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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된 인간 (단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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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 왕은 극히 사악한 인간이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낮추셨기 때문에 한때 교만했던 왕은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들의 종말이 항상 좋게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다니엘 5장의 교훈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걷는 길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 선(線)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만이 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들을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심의 기회를 많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여러 번 부르시고 간곡히 권유하며 설득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을 떠난 길을 한사코 걷지 말고 속히 돌아오기를 언제나 원하십니다. 자신들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고집하면서 걷는 자들은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내와 진노 사이의 좁은 영역을 지나갑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다 끝났다”고 하시고 그들을 포기하십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현재 가고 있는 그릇된 길에 그냥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 길이 곧 지옥행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못받는 것은 그들이 큰 죄인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主) 그리스도께서는 최악의 죄인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죄악의 분량이나 횟수가 많아서 영벌을 받는 자는 없습니다. 지옥에는 큰 죄인들도 있고 작은 죄인들도 있습니다. 인간들이 멸망하는 까닭은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내가 다할 때까지 자기들의 길을 걷습니다. 그들은 구주 예수님을 찾아가는 일도 없고 아집과 교만의 두꺼운 껍질 속에 깊이 뭍혀 살 뿐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을 낮추지 않기 때문에 파멸되고 있습니다. 본 장은 이 교훈을 우리의 심령 속에 뚜렷이 새겨 줍니다.
여기에는 다섯 명(벨사살, 사람의 손가락, 왕비, 다니엘, 다리오)의 인물들이 소개되는데 첫번째 주인공이 1절에서 4절까지 나옵니다. 벨사살 ‘벨사살’이란 ‘벨이여, 왕을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이교적인 이름입니다. 한때 많은 비평가들이 본 가사는 허구이며 밸사살이라는 왕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중동의 설형문자 문헌의 발견으로 벨사살 왕의 역사성이 확증되었습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성경이 옳고 비평가들이 틀렸습니다. 본 장에서느너 벨사살을 ‘왕’이라고 부르지만 그가 유일한 왕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바벨론 왕은 나보니두스(Nabonidus)였고 벨사살은 섭정을 행사하는 통치자였습니다. 벨사살은 나보니두스 왕의 모든 권한과 특권과 권위를 가졌으면서도 공식 호칭에서는 나보니두스가 항상 ‘왕’으로 불려지고 그는 조금 낮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는 나보니두스와 함께 바벨론을 통치했지만 제2인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왕들 사이에서 어떤 견해의 차이가 있었다면 나보니두스에게 최종 결정권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불화 없이 2인 통치가 원만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보니두스처럼 벨사살도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보니두스의 아들(혹은 양자)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본 장에 나오는 ‘부친’이란 말은 ‘조상’혹은 ‘조부’의 뜻으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벨사살이 느부갓네살의 아들이었다면 그는 다니엘서 4장까지의 큰 사건들을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보아왔을 것입니다. 즉, 누부갓네살 왕이 4명의 유대인 청년들의 탁월성을 발견하고 또한 그들이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들임을 알게 되었을 때, 벨사살도 함께 그 사실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는 또 다니엘이 자기 부친의 무서운 꿈을 해몽한 내용도 들었을 것이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용광로 속에서 거닐은 사실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부친이 짐승처럼 되었던 일과 말기에 가서 오랫동안 경배하지 않았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 된 사실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벨사살은 다니엘 및 그의 세 친구들과 함께 자란 셈이었습니다. 이 유대인 청소년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때의 나이가 14세였으니까 벨사실의 나이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벨사살은 다니엘이 기도를 하고 설교를 하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분명히 다니엘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 장에서 어릴 적부터 참 하나님을 섬기는 산 증인의 모습을 보아온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진리에 노출되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벨사살 왕도 똑같은 체험을 했던 자였습니다. 그에게도 자기 부친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구주께서는 벨사살 왕이 목격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그의 마음을 두드리셨습니다. 벨사살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가까운 자를 개인적으로 친밀히 다루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 부친이 여호와의 종이 된 사실을 목격하면서 회심이 무엇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 현재 자기가 왕으로 다스리는 궁궐에서 한때 칭송을 받고 경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물이 이제 만조백관(滿潮白官)들을 불러놓고 대향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벨사살 왕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는 시점이 드디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도 벨사살 왕은 하나님게 복종하기는 커녕 더욱더 하나님께 저항하였습니다. 그는 마음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산의 날이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는 불경건의 길에서 한 발자국을 더 떼어놓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금단(禁斷)의 선(線)을 넘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조금 더 멀어지는 그 한 발자국을 떼는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계산서를 받는 때입니다. 한번 더 떼어놓는, 하나님께 대한 경멸의 그 발자국을 한번 더 떼어놓는 순간 하나님은 “다 끝났다!”라는 최후 통첩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벨사살 왕이 회개할 기회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벨사살 왕의 이야기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줄 것입니다. 한 번 더 짓는 죄가 심판의 청구서를 받도록 합니다! 벨사살 왕의 마지막 죄는 거창한 주연(酒宴)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고대 바벨론에서는 그런 주지육림의 대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유명 인사들은 여러 귀빈들을 초대하여 실컷 마시고 놀았는데 그 목적은 순전히 주색잡기(酒色雜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밤새껏 놀다가 새벽녘이 되면 손님들은 곤드레가 되어 부축을 받아 귀가하면서 “시간을 잘 보내었다.”고 자랑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술에 취했을 때 그 영향이 어떻게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취하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하였습니다. 벨사살 왕은 술이 거나해지자 모든 예모와 체신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는 흥청대는 주객들을 향해 자기 선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탈취했을 때 약탈해 온 기물들을 함께 더럽히자고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경배할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성전 그릇들을 가지고 술을 퍼마실 작정이었습니다. 이런 짓을 하면서 그들은 바벨론의 우상들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벨사살 왕이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하늘의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짓밟는 신성 모독이었습니다. 왕은 귀빈 주객들의 손에 금그릇들을 쥐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비웃고 멸시하는 난행(亂行)을 자행케 하였습니다.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4절). 사람의 손가락 본 기사의 두번째 인물은 사람의 손가락입니다. 5절에서 9절까지를 읽고 생각해 봅시다. 본 장면을 상상해 그린 그림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손전체가 벽에 글자를 쓰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손 전체가 나나탄 것이 아니고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썼습니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쓰는데”(5절). ‘그 때’의 상황은 만취된 주객들의 음탕한 읏음소리와 천박한 육담(肉談)과 난봉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그들은 광취(狂醉)된 상태에서 이교의 신들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죄는 분수를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면서 흥청대며 즐거워하였습니다.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극도의 방종으로 왕과 고관들과 왕비들과 후궁들이 한데 어우러져 주지육림 속에서 놀아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새파랗게 질린 공포의 침묵이 연회장을 뒤덮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상황을 급변시키십니다. 오만한 벨사살왕의 패역행각은 일순간에 끝나고 만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생각과 말과 행위들을 모두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앞에 심판의 계산서를 내어놓았습니다! 바벨론의 관습에 따르면 연회장 한 쪽 끝에는 하나의 소형 단상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곳에는 샹들리에와 큰 촛대들이 밝게 빛나며 연회장의 주인되는 왕의 상좌가 놓여 있었습니다. 고고학적 자료에서 밝혀진 바로는 왕의 상단 보좌 뒤에는 백색 회반죽으로 바른 분벽(粉壁)이 있었습니다. 이 흰 벽 위에 하나의 어두운 형체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진탕 마시며 흥청거리던 연회장의 기고만장한 주객들의 시선이 일시에 이 이상한 형체로 쏠렸습니다. 흰 벽에 나타난 것은 사람의 손가락뿐이었습니다. 사람도, 팔도, 손도 없고 손가락만 있었습니다. 네 개의 글자가 왕과 만조백관들을 위시한 향연장의 모든 참석자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보았습니다. 이 글자들은 단순히 ‘쓰여진’ 것이 아니고 벽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왕의 분벽은 마치 그의 묘석을 방불케 하였습니다.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을 깊이 세겨진 왕의 묘비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포도주의 주기(酒氣)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은 잿빛으로 변했고 왕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습니다. 바벨론 왕의 오만스런 웃음과 안하무인격인 거드름과 방자한 불경건이 지금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왕은 혈색이 빠지고 양심이 짓눌려지는 가운데 무릎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세력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던 막강한 왕이 새파랗게 질려서 다리를 후들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왕은 공포에 사로잡혀 누구든지 분벽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하면 바벨론의 셋재 치리자로 삼아주겠다고 더듬거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청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글자 자체도 이상할 뿐 아니라 세상에 속하지 않은 손가락이 남긴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영적 통찰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질은 술판에서는 찾을 수 없는 법입니다. 주연은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네 글자는 연회장을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악인들이 최악의 악행들을 저지르며 즐거워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4).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악인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왕비 본 기사에 등장한 세번째 인물은 왕비입니다(10-12절). 이 왕비는 벨사살 왕에 속에 있는 후궁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2,3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연회장에 이미 참석해 있었습니다. 그럼 이 왕비는 누구일까요 그녀는 나보니두스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왕의 준허 없이도 스스로의 자격으로 왕궁 연회장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바벨론 제국의 제1인자였고, 벨사살 왕은 제2인자였던 것입니다. 벨사살 왕이 분벽의 글자를 해석하는 자에게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겠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서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이 잊은 것을 왕비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10-12절에서 왕비는 순전히 이교도의 입장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니엘이 초인적인 지혜를 지녔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다니엘만 불러 오면 분벽의 글자는 해석될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수수께끼도 풀 수 있고 어려운 문장도 설명해 줄 수 있는 총명한 인물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원하기만 하셨다면 벨사살 왕에게 다른 방법으로 글자의 해석을 알려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컨데 하나님은 신령한 손가락을 다시 보내어 벽에 썼던 글자의 뜻을 풀어주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메체를 간과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메시지가 그의 종을 통해서 설명되도록 하십니다. 인간의 입술을 통해 신령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남은자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구태여 그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신실한 성도들을 동역자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지속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종들을 제쳐놓고서 복음 사역을 진행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방법을 통해 세상에 그의 진리가 살아 있도록 하십니다. 다니엘은 본 장에서 등단하는 네번째 인물입니다. 13-19절까지 소개되는 다니엘의 이야기는 본 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13절에서 벨사살 왕이 다니엘에게 던진 질문들은, 그가 이미 다니엘에 대해서 상당히 알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벨사살 왕은 하나님의 방법과 인도하심을 의식적으로 무시한자였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신령한 사물들을 듣고 보면서 자랐지만 왕이 된 이후에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니엘도 왕궁에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선지자를 자기 궁궐에 두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전령을 자문으로 삼거나 막역한 친구로 삼는 일은 벨사살 왕이 가장 꺼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처음부터 다니엘을 그의 궁중에 두었더라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아무튼 이제 다니엘은 벨사살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왕은 14-16절에서 다니엘에게 상황 설명을 한 후 만일 다니엘이 벽에 쓰여진 글자를 해석해 준다면 큰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답변이 주어지기 전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쉬베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공포에 질린 만조백관들은 숨을 제대로 크게 쉬지 못하고 일체 침묵중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희롱했던 입들이 완전히 봉해진 것이었습니다. 창백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궁중의 대신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과연 무엇을 말해줄 것인지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다니엘의 첫마디는 약속된 선물들을 사양한다는 것이었습니다(17절). 그는 주변에 있는 점성가들과는 달리 개인의 유익을 바라고 답변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상이나 특혜를 구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돈을 보고 일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보상에 대한 사절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 세상의 영예로부터 초연해지면 세속인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도록 뇌물로 매수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은 청중의 귀에 거슬리든 말든 사실대로 진리를 발설할 작정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어서 벨사살 왕의 부친을 언급하였습니다.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18절). 벨사살은 나보니두스와 왕관을 나누어 쓰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옛날과 같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역사에서 느부갓네살보다 더 큰 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세와 영광은 모두 지고하신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보다 더 크신 분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권력 행사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이 그의 부친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낮추셨는지를 상기시켰습니다.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소처럼 풀을 먹으며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21절).
다니엘의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습니다. “왕께서는 마치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인물인 듯이 처신하였지만 당신보다 큰 자가 당신의 부친이었고 당신의 부친보다 더 큰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부친이 가졌던 것 중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로서 만인이 당신에게 책임을 져야 할지 몰라도 당신 자신은 당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 지고하신 하나님께 책임을 지고 해명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신 것을 다시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성까지도 회수해 가실 수 있습니다. 벨사살 왕이시여, 당신은 이 모든 진리를 알고 계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선왕을 낮추시고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신 사실을 아십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사람인 양 기고만장하며 독단적으로 살았습니다. 당신은 지나치셨습니다. 당신은 하늘의 하나님께 도전한 무엄하고 방자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찬양하였습니까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23절).“ “또 당신은 누구를 멸시하였습니까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였습니다’(23절).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손의 일부가 나타나서 벽에 글자를 새긴 것입니다. 이 글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지입니다!” 벨사살 왕은 자신의 교만을 정죄받았습니다. 성경에서 교만한 자란 엎드리지 않는 자입니다. 티끌을 쓰고 하나님 앞에 부복하지 않는 자는 교만한 인간입니다. 비록 친구들이나 가족의 눈에 거만한 자로 보이지 않고 이웃의 판단에 겸손한 모습으로 비칠지라도, 하나님 앞에 경배와 찬양의 자세로 나오지 않는 자는 마음이 오만한 인간입니다. 그런 자들의 교만심은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벨사살 왕은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닙니다. 그의 과오는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혀 상관치 않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어린아이처럼 나가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다스리시는 것을 원치도 않았습니다. 그는 정도가 지나쳐서 하나님을 감히 회롱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금단의 선을 넘는 지점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옥으로 향하는 특정한 도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교만한 길에 그대로 오래 마물고 있으면 곧 지옥에 닿게 됩니다.
분벽(粉壁)의 글자는 25절에 명시되어 있는데 모두 세 종류의 글자입니다. 그 중에서 한 글자는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 메네 메네는 ‘세어보았다. 세어보았다’는 뜻이고 데겔은 ‘달아보았다’는 뜻입니다. 한편 바르신(Pharsin)은 베레스(Peres)라는 단어의 복수형인데 우바르신(Uphrsin)은 ‘그리고’에 해당하는 ‘우’를 어두에 붙인 말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한 단어씩 짚어나가면서 단수형으로 풀어서 설명했기 때문에 벽에 새겨진 글자를 모두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벽 글자를 직역하면 ‘세어보았다 세어보았다. 달아보았다 그리고 나누었다’가 됩니다. 하나님이 겸비치 못한 벨사살 왕에게 주신 말씀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전체적인 뜻은 경건한 다니엘에 의해서 해설되었습니다. “메네는 ‘세어 보았다’는 뜻입니다. 벨사살 왕이여, 당신의 날 수가 세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정지 신호를 내리고 사악한 당신의 왕국을 끝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당신의 통치 기간은 종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해 동안 세어보시다가 끝마칠 때가 되어 ‘그만이다! 너의 다스림이 끝났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26절). “데겔은 ‘달아보았다’는 뜻입니다. 벨사살 욍이여, 당신이 살아온 인생의 모든 행위들을 하나님이 달아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렸을 적에 여호와께로 나아갈 수 있었던 모든 기회들을 거절한 사실을 주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오라고 손짓하신 일체의 초대들을 당신이 걷어찬 사실도 기록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손가락들이 벽위에다 쓴 것은 당신의 묘비명입니다. 그것들은 당신의 과거를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당신의 숨겨진 죄악들, 공개적인 죄들, 방탕과 육혹으로 보낸 시간들, 당신의 교만과 잔인성, 거룩한 사물들에 대한 멸시와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끈질긴 저항심,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달아보셨습니다. 하나님의 장부 속에는 당신의 죄악들이 조목조목 기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이 시작된 때부터 끝날 때까지의 과정과 내용을 다 훑어보시고 심히 부족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당신의 삶은 하나님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27절). 인간들이 하나님을 멸시할 때 하나님은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시자 않자 하나님이 전혀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의 희롱을 모두 달아보시고 장부에 기입해 두십니다. 한 가지도 잊혀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라는 초대를 묵살한 일들이 바짐없이 하늘 기록부에 기입됩니다.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기는 일들이 모두 장부에 기재됩니다. 복음적인 신앙을 경시하고 거룩한 성물들을 비웃으며 창조주의 온유하심을 거부하는 자들의 행위가 하늘에 기록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행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재한 기록부를 손에 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들을 다 듣고 계십니다. “나는 기독교와 상관이 없어요,”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일은 너무 힘들어요. 희생이 너무 크다니까요.” “나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질 필요가 없어요. 예수를 믿으면 남들이 나를 놀려댈 테니까요.” “예수쟁이들은 모두 극단주의자들입니다. 왜 내가 그런 무리에 끼어듭니까” “예수를 믿느니 내 손을 믿겠어요, 나는 내 손으로 벌어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러나 때가 차면 벽에 글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 일체의 어리석은 행위들은 종식되고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베레스는 ‘나누어졌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왕국은 나누어지고 멸망될 것입니다.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들이 막강한 세력으로 바벨론을 뒤엎을 것입니다. 왕국은 당신의 손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질 것입니다”(28절).
그런데 벨사살 왕이 잃는 것은 바벨론 왕국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궁극적으로 잃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이와 유사한 힐난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였으며 나중에는 하나님의 아들까지 배척하였다고 힐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포도원을 빼앗고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실 것이었습니다(마21:33-43). 바울도 동일한 맥락에서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의 복음의 메시지를 거절했을 때 그는 하나님이 그들의 특권을 빼앗아 이방인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행13:44-50). 복음이 거듭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면 이와 유사한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한사코 밀어내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를 네가 끝까지 거절하므로 나는 복음을 네게서 거두어 감으로써 너를 심판하겠다. 네가 비록 이제 눈물을 흐리면서 회개를 하려고 애쓸지라도 결코 회개할 수 없게 될 것이다”(히12:17).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서면 돌이킬 수 없는 땅을 딛게 됩니다. 그 떼에는 자비를 찾을 기회가 다 없어진 후입니다. 만사가 다 끝나고 그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무서운 심판뿐입니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10:27). 다리오 다니엘은 상(賞)을 원치 않았지만 벨사살 왕은 약속대로 포상해 주었습니다. 다니엘의 해석이 참되다고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29절). 그러나 본 사건의 막은 30절과 31절에 다섯번째 인물에 해당되는 다리오 왕이 소개됨으로써 금방 내리고 맙니다.
다니엘이 벽의 글자들을 풀이했던 그날 밤, 나보니두스의 군대는 바벨론 국경을 위협하던 메대와 바사군들을 무찌르기 위해 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먼저 속진하여 유프라테스 강물의 흐름을 바꾸고 도강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메대와 바사군들은 바벨론으로 진격하여 바벨론 제국을 정복해 버렸습니다. 벨사살 왕은 전날 밤에 그토록 무시하고 경멸했던 창조주의 정죄를 받아 그의 궁궐에서 시체로 나뒹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다니엘의 예언은 성취되었고 하나님은 이 세상 역사의 통솔자임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금머리는 은으로 된 가슴과 팔로 넘겨지고 62세의 늙은 다리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한번만 더 죄를 지으면 네 삶은 끝나게 될 것이다. 너의 벽에 글자가 박힐 때 나는 너를 영원한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 때에 하늘에서 만인이 입을 모아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눅12:30)라고 외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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