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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의 환상과 기도 (암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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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월 25일, 우리 민족의 역사에 결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가슴아픈 날이기도 합니다. 비록 4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갔기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 보다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가 더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직도 그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나간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그것이 좋은 역사라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본받아야 할 것이지만, 반대로 좋지 못한 실패의 역사라면 오늘 우리는 그 역사를 교훈삼아 두번 다시 우리의 선조들이 걸어갔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교훈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역사가는 말하기를 '우리가 역사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람들이 지나온 역사를 통하여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는 끝없이 되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습니까 과거의 역사가 실패의 역사라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그 역사를 교훈삼아 다시는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그 역사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의 역사적 기록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다루시고 간섭하시는 구속사적 사건 입니다.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택한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간섭하시고 다루시는가 일정한 원리를 보여줍니다. 성경에 기록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분열의 역사나 그들이 흥하고 멸망해가는 역사, 또한 그 역사속에서 등장하여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였던 선지자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이 우리의 시대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범죄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는가 하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강조하면서 그 백성을 위로합니다. 본서의 저자인 선지자 아모스는 예루살렘에서 약12마일 떨어져 있는 드고아 지방의 목자였습니다. 어느날 그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고향을 떠나 북쪽 이스라엘로 올라가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한 순전히 평민 출신의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 아모스가 사역하던 시대는 북쪽 이스라엘이 가장 번영하였던 여로보암 2세때로부터 점점 나라가 멸망으로 기울어져가는 때였습니다. 동시대의 선지자 호세아가 주로 개인 윤리적인 죄악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다면, 선지자 아모스는 보다 더 이스라엘의 사회 윤리적인 죄악들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던 선지자입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다면 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외쳤습니다. 방금 읽은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모스에게 보여주신 세개의 환상과 그 환상 을 본 아모스 선지자의 기도를 짧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자신의 뜻이나 장래에 되어질 일을 보여주는 계시의 방편으로서 성경에 자주 나타납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세개의 환상은 장차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심판의 예고였습니다. 오늘은 아모스가 본 세개의 환상과 기도하는 선지자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 우리 역시 기도의 파숫꾼으로 이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설 것을 결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첫번째로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황충의 환상이었습니다. 본문 1절 이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 지라' 현대역 성경들은 이 황충을 메뚜기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황충이 기어다니는 것인지 혹은 날아다니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메뚜기의 일종으로 수백만 수천만 마리씩 떼를 지어다니면서 곡식과 풀들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무서운 곤충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애굽에 내린 10개의 재앙 중에 여덟번째 나타났던 메뚜기 재앙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에는 간혹 이러한 메뚜기떼가 몰려와 푸른빛 나는 식물이란 식물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목자요 농부였던 아모스 선지자는 이러한 황충의 공격이 이스라엘에 있어서 죽음보다 무서운 징벌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소망은 많은 곳에서 풀이 움트고, 소와 양이 많아져 우리가 확장되고, 곳간이 온갖 곡식으로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가 본 첫번째 환상은 황충이 나타나 그것들을 순식간에 먹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환상이 보여주는 상징적은 뜻은 무엇입니까 이 황충의 환상은 바로 장차 일어 나게 될 앗수르의 공격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앗수르는 세번에 걸쳐서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는데, 이 황충의 환상은 앗수르의 제1차 침략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16대 므나헴왕 때에 앗수르왕 불(디글랏 벨레셀)이 공격해 왔는데, 이러한 앗수르의 침략을 미리 환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첫번째 황충의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끔찍한 환상을 목도한 선지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절 이하 말씀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여기서 야곱이란 이스라엘의 본명으로 북조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로보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크고 강한 나라요, 부요한 백성으로 자처하고 있었지만, 선지자의 눈에는 너무나 어리석고 불쌍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벡성으로 보였기에 아모스는 그런 이스라엘을 불쌍히 보시고 그 벌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서 선지자들의 모습을 관찰해 볼 때에 선지자들은 믿음의 눈으로 장래 일을 미리 내다보면서 그들에게 닥칠 재난을 몸소 체험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철 없는 백성들이 죄악 가운데 기뻐 춤을 출 때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하고 기도하면서 재난을 경고합니다. 또한 반대로 철 없는 백성들이 절망가운데 슬퍼하며 탄식할 때에 선지자는 미래의 소망을 현실로 체험하면서 기뻐하고 오히려 백성들을 위로합니다. 아모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이 물질적인 번영 속에서 죄악에 취해 있을 때에 장차 나타날 재난을 바라 보면서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적인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기도를 드림으로 이 민족을 구원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모스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만을 바라볼때 당장이라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심판하고 싶지만 선지자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은 참고 인내하시면서 첫번째 심판을 유예하십니다. 실제로 앗수르의 디글랏 벨레셀이 공격해 왔지만, 그 때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많은 조공을 바침으로 멸망의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2.두번째로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불의 환상이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두번째 환상 은 불이 나타나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모스는 이것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알고 앞에서 드린 기도와 동일한 기도를 드립니다. '주 여호와여 청컨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심판을 유예하십니다. 이 환상은 실제로 앗수르의 제2차 침공을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18대 베가왕 때에 앗수르의 디글랏벨레셀이 다시 쳐들어와 베가왕을 죽이고 친 앗수르 정책을 펴는 호세아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또한 납달리 땅을 빼앗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은 것은 바로 선지자의 간절한 중보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세번째로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다림줄의 환상이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본래 다림줄이란 건축가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담이나 건물을 쌓아 올릴 때에 수직으로 세워지는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섰다는 것은 부정과 불의로 기울어져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공의의 다림줄로 측량하시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고, 부정과 부패와 죄악으로 만연된 이스라엘은 존재해야할 근거가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을 무너뜨려 폐허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모스가 본 세번째 환상은 앗수르의 제3차 침략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19대왕인 호세아 9년, 앗수르의 살만에셀이 쳐들어와 사마리아성은 함락되고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됩니다. 마지막 9절 말씀은 이 멸망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이말씀대로 BC 722년 북쪽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된지 209년만에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주목해 보면 세번째 환상을 본 후에는 선지자의 중보기도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앞의 두 환상과 다른 점입니다. 만약 세번째 환상을 보았을 때에도 선지자 아모스가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하면서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유예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선지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참으심과 인내하심이 한계에 달했고 결국 멸망의 때가 이르렀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더이상 중보의 기도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합니다. 옛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전에도 아브라함은 그 성에 살고 있는 롯을 생각하면서 계속 그 심판을 유예해 주실 것을 간구한 바 있습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 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50명이 있다면, 45명, 30명, 20명, 10명이 있다면 그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겠나이까' 그러나 그 성에 의인 10명이 없다는 것을 안 아브라함은 더 이상 요구 를 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모스 선지자도 하나님의 참으심과 인내하심이 한계에 달하였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기도를 중지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심판의 메세지를 주셨습니다. 때로는 여러가지 환상을 통하여 장차 나타날 구체적인 심판의 모습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음으로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영적인 눈을 뜨고, 다시말해서 선지자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 시대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얼마나 살기좋은 시대입니까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지구촌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얼마나 오늘 우리들은 물질 문명의 풍요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록 철없는 백성들이 자신의 소견에 옳은데로 먹고 마시면서 즐긴다 할지라도, 참으로 살기좋은 시대라고 생각하면서 편안하다 편안하다 소리치며 기뻐 춤을 춘다 할지라도 이 시대가 마지막 심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성도라면 이 민족의 죄악들을 가슴에 안고 슬퍼하며 탄식하며 부르짖으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 2세들의 장래를 내다보면서 눈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민족을 위한 백성들의 사명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중보 기도의 위대성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의 운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애타게 부르짖었던 선지자의 중보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심판은 두번씩이나 유예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기도가 이스라엘의 재난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그 당시에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기도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위하여 기도하 였던 아브라함,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멸하시려거든 차라리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호소하였던 모세, 위태로운 나라의 운명을 감지하고, 그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하였던 아모스를 비롯한 많은 선지자들, 이들은 한결같이 기도로 민족을 구원하였던 애국자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누가 진정한 애국자입니까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나라의 장래는 정치적인 안정이나 경제적인 부요함, 국방의 견고함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교훈하는 바와 같이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며 기도하는 택한 백성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을 때에 그 나라는 소망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시대의 영적 파숫꾼이 되어서 기도로 민족을 구원하는 애국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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