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다니엘 (단6:16-27)
본문
우리가 살피는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온 무명의 청년에서 이제 메데와 바사 왕국의 총리의 지위에 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성공과 존귀는 자연 부러움과 시기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서 아무 그릇함도 허물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그의 신앙에 대하여 걸고 넘어 뜨리려 했습니다.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그의 신앙과 애국심을 미끼로 그를 잡으려고 들었습니다. 그는 태생이 유대인입니다. 그는 마음을 다해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시기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세운 신상을 멸시하고 자기들의 종교를 말없이 조소하는 느낌을 받은 그들은 다니엘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간교한 계략을 마련했습니다. 왕으로 하여금 자신이 아끼는 신하를 제물로 삼든지 아니면 자신의 신실성을 손상시키든지 아니면 신성한 제국의 전통을 허물지 않으면 안되는 곤경에 몰아넣었습니다. 왕의 칙령은 발표되었습니다. 이제 삼십일 동안 아무 사람에게나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안됩니다.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함정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그 함정에 결국 빠져들고 맙니다. 독재자마다 그의 상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절제되지 않는 권력에 대한 욕망은 한 사람을 아주 어리석은 자리로 몰아넣습니다. 헛된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결과 사람의 양심을 억누르는 악명 높은 법령을 발표하도록 설득당합니다. 이런 처지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처신했습니까 그의 지위를 포기하고 자기 갈길을 가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습니까 극단적이고도 염세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기도굴로 후퇴해서 아무도 보고 듣지 못하는 곳에서 기도하는 소극적인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도란 어디서 드려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소리내지 않고 기도해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렇게 처신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행동도 겁장이같은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사자같은 용기있는 마음으로 처신했습니다. 사자같은 담대한 마음을 가졌기에 사자굴로 들어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심령은 깨끗했습니다. 사람들을 향한 그의 행동은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관습대로 행동했습니다. 마치 교수대를 올라가는 것같은 일이지만 그의 기도실로 올라갔습니다.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숨어서가 아니라 공공연히 기도드렸습니다. 모든 대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루살렘을 향한 열린 창에서 간구했습니다. 바리새적인 위선이 아니라 신교도다운 기개를 가지고 이전처럼 처신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아무런 위험도 면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의를 위해서는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조롱도 감수했습니다.
오랫동안 닦아온 기도의 훈련은 당면한 위기를 넉넉히 감당하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수산 시가지를 달리던 그날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총리들과 모든 방백들이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음모가 이제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왕을 만나 뵈려고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엄청난 죄를 범했다고 왕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범죄는 새로운 것입니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죽임을 당했던 사람도 신앙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두고두고 거듭된 범죄입니다. 한사람의 양심이나 신앙을 짓누르는 법령을 통해서 사람을 죽이려고 드는 것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사회적 범죄입니다. 그래서 이 장로교 헌법은 모든 사람이 자기가 믿는바에 따라서 양심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을 필요로하고 있습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시대마다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사는 자들의 경멸을 받아왔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종교적인 사람들을, 특히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의 흠을 찾아내어 비난하는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자는 정직하고 지성인이며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부각시키고 참된 신앙인은 위선자로 몰아가기를 즐깁니다. 멀리할 사람으로 지목합니다. 그의 양심은 그의 신앙만큼이나 위험한 것으로 취급합니다.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용하면서도 하늘의 법을 따라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향해서는 아무런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T.V.에서 북한산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연계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람들이라고 방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고발하는 기자보다도 더 북한산을 많이 가 보았습니다. 정작 북한산을 더럽히고 있는 것은 무당들이 고사를 지내고 바위틈을 더럽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전통문화라는 의미에서 보호를 하면서. . . . 물론 기도하는 사람들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방석을 가지고 가서 바위틈에 끼워 놓고 오는 일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민족은 북한보다 강한 군사력 때문에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지 않습니다. 밤을 세워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로 지탱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은 보면서 큰 흐름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기독교인들이 하는 일이라면 열심히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때의 다니엘의 대적들도 왕을 만나서 메데와 바사의 법은 변개치 못할 것이라고 운을 뗍니다. 그들이야말로 메데와 바사의 법을 따라 사는 자들이라고 암시합니다. 그 법규하나도 어기지 아니할 자인 것처럼 나섭니다. 만약 그 법률 한 조항이라도 지켜지지 아니하면 나라가 끝장날 것이라고 은근히 협박합니다. 그들은 국민의 복지와 임금의 안녕을 위해서 열심이 특심하므로 친구지만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야하며 그래야 왕의 명예도 보존될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비로소 왕은 음모의 전모를 알게 됩니다. 왜 그들이 그처럼 새로운 법을 만들려고 들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다니엘을 구출할 길이 없는지를 왠종일 숙고했지만 결국은 모함자들의 손에 넘겨주는 것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 신앙의 용사가 사자굴에 던짐을 당합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며, 선지자의 외마디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습니까 먹이를 놓고 어르렁거리는 야수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까 왕의 어인이 찍히는 순간에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내려가서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굴속을 훔쳐볼까요 다니엘이 굴밑창에 도착하기 전에 하나님은 천사를 거기에 파송시켰습니다. 무서운 야수들을 향해서 날개를 펴고 지키고 있었는지 아니면 사자들의 눈에 불기둥처럼 보였는지 그는 안전한 밤을 지냈습니다. 사자들의 입은 봉해졌고 그들은 양과같이 누워 있었습니다. 하늘의 천사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잡아 먹으려고 설칠 그 짐승들 사이에서 다니엘은 밤의 안식을 누렸습니다. 하여간 그 밤은 후일에 선지자들의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밤입니다. 어린 양이 사자들과 함께 지낸 것처럼 다니엘은 사자들 사이에서 하룻밤을 잘 지냈습니다. 은혜와 보호 가운데서 하나님은 자기 종을 지켰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송했듯이 다니엘의 기도와 찬양 소리가 들렸을 법합니다. 사자들의 베이스와 다니엘의 쏠로가 어울려지는 그날 밤 공연을 상상해 보십시오. 새벽이 동터오자 왕이 달려오고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구출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구원을 받았고 그의 적들은 당황해하는 역전의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입니까 다니엘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그 첫 째 요소는 다니엘의 탁월한 헌신입니다. 젊은 날부터 계속된 하나님을 향한 놀라운 헌신입니다. 사자굴 앞에서 외치는 왕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너의 항상 섬기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호칭은 단순히 입에 발린 찬사가 아닙니다. 다니엘은 살아오면서 모든 면에서 살아계신 그분을 섬기며 올곧은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본성처럼 되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신앙으로 자녀를 키우십시오. 말을 배울 때부터 하늘의 진리를 가르치십시오. 하늘 아버지를 부르게 하시고 필요한 것을 아뢰게 하십시오. 자신의 아침을 하나님께 드린 자는 왠 종일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의 교양과 훈계를 가르치면 일생이 주님을 위해서 드려질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녀와 함께 기도하는 훈련을 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공급받는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단순히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양육되었기에 그의 이름이 빛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애숭이 시절 부모를 떠나 타국에 끌려와서 느부갓네살의 왕궁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느브갓네살의 인재양성 계획의 일환으로 세 친구들과 더불어 대학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거기서 이방나라의 이방학문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왕이 사용할 수 있는 학식있는 사람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뜻을 펴기도 전에 그의 선조들의 신앙은 곧장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그의 신앙양심에 거리낌을 주는 음식이 아침저녁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거의 틀림없이 그 음식들은 우상 앞에 차려진 것들입니다. 그것을 먹는 것은 그 우상 섬기는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친구들과 더불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물외에는 어떤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채소외에는 왕이 주는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입맛을 따라가기 보다는 신앙을 따라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즐거움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기쁨을 찾았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명한 바 일점 일획까지 다 준수하는 사람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얼굴 빛을 구하며 살고자 했습니다. 엄격히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은 신속한 보상이 뒤따릅니다. 그러기에 왕의 진미로 사는 사람들보다 그들의 얼굴은 더 아름다웠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교육받던 기간은 끝나고 다니엘은 공적인 임무를 맡아 사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우리가 아는대로 느부갓네살은 꿈을 꾸고 괴로워합니다. 왕의 술객과 박사들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항상 섬기는 다니엘이 홀로 그 비밀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영광스런 순간을 회상해 보십시오. 그는 세상 권력자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아니했습니다. 그에게 지혜를 주신 하늘의 하나님을 숨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왕이 잊어버린 꿈을 말해주고 그 의미를 밝혀주었습니다. 그는 그 영역에서 권위자가 되었으나 계속해서 그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무명인으로서도 신앙의 길을 걸어갔을뿐 아니라 유명인이되고 나서도 신앙을 떠나서 그릇된 길로 나아가지 아니했습니다. 다시금 왕은 꿈을 꾸었고 다시금 다니엘은 그 꿈을 용감히 설명합니다. 하늘만큼 높아진 임금이 땅의 짐승처럼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후 한동안 다니엘은 그늘로 사라진 듯이 보입니다. 벨사살 왕이 등극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소문도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동안에도 계속 자기 하나님을 섬기고 살았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보기도 했을 것이고 자기 방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상고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지존자 하나님과 교제를 누렸을 것입니다. 어느날 밤 갑자기 벨사살의 부름을 받습니다. 놀라운 글씨가 벽에 기록되고 아무도 그것을 읽고 해석할 사람이 없었기에 다니엘은 왕 앞에 다시금 부름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갑작스런 부름 앞에 그는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았습니다. 차분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용기를 가지고 설명하는 다니엘을 상상해 보십시오. 교만한 왕을 향해서 담담하게 그의 임박한 최후를 선언합니다.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음이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다니엘의 해석을 듣는 왕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아무도 거역못할 위엄이 그의 말에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그 영역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의 해석대로 왕국은 바뀌었으나 다니엘의 삶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는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살지 아니하고 원리를 따라서 언제나 살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그것이 변함없는 별명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겠노라'는 것은 그의 인생 출발 시의 소원인 동시에 그의 인생 종착지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의 인생의 꿈은 하나님 한 분 만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이전 어느 때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그 시대 최대의 왕국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방의 우상을 멀리했습니다. 하늘을 통치하시는 분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세상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살폈으나 그에게 아무런 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천한 자리에서 땀흘려 살아갈 때는 신앙을 지키다가 출세해서 편안해지면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높아지면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부해질 때에 속기 쉽습니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치명상을 입습니다. 인기와 명예는 혈육을 가진 사람이 통과해야할 위험한 코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니엘은 그 과정을 잘 통과한 것은 그가 언제나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과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니엘의 행동의 영향을 살펴봅시다. 밝은 날 주님을 따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빛나던 태양이 갑자기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사람도 위기에 몰립니다. 만약 거룩한 길을 계속 걸어가면 그는 왕의 호의를 상실하고 생명이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다니엘의 결단은 무엇입니까 그에게 있는 진정한 기개를 보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루살렘에서 제조된 진품입니다. 그의 헌신의 칼날은 쉬 무디어지거나 부러질 수 없습니다. 그는 전에 했던대로 계속 행할 것입니다. 그는 창문을 열고 이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다니엘은 위기의 순간에도 머리가 복잡하지 아니했습니다. 유혹의 순간에도 마음은 순결했고 핍박의 와중에도 그의 심지는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왜 복잡한 일들을 두고 골치가 아픕니까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오늘 우리에게도 자랑과 용기를 줍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추석을 앞두고 다음 주일날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지금부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고민을 할 사항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엿새동안 파는 것보다 주일날 하루 매상이 높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어떤 분은 신앙의 꺼리낌도 없는지 마음 편히 문을 열고 장사를 합니다. 어떤 분은 문은 닫지만 주일을 꼭 그렇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불평합니다. 저에게 문을 열고 장사를해도 된다고 허락을 해 달라는 겁니다. 책임은 저에게 맡기고 장사는 자기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사람처럼 마음 편히 문을 열겠습니까 아니면 문을 닫고 불평하면서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다행히 선택은 그 둘 사이에만 있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상점 문을 내리기로 결단하고 기쁘게 주일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의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지상목표가 아닙니다.
많은 선교비를 내어서 선교지를 밝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모습이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증거되게하는 것입니다. 적은 소득을 얻어도 양심에 기쁨을 가지고 입술에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먹고 사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책임질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십시오. 다음 주일에 가게 문을 열까 말까하는 것은 고민할 사항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명령준수를 여러분의 삶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삶의 우선 순위를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한 주일 가게문을 열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명하시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하십시오. 양심의 고통을 가지고 사는 것 보다는 적은 수입으로도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면 여러분의 심령에 하늘의 기쁨이 찾아오게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바른 일을 하십시오. 무너지는 하늘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일은 해서는 안됩니다. 임무가 분명할 때는 협상한다고 시간을 끌지 마십시오. 깃발을 분명히 하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내일을 맡기고 살아가십시오. 그의 명령에 집착하십시오. 진정하고 참되고 보상이 약속된 헌신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지속적인 헌신입니다. 어떤 굶주린 개라도 고기조각을 보면 따라옵니다. 여러분의 발꿈치를 바짝 뒤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미끼가 없어지면 되돌아갑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재미로 신앙 생활을 하거나 유익 때문에 주님을 따르지 마십시오. 그러다가는 또 다른 호기심을 끄는 것을 보면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주인을 따르는 신실한 사냥개를 보십시오. 흙을 튀기는 말발굽을 뒤따라 어디든 갑니다. 길이 좋든지 험하든지 주인이 가는 곳이면 따라갑니다. 주님이 인정하는 성도는 이와같이 신실한 성도입니다. 시대조류를 따라 사는 교인은 한 길을 가면서도 언제나 다른 길을 기웃거립니다. 어려운 시기에 멀리하는 친구를 여러분은 모두 개탄합니다. 평소에는 제집처럼 여러분의 집을 드나들어 친한 친구처럼 행동합니다. 여러분이 주는 것을 먹고 마십니다. 여러분도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그의 충고를 받아드립니다. 하지만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쏟아지면 처신을 달리합니다. 혹시나 피해가 올까봐 갑자기 외인처럼 처신합니다. 그런 사람을 여러분은 계속해서 친구로 삼고 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할 수는 있지만 다시는 더 사귀지는 아니할꺼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까 신자들 사이에서는 찬송을 부르다가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주의 영광을 노래하다가 갑자기 속된 노래를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예배할 때만 아니라 놀때도 신자입니다. 더러운 농담이 여러분의 입에서 튀어 나오지 않도록 하십시오. 순결한 생각을 마음에 언제나 품고 살아가십시오. 지속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다니엘이 이 시대에도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시대의 유혹을 물리칠 신앙의 성품을 갖추는 최선의 길은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여러분의 길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성도로 하여금 시련의 바람이 불어 올 때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온갖 일과 많은 염려 가운데 힘을 잃지 않도록 기도에 시간을 들입시다. 무거운 책임과 끊임없는 염려 가운데 있어도 무릎 꿇고 기도하면 새힘을 공급받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연약함을 아뢰면 하늘에서 내리는 신령한 힘을 부여받습니다. 다니엘처럼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것만이 싸움에서 이길 힘을 공급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진실합니까 진정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칼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거품 신앙은 곧 사라집니다. 연약한 날을 곧 무디어집니다. 참된 신앙은 그럴듯한 의식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그 뿌리를 예수님께 내립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십니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신 그 분께 여러분의 미래를 맡기십시오. 다 잃어 버려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붙들고 있으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신앙은 여러분의 미래의 주인이신 주님께 밤낮없이 부르짖게 만듭니다. 간절하고 지속적인 기도는 여러분의 신앙을 다니엘의 신앙처럼 만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승리자 다니엘의 비결은 그가 계속적으로 섬긴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있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까 많은 사람에게 신앙이란 그것을 두고 열띤 토론을 하지만 그것을 목숨을 바칠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하나님은 다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생명을 다해 섬기기에 합당하신 분이요 목숨을 버려 섬기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경험할수록 다니엘의 신앙은 강건해졌습니다. 어린아이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습니다. 후에 주어진 놀라운 계시는 이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사람에게 주어진 상급처럼 생각됩니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눈에 띄게 구원하셨습니다. 다니엘, 그는 온 세상의 대주재 주님과 사귀는 것말고는 더 다른 소망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입은 자"로 불리웠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웁니다. 다시금 질문합니다. 기쁨으로 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과 목숨을 다해 섬기기에 합당하신 분입니까 찬송가 작가처럼 입이 만개나 여러분에게 있어도 그 입을 다 가지고도 감사와 기쁨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을 느끼시는 그 심정이 구원받은 성도의 입장입니다. 풍성하신 자비의 하나님께서 그의 크신 사랑으로 죄 가운데 죽어있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구원하셨습니다. 복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의 심장의 피로써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셨음을 믿음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를 절망의 구덩이에서 건져내셔서 반석위에 세워주셨음을 경험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주셨다는 사실이 우리의 모든 만족과 기쁨의 기반입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치워주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그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의 완벽한 의로 우리를 입히셨습니다. 그의 덕으로 우리를 감싸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를 지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유혹과 핍박에서 약속대로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우리를 위해서 더 놀라운 하늘 거처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더 나은 하늘 거처를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셨으며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곳이 많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듣고 계십니까 영원히 쇠하지 않을 기쁨의 면류관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여기 세상 살 때에 어디서 살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땅위에 순례길이 얼마가 남았는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다가 어떤 모양으로 임종을 맞이할지 그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큰 소망은 나를 위해 세상에 오신 그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남은 날을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종들의 종으로 오신 그분의 종답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을 스스로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은 그것을 위해 고난당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불멸의 가치를 발견하기 전에는 거기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걸지 마십시오. 참된 신앙은 시대가 변해도 가치가 불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신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진정한 것입니다. 그 분께서 여러분의 구주이십니까 그러면 언제든지 용서와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살면서 행복을 누리고 세상을 떠날 때 더 귀한 축복이 기다립니다. 아무 마음도 사모하지 못한 크신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 질문을 해봅시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사자에게서 오늘의 우리를 구하시기에 능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처럼 고난과 핍박을 견디십시오. 여러분 모두는 사자가 얼마나 무서운 맹수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름만의 야수이거나 멍청한 짐승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겪는 고통도 결코 감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 사자들도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들이 양으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막지 않았더라면 다니엘을 삼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작은 시험도 우리를 낙망시키고 절망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헛디뎌도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골절상 정도가 아닙니다. 잘못 넘어지면 뇌진탕으로 생명이 끝장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작은 시험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지 아니하면 우리는 치명상을 입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 입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는 지금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 이미 그러한 고통의 세월을 통과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여간 분명한 것은 어떤 시련도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무언가를 잃게 되면 반드시 풍성한 보상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기의 경험을 통해 이 말을 보증할 것입니다. 고난이 아니었더라면 도무지 획득할 수 없었던 것을 얻게 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신속한 구원과 보상이 따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수없이 질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시57:4). 하지만 여러분은 다윗처럼 노래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시57:7).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사자 중에 처할지라도 죽는 순간 사자에게서 떠나가는 즐거움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하며 거룩한 천사들과 영원을 함께 보낼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더 힘든 섬김을 위해서는 더 큰 보상이 기다립니다. 더 큰 싸움을 이긴 사람을 위해서는 더 빛나는 면류관이 기다립니다. 이와같은 시대에는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영광은 흔치 않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을 사자들로부터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이십니까 기쁜 마음으로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입니다. 그가 구원하시길 원하심을 믿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죽는 순간까지 사자 중에 처한다 해도 나를 보호하시려고 보내신 천사와 더불어 나는 안식을 누립니다.
잠깐의 고통이 끝나면 영원한 영광으로 옮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먼저 승리자 다니엘의 대답을 들어봅시다. "왕이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 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자기 하나님을 신뢰한 승리자 다니엘의 대답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대답하실 차례입니다. 만약 다니엘이 받은 질문을 여러분이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사시는 하나님의 종 o o o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그 때 힘차고 즐거운 목소리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 고백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때로는 실직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병상에 눕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승리자로서 그날 서게될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조차도 결코 주의 백성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주의 백성을 무너지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포기해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다 가고 우리 모두 영광의 보좌 앞에 서게될 때 다시금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들,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흰 옷입은 자들의 우뢰같은 함성을 들어보십시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그 때 하늘보좌 주위에 있는 천군 천사가 화답할 것입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그 날 하늘과 땅이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우리 주께 영광의 찬송으로 화답할 것입니다. 그 우뢰같은 화답의 노래에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여러분의 목소리가 합해지길 바랍니다. 아멘.
그러므로 그를 시기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세운 신상을 멸시하고 자기들의 종교를 말없이 조소하는 느낌을 받은 그들은 다니엘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간교한 계략을 마련했습니다. 왕으로 하여금 자신이 아끼는 신하를 제물로 삼든지 아니면 자신의 신실성을 손상시키든지 아니면 신성한 제국의 전통을 허물지 않으면 안되는 곤경에 몰아넣었습니다. 왕의 칙령은 발표되었습니다. 이제 삼십일 동안 아무 사람에게나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안됩니다.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함정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그 함정에 결국 빠져들고 맙니다. 독재자마다 그의 상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절제되지 않는 권력에 대한 욕망은 한 사람을 아주 어리석은 자리로 몰아넣습니다. 헛된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결과 사람의 양심을 억누르는 악명 높은 법령을 발표하도록 설득당합니다. 이런 처지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처신했습니까 그의 지위를 포기하고 자기 갈길을 가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습니까 극단적이고도 염세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기도굴로 후퇴해서 아무도 보고 듣지 못하는 곳에서 기도하는 소극적인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도란 어디서 드려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소리내지 않고 기도해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렇게 처신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행동도 겁장이같은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사자같은 용기있는 마음으로 처신했습니다. 사자같은 담대한 마음을 가졌기에 사자굴로 들어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심령은 깨끗했습니다. 사람들을 향한 그의 행동은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관습대로 행동했습니다. 마치 교수대를 올라가는 것같은 일이지만 그의 기도실로 올라갔습니다.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숨어서가 아니라 공공연히 기도드렸습니다. 모든 대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루살렘을 향한 열린 창에서 간구했습니다. 바리새적인 위선이 아니라 신교도다운 기개를 가지고 이전처럼 처신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아무런 위험도 면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의를 위해서는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조롱도 감수했습니다.
오랫동안 닦아온 기도의 훈련은 당면한 위기를 넉넉히 감당하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수산 시가지를 달리던 그날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총리들과 모든 방백들이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음모가 이제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왕을 만나 뵈려고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엄청난 죄를 범했다고 왕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범죄는 새로운 것입니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죽임을 당했던 사람도 신앙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두고두고 거듭된 범죄입니다. 한사람의 양심이나 신앙을 짓누르는 법령을 통해서 사람을 죽이려고 드는 것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사회적 범죄입니다. 그래서 이 장로교 헌법은 모든 사람이 자기가 믿는바에 따라서 양심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을 필요로하고 있습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시대마다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사는 자들의 경멸을 받아왔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종교적인 사람들을, 특히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의 흠을 찾아내어 비난하는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자는 정직하고 지성인이며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부각시키고 참된 신앙인은 위선자로 몰아가기를 즐깁니다. 멀리할 사람으로 지목합니다. 그의 양심은 그의 신앙만큼이나 위험한 것으로 취급합니다.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용하면서도 하늘의 법을 따라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향해서는 아무런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T.V.에서 북한산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연계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람들이라고 방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고발하는 기자보다도 더 북한산을 많이 가 보았습니다. 정작 북한산을 더럽히고 있는 것은 무당들이 고사를 지내고 바위틈을 더럽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전통문화라는 의미에서 보호를 하면서. . . . 물론 기도하는 사람들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방석을 가지고 가서 바위틈에 끼워 놓고 오는 일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민족은 북한보다 강한 군사력 때문에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지 않습니다. 밤을 세워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로 지탱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은 보면서 큰 흐름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기독교인들이 하는 일이라면 열심히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때의 다니엘의 대적들도 왕을 만나서 메데와 바사의 법은 변개치 못할 것이라고 운을 뗍니다. 그들이야말로 메데와 바사의 법을 따라 사는 자들이라고 암시합니다. 그 법규하나도 어기지 아니할 자인 것처럼 나섭니다. 만약 그 법률 한 조항이라도 지켜지지 아니하면 나라가 끝장날 것이라고 은근히 협박합니다. 그들은 국민의 복지와 임금의 안녕을 위해서 열심이 특심하므로 친구지만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야하며 그래야 왕의 명예도 보존될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비로소 왕은 음모의 전모를 알게 됩니다. 왜 그들이 그처럼 새로운 법을 만들려고 들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다니엘을 구출할 길이 없는지를 왠종일 숙고했지만 결국은 모함자들의 손에 넘겨주는 것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 신앙의 용사가 사자굴에 던짐을 당합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며, 선지자의 외마디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습니까 먹이를 놓고 어르렁거리는 야수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까 왕의 어인이 찍히는 순간에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내려가서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굴속을 훔쳐볼까요 다니엘이 굴밑창에 도착하기 전에 하나님은 천사를 거기에 파송시켰습니다. 무서운 야수들을 향해서 날개를 펴고 지키고 있었는지 아니면 사자들의 눈에 불기둥처럼 보였는지 그는 안전한 밤을 지냈습니다. 사자들의 입은 봉해졌고 그들은 양과같이 누워 있었습니다. 하늘의 천사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잡아 먹으려고 설칠 그 짐승들 사이에서 다니엘은 밤의 안식을 누렸습니다. 하여간 그 밤은 후일에 선지자들의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밤입니다. 어린 양이 사자들과 함께 지낸 것처럼 다니엘은 사자들 사이에서 하룻밤을 잘 지냈습니다. 은혜와 보호 가운데서 하나님은 자기 종을 지켰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송했듯이 다니엘의 기도와 찬양 소리가 들렸을 법합니다. 사자들의 베이스와 다니엘의 쏠로가 어울려지는 그날 밤 공연을 상상해 보십시오. 새벽이 동터오자 왕이 달려오고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구출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구원을 받았고 그의 적들은 당황해하는 역전의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입니까 다니엘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그 첫 째 요소는 다니엘의 탁월한 헌신입니다. 젊은 날부터 계속된 하나님을 향한 놀라운 헌신입니다. 사자굴 앞에서 외치는 왕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너의 항상 섬기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호칭은 단순히 입에 발린 찬사가 아닙니다. 다니엘은 살아오면서 모든 면에서 살아계신 그분을 섬기며 올곧은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본성처럼 되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신앙으로 자녀를 키우십시오. 말을 배울 때부터 하늘의 진리를 가르치십시오. 하늘 아버지를 부르게 하시고 필요한 것을 아뢰게 하십시오. 자신의 아침을 하나님께 드린 자는 왠 종일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의 교양과 훈계를 가르치면 일생이 주님을 위해서 드려질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녀와 함께 기도하는 훈련을 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공급받는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단순히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양육되었기에 그의 이름이 빛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애숭이 시절 부모를 떠나 타국에 끌려와서 느부갓네살의 왕궁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느브갓네살의 인재양성 계획의 일환으로 세 친구들과 더불어 대학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거기서 이방나라의 이방학문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왕이 사용할 수 있는 학식있는 사람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뜻을 펴기도 전에 그의 선조들의 신앙은 곧장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그의 신앙양심에 거리낌을 주는 음식이 아침저녁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거의 틀림없이 그 음식들은 우상 앞에 차려진 것들입니다. 그것을 먹는 것은 그 우상 섬기는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친구들과 더불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물외에는 어떤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채소외에는 왕이 주는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입맛을 따라가기 보다는 신앙을 따라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즐거움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기쁨을 찾았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명한 바 일점 일획까지 다 준수하는 사람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얼굴 빛을 구하며 살고자 했습니다. 엄격히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은 신속한 보상이 뒤따릅니다. 그러기에 왕의 진미로 사는 사람들보다 그들의 얼굴은 더 아름다웠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교육받던 기간은 끝나고 다니엘은 공적인 임무를 맡아 사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우리가 아는대로 느부갓네살은 꿈을 꾸고 괴로워합니다. 왕의 술객과 박사들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항상 섬기는 다니엘이 홀로 그 비밀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영광스런 순간을 회상해 보십시오. 그는 세상 권력자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아니했습니다. 그에게 지혜를 주신 하늘의 하나님을 숨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왕이 잊어버린 꿈을 말해주고 그 의미를 밝혀주었습니다. 그는 그 영역에서 권위자가 되었으나 계속해서 그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무명인으로서도 신앙의 길을 걸어갔을뿐 아니라 유명인이되고 나서도 신앙을 떠나서 그릇된 길로 나아가지 아니했습니다. 다시금 왕은 꿈을 꾸었고 다시금 다니엘은 그 꿈을 용감히 설명합니다. 하늘만큼 높아진 임금이 땅의 짐승처럼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후 한동안 다니엘은 그늘로 사라진 듯이 보입니다. 벨사살 왕이 등극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소문도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동안에도 계속 자기 하나님을 섬기고 살았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보기도 했을 것이고 자기 방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상고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지존자 하나님과 교제를 누렸을 것입니다. 어느날 밤 갑자기 벨사살의 부름을 받습니다. 놀라운 글씨가 벽에 기록되고 아무도 그것을 읽고 해석할 사람이 없었기에 다니엘은 왕 앞에 다시금 부름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갑작스런 부름 앞에 그는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았습니다. 차분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용기를 가지고 설명하는 다니엘을 상상해 보십시오. 교만한 왕을 향해서 담담하게 그의 임박한 최후를 선언합니다.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음이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다니엘의 해석을 듣는 왕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아무도 거역못할 위엄이 그의 말에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그 영역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의 해석대로 왕국은 바뀌었으나 다니엘의 삶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는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살지 아니하고 원리를 따라서 언제나 살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그것이 변함없는 별명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겠노라'는 것은 그의 인생 출발 시의 소원인 동시에 그의 인생 종착지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의 인생의 꿈은 하나님 한 분 만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이전 어느 때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그 시대 최대의 왕국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방의 우상을 멀리했습니다. 하늘을 통치하시는 분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세상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살폈으나 그에게 아무런 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천한 자리에서 땀흘려 살아갈 때는 신앙을 지키다가 출세해서 편안해지면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높아지면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부해질 때에 속기 쉽습니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치명상을 입습니다. 인기와 명예는 혈육을 가진 사람이 통과해야할 위험한 코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니엘은 그 과정을 잘 통과한 것은 그가 언제나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과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니엘의 행동의 영향을 살펴봅시다. 밝은 날 주님을 따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빛나던 태양이 갑자기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사람도 위기에 몰립니다. 만약 거룩한 길을 계속 걸어가면 그는 왕의 호의를 상실하고 생명이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다니엘의 결단은 무엇입니까 그에게 있는 진정한 기개를 보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루살렘에서 제조된 진품입니다. 그의 헌신의 칼날은 쉬 무디어지거나 부러질 수 없습니다. 그는 전에 했던대로 계속 행할 것입니다. 그는 창문을 열고 이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다니엘은 위기의 순간에도 머리가 복잡하지 아니했습니다. 유혹의 순간에도 마음은 순결했고 핍박의 와중에도 그의 심지는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왜 복잡한 일들을 두고 골치가 아픕니까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오늘 우리에게도 자랑과 용기를 줍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추석을 앞두고 다음 주일날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지금부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고민을 할 사항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엿새동안 파는 것보다 주일날 하루 매상이 높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어떤 분은 신앙의 꺼리낌도 없는지 마음 편히 문을 열고 장사를 합니다. 어떤 분은 문은 닫지만 주일을 꼭 그렇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불평합니다. 저에게 문을 열고 장사를해도 된다고 허락을 해 달라는 겁니다. 책임은 저에게 맡기고 장사는 자기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사람처럼 마음 편히 문을 열겠습니까 아니면 문을 닫고 불평하면서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다행히 선택은 그 둘 사이에만 있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상점 문을 내리기로 결단하고 기쁘게 주일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의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지상목표가 아닙니다.
많은 선교비를 내어서 선교지를 밝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모습이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증거되게하는 것입니다. 적은 소득을 얻어도 양심에 기쁨을 가지고 입술에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먹고 사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책임질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십시오. 다음 주일에 가게 문을 열까 말까하는 것은 고민할 사항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명령준수를 여러분의 삶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삶의 우선 순위를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한 주일 가게문을 열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명하시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하십시오. 양심의 고통을 가지고 사는 것 보다는 적은 수입으로도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면 여러분의 심령에 하늘의 기쁨이 찾아오게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바른 일을 하십시오. 무너지는 하늘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일은 해서는 안됩니다. 임무가 분명할 때는 협상한다고 시간을 끌지 마십시오. 깃발을 분명히 하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내일을 맡기고 살아가십시오. 그의 명령에 집착하십시오. 진정하고 참되고 보상이 약속된 헌신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지속적인 헌신입니다. 어떤 굶주린 개라도 고기조각을 보면 따라옵니다. 여러분의 발꿈치를 바짝 뒤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미끼가 없어지면 되돌아갑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재미로 신앙 생활을 하거나 유익 때문에 주님을 따르지 마십시오. 그러다가는 또 다른 호기심을 끄는 것을 보면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주인을 따르는 신실한 사냥개를 보십시오. 흙을 튀기는 말발굽을 뒤따라 어디든 갑니다. 길이 좋든지 험하든지 주인이 가는 곳이면 따라갑니다. 주님이 인정하는 성도는 이와같이 신실한 성도입니다. 시대조류를 따라 사는 교인은 한 길을 가면서도 언제나 다른 길을 기웃거립니다. 어려운 시기에 멀리하는 친구를 여러분은 모두 개탄합니다. 평소에는 제집처럼 여러분의 집을 드나들어 친한 친구처럼 행동합니다. 여러분이 주는 것을 먹고 마십니다. 여러분도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그의 충고를 받아드립니다. 하지만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쏟아지면 처신을 달리합니다. 혹시나 피해가 올까봐 갑자기 외인처럼 처신합니다. 그런 사람을 여러분은 계속해서 친구로 삼고 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할 수는 있지만 다시는 더 사귀지는 아니할꺼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까 신자들 사이에서는 찬송을 부르다가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주의 영광을 노래하다가 갑자기 속된 노래를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예배할 때만 아니라 놀때도 신자입니다. 더러운 농담이 여러분의 입에서 튀어 나오지 않도록 하십시오. 순결한 생각을 마음에 언제나 품고 살아가십시오. 지속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다니엘이 이 시대에도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시대의 유혹을 물리칠 신앙의 성품을 갖추는 최선의 길은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여러분의 길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성도로 하여금 시련의 바람이 불어 올 때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온갖 일과 많은 염려 가운데 힘을 잃지 않도록 기도에 시간을 들입시다. 무거운 책임과 끊임없는 염려 가운데 있어도 무릎 꿇고 기도하면 새힘을 공급받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연약함을 아뢰면 하늘에서 내리는 신령한 힘을 부여받습니다. 다니엘처럼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것만이 싸움에서 이길 힘을 공급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진실합니까 진정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칼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거품 신앙은 곧 사라집니다. 연약한 날을 곧 무디어집니다. 참된 신앙은 그럴듯한 의식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그 뿌리를 예수님께 내립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십니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신 그 분께 여러분의 미래를 맡기십시오. 다 잃어 버려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붙들고 있으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신앙은 여러분의 미래의 주인이신 주님께 밤낮없이 부르짖게 만듭니다. 간절하고 지속적인 기도는 여러분의 신앙을 다니엘의 신앙처럼 만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승리자 다니엘의 비결은 그가 계속적으로 섬긴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있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까 많은 사람에게 신앙이란 그것을 두고 열띤 토론을 하지만 그것을 목숨을 바칠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하나님은 다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생명을 다해 섬기기에 합당하신 분이요 목숨을 버려 섬기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경험할수록 다니엘의 신앙은 강건해졌습니다. 어린아이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습니다. 후에 주어진 놀라운 계시는 이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사람에게 주어진 상급처럼 생각됩니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눈에 띄게 구원하셨습니다. 다니엘, 그는 온 세상의 대주재 주님과 사귀는 것말고는 더 다른 소망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입은 자"로 불리웠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웁니다. 다시금 질문합니다. 기쁨으로 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과 목숨을 다해 섬기기에 합당하신 분입니까 찬송가 작가처럼 입이 만개나 여러분에게 있어도 그 입을 다 가지고도 감사와 기쁨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을 느끼시는 그 심정이 구원받은 성도의 입장입니다. 풍성하신 자비의 하나님께서 그의 크신 사랑으로 죄 가운데 죽어있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구원하셨습니다. 복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의 심장의 피로써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셨음을 믿음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를 절망의 구덩이에서 건져내셔서 반석위에 세워주셨음을 경험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주셨다는 사실이 우리의 모든 만족과 기쁨의 기반입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치워주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그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의 완벽한 의로 우리를 입히셨습니다. 그의 덕으로 우리를 감싸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를 지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유혹과 핍박에서 약속대로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우리를 위해서 더 놀라운 하늘 거처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더 나은 하늘 거처를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셨으며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곳이 많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듣고 계십니까 영원히 쇠하지 않을 기쁨의 면류관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여기 세상 살 때에 어디서 살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땅위에 순례길이 얼마가 남았는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다가 어떤 모양으로 임종을 맞이할지 그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큰 소망은 나를 위해 세상에 오신 그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남은 날을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종들의 종으로 오신 그분의 종답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을 스스로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은 그것을 위해 고난당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불멸의 가치를 발견하기 전에는 거기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걸지 마십시오. 참된 신앙은 시대가 변해도 가치가 불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신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진정한 것입니다. 그 분께서 여러분의 구주이십니까 그러면 언제든지 용서와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살면서 행복을 누리고 세상을 떠날 때 더 귀한 축복이 기다립니다. 아무 마음도 사모하지 못한 크신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 질문을 해봅시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사자에게서 오늘의 우리를 구하시기에 능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처럼 고난과 핍박을 견디십시오. 여러분 모두는 사자가 얼마나 무서운 맹수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름만의 야수이거나 멍청한 짐승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겪는 고통도 결코 감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 사자들도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들이 양으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막지 않았더라면 다니엘을 삼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작은 시험도 우리를 낙망시키고 절망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헛디뎌도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골절상 정도가 아닙니다. 잘못 넘어지면 뇌진탕으로 생명이 끝장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작은 시험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지 아니하면 우리는 치명상을 입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 입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는 지금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 이미 그러한 고통의 세월을 통과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여간 분명한 것은 어떤 시련도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무언가를 잃게 되면 반드시 풍성한 보상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기의 경험을 통해 이 말을 보증할 것입니다. 고난이 아니었더라면 도무지 획득할 수 없었던 것을 얻게 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신속한 구원과 보상이 따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수없이 질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시57:4). 하지만 여러분은 다윗처럼 노래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시57:7).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사자 중에 처할지라도 죽는 순간 사자에게서 떠나가는 즐거움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하며 거룩한 천사들과 영원을 함께 보낼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더 힘든 섬김을 위해서는 더 큰 보상이 기다립니다. 더 큰 싸움을 이긴 사람을 위해서는 더 빛나는 면류관이 기다립니다. 이와같은 시대에는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영광은 흔치 않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을 사자들로부터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이십니까 기쁜 마음으로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입니다. 그가 구원하시길 원하심을 믿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죽는 순간까지 사자 중에 처한다 해도 나를 보호하시려고 보내신 천사와 더불어 나는 안식을 누립니다.
잠깐의 고통이 끝나면 영원한 영광으로 옮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먼저 승리자 다니엘의 대답을 들어봅시다. "왕이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 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자기 하나님을 신뢰한 승리자 다니엘의 대답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대답하실 차례입니다. 만약 다니엘이 받은 질문을 여러분이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사시는 하나님의 종 o o o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그 때 힘차고 즐거운 목소리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 고백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때로는 실직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병상에 눕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승리자로서 그날 서게될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조차도 결코 주의 백성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주의 백성을 무너지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포기해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다 가고 우리 모두 영광의 보좌 앞에 서게될 때 다시금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들,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흰 옷입은 자들의 우뢰같은 함성을 들어보십시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그 때 하늘보좌 주위에 있는 천군 천사가 화답할 것입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그 날 하늘과 땅이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우리 주께 영광의 찬송으로 화답할 것입니다. 그 우뢰같은 화답의 노래에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여러분의 목소리가 합해지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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