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감사와 주님의 평화 (신26:1-11,빌4:4-9,요6:25-35)
본문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는, 우리네 보통 사람보다, 몸 속의 장기(臟器)가 하나 더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장육부(五臟 六腑)인데, 놀부는 심술이 가득 들어있는 심술부가 하나 더 있어서 오장칠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어느 책에서 보니, 우리 인간은 '분노'의 감 정을 본능적으로 갖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몸에 눈, 코, 입이 있는 것처럼, 분노도 우리 자신의 일부인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분 노'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그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는가, 아 니면 속에 품고 있는가 하는 차이 뿐이라고, 그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기독교인라면, 분노의 감정보다는 '감사와 기쁨'이 더 많아야 합니다. 아니, 감사와 기쁨이 그 마음에서 흘러 넘쳐야 합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작위적으로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 시 말해서, 분노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듯이, 감사와 기쁨의 생활도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난 기독교인이라 야 자연스레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엊그제 저녁 황혼이 깃들 때쯤, 젊은 대학생 둘이 찾아왔 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했습니다. 얼마 전 군복무를 마친 그들은, 복학하기 전에 여행 경험을 쌓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신분을 확인한 후에, 유아실에서 묵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속회를 인도하러 갔던 아내가 돌아오자, 저녁 식사를 대접하도록 했습니다. 다음 날, 그들은 아침 식사까지 대접받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그냥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던지, 자기 호주머니에서 방울종(鐘) 모 양을 한 열쇠고리를 꺼내어 아내에게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아주 하찮은 것이지만, 자신의 고마운 감정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항상 기뻐하라. 언제든지 기도 하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을 겪든지, 걱정에 싸여 지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라(4:6)고 했습니다. 그리고필요한 것을 주님께 아뢰어,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 리는 것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사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자신 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이뤄지는 줄로 알고 지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 감사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주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믿는 까닭에, 항상 주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 우리에게도 분노는 있습니다. 아직, 우리의 신 앙이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연고로, 우리 속에 분노의 뿌리는 살아 있습니다. 이제, 그 분노의 뿌리는 캐내어 없애고, 기쁨 과 감사가 우리 마음에 자리잡도록 하려면, 계속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서 저절로 감사 가 넘쳐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셨는지, 그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를 믿노라고 하면서, 그 입으로 불평과 불만을 말하고, 별스럽지 않은 일인데도 벌컥벌컥 화를 내거나 분노 한다면, 믿음의 참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1.예수 믿는 참된 목적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 습니까 요 6:25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무리들에게 너희 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베푸는 이적의 참 뜻을 깨달아서 가 아니고, 내가 주는 빵을 배불리 먹은 때문이라면서,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애써야 한다
(7)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육의 양식' 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육의 양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영혼의 양식' 곧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 들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1사람들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에 대해서는 별 관심 이 없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오로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서만 애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는 것도, 썩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과 영을 분리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살기 때문에, 부득불 나눠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칠 때에, 탈이 생깁니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 쪽으로 많이 치우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 26:11에 보니,하나님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들을 주셔서, 이웃과 함께 나누며 기뻐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잠시 이 세상 살 동안에만 그 모든 것을 빌려 사용하다가, 죽을 때에는 그것들을 다 놓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도, 인간 의 수고보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될 때에 비 로소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를 때에는, 주님께 대한 고 마운 마음도 느낄 수 없거니와, 그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자신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줄 압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보다 결과가 적다고 느껴질 때에는 불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탓을, 정부나 이웃 에게 돌립니다. 때로는,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돌립니다. 믿음 이 시원치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잘 될 때에는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어렵게 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을 원망 합니다.
3그런 사람들은, 주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언제나 불안 한 생활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든든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연 약한 인간을 믿으니,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의 평화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키 며 안식을 준다(빌4:7)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과 물질을 더 의지하니, 그 마음이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평안치 않으니, 무슨 기쁨이 있고 감사가 생기겠습 니까 참 기쁨과 감사는, 주님을 의지할 때에 생기는 것이지, 무엇을 먹거나 입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보다는 그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아무리 호의호식을 해도, 그 마음이 즐겁지 못하 면 소용없습니다. 비록 육신은 고달프더라도, 그 마음이 즐거 우면 찬송이 나옵니다. 육신은 마음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너희 생각을, 참되고 선한 일에 단단히 매어 두라(빌4:8)고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ㄱ.하나님께 대해서는 '찬양과 기쁨을 드리는 일만을 생각 하라(8)'고 했습니다.
ㄴ.이웃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아름답고 좋은 점을 보도 록 하라(8)'고 했습니다.
ㄷ.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는 '순수하고 사랑스런 것만을 생각하라(8)'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감사와 찬양입니다. 인생의 모든 비밀이 하나님께 있고,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했으며,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나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좋은 것들을 이웃과 나누면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자의 본분 이면서, 또한 특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바울은 빌립보서 4장 9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춘교회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고 있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의 자녀 인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2.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저께 우리를 찾아왔던 대학생은, 자신이 입은 은혜에 대 한 감사를 어떻게든지 표현하고 싶어서, 아주 하찮은 선물을 하나 주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 선물의 가치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고귀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 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서 화려하거나 큰 것 을 원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라야, 주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1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에게 먹을 것이나 입을 것, 아니면 세상의 명예를 더 높여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주님의 참 평 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 까 말한 그 대학생은 다시 한 번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아 마, 의외의 대접을 받고 감격한 때문이리라 여겨집니다. 하지 만,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입 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하면서 영광을 돌리게 될 때에, 우리는 더 큰복을 누리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의 평화입니다.바울의 표현을 빌린 다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주님의 평화(빌4:6)입니다. 참으로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2우리는 이런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감사와 기쁨의 예 물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다하여 주님께 예물을 드려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우리의 예물이 '대학생이 아내에게 주었던 방울 종'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 중심을 헤아리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 중, 참으로 중요한 것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명예나 부귀가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주님께 돌릴 때에 누 리게 되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이제, 무슨 말을 더 드리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최대의 축복인 감사와 평화를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3우리는 이웃과 함께 주님의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이북 어린이들은 소여물로 양식을 삼는다고 합니다. 국제 적십자사 총재가 북한을 다녀온 후에 보고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식사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되, 그 감사한 마음의 표현을 북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돌려야 하 겠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주께서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나누 어 먹으며 기뻐하라(신26:11)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은, '하늘 양식'을 아는 자만 이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양식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 은 '내게서 배운 대로 실천하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과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가득히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최근 어느 책에서 보니, 우리 인간은 '분노'의 감 정을 본능적으로 갖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몸에 눈, 코, 입이 있는 것처럼, 분노도 우리 자신의 일부인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분 노'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그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는가, 아 니면 속에 품고 있는가 하는 차이 뿐이라고, 그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기독교인라면, 분노의 감정보다는 '감사와 기쁨'이 더 많아야 합니다. 아니, 감사와 기쁨이 그 마음에서 흘러 넘쳐야 합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작위적으로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 시 말해서, 분노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듯이, 감사와 기쁨의 생활도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난 기독교인이라 야 자연스레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엊그제 저녁 황혼이 깃들 때쯤, 젊은 대학생 둘이 찾아왔 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했습니다. 얼마 전 군복무를 마친 그들은, 복학하기 전에 여행 경험을 쌓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신분을 확인한 후에, 유아실에서 묵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속회를 인도하러 갔던 아내가 돌아오자, 저녁 식사를 대접하도록 했습니다. 다음 날, 그들은 아침 식사까지 대접받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그냥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던지, 자기 호주머니에서 방울종(鐘) 모 양을 한 열쇠고리를 꺼내어 아내에게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아주 하찮은 것이지만, 자신의 고마운 감정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항상 기뻐하라. 언제든지 기도 하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을 겪든지, 걱정에 싸여 지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라(4:6)고 했습니다. 그리고필요한 것을 주님께 아뢰어,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 리는 것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사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자신 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이뤄지는 줄로 알고 지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 감사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주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믿는 까닭에, 항상 주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 우리에게도 분노는 있습니다. 아직, 우리의 신 앙이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연고로, 우리 속에 분노의 뿌리는 살아 있습니다. 이제, 그 분노의 뿌리는 캐내어 없애고, 기쁨 과 감사가 우리 마음에 자리잡도록 하려면, 계속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서 저절로 감사 가 넘쳐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셨는지, 그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를 믿노라고 하면서, 그 입으로 불평과 불만을 말하고, 별스럽지 않은 일인데도 벌컥벌컥 화를 내거나 분노 한다면, 믿음의 참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1.예수 믿는 참된 목적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 습니까 요 6:25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무리들에게 너희 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베푸는 이적의 참 뜻을 깨달아서 가 아니고, 내가 주는 빵을 배불리 먹은 때문이라면서,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애써야 한다
(7)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육의 양식' 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육의 양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영혼의 양식' 곧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 들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1사람들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에 대해서는 별 관심 이 없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오로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서만 애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는 것도, 썩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과 영을 분리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살기 때문에, 부득불 나눠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칠 때에, 탈이 생깁니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 쪽으로 많이 치우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 26:11에 보니,하나님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들을 주셔서, 이웃과 함께 나누며 기뻐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잠시 이 세상 살 동안에만 그 모든 것을 빌려 사용하다가, 죽을 때에는 그것들을 다 놓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도, 인간 의 수고보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될 때에 비 로소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를 때에는, 주님께 대한 고 마운 마음도 느낄 수 없거니와, 그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자신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줄 압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보다 결과가 적다고 느껴질 때에는 불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탓을, 정부나 이웃 에게 돌립니다. 때로는,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돌립니다. 믿음 이 시원치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잘 될 때에는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어렵게 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을 원망 합니다.
3그런 사람들은, 주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언제나 불안 한 생활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든든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연 약한 인간을 믿으니,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의 평화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키 며 안식을 준다(빌4:7)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과 물질을 더 의지하니, 그 마음이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평안치 않으니, 무슨 기쁨이 있고 감사가 생기겠습 니까 참 기쁨과 감사는, 주님을 의지할 때에 생기는 것이지, 무엇을 먹거나 입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보다는 그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아무리 호의호식을 해도, 그 마음이 즐겁지 못하 면 소용없습니다. 비록 육신은 고달프더라도, 그 마음이 즐거 우면 찬송이 나옵니다. 육신은 마음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너희 생각을, 참되고 선한 일에 단단히 매어 두라(빌4:8)고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ㄱ.하나님께 대해서는 '찬양과 기쁨을 드리는 일만을 생각 하라(8)'고 했습니다.
ㄴ.이웃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아름답고 좋은 점을 보도 록 하라(8)'고 했습니다.
ㄷ.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는 '순수하고 사랑스런 것만을 생각하라(8)'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감사와 찬양입니다. 인생의 모든 비밀이 하나님께 있고,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했으며,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나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좋은 것들을 이웃과 나누면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자의 본분 이면서, 또한 특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바울은 빌립보서 4장 9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춘교회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고 있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의 자녀 인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2.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저께 우리를 찾아왔던 대학생은, 자신이 입은 은혜에 대 한 감사를 어떻게든지 표현하고 싶어서, 아주 하찮은 선물을 하나 주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 선물의 가치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고귀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 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서 화려하거나 큰 것 을 원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라야, 주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1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에게 먹을 것이나 입을 것, 아니면 세상의 명예를 더 높여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주님의 참 평 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 까 말한 그 대학생은 다시 한 번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아 마, 의외의 대접을 받고 감격한 때문이리라 여겨집니다. 하지 만,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입 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하면서 영광을 돌리게 될 때에, 우리는 더 큰복을 누리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의 평화입니다.바울의 표현을 빌린 다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주님의 평화(빌4:6)입니다. 참으로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2우리는 이런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감사와 기쁨의 예 물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다하여 주님께 예물을 드려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우리의 예물이 '대학생이 아내에게 주었던 방울 종'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 중심을 헤아리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 중, 참으로 중요한 것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명예나 부귀가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주님께 돌릴 때에 누 리게 되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이제, 무슨 말을 더 드리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최대의 축복인 감사와 평화를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3우리는 이웃과 함께 주님의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이북 어린이들은 소여물로 양식을 삼는다고 합니다. 국제 적십자사 총재가 북한을 다녀온 후에 보고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식사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되, 그 감사한 마음의 표현을 북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돌려야 하 겠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주께서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나누 어 먹으며 기뻐하라(신26:11)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은, '하늘 양식'을 아는 자만 이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양식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 은 '내게서 배운 대로 실천하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과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가득히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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