론적 ‘가정의 영광’을 생각하였습니다. 가정은 하나님 자신의 창조 영광의 절정입니다. 그 이유는 가정의 기원이 신적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정이 받은 경건한 자손의 보존과, 문화적 사명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정 존재의 목적인 하나님 영광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변경할 수 없는 창조 본연의 축복 질서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영광이 과연 그러한가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지음 받은 재 창조된 가정인가 나와 나의 집이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고 있는가(고후5:17). 누가 네 모친이며, 내 형제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그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라고 선언한 예수의 새 영통 가족이 되었는가(마12:49-50). 그 가정은 참으로 영광된 가정입니다. 과연 오늘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경건한 자손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양부모가 다 믿고 모태로부터 언약의 자손이 되어, 유아 세례를 받고, 경건한 영의 자손으로 자라나고 있는가 그 가정은 영광된 가정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영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부권이 상실되지는 않았는가 과연 오늘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막중한 문화적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자원을 엿새 동안에 열심히 노동하여, 다스리며 관리하고 있는가 그것에서 취한 소득의 십일조와 감사 연보와 여러류의 전도와 선교비로 활용하고 있는가 존재하는 세계와 그 가운데 역사 하는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음 선교의 무대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긴 선교 자원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여건들을 모조리 동원하여 선교 수단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이러한 문화 선용을 위한 전략 기지로서 사명을 다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세상 일반 교육을 받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존재하는 그 본질적 목적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에 두고 있는가 우리 가정이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부모인가 남편인가 아내인가 자식인가 아니면 사업인가 명예인가 혈통인가 문벌인가 이런 류의 내용들은 모두 다 이방인들의 것들이 아닌가 의식주의 목적이 주를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롬14:6). 낮의 사용, 밤의 사용, 곧 시간의 사용도 주를 위하라고 하였습니다(롬14:5).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도,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고 하였습니다(롬14:7).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롬14:8).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니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분이란 말은 전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섬김이 인생의 전부요, 가정의 전부요, 존재의 전부라는 말입니다. 현대인은 가정의 본래를 잃어버려 가고 있습니다. 아니 가정 본래로부터 멀리 멀리 떠나가고 있습니다. 가정의 영광을 놓쳐 버리고 있습니다. 잃어버려져 가는 가정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영광된 가정의 본래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가정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의 본래가 경건한 자손을 얻어 양육하고, 주어진 문화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세토록 그를 기뻐함이 그 목적을 두는 일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