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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구하는 이 (단9: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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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해가 저물어 간다. 만족스러웠던 한 해였던가 그리고 행복했었던 한 해였던가 그럴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마치지 못한 일이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며칠만 지나면 새해가 다가 온다. 새해를 마지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는 것 이 이 해를 청산하고 새롭게 일어서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멀리 바라보며 기도하는 한 선지자에게서 해답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을 떠나서 먼먼 바벨론에 젊어서 끌려온 포로 신세였던 다니엘이었다. 그는 기라성같은 세계적인 인물들을 제치고 대제국들을 움직였 던 지도자로 부상한다. 바벨론은 얼마 후 멸망하고 메디아 그리고 페르샤등의 대제국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력은 계속된다. 위대한 대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경험하며 그는 역사 전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제 이 거인은 저무는 해를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자우리에서 하루를 지냈던 사람이요 황제의 꿈을 해석해 인류의 역 사를 예언했던 신비한 인물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그만큼 누렸던 이가 없었 건만 하나님 앞에서 그는 겸손한 어린이의 모습이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는 외친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무엇이 용서하는 기준이 던가 무슨 용서받을 일을 그가 했기 때문인가 그가 위해서 기도하는 이스라 엘 사람들이 무슨 훌륭한 일을 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절대로 인간적인 기준 은 없었다.
오로지 그가 용서를 구하는 근거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었던 것이다. 용서하는 분의 자비가 크기 때문이다. 이제 한 해를 보내는 여러 거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한 해를 청산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새 날이 정말 새 날이 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새 해를 새로운 기회로 주셨다. 목숨도 연장해 주 셨다. 그리고 계시를 보여주면서 새 삶을 주셨다. 가정과 교회와 일터를 주셨다. 이제 이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지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해를 살았다. 후회와 아쉬움이 만발했다 하 더라도 여전히 그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질 높은 것이었다. 얼마 전에 만난 후배가 한 마디 했다. "하나님은 해마다 내 삶의 질을 높이시고 해마다 새로 운 선물을 주신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앞으로 또 주실 것이 기대가 된다." 하나님과 함께 살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위대한 삶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는 선지자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성전 문 앞 에서 하나님을 대하면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자랑스러울 수 없다. 오히려 세리와 창녀처럼 엎드리는 것이다. 그저 용서 밖에 구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제사와 선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통회하는 심정을 원한다. 하나님의 사람으 로 확실하게 살지 못한 것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받았다. 그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어주셨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과 능력을 우리에게 넣어주셨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결한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 자신의 한 없이 넓은 마음과 사랑과 높은 이상을 주셨다. 아니 하나님 자신을 주셨다. 영광스럽게도 우리 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이러한 지식이 없이 신자는 신자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 은혜의 작은 부분도 누리지를 못했다.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평안을 가지지 못했다. 그 풍족한 마음도 없었고 아름 다운 삶도 살지 못했다. 그가 안에서 풍요한 삶을 공급하고 계시건만 언제나 세상적인 것들로서 기쁘려고 하고 그것들로 마음을 채우려고 하였다. 사람들 의 칭찬과 사랑만을 원했지 언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원하기나 했던가! 우리들에 의해서 하나님은 철저히 무시를 당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나 외로워하고 언제나 걱정하였다.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돌보지 않고 능력도 없는 것처럼 경쟁자들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세상 적인 방법으로만 살았던 것이다. 일이 잘 않될 때는 변명하려고 하고 언제나 잘 않된 이유를 남에게 돌리고 원망하는 옛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도 하나님 앞에 죄송하다. 이 놀라운 도움과 축복을 가지고도 세상 사람들보다 얼마나 나은 양질의 삶을 살아왔던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어주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였던가 얼마나 열심히 예배에 참예하고, 얼마나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생활을 해 왔던가 어떤 장군이 전쟁에 나섰다. 적군의 여러 배가 되는 병력과 장비를 가지 고 온 국민의 환송을 받으며 떠났다. 필요한 모든 것은 언제든지 더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적과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며 병력과 장비만 낭 비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 그 해도 저물고 무엇인가 보 고를 해야만 할 입장이 되었다. 그가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지원을 받고 있는 존재로서 그 수준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바울은 "너희가 부르 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엡 4:2)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능력자가 되었으니 그 수준에 해당하는 삶을 살아달라는 부탁이다. 왕은 왕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할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오늘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한 해를 청 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 저것 용서를 구하기도 해야겠지만 무 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과 그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음을 사죄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왕의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에 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지식과 믿음뿐이다. 거기서 왕의 삶이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다 믿습니다. 그리고 믿음만이 필요한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믿음의 열매가 없다면 무엇으로 자신이 믿음 있음 을 증명할 것인가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남의 욕이나 하면서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하고 더러운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다면 어떻게 믿음을 가진 사람 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전혀 믿음이 아니다. 이렇듯 열매가 없는 삶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표현된다. 하나님께 대한 불충은 모두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표현된다. 하나님을 사랑함은 모두가 이웃 에 대한 사랑으로 보여진다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바른 질서가 세워지면 세상에서도 그 질서의 삶은 진행된다. 그렇게 된 사람은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성경적인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과 믿음에 미숙한 단계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 라고 했지만 얼마나 그리했던가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은 아내를 원망 하지 않았던가 부모에게 웃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했던가 자녀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동료와 부하들에게 섭섭한 행동을 했던가! 심지어는 함께 예배하는 신 자들을 비난했다. 우린 너무도 남에게 상처를 쉽게 주는 신자들인 것이다. 이대로 그냥 해를 넘길수는 없다. 자신의 죄성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겸 손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부족하기에 혹시 맘 상하게 한 일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참된 신자의 모습이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로마 교황 피오 10세가 임종을 맞고 있었다. 수억의 카톨릭 교도의 죄를 사할 힘을 가졌다고 믿는 살아있는 베드로의 현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으 로 가는 그의 모습은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일뿐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임 종의 기도가 무엇이었던가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세리나 창녀 가 성전 문깐에서 하는 말이 아니던가! 이것이 인간의 진실이다. 용서를 구하는 것과 그냥 뉘우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과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같은 것인가 용서와 뉘우침은 다 르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함으로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 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더우기 한 해의 마지막 예배는 그러하다. 일생을 그치는 한 강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악하게 살다가 십자가 에서 처형을 당하면서 삶을 마친다. 한 사람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죽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용서를 구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그리고 그는 용서의 댓가로 새생명을 받았다. 모든 잘못은 용서받고 새로운 출발이 새로운 능력과 함께 주어졌다. 이것이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다. 정말로 자신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 용서를 구한다.
이대로 보다는 한 걸음 더 나은 상태로 일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용서 받기 위해서 양을 가지고 나왔다. 그 양을 죽이면서 잘못된 자신이 함께 죽고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나오는 것이다. 필 목사의 자서전에 한 망나니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데이브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평소에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단 술에 취하면 마귀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술취한 상태였다. 말은 거칠었 고 조그만 일에도 싸움을 벌리곤 했다. 술에 취해서 성질을 부리고 파괴하고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그의 아내도 매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했다. 언제나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목사와 악수하고 돌아갔다. 어느날 밤이었다. 목사는 설교가 끝난 후 에 새로운 삶으로 바꾸어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모두 앞으로 나와서 제단 앞에 무릎 꿇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갑자 기 한 사람이 일어났다. 웬 거인이 제단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데이브였다. 그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말했다. "목사님, 이젠 제가 이런 삶을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빕니다. 예수님 나를 구해주시 기 바랍니다." 목사는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었다. 제단에 엎 드렸던 그는 청중 쪽으로 돌아섰다. 그의 얼굴 표정은 신비롭고 이루 표현할 수 없이 기쁨에 넘쳤다. 용서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회개를 의심했지만 그는 그후 성자로 살았다. 그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커다란 덩치에 정직한 그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신비 한 힘과 함께 사람들에게 천사의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 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 무섭고 정의로운 하나님이 용서하셨기에 그리고 그 확신과 능력을 가졌기에 멋진 삶이 전개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되 진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변화의 능력을 주신다.
언제나 생각나는대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잘못된 과거를 빨리 빨리 버리는 것이다. 자기 영혼 속의 쓰레 기를 오래 품고 있어서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더우기 한 해를 마감하는 마당 에서 묵은 빚들을 깨끗이 청산해야 할 것이다. 이웃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정립된 뒤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다시 이웃과의 관계도 바르게 정립이 된다. 그 들이 받아들이고 안하고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서 죽으 시고 먼저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 쪽에서 먼저 시작한다. 하나님은 잘못이 없 으므로 용서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용서하기 전에 먼저 용서를 빌어야 한다. 애벌레가 나비로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딱딱하게 흉한 껍질 로 시체처럼 죽은 것이 번데기다. 겉모습은 죽은 것이지만 그 안에는 더 나은 생명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용서를 구함으로 자신을 낮 춘다. 높은 사람이건, 젊잖은 체면이건 상관 없다. 용서를 구하라. 그러면 더 나은 생명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용서하기 전에 먼저 용서를 구하라. 미운 사람일수록 더욱 용서를 구하라. 진심으로 "나는 다 잘했는데 저쪽 이 잘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른 신자가 아니다. 무조건 용서를 구하라. "당신 마음에 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구 뒤에 서 비판한 것에 용서를 구하라. 아내와 남편, 자식에게도 용서를 구하라. 비 지네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에게 모욕 준 것에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인간은 용서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를 빌고 새로운 삶을 갈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날을 마지한다. 새 해는 우리에게 큰 도약을 줄 것이다. 금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우리 믿는 신자에게 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새 날을 꿈꾸기 시작할 것이다. 아픔과 한은 모두 벗어버리 고 이제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하나님의 낙원을 향해서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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