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이레의 비밀 (단9:24-27)
본문
오늘 말씀 드리는 70이레의 비밀은 괭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모든 종말론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면 종말에 대한 어떠한 주장에도 흔들리지도, 혼동되도 않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모사면 늘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때문에 혹자는 말하기를 '이 말씀은 종말론의 뼈대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역사의 시간 우선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의 시간을 70이레로 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어간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작정하신 모든 일들 즉 유대인의 회복뿐아니라 인류의 구원까지도 다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린 때"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개념을 24-25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 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9:24-25)
우리는 이미 지나온 말씀들을 통하여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령이 내린 때" 대하여는 충분히 설명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즉 이 역사적 인 대 사건은 B.C.539년 1월 29일,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중동의 패권 을 잡은 메대와 파사의 왕 고레스가 그 해에 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성경은 다음과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온 나라 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 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 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 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 라 " (스1:1-3) 이 기간에 일어 날 사건들 70이레 동안에 일어날 기본적인 사건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는 영적인 문제로 인류 구원의 사건이고
둘째는 유대민족이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사건이고
셋째는 인류의 종말의 사건입니다.
첫째, 속죄 사역입니다. 24절을 조심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9:24) 인류의 구원과 관계된 일들은
1' 허물이 마치며
2' 죄가 끝나며
3' 죄악이 영속되며
4'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5' 이상과 예언이 응하"는 것니다. 그리고 이런 사역은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음 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헬라어로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지극히 거륵하신 자 곧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을 찾아 오시어 그리스도가 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둘째, 유대민족의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 가 이룰 것이며" (9:25) 이 말씀에는 세가지 사건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1) 예루살렘의 중건으로 이것은 일곱이레 동안에 진행되는 사건입니다.
2) 그리스도가 오시는 사건으로 육십이 이레가 지난 후의 일입니다.
3) 예루살렘은 곤란한 중에 중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 합니다. 그리고 먼저 성전을 중건하였고 다음으로 예루살렘 성을 중건 합니다. 그러나 이 공사는 경제적인 여건이나, 인원동원등의 문제뿐아 니라 이웃 민족의 방해 공작때문에 아주 어려운 공사를 하였습니다. 언제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 주변 국가의 위협을 받고 한쪽 손에는 공 사에 필요한 쟁기를, 또한쪽 손에는 이방민족의 침략을 저지할 무기 를 들고 공사를 진행하여야 했습니다. 이때의 형편을 성경은 다음과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 하는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 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느4:17-18) 과연 바벨론에서 시작되는 세계의 역사와 유대인의 회복, 그리고 예 루살렘의 중건이라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한폭의 드라마처럼 하나님의 작정과 예언하신대로 정확하게 역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큰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역사진행이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대로 움직이는 것은 앞으로 닦아오는 인류의 종말도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진다는 확 신을 갖게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우리 장로교인들 의 입장에서는 오직 경외와 아멘과 할렐루야가 있을 뿐입니다.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의 끝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는 언제 끝이 나며 또 끝이 나는 시점에는 어떤 사건이 발생합니까
첫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지는 것입니다.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 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9:-26)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 진다는 말씀의 원어는 이카레 트 입니다. 이 말슴의 본뜻은 자연히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작용을 통하여 없어지는 것을 가르칩니다. 과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연사를 한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운명하시게 됩니다.
둘째는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 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멸망 을 당합니다. 한 왕의 백성인 로마의 티투스 (Titus) 장군과 그가 이끄는 로마의 정예 부대는 A.D.70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무참히 살륙을 합니다. 초대 기독교 사가인 요세브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때 약 110만에 가 까운 유대인들이 살해되고, 9만7천명이 노예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 리고 예루살렘 성은 재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파괘되고, 맛사다에 서 끝가지 항전을 하던 유대의 민족주의자들은 전멸을 당하고 맙니다. 예루살렘은 본문 말씀대로 "홍수에 엄몰된 것처럼" 완전히 폐허가 되 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예수님은 "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 을 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 에 남지 않고 무너드리우리라 " (마24:2)고 하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의 증언 뿐아니라 예루살렘에 가면 우리의 눈으로 확 인할 수 있는 현장입니다. 이상과같이 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신 70이레 중 69이레는 흘러 갔습니다. 남은 한 이레 이제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인류 역사의 시간은 한이레가 남은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이레이기 때문에 이 한 에레의 의미는 더욱 심 각하고 신중합니다. 이 한 이레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해석 도 간단하지 아니합니다. 종말론에는 크게 두가지 큰 흐름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이 두가지 흐름은 한 이레를 보는 시각에도 두가지 의견을 제시 합니다. 두가지 흐름은
첫째는 역사론적인 입장이고
둘째는 미래적인 입장인 세대주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역사론적인 입장입니다. 이들은 한이레를 70이레의 계속적인 흐름으로 생각합니다. 그랬을때 생기는 의문점이 생기는데 70이레가 시작되어 69이레가 지 나는 시간보다 남은 한이레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 이들의 고민으로 남습니다. 즉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령이 내린 해가 B.C. 586년이라면 예루살 렘이 멸망한 해는 A.D.70년이니 이기간은 불과 600여년 밖에 되지 않 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부터 지금까지는 190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 도식상으로 균형이 맞지를 아니합니다. 두번째는 미래적인 학자들의 입장이 생깁니다. 이들은 이 한이례를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뚝떼내어 별개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이 한이레는 인류의 종말에 있을 한이레이고 69 이레 끝 과 1이레의 시작 사이에는 괭장히 긴 시간의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의 공백기가 지금까지 1900여년이나 흐렀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이공간에 대하여 언급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괄호시대라고 합니다. 그 리고 그 괄호시대에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 을 상대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 두가지중 어느 것이 옳은가를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성경을 읽으 면서 성경에서 정답을 도출해 내도록하겠습니다. 9장27절입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 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 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9:27) 두가지 견해 앞서 말씀드린 종말론의 두가지 입장은 그라고 하는 본문에서 가 장 중심이 되는 단어를 해석하는 견해에서 서로가 정반의 입장을 취 하게 됩니다. 즉 세대주의에서는 그를 적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역사 론적인 입장에서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세대주의의 입장 세대주의의 입장에서는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들은 문장의 흐름으로 보아 그라는 대명사는 앞서 있은 '한왕'으 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는 자연히 로마가 될터인데 로마는 지금은 지금 망하여 지상에 없으니 이들은 말하기를 인류종말에 로마 제국은 재생되어 적그리스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과 언약 을 맺는데 그것은 유대인과의 언약이고 이레의 절반까지 즉 전3년반 까지는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를 드리게 하나 후3년반에는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고 전권을 휘둘러 신자를 핍박하게 될것이라고 합니다. 둘재 역사론적인 입장 첫째로 역사론적인 입자에서는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한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한 이레의 기간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는 것 을 가르칩니다. 이 해석은 합리적인 것같습니다.
왜냐하면 한 이레의 기간을 정하신 분는 하나님이신 데 하나님이 작정하신 역사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가능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주어진 시간안 에서 활동은 할 수 있어도 기간을 굳게 정할 권세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즉 한이레가 시작되어 전3년반이 시작되면 예수님은 제사 와 예물을 폐지하십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오시으로 에루살 렘에서 소나 양이나 염소로 제사드리는 것은 무의미해 졌습니다. 히브 리서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 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 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 (히10:8-9) 칼빈은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날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구약의 의식을 폐지한다는 것 뿐 아니라 하늘이 열려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 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도록 하는 뜻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제물은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고 하였습니다. 미운 물건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에도 성전에서 소와 양으로 드리는 제사가 바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2) 24장15절에 근거하여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 증한 것이 거륵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하 여 로마군인들의 침략으로도 해석합니다.
3) 그러나 저는 이부분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징 미워하시는 것은 우상입니다.
그런데 그 미운 물건이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 자리에 세워졌고 그것은 수천년 동안 끄덕도 하지 아니합니다. 지금도 끄덕도하지 않고 서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 성전 자리,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 들려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던 그 자리에 이스람교의 성전이 들어서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진노란 단어는 네케라차 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완필 (完畢) 곧 변동할 수 없이 완전히 끝이 났다는 뜻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합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에 쏟아지는 시절입니다.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고 하였는 데 지금 중동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중신으로 게속해서 전쟁 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정탐한 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보고하엿지만 지금의 파레스타인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고장은 아 닙니다. 전쟁과 황폐함이 있을 뿐 입니다. 결론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한 이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주님의 재림과 인류의 종말이 가까왔는지를 알 수 있 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정확하게 응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꼭 신앙 생활을 정확하게 잘하여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경 제활동이나 사회생활보다도 더 정확하게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종말은 두번 있는것이 아닙니다. 예행연습도 없고 또 다시 주어지는 기회도 없습니다. 한번 실수하면 영원한 실수가 되고 마는 것이 바로 종말에 대한 실수입니다. 그러니 꼭 신앙생활을 잘 하여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모든 종말론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면 종말에 대한 어떠한 주장에도 흔들리지도, 혼동되도 않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모사면 늘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때문에 혹자는 말하기를 '이 말씀은 종말론의 뼈대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역사의 시간 우선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의 시간을 70이레로 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어간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작정하신 모든 일들 즉 유대인의 회복뿐아니라 인류의 구원까지도 다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린 때"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개념을 24-25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 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9:24-25)
우리는 이미 지나온 말씀들을 통하여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령이 내린 때" 대하여는 충분히 설명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즉 이 역사적 인 대 사건은 B.C.539년 1월 29일,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중동의 패권 을 잡은 메대와 파사의 왕 고레스가 그 해에 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성경은 다음과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온 나라 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 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 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 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 라 " (스1:1-3) 이 기간에 일어 날 사건들 70이레 동안에 일어날 기본적인 사건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는 영적인 문제로 인류 구원의 사건이고
둘째는 유대민족이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사건이고
셋째는 인류의 종말의 사건입니다.
첫째, 속죄 사역입니다. 24절을 조심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9:24) 인류의 구원과 관계된 일들은
1' 허물이 마치며
2' 죄가 끝나며
3' 죄악이 영속되며
4'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5' 이상과 예언이 응하"는 것니다. 그리고 이런 사역은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음 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헬라어로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지극히 거륵하신 자 곧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을 찾아 오시어 그리스도가 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둘째, 유대민족의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 가 이룰 것이며" (9:25) 이 말씀에는 세가지 사건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1) 예루살렘의 중건으로 이것은 일곱이레 동안에 진행되는 사건입니다.
2) 그리스도가 오시는 사건으로 육십이 이레가 지난 후의 일입니다.
3) 예루살렘은 곤란한 중에 중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 합니다. 그리고 먼저 성전을 중건하였고 다음으로 예루살렘 성을 중건 합니다. 그러나 이 공사는 경제적인 여건이나, 인원동원등의 문제뿐아 니라 이웃 민족의 방해 공작때문에 아주 어려운 공사를 하였습니다. 언제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 주변 국가의 위협을 받고 한쪽 손에는 공 사에 필요한 쟁기를, 또한쪽 손에는 이방민족의 침략을 저지할 무기 를 들고 공사를 진행하여야 했습니다. 이때의 형편을 성경은 다음과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 하는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 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느4:17-18) 과연 바벨론에서 시작되는 세계의 역사와 유대인의 회복, 그리고 예 루살렘의 중건이라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한폭의 드라마처럼 하나님의 작정과 예언하신대로 정확하게 역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큰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역사진행이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대로 움직이는 것은 앞으로 닦아오는 인류의 종말도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진다는 확 신을 갖게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우리 장로교인들 의 입장에서는 오직 경외와 아멘과 할렐루야가 있을 뿐입니다.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의 끝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는 언제 끝이 나며 또 끝이 나는 시점에는 어떤 사건이 발생합니까
첫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지는 것입니다.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 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9:-26)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 진다는 말씀의 원어는 이카레 트 입니다. 이 말슴의 본뜻은 자연히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작용을 통하여 없어지는 것을 가르칩니다. 과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연사를 한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운명하시게 됩니다.
둘째는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 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멸망 을 당합니다. 한 왕의 백성인 로마의 티투스 (Titus) 장군과 그가 이끄는 로마의 정예 부대는 A.D.70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무참히 살륙을 합니다. 초대 기독교 사가인 요세브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때 약 110만에 가 까운 유대인들이 살해되고, 9만7천명이 노예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 리고 예루살렘 성은 재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파괘되고, 맛사다에 서 끝가지 항전을 하던 유대의 민족주의자들은 전멸을 당하고 맙니다. 예루살렘은 본문 말씀대로 "홍수에 엄몰된 것처럼" 완전히 폐허가 되 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예수님은 "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 을 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 에 남지 않고 무너드리우리라 " (마24:2)고 하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의 증언 뿐아니라 예루살렘에 가면 우리의 눈으로 확 인할 수 있는 현장입니다. 이상과같이 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신 70이레 중 69이레는 흘러 갔습니다. 남은 한 이레 이제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인류 역사의 시간은 한이레가 남은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이레이기 때문에 이 한 에레의 의미는 더욱 심 각하고 신중합니다. 이 한 이레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해석 도 간단하지 아니합니다. 종말론에는 크게 두가지 큰 흐름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이 두가지 흐름은 한 이레를 보는 시각에도 두가지 의견을 제시 합니다. 두가지 흐름은
첫째는 역사론적인 입장이고
둘째는 미래적인 입장인 세대주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역사론적인 입장입니다. 이들은 한이레를 70이레의 계속적인 흐름으로 생각합니다. 그랬을때 생기는 의문점이 생기는데 70이레가 시작되어 69이레가 지 나는 시간보다 남은 한이레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 이들의 고민으로 남습니다. 즉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령이 내린 해가 B.C. 586년이라면 예루살 렘이 멸망한 해는 A.D.70년이니 이기간은 불과 600여년 밖에 되지 않 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부터 지금까지는 190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 도식상으로 균형이 맞지를 아니합니다. 두번째는 미래적인 학자들의 입장이 생깁니다. 이들은 이 한이례를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뚝떼내어 별개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이 한이레는 인류의 종말에 있을 한이레이고 69 이레 끝 과 1이레의 시작 사이에는 괭장히 긴 시간의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의 공백기가 지금까지 1900여년이나 흐렀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이공간에 대하여 언급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괄호시대라고 합니다. 그 리고 그 괄호시대에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 을 상대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 두가지중 어느 것이 옳은가를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성경을 읽으 면서 성경에서 정답을 도출해 내도록하겠습니다. 9장27절입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 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 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9:27) 두가지 견해 앞서 말씀드린 종말론의 두가지 입장은 그라고 하는 본문에서 가 장 중심이 되는 단어를 해석하는 견해에서 서로가 정반의 입장을 취 하게 됩니다. 즉 세대주의에서는 그를 적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역사 론적인 입장에서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세대주의의 입장 세대주의의 입장에서는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들은 문장의 흐름으로 보아 그라는 대명사는 앞서 있은 '한왕'으 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는 자연히 로마가 될터인데 로마는 지금은 지금 망하여 지상에 없으니 이들은 말하기를 인류종말에 로마 제국은 재생되어 적그리스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과 언약 을 맺는데 그것은 유대인과의 언약이고 이레의 절반까지 즉 전3년반 까지는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를 드리게 하나 후3년반에는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고 전권을 휘둘러 신자를 핍박하게 될것이라고 합니다. 둘재 역사론적인 입장 첫째로 역사론적인 입자에서는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한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한 이레의 기간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는 것 을 가르칩니다. 이 해석은 합리적인 것같습니다.
왜냐하면 한 이레의 기간을 정하신 분는 하나님이신 데 하나님이 작정하신 역사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가능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주어진 시간안 에서 활동은 할 수 있어도 기간을 굳게 정할 권세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즉 한이레가 시작되어 전3년반이 시작되면 예수님은 제사 와 예물을 폐지하십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오시으로 에루살 렘에서 소나 양이나 염소로 제사드리는 것은 무의미해 졌습니다. 히브 리서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 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 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 (히10:8-9) 칼빈은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날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구약의 의식을 폐지한다는 것 뿐 아니라 하늘이 열려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 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도록 하는 뜻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제물은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고 하였습니다. 미운 물건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에도 성전에서 소와 양으로 드리는 제사가 바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2) 24장15절에 근거하여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 증한 것이 거륵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하 여 로마군인들의 침략으로도 해석합니다.
3) 그러나 저는 이부분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징 미워하시는 것은 우상입니다.
그런데 그 미운 물건이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 자리에 세워졌고 그것은 수천년 동안 끄덕도 하지 아니합니다. 지금도 끄덕도하지 않고 서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 성전 자리,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 들려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던 그 자리에 이스람교의 성전이 들어서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진노란 단어는 네케라차 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완필 (完畢) 곧 변동할 수 없이 완전히 끝이 났다는 뜻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합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에 쏟아지는 시절입니다.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고 하였는 데 지금 중동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중신으로 게속해서 전쟁 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정탐한 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보고하엿지만 지금의 파레스타인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고장은 아 닙니다. 전쟁과 황폐함이 있을 뿐 입니다. 결론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한 이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주님의 재림과 인류의 종말이 가까왔는지를 알 수 있 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정확하게 응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꼭 신앙 생활을 정확하게 잘하여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경 제활동이나 사회생활보다도 더 정확하게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종말은 두번 있는것이 아닙니다. 예행연습도 없고 또 다시 주어지는 기회도 없습니다. 한번 실수하면 영원한 실수가 되고 마는 것이 바로 종말에 대한 실수입니다. 그러니 꼭 신앙생활을 잘 하여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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