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갈 수 없는 질문 (단3:13-18)
본문
만약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신다면 제자가 되는 값을 미리 계산하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 제자가 되는 값을 계산하도록 요구하셨습니다. 그가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십자가의 군병이 된다는 것이 아이들의 병정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주님은 아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주와 함께 다스리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영적 싸움을 싸워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은 느브갓네살처럼, 우리 모두가 자기를 흉내내고 자기의 법을 따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신 마귀는 우리가 말없이 복종하기를 요구합니다. 세상 신의 통치는 가혹하고 잔인해서 그가 만든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면 맹렬한 풀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 악한 신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면 절하고 넘어가는 것보다 몇 배가 큰 대가를 치룰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자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그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 자입니다. 양심에 옳고 순결하고 참되면 아무런 주저함없이 따라나서는 자입니다. 잘못되고 추하고 거짓된 것은 단숨에 무시하기로 결단한 자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서로 섞을 수 없습니다. 물과 기름과 같습니다. 차라리 엘리야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낫습니다.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섬기라" 둘 중 하나를 섬길 수 있지만 둘 다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그 지령을 따를 것을 요구하지만 주님의 백성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여러분 가운데 이같이 결심하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신들을 경배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 오직 주님만을 따르리라"고 결단하십니까 끝까지 충성하십시오. 결코 후회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짐짓 그리하였느냐"는 이 말은 "정말 그리하였느냐"로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사실이냐"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냐"라고 물을 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첫째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면 "그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어물쩡하게 넘어갈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날카로운 질문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질문이 여러분이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두려워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질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느부갓네살은 대단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전제군주요 고용주요 영향력이 막강한 친구입니다. 그의 손 안에 그들의 내일과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들을 제국의 높은 자리에 앉힌 은혜를 베푼 자입니다. 앞날의 모든 승진은 그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세상적인 유익을 느부갓네살왕 같은 비신자의 호의를 통해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유혹입니다. 잘못된 것을 하도록 요청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상급자의 요청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고용주의 요청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후원자의 요청일 수도 있습니다. 유혹은 반드시 다가옵니다.
시련의 시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러한 때에 어떻게 이기고 설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의 느부갓네살은 이와 같이 물을 수도 있습니다. "네가 원하는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순복할 것인가" 그러한 순간 두 번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지 마십시오. 즉각 대답을 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이 진실한 것임을 즉각 나타내십시오. 느브갓네살 왕은 위압적인 어조로 묻습니다. 마치 땅위에서 어떤 인생이 자기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묻습니다. 그의 호의 아래 고용된 자가 감히 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노하고 분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냐" 그는 도대체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잘못 보고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사실일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제국이 아무리 넓어도 누가 감히 자기가 명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불신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을 향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네가 내 뜻을 어기고 교회에 나갔니 어떻게 부모의 명을 어기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니" 불신 부모뿐 아닙니다. 친구들도 여러분에게 물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니 그게 사실이냐 너 지금까지 우리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지 않았니 우리와 함께 유행가를 부르며 노래방을 출입하던 네가 왠 찬송가를 부르게 되었다니 그게 사실이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런 질문을 받을 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요"라고 주저하지 말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리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불이 켜진 촛불은 어두움 속에 숨겨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이 무거워야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빛을 말 아래 감추려고 합니다. 싸울 때는 숨어있다가 평화의 시기에 고개를 내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뒷골목 길을 통해서 하늘나라에 도달할 길은 없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은 왕의 질문 앞에 분명히 대답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숨어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공인이었습니다.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도록 세움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공인답게 처신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왕의 의식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 것은 바벨론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저런 핑계로 자기만 모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금신상을 두고 대답해야 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금신상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공적으로 항의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대해서 신실치 못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공적인 입장 표명을 해야하는 때가 있습니다. 공적으로 신앙인임을 고백하든지 아니면 우리 주님께 배신자가 되든지 결단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처음에 신앙생활을 할 때는 주일날에만 나오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가면은 우리가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지 고백하도록 강요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어울려 조용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습니다. 한동안 그들이 아무도 여러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여러분이 누군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익명으로 천국으로 여행할 수는 없습니다. 집집마다 식구마다 소속을 결정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수줍음을 타는 주부라도 소속을 밝혀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나서기를 싫어하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말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밝혀야 할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는 질문 앞에 대답할 말을 준비하십시오. 핍박자의 질문 앞에 우리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왜 믿으며 누구를 믿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답할 준비를 하십시오. 왜 여러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지, 왜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지를 보여 주십시오. 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하듯이 처신할 수 없는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러분의 성품이 변화된 것을 나타내여 주십시오. 이전에 중생하기 전에 한때 즐기던 그 일을 이제 하고 싶은 욕망이 없어졌음을 밝혀주십시오. 성경의 논리에 따라 생각할 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어오면 대답하십시오. "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실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의 눈을 밝히셔서 참 빛을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하셨고 내 죄의 짐을 벗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고 내 마음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죄 중에 사는 것을 즐기므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슬프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값을 치르고 산 자이므로 더 이상 내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나를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들이 누구며 왜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지 못했다면 이와 같이 왕을 대항하는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먼저 머리로 이해를 해야 마음을 굳게 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하며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유혹의 시간에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분명히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넘어지는 상황에서 견고히 섰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언제나 신실하게 처신하도록 조심하십시오. 피상적인 고백은 철저한 배교의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에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수도권에 사람들이 살 때에 한번도 거기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지고 비바람이 불면은 거기가 안전한 거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고백도 시험대에 오를 것입니다. "정말 그러하냐"고 여러분 각자에게 물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며 진실한 것을 마음에 굳게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기도한다고 찬양한다고 가르친다고 설교한다고 모두가 다 진실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간증도 마찬가지입니다. 꾸며내고 진실하지 못한 거품이 많습니다. 필요한 것은 건실한 실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비바람이라도 감당할 만한 참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시작이 바르게 되어야 하며 과정이 진실해야만 합니다. 빌려온 신앙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한손 건넌 체험을 가지고는 환란의 비바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고백하는 진리마다 우리 자신의 것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사실이냐" 고 물어올 때 즉각 답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러고 나서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이 엄숙한 결단에 따라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기대고 있는 사람이 떠나가면 신앙의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내를 의지하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어머니 신앙 그늘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남편이나 아버지를 의존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친구나 선생님, 아니면 존경하는 목사님을 의존해서 신앙 생활하는 분들은 없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누구도 여러분의 인생길에 동반자가 항상 되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인생길에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죽음길에 동반자는 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를 홀로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스스로 신앙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편이 지혜롭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고 거기 입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떠하든지 자기가 믿는 바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뜻을 정하고 목적한 바를 혼자서라도 실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바른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 어찌든지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다른사람 어찌든지 나는 주의 군사되어 충성을 맹세하리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런 신앙인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시대에 그렇게 처신하며 살았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온 세상을 거스려" 살던 사람입니다. 온 세상을 거스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자기 세상을 진리로 설득했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이 이제 결단했다면 영원한 빛 속에서 행동하십시오. 왕의 위협과 풀무의 열기로 상황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기다리는 영원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약속된 영원한 생명을 두고 상황을 판단하십시오. 나팔과 피리와 수금 소리에 동요되지 마시고 영광스런 하늘음악에 마음을 두십시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하나님께서 미소를 띄우심을 기억하십시오. 정직했기에 엄청난 부자가 되지 못해도 깨끗한 양심으로 영원한 기업을 소유하십시오. 불의와 타협하므로 자리를 지키지 못했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안정된 직장보다 평안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맹렬히 타오르는 풀무를 계산에 넣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들은 유한한 생명보다 끝없는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세 친구들이 영생을 믿지 않았다면 치솟는 불길의 위협 앞에 굴복했을 것입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교자들이 영원히 사는 것을 믿지 못했다면 그들은 순교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막 받으려고 하는 고문을 영원히 보상해 주리라는 신앙이 없었다면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뻔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만을 소망했다면 그들이야말로 제일 손해를 볼뻔 했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런 약속을 믿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아" 그들은 영원을 두고 시간을 간음해보았습니다. 잔혹한 죽음과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는 것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순교자들은 영원히 훨씬 더 중하다고 느꼈기에 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의 세 친구들도 보이지 않는 분을 바라보았기에 이성을 잃고 위협하는 폭군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장차 받을 영광스런 보상을 귀중히 여겼기 때문에 감히 폭군의 분노 앞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미래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십시오. 거기서부터 거룩한 능력을 공급받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현세를 전부로 알고 살아가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을 이 세상 많은 것들에 팔아 넘길 것입니다. 영원을 바라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산다면 여러분을 의의 길에서 유혹할 뇌물이 없을 것입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이여 나를 떠나가라"는 무서운 선고를 여러분의 귀가 듣는다면 그 저주에 동참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복된 선언을 들은 적이 있다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르기로 굳게 결심할 것입니다. 영원히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제 결단하십시오. "정말 그러하냐"고 물어올 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제 두 번째로 정말 그러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합니까 만약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기꺼이 따르지 못한다면 무슨 결과가 있을 것인지 살펴봅시다. 아무런 신앙고백도 해서는 안됩니다. 세례고 성찬이고, 교회등록이고 신자가 되는 것이고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우상을 버린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신실하지 못하다면 그의 제자라고 고백해서는 안됩니다. 세상과 결혼한 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거룩한 싸움에 참여할 자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것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솔직히 그것을 취소하십시오. 계속 속이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짓 고백은 큰 죄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당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투명하고 진지하고 성실하십시오. "나는 진리를 위해서 고난받을 수 없어, 주님을 따르지만 손해보지 않는 한도 안에서 따를 수 있어, 좋은 길일 때는 가능하지만 진흙탕에 발을 빠뜨릴 수는 없어"라고 마음속에 말하는 분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돌아서십시오. 천국을 향한 순례의 길에는 좋은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비가 내리는 길, 때로는 질퍽거리는 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만약 앞길에 낙망의 수렁텅이가 있다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한다면 멸망의 도시로 발길을 돌리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살다가 나왔던 그 멸망의 도시를 향해서 발길을 다시 되돌리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 한다면, 사람을 두려워 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할 수 없다면 마치 싸우기 위해서 기드온에게 나아왔으나 두려워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군사와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300명의 기드온 용사 가운데 포함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처럼 살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그리하였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을 할 수 없는 자라면 옛 삶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양심을 또한번 속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 가운데 확고한 결심은 서지 않았어도 어느 방향이 옳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옛날처럼 죄짓고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아무것 모르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사는 것은 여러분을 만족시키지 않는 다는 것을 여러분의 양심이 알고 있습니다. 무지와 죄악의 종노릇을 하기에는 하나님이 너무나 많은 진리를 여러분의 심령에 공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들은 더 이상 세상에 파묻혀 살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앞으로 달려가기를 두려워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여러분을 추적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고문할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해서 포기하고 만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부끄러워 하던 자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수치심에 사로잡힌 그를 숨길 장소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자를 향해 사람들을 향해서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소리칠 것입니다. 하찮은 여종의 미소를 얻기 위해서, 추악한 패거리들의 조롱을 면하기 위해서, 몇 푼의 돈을 손에 넣기 위해서, 동료 인간들 사이에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해서 자기 구주에게 등을 돌리고 주님을 팔아 넘기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슨 말을 그에게 할 수 있을까요 누가 그를 위해 변명할 수 있을까요 하늘의 천사도 영광의 주님을 부끄러워 한 사람을 멀리 할 것입니다.
부끄러움으로 옷입고 영원한 멸시를 받을 것입니다. 지옥 조차도 그를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온 많은 사람들도 그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런 사람이 여기는 없습니까 속히 나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주님을 믿고 죄를 멀리한다는 여러분의 고백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조용히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고백이 진실되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지금껏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손상시키고 살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껏 주의 원수에게 비방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브갓네살 앞에서 타협했다면 주님의 이름에 수치를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원리를 내세우다가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꼬리를 감추는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말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벨론 왕은 절하라고 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명합니다. 어느 명령에 하나님의 백성은 순종해야 합니까 누구 명령을 더 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 이것은 한 번만 절하는 것이고 이것은 다만 외형적이지 마음은 그렇지 않아'라고 변명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부어만든 우상에 절을 하면 그들은 여호와보다 느브갓네살의 명령을 중요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보다 생명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세 친구들은 이것저것 따져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협적인 답안을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악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일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의 종들이 양심을 거스리는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잘못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내세우고 먹여 살릴 많은 가족을 앞세우고 그들의 입장과 앞으로 교회에 큰 유익을 입힐 것을 말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향한 비겁함을 용서할 구실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지금 조그만 잘못을 함으로써 장차 큰 유익을 하나님 나라에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스스로 속지 마십시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우리 양심을 마비시키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부인한다고 하면, 만약 여러분이 우상앞에 절 한다고 하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축복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축복 그것이 뭐 중요한냐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줄 모르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달리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병상에 누워 영원을 바라보며 지금껏 여러분이 평가해 온 것들을 달리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과 최후의 선고가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모든 마음의 비밀이 드러나는 그 큰 날을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의 눈으로만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중 여러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영원을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한 그릇 팥죽에 장자의 권리를 팔고나면 결국 후회할 것입니다. 숨을 거두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구해도 다시 회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세상에서는 개선의 희망도 없고 죄의 결과를 피할 길도 없습니다.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바라보며 피할 길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너무 죄악에 결속되어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에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주님을 팔아넘긴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사람의 눈쌀찌푸림을 겁내고 아니 사람들의 미소를 얻기 위해 영원한 삶을 지나가게 하지 마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떠나시면 모든 것이 떠나갑니다. 여러분의 구주를 잃고나면 여러분 자신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좋은 친구되신 주님을 떠나기 보다 차라리 가장 험난한 여정을 택하십시오. "정말 그러하냐"는 질문은 엄숙한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실인척 하지 마십시오. 모든 죄에 거짓고백의 죄까지 첨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실하게 행동하십시오.
셋째로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슨 결과가 뒤따르는지 살펴봅시다.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혼자 정리해 보십시오. "그래,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우상 앞에 절을 해서는 안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밝히기를 요구받는다면 먼저 여러분의 결심을 선포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돕는 것이고 그것을 듣는 주위 형제자매를 돕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화가 난 왕 앞에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했습니다. 시련에서부터 도피할 길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오후 부전기도원에서 여름 새생명 간담회를 가진 것도 동일한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간 동안에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고백하므로서 우리는 돌아갈 길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전에 살던 삶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역사했다고 고백하면 우리는 그 고백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거기에 따른 결과를 기쁘게 수용하십시오. 불꽃으로부터 움추려들지 마십시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어떠한 손해도, 어떠한 십자가도, 어떠한 수치도, 어떠한 고난도 여러분을 겁쟁이로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는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그들은 왕에게 아첨하여 애원하지 아니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는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우리를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겠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너무 경솔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기는 것을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너무 오래 앉아서 계산만 하고 있어선 안됩니다. 신중함을 핑계하고 자기 유익만 챙겨서는 안됩니다. 어떤 값을 치르든지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요구하더라도 바른 일이면 행하십시오. 그리스도를 무엇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는 신앙을 잃지 않으면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손에 잡았던 모든 것을 우리의 생명조차라도 우리는 잃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때에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분은 아무것도 잃지 아니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잃을 수 있으나 여러분은 영원을 보상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은 천국을 얻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을 험할 수 있습니다. 핍박과 궁핍과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결국 여러분은 얻는 자가 될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노정을 신경쓰지 마십시오. 종착지가 모든 것을 보상하고 남습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도 천국의 부요함과 비교하면 쓰레기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어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했다면 구원을 내다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은 여러분을 불에 던져 넣을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서 여러분을 태울 수는 없습니다. 원수는 여러분을 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꽃은 여러분의 결박을 풀어줄 것입니다.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걸을 것입니다. 던져짐을 통해서 여러분은 존귀함을 얻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손해를 보나 일생을 두고, 영원을 두고 여러분은 결코 손해보지 아니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변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시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올바른 일을 하십시오. 결과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하나님은 자기 눈동자와 같이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시련을 통해서 고결한 성품을 얻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해서 일어서면 구원받을 뿐 아니라 엄청난 선한 영향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이 세 젊은이의 능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풀무 속에 던짐을 당했지만 거기서 나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함부로 말하는 자는 그 몸을 쪼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요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원리에서 물러서기 시작하는 사람은 여러분을 멸시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땅에 버려진 소금과 같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밝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에서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별과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신앙원리를 숨기고 처신하면 큰 손해를 교회에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인정받는 사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런 맛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의해서 흔들리는 사람은 세상을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조차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진실되고 용감하고 선한 자의 힘은 가장 악하고 교만한 사람조차 움직여 놓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과 바른 영을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이를 위해서 자기 모두를 바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바라봅시다. 그의 상처에서부터 솟아나는 보혈과 생수의 능력에 우리를 내어 맡깁시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의 삶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역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띠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에 인정받는 고귀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지만 진정한 신자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그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 자입니다. 양심에 옳고 순결하고 참되면 아무런 주저함없이 따라나서는 자입니다. 잘못되고 추하고 거짓된 것은 단숨에 무시하기로 결단한 자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서로 섞을 수 없습니다. 물과 기름과 같습니다. 차라리 엘리야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낫습니다.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섬기라" 둘 중 하나를 섬길 수 있지만 둘 다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그 지령을 따를 것을 요구하지만 주님의 백성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여러분 가운데 이같이 결심하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신들을 경배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 오직 주님만을 따르리라"고 결단하십니까 끝까지 충성하십시오. 결코 후회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짐짓 그리하였느냐"는 이 말은 "정말 그리하였느냐"로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사실이냐"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냐"라고 물을 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첫째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면 "그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어물쩡하게 넘어갈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날카로운 질문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질문이 여러분이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두려워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질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느부갓네살은 대단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전제군주요 고용주요 영향력이 막강한 친구입니다. 그의 손 안에 그들의 내일과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들을 제국의 높은 자리에 앉힌 은혜를 베푼 자입니다. 앞날의 모든 승진은 그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세상적인 유익을 느부갓네살왕 같은 비신자의 호의를 통해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유혹입니다. 잘못된 것을 하도록 요청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상급자의 요청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고용주의 요청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후원자의 요청일 수도 있습니다. 유혹은 반드시 다가옵니다.
시련의 시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러한 때에 어떻게 이기고 설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의 느부갓네살은 이와 같이 물을 수도 있습니다. "네가 원하는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순복할 것인가" 그러한 순간 두 번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지 마십시오. 즉각 대답을 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이 진실한 것임을 즉각 나타내십시오. 느브갓네살 왕은 위압적인 어조로 묻습니다. 마치 땅위에서 어떤 인생이 자기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묻습니다. 그의 호의 아래 고용된 자가 감히 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노하고 분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냐" 그는 도대체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잘못 보고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사실일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제국이 아무리 넓어도 누가 감히 자기가 명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불신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을 향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네가 내 뜻을 어기고 교회에 나갔니 어떻게 부모의 명을 어기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니" 불신 부모뿐 아닙니다. 친구들도 여러분에게 물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니 그게 사실이냐 너 지금까지 우리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지 않았니 우리와 함께 유행가를 부르며 노래방을 출입하던 네가 왠 찬송가를 부르게 되었다니 그게 사실이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런 질문을 받을 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요"라고 주저하지 말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리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불이 켜진 촛불은 어두움 속에 숨겨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이 무거워야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빛을 말 아래 감추려고 합니다. 싸울 때는 숨어있다가 평화의 시기에 고개를 내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뒷골목 길을 통해서 하늘나라에 도달할 길은 없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은 왕의 질문 앞에 분명히 대답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숨어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공인이었습니다.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도록 세움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공인답게 처신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왕의 의식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 것은 바벨론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저런 핑계로 자기만 모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금신상을 두고 대답해야 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금신상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공적으로 항의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대해서 신실치 못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공적인 입장 표명을 해야하는 때가 있습니다. 공적으로 신앙인임을 고백하든지 아니면 우리 주님께 배신자가 되든지 결단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처음에 신앙생활을 할 때는 주일날에만 나오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가면은 우리가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지 고백하도록 강요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어울려 조용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습니다. 한동안 그들이 아무도 여러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여러분이 누군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익명으로 천국으로 여행할 수는 없습니다. 집집마다 식구마다 소속을 결정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수줍음을 타는 주부라도 소속을 밝혀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나서기를 싫어하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말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밝혀야 할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는 질문 앞에 대답할 말을 준비하십시오. 핍박자의 질문 앞에 우리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왜 믿으며 누구를 믿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답할 준비를 하십시오. 왜 여러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지, 왜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지를 보여 주십시오. 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하듯이 처신할 수 없는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러분의 성품이 변화된 것을 나타내여 주십시오. 이전에 중생하기 전에 한때 즐기던 그 일을 이제 하고 싶은 욕망이 없어졌음을 밝혀주십시오. 성경의 논리에 따라 생각할 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어오면 대답하십시오. "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실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의 눈을 밝히셔서 참 빛을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하셨고 내 죄의 짐을 벗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고 내 마음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죄 중에 사는 것을 즐기므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슬프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값을 치르고 산 자이므로 더 이상 내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나를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들이 누구며 왜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지 못했다면 이와 같이 왕을 대항하는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먼저 머리로 이해를 해야 마음을 굳게 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하며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유혹의 시간에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분명히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넘어지는 상황에서 견고히 섰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언제나 신실하게 처신하도록 조심하십시오. 피상적인 고백은 철저한 배교의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에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수도권에 사람들이 살 때에 한번도 거기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지고 비바람이 불면은 거기가 안전한 거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고백도 시험대에 오를 것입니다. "정말 그러하냐"고 여러분 각자에게 물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며 진실한 것을 마음에 굳게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기도한다고 찬양한다고 가르친다고 설교한다고 모두가 다 진실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간증도 마찬가지입니다. 꾸며내고 진실하지 못한 거품이 많습니다. 필요한 것은 건실한 실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비바람이라도 감당할 만한 참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시작이 바르게 되어야 하며 과정이 진실해야만 합니다. 빌려온 신앙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한손 건넌 체험을 가지고는 환란의 비바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고백하는 진리마다 우리 자신의 것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사실이냐" 고 물어올 때 즉각 답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러고 나서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이 엄숙한 결단에 따라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기대고 있는 사람이 떠나가면 신앙의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내를 의지하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어머니 신앙 그늘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남편이나 아버지를 의존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친구나 선생님, 아니면 존경하는 목사님을 의존해서 신앙 생활하는 분들은 없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누구도 여러분의 인생길에 동반자가 항상 되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인생길에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죽음길에 동반자는 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를 홀로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스스로 신앙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편이 지혜롭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고 거기 입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떠하든지 자기가 믿는 바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뜻을 정하고 목적한 바를 혼자서라도 실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바른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 어찌든지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다른사람 어찌든지 나는 주의 군사되어 충성을 맹세하리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런 신앙인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시대에 그렇게 처신하며 살았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온 세상을 거스려" 살던 사람입니다. 온 세상을 거스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자기 세상을 진리로 설득했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이 이제 결단했다면 영원한 빛 속에서 행동하십시오. 왕의 위협과 풀무의 열기로 상황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기다리는 영원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약속된 영원한 생명을 두고 상황을 판단하십시오. 나팔과 피리와 수금 소리에 동요되지 마시고 영광스런 하늘음악에 마음을 두십시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하나님께서 미소를 띄우심을 기억하십시오. 정직했기에 엄청난 부자가 되지 못해도 깨끗한 양심으로 영원한 기업을 소유하십시오. 불의와 타협하므로 자리를 지키지 못했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안정된 직장보다 평안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맹렬히 타오르는 풀무를 계산에 넣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들은 유한한 생명보다 끝없는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세 친구들이 영생을 믿지 않았다면 치솟는 불길의 위협 앞에 굴복했을 것입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교자들이 영원히 사는 것을 믿지 못했다면 그들은 순교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막 받으려고 하는 고문을 영원히 보상해 주리라는 신앙이 없었다면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뻔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만을 소망했다면 그들이야말로 제일 손해를 볼뻔 했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런 약속을 믿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아" 그들은 영원을 두고 시간을 간음해보았습니다. 잔혹한 죽음과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는 것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순교자들은 영원히 훨씬 더 중하다고 느꼈기에 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의 세 친구들도 보이지 않는 분을 바라보았기에 이성을 잃고 위협하는 폭군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장차 받을 영광스런 보상을 귀중히 여겼기 때문에 감히 폭군의 분노 앞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미래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십시오. 거기서부터 거룩한 능력을 공급받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현세를 전부로 알고 살아가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을 이 세상 많은 것들에 팔아 넘길 것입니다. 영원을 바라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산다면 여러분을 의의 길에서 유혹할 뇌물이 없을 것입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이여 나를 떠나가라"는 무서운 선고를 여러분의 귀가 듣는다면 그 저주에 동참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복된 선언을 들은 적이 있다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르기로 굳게 결심할 것입니다. 영원히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제 결단하십시오. "정말 그러하냐"고 물어올 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제 두 번째로 정말 그러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합니까 만약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기꺼이 따르지 못한다면 무슨 결과가 있을 것인지 살펴봅시다. 아무런 신앙고백도 해서는 안됩니다. 세례고 성찬이고, 교회등록이고 신자가 되는 것이고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우상을 버린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신실하지 못하다면 그의 제자라고 고백해서는 안됩니다. 세상과 결혼한 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거룩한 싸움에 참여할 자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것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솔직히 그것을 취소하십시오. 계속 속이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짓 고백은 큰 죄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당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투명하고 진지하고 성실하십시오. "나는 진리를 위해서 고난받을 수 없어, 주님을 따르지만 손해보지 않는 한도 안에서 따를 수 있어, 좋은 길일 때는 가능하지만 진흙탕에 발을 빠뜨릴 수는 없어"라고 마음속에 말하는 분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돌아서십시오. 천국을 향한 순례의 길에는 좋은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비가 내리는 길, 때로는 질퍽거리는 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만약 앞길에 낙망의 수렁텅이가 있다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한다면 멸망의 도시로 발길을 돌리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살다가 나왔던 그 멸망의 도시를 향해서 발길을 다시 되돌리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 한다면, 사람을 두려워 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할 수 없다면 마치 싸우기 위해서 기드온에게 나아왔으나 두려워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군사와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300명의 기드온 용사 가운데 포함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처럼 살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그리하였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을 할 수 없는 자라면 옛 삶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양심을 또한번 속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 가운데 확고한 결심은 서지 않았어도 어느 방향이 옳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옛날처럼 죄짓고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아무것 모르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사는 것은 여러분을 만족시키지 않는 다는 것을 여러분의 양심이 알고 있습니다. 무지와 죄악의 종노릇을 하기에는 하나님이 너무나 많은 진리를 여러분의 심령에 공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들은 더 이상 세상에 파묻혀 살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앞으로 달려가기를 두려워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여러분을 추적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고문할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해서 포기하고 만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부끄러워 하던 자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수치심에 사로잡힌 그를 숨길 장소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자를 향해 사람들을 향해서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소리칠 것입니다. 하찮은 여종의 미소를 얻기 위해서, 추악한 패거리들의 조롱을 면하기 위해서, 몇 푼의 돈을 손에 넣기 위해서, 동료 인간들 사이에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해서 자기 구주에게 등을 돌리고 주님을 팔아 넘기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슨 말을 그에게 할 수 있을까요 누가 그를 위해 변명할 수 있을까요 하늘의 천사도 영광의 주님을 부끄러워 한 사람을 멀리 할 것입니다.
부끄러움으로 옷입고 영원한 멸시를 받을 것입니다. 지옥 조차도 그를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온 많은 사람들도 그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런 사람이 여기는 없습니까 속히 나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주님을 믿고 죄를 멀리한다는 여러분의 고백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조용히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고백이 진실되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지금껏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손상시키고 살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껏 주의 원수에게 비방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브갓네살 앞에서 타협했다면 주님의 이름에 수치를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원리를 내세우다가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꼬리를 감추는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말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벨론 왕은 절하라고 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명합니다. 어느 명령에 하나님의 백성은 순종해야 합니까 누구 명령을 더 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 이것은 한 번만 절하는 것이고 이것은 다만 외형적이지 마음은 그렇지 않아'라고 변명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부어만든 우상에 절을 하면 그들은 여호와보다 느브갓네살의 명령을 중요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보다 생명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세 친구들은 이것저것 따져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협적인 답안을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악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일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의 종들이 양심을 거스리는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잘못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내세우고 먹여 살릴 많은 가족을 앞세우고 그들의 입장과 앞으로 교회에 큰 유익을 입힐 것을 말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향한 비겁함을 용서할 구실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지금 조그만 잘못을 함으로써 장차 큰 유익을 하나님 나라에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스스로 속지 마십시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우리 양심을 마비시키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부인한다고 하면, 만약 여러분이 우상앞에 절 한다고 하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축복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축복 그것이 뭐 중요한냐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줄 모르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달리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병상에 누워 영원을 바라보며 지금껏 여러분이 평가해 온 것들을 달리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과 최후의 선고가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모든 마음의 비밀이 드러나는 그 큰 날을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의 눈으로만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중 여러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영원을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한 그릇 팥죽에 장자의 권리를 팔고나면 결국 후회할 것입니다. 숨을 거두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구해도 다시 회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세상에서는 개선의 희망도 없고 죄의 결과를 피할 길도 없습니다.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바라보며 피할 길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너무 죄악에 결속되어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에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주님을 팔아넘긴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사람의 눈쌀찌푸림을 겁내고 아니 사람들의 미소를 얻기 위해 영원한 삶을 지나가게 하지 마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떠나시면 모든 것이 떠나갑니다. 여러분의 구주를 잃고나면 여러분 자신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좋은 친구되신 주님을 떠나기 보다 차라리 가장 험난한 여정을 택하십시오. "정말 그러하냐"는 질문은 엄숙한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실인척 하지 마십시오. 모든 죄에 거짓고백의 죄까지 첨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실하게 행동하십시오.
셋째로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슨 결과가 뒤따르는지 살펴봅시다.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혼자 정리해 보십시오. "그래,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우상 앞에 절을 해서는 안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밝히기를 요구받는다면 먼저 여러분의 결심을 선포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돕는 것이고 그것을 듣는 주위 형제자매를 돕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화가 난 왕 앞에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했습니다. 시련에서부터 도피할 길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오후 부전기도원에서 여름 새생명 간담회를 가진 것도 동일한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간 동안에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고백하므로서 우리는 돌아갈 길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전에 살던 삶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역사했다고 고백하면 우리는 그 고백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거기에 따른 결과를 기쁘게 수용하십시오. 불꽃으로부터 움추려들지 마십시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어떠한 손해도, 어떠한 십자가도, 어떠한 수치도, 어떠한 고난도 여러분을 겁쟁이로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는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그들은 왕에게 아첨하여 애원하지 아니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는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우리를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겠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너무 경솔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기는 것을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너무 오래 앉아서 계산만 하고 있어선 안됩니다. 신중함을 핑계하고 자기 유익만 챙겨서는 안됩니다. 어떤 값을 치르든지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요구하더라도 바른 일이면 행하십시오. 그리스도를 무엇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는 신앙을 잃지 않으면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손에 잡았던 모든 것을 우리의 생명조차라도 우리는 잃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때에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분은 아무것도 잃지 아니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잃을 수 있으나 여러분은 영원을 보상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은 천국을 얻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을 험할 수 있습니다. 핍박과 궁핍과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결국 여러분은 얻는 자가 될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노정을 신경쓰지 마십시오. 종착지가 모든 것을 보상하고 남습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도 천국의 부요함과 비교하면 쓰레기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어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했다면 구원을 내다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은 여러분을 불에 던져 넣을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서 여러분을 태울 수는 없습니다. 원수는 여러분을 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꽃은 여러분의 결박을 풀어줄 것입니다.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걸을 것입니다. 던져짐을 통해서 여러분은 존귀함을 얻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손해를 보나 일생을 두고, 영원을 두고 여러분은 결코 손해보지 아니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변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시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올바른 일을 하십시오. 결과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하나님은 자기 눈동자와 같이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시련을 통해서 고결한 성품을 얻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해서 일어서면 구원받을 뿐 아니라 엄청난 선한 영향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이 세 젊은이의 능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풀무 속에 던짐을 당했지만 거기서 나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함부로 말하는 자는 그 몸을 쪼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요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원리에서 물러서기 시작하는 사람은 여러분을 멸시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땅에 버려진 소금과 같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밝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에서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별과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신앙원리를 숨기고 처신하면 큰 손해를 교회에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인정받는 사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런 맛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의해서 흔들리는 사람은 세상을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조차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진실되고 용감하고 선한 자의 힘은 가장 악하고 교만한 사람조차 움직여 놓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과 바른 영을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이를 위해서 자기 모두를 바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바라봅시다. 그의 상처에서부터 솟아나는 보혈과 생수의 능력에 우리를 내어 맡깁시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의 삶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역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띠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에 인정받는 고귀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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