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방법 (신32:9-12)

본문

새 봄을 알리는 3월의 첫 주일입니다. 봄이 되면 삼라만상이 새로운 기지개를 켭니다. 모든 식물들에서 새로운 순이 움돋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때 사람들도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지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합니다. 이러한 3월을 맞이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생활과 꿈과 출발을 더욱 축복해 주셔서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새로운 용기와, 희망과 힘찬 삶이 이루어질 수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신명기서는 모세가 말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 세 편의 설교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영도하에 출애굽한 뒤 40년 동안 어려운 광야생활을 보냈습니다. 그후 가나안 땅이 보이는 느보 산 가까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요단 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이미 120세였습니다.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왔습니다. 모세는 임종을 앞두고 자기 백성들을 권면하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세 편의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문이 신명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편의 설교 중에 마지막 설교의 결론 부분이 오늘의 본문 말씀에 나타납니다. 모세는 본문 말씀에서 “지금까지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봄을 출발하시는 여러분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새 봄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가를 오늘 말씀에서 함께 찾아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며 함께하십니다. “(신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얼굴이나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 중에 밖으로 노출된 지체로서 가장 알뜰하게 보호를 받고 있는 지체가 있다면 바로 눈동자입니다. 눈동자는 두 겹, 세 겹의 덮개로 가리워져 있고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눈동자는 알뜰하게 보호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돌보심이 마치 눈동자처럼 보호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자기 백성으로 삼고 보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 오늘날의 우리 모든 성도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보호하고 돌보고 계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이 감싸고 품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 “(눅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암탉이 자기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자녀로 품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돌보듯이 우리를 돌보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인 “닥터 지바고”를 보면 마지막 장면이 퍽 인상깊습니다. 장군과 타냐와의 대화입니다. 장군이 타냐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어” 하니까 타냐가 말하기 싫은 태도를 지으면서 언짢은 듯이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혁명중에 길거리는 불바다가 되어 있고, 군중들의 요란한 소리로 복잡한 상황에서 아버지와 헤어졌어요.”
그런데 장군은 그로써 만족하지 않고 또 타냐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아버지와 어떻게 헤어졌어 솔직히 한번 말해 보렴.” 그러자 타냐가 대답하기를 “사실 아버지가 내 손을 놓고 빨리 달려가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놓치고 말았어요.” 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딸의 손을 붙잡고 도망치다가 딸의 손을 놓고 혼자 달려가는 바람에 자기가 뒤떨어져서 결국 헤어졌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군이 타냐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사실을 말해 주마, 도망친 로마노프는 사실 너의 친아버지가 아니란다. 너의 아버지는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라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복잡해도 결코 네 손을 놓치지 아니했을 거야, 비록 위험할지라도 너를 안고서라도 뛰어갔을 거야.”라고 말을 합니다.
그때서야 타냐는 로마노프가 자기 아버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는 것을 느낍니다. 진짜 아버지라면 어린아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혼자 내동댕이치고 도망칠 것이 아니라 안고라도 뛰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혼자 도망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짜 아버지보다 더 진한 사랑을 가진 진짜 아버지이십니다. 육의 아버지보다도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나”라는 생명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분입니다. 나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나의 삶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정말 영혼의 아버지, 내 인생 본질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남긴 말처럼 들려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사랑이 담긴 말씀입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신 다음에는 한시도 빠뜨리지 않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는 출애굽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홍해가 가로막힐 때는 홍해를 가로질러 주셨습니다. 굶주릴 때는 만나를 주셨습니다. 목말라할 때는 샘물을 샘솟게 해주시고, 적이 나타날 때는 승리케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돌보아 주시는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다음 자기 자녀로 삼으신 다음에는 친아버지가 되어서 우리의 모든 삶을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신가에 대해서 요한일서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독생자, 자기 외아들을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게까지 하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나의 삶을 보호하시기를 원하는 또 보호할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 새끼같이 연단시키며 함께하십니다. “(신32: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보호하는 것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훈련시키고 연단시키면서 사랑하고 계십니다. 마치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돌보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독수리가 둥지를 지을 때 높은 산 낭떠러지 바위 위에다가 짓는다고 합니다. 절벽을 이루는 바위 제일 정상 부분에다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부화시킵니다. 집을 지을 때는 가시나무를 꺾어다가 둥지를 만들고 그 위에 동물들의 가죽을 올리고, 또 그 위에다 새들의 깃털을 주워다가 올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 가슴에 있는 솜털을 뽑아 부드럽게 깔아 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알을 낳고 그 알을 부화해서 새끼를 만듭니다. 새끼가 자라는 동안에는 어미 독수리가 먹이를 날리다 일일이 먹여 줍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라면 먹는 양을 줄입니다. 그 다음에는 한 2-3일 동안을 완전히 굶겨 버립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먹을 것이 없고 굶주려서 울며 야단입니다. 밤새도록 울어댑니다. 그래도 모른 채 놔둡니다. 그 다음에는 둥지에 깔아 놓은 양털을 벗겨버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들이 가시나무로 지어진 둥지 위에서 지낼 수 없으니까 밖으로 나올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어미 독수리는 날개로써 새끼들을 한 마리씩 내려친다고 합니다. 새끼들 중에서 날개에 힘이 있는 새끼들은 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새끼들은 땅바닥을 향하여 곤두박질합니다. 땅바닥을 향하여 곤두박질하면 독수리가 쏜살같이 날아가서 자기 날개로 곤두박질하는 새끼 독수리를 껴안고 다시 바위 위에 올라와서 또다시 바위 위에서 내려칩니다. 이렇게 몇 번 연습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는 데 힘을 얻은 새끼 독수리가 창공을 향하여 훨훨 날아가면 그때서야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날려 보내고난 뒤에 또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서 영영 헤어지고 맙니다.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가 미워서 발로 차고 절벽에서 떨어지도록 만들겠습니까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이 새끼들이 자기를 닮아서 독수리처럼 창공을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연단을 시킵니다. 훈련을 시킵니다. 바로 그 내용이 11절의 말씀입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연단시키고 훈련시키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더욱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더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더 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연단시키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통을 주시고, 때로는 역경을 주시고, 때로는 시험을 주시고, 때로는 실패를 주십니다. 이렇게 연단을 시키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받은 사람,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고 흔들어댈 때 낙심하거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신세타령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으로 이겨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킬 때에 믿음을 저버리면 결국 우리들 자신은 마귀의 수중에 들어가고 맙니다.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사실 사람들은 역경을 통해서 완전해집니다. 완성되어 갑니다. 쇠붙이가 용광로에 들어가서 녹아져야만이, 연단을 받아야만이 새로운 쟁기로 만드어질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17세 되었을 때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꿈이지 않습니까 이런 꿈을 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살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단숨에 한 나라의 총리가 되거나 왕이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한 20년 동안 고통을 주셨습니다. 17세 때에 노예로 팔려가야 했고, 5년 동안 노예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13년 동안 감옥에 갇혀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이삼십 대의 잚은 시기 20여 년을 이런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고난 뒤에서야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서 자기 민족과 세계 만민을 구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더 큰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연단시킬 때가 있습니다. 이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때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때 주저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일수록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손잡고 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면서 함께하십니다. “(신32: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몸으로 체험했던 다윗은 시편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이 참으로 오묘하십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식을 인도할 때 손을 잡고 끌고 갑니다. 하나님은 육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을 키워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그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을 보면 참 오묘하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잠재능력을 우리 스스로 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활용하게 함으로써 장래 생활을 인도해 주십니다. 다윗은 작은 돌팔매 하나로 골리앗 대장을 넘어뜨렸습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속에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 점점 더 큰 일을 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6년도에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을 개최하였습니다. 그때 파키스탄 선수 중에 아봇이라는 역도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 역도 선수가 금메달을 땄습니다. 아봇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흥미로운 것은 그가 아시안게임이 있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건설 공사장에서 노동했던 잡역부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용 근로자로 일하던 그가 하루는 갑자기 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에 뛰어가 보니 큰 철재 빔이 넘어져서 길가던 행인을 쓰러뜨려 행인이 압사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 손으로는 빔을 움직일 수 없어서 큰 중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중기를 끌고 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급한 아봇은 자기 힘으로 빔을 밀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빔이 움직였습니다. 결국 빔 밑에 깔려 있던 행인이 부상은 당했지만 생명은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봇은 놀랐습니다. 자기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자기 몸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자기만 놀란 것이 아니라 주변에 같이 일하던 다른 사람들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역도를 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역도 기술을 두달 동안 익혀서 출전을 했는데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사람은 때로 자기가 평상시에 생각하지 못한 그런 놀라운 힘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자기 형상으로 만드시고, 천하 만물보다 더 소중한 한 생명으로 만드셔서 이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는 인생을 이 땅에 보내셔서 살게 하실 때 아무렇게나 적당히 살다가 죽도록 하기 위해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적어도 나를 통해서 무엇인가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섭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서 자신의 노력을 기울일 때 하나님께서 협력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 우리가 숨겨 놓았던 것, 그런 잠재력을 발휘하게 해서 자기 사람을 개척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인물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심을 통해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지극히 받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거역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면 채찍을 맞게 되고, 그러다가 낭패를 당하게 되고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때는 또다시 간사하게 하나님께 찾아와서 엎드립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나 배은 망덕하고 염치불구한 행위입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한때 어려운 일을 겪어서 하나님을 찾아 와서 “도와 주십시오”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은 절대 외면하시지 않고 반드시 그 기도에 대해 응답해 주시고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있을 때 또는 요단 강 앞에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얼마나 불평 불만했습니까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모세를 앞세워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 기도를 의롭게 보셔서 들어 주셨습니다. 홍해를 갈라 주시고 요단 강을 갈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마실 물이 없어서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다가도 또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모세를 앞세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사람 같으면, 감정을 가진 사람 같으면 참 얼마나 얄밉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비록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지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이고 기도할 때는 꼭 그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우리 형편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뭐 잘난 것이 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 돌아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삶 속에 머무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연약한 나의 삶을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는 자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신앙생활은 곧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이 말씀에서 자기 십자가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골고다 산성에 올라가시면서 등에 지고 갔던 그 십자가를 우리에게 강요하시는 말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자기 십자가라는 것은 나만이 질 수밖에 없는 십자가를 말합니다. 공직에 있는 분이든, 사업하시는 분이든, 가정생활 하시는 분이든 내가 지금 맡고 있는 일, 내가 처한 환경, 그것을 나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전력 투구하는 생활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훌륭히 수행하는 사명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을 인도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십자가의 사명을 가지고 복음 전파에 전력을 다할 때에 하나님꼐서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바울의 앞길을 하나하나 인도해 주시고 하나하나 돌보아 주셨습니다. 꿀벌 한 마리가 일생 동안 약 50g의 벌꿀을 만들기 위해서 찾아 다니는 꽃송이가 약 6만 송이이고 꽃 한 송이에서 60번 정도 주둥이를 대고 꿀을 빨아 당긴다고 합니다. 횟수를 계산해 보면 일생동안 360만 번이나 주둥이를 꽃에다 대고 빪으로써 50g 정도의 꿀을 모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달다고 하며 잘 먹습니다.
그런데 꿀벌들은 이렇게 일을 한 다음에, 한 50g 모아 놓고난 뒤에 지쳐서 다 쓰러져 죽고 맙니다. 꿀 50g을 모으기 위해서 전력 투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꿀벌 정신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어떤 처지와 어떤 형편, 어떤 환경에 있을지라도 거기에 전력 투구할 수 있는 삶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입니다. 이런 사람의 앞길을 주께서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연단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섭리가 여러분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9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