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명(王命)에 사는 사람들7 (단6:4-10)
본문
세계 역사의 한 세기적 역사의 무대가 바뀌어져 버린 때였습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곽으로 세계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던 저 바벨론 제국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단 5:30).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부터 새로운 제국 페르시아가 등장하고 말았습니다(단 5:30). 이러한 역사의 변천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것은 선민 연단 기간이 끝난 70년이 되던 해, 약속하신 대로 바벨론의 압제에서 유다를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였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자 고레스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여 유대인의 해방령을 내리고 말았습니다(사 45:1-3, 스 1:1-4). 유대 사람 다니엘은 새롭게 등장한 신흥 제국의 무대 위에 다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군주 다리오는 방백 120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그 위에는 총리 셋을 세웠는데, 다니엘은 그 세 총리 중에 총리장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마음이 민첩하여 모든 방백들과 다른 총리보다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I. 국가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의 왕명(6:1-9)-정치적 충성-새 제국의 군주 다리오는 하나님 위에 자리를 잡으려는 악법의 조서에 어인을 찍는 우(愚)를 범하였음을 봅니다.
1. 그것은 충성된 신하 다니엘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모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니엘 6장 4절에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께 충성했고, 그의 행동과 정책에 아무런 허물도 잘못도 없었습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충성심과 공직처리 과정에 나타난 그의 청렴함이 동료들의 시기를 불러일으키고 말았습니다.
2. 다니엘의 신앙생활을 올무로 모략을 꾸몄습니다. 다니엘 6장 5절에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신앙에 관계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냐, 왕에 대한 충성이냐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일편단심의 충성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부패한 정치가들의 권모술수는 참으로 간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3. 다리오를 신으로 만드는 법령을 만듦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니엘 6장 7절에 …왕 외에는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들이 다리오 왕을 신으로 조작하고, 그 외 다른 신을 섬기거나 구하는 자들을 사자굴에 던져 넣어 죽이기로 한 악법이었습니다(6-7, 12). 저들은 다니엘을 없애 버리기 위하여 다리오를 신으로 추켜올리고 그의 명예와 권위와 위엄을 높이는 척하였습니다.
4. 마침내 그것은 어명과 어인으로 법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 6장 8-9절에 …다시는 고치지 못하게 …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리라 고 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자신을 신으로 높이는 간악한 무리들의 간교에 눈이 어두워 이러한 악법에 서명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류의 악법들이 국가지상주의를 이루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일들은 이 세상 역사의 생리였기도 합니다. 저 바벨론 제국이나 페르시아 제국 뿐 아니라 로마제국이나 독일의 나치주의자들이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없애 버리기 위한 사탄적 역사였습니다. 이렇게 국가지상주의, 권력지상주의는 하나님 위에서 하나님을 호령하고 명령하려고 하였습니다.
Ⅱ. 항명(抗命)하는 다니엘의 기도(단 5:10)-종교적(신앙적) 충성-결국 하나님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국가지상주의의 왕명(王命)은 그 자체가 악법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죽이려고 하는 무서운 사탄적 술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실로 죽음을 재촉하는 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어명에 충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밖에서, 아니 하나님과 관계없는 그리고 하나님 없는 정치적 충성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두 길을 다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은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기도에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리오 왕의 어명을 대적하는 항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불충의 죄, 반역의 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어떠하였던가
1. 죽음을 각오한 기도였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 중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그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 어명을 거역할 수 없음을 알고도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변개치 못할 메대와 바사의 법률(단 6:8)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자굴의 형벌이 따르는 결과인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음이 따르는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그가 순교적 신앙으로 기도하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신론적 국가지상주의 나라에서나 우상숭배적 국가지상주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2. 전에 행하던 대로 하는 기도였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 중에 …전에 행하던 대로…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규칙적인 기도를 가리킵니다. 습관적인 기도를 가리킵니다. 기도가 생활화되어 버린 그의 삶을 보여 줍니다.
1 하루 세 번씩 하나님을 찾던 다니엘의 기도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에도 특별한 방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특별 금식기도라든가, 특별 합심기도 같은 방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은밀한 방법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다른 정치적 수단도 쓰지 않았습니다.
2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이는 성전을 향한 기도였는데,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눈이, 마음이, 이름이 머물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창을 열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과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열린 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이 닥쳐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창을 닫지 않고 전에 행하던 대로 열어 제쳐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창을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고국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활짝 열어 제쳐놓고 기도하였습니다.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어젖히고 비둘기를 내어 보냈습니다. 기생 라합은 창을 열어젖히고 여호수아의 정탐꾼을 내어 보냈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창을 열어 제쳐놓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은 외적인 환경의 변화 여부에 관계없이 전에 행하던 대로 진행이 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사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히 13:8). 동요를 모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다시 6장 10절에 말하기를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1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태도의 기도를 보여 줍니다.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기도를 보여 줍니다.
2 간절한 기도를 보여 줍니다. 애쓰는 기도, 뜨거운 기도를 보여 줍니다.
3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서원을 보여 주는 기도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지조와 절개를 나타내는 기도입니다.
4. 감사하는 기도였습니다. 6장 10절은 또 말하기를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대단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에 이르는 위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절망하거나 낙담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보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도 속에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 그는 사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였기 때문입니다(5:20).
2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5:20).
3 그는 구원에 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5:22).
4 그는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고 하는 확고한 내세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자굴도 불사한 것입니다(5:16). 5 그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자랑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5:23). 6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5:26-27). 그는 죽음 앞에서 다시 사는 승리의 비결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감사 기도가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분명히 항명(抗命)입니다. 왕에 대한 정치적 불충이요 반역입니다. 죽어 마땅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자굴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6:16).
Ⅲ. 왕도(王道)를 걷는 사람 다니엘서 6장 16절에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의 원수들이 계속되던 다니엘의 기도를 책잡아(6:11) 범법자로 고소한 결과였습니다(6:12-15). 그러나 하나님은 왕도를 걷는 다니엘을 위하여 이미 천사를 보내사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놓고 말았습니다(6:22). 마침내 다니엘은 죽음의 사자굴에서 다시 살아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참소하던 원수들이 그 사자굴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6:24). 다리오 왕은 특별 조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하는 특별 조서였습니다.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1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2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3 그 나라와 권세는 무궁하며
4 구원자이시며 5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라고 하였습니다(6:25-27). 마침내 다니엘은 다리오 시대와 고레스 왕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6:2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왕도를 걷는 자들의 영광스러운 형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명을 따라 왕도를 걷는 자는 승리하고 만다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왕도를 걷는 사람들은 거룩한 왕명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에게는 한 분 하나님만을 왕으로 믿고 섬기고 따르는 절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참된 신앙은 이 세상 가운데서 일어나는 온갖 류의 권력의 학정에 저항하는 보루(堡壘)가 됩니다. 하나님의 왕명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2차적인 환경의 여러 변화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제1차적인 환경의 변화를 주시하는 자들입니다. 말하자면 보이는 세상의 환경들을 만날 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세계를 주시하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언제나 보이지 아니하는 제1차적인 원리에 뿌리를 두고 보이는 제2차적인 현실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이따금 이따금 지상의 군주들은 하나님의 자리와 이름과 위치와 권위를 빼앗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른바 국가지상주의가 교회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국가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국가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또 교회가 국가를 지배해서도 안됩니다. 국가도 교회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종속하는 두 기관입니다. 국가는 자연 은총의 영역을, 교회는 특별 은총(구원)의 영역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교회는 국가를 향하여 시민적 충성을 해야 합니다. 이른바 정치적 충성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교회를 향하여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을 착취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은 종교적 충성(신앙적 충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나 어떤 사람을 하나님처럼 섬기거나 절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 곧 어명입니다. 그것은 메대와 파사의 변개치 못하는 법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선포하신 변개치 못하는 율법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왕명을 좇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인류가 그 마음의 지성소에 보존해야 될 가장 중요한 생명의 보화요 축복의 보화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군주들이 그것을 착취해 가려고 망령을 떨 때가 있습니다. 다리오와 다니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위치와 하나님의 자리를 다리오 왕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사자굴로 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길이, 그 장소가 왕명을 따르는 왕도였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세계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인류 사회가 존속되었겠는가 어떻게 역사의 정도(正道)가 이루어졌겠는가 만약에 하나님의 왕명에 따라 살고 그 왕명을 좇아 왕도를 걸어가는 자가 없는 세계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무슨 인류 역사의 존재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성립되었겠는가 거기에 무슨 정의와 자유와 사랑이 성립되었겠는가 거기에 무슨 종교와 예배와 질서가 성립되었겠는가 다니엘이 하나님의 왕명을 좇아 죽음의 길을 택한 그 일 때문에 전 페르시아 제국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 위엄과 주권이 입증되지 않았던가! 정의가 이기고 만다는 진리가 역사를 주도하고 말지 않았던가!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의 주권자가 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이 인류의 왕이 되신다! 하나님만이 창조의 왕이시오, 구원의 왕이시요, 심판의 왕이 되신다! 모든 인류는 그 왕이신 하나님의 왕명에 따르면 복을 받고 영생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왕명을 불신하고, 부정하고, 도전하고, 거역하면 천벌을 받는다! 바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자기 왕명 선언이 존재하는 역사의 기준과 가치와 목표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 자신의 왕명 선언이 인류가 걸어갈 참 왕도가 되고, 오늘의 행복과 미래의 소망이 된 것입니다. 적어도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왕명에 전 소망을 걸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오늘 우리들이 그러한 행복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명은 우리 인생의 전부입니다. (다음주 계속)
I. 국가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의 왕명(6:1-9)-정치적 충성-새 제국의 군주 다리오는 하나님 위에 자리를 잡으려는 악법의 조서에 어인을 찍는 우(愚)를 범하였음을 봅니다.
1. 그것은 충성된 신하 다니엘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모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니엘 6장 4절에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께 충성했고, 그의 행동과 정책에 아무런 허물도 잘못도 없었습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충성심과 공직처리 과정에 나타난 그의 청렴함이 동료들의 시기를 불러일으키고 말았습니다.
2. 다니엘의 신앙생활을 올무로 모략을 꾸몄습니다. 다니엘 6장 5절에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신앙에 관계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냐, 왕에 대한 충성이냐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일편단심의 충성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부패한 정치가들의 권모술수는 참으로 간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3. 다리오를 신으로 만드는 법령을 만듦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니엘 6장 7절에 …왕 외에는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들이 다리오 왕을 신으로 조작하고, 그 외 다른 신을 섬기거나 구하는 자들을 사자굴에 던져 넣어 죽이기로 한 악법이었습니다(6-7, 12). 저들은 다니엘을 없애 버리기 위하여 다리오를 신으로 추켜올리고 그의 명예와 권위와 위엄을 높이는 척하였습니다.
4. 마침내 그것은 어명과 어인으로 법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 6장 8-9절에 …다시는 고치지 못하게 …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리라 고 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자신을 신으로 높이는 간악한 무리들의 간교에 눈이 어두워 이러한 악법에 서명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류의 악법들이 국가지상주의를 이루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일들은 이 세상 역사의 생리였기도 합니다. 저 바벨론 제국이나 페르시아 제국 뿐 아니라 로마제국이나 독일의 나치주의자들이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없애 버리기 위한 사탄적 역사였습니다. 이렇게 국가지상주의, 권력지상주의는 하나님 위에서 하나님을 호령하고 명령하려고 하였습니다.
Ⅱ. 항명(抗命)하는 다니엘의 기도(단 5:10)-종교적(신앙적) 충성-결국 하나님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국가지상주의의 왕명(王命)은 그 자체가 악법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죽이려고 하는 무서운 사탄적 술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실로 죽음을 재촉하는 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어명에 충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밖에서, 아니 하나님과 관계없는 그리고 하나님 없는 정치적 충성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두 길을 다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은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기도에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리오 왕의 어명을 대적하는 항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불충의 죄, 반역의 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어떠하였던가
1. 죽음을 각오한 기도였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 중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그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 어명을 거역할 수 없음을 알고도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변개치 못할 메대와 바사의 법률(단 6:8)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자굴의 형벌이 따르는 결과인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음이 따르는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그가 순교적 신앙으로 기도하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신론적 국가지상주의 나라에서나 우상숭배적 국가지상주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2. 전에 행하던 대로 하는 기도였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 중에 …전에 행하던 대로…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규칙적인 기도를 가리킵니다. 습관적인 기도를 가리킵니다. 기도가 생활화되어 버린 그의 삶을 보여 줍니다.
1 하루 세 번씩 하나님을 찾던 다니엘의 기도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에도 특별한 방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특별 금식기도라든가, 특별 합심기도 같은 방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은밀한 방법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다른 정치적 수단도 쓰지 않았습니다.
2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이는 성전을 향한 기도였는데,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눈이, 마음이, 이름이 머물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창을 열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과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열린 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이 닥쳐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창을 닫지 않고 전에 행하던 대로 열어 제쳐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창을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고국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활짝 열어 제쳐놓고 기도하였습니다.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어젖히고 비둘기를 내어 보냈습니다. 기생 라합은 창을 열어젖히고 여호수아의 정탐꾼을 내어 보냈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창을 열어 제쳐놓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은 외적인 환경의 변화 여부에 관계없이 전에 행하던 대로 진행이 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사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히 13:8). 동요를 모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다시 6장 10절에 말하기를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1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태도의 기도를 보여 줍니다.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기도를 보여 줍니다.
2 간절한 기도를 보여 줍니다. 애쓰는 기도, 뜨거운 기도를 보여 줍니다.
3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서원을 보여 주는 기도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지조와 절개를 나타내는 기도입니다.
4. 감사하는 기도였습니다. 6장 10절은 또 말하기를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대단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에 이르는 위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절망하거나 낙담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보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도 속에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 그는 사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였기 때문입니다(5:20).
2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5:20).
3 그는 구원에 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5:22).
4 그는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고 하는 확고한 내세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자굴도 불사한 것입니다(5:16). 5 그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자랑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5:23). 6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5:26-27). 그는 죽음 앞에서 다시 사는 승리의 비결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감사 기도가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분명히 항명(抗命)입니다. 왕에 대한 정치적 불충이요 반역입니다. 죽어 마땅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자굴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6:16).
Ⅲ. 왕도(王道)를 걷는 사람 다니엘서 6장 16절에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의 원수들이 계속되던 다니엘의 기도를 책잡아(6:11) 범법자로 고소한 결과였습니다(6:12-15). 그러나 하나님은 왕도를 걷는 다니엘을 위하여 이미 천사를 보내사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놓고 말았습니다(6:22). 마침내 다니엘은 죽음의 사자굴에서 다시 살아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참소하던 원수들이 그 사자굴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6:24). 다리오 왕은 특별 조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하는 특별 조서였습니다.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1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2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3 그 나라와 권세는 무궁하며
4 구원자이시며 5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라고 하였습니다(6:25-27). 마침내 다니엘은 다리오 시대와 고레스 왕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6:2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왕도를 걷는 자들의 영광스러운 형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명을 따라 왕도를 걷는 자는 승리하고 만다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왕도를 걷는 사람들은 거룩한 왕명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에게는 한 분 하나님만을 왕으로 믿고 섬기고 따르는 절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참된 신앙은 이 세상 가운데서 일어나는 온갖 류의 권력의 학정에 저항하는 보루(堡壘)가 됩니다. 하나님의 왕명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2차적인 환경의 여러 변화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제1차적인 환경의 변화를 주시하는 자들입니다. 말하자면 보이는 세상의 환경들을 만날 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세계를 주시하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언제나 보이지 아니하는 제1차적인 원리에 뿌리를 두고 보이는 제2차적인 현실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이따금 이따금 지상의 군주들은 하나님의 자리와 이름과 위치와 권위를 빼앗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른바 국가지상주의가 교회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국가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국가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또 교회가 국가를 지배해서도 안됩니다. 국가도 교회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종속하는 두 기관입니다. 국가는 자연 은총의 영역을, 교회는 특별 은총(구원)의 영역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교회는 국가를 향하여 시민적 충성을 해야 합니다. 이른바 정치적 충성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교회를 향하여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을 착취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은 종교적 충성(신앙적 충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나 어떤 사람을 하나님처럼 섬기거나 절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 곧 어명입니다. 그것은 메대와 파사의 변개치 못하는 법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선포하신 변개치 못하는 율법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왕명을 좇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인류가 그 마음의 지성소에 보존해야 될 가장 중요한 생명의 보화요 축복의 보화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군주들이 그것을 착취해 가려고 망령을 떨 때가 있습니다. 다리오와 다니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위치와 하나님의 자리를 다리오 왕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사자굴로 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길이, 그 장소가 왕명을 따르는 왕도였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세계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인류 사회가 존속되었겠는가 어떻게 역사의 정도(正道)가 이루어졌겠는가 만약에 하나님의 왕명에 따라 살고 그 왕명을 좇아 왕도를 걸어가는 자가 없는 세계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무슨 인류 역사의 존재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성립되었겠는가 거기에 무슨 정의와 자유와 사랑이 성립되었겠는가 거기에 무슨 종교와 예배와 질서가 성립되었겠는가 다니엘이 하나님의 왕명을 좇아 죽음의 길을 택한 그 일 때문에 전 페르시아 제국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 위엄과 주권이 입증되지 않았던가! 정의가 이기고 만다는 진리가 역사를 주도하고 말지 않았던가!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의 주권자가 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이 인류의 왕이 되신다! 하나님만이 창조의 왕이시오, 구원의 왕이시요, 심판의 왕이 되신다! 모든 인류는 그 왕이신 하나님의 왕명에 따르면 복을 받고 영생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왕명을 불신하고, 부정하고, 도전하고, 거역하면 천벌을 받는다! 바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자기 왕명 선언이 존재하는 역사의 기준과 가치와 목표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 자신의 왕명 선언이 인류가 걸어갈 참 왕도가 되고, 오늘의 행복과 미래의 소망이 된 것입니다. 적어도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왕명에 전 소망을 걸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오늘 우리들이 그러한 행복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명은 우리 인생의 전부입니다. (다음주 계속)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