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명(王命)에 사는 사람들6 (단3:16-18)
본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때에 저들은 바벨론의 압제를 받고 있었습니다(슥 1:15). 유다는 망해 버렸고, 유다의 몇 왕족들과 귀족의 자녀들 중에 혹자들은 바벨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 버렸습니다. 주전 6세기경을 살던 히브리 소년 다니엘이나 사드락이나 메삭이나 아벳느고 같은 자들은 그러한 포로인들 중에 손꼽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포로지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강한 신앙의 지조를 지킨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녹을 먹는 높은 공직자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저들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은 이상(異像)과 몽조(夢兆)를 깨닫는 은혜를 받아 바벨론 제국의 통치자에게 슬기로운 고문 역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들에게,
I. 왕명(王命)이 시험이 되었습니다(단 3:1-15). 그 왕명(王命)은 ‘금 신상에게 절하라’는 어명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큰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두라 평지에 높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이름 있는 공직자들로 하여금 왕의 신상 낙성식에 참집(參集)하여 그 금 신상 낙성식 때 악기 소리에 맞추어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단 3:1-5). 이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자신의
1 전쟁 승리를 자축하고
2 그의 통치 위엄을 높이고
3 이로 인하여 자신의 이름을 떨치며
4 통일 제국의 군주로서 기반을 튼튼히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법령에 따르는 부수 법령이 발표되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신분 여하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의 금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단 3:6). 마침내 왕의 황금 신상 낙성식은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 참석한 모든 백성 과 나라들 과 각 방언하는 자들 이 우렁찬 악기 소리에 맞추어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단 3:7). 이때 바벨론 신하(갈대아 사람) 중에 어떤 자들이 왕께 나아와 그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참소(讒訴)하고 말았습니다(단 3:8). 저들은 왕께 나아가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한 자 중에
1 왕을 높이지도 아니하며
2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3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라고 고소한 것입니다(단 3:12). 그 고소 앞에 왕은 노하고 분하여 그 앞으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왕 앞에서 뜻밖의 후대를 받았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3:14-15)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왕은 저들에게 “짐짓 그리하였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고의적’으로 그리하였느냐는 뜻입니다. 이것은 저들에게 베푼 왕의 특별한 후대였습니다. 왕이 명한 법도를 왕 스스로가 유예를 하면서 저들에게 관용을 나타내는 태도였습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왕의 특별한 배려요 후대였습니다. 아마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평상시의 충성심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고 불충(不忠)할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Ⅱ. 항명하는 사람들(단 3:16-18) 그날 두라 평지, 왕의 황금 신상 낙성식 현장은 예기치 못한 항명(抗命) 파동으로 그 분위기가 대단히 무거워지고 있었습니다. 그 낙성식에 참예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무거운 역사의 한 순간이요 장면이었습니다. 이때 히브리 땅에서 끌려 온 바벨론의 공직자들은 공개적인 항명(抗命)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왕의 금 신상 앞에 절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항명(抗命)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대답은 계명 표준의 항명(抗命)이었습니다. 본문 3장 16절에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항명(抗命) 속에는, 적어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유대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결코 섬길 수 없다는 내용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 수 없고, 또 거기에 절할 수 없다는 저 십계명 중
1, 2계명을 절대 준수하는 내용입니다(출 20:3-5). 저들은 지금 느부갓네살 왕보다 더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왕명(王命)을 받고, 그 왕명(王命)을 따라 살고 있는 자들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신앙이요 또한 자존심이었습니다. 그 두 번째 대답은 전능하신 왕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하는 항명(抗命)이었습니다. 본문 3장 17절에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느부갓네살은 저들 앞에서 어느 신이 너희를 건져내겠느냐고(3:15) 호언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 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극렬히 타는 풀무 뿐 아니고, 왕의 손에서도 능히 자신들을 건져 낼 전능한 구원의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저 히브리 청년들의 평소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그 세 번째 대답은 순교적 신앙의 항명(抗命)이었습니다. 본문 3장 18절에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풀무에서 죽을지언정 우리는 금 신상에 절하라고 하는 왕명에 항명(抗命)한다는 대답입니다. 저들은 저렇게 순교적 부활 신앙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실로 엄청난 도전이요 항명(抗命)이었습니다. 바벨론 전 제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두라 평지, 역사의 현장에 일어난 항명(抗命)사건이었습니다. 항명(抗命)파동이었습니다. 실로 역사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Ⅲ. 왕도(王道)를 걷는 사람들(단 3:19-30) 저들은 분명히 말하기를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 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저들이 섬기는 왕이 있고, 그 왕도를 걷는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느부갓네살은 분이 가득하고 말았습니다. 낯빛을 변하였습니다. 그의 음성은 풀무를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하라는 진노를 발하고 말았습니다(단 3:19). 군대 중에 용사 몇 사람들은 그 반역하는 공직자들을 고의(袴衣)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불못 속으로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 불길의 강도 때문에 세 청년을 던지던 군인들이 풀무불에 휩싸여 죽고 말았습니다(단 3:20-2
4). 이는 하나님의 즉결 심판 행사입니다. 마침내 저들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실로 느부갓네살의 권력은 막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있던 느부갓네살 왕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사들에게 묻기를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고 질문하였습니다. 신하들이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왕은 지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결박된 세 사람이 아닌
1 결박되지 않은 네 사람을 보았습니다.
2 죽지 않고 불꽃 가운데서 걸어다니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3 그 네 번째 사람은 신들의 아들 같은 자로 보았습니다(단 3:24-25). 마침내 왕은 친히 그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고 저들을 불러내었습니다. 저들은 왕명(王命)에 순종하여 불 가운데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오고 말았습니다. 물론 불이 저들의 몸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머리털이 타거나 고의(袴衣) 빛이 변하지도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3:26-27). 바벨론의 군주 느부갓네살은 그 현장에서 크게 소리쳤습니다.
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2 그 하나님이 그 사자를 보내어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3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4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은 구원하셨도다(단 3:28)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렸습니다. 누구든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설만(褻慢)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단 3:29)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단 3:30)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인격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왕 되심은 그분 스스로가 정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분은 우리를 존재케 하신 창조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그분은 스스로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신 구원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히브리 청년들의 말처럼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 이 되십니다. 우리는 여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분을 왕으로 섬기고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히브리 청년들은 저들이 비록 포로지 바벨론에서 그 나라의 녹을 먹고 공직 생활을 하였으나, 저들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저들은 이 세상 군주의 명령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의 명령일 때 순종하고 복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군주의 명령이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명을 어길 때는, 단호히 더 높은 하늘의 왕명(王命)을 좇는 거룩한 왕도(王道)를 좇고 말았습니다. 하늘의 왕명(王命)을 좇는 자는 거룩한 왕도(王道)를 걷는 자들입니다. 그 왕도(王道)가 물 속일 수도 있고, 불꽃 속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외로운 길일 수도 있고, 버림을 당하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목마르고, 괴로운 길일 수도 있습니다. 저 두라 평지의 뜨거운 풀무는 그 양태와 모습을 달리하고 역사상에 어느 곳에든지, 예수 왕명(王命)을 좇아 왕도(王道)를 걸어가는 자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온갖 류의 풀무가 평소보다 7배나 뜨겁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 풀무는 권력일 수도 있고,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우상숭배, 온갖 류의 세속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지상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도(王道)를 좇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하신 기적도 일어납니다. 2000년 기독교는 이 기적의 웅변적 증거물이 됩니다. 반면에 왕도(王道)를 좇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순교까지도 일어납니다.
지금 미국에는 중국계 미국인 목사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미국 정부 관리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사양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어떻게 그처럼 좋은 관직의 자리를 거절하고 목사가 되었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그는 목사가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의화단(義和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중국 내륙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엔 우상을 섬기는 큰 신당이 있었는데, 하루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적떼 같은 군인들에게 끌려서 그 산당으로 왔습니다. 그 군인들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그 우상에게 절하고 신앙을 버리도록 위협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면 살려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군인들을 신자들을 한 줄로 세워 그곳으로 지나가게 하면서 절하도록 위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앞을 지나가는 163명의 크리스천들은 하나같이 우상에게 절하기는커녕, 고개도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절하지 않고 그냥 지나오는 크리스천들은 그 옆에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의 칼에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그 163명이 모두 그렇게 죽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도 그 163명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비록 어렸지만, 그 사건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라고 그가 목사가 된 동기를 알려 주었습니다. 저들은 거룩한 왕도(王道)를 걸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전자전(父傳子傳)하는 왕도(王道)를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인 여러분!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이 반(半)시 동안 고요한(계 8:1) 잠정적인 평화의 때를 주었습니다. 지금은 순교자를 내는 시대가 아니라, 선교사를 내는 시대입니다. 일하는 시대입니다. 전도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에게 충성의 믿음이 생깁니까 그것이 바로 이적입니다. 여러분에게 감사의 믿음이 생깁니까 그것이 바로 이적입니다. 그것이 바로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불 같은 수고와 고난을 이길 승리와 축복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생애 중 그 최고의 경지를 맞고 있습니다. 세계 선교의 마지막 보루가 될 거룩한 하나님의 선교 기지를 짓고 있습니다. 이 축복의 고난에 동참하여 죽고자 뛰어든 자에게는 죽지 않고, 오히려 그 충성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자(使者), 예수를 만나서 그와 함께 걸어다니고 말 것입니다. 공개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그와 그 자손들이 승리의 왕도(王道)를 걷게 될 것입니다. (다음주 계속)
I. 왕명(王命)이 시험이 되었습니다(단 3:1-15). 그 왕명(王命)은 ‘금 신상에게 절하라’는 어명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큰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두라 평지에 높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이름 있는 공직자들로 하여금 왕의 신상 낙성식에 참집(參集)하여 그 금 신상 낙성식 때 악기 소리에 맞추어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단 3:1-5). 이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자신의
1 전쟁 승리를 자축하고
2 그의 통치 위엄을 높이고
3 이로 인하여 자신의 이름을 떨치며
4 통일 제국의 군주로서 기반을 튼튼히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법령에 따르는 부수 법령이 발표되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신분 여하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의 금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단 3:6). 마침내 왕의 황금 신상 낙성식은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 참석한 모든 백성 과 나라들 과 각 방언하는 자들 이 우렁찬 악기 소리에 맞추어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단 3:7). 이때 바벨론 신하(갈대아 사람) 중에 어떤 자들이 왕께 나아와 그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참소(讒訴)하고 말았습니다(단 3:8). 저들은 왕께 나아가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한 자 중에
1 왕을 높이지도 아니하며
2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3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라고 고소한 것입니다(단 3:12). 그 고소 앞에 왕은 노하고 분하여 그 앞으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왕 앞에서 뜻밖의 후대를 받았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3:14-15)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왕은 저들에게 “짐짓 그리하였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고의적’으로 그리하였느냐는 뜻입니다. 이것은 저들에게 베푼 왕의 특별한 후대였습니다. 왕이 명한 법도를 왕 스스로가 유예를 하면서 저들에게 관용을 나타내는 태도였습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왕의 특별한 배려요 후대였습니다. 아마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평상시의 충성심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고 불충(不忠)할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Ⅱ. 항명하는 사람들(단 3:16-18) 그날 두라 평지, 왕의 황금 신상 낙성식 현장은 예기치 못한 항명(抗命) 파동으로 그 분위기가 대단히 무거워지고 있었습니다. 그 낙성식에 참예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무거운 역사의 한 순간이요 장면이었습니다. 이때 히브리 땅에서 끌려 온 바벨론의 공직자들은 공개적인 항명(抗命)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왕의 금 신상 앞에 절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항명(抗命)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대답은 계명 표준의 항명(抗命)이었습니다. 본문 3장 16절에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항명(抗命) 속에는, 적어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유대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결코 섬길 수 없다는 내용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 수 없고, 또 거기에 절할 수 없다는 저 십계명 중
1, 2계명을 절대 준수하는 내용입니다(출 20:3-5). 저들은 지금 느부갓네살 왕보다 더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왕명(王命)을 받고, 그 왕명(王命)을 따라 살고 있는 자들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신앙이요 또한 자존심이었습니다. 그 두 번째 대답은 전능하신 왕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하는 항명(抗命)이었습니다. 본문 3장 17절에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느부갓네살은 저들 앞에서 어느 신이 너희를 건져내겠느냐고(3:15) 호언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 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극렬히 타는 풀무 뿐 아니고, 왕의 손에서도 능히 자신들을 건져 낼 전능한 구원의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저 히브리 청년들의 평소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그 세 번째 대답은 순교적 신앙의 항명(抗命)이었습니다. 본문 3장 18절에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풀무에서 죽을지언정 우리는 금 신상에 절하라고 하는 왕명에 항명(抗命)한다는 대답입니다. 저들은 저렇게 순교적 부활 신앙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실로 엄청난 도전이요 항명(抗命)이었습니다. 바벨론 전 제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두라 평지, 역사의 현장에 일어난 항명(抗命)사건이었습니다. 항명(抗命)파동이었습니다. 실로 역사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Ⅲ. 왕도(王道)를 걷는 사람들(단 3:19-30) 저들은 분명히 말하기를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 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저들이 섬기는 왕이 있고, 그 왕도를 걷는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느부갓네살은 분이 가득하고 말았습니다. 낯빛을 변하였습니다. 그의 음성은 풀무를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하라는 진노를 발하고 말았습니다(단 3:19). 군대 중에 용사 몇 사람들은 그 반역하는 공직자들을 고의(袴衣)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불못 속으로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 불길의 강도 때문에 세 청년을 던지던 군인들이 풀무불에 휩싸여 죽고 말았습니다(단 3:20-2
4). 이는 하나님의 즉결 심판 행사입니다. 마침내 저들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실로 느부갓네살의 권력은 막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있던 느부갓네살 왕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사들에게 묻기를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고 질문하였습니다. 신하들이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왕은 지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결박된 세 사람이 아닌
1 결박되지 않은 네 사람을 보았습니다.
2 죽지 않고 불꽃 가운데서 걸어다니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3 그 네 번째 사람은 신들의 아들 같은 자로 보았습니다(단 3:24-25). 마침내 왕은 친히 그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고 저들을 불러내었습니다. 저들은 왕명(王命)에 순종하여 불 가운데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오고 말았습니다. 물론 불이 저들의 몸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머리털이 타거나 고의(袴衣) 빛이 변하지도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3:26-27). 바벨론의 군주 느부갓네살은 그 현장에서 크게 소리쳤습니다.
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2 그 하나님이 그 사자를 보내어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3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4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은 구원하셨도다(단 3:28)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렸습니다. 누구든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설만(褻慢)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단 3:29)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단 3:30)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인격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왕 되심은 그분 스스로가 정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분은 우리를 존재케 하신 창조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그분은 스스로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신 구원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히브리 청년들의 말처럼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 이 되십니다. 우리는 여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분을 왕으로 섬기고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히브리 청년들은 저들이 비록 포로지 바벨론에서 그 나라의 녹을 먹고 공직 생활을 하였으나, 저들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저들은 이 세상 군주의 명령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의 명령일 때 순종하고 복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군주의 명령이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명을 어길 때는, 단호히 더 높은 하늘의 왕명(王命)을 좇는 거룩한 왕도(王道)를 좇고 말았습니다. 하늘의 왕명(王命)을 좇는 자는 거룩한 왕도(王道)를 걷는 자들입니다. 그 왕도(王道)가 물 속일 수도 있고, 불꽃 속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외로운 길일 수도 있고, 버림을 당하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목마르고, 괴로운 길일 수도 있습니다. 저 두라 평지의 뜨거운 풀무는 그 양태와 모습을 달리하고 역사상에 어느 곳에든지, 예수 왕명(王命)을 좇아 왕도(王道)를 걸어가는 자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온갖 류의 풀무가 평소보다 7배나 뜨겁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 풀무는 권력일 수도 있고,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우상숭배, 온갖 류의 세속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지상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도(王道)를 좇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하신 기적도 일어납니다. 2000년 기독교는 이 기적의 웅변적 증거물이 됩니다. 반면에 왕도(王道)를 좇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순교까지도 일어납니다.
지금 미국에는 중국계 미국인 목사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미국 정부 관리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사양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어떻게 그처럼 좋은 관직의 자리를 거절하고 목사가 되었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그는 목사가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의화단(義和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중국 내륙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엔 우상을 섬기는 큰 신당이 있었는데, 하루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적떼 같은 군인들에게 끌려서 그 산당으로 왔습니다. 그 군인들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그 우상에게 절하고 신앙을 버리도록 위협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면 살려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군인들을 신자들을 한 줄로 세워 그곳으로 지나가게 하면서 절하도록 위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앞을 지나가는 163명의 크리스천들은 하나같이 우상에게 절하기는커녕, 고개도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절하지 않고 그냥 지나오는 크리스천들은 그 옆에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의 칼에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그 163명이 모두 그렇게 죽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도 그 163명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비록 어렸지만, 그 사건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라고 그가 목사가 된 동기를 알려 주었습니다. 저들은 거룩한 왕도(王道)를 걸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전자전(父傳子傳)하는 왕도(王道)를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인 여러분!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이 반(半)시 동안 고요한(계 8:1) 잠정적인 평화의 때를 주었습니다. 지금은 순교자를 내는 시대가 아니라, 선교사를 내는 시대입니다. 일하는 시대입니다. 전도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에게 충성의 믿음이 생깁니까 그것이 바로 이적입니다. 여러분에게 감사의 믿음이 생깁니까 그것이 바로 이적입니다. 그것이 바로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불 같은 수고와 고난을 이길 승리와 축복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생애 중 그 최고의 경지를 맞고 있습니다. 세계 선교의 마지막 보루가 될 거룩한 하나님의 선교 기지를 짓고 있습니다. 이 축복의 고난에 동참하여 죽고자 뛰어든 자에게는 죽지 않고, 오히려 그 충성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자(使者), 예수를 만나서 그와 함께 걸어다니고 말 것입니다. 공개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그와 그 자손들이 승리의 왕도(王道)를 걷게 될 것입니다. (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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