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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5:8)

본문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마5:8)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봉독해드리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팔복 중에 6번째 복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게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요 저주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의 복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보는 복이었습니다.


물론 먹을 것이 풍성했고 부족함이 없는 것도 복이었지만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하나님이 거니시는 동산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는 곳이 에덴동산이었고 그것이 에덴동산의 최고의 복이었습니다.


이러한 에덴동산의 축복을 인간이 범죄 함으로 잃어버리게 됩니다.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축복을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천국에 임하게 되는데, 천국이 바로 에덴동산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천국의 복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뵙는 복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요한은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하면서 그곳이 다름 아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성도들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을 날마다 보는 곳이 천국이요 가장 축복된 삶이라는 말입니다.


 


7집사 중에 하나인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기를 죽이는 군중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어려운 아픔과 고통을 잘 극복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모든 아픔과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비단 천국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의 본체를 뵈었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주님께서 변화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 장면을 통하여 육체로 오신 주님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이신 주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는 그 감격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감격을 평생 간직하였고 어렵고 힘들 때마다 주님을 보았던 그 장면을 통하여 어려움을 이기며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에 보면 ‘우리 주 예수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강림하실 것을 확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16)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인 줄 믿습니다.


 


반대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이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이 그를 떠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물었으나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라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여호와께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사울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왕복을 벗어버리고 평민으로 변장하여 자기가 쫓아냈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일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뵙지 못하는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의 나라는 크게 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뵙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와 잘못된 관계를 갖고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을 들은 후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절)


이렇게 간구하는 것은 범죄 한 마음에 주님이 보이지 않고 성령님이 보이지 않고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져버림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축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진정 복 있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을 뵈옵고, 우리의 삶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뵈옵고, 예배시간에 임재하시는 주님을 뵙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뵙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힘입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예배시간에도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을 뵈옵는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하나님을 뵙기 위해서는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깨끗하게 산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 식사를 하기 전 손을 열심히 씻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깨끗하다고 생각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떡을 먹기 전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을 깨끗하게 하는 것보다 속을 깨끗하게 해야 하고, 외모를 청결하게 하는 것보다 마음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본문에서 사용된 청결하다는 뜻의 헬라어 원어는 “카다로스”입니다.


이 말은 보통 키질하고 채로 쳐서 모든 겨를 깨끗이 제거해 버린 곡식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또 불평하고 비겁하며 기꺼이 따르지 않고 무능력한 군인들을 빼버린 정예의 군대를 표현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의 근본적인 의미는 비 혼합, 비 화합, 비 합금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만을 섬겨야 그것이 청결입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함께 섬기면 그것은 청결이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청결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청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말은 깨끗한 마음을 말하기도 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나누어짐이 없는 진실 된 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청결하고 깨끗합니까?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 일에 여러분 얼마나 힘쓰고 애쓰고 있습니까?


제가 생각할 때 오늘 현대인들은 이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온갖 악한 말을 쏟아내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는 게을리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 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악하고 더러운 모습으로 빠져들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여러분이 복이 있는 자의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뵙고 만나는 삶으로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사실 쉬운 말은 아닌 줄로 압니다.


우리가 얼마나 깨끗해야, 얼마나 청결해야 온전히 깨끗하신 주님을 뵈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이 말씀으로 설교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이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뵈옵는 축복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이 청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 주님의 보혈로 마음이 청결해집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주님께서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 외에도 우리 마음에 얼마나 더러운 것이 많이 있습니까?


겉으로 볼 때는 그럴듯한 사람 같아 보여도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보면 강바닥에 가라앉아있는 쓰레기보다 더 많은 더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마음을 어떻게 청결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절대 우리들의 노력과 애씀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중 하나인 맥베스에 보면, 맥베스장군이 섬기던 왕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려고 합니다.


그 왕을 죽이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계속해서 자신의 손을 씻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여러분, 이렇게 큰 죄를 짓고 나서 비누로 자신의 손을 씻는다고, 몸을 씻는다고 마음의 죄가 사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보혈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경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 피를 흘려야 사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심으로 인간은 그 피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흘린 피가 아니라 주님께서 대신 흘리신 피를 통하여 우리의 죄가 사함 받고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히9:14)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아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통하여 모든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때 우리는 마음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기도로 청결해집니다.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깨끗하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계속해서 죄를 짓고 불법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 죄를 씻기 위하여 우리는 계속적으로 성령님을 통하여 마음이 깨끗해지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보혈로 깨끗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 스스로 애쓰고 노력하는 수고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고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죄를 씻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온 몸이 이미 깨끗하여 졌고 깨끗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러워진 발을 씻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깨끗하고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될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마음이 청결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보고 듣는 것이 많아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이런 와중에 마귀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미혹하고 또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되면 생각이 정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서 마음이 단순하게 갈피를 잡게 됩니다.


이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우리 마음을 굳건하게 붙잡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 지게 됩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게 될 때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범죄하고 나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고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 죄를 씻음 받기 위한 회개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다윗은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러한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죄에 대하여 회개에 대하여 정한 마음에 대하여 다윗과 같은 간절한 마음이 솔직히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고 주님을 뵈옵는 축복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정한 마음을 창조 하소서, 청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전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은혜를 받아서 천국의 삶을 살아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뵙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지옥의 삶을 살아가고 패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성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을 뵙느냐? 뵙지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뵙기 위하여 여러분,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일에,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얼마나 힘쓰고 애쓰고 있습니까?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의 간절한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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