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 (암4:1-13)
본문
우리 주변에 수많은 재난들이 일어나고 있고, 또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 전부터 미국이나 남미, 인도네시아, 몽고, 터어키, 중국 등지에서 집중 호우로 인하여 집이 침수되고 생명을 잃는 일과 지진이 나서 수천 명이 죽거나 실종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중국에서 양쯔강 유역에 집중 호우로 인하여 수천 명이 죽었다는 보도를 들었을 때 우리와는 관계없는 남의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도 여러 언론보도를 통하여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지난 두 주 동안 지리산과 서울 경기, 충청 지역 등에 내린 집중 호우로 인하여 약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거나 실종되었고, 약 2조원 이상의 재산 손실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생명을 잃거나 가족을 잃고, 재산을 다 잃어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작년 말부터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서 경제위기에 돈을 빌리게 된 이후부터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기도 하고, 수입이 갑자기 감소하여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재난들을 보면서 왜 이러한 재난들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 재난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 신자들은 지구촌 곳곳에서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보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재난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할 본문의 주제는 모든 재난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첫 번째로는 언약 백성들에게 재난이 일어나는 원인, 두 번째로는 재난의 목적, 세 번째로는 재난을 보는 우리의 관점과 자세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언약 백성에게 재난이 임하는 원인 이 본문은 언약백성인 이스라엘, 즉 구약시대의 교회가 범한 죄를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자들은 거기에 합당한 삶이 요구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잘 사용하는 프랑스 말에서 나온 관용구 가운데 노브레스 오우브리지(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특권은 책임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특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책임은 언약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아모스 3:1-6:14에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면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언약의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한 부분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백성으로서 살아야 할 삶의 특징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재판장에게 기소하는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그 기소 내용 가운데 두 번째 부분입니다. 그러면 어떤 죄를 기소하고 있을까요 그 죄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적인 범죄이고, 또 하나는 종교적인 죄입니다.
(1) 사회적인 죄에 대한 기소(암4:1-3)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먼저 사마리아의 귀부인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4:1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북쪽 이스라엘의 귀부인들을 향하여 "바산의 암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산이라는 지역은 기름진 땅을 땅과 목초지가 있었기 때문에 소와 양으로 유명하였습니다(신32:14; 겔39:18). 특히 바산의 암소는 힘이 센 것으로 유명합니다(시22:12).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바산의 암소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산의 암소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특히 황소라고 하지 않고 암소라고 말하는 이유에 어디에 있을까요 이 말은 호화롭고 권세있는 귀부인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특히 귀부인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하는 것은 이 본문에 나오는 "가장"(암4:1)이라는 말과 댓귀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1차적으로 귀부인을 지칭하지만 부패한 모든 이스라엘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하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어떤 악을 행하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이스라엘의 부패에 대하여 여자들이 끼친 영향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산의 암소들이라는 말은 비꼬는 말이 아니라 미끈하고 잘먹어 장 생긴 여성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더 가지기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없는 자들을 압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에게 술을 가져오게 하여서 함께 마시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남편들과 함께 연회를 베풀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였던 것같습니다. 이들은 남편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남편을 포학과 사치의 길로 몰아갔다는 것을 이 본문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이 배후 조종세력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이 지적해주고 있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 먹어서 윤기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궁핍한 자들을 압제하고 착취한 것으로 그들의 피부를 가꾸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연회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치와 학대가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러하리라." 이 말씀에 보면 아주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앞의 바산의 암소들이라는 아름다운 표현과는 대조적으로 갈고리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산의 암소들이라는 아주 좋은 표현을 이제 물고기를 낚는 갈고리로 끌려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미끼를 보고 그 속에 위험한 낚시가 있는 줄을 모르고 꿀꺽 삼켜서 자기 생명을 위태롭게 합니다. 이와 같이 사마리아의 귀부인들이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거나 남편을 꼬드겨 온갖 사치를 일삼았지만 그것이 파멸의 미끼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의 역사에서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앗수르의 왕이었던 에살하돈(Esarhaddon)이 애굽을 이긴 것을 기념하여 만든 센지리(Senjirli) 비문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이 비문에는 왕이 포로된 왕들의 입술에 묶여있는 줄들을 붙잡고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복된 백성들이 낚시꾼들의 낚시 바늘에 결린 물고기처럼 끌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지금까지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던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 무너진 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무너진 성벽 구멍 사이로 한 여자씩 도시에서 끌려나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적인 범죄와 그 심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 종교적인 죄에 대한 기소(암4:4-5)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4:4-5) 이 절에서는 당시의 종교적인 부패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산의 암소들이 그러한 불의를 행하면서도 성전에 와서는 경건하고 거룩한 척 하였습니다. 이들은 화목제의 일종인 감사제(우리 번역에는 수은제라고 되어 있음)와 낙헌제를 드렸고 사흘에 한번꼴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참고. 레7:13). 얼마나 종교적입니까 하지만 아모스 선지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위한 제사가 아니고 자기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름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행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활동은 형식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매우 신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회생활에서는 악독이 가득하고, 심지어 종교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과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입술과 의식으로는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세금을 포탈하면서도 교회당 안에서 하나님 앞에 경건한 척 하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람을 볼 때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요 가증스럽게 보이지 않을까요
2. 재난의 목적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언약백성들의 범죄를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경우 매를 사용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재난들을 주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과거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재난들을 주셨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재난들은 어떤 것일까요 첫 번째 재앙은 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이를 한가하게 하며"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깨끗한 이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번역에는 "이를 한가하게 하며"라고 번역하였는데 LXX인역 성경에 "이들을 게을리함"이라는 말을 따랐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를 깨끗하게 하셨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입에 먹지 못하기 때문에 이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NIV성경은 이 말을 완전히 의역하여 "빈 위"(empty stomach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근이나 여러 가지 재앙들을 주어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뭄이 들어 큰 고통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보면 이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합 왕 시대에 3년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때와,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역시 흉년이 들어 어려웠던 경우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왕상18:2:왕하4:38). 두 번째 재앙은 7-8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았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팔레스틴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리는 비는 지금 우리 달력으로 10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내리는 겨울비를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늦은 비는 4-5월경인데 이 비는 추수와 관계된 비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셨다는 말은 기근이 들어 마실 물이 없는 상태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재앙은 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여기서 "풍재"는 히브리어 용법에 보리같은 작물에 드는 병으로서 이삭이 새까맣게 되는 병을 말하기도 하고, 병충해 같은 것이 생겨서 곡식을 말라버리게 하는 동고병(blight)을 말하기도 합니다. 깜부기 역시 히브리어 원문에 식물에 흰곰팡이로 인하여 곡식을 마르게 하는 노균병(mildew)을 말합니다. 그리고 "팟종이"는 메뚜기의 일종으로 곡식의 가지와 잎을 잘라 먹음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곤충입니다. 그래서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어 버리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농경문화에서 소득원이라는 것은 곡물에 의존하였는데 그 모든 소득원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공장이나 경영한 사업, 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받는 수입에 결정적인 손해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재앙은 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여기에 "염병"은 일종의 전염병을 말합니다. 애굽에는 풍토와 기후 관계로 악질이나 괴혈병이 많이 있었습니다(신7:15; 28:60). 특히 이 말씀에서 "애굽에서 한 것처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출애굽 당시에 10가지 재앙 가운데 있었던 괴질이나 전염병을 말합니다(출9:3, 15). 다섯 번째 재앙도 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 칼로 너희 청년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전쟁으로 인하여 젊은 용사들이 죽게 하고, 말들과 마병들은 사로잡히기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진영은 죽은 자들과 썩은 시체들이 풍기는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주변국들과 잦은 전쟁을 하는데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재앙은 1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조각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방의 군대들이 성읍을 포위하여 철저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에 가까스로 불붙는 나무 가운데서 빼난 나무조각과도 같이 위기로 모면하게 한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모든 재난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일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참고. 신28:15-6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에 이러한 재난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재앙을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 본문에서 과거 역사에서 여러 가지 재앙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재앙들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회개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을 포함하여 일상사에 이르는 문제까지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자연재해나 경제적인 문제 등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재난을 보는 우리의 관점과 자세 그러면 이러한 여러 재난들을 볼 때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그것은 모든 재난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도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2절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하나님께서 과거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재난을 주셨던 것처럼 언제든지 재난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것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래서 재난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 본문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과거에 내 중심대로 행하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삶의 구조를 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재난을 만날 때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에서 보고 삶의 구조를 그렇게 바꾸어야 할까요 아모스 4:13을 보십시오. "대저 (히.
왜냐하면, )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데로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산들과 바람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그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고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자연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이름을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인데 온 우주와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가르치기 위하여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셔서 자연재해를 주시기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난들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 가지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온 우주와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재난을 주셨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구한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재난을 다 이러한 목적으로 주신 것만은 아닙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재난들을 조사해 보면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 재난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노아 시대의 대홍수 사건입니다. 북쪽의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을 당하거나, 남쪽의 유다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재난 역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 재앙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보여주시려는 목적으로 재앙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당시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입니다.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신 목적은 바로를 설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려고 하는 것이 1차적인 목적입니다. 하지만 이 재앙을 통하여 당시 이방 나라인 애굽에 하나님의 실재와 권능을 증명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습니다. 모세가 처음으로 애굽의 바로에게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하였을 때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어 보내겠느냐"(출5:2)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재앙들이 애굽에 나타나면 그들이 비로소 자신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7:4-5; 9:14).
세 번째로는 성도의 믿음을 시험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기 위하여 보낸 재앙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것은 욥에게 내린 재난입니다. 이 경우는 사탄이 시험한 경우입니다. 사탄은 두 차례의 습격과 자연재해를 통하여 욥의 가족과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첫 번째는 스바 사람이 쳐들어 와서 종들을 죽이고 재산을 갈취해 갔습니다(욥1:15). 두 번째로는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칼로 종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욥1:17). 자연재해는 첫 번째로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종들과 재산을 불살라 버렸습니다(욥1:16). 두 번째로는 대풍이 와서 자녀들의 집 네 모퉁이를 침으로 자녀들이 거기에 깔려 죽었습니다(욥1:19). 이 경우의 재난은 하나님께서 사탄의 말대로 욥이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몇 가지 특징 외에도 성경에는 많은 재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범죄한 이후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재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경우들의 재난을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재난을 만났을 때 그 원인을 어느 한 가지로 제한하여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나라가 지금 당하고 있는 재난, 집중 호우로 인한 재난이나 경제위기에 돈을 빌린 이후에 경제가 어렵게 된 일들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거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보이시기 위한 것이라든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한 것 등 모두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에 국한하여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재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뜻대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 재난을 만날 때마다 항상 하나님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삶의 구조를 조정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곳곳에 집중 호우가 내리는 것에 대하여 기상학자들은 엘리뇨 현상과 그 반대인 라니냐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엘니뇨라는 이름은 페루 부근 태평양 해수 온도가 올라가며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어부들이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 또는 "남자아이"를 뜻하는 말로 부른데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엘니뇨 이후 반대현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여자 아이"를 뜻하는 "라니냐"라는 이름으로 붙여졌습니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해수면 온도를 높이는 반면 라니냐는 차갑게 합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페루 연안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중남미 지역에는 호우가, 태평양 서안인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가뭄현상이 나타난다. 반대로 라니냐 현상이 나타나면 우리 나라를 위시한 동남아 지역에는 집중 호우가 생기고 남미 지역은 가뭄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재해 앞에 무력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연현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이러한 재난을 만날 때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하고 인신제사를 드린 예가 많이 나옵니다. 고대 이집트나 남북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인도, 중국, 우리 나라 등에서 인신제사를 드린 기록이 있습니다. 인신제사를 드린 목적이 많이 있습니다만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신의 가호를 받아 복을 받으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염병이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이러한 일을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인간사에 전염병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이 있으면 신의 노여움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사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나서에서 바다에 큰 풍랑이 일게 되었을 때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 사람을 요나를 바다에 던졌는데, 일종의 인신제사였습니다. 우리 나라 심청전에도 바다의 장삿길을 평안하게 하기 위하여 심청이를 사서 바다에 던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될까요 우리는 어떤 종류의 재난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와 우리 나라에 임한 재난들이 우리를 잘못된 삶에서 회개하라는 메시지인지, 아니면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려는 메시지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이 행한 악한 일에 대한 심판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재난은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재난 앞에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책망하는 것이라면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하고,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것이라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나 우리 나라, 가까이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재난을 볼 때마다 "나에게는 절대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재난을 주셨던 것처럼 현재에도 재난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재난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아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어떤 경우의 재난이든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의 재난이든 우리가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참고 기다리면서 기도한다면 유익한 방향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할 부분은 회개하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러한 재난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삶의 구조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삶으로 구조를 조정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위기를 큰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1. 언약 백성에게 재난이 임하는 원인 이 본문은 언약백성인 이스라엘, 즉 구약시대의 교회가 범한 죄를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자들은 거기에 합당한 삶이 요구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잘 사용하는 프랑스 말에서 나온 관용구 가운데 노브레스 오우브리지(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특권은 책임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특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책임은 언약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아모스 3:1-6:14에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면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언약의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한 부분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백성으로서 살아야 할 삶의 특징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재판장에게 기소하는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그 기소 내용 가운데 두 번째 부분입니다. 그러면 어떤 죄를 기소하고 있을까요 그 죄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적인 범죄이고, 또 하나는 종교적인 죄입니다.
(1) 사회적인 죄에 대한 기소(암4:1-3)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먼저 사마리아의 귀부인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4:1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북쪽 이스라엘의 귀부인들을 향하여 "바산의 암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산이라는 지역은 기름진 땅을 땅과 목초지가 있었기 때문에 소와 양으로 유명하였습니다(신32:14; 겔39:18). 특히 바산의 암소는 힘이 센 것으로 유명합니다(시22:12).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바산의 암소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산의 암소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특히 황소라고 하지 않고 암소라고 말하는 이유에 어디에 있을까요 이 말은 호화롭고 권세있는 귀부인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특히 귀부인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하는 것은 이 본문에 나오는 "가장"(암4:1)이라는 말과 댓귀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1차적으로 귀부인을 지칭하지만 부패한 모든 이스라엘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하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어떤 악을 행하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이스라엘의 부패에 대하여 여자들이 끼친 영향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산의 암소들이라는 말은 비꼬는 말이 아니라 미끈하고 잘먹어 장 생긴 여성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더 가지기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없는 자들을 압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에게 술을 가져오게 하여서 함께 마시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남편들과 함께 연회를 베풀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였던 것같습니다. 이들은 남편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남편을 포학과 사치의 길로 몰아갔다는 것을 이 본문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이 배후 조종세력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이 지적해주고 있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 먹어서 윤기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궁핍한 자들을 압제하고 착취한 것으로 그들의 피부를 가꾸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연회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치와 학대가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러하리라." 이 말씀에 보면 아주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앞의 바산의 암소들이라는 아름다운 표현과는 대조적으로 갈고리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산의 암소들이라는 아주 좋은 표현을 이제 물고기를 낚는 갈고리로 끌려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미끼를 보고 그 속에 위험한 낚시가 있는 줄을 모르고 꿀꺽 삼켜서 자기 생명을 위태롭게 합니다. 이와 같이 사마리아의 귀부인들이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거나 남편을 꼬드겨 온갖 사치를 일삼았지만 그것이 파멸의 미끼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의 역사에서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앗수르의 왕이었던 에살하돈(Esarhaddon)이 애굽을 이긴 것을 기념하여 만든 센지리(Senjirli) 비문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이 비문에는 왕이 포로된 왕들의 입술에 묶여있는 줄들을 붙잡고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복된 백성들이 낚시꾼들의 낚시 바늘에 결린 물고기처럼 끌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지금까지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던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 무너진 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무너진 성벽 구멍 사이로 한 여자씩 도시에서 끌려나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적인 범죄와 그 심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 종교적인 죄에 대한 기소(암4:4-5)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4:4-5) 이 절에서는 당시의 종교적인 부패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산의 암소들이 그러한 불의를 행하면서도 성전에 와서는 경건하고 거룩한 척 하였습니다. 이들은 화목제의 일종인 감사제(우리 번역에는 수은제라고 되어 있음)와 낙헌제를 드렸고 사흘에 한번꼴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참고. 레7:13). 얼마나 종교적입니까 하지만 아모스 선지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위한 제사가 아니고 자기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름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행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활동은 형식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매우 신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회생활에서는 악독이 가득하고, 심지어 종교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과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입술과 의식으로는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세금을 포탈하면서도 교회당 안에서 하나님 앞에 경건한 척 하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람을 볼 때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요 가증스럽게 보이지 않을까요
2. 재난의 목적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언약백성들의 범죄를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경우 매를 사용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재난들을 주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과거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재난들을 주셨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재난들은 어떤 것일까요 첫 번째 재앙은 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이를 한가하게 하며"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깨끗한 이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번역에는 "이를 한가하게 하며"라고 번역하였는데 LXX인역 성경에 "이들을 게을리함"이라는 말을 따랐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를 깨끗하게 하셨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입에 먹지 못하기 때문에 이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NIV성경은 이 말을 완전히 의역하여 "빈 위"(empty stomach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근이나 여러 가지 재앙들을 주어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뭄이 들어 큰 고통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보면 이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합 왕 시대에 3년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때와,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역시 흉년이 들어 어려웠던 경우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왕상18:2:왕하4:38). 두 번째 재앙은 7-8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았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팔레스틴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리는 비는 지금 우리 달력으로 10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내리는 겨울비를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늦은 비는 4-5월경인데 이 비는 추수와 관계된 비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셨다는 말은 기근이 들어 마실 물이 없는 상태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재앙은 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여기서 "풍재"는 히브리어 용법에 보리같은 작물에 드는 병으로서 이삭이 새까맣게 되는 병을 말하기도 하고, 병충해 같은 것이 생겨서 곡식을 말라버리게 하는 동고병(blight)을 말하기도 합니다. 깜부기 역시 히브리어 원문에 식물에 흰곰팡이로 인하여 곡식을 마르게 하는 노균병(mildew)을 말합니다. 그리고 "팟종이"는 메뚜기의 일종으로 곡식의 가지와 잎을 잘라 먹음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곤충입니다. 그래서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어 버리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농경문화에서 소득원이라는 것은 곡물에 의존하였는데 그 모든 소득원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공장이나 경영한 사업, 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받는 수입에 결정적인 손해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재앙은 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여기에 "염병"은 일종의 전염병을 말합니다. 애굽에는 풍토와 기후 관계로 악질이나 괴혈병이 많이 있었습니다(신7:15; 28:60). 특히 이 말씀에서 "애굽에서 한 것처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출애굽 당시에 10가지 재앙 가운데 있었던 괴질이나 전염병을 말합니다(출9:3, 15). 다섯 번째 재앙도 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 칼로 너희 청년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전쟁으로 인하여 젊은 용사들이 죽게 하고, 말들과 마병들은 사로잡히기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진영은 죽은 자들과 썩은 시체들이 풍기는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주변국들과 잦은 전쟁을 하는데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재앙은 1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조각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방의 군대들이 성읍을 포위하여 철저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에 가까스로 불붙는 나무 가운데서 빼난 나무조각과도 같이 위기로 모면하게 한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모든 재난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일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참고. 신28:15-6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에 이러한 재난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재앙을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 본문에서 과거 역사에서 여러 가지 재앙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재앙들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회개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을 포함하여 일상사에 이르는 문제까지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자연재해나 경제적인 문제 등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재난을 보는 우리의 관점과 자세 그러면 이러한 여러 재난들을 볼 때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그것은 모든 재난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도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2절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하나님께서 과거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재난을 주셨던 것처럼 언제든지 재난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것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래서 재난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 본문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과거에 내 중심대로 행하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삶의 구조를 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재난을 만날 때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에서 보고 삶의 구조를 그렇게 바꾸어야 할까요 아모스 4:13을 보십시오. "대저 (히.
왜냐하면, )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데로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산들과 바람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그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고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자연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이름을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인데 온 우주와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가르치기 위하여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셔서 자연재해를 주시기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난들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 가지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온 우주와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재난을 주셨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구한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재난을 다 이러한 목적으로 주신 것만은 아닙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재난들을 조사해 보면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 재난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노아 시대의 대홍수 사건입니다. 북쪽의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을 당하거나, 남쪽의 유다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재난 역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 재앙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보여주시려는 목적으로 재앙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당시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입니다.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신 목적은 바로를 설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려고 하는 것이 1차적인 목적입니다. 하지만 이 재앙을 통하여 당시 이방 나라인 애굽에 하나님의 실재와 권능을 증명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습니다. 모세가 처음으로 애굽의 바로에게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하였을 때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어 보내겠느냐"(출5:2)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재앙들이 애굽에 나타나면 그들이 비로소 자신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7:4-5; 9:14).
세 번째로는 성도의 믿음을 시험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기 위하여 보낸 재앙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것은 욥에게 내린 재난입니다. 이 경우는 사탄이 시험한 경우입니다. 사탄은 두 차례의 습격과 자연재해를 통하여 욥의 가족과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첫 번째는 스바 사람이 쳐들어 와서 종들을 죽이고 재산을 갈취해 갔습니다(욥1:15). 두 번째로는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칼로 종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욥1:17). 자연재해는 첫 번째로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종들과 재산을 불살라 버렸습니다(욥1:16). 두 번째로는 대풍이 와서 자녀들의 집 네 모퉁이를 침으로 자녀들이 거기에 깔려 죽었습니다(욥1:19). 이 경우의 재난은 하나님께서 사탄의 말대로 욥이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몇 가지 특징 외에도 성경에는 많은 재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범죄한 이후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재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경우들의 재난을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재난을 만났을 때 그 원인을 어느 한 가지로 제한하여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나라가 지금 당하고 있는 재난, 집중 호우로 인한 재난이나 경제위기에 돈을 빌린 이후에 경제가 어렵게 된 일들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거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보이시기 위한 것이라든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한 것 등 모두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에 국한하여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재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뜻대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 재난을 만날 때마다 항상 하나님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삶의 구조를 조정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곳곳에 집중 호우가 내리는 것에 대하여 기상학자들은 엘리뇨 현상과 그 반대인 라니냐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엘니뇨라는 이름은 페루 부근 태평양 해수 온도가 올라가며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어부들이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 또는 "남자아이"를 뜻하는 말로 부른데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엘니뇨 이후 반대현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여자 아이"를 뜻하는 "라니냐"라는 이름으로 붙여졌습니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해수면 온도를 높이는 반면 라니냐는 차갑게 합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페루 연안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중남미 지역에는 호우가, 태평양 서안인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가뭄현상이 나타난다. 반대로 라니냐 현상이 나타나면 우리 나라를 위시한 동남아 지역에는 집중 호우가 생기고 남미 지역은 가뭄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재해 앞에 무력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연현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이러한 재난을 만날 때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하고 인신제사를 드린 예가 많이 나옵니다. 고대 이집트나 남북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인도, 중국, 우리 나라 등에서 인신제사를 드린 기록이 있습니다. 인신제사를 드린 목적이 많이 있습니다만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신의 가호를 받아 복을 받으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염병이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이러한 일을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인간사에 전염병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이 있으면 신의 노여움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사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나서에서 바다에 큰 풍랑이 일게 되었을 때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 사람을 요나를 바다에 던졌는데, 일종의 인신제사였습니다. 우리 나라 심청전에도 바다의 장삿길을 평안하게 하기 위하여 심청이를 사서 바다에 던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될까요 우리는 어떤 종류의 재난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와 우리 나라에 임한 재난들이 우리를 잘못된 삶에서 회개하라는 메시지인지, 아니면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려는 메시지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이 행한 악한 일에 대한 심판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재난은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재난 앞에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책망하는 것이라면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하고,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것이라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나 우리 나라, 가까이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재난을 볼 때마다 "나에게는 절대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재난을 주셨던 것처럼 현재에도 재난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재난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아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어떤 경우의 재난이든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의 재난이든 우리가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참고 기다리면서 기도한다면 유익한 방향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할 부분은 회개하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러한 재난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삶의 구조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삶으로 구조를 조정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위기를 큰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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