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보여드립시다 (신16:1-17)
본문
신명기 16장 16절-17절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김에 있어서 특별한 절기를 정하고, 지킬 것을 명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전 성경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평생토록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3대(三大) 절기를 설정하시고 그 절기에는 거국적이고 거족적인 여호와 경외를 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명한 3대절기 가운데 하나는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종된 애굽에서 구원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로 아빕월(1월) 14일(태양력으로
3,4월)부터 일주간 계속되는 절기였습니다. 물론 엄격히 따지면 유월절은 14일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하룻밤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무교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 주간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동일한 절기로 취급되었습니다(출12:3-20). 이 유월절은 신약에 있어서 어린양 예수께서 속죄 사역을 감당하신 십자가 수난과 직결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칠칠절을 명하였습니다 이 절기는 유월절이 끝난 때 부터 7주간을 지난 다음 50일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칠칠절 오순절 또 맥추절 초실절등으로 이름 불려졌습니다(출23:16, 34:22, 레23:3-14). 이 절기의 신약적 의미는 성령님강림과 함께 시작되는 교회탄생을 의미합니다. 신령한 영의 열매가 오순절 성령님 강림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초막절 혹은 장막절을 명하였습니다. 이 절기는 3대 절기중 제일 마지막으로 유대 월력 7월 15일 부터 한 주간 (태양력으로9,10월경)지킨 절기였습니다. 일년간의 결실을 감사하는 의미로 수장절이라고도 하고, 또 이스라엘의 광야교회를 기억하고 한 주일동안 집 밖 초막을 짓고 거기에 거하면서 명절을 지켰기 때문에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절기의 신약적 의미는 영원한 안식의 천국을 상징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에는 추수감사절로 교회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3대 절기는 십자가의 대속(유월절)과 성령님강림과 교회탄생(오순절, 칠칠절)과 영원한 천국의 안식(장막절)을 나타내는 구속사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이 절기를 지킴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표현 중에서 네 하나님.여호와께 보이라는 말씀입니다(신16:16). 출애굽기 23장 17절에도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라고하였습니다. 명절을 통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신 말씀은 네 하나님 앞에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보이라고 하셨는가
I.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유월절 절기에도 명령되었습니다. 본문 16장 2절에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제사를 드릴지라고하였습니다. 본문 16장 5절에서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드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장 7절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라고 하였습니다.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실절)에도 같은 내용이 명령되었습니다. 본문 16장 11절 중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즐거워할지니라고하였습니다. 이 명령은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의 경우에도 주어졌습니다. 본문 16장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7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즐거워 할지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거듭 거듭 반복되는 명령입니다. 더 신기한 것은 지킬 장소가 강조된 것은 신명기에만 있습니다. 출애굽기에는 장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거기는 아직 애굽이기때문입니다. 민수기에도 장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거기가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에서만 아주 권위적으로 3대(三大) 절기를 지킬 장소가 강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벌써 가나안 땅에서 일어날 일이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성민의 정착지였기때문입니다.
1.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무엇을 의미함인가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들을 보여 드릴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들을 보여 드릴 장소는 하나님 자신께서 스스로 정하신 것입니다. 주권적인 결정이고, 임위적인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님 스스로의 일방적인 계획이고,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 편에서 그 백성들을 보고 싶은 장소를 권위적으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가리켜 거기에는 내 이름이 있고 내 눈이 있고 내 마음이 있고 내 영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이스라엘을 만나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기도를 응답하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2. 그 이유가 무엇일까
(1) 이스라엘의 성민의 성별을 의미합니다. 유월절은 종된 애굽에서의 성별(구원)을 뜻합니다. 오순절(칠칠절, 맥추절) 수장절(장막절)은 각각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축복들을 성별 시키는 감사 축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 모임은 바로 저들이 성민된 표식이요, 자랑이었습니다. 세상과 우상들과, 잡신들을 섬기는 백성이 아니요 오직 상천하지에 유일무이하신 살아 계신 창조주요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성별의 표식이었습니다.
(2)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하여 당신께서 특별히 임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제단과 방주 속에 특별임재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번제단과 그가 지시하신 곳 모리아 산상의 번제단 위에 특별히 임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정하시고 모세더러 올라 오라고 명하신 시내산에 특별히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정하신 광야교회의 성소에 특별히 영광으로 임재하였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그 영광이 성소에 충만하였습니다. 바로 그 택하신 곳은 하나님 자신의 특별임재를 약속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 곳에서 특별히 하나님께 자신을 보여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시켜 보여 드릴 장소는 바로 성전(교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기뻐하신 명령입니다.
II.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1년 3차씩 다 보여 드려야 합니다. 본문 16절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3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20세 이상 되는 사람을 뜻합니다(출23:17). 모세의 율법에는 20세 되는 이스라엘의 남자는 성인으로서 하나님께 행할 종교적 의무를 감당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매년에 세번씩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예외 없이 예루살렘성전 예배의 순례를 해야만 하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심은 이스라엘이 성회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성회는
1. 하나님 중심의 성회였습니다. 저들이 명절을 지킬 때 사가(私家)에서나, 어떤 특별한 지역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하신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저들이 어디 어떤 곳, 어떤 거리에서 어떤 형편으로 살고 있었을지라도 3대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저들의 마음과 몸과 물질과 시간과 소망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집결됨은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 거룩한 백성들의 만남, 곧 민족적 연합의 성회였습니다. 일년에 세번씩, 이스라엘은 실로 엄청난 민족의 대이동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였습니다. 피차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기쁨이 교류되고 위로가 함께 나누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들은 이 모임에서 성민의식이 다시 고조되고, 국가적, 민족적 연합과 단결이 이루어지고, 기쁨과 위안과, 힘과, 용기와, 축복을 함께 나누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하나가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일에 하나가 되고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하나가 되는 성민의 동질성이 강화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성민의 민족적 연합이었습니다.
3. 계속되는 성민운동의 행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20세 되는 남자는 매년에 3번씩, 반복되는 모임이었습니다. 필수적인 모임이요, 만남이었습니다. 한평생 계속되는 성회의 모임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저들 생존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자손 대대토록 이어져 가는 성회의 행진이었습니다. 참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축복의 물결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8년전 미국에 있는 석기현 목사가 첫 아들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생전에 처음 경험하는 흥분을 체험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 시간 이후로 지금까지 이제 아들과 며느리가 보고 싶었던 상태에서 손자가 보고 싶은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산후에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자부에게 그 아이를 품에 안으라고 전화로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부더러 손으로 아이의 팔을 꼬집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자부는 놀랐으나, 저는 재촉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처음 맞는 손자의 우렁찬 사나이의 울음 소리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부가 하는 말이 “아버님 안돼요”라고 하였습니다. 내 자부는 아이가 아파서 울음을 터트리도록 아프게 꼬집어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곧 알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첫 손자의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볼 수가 없으니 소리(음성)라도 듣고 싶었으나 그것도 소원대로 되지못하였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새로 태어난 우리집의 장손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3대 명절을 설정하시고, 그 명절에는 모든 것을 다 중지하고 내가 명하는 장소에서 나에게 너희 자신들을 보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가 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대로 정한 장소에서 나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꼭 주일에 교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가 주말에 휴식하는 농장에서나, 집에 T.V 앞에서나 아니면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가정에서나 특별히 우리끼리 좋아하는 장소에서 예배 드리면 되지 않는가 또 우리 가족들이 다 함께 교회당에 가야 하나 아버지나 어머니가 우리 가족 대표로 가면 되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볼 때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발상인가를 보게 됩니다. 얼마나 아집적이고, 인본주의적인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특별히 보여 드릴 장소를 지정해 놓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피흘려 세우신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나아와 하나님께 자신들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불신자와 구별 시키는 특별한 축복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신약에 성도들은 남자 뿐아니라 모든 가족 모든 세계 기독교인들은 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날(주일)에 하나님께 자신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자끼리 연합하는 그야 말로 성도(聖徒)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 운동(구속사 운동의 진행)의 영원한 행진을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무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거룩한 순례의 여로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이 순례 행진이 끝날 때 그 마지막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예배의 여로는 역사의 중심 대로 입니다.
3,4월)부터 일주간 계속되는 절기였습니다. 물론 엄격히 따지면 유월절은 14일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하룻밤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무교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 주간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동일한 절기로 취급되었습니다(출12:3-20). 이 유월절은 신약에 있어서 어린양 예수께서 속죄 사역을 감당하신 십자가 수난과 직결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칠칠절을 명하였습니다 이 절기는 유월절이 끝난 때 부터 7주간을 지난 다음 50일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칠칠절 오순절 또 맥추절 초실절등으로 이름 불려졌습니다(출23:16, 34:22, 레23:3-14). 이 절기의 신약적 의미는 성령님강림과 함께 시작되는 교회탄생을 의미합니다. 신령한 영의 열매가 오순절 성령님 강림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초막절 혹은 장막절을 명하였습니다. 이 절기는 3대 절기중 제일 마지막으로 유대 월력 7월 15일 부터 한 주간 (태양력으로9,10월경)지킨 절기였습니다. 일년간의 결실을 감사하는 의미로 수장절이라고도 하고, 또 이스라엘의 광야교회를 기억하고 한 주일동안 집 밖 초막을 짓고 거기에 거하면서 명절을 지켰기 때문에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절기의 신약적 의미는 영원한 안식의 천국을 상징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에는 추수감사절로 교회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3대 절기는 십자가의 대속(유월절)과 성령님강림과 교회탄생(오순절, 칠칠절)과 영원한 천국의 안식(장막절)을 나타내는 구속사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이 절기를 지킴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표현 중에서 네 하나님.여호와께 보이라는 말씀입니다(신16:16). 출애굽기 23장 17절에도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라고하였습니다. 명절을 통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신 말씀은 네 하나님 앞에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보이라고 하셨는가
I.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유월절 절기에도 명령되었습니다. 본문 16장 2절에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제사를 드릴지라고하였습니다. 본문 16장 5절에서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드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장 7절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라고 하였습니다.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실절)에도 같은 내용이 명령되었습니다. 본문 16장 11절 중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즐거워할지니라고하였습니다. 이 명령은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의 경우에도 주어졌습니다. 본문 16장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7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즐거워 할지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거듭 거듭 반복되는 명령입니다. 더 신기한 것은 지킬 장소가 강조된 것은 신명기에만 있습니다. 출애굽기에는 장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거기는 아직 애굽이기때문입니다. 민수기에도 장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거기가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에서만 아주 권위적으로 3대(三大) 절기를 지킬 장소가 강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벌써 가나안 땅에서 일어날 일이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성민의 정착지였기때문입니다.
1.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무엇을 의미함인가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들을 보여 드릴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들을 보여 드릴 장소는 하나님 자신께서 스스로 정하신 것입니다. 주권적인 결정이고, 임위적인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님 스스로의 일방적인 계획이고,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 편에서 그 백성들을 보고 싶은 장소를 권위적으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가리켜 거기에는 내 이름이 있고 내 눈이 있고 내 마음이 있고 내 영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이스라엘을 만나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기도를 응답하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2. 그 이유가 무엇일까
(1) 이스라엘의 성민의 성별을 의미합니다. 유월절은 종된 애굽에서의 성별(구원)을 뜻합니다. 오순절(칠칠절, 맥추절) 수장절(장막절)은 각각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축복들을 성별 시키는 감사 축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 모임은 바로 저들이 성민된 표식이요, 자랑이었습니다. 세상과 우상들과, 잡신들을 섬기는 백성이 아니요 오직 상천하지에 유일무이하신 살아 계신 창조주요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성별의 표식이었습니다.
(2)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하여 당신께서 특별히 임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제단과 방주 속에 특별임재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번제단과 그가 지시하신 곳 모리아 산상의 번제단 위에 특별히 임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정하시고 모세더러 올라 오라고 명하신 시내산에 특별히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정하신 광야교회의 성소에 특별히 영광으로 임재하였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그 영광이 성소에 충만하였습니다. 바로 그 택하신 곳은 하나님 자신의 특별임재를 약속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 곳에서 특별히 하나님께 자신을 보여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시켜 보여 드릴 장소는 바로 성전(교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기뻐하신 명령입니다.
II.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1년 3차씩 다 보여 드려야 합니다. 본문 16절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3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20세 이상 되는 사람을 뜻합니다(출23:17). 모세의 율법에는 20세 되는 이스라엘의 남자는 성인으로서 하나님께 행할 종교적 의무를 감당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매년에 세번씩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예외 없이 예루살렘성전 예배의 순례를 해야만 하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심은 이스라엘이 성회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성회는
1. 하나님 중심의 성회였습니다. 저들이 명절을 지킬 때 사가(私家)에서나, 어떤 특별한 지역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하신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저들이 어디 어떤 곳, 어떤 거리에서 어떤 형편으로 살고 있었을지라도 3대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저들의 마음과 몸과 물질과 시간과 소망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집결됨은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 거룩한 백성들의 만남, 곧 민족적 연합의 성회였습니다. 일년에 세번씩, 이스라엘은 실로 엄청난 민족의 대이동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였습니다. 피차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기쁨이 교류되고 위로가 함께 나누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들은 이 모임에서 성민의식이 다시 고조되고, 국가적, 민족적 연합과 단결이 이루어지고, 기쁨과 위안과, 힘과, 용기와, 축복을 함께 나누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하나가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일에 하나가 되고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하나가 되는 성민의 동질성이 강화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성민의 민족적 연합이었습니다.
3. 계속되는 성민운동의 행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20세 되는 남자는 매년에 3번씩, 반복되는 모임이었습니다. 필수적인 모임이요, 만남이었습니다. 한평생 계속되는 성회의 모임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저들 생존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자손 대대토록 이어져 가는 성회의 행진이었습니다. 참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축복의 물결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8년전 미국에 있는 석기현 목사가 첫 아들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생전에 처음 경험하는 흥분을 체험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 시간 이후로 지금까지 이제 아들과 며느리가 보고 싶었던 상태에서 손자가 보고 싶은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산후에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자부에게 그 아이를 품에 안으라고 전화로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부더러 손으로 아이의 팔을 꼬집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자부는 놀랐으나, 저는 재촉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처음 맞는 손자의 우렁찬 사나이의 울음 소리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부가 하는 말이 “아버님 안돼요”라고 하였습니다. 내 자부는 아이가 아파서 울음을 터트리도록 아프게 꼬집어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곧 알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첫 손자의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볼 수가 없으니 소리(음성)라도 듣고 싶었으나 그것도 소원대로 되지못하였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새로 태어난 우리집의 장손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3대 명절을 설정하시고, 그 명절에는 모든 것을 다 중지하고 내가 명하는 장소에서 나에게 너희 자신들을 보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가 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대로 정한 장소에서 나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꼭 주일에 교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가 주말에 휴식하는 농장에서나, 집에 T.V 앞에서나 아니면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가정에서나 특별히 우리끼리 좋아하는 장소에서 예배 드리면 되지 않는가 또 우리 가족들이 다 함께 교회당에 가야 하나 아버지나 어머니가 우리 가족 대표로 가면 되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볼 때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발상인가를 보게 됩니다. 얼마나 아집적이고, 인본주의적인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특별히 보여 드릴 장소를 지정해 놓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피흘려 세우신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나아와 하나님께 자신들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불신자와 구별 시키는 특별한 축복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신약에 성도들은 남자 뿐아니라 모든 가족 모든 세계 기독교인들은 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날(주일)에 하나님께 자신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자끼리 연합하는 그야 말로 성도(聖徒)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 운동(구속사 운동의 진행)의 영원한 행진을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무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거룩한 순례의 여로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이 순례 행진이 끝날 때 그 마지막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예배의 여로는 역사의 중심 대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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