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소망을 가진 자의 선택 (신30:15-20,누가복음4:1-13)

본문

선택의 중요성 우리 인생은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순간마 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의 삶 에서 선택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카우맨(Cowman)이란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동서로 여행할 수 없으며, 같은 순간에 북극 지역과 열 대 지역 모두에 알맞은 옷을 입을 수 없다. 우리는 선택이라는 결단을 내려 야 하며, 이것이든 저것이든 하나를 잊어야 한다. 우리는 동시에 신사와 천 박한 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순수한 동시에 순수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수평으로 움직임과 동시에 수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세상적인 것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동시에 주님과 교제하며 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세상적인 것과 주님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두 마리의 토끼 를 좇으려고 하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꼴이 된다." 하다 못해 텔레비전을 보아도 어느 채널을 볼 것인지 선택하여야 합니다. 요즈음은 신문도 어떤 신문을 보아야 할지를 선택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지만, 어쨌든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요즈음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우리가 선택해야 할 사항들은 점점 더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선택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 주어 우리는 이 때문에 병이 나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중요한 선택의 책임이 메워지게 마련입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한 회사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고, 한 나라 의 장래가 결정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지혜가 필요하며, 신중하게 생각하여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대통령 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지난 역사 에 있어서 대통령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므로 우리가 많은 고통을 당하였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지연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여 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은 나의 운명을 결정 지을 뿐 아니라 그 것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의 자녀들 즉 후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선 택은 대단히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선택이 바로 신앙의 문제 와 관련될 때 그것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영생을 얻느냐 못 얻느냐가 결정되기 때문 입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생애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느냐 못하 느냐가 바로 이 땅에서의 나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신앙문제는 신중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가볍게 지나치거나 무시해 버릴 때 그것은 그에게 있어 큰 손실이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본 것처럼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의 경우가 좋은 예 입니다. 롯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그와 그의 후손이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 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떨어져 나갔던 것입니다. 이삭의 쌍둥 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경우도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이들의 길이 갈라지 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장자권과 팥죽 한 그릇 사이에서 팥죽을 택하므로 그의 장자권을 포기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지 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들어가다가 가데스 바네아 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었는데, 그 중 열 명은 그 땅의 도성들은 든든하 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기골이 장대하여 도저히 들어가 점령할 수 없다고 보고를 하자 많은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모세를 원망하고 다시 이 집트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쳤던 것입니다. 그런 결과로 그들은 죽음을 당 하였고, 그리고 그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헤매어 다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열 명의 보고가 아닌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따라 그 땅에 들 어가기로 결정을 하였다면, 이스라엘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의 선택 오늘 읽어 드린 신명기 30장 말씀에 보면 "보아라, 내가 오늘 생명과 번 영, 죽음과 파멸을 너희 앞에 내놓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생명과 죽음, 번영과 파멸 사이에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요청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따라 살면 생명과 번영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죽음과 파멸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누구나 생명과 번영을 선택하지 죽음과 파멸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의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잘 지키지 않아 죽음과 파멸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왜 생명과 번영을 선택하지 않고 결국은 죽음과 파멸을 맛볼 우상숭배를 선택하였을까요 선택에는 언제나 어떤 것이 더 좋으냐 하는 가치 판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거룩한 삶을 살기보다는 우 상숭배에 끌려 그 문화를 따라 사는 길을 택하였던 것은 그것이 더 좋아 보 였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이 당장 눈앞에서 구별되는 것 이라면 누구나 생명을 선택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당장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라야 판가름 나는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당장 보기에는 죽음과 파멸로 가는 길이 더 좋아 보이고 그럴듯 하게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길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독소는 감추어져 있고 겉으로 나타난 것은 오히려 거기에 기쁨과 생명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로 그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불 나방이 불을 볼 때는 아름다워 보이고 거기에 자기가 가야할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불로 날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날아든 순간 불나방은 죽음 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처럼 느끼며 그들의 삶을 억누르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길을 선택하기를 주저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모든 욕망을 버릴 것을 요청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른 그 말씀을 따라 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좁은 길로 보이고, 땅의 욕망을 따라 사는 길은 넓은 길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을 선택하여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어리석음을 아시고 분명하게 좁은 길 쪽에 생 명과 번영이 있고, 넓은 길 쪽에는 죽음과 파멸이 있다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언자를 통하여 알려주시며, 잘못 선택하여 가는 그 백성들에게 돌 이켜 새롭게 선택하라고 권면 하였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약속은 실현성이 없어 보이고, 또 멀리 보 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른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 기에 좋고, 당장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들에 사람들은 매료당하고 거기에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경고와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인간들에게 '생명과 번 영'을 선택하게 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진리와 생명이 무엇이며 빛과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직접 알려 주시고 이를 보증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 였던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가 시적이고 분명한 것이며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삶과 교훈을 통하여서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지를 친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누가복음 기사는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이야기입니다. 마귀의 시험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일반적으로 우리 인간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뜻하는 것이었 습니다. 결국 마귀의 시험은 예수님의 선택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세 가 지 시험이었지만, 결국은 한 가지라고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하 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떠난 세계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기 때문에 시장하셨는 데, 찾아온 마귀는 예수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것은 예수의 배고픔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먹는 문제가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메시야가 할 일 이 아니냐 라는 시험이었습니다. 먹는 문제는 모든 문제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마귀의 분명한 주장이 거기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가장 시급 한 것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로 그 동안 모든 것에 우선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누구도 여기에 의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경제위기 이후 경제적 타격으로 인하여 실직자가 2백만을 헤아리는 우리 사회에서 정부는 그 모든 일에 앞서 경제 를 다시 회복시키고 실직자들에게 다시 직장을 만들어 주는 일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는 마귀의 주장 을 긍정하는 것이며, 이론의 여지없이 그 주장을 받아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주장을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 3절의 인용인데, 거기에 보면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 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떡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떡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식량 문제가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근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먹을 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그 삶이 기초되지 않을 때는 결국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귀의 먹는 문제가 모든 것의 우선적으로 해결되 어야 할 과제라고 주장하는데 대하여 반대하시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경제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경제 문제가 생긴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속으로 썩었기 때문입니다. 부정과 부패의 고리가 이어져 왔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 경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하나님의 진리 위에 굳게 세워졌다면 경제 문제 때문에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 경제 문제를 우리 사회의 제일의 과제로 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보다 교육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세계와 그 역사를 볼 줄 아는 지혜를 가르치려 노력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과학 위주 나 실리적인 삶의 지식을 위주로 꾸며져 있어서 그 교육을 통하여 양성된 인간이란 기술적 인간일 뿐이지 도덕적이고 역사를 아는 전인적(全人的) 인간은 아닌 것입니다. 교육을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말하면서도 우리의 교육은 백년은커녕 당장 눈앞의 실리를 위하여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을 비롯한 정 치 경제사회 문화 종교까지 포함하여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지 않고, 떡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혼돈과 고통을 겪 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삼았던 나라들이 실패하였지만, 그 실패는 한 나라에 국한되었습니다. 반면에 자본주의의 실패는 한 나라에 국 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이며, 지구적인 파멸로 연결될 것이라는 데 문제 가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제 3의 길"을 제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 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적당히 얼버무려 보자는 시도라면 별 효과가 없 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지구가 살 수 있는 제 3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시 장경제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를 벗어나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삶을 찾는 것 이며,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정치 철학도 성서 를 기초로 다시 쓰고, 경제학도 성서의 경제학으로 돌아가며, 과학도 성서 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바탕으로 새롭게 연구되게 하여야 할 것이며, 문 화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문화로 바뀌어지도록 하는 길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도시인들이 거꾸로 농촌으로 들어가며, 휘황 찬란한 불들을 끄고 작은 등불 하나 켜놓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옛날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 교회학교에서 벽지 어린이들을 서울로 초청하여 서울 구경시켜 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만, 거꾸로 도시 어린이들이 벽지에 가서 그 삶을 체 험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교육이 될 것입니다. 순진한 시골 어 린이들을 도시 구경 시켜주므로 그들의 삶을 들뜨게 만들어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시골을 떠나 도시로 들어오게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대강절둘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소망을 가진 우리 자신들이 그 소망 때문에 우리의 삶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떡을 위한 삶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삶인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에 아부하면서 이 땅에서 재물과 명예를 얻어서 그럴듯한 삶 을 누리기 위하여 내 생애를 투자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헌신하고 있는 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길이 생명과 번영을 향한 길인지, 아니면 죽음과 파멸을 향하고 있는 길인지를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넓은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비록 고달프기는 하지만 좁은 길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 으라고.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 뛰어내리라고. 그리고 천하만국을 보여 주며 마귀에게 절하라고. 이런 시험을 극복하기 위하여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처럼 40일 금식 기도를 하지는 못해도 끊임없이 기도하 므로 지혜를 얻으며, 명철함을 받아서 우리가 올바로 선택하여야 할 하나님 의 나라를 분명하게 보고 그 길을 향하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이 선택을 잘못하여 마귀의 시험에 빠졌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신 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으로 무장하여 이 마귀의 주장과 이념을 거 부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받는 우리의 생활이 되어 야 하겠습니다. 이제 끊임없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와 지시를 들으면서 그 말씀과 지시를 따라 올바른 선택을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9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