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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도 (단9:1-27)

본문

본 장은 위대한 발견과 위대한 기도와 위대한 계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본 장을 하나의 논쟁거리로 삼습니다. 그러나 본 장은 다니엘서 중에서 가장 흥미 있는 부분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위대한 발견 서두의 두 절에는 대 발견이 실려 있습니다. 이 본문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1장의 사건들을 상기해야 합니다. 이 사건들은 주전 605년에 일어났습니다. 그 해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손에 넣고 다니엘을 포함하여 많은 포로들을 잡아갔습니다. 백성들 대부분은 그 후 수차례에 걸쳐 포로 민으로 이송되었습니다. 68년 전의 일이었고 당시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근 70년을 살아온 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본 장의 다니엘은 나이가 매우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그가 포로로 잡혀갔을 때가 14세였으니까 지금은 82세의 고령입니다. 이 시기는 메대의 통치 원년인 주전 537년입니다. 이제 이 노령의 선지자는 주님을 위해 꿋꿋이 살아온 68년 간의 과거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는 그 오랜 세월을 극소수의 남은 자들과 함께 하나님 편에 서서 주님께 불 충성하도록 촉구하는 일체의 유혹들에 맞서왔습니다. 이제 바벨론 제국은 하나님이 주셨던 환상의 예언대로 무너졌습니다. 세계의 패권은 메대와 바사의 장중으로 넘어갔고 메대 족속인 다리오 가 메대와 바사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우리가 6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다니엘은 전례가 없는 중직으로 승진하였습니다. 그는 이 새 제국에서 왕 다음 가는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본 때는 까마득한 과거였습니다. 그래도 이 늙은 선지자의 믿음은 아직도 청신(淸新:깨끗하고 산뜻함)하였습니다. 중첩된 고난의 시험들도 그의 믿음을 깨뜨리지 못하였습니다. 높은 벼슬도 그의 믿음을 부식시키지 못했으며, 하나님보다 다른 사물들을 더 사랑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본 장의 초두에서 우리는 다니엘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당시의 성경은 오늘날처럼 단 권으로 된 인쇄물이 아니었습니다. 두루말이들이나 책들을 모은 것이었으므로 보통 ‘서책’이라고 번역합니다. 다니엘은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귀한 환상들과 계시들을 많이 본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성경 묵상은 신앙의 연륜이나 사역의 경험이나 영적 환상이나 계시의 분량에 상관없이 언제나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모범에서 이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 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소년 시절에 예레미야 선지자의 메시지를 직접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누구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잘 보존되어 전수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말씀들을 읽다가 자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이 놀라운 말씀은 예레미야 25:8-11절과 29:10-14절의 내용이었습니다. “(렘25:8)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은즉 (렘25:9)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 다니엘은 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고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새삼 절감하였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 땅을 밟은 순간부터 나라는 온통 황폐화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예언의 말씀을 읽어내려 갔을 것입니다. “(렘25:10)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 다니엘은 이 말씀도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결혼 준비를 갖춘 많은 젊은이들이 갑자기 포로로 잡혀가고 유다 땅은 한숨과 눈물로 얼룩졌습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다음 구절까지 읽어 갔습니다. “(렘25:11) 이 온 당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 바벨론 제국은 이제 패망했지만 메대와 바사 제국을 다스리는 자가 바벨론의 옛 영토들을 통제하였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세 제국이 들어 셨다고 해서 사로잡혀 고국 땅을 멀리 떠나온 유대인들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생활 초기부터 68년 간 정복 민의 땅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 묵상을 통해 이 포로 기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은 말씀을 읽어내려 가다가 예레미야 29:10-14절의 본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렘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렘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29: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 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 다시 한번 다니엘은 하나님의 신령한 약속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포로 생활은 70년만에 끝나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에게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들은 고국 땅으로 귀향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연로한 다니엘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소년시절의 기억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는 잠시도 그곳을 잊은 적이 없었고 항상 돌아 가고파 하였습니다. 그는 68년 동안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해 왔었습니다. 이제 그는 70년이 끝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국으로 귀향하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70년의 남은 햇수들을 다니엘은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겠습니까! 해방의 때는 문턱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그 약속이 성취되고 있다는 증거는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 제국은 유대인 포로들을 풀어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유대인 포로들이 전심으로 그들의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고 있다는 증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우상숭배를 하다가 포로로 잡혀간 후에 우상을 멀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적인 측면은 옛날보다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불과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극소수의 남은 자들만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기 홀로라도 하나님께 매달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하늘로부터 보증 수표를 손에 받아 쥔 사람처럼 처신하였습니다. 이 수표는 주님을 새롭게 간절히 찾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포로 민들을 귀향시켜 준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볼 때, 아무도 이 하늘 약속의 수표를 현금으로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신으로 혼자 이 약속에 의지하여 포로된 유대인들의 귀향을 위해 하나님을 찾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포로 생활이 끝난다고 약속하셨으니까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하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니엘은 이와 전혀 다르게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70년 후에 우리 민족이 귀향할 수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내린 진노가 거두어지도록 기도하고 귀향의 약속이 성취되도록 주께 간구 하겠다’ 하나님의 약속을 하셨다는 구실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경우가 역사상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논리는 숙명적이며, 그런 자세는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태만입니다. 다니엘은 그런 식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나태의 구실로 삼지 않고 진지하고 적극적인 기도의 사역으로 들어가는 이유로 삼았습니다. 그는 자기 하나님께 다시 한번 예루살렘을 잘 보살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 후 몇 달이 되지 않아 다리오가 물러나고 고레스가 등극하여 유대인들의 귀향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이 약속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되었습니다! 위대한 기도 3-19절까지 기록된 다니엘의 기도는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기도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매우 긴 항목이므로 각 구절이나 낱말을 일일이 공부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기도의 주된 요소들을 여섯 개로 가려내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귀향이 이루어지게 된 동인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의 기도도 유대인들의 귀향을 이루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본 장에는 다른 여러 교훈들이 있지만, 기도가 주님의 목적달성에 차지하는 비중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동안은 단순히 그분의 약속에만 있지 않고 그의 백성들이 올리는 기도에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대로’드리는 기도의 의미입니다. 이 주제는 신약에서 자주 거론되었는데 알고 보면 단순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찾아내고 나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럼 실례를 들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선포된 자신의 말씀은 열매없이 그냥 그분에게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열매의 효과가 나타나도록 기도합시다. 그러면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령하신 아들이 영광과 큰 능력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반복해서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라고 기도하고 우리가 결코 실망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자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다니엘을 움직여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약속은 실현되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의 기도에 포함된 주된 요소들을 열거해 봅시다.
첫째. 다니엘은 하나님께 진지한 자세로 나아갔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별도의 특별 기도까지 올렸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단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 ”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정기적인 기도 이외에도 열심히 특별 기도를 드렸습니다.
둘째. 다니엘은 경외 심을 지니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오늘날 유행하는 감상적인 ‘사랑의 예수님’을 생각하며 조심없이 기도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론 하나님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했지만 자신과 친숙한 상대방의 신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엄연한 사실을 잠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4절)이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셋째, 다니엘은 참회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의 기도는 ‘고백’으로 시작되고 고백으로 끝납니다(20절). 이것은 겸손한 인간이 두려워할 크신 하나님을 찾으며 죄를 깊이 의식하고 자백하는 기도입니다. 다니엘의 이 자백은 그가 그의 소속된 조국과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언급된 죄악들은 유다 나라 전체의 죄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국가적인 차원의 죄를 고백했다고 해서 막연하게 일반적인 죄악들을 열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고백의 기도는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다음 구절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8절)…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9절)…(단9: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단9: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14절).…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15절). 이것은 고백의 기도입니다. 왕들과 관리들과 모든 백성들이 똑같은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순종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크나큰 일들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감사치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고백의 기도를 드린 후에 조국의 고난과 포로 생활이 죄의 열매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형벌이 마땅하다고 말하였습니다. 7절과 14절을 보십시오. (단9: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단9:1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은 11-14절에서 조국이 당한 비극은 일찍이 모세가 백성들이 하나님을 등질 때에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 말씀의 실현된 것에 불과함을 인정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형벌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이 사실을 깨닫자,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다른 약속, 곧 포로 생활이 종식된다는 약속을 지향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다니엘은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하였습니다. 4절은 엄숙하면서도 자애로운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단9: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 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다니엘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무궁한 인애도 알고 있었습니다. 9절과 18절에도 이 같은 하나님의 부드러운 측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단9: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단9: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 다니엘은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일을 잊으시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가 갖는 위대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애 하심을 믿었으므로 담대히 주께 나아가 자신의 소청을 아뢰었습니다. 다섯째, 다니엘은 하나님께 구체적인 요청을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황폐화된 예루살렘과 성전과 그 백성들을 보고 하나님께 진노를 거두시고 다시 은혜를 내려 달라고 간 구하였습니다. 그의 소청은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이었습니다. “(단9:16)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 의 성 예루살렘,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단9: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얼굴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단9: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단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여섯째, 다니엘은 강한 설득력과 끈기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모세처럼 하나님이 어째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하는지를 힘있게 역설하고, 간절함과 절급함으로 거듭 소청을 아뢰었습니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비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로써 다니엘은 15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킨 역사적인 대 구원 사건을 언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그같은 큰 구원을 하실 수 없단 말입니까 폭군의 손아귀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풀어내시는 일은 하나님이 처음 해 보시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16절에서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황폐를 지적하며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이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가만히 앉아 계실 수 없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지금 수모를 당하고 있는 백성들이 ‘주의 백성’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백성들, 곧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해 낸 언약의 백성들이 갖는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데 어찌 방관만 하실 수 있단 말이겠습니까 17절에서 다니엘의 설득은 더 한층 고조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에만 전적으로 봉헌된, 세상에서 둘도 없는 경배 처였습니다. 바로 이 성소가 황폐화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주께서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니엘은 이어서 성전이 위치한 도시가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18절)임을 하나님께 상기시켰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반역과 탈선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내던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알려져 있고 주의이름을 붙이고 있는 자들임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황폐화된 상황에 처해 있으면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손상될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운을 겪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보살피지 않거나 혹은 그들을 구해줄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오해될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을 보고서 그들의 하나님을 평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역사 하셔야 한다는 것이 다니엘의 호소이며 설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성과 영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참한 형편으로 인해 실추될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을 당하게 될 판국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내놓고 간절한 심정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19절에서 다시 한번 집약적으로 나옵니다. (단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당신은 언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까 이런 기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활동을 보려면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성경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위해 다니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남은 자들이 이런 식으로 기도할 때 역사는 바뀌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계시 다니엘의 기도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 까요 20-27절을 읽어보십시오. 위대한 발견은 위대한 기도를 낳았고, 위대한 기도는 위대한 계시를 낳았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그는 저녁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21절).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죄와 그 쓰디쓴 열매를 되씹으며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주께 탄원할 때, 위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가브리엘이 다시 그에게 와서 그를 만졌을 때에도 다니엘의 입술은 기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놀라운 사실을 먼저 알려주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한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브리엘이 신속히 그에게로 날아왔던 것입니다!(23절) 다니엘은 이번에도 하늘에서 내려운 방문객을 보고 두려워 떨었을까요
그렇다면 그의 두려움은 금방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자신이 하늘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거기서도 잘 알려져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목적이 장차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듣게 될 것이었으므로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위해 올렸던 그의 기도는 응답된 것이었습니다(23절).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이 계시를 받고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통찰력을 주기 위해 온 자였습니다. (단9: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24절과 25절을 풀어서 옮겨봅시다. “너는 70년의 기간과 이스라엘 및 예루살렘에 대하여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70년이라는 기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70주간(혹은 히브리어에서 처럼 칠십 ‘이레’)이 지나면 예루살렘은 다음 네 가지를 보게 될 것이다.”
첫째, 예루살렘에서 배도가 끝나고 죄악들이 종식되며 악행에 대해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뱉던 배도가 그치게 되고, 하나님의 형벌을 촉구하던 죄악들이 하나님의 눈에서 거두어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백성들을 갈라놓는 악행들을 처리하기 ㅜ이해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부터 칠십 ‘이레’가 되는 때에 죄에 대한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연로한 다니엘 선지자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 되었겠습니까! 다니엘의 기도에서는 커다란 죄가 가장 막중한 짐이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은 그 무거운 죄가 처리된 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었습니다.
둘째, 지금부터 칠십 ‘이레’가 되면 영원한 의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복음이란 단순히 죄가 용서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에 대한 죄의 기록이 지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중립적인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복음은 그 이상의 것을 약속해 줍니다. 복음은 죄인들이 노여워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복음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눈에 의롭게 비치도록 해줍니다.
셋째, 지금부터 칠십 ‘이레’가 되면 환상과 예언들이 봉해질 것이다“ 옛날의 두루마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다 일고 나면 말아서 봉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 속에는 미래에 대한 예언들과 환상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이 칠십 ‘이레’가 지나면 모두 성취된다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지금부터 칠십 ‘이레’가 되면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름부음이란 말이나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란 말은 본질적으로 같은 말입니다. 앞으로 오시게 될 메시야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은 이 모든 사건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칠십 ‘이레들’은 작적된 시기입니다. 미래에 발생될 이 사건들이 바로 가브리엘이 선포한 메시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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