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의 죄 (삼하3:1-5)
본문
우리가 지난 번에는 2장 1절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사울왕이 죽은 후에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자기의 방법을 동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물어 보고 헤브론으로 올라가는 사건을 보며, 다윗의 물어 보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했으며, 2절에 있는 두 아내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겠다고 하고 넘어갔습니다. 3절에서는 다윗과 함께 고난을 같이 하였던 사람들이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함께 영광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서, 오늘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에서 멸시를 당하고 손해를 보고 희생을 당하면서 사는 주님의 백성들이 훗날 주님 오시는 그 날에 천국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함께 기업으로 나눈다는 것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4절에서 다윗을 하나님께서 왕으로 삼으시는 과정에서, 그동안 10년이라는 기나긴 고난의 세월들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써, 이렇게 왕이 된 것은 인간 다윗의 고난의 공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역경 가운데서 도망치고 불신함으로 불순종하던 다윗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끝까지 붙잡으셔서 그 약속을 성취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기 때문에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모습은 그렇게 극대화 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지난 주에는 왕이 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신가, 그리고 우리가 그 약속에 대해서 어떻게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나눠지고,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이 되며,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북쪽 이스라엘 11지파의 왕이 됨으로 해서 두 라이벌이 생기면서 내란이 일어나서 자그만치 7년 6개월 동안 내란을 겪는 모습이 2장 나머지 부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좀 생각을 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들은 오늘 우리의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뜻은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서도 아브넬이라는 장군은 자기들의 이익과 자기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이스보셋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 이스라엘에 왕권을 세웁니다.
아브넬이 나중에 다윗에게 투항을 하며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 왕권을 주겠다고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아브넬이라 하는 사람과 그 이스보셋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다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 그 말이지요. 교회 안에서도 신앙생활하면서 성도들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요. 이 교회가 어떻게 하는 것을 원하시는가 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모두 알면서도 현재 내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마치 아브넬이 그의 현재 위치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애써 그 뜻을 외면하고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삶 가운데 많이 있지요.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이것인 줄 알면서도 자기 직분 자기 위치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반대될 또는 상충될 때 현재의 내 기득권을 포기하기보다는 내분을 일으키면서까지 내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목사파 장로파 누구파 하며 파가 나누어져 싸우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이러한 것은 영적인 문제의 결과들이라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제가 좀 간략하게 지적만 하고 넘어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3장을 보게 되는데요, 이 3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되었다 그랬습니다. 내분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다윗은 점점 강해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다시 언급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좀더 깊이 있게 보려고 하는 것은, 2절에서 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낳은 아들들의 이름이 2절에서 5절까지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몇 명이 기록이 되고 있는가 하면, 6명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헤브론에서 왕권을 가지고 있는 다윗에게 자식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는데, 그 자식들의 이름이 우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5장으로 넘어가게 되면 다윗이 온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난 다음에 또 자녀들을 많이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무엘하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다윗의 삶입니다. 지금까지 사무엘상.하를 통해서 쭉 상고해 본 바를 본다면, 다윗이 얼마나 많은 시련과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사무엘하에 들어가서 2장 1절에서 다윗이 왕권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까 “하나님, 내가 올라가야 됩니까 올라가지 말아야 됩니까” “올라가라.” “그러면 어디로 올라갑니까” 이렇게 자세히 하나님께 물으면서 자기 인생을 맡기는 믿음이 성숙한 성도가 됐단 말이에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그 많은 고난과 실패와 회복의 경험들을 통해서 이와 같이 신앙이 돈독해 졌는데, 그래서 이스라엘 왕이 됐는데, 그 왕이 되고난 다음의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냐 하면요, 다윗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아픔과 눈물을 흘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다윗과 같이 비극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 적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2절에서 5절까지에 다윗의 6명의 아들이 기록이 되고 있지요 그러나 여기 기록된 6명의 아들들 중에서
첫째가 누굽니까 암놈입니다.
둘째는 길르압,
셋째는 압살롬,
넷째는 아도니야, 다섯째는 스바다랴, 여섯째는 이드르암입니다. 이 여섯명의 아들들 중에 3명이 죽습니다.
첫째 아들 암놈은 이복 형제인
셋째 아들 압살롬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돼요. 그래서 겁탈을 합니다. 그리고는 버려 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압살롬이 이를 갈아요. 자기 누이 동생을 이복 형이 버렸으니까. 그래서 양털을 깎는 날, 우리로 말하면 추수하는 날, 아버지 다윗에게 요구를 하지요. “내가 지금 추수를 하게 됐으니 함께 와서 참여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다윗이 안 갑니다. “그러면 형제들이라도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압살롬이 부하를 시켜서 암놈을 죽입니다. 그리고는 도망을 합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이렇게 살해를 당합니다. 압살롬은 도망을 갔지요. 다윗은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 하면, 아비가엘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난 압살롬을 더 그리워 합니다. 이것을 안 다윗의 측근이 압살롬을 데려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어떻게 합니까 반란을 일으켜요. 그래서 다윗이 쫒겨 가는 신세가 됐어요. 왜 백성들이 다 압살롬 편에 섰기 때문이지요. 다윗이 측근 몇 명만 데리고 구사일생으로 달아나지요. 도망가다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합니까 돌맹이를 집어 던지고 재를 뿌리고. 결국 압살롬이 죽임을 당하지요. 다윗의 부하들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이 자기 눈 앞에서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데, 좋은 일이 아니고 전부 잘못된 일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아비가엘이 다윗이 운명하기 전에 왕위 계승을 놓고 싸울 때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또 죽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다윗의 삶은 외부적인 환란보다는 가정의 우환이 더 많았어요. 그 자식들의 싸움. 자식들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기 눈 앞에서 아들들이 죽어 가고. 오늘날 성도의 가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신앙생활을 계속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좀 생각해 볼 문제지요.
그런데 성경은 참 재미있게 표현해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그래요. 맞아요. 믿음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믿음의 사람 가정에서 이렇게 엄청난 비극적 사건들이 자꾸 터지느냐 말입니다. 사무엘하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꾸 기록이 되고 있어요. 왜 그럴까 그 원인은 어디 있을까 하나님 마음에 합하자고 하나님을 잘 따랐고, 하나님 가까이서 가장 이해를 잘 했던 다윗의 가정에서 왜 다른 가정보다 더 비극적이고 말로 형용할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가 여러분은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성도들을 괴롭히려고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다윗에게 왜 이런 슬픈 일과 비극적인 일이 찾아옵니까 왜 그럴까 사무엘하 마지막 부분은 왜 비극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그 원인을 성경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기록하고 있습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이 헤브론에서 6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은 했지만 단순한 족보가 아니라, 바로 다윗의 비극적 사건들의 원인이 여기 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경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하고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혼돈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요, 하나님의 교회는 그 분이 의도하시는 대로 끌고 가십니다. 그것의 최고 경륜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구원은 우리의 의도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싫어요. 구원 받기 싫어요. 하나님 믿기 싫어요.”라고 아무리 외면해 보았자 하나님이 선택한 자는 다 믿게 돼 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것이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의도 대로 되어져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약속들은 대부분 모두 조건적 약속들입니다. 따라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사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에는 조건도 함께 주시는데, 우리는 그 조건들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해서 그 복을 놓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내가 너의 길을 형통하게 인도하겠다.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겠다.” 하는 약속들 끝에는 꼭 조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조건을 충족시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하면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것을 주시려고 하시지만 우리가 그 약속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더 풍성한 많은 것들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더 풍성히 누려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불순종 때문에 이렇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가문에 이러한 비극이 왜 계속 연출됩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마음으로 사느냐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윗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삼아서 장차 나타날 메시아의 모형이 되게 하겠다.”고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윗이 아무리 싫다 하고 도망을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이 원 위치 시키십니다. 결과적으로는 다윗을 뭘로 만듭니까 하나님의 경륜 대로 왕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은 불가항력적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주었던 축복들은, 다윗이 왕으로 살면서 그 왕의 직분을 감당하며 누려야 할 부귀와 영화와 평화와 기쁨들은 하나님의 약속인데, 그것은 조건적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죠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다 너희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그 언약을 다윗을 통해서 이루시겠다고 하셨거든요. 이새의 뿌리에서라고 했고 나중에 예수님을 통해서 하는 것, 이것이 다 하나님의 약속인데, 이것들을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추호도 변함이 없어요. 다윗이 아무리 불순종을 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고 블레셋으로 도망을 했어도, 하나님이 다시 끌어다 놓고 결국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들지요. 이것은 불변입니다.
오늘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직분자로 만들어 영원한 세계까지 인도하시는 이 경륜은 불변이에요. 여러분, 한번 해 보세요. “나 예수 안 믿어.”라고 밀고 나가 보세요. 되긴 되요.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오지요. 돌아올 때는, 다윗도 어떻게 돌아왔어요 속된 말로 개망신 당하고 돌아왔어요. 후회하고 돌아왔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왔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에요. 오늘 여러분을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 놓치시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싫다고 해 봤자 소용이 없어요. 그러한 하나님과 싸우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대항하려고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그 분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러시면, 아, 그러면 감격해서, “오, 주여, 나 같은 것을 어찌 그리 사랑하십니까” 하고 나아갈 것이지,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러시는데도 “난 그 사랑 싫어요. 난 내 마음 대로 살래요.” 하고 반항하면, 이것처럼 어리석고 교만한 게 없지요. 그건 언젠가는 깨어지게 돼 있어요.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지요. 깨어서라도 데리고 오십니다. 거기에 도전하지 마세요. 그건 도전할 일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까지 지시며 돌아가셨는데, 그 앞에서. 뭐 이건 말도 안 되는 일들이에요. 이것이 경륜이며 이것이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다윗이 왜 이 비극적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을 자기 백성으로 만드셔서 구원하며 그 영원한 나라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불변이지만, 이 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사느냐, 하나님의 자녀로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사느냐, 누리지 못하고 사느냐 하는 것은 조건적인 약속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사무엘 2장 30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존중히 여기면 나도 너희를 존중히 여길 것이요, 너희가 나를 경멸히 여기면 나도 너희를 경멸히 여길 것이다.” 이건 조건적인 것입니다. 나를 존중하느냐 그러면 나도 너를 존중하겠다. 나를 경멸하느냐 그러면 나도 너를 경멸히 여기겠다. 조건적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네가 주야로 묵상하고 그것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리라.” 이 구절이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언급하는 구절입니까 이것은 구원한다는 것이 아녜요. 이것은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의 경륜 대로 왕이 됩니다. 그러나 왕이 되지마는 그 가정에 일어나는 비극은 뭐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삶들의 결과로, 다시 말해서 죄의 결과로 그와 같은 비극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 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또한 얼마나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 가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성도로서 누려야 할 축복과 은혜를 잘 누리고 살게 될 것이며, 만약 그렇치 않다면 그 불순종의 결과로 나타난 죄값을 고통스럽게 받으며 살아 가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이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향한 축복을 막았다.” 내가 너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죄가 막았다고 했어요. 다윗의 가정이 이렇게 비극적인 가정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바로 본문에 기록 되고 있는 말씀처럼 자식들을 많이 두어서 그래요.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 부인에게서 자식들을 많이 둔 것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많으면 복되다고 했어요. 문제는 자식이 많다는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두 가지 범죄를 저질러요. 오늘 본문에 2절부터 5절까지 기록된 말씀을 보면 두 가지 범죄를 하고 있어요.
첫째는 무슨 범죄를 하고 있습니까 처를 많이 둔 것이 잘못입니다. 이것이 그러면 죄냐 아브라함도 첩이 있었고, 그리고 야곱도 첩이 있었지요. 하지만 아담은 첩이 있었나요 하나님은 일부일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해 가지고 제멋대로 마음대로 아내를 취하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첩을 취한 것은 불순종의 결과였지요. 여러분 보세요. 야곱도 비정상이었어요. 그 비정상의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야곱의 집안이 날마다 시끄러웠다고요. 자식들이 매일 서로 다투었지요. 그게 비극이에요. 그러나 본문에 두 가지 죄가 나오는데, 그둘째 죄는 다음 주에 다루겠습니다.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그첫째 죄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을 동원한 죄입니다. 부인들을 취하는데 자기 정욕대로 구합니다. 이건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잖아요 아비가엘도 보통 웃기는 여자가 아닙니다. 자기 남편을 죽인 그 다윗을 따라가요. 그리고 그 다음 부인들이 다 정략결혼으로 얻은 부인들이에요. 주변 국가의 왕들의 딸들을 취합니다. 그 공주들을 취해서 자기 아내로 삼아 왕권을 다져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 이 범죄의 결과가 그런 비극을 연출해 내게 됩니다. 그 자식들 때문에 왕권이 위태로와 집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자기 능력과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 때문에 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까 다윗은 이것을 잘 알아요. 그래서 묻잖아요. 아는 것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를 현재의 위치까지 인도한 것이 누구의 힘이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이라도 네 영혼을 데려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면서 불순종하는 사람들이에요. 오늘 다윗의 범죄가 뭐냐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왕권을 지키려 했던 그 어리석음이 자기 가정에 두고 두고 가시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됩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너희 원수라도 화목하게 하신다고 했어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과 그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다윗이 지금까지 자기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니 그 왕권을 잡고서도 불안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손을 듭니다. 타협하자. 서로돕자. 그래서 아내를 취해요. 그 아내들 때문에 다윗이 망하게 되는 겁니다. 나중에 보면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첩으로 취하는데, 그 바로의 딸이 우상을 가지고 들어와요. 처음에는 그 아내에게 우상을 섬기는 것을 허락하면서 “너만 믿어라.” 그래요. 정략결혼이라 솔로몬도 함부로 하지 못해요. 대제국의 바로의 딸이라 그렇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따르게 되고, 차츰 차츰 믿게 되다가 나중에는 다 믿게 되지요. 솔로몬도 그것 때문에 망해요.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버리라고 하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실패는 어디서 오느냐 바로 하늘로서만 내려지는 축복을 자기가 지키려고 하다가 실패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끝까지 하나님이 보호하시며 인도 하시는 축복 아래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지키시기 바래요. 다윗의 가정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자식들 사이에 겁탈을 합니다. 자식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다윗처럼 이런 비극을 맞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 모두가 음란 때문입니다. 음란은 이렇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잠언 5장 1절서부터 14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음란하는 사람은 그 음란이 결국 자기를 망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일을 계속합니다. 반복적인 음란의 결과는 존영을 잃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존귀와 부귀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음란과 간음은 비밀스럽게 하는 것 같지만 비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드러낸단 말이에요. 수고하는 것이 다 허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또 말씀하시기를 “마지막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하며 후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5절과 16절에 보십시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 가게 하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부부의 사랑을 집 밖으로 흘러 넘치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 울타리 안에 다른 여자 다른 남자를 두지 말라고 했어요. 18절에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랬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요, 젊어서 취할 때는 예뻤거던요. 19절에서 23절에 보면, “그는 사랑스런 암사슴 같고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그랬습니다. 음란을 좋아하던 다윗이 패가망신한 이유가 잠언 6장 20절부터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자, 보세요. 음란하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서 재물을 거두어 가십니다.
또 27절에 보면,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읽은 말씀을 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음란이 얼마나 무서운지 5장, 6장, 7장에서 계속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7장 12절에 보면,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계속해서 27절까지 읽으세요. 음란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어요. 허다한 사람들이 이 음란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자녀들이 잘못되고. 이러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명심하셔야 돼요. 음행 문제가 나오면 우리 교회에서는 문제가 안 될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음행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음행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음행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억을 하십시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요, 잠언 29장 3절에 보면 음행의 결과로 재물을 잃어 버린다고 했어요. 23장 27절에서는 음녀는 함정이라 그랬습니다. 또 보면, 30장 20절에서는 음행하는 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요.
31장 3절에는 여자에게 네 힘을 쓰지 말라고 했어요.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구원의 자녀로 만드십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음행을 한다고, 타협을 한다고 지장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하셔야 될 것은, 오늘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타협할 적에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할 적에, 그리고 음행할 적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그 죄값을 치루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렇게 되는 게 싫으시지만, 죄값은 꼭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이 왜 남은 여생 동안 그렇게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는가,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쳤던 그가 왜 세상에서 찾아 보기 힘든 그런 비극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 그 원인을 성경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짧막한 사무엘하 3장 2절에서 5절까지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이 불순종의 죄와 음란의 죄 때문에 그가 피눈물을 흘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라며,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이와 같은 불순종과 타협이 없길 바라고 또한 이와 같은 음행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기 때문에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모습은 그렇게 극대화 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지난 주에는 왕이 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신가, 그리고 우리가 그 약속에 대해서 어떻게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나눠지고,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이 되며,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북쪽 이스라엘 11지파의 왕이 됨으로 해서 두 라이벌이 생기면서 내란이 일어나서 자그만치 7년 6개월 동안 내란을 겪는 모습이 2장 나머지 부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좀 생각을 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들은 오늘 우리의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뜻은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서도 아브넬이라는 장군은 자기들의 이익과 자기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이스보셋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 이스라엘에 왕권을 세웁니다.
아브넬이 나중에 다윗에게 투항을 하며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 왕권을 주겠다고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아브넬이라 하는 사람과 그 이스보셋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다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 그 말이지요. 교회 안에서도 신앙생활하면서 성도들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요. 이 교회가 어떻게 하는 것을 원하시는가 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모두 알면서도 현재 내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마치 아브넬이 그의 현재 위치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애써 그 뜻을 외면하고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삶 가운데 많이 있지요.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이것인 줄 알면서도 자기 직분 자기 위치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반대될 또는 상충될 때 현재의 내 기득권을 포기하기보다는 내분을 일으키면서까지 내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목사파 장로파 누구파 하며 파가 나누어져 싸우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이러한 것은 영적인 문제의 결과들이라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제가 좀 간략하게 지적만 하고 넘어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3장을 보게 되는데요, 이 3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되었다 그랬습니다. 내분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다윗은 점점 강해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다시 언급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좀더 깊이 있게 보려고 하는 것은, 2절에서 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낳은 아들들의 이름이 2절에서 5절까지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몇 명이 기록이 되고 있는가 하면, 6명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헤브론에서 왕권을 가지고 있는 다윗에게 자식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는데, 그 자식들의 이름이 우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5장으로 넘어가게 되면 다윗이 온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난 다음에 또 자녀들을 많이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무엘하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다윗의 삶입니다. 지금까지 사무엘상.하를 통해서 쭉 상고해 본 바를 본다면, 다윗이 얼마나 많은 시련과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사무엘하에 들어가서 2장 1절에서 다윗이 왕권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까 “하나님, 내가 올라가야 됩니까 올라가지 말아야 됩니까” “올라가라.” “그러면 어디로 올라갑니까” 이렇게 자세히 하나님께 물으면서 자기 인생을 맡기는 믿음이 성숙한 성도가 됐단 말이에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그 많은 고난과 실패와 회복의 경험들을 통해서 이와 같이 신앙이 돈독해 졌는데, 그래서 이스라엘 왕이 됐는데, 그 왕이 되고난 다음의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냐 하면요, 다윗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아픔과 눈물을 흘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다윗과 같이 비극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 적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2절에서 5절까지에 다윗의 6명의 아들이 기록이 되고 있지요 그러나 여기 기록된 6명의 아들들 중에서
첫째가 누굽니까 암놈입니다.
둘째는 길르압,
셋째는 압살롬,
넷째는 아도니야, 다섯째는 스바다랴, 여섯째는 이드르암입니다. 이 여섯명의 아들들 중에 3명이 죽습니다.
첫째 아들 암놈은 이복 형제인
셋째 아들 압살롬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돼요. 그래서 겁탈을 합니다. 그리고는 버려 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압살롬이 이를 갈아요. 자기 누이 동생을 이복 형이 버렸으니까. 그래서 양털을 깎는 날, 우리로 말하면 추수하는 날, 아버지 다윗에게 요구를 하지요. “내가 지금 추수를 하게 됐으니 함께 와서 참여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다윗이 안 갑니다. “그러면 형제들이라도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압살롬이 부하를 시켜서 암놈을 죽입니다. 그리고는 도망을 합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이렇게 살해를 당합니다. 압살롬은 도망을 갔지요. 다윗은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 하면, 아비가엘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난 압살롬을 더 그리워 합니다. 이것을 안 다윗의 측근이 압살롬을 데려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어떻게 합니까 반란을 일으켜요. 그래서 다윗이 쫒겨 가는 신세가 됐어요. 왜 백성들이 다 압살롬 편에 섰기 때문이지요. 다윗이 측근 몇 명만 데리고 구사일생으로 달아나지요. 도망가다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합니까 돌맹이를 집어 던지고 재를 뿌리고. 결국 압살롬이 죽임을 당하지요. 다윗의 부하들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이 자기 눈 앞에서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데, 좋은 일이 아니고 전부 잘못된 일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아비가엘이 다윗이 운명하기 전에 왕위 계승을 놓고 싸울 때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또 죽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다윗의 삶은 외부적인 환란보다는 가정의 우환이 더 많았어요. 그 자식들의 싸움. 자식들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기 눈 앞에서 아들들이 죽어 가고. 오늘날 성도의 가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신앙생활을 계속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좀 생각해 볼 문제지요.
그런데 성경은 참 재미있게 표현해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그래요. 맞아요. 믿음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믿음의 사람 가정에서 이렇게 엄청난 비극적 사건들이 자꾸 터지느냐 말입니다. 사무엘하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꾸 기록이 되고 있어요. 왜 그럴까 그 원인은 어디 있을까 하나님 마음에 합하자고 하나님을 잘 따랐고, 하나님 가까이서 가장 이해를 잘 했던 다윗의 가정에서 왜 다른 가정보다 더 비극적이고 말로 형용할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가 여러분은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성도들을 괴롭히려고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다윗에게 왜 이런 슬픈 일과 비극적인 일이 찾아옵니까 왜 그럴까 사무엘하 마지막 부분은 왜 비극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그 원인을 성경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기록하고 있습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이 헤브론에서 6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은 했지만 단순한 족보가 아니라, 바로 다윗의 비극적 사건들의 원인이 여기 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경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하고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혼돈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요, 하나님의 교회는 그 분이 의도하시는 대로 끌고 가십니다. 그것의 최고 경륜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구원은 우리의 의도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싫어요. 구원 받기 싫어요. 하나님 믿기 싫어요.”라고 아무리 외면해 보았자 하나님이 선택한 자는 다 믿게 돼 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것이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의도 대로 되어져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약속들은 대부분 모두 조건적 약속들입니다. 따라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사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에는 조건도 함께 주시는데, 우리는 그 조건들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해서 그 복을 놓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내가 너의 길을 형통하게 인도하겠다.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겠다.” 하는 약속들 끝에는 꼭 조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조건을 충족시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하면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것을 주시려고 하시지만 우리가 그 약속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더 풍성한 많은 것들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더 풍성히 누려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불순종 때문에 이렇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가문에 이러한 비극이 왜 계속 연출됩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마음으로 사느냐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윗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삼아서 장차 나타날 메시아의 모형이 되게 하겠다.”고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윗이 아무리 싫다 하고 도망을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이 원 위치 시키십니다. 결과적으로는 다윗을 뭘로 만듭니까 하나님의 경륜 대로 왕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은 불가항력적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주었던 축복들은, 다윗이 왕으로 살면서 그 왕의 직분을 감당하며 누려야 할 부귀와 영화와 평화와 기쁨들은 하나님의 약속인데, 그것은 조건적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죠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다 너희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그 언약을 다윗을 통해서 이루시겠다고 하셨거든요. 이새의 뿌리에서라고 했고 나중에 예수님을 통해서 하는 것, 이것이 다 하나님의 약속인데, 이것들을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추호도 변함이 없어요. 다윗이 아무리 불순종을 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고 블레셋으로 도망을 했어도, 하나님이 다시 끌어다 놓고 결국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들지요. 이것은 불변입니다.
오늘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직분자로 만들어 영원한 세계까지 인도하시는 이 경륜은 불변이에요. 여러분, 한번 해 보세요. “나 예수 안 믿어.”라고 밀고 나가 보세요. 되긴 되요.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오지요. 돌아올 때는, 다윗도 어떻게 돌아왔어요 속된 말로 개망신 당하고 돌아왔어요. 후회하고 돌아왔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왔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에요. 오늘 여러분을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 놓치시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싫다고 해 봤자 소용이 없어요. 그러한 하나님과 싸우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대항하려고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그 분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러시면, 아, 그러면 감격해서, “오, 주여, 나 같은 것을 어찌 그리 사랑하십니까” 하고 나아갈 것이지,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러시는데도 “난 그 사랑 싫어요. 난 내 마음 대로 살래요.” 하고 반항하면, 이것처럼 어리석고 교만한 게 없지요. 그건 언젠가는 깨어지게 돼 있어요.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지요. 깨어서라도 데리고 오십니다. 거기에 도전하지 마세요. 그건 도전할 일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까지 지시며 돌아가셨는데, 그 앞에서. 뭐 이건 말도 안 되는 일들이에요. 이것이 경륜이며 이것이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다윗이 왜 이 비극적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을 자기 백성으로 만드셔서 구원하며 그 영원한 나라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불변이지만, 이 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사느냐, 하나님의 자녀로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사느냐, 누리지 못하고 사느냐 하는 것은 조건적인 약속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사무엘 2장 30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존중히 여기면 나도 너희를 존중히 여길 것이요, 너희가 나를 경멸히 여기면 나도 너희를 경멸히 여길 것이다.” 이건 조건적인 것입니다. 나를 존중하느냐 그러면 나도 너를 존중하겠다. 나를 경멸하느냐 그러면 나도 너를 경멸히 여기겠다. 조건적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네가 주야로 묵상하고 그것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리라.” 이 구절이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언급하는 구절입니까 이것은 구원한다는 것이 아녜요. 이것은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의 경륜 대로 왕이 됩니다. 그러나 왕이 되지마는 그 가정에 일어나는 비극은 뭐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삶들의 결과로, 다시 말해서 죄의 결과로 그와 같은 비극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 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또한 얼마나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 가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성도로서 누려야 할 축복과 은혜를 잘 누리고 살게 될 것이며, 만약 그렇치 않다면 그 불순종의 결과로 나타난 죄값을 고통스럽게 받으며 살아 가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이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향한 축복을 막았다.” 내가 너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죄가 막았다고 했어요. 다윗의 가정이 이렇게 비극적인 가정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바로 본문에 기록 되고 있는 말씀처럼 자식들을 많이 두어서 그래요.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 부인에게서 자식들을 많이 둔 것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많으면 복되다고 했어요. 문제는 자식이 많다는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두 가지 범죄를 저질러요. 오늘 본문에 2절부터 5절까지 기록된 말씀을 보면 두 가지 범죄를 하고 있어요.
첫째는 무슨 범죄를 하고 있습니까 처를 많이 둔 것이 잘못입니다. 이것이 그러면 죄냐 아브라함도 첩이 있었고, 그리고 야곱도 첩이 있었지요. 하지만 아담은 첩이 있었나요 하나님은 일부일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해 가지고 제멋대로 마음대로 아내를 취하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첩을 취한 것은 불순종의 결과였지요. 여러분 보세요. 야곱도 비정상이었어요. 그 비정상의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야곱의 집안이 날마다 시끄러웠다고요. 자식들이 매일 서로 다투었지요. 그게 비극이에요. 그러나 본문에 두 가지 죄가 나오는데, 그둘째 죄는 다음 주에 다루겠습니다.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그첫째 죄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을 동원한 죄입니다. 부인들을 취하는데 자기 정욕대로 구합니다. 이건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잖아요 아비가엘도 보통 웃기는 여자가 아닙니다. 자기 남편을 죽인 그 다윗을 따라가요. 그리고 그 다음 부인들이 다 정략결혼으로 얻은 부인들이에요. 주변 국가의 왕들의 딸들을 취합니다. 그 공주들을 취해서 자기 아내로 삼아 왕권을 다져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 이 범죄의 결과가 그런 비극을 연출해 내게 됩니다. 그 자식들 때문에 왕권이 위태로와 집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자기 능력과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 때문에 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까 다윗은 이것을 잘 알아요. 그래서 묻잖아요. 아는 것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를 현재의 위치까지 인도한 것이 누구의 힘이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이라도 네 영혼을 데려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면서 불순종하는 사람들이에요. 오늘 다윗의 범죄가 뭐냐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왕권을 지키려 했던 그 어리석음이 자기 가정에 두고 두고 가시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됩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너희 원수라도 화목하게 하신다고 했어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과 그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다윗이 지금까지 자기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니 그 왕권을 잡고서도 불안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손을 듭니다. 타협하자. 서로돕자. 그래서 아내를 취해요. 그 아내들 때문에 다윗이 망하게 되는 겁니다. 나중에 보면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첩으로 취하는데, 그 바로의 딸이 우상을 가지고 들어와요. 처음에는 그 아내에게 우상을 섬기는 것을 허락하면서 “너만 믿어라.” 그래요. 정략결혼이라 솔로몬도 함부로 하지 못해요. 대제국의 바로의 딸이라 그렇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따르게 되고, 차츰 차츰 믿게 되다가 나중에는 다 믿게 되지요. 솔로몬도 그것 때문에 망해요.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버리라고 하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실패는 어디서 오느냐 바로 하늘로서만 내려지는 축복을 자기가 지키려고 하다가 실패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끝까지 하나님이 보호하시며 인도 하시는 축복 아래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지키시기 바래요. 다윗의 가정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자식들 사이에 겁탈을 합니다. 자식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다윗처럼 이런 비극을 맞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 모두가 음란 때문입니다. 음란은 이렇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잠언 5장 1절서부터 14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음란하는 사람은 그 음란이 결국 자기를 망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일을 계속합니다. 반복적인 음란의 결과는 존영을 잃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존귀와 부귀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음란과 간음은 비밀스럽게 하는 것 같지만 비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드러낸단 말이에요. 수고하는 것이 다 허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또 말씀하시기를 “마지막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하며 후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5절과 16절에 보십시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 가게 하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부부의 사랑을 집 밖으로 흘러 넘치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 울타리 안에 다른 여자 다른 남자를 두지 말라고 했어요. 18절에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랬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요, 젊어서 취할 때는 예뻤거던요. 19절에서 23절에 보면, “그는 사랑스런 암사슴 같고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그랬습니다. 음란을 좋아하던 다윗이 패가망신한 이유가 잠언 6장 20절부터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자, 보세요. 음란하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서 재물을 거두어 가십니다.
또 27절에 보면,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읽은 말씀을 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음란이 얼마나 무서운지 5장, 6장, 7장에서 계속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7장 12절에 보면,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계속해서 27절까지 읽으세요. 음란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어요. 허다한 사람들이 이 음란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자녀들이 잘못되고. 이러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명심하셔야 돼요. 음행 문제가 나오면 우리 교회에서는 문제가 안 될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음행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음행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음행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억을 하십시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요, 잠언 29장 3절에 보면 음행의 결과로 재물을 잃어 버린다고 했어요. 23장 27절에서는 음녀는 함정이라 그랬습니다. 또 보면, 30장 20절에서는 음행하는 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요.
31장 3절에는 여자에게 네 힘을 쓰지 말라고 했어요.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구원의 자녀로 만드십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음행을 한다고, 타협을 한다고 지장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하셔야 될 것은, 오늘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타협할 적에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할 적에, 그리고 음행할 적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그 죄값을 치루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렇게 되는 게 싫으시지만, 죄값은 꼭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이 왜 남은 여생 동안 그렇게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는가,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쳤던 그가 왜 세상에서 찾아 보기 힘든 그런 비극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 그 원인을 성경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짧막한 사무엘하 3장 2절에서 5절까지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이 불순종의 죄와 음란의 죄 때문에 그가 피눈물을 흘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라며,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이와 같은 불순종과 타협이 없길 바라고 또한 이와 같은 음행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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