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혼인하여 살도록 해봐요 (왕상3:1)
본문
예수님과 혼인하여 살도록 해봐요/열왕기상3;1
예수님과 혼인하여 살도록 해봐요 = 열왕기상3;1(190127)
PW : 믿음 BIW : 혼인하라 AG : 바로의 딸
TS : 은혜란 영적으로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신 예수님과 혼인하는 것이다.
청구된 상담료
어느 모임에서 의사와 변호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둘의 이야기는 의사에게 의료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자꾸 끊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약간 화가 난 의사는 변호사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이럴 때에 법률 상담을 해달라고 귀찮게 굴면 어떻게 하세요?”
변호사는 웃으면서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죠.”라고 말하면서 한 마디 더 붙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청구서를 보냅니다.”
의사는 그대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의사는 전날 해준 상담에 대한 청구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청구서를 부치려고 하는데, 우편함에 변호사가 보낸 청구서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가 상담해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담료를 청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엉뚱한 일들이 수두룩하게 많습니다.
기는 사람 위에 걷는 사람이 있고,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 있고,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사람 위에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이런 엉뚱한 일을 하지는 않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정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서로서로 도와주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 은혜로 사는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서 배려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P4.
솔로몬 왕의 어머니 밧세바는 다윗 왕과의 사이에 4명의 아들을 낳는다.
역대상3:5에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라고 소개하고 있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가 바로 밧세바라는 여인이다.
솔로몬의 어머니가 헷 족속 출신의 여인이기 때문에 솔로몬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 이방여인들과 혼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부터 이스라엘의 여인이 아니라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이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40년 동안 통치한다.
슬로몬이 40년 동안 왕으로서 통치하고 죽은 이후에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르호보암은 41살에 솔로몬 왕을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그러니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태어난 아들이다.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암몬족속 출신의 나아마 여인이다.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바로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 왕은 이미 많은 왕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공주, 바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한다.
오늘 우리가 만나려고 하는 여인은 바로 애굽의 공주, 애굽의 바로 시삭의 딸이다.
이 여인의 이름에 대해서는 성경에 전혀 기록하지 않는다.
단지 바로의 딸이라고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 나라는 대단한 나라, 강대국이라고 소개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많은 나라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의 배경이 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단한 나라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적으로는 중동지역에서 아주 작은 소국(小國)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단하고 뭔가 웅장한 것들이 있는 나라인 것처럼 착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약소국(弱小國)에 불과한 나라이다.
솔로몬 왕은 아주 작은 약소국에 불과한 나라의 왕이기 때문에 아무리 지혜의 왕이요 대단한 왕이라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강대국(强大國)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왕일 수밖에 없다.
주변에는 강대국들로 들러 쌓여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주변국에서 호시탐탐 이스라엘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는 나라이다.
이스라엘나라는 주변국들 블레셋, 두로와 시돈, 암몬, 모압, 아람, 앗수르,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들의 침략을 당하여 노략질을 당하면서 살아야만 되는 약소국가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종종 애굽의 침략도 받게 된다.
이런 국제적인 정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의 침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 나라가 비록 적대국들이기는 하지만, 이들 나라의 공주를 인질로 잡아두면 공주 때문에 쉽게 침략해오지 않게 되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가져 올 수 있다.
솔로몬은 주변국들의 침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들과 정략적으로 혼인하여 그들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솔로몬 왕은 가장 먼저 중동지역에서 가장 최강국이라는 애굽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애굽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려고 한다.
솔로몬은 애굽에 사신을 보내서 바로에게 자신의 친필서신을 전하면서 공주와 혼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게 된다.
애굽의 바로는 솔로몬 왕이 보낸 사신이 가져온 친필서신을 받아들고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합당한 외교정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대소신료들과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다.
애굽제국에도 블레셋, 아람, 앗수르, 바벨론 등과 같은 북방세력들 때문에 골머리가 아플 때가 아주 많다.
애굽의 바로와 대소신료들은 이스라엘과 혼인관계를 통해서 사돈관계를 맺는 것이 북방외교정책으로 좋은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애굽의 바로는 공주를 불러서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혼인하여 시집을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면서 공주의 의사를 타진한다.
지금이야 결혼 당사자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되어 혼인하는 것이지만, 고고고 고대시대에는 결혼당사자의 의견보다는 아버지가 결정하면 결혼당사자는 따라가는 것이 순례요 법칙이었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딸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 딸의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굽의 공주는 솔로몬과 혼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① 이스라엘 나라는 우리 애굽 제국보다 약소국가가 아닌가?
약소국가의 왕이라면 큰 권력을 가지지 못한 왕이지 않은가?
② 이스라엘 나라는 아주 먼 옛날 우리 애굽의 종살이하던 민족이지 않은가?
내가 어떻게 종 되었던 나라의 왕비가 될 수 있겠나?
내가 우리 애굽의 종 되었던 나라의 왕비가 된다는 것은 수치 중에 수치 아니겠는가?
③ 내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혼인하게 되면 평생 타국생활 해야 되지 않나?
엄마, 아빠를 비롯한 형제들, 가족들, 친구들을 만날 수 없지 않나?
④ 뭐니 뭐니 해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다.
솔로몬 왕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평생을 살 생각하면 끔찍하다.
⑤ 듣기로는 솔로몬 왕은 이미 결혼한 왕비들이 많다고 하지 않나? 그러면 내가 솔로몬 왕과 혼인하더라도 많은 왕비들 중에 한 사람에 불과하지 않나?
솔로몬 왕이 나만 사랑해주고 예뻐해 준다는 보장을 할 수 없지 않나?
나는 한 남자의 지극한 사랑과 애정을 받으면서 살고 싶다.
나는 내 남자가 다른 여인들 속에서 살면서 나를 위해 주는 척하는 것을 용서해 줄 수 없다.
⑥ 우리 애굽 민족은 대대로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섬기면서 살아온 민족인데, 이스라엘은 여호와(Jehovah)라는 신을 섬긴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아주 먼 옛날 여호와라는 신이 우리 애굽에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히브리민족을 데리고 떠나가지 않았나?
그들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가 되지 않았나?
부부로 인연을 맺어서 살려고 하면 믿는 신이 똑 같아야 하는데, 서로 섬기는 신이 다르다.
민족과 문화와 종교가 각각 다르다.
우리 민족이 섬기는 태양신이 여호와라는 신을 믿는 사람들을 좋아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나는 내 민족의 건장한 귀족의 청년과 혼인하여 태양신을 섬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D4.
① 솔로몬과 혼인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중동지역의 최강대국 애굽의 공주를 약소국가 솔로몬과 혼인할 수 있도록 주선하신다.
물론 아버지 바로에 의해서 정치적인 정략결혼이라는 한계점이 있기는 하지만, 정략결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혼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사람들의 의견과 판단과 정책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정략결혼이라 할지라도 이루어질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뒤에서 역사하고 감동을 주셔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과 애굽의 바로에게 감동을 주셔서 주선되어지는 혼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나라의 대소신료들, 애굽의 대소신료들의 마음까지도 감동을 주셔서 주선되어지는 혼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의 공주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이루어지는 혼인이다.
공주는 솔로몬과 혼인할 수 없는 조건들이 너무 많다.
공주가 솔로몬 왕과 혼인하기에는 너무 많은 악조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좋지 않은 모든 악조건들보다 솔로몬 왕과 혼인할 수 있는 마음을 감동으로 넣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일이든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시켜 주셔야만 된다.
② 특별한 사랑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
솔로몬에게는 바로의 공주 외에 1000여명의 여인들이 있다.
솔로몬에게는 후궁이 700명, 첩이 30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에게는 후궁과 첩 외에 정실부인이라는 왕비들도 이미 많다.
솔로몬은 애굽의 바로 뿐만 아니라 다른 주변국들과도 정치적으로 정략결혼이라는 혼인 방법으로 수많은 주변국의 공주들과 정략결혼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많은 주변국 공주들 속에서 성경에서는 바로의 공주에 대하여 특별하게 기록하고 있다.
왕상7:8에서는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왕상9:16에서는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은 13년에 결처서 화려하고 웅장한 왕궁을 건축하면서 바로의 공주를 위해서 별궁을 건축해 준다.
이처럼 바로의 공주는 솔로몬 왕에게서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여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바로의 공주는 솔로몬과 혼인하여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예루살렘 성에 사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
그런가하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잠언의 말을 매일매일 들을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
우리 대한민국이 대단한 나라인 것처럼 생각해도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에 비하면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한 것처럼 이스라엘 나라 주변에는 강대국들로 들러 쌓여 있다.
우리나라가 최강대국들이 들러 쌓여 있는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하지만, 한류(韓流) 때문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지만 최고속으로 발전한 경제와 각종 드라마와 아이돌 그룹인 K-POP과 IT 산업 때문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전 세계인들, 특별히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배우고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음식을 먹고, 직접 자유대한민국을 보기 위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여행을 오는 나라가 되었다.
이스라엘 나라도 중동지역의 아주 작은 약소국가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주신 지혜를 들어보고 싶어서 중동지역의 여러 민족들이 앞 다투어서 찾아오는 것이다.
애굽보다 더 먼 스바 제국의 여왕까지도 수많은 신하들과 예물을 준비하여 솔로몬의 지혜로운 잠언을 들으려고 국빈 방문할 정도이다.
온 세상의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서 수많은 예물을 준비해서 방문할 정도인데, 바로의 공주는 아무런 예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그야말로 공짜로, 은혜로 잠언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입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신앙과 인격에 신뢰할 수 있고 덕망이 있는 사람에게서 삶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은혜 중에 은혜요 축복 중에 축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최대의 행복이요 은혜이다.
우리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축복을 주신다.
③ 왕위를 이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하나님.
바로의 딸, 공주는 분명히 솔로몬과의 관계에서 자식을 출산했을 것이다.
물론 1000여명의 여인들 중에서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는 여인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의 딸은 솔로몬과의 사이에 몇 명의 자녀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녀를 출산했을 것이다.
솔로몬이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낳은 암몬 족 출신의 나아마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된다.
솔로몬 왕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사람은 바로의 공주가 낳은 아들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가장 사랑했다고 하는 아가서의 주인공이 되는 슬람미 여인이 낳은 아들도 아니다.
어쩌면 솔로몬이 가장 먼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암몬 족의 나아마 여인이 낳은 르호보암이 아니겠나 싶다.
그래서 수많은 여인들이 낳은 수많은 자녀들 속에서 장자인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 바로의 공주가 낳은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하닷이라는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반란을 일으켜서 애굽 왕 시삭의 도움을 받는다.
북이스라엘을 건국한 여로보암도 솔로몬 왕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망명하여 시삭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았었다.
그러면 바로의 딸의 아버지 애굽의 바로 시삭은 처음에 딸을 솔로몬 왕과 혼인시킬 때는 좋은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점점 두 나라의 외교관계는 좋지 않은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두 나라간의 외교관계가 좋지 않은 모습으로 진행되었다면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중에 나라가 두 개로 분열되면서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르호보암 왕은 바로의 공주가 낳은 자녀들을 가만히 놔두었을까?
어쩌면 르호보암 왕의 측면에서 보면 바로의 공주와 공주가 낳은 자녀들은 정적(政敵)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복형제들, 이복남매지간이지만 정치세계에서는 정적으로 남을 수 있다.
만약에 르호보암 왕과 바로의 딸이 낳은 자녀들 사이에 정적관계가 형성되었다면 르호보암 왕은 공주와 공주의 자녀들을 숙청했거나 숙청까지는 아니더라도 예루살렘 성에서 추방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세계라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언제든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세계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보다 더 심한 징계를 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의 공주가 솔로몬 왕과 혼인하면서 예루살렘 성에서 살게 되었을 때, 친정국가 애굽에서 섬기던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여인이 되었을까?
글쎄. 무엇이라고 확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공주는 솔로몬 왕의 입술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수많은 잠언의 말씀들을 매일매일 들으면서 이런 지혜로운 말씀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말씀이구나 하는 깨달음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방여인들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이 섬기는 이방신들을 섬기면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도록 미혹한다.
솔로몬 왕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도록 미혹한 수많은 이방 여인들 속에 바로의 공주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바로의 공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수없이 많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여인으로 세워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L4 & B4.
바로의 공주는 중동지역의 최강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소국가의 왕인 솔로몬과 혼인한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략적인 혼인이 되었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혼인이 되었건 그 당시에 최고의 지혜자, 모략가라고 불리는 사람, 중동지역의 온 세상 사람들이 흠모하고 그의 입에서 선포되어지는 지혜를 듣고 싶어 할 정도로 지혜를 품은 사람과 혼인한다.
그렇지만 만족함이 없는 혼인이다.
여인이란 존재는 남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 몸에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이 잘 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여인으로 사는 삶의 행복과 보람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바로의 공주는 수많은 여인들로 들러 쌓여서 그 여인들이 차지하고 싶어하는 투기, 질투, 원망스런 삶을 몸소 느끼면서 살아야만 되는 것이다.
한 나라의 공주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주다운 대접을 제대로 받으면서 살지 못한 여인이 되는 것이다.
바로의 공주는 한 남자의 여자,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로서 누릴 사랑과 애정을 받으면서 산 여인이 아니다.
바로의 공주는 한 나라의 왕비였음에도 불구하고 왕비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살지 못한 여인이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의 혼인은 실망과 좌절과 원망과 투기와 질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세상에서의 혼인생활에 100%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실망과 좌절과 원망과 불평과 불행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망하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고,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투기하거나 질투하지도 않으면서 행복하고 감사하고 고마워하면서 살아가는 길은 없는 것일까?
그런 길은 세상의 관점에서는 찾을 수 없다.
세상에서의 결혼은 절대로 100% 만족할 수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100% 만족할 수도 없고, 만족을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100% 아니 90%, 아니 80% 이상의 만족을 줄 수 있는 결혼 생활을 추구할 수 없다.
서로 서로 부족한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서로 양보하고 맞추어가면서 온전한 가정을 꾸려가는 것이다.
화성이라는 별에서 태어난 남자와 금성이라는 별에서 태어난 여자가 지구라는 가정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화성과 금성이라는 각각 다른 별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이 지구라는 가정을 꾸밀 때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낳고 자랐음을 인정해 주어야만 지구라는 가정에서 화목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데, 상대방을 각각 자기에게 맞추기를 원하고, 맞추지 못하면 역정을 내고 분노하기 때문에 화목해 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라는 세상에서는 완전해 질 수 없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눈으로 보면 얼마든지 행복 가득한 가정을 찾을 수 있다.
곧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말씀이신 예수님, 빛이신 예수님과 영적으로 혼인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들은 영적으로 오직 신랑 되시는 우리 예수님과 혼인하면 된다.
예수님과 영적으로 혼인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영적으로 예수님과 혼인하려고 하면 신앙의 기본으로, 기초로, 근본으로 돌아가야 된다.
영적으로 예수님과 혼인하여 사는 길은 거창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니고데모(Nicodemus)라는 사람은 어느 날 밤에 가만히 예수님을 찾아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이 때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묻는다.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사람이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니고데모는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니고데모는 ‘어떻게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먼저 해야 되는 일이 무엇일까?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어린아이가 직접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오직 보호자가 되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든, 누가 했든지 간에 제3자가 대신 출생신고를 해 주어야 한다.
출생신고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아이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출생신고를 해야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로부터 제공되는 모든 보호와 교육과 양육의 권리를 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도 출생신고를 해야 된다.
우리나라의 국민으로 출생신고를 하려고 하면 아이를 낳은 부모가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출생신고를 하려고 하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한다.
그 조건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는 믿음의 고백이 앞서야 하는 것이다.
다른 조건은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출생신고하려고 하면 부모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조건 하나만 있으면 되듯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믿음의 고백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로마서10:9-10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①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으라고 하신다.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노크하시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3:20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달라고 노크하면서 두드리고 계신다.
우리 주님께서 노크하시는 음성을 듣고 우리 영혼의 문을 활짝 열어 주어야 한다.
우리 집과 교회와 직장의 문은 얼마든지 밖에서 열어줄 수 있지만, 우리 마음과 영혼의 문만큼은 절대로 밖에서 열어줄 수 있다.
다만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노크할 뿐이다.
오직 우리들 안에서 열어주어야만 마음과 영혼의 문이 열릴 수 있다.
마음의 문을 열고자 하는 열망, 열의, 의지가 있어야만 마음의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자 하는 열망, 열의, 의지가 바로 주님을 향한 아주 작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겨자씨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겨자씨같이 작은 믿음의 열쇠로 단단히 닫혀 있는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②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라고 시인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마음에 믿어도 많은 사람들, 공중(公衆) 앞에서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습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시인하라고 하신다.
우리나라에서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구촌의 어떤 지역에서는 예수님을 입으로 공중 앞에서 시인한다는 것은 곧 목숨 줄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가까운 북한이나 중국이나 이슬람지역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적으로 고백할 수 없다.
그런 지역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영적으로 혼인한다는 것은 어쩌면 생명을 걸어야 되는 것이 된다.
내 생명을 걸고서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되는 것은 입으로 시인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③ 예수님을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감동을 주시지 않으면 결코 예수님을 마음에 믿을 수도 없고, 목숨 줄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입으로 시인할 수도 없다.
예수님을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감동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2:8-9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계신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 안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직분자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날마다 기뻐하며 찬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혼인하여 주님의 아내가 되고, 주님의 사람이 되고, 주님의 일꾼이 되고, 주님의 사역자로 살아가는 것은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성경시대에 주인은 종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져 주는 것이다.
성경시대에 남편은 아내의 삶을 전폭적으로 책임져 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 예수님과 영적으로 혼인하여 주님의 아내라는 신분으로, 주님의 사람이라는 신분증으로 살아갈 때 우리들의 삶은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전폭적으로 책임져 주시고 은혜주시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주님의 축복의 주인공으로, 축복의 근원으로, 축복의 전달자로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신앙인의 삶, 교회의 삶, 가정의 삶, 생업터전의 삶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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