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준비하는 다윗 (삼하7:1-17)
본문
다윗이 여러 부족들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나라가 확장됐고, 이제 왕권은 완전히 확립되었습니다. 그 정치적 기반은 이제 완전히 확립이 된 상태에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제 내가 백향목으로 만든 집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저렇게 천막에다 모셔 놓은 것이 합당하지 않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단 선지자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나단 선지자가, “왕의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니 당신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서, 다윗에게 가서 분명히 이야기해 주라고 계시를 하십니다. 그 계시의 내용은 조금 전에 봉독한 말씀처럼 “너는 내 집을 건축하지 말라. 내가 언제 네게 내 집을 건축하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내가 너희를 출애굽 시킨 이후 지금까지 광야에서 천막 가운데에 내 법궤가 있어 왔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않았느냐 내가 항상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했고, 너희들을 먹이지 않았느냐 내가 언제 너희에게 세운 지도자, 사사들에게 내 집을 짓지 않는다고 책망한 적이 있느냐” 그러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내 집을 짓겠다고 하니 내가 오히려 네 집을 지어 주겠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여러가지 복을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복의 내용이 굉장히 의미 있기 때문에,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두세 가지 함께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깨닫고자 합니다. 복을 받은 다윗의 마음 먼저 1절에서 3절에 보면, 다윗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 다윗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셨고, 그래서 나라가 평안해졌고, 또 부귀와 영화가 따랐으며, 좋은 집에 거할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목동이었던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블레셋 앞에 전전긍긍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매 블레셋 모든 부족을 점령하고 나라가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다윗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고, 부귀를 누리게 되었고, 좋은 집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으로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된 다윗은 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부담을 갖기 시작합니다. 어떠한 부담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잘살게 되었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인가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꼭 내가 받은 복에 대한 반대급부는 아닙니다.
정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인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이며 생각입니다. 오늘 다윗이 보여준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성도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섬기는가를 보시는 그러한 하나님만은 분명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면서, “내가 네게 이 만큼 복을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이 만큼 해라.”는 식의 그러한 반대급부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결코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돌보심과 보살핌을 받은 자식의 마땅한 도리는 부모를 생각해야 되고 존경해야 되며 공경해야 되고 섬겨야 되는 것처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하실 때에 반대급부를 바라시고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인의 자세는, 성도들의 모습은, 마땅히 다윗 같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다윗은 부가 증가할 때 명예가 높아질 때, 그 커지는 부와 명예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도모할까를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기독교인들이 현대를 살아가면서 특별히 신경써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과 재능과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사치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히 주시는 만큼 하나님 앞에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가정을 주시면 주신 만큼 그 가정 구성원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일을 도모할 사명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만큼 우리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신 만큼 많이 갖지 못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마음을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신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과 은혜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그 은혜와 복을 어떻게 잘 감당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성도들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실패합니까 건강 주시니깐 그 건강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차라리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을 주지 않은 것이 더 큰 복일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건강 주니까 엉뚱한 것에 건강을 쓰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물질의 복을 주지 않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복일 수 있어요. 물질이 풍요롭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건전하게 살았고 진실하게 살았던 사람이 물질의 복을 받고 나니까 그 물질 때문에 엉뚱한 짓하고 범죄하고 다녀요. 그 사람은 물질을 받지 않은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 어떤 사람은 재능을 주니까 그 재능만 믿고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재능만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런 사람은 재능이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큰 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다윗, 그가 편안하고 풍요롭게 거할 때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은혜와 복을 받고 사는데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할까 이 생각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생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무엇을 할까 하나님이 나에게 베푼 은혜, 우리 가정에 베푼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할까 나는 무엇을 해야 될까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오늘의 본문 4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윗이 가졌던 생각은 건실한 생각이었습니까, 잘못된 생각이었습니까 마땅히 정상적인 신앙인이 가져야 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오늘 하나님의 반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봉사하고 충성하겠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이 목사 정말 잘 생각했다. 그래 내 마음이 정말 기쁘다. 그래 그렇게 해라.” 그게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반응 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선지자인 나단조차도 다윗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 “예, 좋습니다.” 하는 반응을 보여요.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 반응을 선지자인 나단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적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생각은 성경적인 해석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마땅히 가져야 할 생각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제지하십니다. “안 돼. 내가 언제 너보고 내 집을 지어달라고 했느냐 너보다 먼저 있던 많은 사사들에게도, 사무엘이나 기드온에게도 언제 내가 집을 지어달라고 했느냐” 하지만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뒤에 가서 보면 학개서 같은 데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학개서에 가기 전에 역대상 역대하에서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때, 그 일에 쓰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시고 축복하신 사람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 특권입니까, 아닙니까 그것은 물어보나 마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짓는 데 쓰임 받는 기술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축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더러 전을 짓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을 짓는 것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셨기에 멈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그 부분을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가 역대상 22장에 가서 보면, 왜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지 못하게 막으셨는지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게 아니라, 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유언하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성전을 짓기를 하나님께 사모했지만, 나는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셨다.
그러니 네가 지어라.” 이렇게 유언을 합니다. 그걸 보면, 그것이 하나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왜 안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다윗은 그 이유를 알았어요. 왜 안 된다고요 “너는 전쟁터에 나가서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라 내 집을 짓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 내 집은 평온의 사람, 화평의 사람이 지어야 된다.” 그러면서 솔로몬에게 내 집을 짓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직접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서 사람을 많이 죽이고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을 짓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어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를 귀 기울여 들어야만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봐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5절부터 보면, “내 주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집을 건축하겠느냐” 잘 기억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네가 어떻게 내가 거할 집을 짓겠느냐” “사랑하는 강성교회 성도들아, 너희들이 나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겠느냐 내가 너희들을 위해 일하지.” 이해가 되시지요 “내가 하겠다.” 하는 생각을 주님께서 지적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가대원 여러분들 수고를 많이 해요. 다른 성도들보다 몇 시간 더 봉사하고 헌신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별되어 앉아 있어요. 구별되게 옷도 입으시고. 우리 주일학교 교사들도 마찬가지에요.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 헌신해요.
그러나 저는 우리 교회에서 성가대원들에게 선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왠지 아시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좀더 수고했다고 생각하시지 말라는 뜻에서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돈 가지고 선물하면 이거 수고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헌금을 가지고 성도들의 수고의 댓가로 치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수고를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도 영광이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수고하시니까 점심 대접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안 해준다고 섭섭한 말을 하면 잘못입니다. “이렇게 봉사하는데 교회에서 점심도 하나 안 해주나” 그 생각 자체가 굉장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오늘 그 분이 함께 하시기에 이 시간 이 자리에까지 온 것이에요. 착각을 하지 말자 이 말입니다. 다윗에게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을 긋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거할 집을 짓겠느냐” 아니, 만군의 하나님, 온 우주를 지배하시는 하나님께 인간이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 드려봤자, 그 안에 모실 수가 있겠어요 아닙니다. 우리가 목숨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권능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어떤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왜지요 우리는 그 분이 만든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난 척한들 고상한 척한들 하나님 앞에는 하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항아리를 만들고 도자기를 만들고 그릇을 만들다가 마음에 안 들면 깨어버린다. 그것은 토기장이의 주권이란 말입니다. 즉 토기장이의 마음이란 말입니다. 진흙인 주제에 “나는 왜 항아리로 만듭니까, 요강으로 만듭니까, 쓰레기통으로 만듭니까 왜 나는 그 비싼 그릇으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하고 말할 자격도 없거니와, 깨뜨려 버린다고 불평할 자격도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런 존재입니다. 잘난 척해봤자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아요. 우리 끼리 비교할 때에는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어요. 좀 똑똑한 사람도 있고 덜된 사람도 있고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부정하십니다. “다윗아, 네가 나의 거할 집을 짓겠느냐” 지금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거하지 않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켰을 때부터 집에 거하지 않고 장막에 텐트에 거하셨다는 그 말입니다. 왜 텐트에 거하셨습니까 7절에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표현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장막에 거하셨습니까 왜 좋은 집에 거하지 않으시고 장막에 거하셨습니까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행하시기 위해서이었지요. 출애굽 하여 가나안과 홍해를 건너자 마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천막을 만들어 이동할 때마다 이동하게 했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성막을 짓는 게 무엇입니까 성전을 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너희 백성 가운데 거하겠다는 표시입니다. 그것이 성막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오늘 다윗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강성교회 성도들과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은 정상적 생각이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내가 너와 함께 거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주님 위해 무엇을 하기보다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더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내 삶 가운데 내 인생 가운데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더 원하시지요. 우리는 일 주일 동안에 내 주권 대로 내 마음 대로 살다가 주일날 하루만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여기 나와서 봉사하겠나이다, 내가 집사 하겠나이다, 성가대 하겠나이다, 교사 하겠나이다.”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그것보다는 무엇을 더 원하세요 “내가 언제 너희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하였느냐 내가 언제 너희에게 집사 하라고 하였느냐 언제 목사 하라고 하였느냐 언제 성가대 하고 교사 하라고 하였느냐 내가 더 원하는 것은 너희와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노라.” 어떤 사람은 주일을 꼬박꼬박 지켜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 계산해요. 어떤 사람은 헌금 좀 많이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 계산해 버려요. 그것 해놓고 자기들이 다했다고 생각하고 살아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어떠한 일들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다윗이 그러한 마음을 가진 것을 기뻐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에 주인이 되시기를 더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기를 더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따로 저 만치 멀치감치 모셔놓고 가끔 가다가 한번 인사치레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말씀 가운데 보면, 다윗은 정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흘린 사람으로 짓지 않고 평화의 사람으로 짓겠다고 하신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정말 사모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허락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8절에 “그러므로 내 종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리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런 말씀입니다. “다윗아, 네가 내 전을 짓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안된다. 내가 네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을 택해서 그 일을 하게 하겠다. 그러나 너는 이것을 생각하라. 네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느냐 네가 양을 치던 목동이 아니었느냐 그러나 지금 무엇이 되어 있느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있지 않느냐” 지금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게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주신 사명 대로 일하라 오늘 성도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누구 못지 않게 아름답게 일하고 열심히 하고 싶고 충성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에요. 우리 성도들 가운데에는 서로 경쟁심을 가지고 견제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는 많이 계세요. 경쟁도 적당히 해야지요. 도가 지나치면 교만이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얼마나 좋은 마음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더 인정 받고 싶고 더 일하고 싶고 더 큰 일꾼 되고 싶고, 그것은 굉장히 좋은 마음이지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은 이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있어요. “나는 강성교회에서 장로가 되고 싶다.” 좋은 소원이에요. 장로가 되어서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그릇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다 목사겠느냐, 다 장로겠느냐” 그게 계급은 아니지만, 일하는 위치가 있거든요.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제 마음은 여러분 모두가 장로가 되는 믿음의 수준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남전도회 여러분이 다 장로가 되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그 교회는 잘못된 교회이지요. 얼굴에 다른 부분은 없고 전부 다 눈만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괴물이지요. 문제가 심각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전을 지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낙심하지 말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느냐 너를 내가 이스라엘의 왕을 삼지 않았느냐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너는 감사해야 되고 만족해야 되고 충성해야 되지 않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에게 하시는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쓸모가 없어서, 가치가 없어서, 그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하지 않느냐 목동이었던 너를 이스라엘의 왕을 삼은 것 하나만으로, 왕 노릇 하나를 제대로 감당하는 것만도 그것도 크지 않느냐” 오늘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있어 한계를 느끼고 있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쓸모가 없다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신 분이 없습니까 “나는 강성교회에서 별로 할 일이 없는 사람이야, 강성교회 남전도회 일도 몇몇 사람이 다 하더구만. 나는 별로 일할 사람이 못 되는가 봐.”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자리에 나와 있다는 것만도 굉장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 그의 남은 여생을 어디에다 기울이느냐 하면, 성전을 짓는 재료를 준비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도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준비해 놓았어요. 다윗이 죽기까지 남은 여생 동안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느냐 자기는 하나님의 전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못 되고, 그런 자격은 없지만, 그 일을 준비하는 데에 자기 인생을 다 투자할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앞서서 일을 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에 드러나게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교회에서는 무엇입니까 목사, 장로 아닙니까 그러면 모두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겠는가 우리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장로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강성교회에도 장로가 생깁니다. 그 때에 장로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다윗의 모습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장로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장로가 이 교회를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성도들을 아름답게 돌보고 일하는 귀한 장로가 될 수 있도록 뒤에서 모든 일을 도와주고 준비해주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한 솔로몬보다도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더 합한 자였고, 하나님이 더 귀하게 여기셨고 더 칭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앞에 나와서 일하는 사람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그 뒤에서 그 사람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준비해주는 집사님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집사님들이 훌륭하지 못한 교회라면 장로님이 아무리 훌륭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또 목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장로님들이 도와주지 않고 밀어주지 않고 준비해주지 않으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교회의 참 모습은 바로 여기서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진짜 하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다윗아 네가 나를 위해서 내 집을 짓겠느냐 그건 안 된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주님께서 약속을 하나 해 주십니다.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12절 말씀을 보세요. 역사적으로 보면 그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합니다. 그 이후에 견고케 되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 대로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다윗의 후손들이 영원히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움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다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영원히는 커녕 다 허물어져 버렸고, 뿔뿔히 흩어진 민족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말씀이신데, 마태복음 1장 1절에 뭐라고 나옵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죠. 무슨 약속입니까 “내가 너에게 아들을 주어서 그 자손을 통해서 모든 민족을 복 주겠다”고 했어요. 아브라함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이삭이지요. 이삭을 통해서 모든 민족을 복주었습니까 아니에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장차 나타날 누구요 누구요 예수님, 예수님이지요. 그리고 오늘 다윗에게 또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아, 내가 네 자손을 통해서 내가 거할 처소를 지을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느부갓네살왕으로 인해서 다 무너져 버렸어요. 그 다음에 헤롯왕이 또 성전을 지었지요. 40년을 걸쳐서 성전을 지었는데 예수님께서 지나가면서 무엇이라고 했지요 “이것을 허물어 버려라. 내가 삼 일만에 다시 짓겠다.” 40년 동안에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서 지은 것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삼 일만에 짓겠습니까 주님께서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삼 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 아닙니까 삼 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를 무엇이라고 묘사했습니까 “성전이라” 그러면 진짜 성전은 무엇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 성전의 진정한 의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실 때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천사가 알려 준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심이라. 그게 예수님이란 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너희가 어떻게 내가 거할 집을 짓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지. 앞으로 내가 진짜 너희 가운데 거할 성전은 네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을 통해 이루겠다. 그 세워질 성전은 영원히 견고할 것이며, 누구도 허물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누구라고요 예수님이란 말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분이 우리 가운데 거함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한 그가 세운 교회는 주님 다시오실 그 날까지 영원히 견고케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에게 세우신 진정한 약속은 무엇입니까 “평화의 사람만이 이것을 세울 것이다.” 솔로몬을 말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진정으로 말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사랑과 긍휼과 평화를 가지고 화평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한 것은, 꼭 다윗은 자격이 없고, 솔로몬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다윗이나 솔로몬은 거기서 거기고, 어떻게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솔로몬보다 신앙이 더 성숙되어 있고, 믿음이 더 좋고 쓰임 받기에 더 합당한 사람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다윗이 전을 짓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서요 “너희들이 지은 전은 진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앞으로 메시야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이지요. 오늘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요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고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 받은 성도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일하는 것보다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구나. 이제부터는 마음에 정말 모시고 산다. 주일 날도 교회에 와서 예배 안 드려도 집에서 주님 모시고 살겠다. 일하는 것보다 주님 모시고 사는 것을 더 좋아 하신다고 했으니 내가 주님 모시고 살면 되었지 뭐 꼭 봉사할 필요가 있겠나 봉사하다가 시험들어 가지고 또 주님 모시지 않게 되고 은혜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이해하시는 분이 또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말씀 드렸지요 다윗의 마음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다윗처럼 해야 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더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고 성전이 뭔가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억하시라 그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의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첫째, “너희가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위해 일한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은혜를 베풀고 축복을 하기 때문에 너희가 이 자리까지 왔다.”는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둘째는, 받은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관심을 집중시켜야 될 일은 무엇인가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을 내가 모시고 사는 삶,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예배당, 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거하시고, 우리의 삶 어느 영역에 가든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와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8절 이하에서 다윗에게 복을 주시는데, “너를 존귀한 자로 만들겠다. 평안하게 살게 하겠다. 그 다음에 너를 세워 주겠다. 너의 후손에게 복을 주겠다. 불순종하더라도 삶을 빼앗아 버리는 일은 네 자손들에게는 하지 않겠다.”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마음에 사모하는 자들,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살기로 작정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이 복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존귀하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평안하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을 맡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복을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복을 주시는데, 무슨 복을 주시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잘못했다 할지라도 은혜를 빼앗아 가버리지 않고 은총을 걷어가지 않고 더 사랑해 주시고 계속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남은 여생 동안 이러한 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복의 내용이 굉장히 의미 있기 때문에,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두세 가지 함께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깨닫고자 합니다. 복을 받은 다윗의 마음 먼저 1절에서 3절에 보면, 다윗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 다윗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셨고, 그래서 나라가 평안해졌고, 또 부귀와 영화가 따랐으며, 좋은 집에 거할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목동이었던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블레셋 앞에 전전긍긍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매 블레셋 모든 부족을 점령하고 나라가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다윗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고, 부귀를 누리게 되었고, 좋은 집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으로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된 다윗은 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부담을 갖기 시작합니다. 어떠한 부담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잘살게 되었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인가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꼭 내가 받은 복에 대한 반대급부는 아닙니다.
정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인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이며 생각입니다. 오늘 다윗이 보여준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성도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섬기는가를 보시는 그러한 하나님만은 분명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면서, “내가 네게 이 만큼 복을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이 만큼 해라.”는 식의 그러한 반대급부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결코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돌보심과 보살핌을 받은 자식의 마땅한 도리는 부모를 생각해야 되고 존경해야 되며 공경해야 되고 섬겨야 되는 것처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하실 때에 반대급부를 바라시고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인의 자세는, 성도들의 모습은, 마땅히 다윗 같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다윗은 부가 증가할 때 명예가 높아질 때, 그 커지는 부와 명예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도모할까를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기독교인들이 현대를 살아가면서 특별히 신경써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과 재능과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사치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히 주시는 만큼 하나님 앞에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가정을 주시면 주신 만큼 그 가정 구성원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일을 도모할 사명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만큼 우리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신 만큼 많이 갖지 못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마음을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신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과 은혜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그 은혜와 복을 어떻게 잘 감당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성도들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실패합니까 건강 주시니깐 그 건강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차라리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을 주지 않은 것이 더 큰 복일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건강 주니까 엉뚱한 것에 건강을 쓰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물질의 복을 주지 않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복일 수 있어요. 물질이 풍요롭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건전하게 살았고 진실하게 살았던 사람이 물질의 복을 받고 나니까 그 물질 때문에 엉뚱한 짓하고 범죄하고 다녀요. 그 사람은 물질을 받지 않은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 어떤 사람은 재능을 주니까 그 재능만 믿고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재능만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런 사람은 재능이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큰 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다윗, 그가 편안하고 풍요롭게 거할 때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은혜와 복을 받고 사는데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할까 이 생각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생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무엇을 할까 하나님이 나에게 베푼 은혜, 우리 가정에 베푼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할까 나는 무엇을 해야 될까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오늘의 본문 4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윗이 가졌던 생각은 건실한 생각이었습니까, 잘못된 생각이었습니까 마땅히 정상적인 신앙인이 가져야 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오늘 하나님의 반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봉사하고 충성하겠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이 목사 정말 잘 생각했다. 그래 내 마음이 정말 기쁘다. 그래 그렇게 해라.” 그게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반응 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선지자인 나단조차도 다윗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 “예, 좋습니다.” 하는 반응을 보여요.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 반응을 선지자인 나단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적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생각은 성경적인 해석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마땅히 가져야 할 생각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제지하십니다. “안 돼. 내가 언제 너보고 내 집을 지어달라고 했느냐 너보다 먼저 있던 많은 사사들에게도, 사무엘이나 기드온에게도 언제 내가 집을 지어달라고 했느냐” 하지만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뒤에 가서 보면 학개서 같은 데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학개서에 가기 전에 역대상 역대하에서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때, 그 일에 쓰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시고 축복하신 사람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 특권입니까, 아닙니까 그것은 물어보나 마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짓는 데 쓰임 받는 기술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축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더러 전을 짓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을 짓는 것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셨기에 멈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그 부분을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가 역대상 22장에 가서 보면, 왜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지 못하게 막으셨는지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게 아니라, 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유언하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성전을 짓기를 하나님께 사모했지만, 나는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셨다.
그러니 네가 지어라.” 이렇게 유언을 합니다. 그걸 보면, 그것이 하나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왜 안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다윗은 그 이유를 알았어요. 왜 안 된다고요 “너는 전쟁터에 나가서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라 내 집을 짓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 내 집은 평온의 사람, 화평의 사람이 지어야 된다.” 그러면서 솔로몬에게 내 집을 짓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직접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서 사람을 많이 죽이고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을 짓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어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를 귀 기울여 들어야만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봐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5절부터 보면, “내 주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집을 건축하겠느냐” 잘 기억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네가 어떻게 내가 거할 집을 짓겠느냐” “사랑하는 강성교회 성도들아, 너희들이 나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겠느냐 내가 너희들을 위해 일하지.” 이해가 되시지요 “내가 하겠다.” 하는 생각을 주님께서 지적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가대원 여러분들 수고를 많이 해요. 다른 성도들보다 몇 시간 더 봉사하고 헌신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별되어 앉아 있어요. 구별되게 옷도 입으시고. 우리 주일학교 교사들도 마찬가지에요.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 헌신해요.
그러나 저는 우리 교회에서 성가대원들에게 선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왠지 아시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좀더 수고했다고 생각하시지 말라는 뜻에서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돈 가지고 선물하면 이거 수고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헌금을 가지고 성도들의 수고의 댓가로 치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수고를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도 영광이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수고하시니까 점심 대접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안 해준다고 섭섭한 말을 하면 잘못입니다. “이렇게 봉사하는데 교회에서 점심도 하나 안 해주나” 그 생각 자체가 굉장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오늘 그 분이 함께 하시기에 이 시간 이 자리에까지 온 것이에요. 착각을 하지 말자 이 말입니다. 다윗에게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을 긋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거할 집을 짓겠느냐” 아니, 만군의 하나님, 온 우주를 지배하시는 하나님께 인간이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 드려봤자, 그 안에 모실 수가 있겠어요 아닙니다. 우리가 목숨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권능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어떤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왜지요 우리는 그 분이 만든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난 척한들 고상한 척한들 하나님 앞에는 하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항아리를 만들고 도자기를 만들고 그릇을 만들다가 마음에 안 들면 깨어버린다. 그것은 토기장이의 주권이란 말입니다. 즉 토기장이의 마음이란 말입니다. 진흙인 주제에 “나는 왜 항아리로 만듭니까, 요강으로 만듭니까, 쓰레기통으로 만듭니까 왜 나는 그 비싼 그릇으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하고 말할 자격도 없거니와, 깨뜨려 버린다고 불평할 자격도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런 존재입니다. 잘난 척해봤자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아요. 우리 끼리 비교할 때에는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어요. 좀 똑똑한 사람도 있고 덜된 사람도 있고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부정하십니다. “다윗아, 네가 나의 거할 집을 짓겠느냐” 지금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거하지 않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켰을 때부터 집에 거하지 않고 장막에 텐트에 거하셨다는 그 말입니다. 왜 텐트에 거하셨습니까 7절에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표현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장막에 거하셨습니까 왜 좋은 집에 거하지 않으시고 장막에 거하셨습니까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행하시기 위해서이었지요. 출애굽 하여 가나안과 홍해를 건너자 마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천막을 만들어 이동할 때마다 이동하게 했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성막을 짓는 게 무엇입니까 성전을 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너희 백성 가운데 거하겠다는 표시입니다. 그것이 성막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오늘 다윗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강성교회 성도들과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은 정상적 생각이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내가 너와 함께 거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주님 위해 무엇을 하기보다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더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내 삶 가운데 내 인생 가운데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더 원하시지요. 우리는 일 주일 동안에 내 주권 대로 내 마음 대로 살다가 주일날 하루만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여기 나와서 봉사하겠나이다, 내가 집사 하겠나이다, 성가대 하겠나이다, 교사 하겠나이다.”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그것보다는 무엇을 더 원하세요 “내가 언제 너희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하였느냐 내가 언제 너희에게 집사 하라고 하였느냐 언제 목사 하라고 하였느냐 언제 성가대 하고 교사 하라고 하였느냐 내가 더 원하는 것은 너희와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노라.” 어떤 사람은 주일을 꼬박꼬박 지켜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 계산해요. 어떤 사람은 헌금 좀 많이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 계산해 버려요. 그것 해놓고 자기들이 다했다고 생각하고 살아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어떠한 일들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다윗이 그러한 마음을 가진 것을 기뻐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에 주인이 되시기를 더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기를 더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따로 저 만치 멀치감치 모셔놓고 가끔 가다가 한번 인사치레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말씀 가운데 보면, 다윗은 정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흘린 사람으로 짓지 않고 평화의 사람으로 짓겠다고 하신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정말 사모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허락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8절에 “그러므로 내 종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리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런 말씀입니다. “다윗아, 네가 내 전을 짓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안된다. 내가 네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을 택해서 그 일을 하게 하겠다. 그러나 너는 이것을 생각하라. 네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느냐 네가 양을 치던 목동이 아니었느냐 그러나 지금 무엇이 되어 있느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있지 않느냐” 지금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게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주신 사명 대로 일하라 오늘 성도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누구 못지 않게 아름답게 일하고 열심히 하고 싶고 충성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에요. 우리 성도들 가운데에는 서로 경쟁심을 가지고 견제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는 많이 계세요. 경쟁도 적당히 해야지요. 도가 지나치면 교만이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얼마나 좋은 마음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더 인정 받고 싶고 더 일하고 싶고 더 큰 일꾼 되고 싶고, 그것은 굉장히 좋은 마음이지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은 이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있어요. “나는 강성교회에서 장로가 되고 싶다.” 좋은 소원이에요. 장로가 되어서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그릇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다 목사겠느냐, 다 장로겠느냐” 그게 계급은 아니지만, 일하는 위치가 있거든요.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제 마음은 여러분 모두가 장로가 되는 믿음의 수준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남전도회 여러분이 다 장로가 되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그 교회는 잘못된 교회이지요. 얼굴에 다른 부분은 없고 전부 다 눈만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괴물이지요. 문제가 심각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전을 지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낙심하지 말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느냐 너를 내가 이스라엘의 왕을 삼지 않았느냐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너는 감사해야 되고 만족해야 되고 충성해야 되지 않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에게 하시는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쓸모가 없어서, 가치가 없어서, 그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하지 않느냐 목동이었던 너를 이스라엘의 왕을 삼은 것 하나만으로, 왕 노릇 하나를 제대로 감당하는 것만도 그것도 크지 않느냐” 오늘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있어 한계를 느끼고 있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쓸모가 없다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신 분이 없습니까 “나는 강성교회에서 별로 할 일이 없는 사람이야, 강성교회 남전도회 일도 몇몇 사람이 다 하더구만. 나는 별로 일할 사람이 못 되는가 봐.”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자리에 나와 있다는 것만도 굉장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 그의 남은 여생을 어디에다 기울이느냐 하면, 성전을 짓는 재료를 준비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도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준비해 놓았어요. 다윗이 죽기까지 남은 여생 동안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느냐 자기는 하나님의 전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못 되고, 그런 자격은 없지만, 그 일을 준비하는 데에 자기 인생을 다 투자할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앞서서 일을 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에 드러나게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교회에서는 무엇입니까 목사, 장로 아닙니까 그러면 모두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겠는가 우리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장로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강성교회에도 장로가 생깁니다. 그 때에 장로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다윗의 모습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장로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장로가 이 교회를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성도들을 아름답게 돌보고 일하는 귀한 장로가 될 수 있도록 뒤에서 모든 일을 도와주고 준비해주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한 솔로몬보다도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더 합한 자였고, 하나님이 더 귀하게 여기셨고 더 칭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앞에 나와서 일하는 사람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그 뒤에서 그 사람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준비해주는 집사님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집사님들이 훌륭하지 못한 교회라면 장로님이 아무리 훌륭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또 목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장로님들이 도와주지 않고 밀어주지 않고 준비해주지 않으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교회의 참 모습은 바로 여기서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진짜 하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다윗아 네가 나를 위해서 내 집을 짓겠느냐 그건 안 된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주님께서 약속을 하나 해 주십니다.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12절 말씀을 보세요. 역사적으로 보면 그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합니다. 그 이후에 견고케 되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 대로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다윗의 후손들이 영원히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움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다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영원히는 커녕 다 허물어져 버렸고, 뿔뿔히 흩어진 민족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말씀이신데, 마태복음 1장 1절에 뭐라고 나옵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죠. 무슨 약속입니까 “내가 너에게 아들을 주어서 그 자손을 통해서 모든 민족을 복 주겠다”고 했어요. 아브라함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이삭이지요. 이삭을 통해서 모든 민족을 복주었습니까 아니에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장차 나타날 누구요 누구요 예수님, 예수님이지요. 그리고 오늘 다윗에게 또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아, 내가 네 자손을 통해서 내가 거할 처소를 지을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느부갓네살왕으로 인해서 다 무너져 버렸어요. 그 다음에 헤롯왕이 또 성전을 지었지요. 40년을 걸쳐서 성전을 지었는데 예수님께서 지나가면서 무엇이라고 했지요 “이것을 허물어 버려라. 내가 삼 일만에 다시 짓겠다.” 40년 동안에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서 지은 것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삼 일만에 짓겠습니까 주님께서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삼 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 아닙니까 삼 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를 무엇이라고 묘사했습니까 “성전이라” 그러면 진짜 성전은 무엇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 성전의 진정한 의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실 때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천사가 알려 준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심이라. 그게 예수님이란 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너희가 어떻게 내가 거할 집을 짓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지. 앞으로 내가 진짜 너희 가운데 거할 성전은 네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을 통해 이루겠다. 그 세워질 성전은 영원히 견고할 것이며, 누구도 허물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누구라고요 예수님이란 말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분이 우리 가운데 거함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한 그가 세운 교회는 주님 다시오실 그 날까지 영원히 견고케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에게 세우신 진정한 약속은 무엇입니까 “평화의 사람만이 이것을 세울 것이다.” 솔로몬을 말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진정으로 말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사랑과 긍휼과 평화를 가지고 화평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한 것은, 꼭 다윗은 자격이 없고, 솔로몬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다윗이나 솔로몬은 거기서 거기고, 어떻게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솔로몬보다 신앙이 더 성숙되어 있고, 믿음이 더 좋고 쓰임 받기에 더 합당한 사람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다윗이 전을 짓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서요 “너희들이 지은 전은 진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앞으로 메시야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이지요. 오늘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요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고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 받은 성도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일하는 것보다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구나. 이제부터는 마음에 정말 모시고 산다. 주일 날도 교회에 와서 예배 안 드려도 집에서 주님 모시고 살겠다. 일하는 것보다 주님 모시고 사는 것을 더 좋아 하신다고 했으니 내가 주님 모시고 살면 되었지 뭐 꼭 봉사할 필요가 있겠나 봉사하다가 시험들어 가지고 또 주님 모시지 않게 되고 은혜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이해하시는 분이 또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말씀 드렸지요 다윗의 마음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다윗처럼 해야 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더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고 성전이 뭔가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억하시라 그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의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첫째, “너희가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위해 일한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은혜를 베풀고 축복을 하기 때문에 너희가 이 자리까지 왔다.”는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둘째는, 받은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관심을 집중시켜야 될 일은 무엇인가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을 내가 모시고 사는 삶,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예배당, 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거하시고, 우리의 삶 어느 영역에 가든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와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8절 이하에서 다윗에게 복을 주시는데, “너를 존귀한 자로 만들겠다. 평안하게 살게 하겠다. 그 다음에 너를 세워 주겠다. 너의 후손에게 복을 주겠다. 불순종하더라도 삶을 빼앗아 버리는 일은 네 자손들에게는 하지 않겠다.”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마음에 사모하는 자들,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살기로 작정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이 복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존귀하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평안하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을 맡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복을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복을 주시는데, 무슨 복을 주시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잘못했다 할지라도 은혜를 빼앗아 가버리지 않고 은총을 걷어가지 않고 더 사랑해 주시고 계속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남은 여생 동안 이러한 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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