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을 기다리는 다윗 (삼하13:34-39)
본문
저희가 그동안 사무엘하 13장 말씀을 통해서 여러 차례 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 특별히 지난 주에는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또한 복수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데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37절에서 39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압살롬의 도망과 또한 그 압살롬을 마음으로부터 연민하며 슬퍼하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본문에 기록된 한 구절 한 구절의 뜻을 파악하여 본문에서 나타내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과연 어떤 사랑인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압살롬은 자기 형을 죽인고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외할아버지인 그술왕 달매에게로 피신을 했습니다. 사실 다른 데로 피신을 했으면 다윗이 군사를 보내어 잡아올 수도 있겠지만, 자기 장인어른에게로 도망을 갔으니, “손주를 내놓으시오. 그 놈이 다른 형제를 죽이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 손주를 내놓으십시오.” 하고 그렇게 자기 장인어른한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압살롬이 미리 알고 그곳으로 도망을 친 것 같습니다. 어쨌던 이 압살롬은 자기 외할아버지 댁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이렇게 압살롬이 도망을 가고난 다음에 37절에 보면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그 아들 때문에 날마다 마음에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39절에 보면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여 간절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비록 형제지간에 싸움으로 형을 죽이고 도망을 간 아들이지만 그 아들을 향한 마음이 간절했고 그리고 그 아들로 인해서 날마다 마음에 슬픔을 간직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툥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인생을 도망간 인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모두 다 양 같이 제각기 자기 갈 길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장에서는 “소도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고 주인을 알아보는데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만은 그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한다”고 탄식하면서 “저들이 나를 멀리하고 물러갔구나” 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인생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간 인생, 하나님을 떠난 인생으로 묘사를 합니다. 주님께서도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비유를 하시면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비유로 말씀을 해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두 아들 가운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나도 이제 클 만큼 컸으니 내 인생을 내 마음 대로 내 계획 대로 살아보겠습니다. 그러니 내게 주실 유산을 미리 주십시오.” 그래서 유산을 받아서 먼 나라로, 아버지가 가까이서 간섭할 수 없는 먼 나라로 갔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 가서 자기 마음 대로 인생을 즐겨봅니다. 젊은 나이에 돈도 있겠다 허황방탕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란 것은 한계가 있어서, 그 재물이 다 떨어져 버렸다고, 탕진을 해버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탕진해버리자 마자 그 나라에 기근이 들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며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궁핍해졌습니다. 친구도 도울 수 없을 정도의 궁핍한 경제가 그 나라에 닥쳤습니다. 이제는 친구를 찾아가도 친구들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날마다 같이 술마시던 친구들인데 돈 떨어지자 다 등을 돌립니다. 외면을 합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돼지 치는 집에 가서 돼지를 치면서 남의 집 종노릇을 하면서 그 돼지들이 먹는 먹이 가운데 일부를 건져서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비극적인 삶을 삽니다. 그러다 그가 깨닫죠. “아, 내 아버지 집에 가면 하인들도 종들도 이렇게 먹고 살지는 아니할 텐데. 내가 여기 있다가는 굶어 죽겠구나. 내가 이제 아버지께 돌아가서 “나를 아들로 받아주지 마시고, 하인으로, 종으로, 일꾼으로 받아 주시면 내가 좋겠습니다”라고 그렇게 말씀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집을 떠난 아들을 생각합니다. 그 아버지는 혹시 이제나 저제나 그 아들이 돌아오려나 대문 밖에서 기다립니다. 이 아들이 돌아올 때 거지 행색을 하고 돌아오지만, 그 아버지는 먼 발치에서 벌써 아들임을 알아보고 쫓아나가서 그 아들을 맞아 들입니다. 그리고는 큰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고, “너는 내 아들이다. 이 재산도 너의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유산을 상속하는 반지를 다시 끼워주면서 잔치를 베풀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아버지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압살롬은 자기의 죄 때문에 두려워서 그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는 자기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로부터 도망을 쳤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를 비하하게끔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또한 아무짝에도 필요치 않은 존재라고 하는 자기비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이 죄로 말마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모습들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두려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 같이 죄를 지었으면서도 나 같이 불순종하면서 어찌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며,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헤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가서 용서를 받을 수가 있고, 어찌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형제를 죽이고 도망친 아들이지만 다윗은 그 아들을 날마다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슬퍼하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비록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서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라 할지라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동시에 기억해야 할 말씀은 누가복음 15장에 나타난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이렇게 탕자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아들은 왜 아버지를 떠났습니까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립을 위해서 아버지를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간섭을 받지 않고 규제를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아버지를 떠나야 되겠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동등해지기를 원했고, 그래서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아 보겠다고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그 결과는 비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와 같이 내 인생의 주인의 노릇을 내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 많은 사상과 삷의 모습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버지를 떠난다고 할 때에는 아주 아버지를 멀리하고 떠나는 사람도 말씀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날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떠나는,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을 듣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주일마다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나를 떠났도다 나를 버렸도다 너희가 나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이 나에게 예배하겠다고 이 자리에 나왔으면서도 너희들 마음은 지금 어디에 가 있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가치가 어디에 주어지고 있습니까 탕자는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가 살아보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오늘도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가 바라는 나의 삶의 모형은 내가 주인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스스로 잘 해보겠다고, 내가 직장에서 무엇을 해야겠다고, 내 인생에 맞는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여러분들은 열심히 뛰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버지를 떠난 아들입니다. 우리가 주일 날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떠난 삶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슬픔을 갖고 계시고 안타깝게 여기고 계시는가를 깨닫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향해서 주님은 슬퍼하고 계십니다. 탕자는 자기의 삶의 행복을 위해서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해요. “목사님, 저도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요. 제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고 또 열심히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데, 이것 저것 걸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이 좀 정리가 되고 나면 그때는 열심히 화끈하게 멋있게 한번 하나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부분들이 탕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 저것 걸리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걸린다는 것이 결국은 이거 아닙니까 그것을 끊어 버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탕자의 모습 가운데 우리의 부분일 것입니다. 이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욕 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마음껏 자기 욕구대로 살고 싶어서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아버지 밑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가 정욕 대로 떠났다는 증거가 뭡니까 아버지를 떠나서 먼 나라로 가서 사는 삶의 모습을 보면 그가 건전하게 살지를 않았습니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보겠다는 건전한 모습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 가서 허황방탕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정욕 때문에 자기 욕구 대로 자기 욕심 대로 살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우리는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이유 가운데 또한 가지 깨닫게 되는 것은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가지, 이사야 55장 2절에 보면 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했고, 호세아 선지자도 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지 못해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2절에 “너희가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헛된 것을 위하여 살고있다.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줄 줄 알고 배부르지 못한 것에 수고할 줄 아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살지 않고 헛된 것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망간 인생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참다운 가치를 알지 못하고 헛된 것을 위해 수고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 헛된 것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을 떠난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는지를 보여주시며, 또한 우리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날마다 그 아들을 연모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그 아들 때문에 슬퍼하고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와 같이 오늘도 문 밖에 서서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주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면서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이사야 1장 18절에 말씀하시기를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오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서 예배할 수 없다.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 나는 이런 것 저런 것들 때문에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인생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오라 비록 너희 죄가 주홍 같이 붉을지라도 내가 흰눈처럼 희게 해주마.”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주님께서는 오라고 말씀하시면서 덧붙여서 “너희는 그러한 생각을 버리고 그 길에서 돌이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선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그 길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3장 12절에 보면 “돌아와 돌아오라”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그들을 맞으면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에게 노한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 비록 너희들은 나를 버리고 떠났었지만, 회개하고 돌이킬 때 너희에게 노한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범죄하고 도망친 아들이지만 날마다 그 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떠난 탕자와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들이 하루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노한 얼굴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루 하루 힘차게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비록 형제지간에 싸움으로 형을 죽이고 도망을 간 아들이지만 그 아들을 향한 마음이 간절했고 그리고 그 아들로 인해서 날마다 마음에 슬픔을 간직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툥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인생을 도망간 인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모두 다 양 같이 제각기 자기 갈 길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장에서는 “소도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고 주인을 알아보는데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만은 그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한다”고 탄식하면서 “저들이 나를 멀리하고 물러갔구나” 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인생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간 인생, 하나님을 떠난 인생으로 묘사를 합니다. 주님께서도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비유를 하시면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비유로 말씀을 해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두 아들 가운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나도 이제 클 만큼 컸으니 내 인생을 내 마음 대로 내 계획 대로 살아보겠습니다. 그러니 내게 주실 유산을 미리 주십시오.” 그래서 유산을 받아서 먼 나라로, 아버지가 가까이서 간섭할 수 없는 먼 나라로 갔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 가서 자기 마음 대로 인생을 즐겨봅니다. 젊은 나이에 돈도 있겠다 허황방탕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란 것은 한계가 있어서, 그 재물이 다 떨어져 버렸다고, 탕진을 해버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탕진해버리자 마자 그 나라에 기근이 들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며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궁핍해졌습니다. 친구도 도울 수 없을 정도의 궁핍한 경제가 그 나라에 닥쳤습니다. 이제는 친구를 찾아가도 친구들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날마다 같이 술마시던 친구들인데 돈 떨어지자 다 등을 돌립니다. 외면을 합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돼지 치는 집에 가서 돼지를 치면서 남의 집 종노릇을 하면서 그 돼지들이 먹는 먹이 가운데 일부를 건져서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비극적인 삶을 삽니다. 그러다 그가 깨닫죠. “아, 내 아버지 집에 가면 하인들도 종들도 이렇게 먹고 살지는 아니할 텐데. 내가 여기 있다가는 굶어 죽겠구나. 내가 이제 아버지께 돌아가서 “나를 아들로 받아주지 마시고, 하인으로, 종으로, 일꾼으로 받아 주시면 내가 좋겠습니다”라고 그렇게 말씀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집을 떠난 아들을 생각합니다. 그 아버지는 혹시 이제나 저제나 그 아들이 돌아오려나 대문 밖에서 기다립니다. 이 아들이 돌아올 때 거지 행색을 하고 돌아오지만, 그 아버지는 먼 발치에서 벌써 아들임을 알아보고 쫓아나가서 그 아들을 맞아 들입니다. 그리고는 큰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고, “너는 내 아들이다. 이 재산도 너의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유산을 상속하는 반지를 다시 끼워주면서 잔치를 베풀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아버지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압살롬은 자기의 죄 때문에 두려워서 그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는 자기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로부터 도망을 쳤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를 비하하게끔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또한 아무짝에도 필요치 않은 존재라고 하는 자기비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이 죄로 말마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모습들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두려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 같이 죄를 지었으면서도 나 같이 불순종하면서 어찌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며,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헤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가서 용서를 받을 수가 있고, 어찌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형제를 죽이고 도망친 아들이지만 다윗은 그 아들을 날마다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슬퍼하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비록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서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라 할지라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동시에 기억해야 할 말씀은 누가복음 15장에 나타난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이렇게 탕자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아들은 왜 아버지를 떠났습니까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립을 위해서 아버지를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간섭을 받지 않고 규제를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아버지를 떠나야 되겠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동등해지기를 원했고, 그래서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아 보겠다고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그 결과는 비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와 같이 내 인생의 주인의 노릇을 내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 많은 사상과 삷의 모습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버지를 떠난다고 할 때에는 아주 아버지를 멀리하고 떠나는 사람도 말씀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날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떠나는,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을 듣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주일마다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나를 떠났도다 나를 버렸도다 너희가 나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이 나에게 예배하겠다고 이 자리에 나왔으면서도 너희들 마음은 지금 어디에 가 있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가치가 어디에 주어지고 있습니까 탕자는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가 살아보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오늘도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가 바라는 나의 삶의 모형은 내가 주인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스스로 잘 해보겠다고, 내가 직장에서 무엇을 해야겠다고, 내 인생에 맞는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여러분들은 열심히 뛰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버지를 떠난 아들입니다. 우리가 주일 날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떠난 삶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슬픔을 갖고 계시고 안타깝게 여기고 계시는가를 깨닫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향해서 주님은 슬퍼하고 계십니다. 탕자는 자기의 삶의 행복을 위해서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해요. “목사님, 저도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요. 제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고 또 열심히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데, 이것 저것 걸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이 좀 정리가 되고 나면 그때는 열심히 화끈하게 멋있게 한번 하나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부분들이 탕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 저것 걸리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걸린다는 것이 결국은 이거 아닙니까 그것을 끊어 버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탕자의 모습 가운데 우리의 부분일 것입니다. 이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욕 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마음껏 자기 욕구대로 살고 싶어서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아버지 밑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가 정욕 대로 떠났다는 증거가 뭡니까 아버지를 떠나서 먼 나라로 가서 사는 삶의 모습을 보면 그가 건전하게 살지를 않았습니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보겠다는 건전한 모습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 가서 허황방탕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정욕 때문에 자기 욕구 대로 자기 욕심 대로 살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우리는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이유 가운데 또한 가지 깨닫게 되는 것은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가지, 이사야 55장 2절에 보면 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했고, 호세아 선지자도 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지 못해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2절에 “너희가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헛된 것을 위하여 살고있다.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줄 줄 알고 배부르지 못한 것에 수고할 줄 아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살지 않고 헛된 것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망간 인생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참다운 가치를 알지 못하고 헛된 것을 위해 수고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 헛된 것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을 떠난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는지를 보여주시며, 또한 우리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날마다 그 아들을 연모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그 아들 때문에 슬퍼하고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와 같이 오늘도 문 밖에 서서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주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면서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이사야 1장 18절에 말씀하시기를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오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서 예배할 수 없다.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 나는 이런 것 저런 것들 때문에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인생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오라 비록 너희 죄가 주홍 같이 붉을지라도 내가 흰눈처럼 희게 해주마.”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주님께서는 오라고 말씀하시면서 덧붙여서 “너희는 그러한 생각을 버리고 그 길에서 돌이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선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그 길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3장 12절에 보면 “돌아와 돌아오라”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그들을 맞으면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에게 노한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 비록 너희들은 나를 버리고 떠났었지만, 회개하고 돌이킬 때 너희에게 노한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범죄하고 도망친 아들이지만 날마다 그 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떠난 탕자와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들이 하루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노한 얼굴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루 하루 힘차게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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