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작정 (삼하17:1-14)
본문
1. 악한 일을 도모하는 아히도벨
2. 다윗을 돕는 후새
3.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유 위에 계시는 분으로서 모든 피조물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주장하십니다. 이는 악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인간의 성패는 인간의 노력과 지혜로 결정되지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그동안 다윗 왕의 모사로서 활동을 많이 한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여 다윗을 죽이려는 선봉에 나서지만 자신의 모략이 채택되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어서 악인의 계획들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악인이 잘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마지막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후새를 보내시어 다윗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진실한 친구는 어려울 때 돕는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함을 절대로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성도의 어려운 환경 때문에 좌절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악한 일에 참여했던 아히도벨의 삶과 어려울 때에 도운 후새의 우정과 위기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통해 은혜를 받으시기 원합니다.
1. 악한 일을 도모한 아히도벨
1) 다윗 왕을 배반하여 떠났습니다. 삼하 “(삼하15: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인생 전반기를 다윗 왕의 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다윗 왕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아히도벨은 판단력이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성경은 “(삼하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판단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에게로 간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 다윗 왕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을 죽이려는 계략을 말하고 있습니다. “(삼하17: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삼하17: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왕만 쳐 죽이고”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은 전체 백성이 자기들에게로 돌아오는 열쇠가 다윗 한 사람의 죽음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시간을 주지말고 피곤하고 약할 때에 그를 엄습해서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압살롬의 갑작스러운 반란을 피해 도망했기 때문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때 아히도벨이 군사를 이끌고 나섰더라면 심각한 사태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전략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삼하17: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성도에게 결정적인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모든 일을 간섭하시고 악인의 도모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사실 아히도벨의 모략은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정확했고 성공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다윗 일행은 뜻하지 아니한 도피 생활로 인해 매우 지켜 있었습니다. “(삼하17: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왕만 쳐 죽이고”하였습니다. 또한 다윗의 추종자가 후새의 말과 같이 모두 용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삼하17:10) 비록 용감하여 사자같은 자의 마음이라도 저상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부친은 영웅이요 그 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하였습니다. 따라서 아히도벨 같은 모략가가 일만 이천의 군사를 데리고 다윗의 후미를 친다면 필경 결과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삼하17: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삼하17: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왕만 쳐 죽이고 (삼하17:3)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무리의 돌아오기는 왕의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하였습니다.
2. 다윗을 돕는 후새 후새는 아말렉 사람으로 다윗의 충신이었습니다. 전략상 압살롬에게 붙어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는 아히도벨에 반대되는 전략을 세워 다윗을 보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수습할 시간을 주기 위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한꺼번에 대략으로 공격하여 다윗을 쳐 부수자고 제안했습니다.
1) 다윗에 대한 신의를 배반치 아니했습니다. 후새는 곤경에 처한 다윗을 배반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윗에 대한 그의 우정이 진실한 것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요즘처럼 믿을만한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의를 지킬줄 아는 사람들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그렇지만 주님께 대해서도 더욱 그리해야 하겠습니다.
2) 다윗을 위해 압살롬에게 올무를 놓았습니다. 후새는 다윗에 대한 신의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를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가 압살롬에게 베푼 모략은 압살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윗을 위해 압살롬의 앞에 놓은 올무였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고, 애씀으로 사랑을 실증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작정
1) 하나님은 악인의 꾀를 용납하지 아니하십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은 매우 우수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전략을 채택했더라면 다윗은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쫒아 다윗을 대항했더라면 분명 승리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후새를 불러 그의 의견을 채택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더 좃은 전략이 폐기되고 자기에게 불리한 전략을 채택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람의 권모술수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보다도 후새의 올무를 더 좋게 여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하도록 힘써야만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압살롬은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후새를 부른 것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다윗을 돕는 후새를 부르게 하시고 후새로 하여금 다윗에게 위협적인 아히도벨의 모략을 방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자신의 영웅심을 자극하고 명예심을 추켜 세운 후새의 모략을 더낫게 여기게 되었고 그 의견을 채택하므로써 스스로 몰락을 재촉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약인의 궤계에서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게 닥쳐오는 어떠한 악인의 궤계도 하나님은 이를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지혜를 폐하심으로 그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지게 역사하곤 하십니다. “(욥5:12)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시33: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사8:10)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며 그 같은 하나님만을 의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성도의 모사 하나님 성경에는 자주 하나님을 모사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33:11)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 “(시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가리켜 모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시119:24)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친히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전지하신 하나님은 가장 완전하 모사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가 결코 그분의 모략을 다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40: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모사라고 칭했습니다. “(사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하였습니다. 이는 보혜사 성령님이 곧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모사가 되심을 보여 줍니다. 결국 성경은 삼위 하나님이 모두 우리에게 모사가 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완전한 모사이신 하나님의 지혜와 교훈을 늘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히도벨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늘 겸손하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에게 경고해 줍시다. 악인의 종말은 멸망 뿐이라고, 또한 악을 도모하는 알에는 결코 참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가집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작정하십니다.
2. 다윗을 돕는 후새
3.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유 위에 계시는 분으로서 모든 피조물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주장하십니다. 이는 악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인간의 성패는 인간의 노력과 지혜로 결정되지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그동안 다윗 왕의 모사로서 활동을 많이 한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여 다윗을 죽이려는 선봉에 나서지만 자신의 모략이 채택되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어서 악인의 계획들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악인이 잘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마지막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후새를 보내시어 다윗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진실한 친구는 어려울 때 돕는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함을 절대로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성도의 어려운 환경 때문에 좌절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악한 일에 참여했던 아히도벨의 삶과 어려울 때에 도운 후새의 우정과 위기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통해 은혜를 받으시기 원합니다.
1. 악한 일을 도모한 아히도벨
1) 다윗 왕을 배반하여 떠났습니다. 삼하 “(삼하15: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인생 전반기를 다윗 왕의 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다윗 왕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아히도벨은 판단력이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성경은 “(삼하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판단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에게로 간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 다윗 왕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을 죽이려는 계략을 말하고 있습니다. “(삼하17: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삼하17: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왕만 쳐 죽이고”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은 전체 백성이 자기들에게로 돌아오는 열쇠가 다윗 한 사람의 죽음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시간을 주지말고 피곤하고 약할 때에 그를 엄습해서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압살롬의 갑작스러운 반란을 피해 도망했기 때문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때 아히도벨이 군사를 이끌고 나섰더라면 심각한 사태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전략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삼하17: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성도에게 결정적인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모든 일을 간섭하시고 악인의 도모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사실 아히도벨의 모략은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정확했고 성공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다윗 일행은 뜻하지 아니한 도피 생활로 인해 매우 지켜 있었습니다. “(삼하17: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왕만 쳐 죽이고”하였습니다. 또한 다윗의 추종자가 후새의 말과 같이 모두 용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삼하17:10) 비록 용감하여 사자같은 자의 마음이라도 저상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부친은 영웅이요 그 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하였습니다. 따라서 아히도벨 같은 모략가가 일만 이천의 군사를 데리고 다윗의 후미를 친다면 필경 결과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삼하17: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삼하17: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왕만 쳐 죽이고 (삼하17:3)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무리의 돌아오기는 왕의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하였습니다.
2. 다윗을 돕는 후새 후새는 아말렉 사람으로 다윗의 충신이었습니다. 전략상 압살롬에게 붙어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는 아히도벨에 반대되는 전략을 세워 다윗을 보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수습할 시간을 주기 위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한꺼번에 대략으로 공격하여 다윗을 쳐 부수자고 제안했습니다.
1) 다윗에 대한 신의를 배반치 아니했습니다. 후새는 곤경에 처한 다윗을 배반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윗에 대한 그의 우정이 진실한 것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요즘처럼 믿을만한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의를 지킬줄 아는 사람들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그렇지만 주님께 대해서도 더욱 그리해야 하겠습니다.
2) 다윗을 위해 압살롬에게 올무를 놓았습니다. 후새는 다윗에 대한 신의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를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가 압살롬에게 베푼 모략은 압살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윗을 위해 압살롬의 앞에 놓은 올무였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고, 애씀으로 사랑을 실증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작정
1) 하나님은 악인의 꾀를 용납하지 아니하십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은 매우 우수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전략을 채택했더라면 다윗은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쫒아 다윗을 대항했더라면 분명 승리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후새를 불러 그의 의견을 채택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더 좃은 전략이 폐기되고 자기에게 불리한 전략을 채택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람의 권모술수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보다도 후새의 올무를 더 좋게 여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하도록 힘써야만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압살롬은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후새를 부른 것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다윗을 돕는 후새를 부르게 하시고 후새로 하여금 다윗에게 위협적인 아히도벨의 모략을 방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자신의 영웅심을 자극하고 명예심을 추켜 세운 후새의 모략을 더낫게 여기게 되었고 그 의견을 채택하므로써 스스로 몰락을 재촉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약인의 궤계에서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게 닥쳐오는 어떠한 악인의 궤계도 하나님은 이를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지혜를 폐하심으로 그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지게 역사하곤 하십니다. “(욥5:12)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시33: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사8:10)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며 그 같은 하나님만을 의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성도의 모사 하나님 성경에는 자주 하나님을 모사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33:11)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 “(시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가리켜 모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시119:24)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친히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전지하신 하나님은 가장 완전하 모사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가 결코 그분의 모략을 다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40: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모사라고 칭했습니다. “(사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하였습니다. 이는 보혜사 성령님이 곧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모사가 되심을 보여 줍니다. 결국 성경은 삼위 하나님이 모두 우리에게 모사가 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완전한 모사이신 하나님의 지혜와 교훈을 늘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히도벨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늘 겸손하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에게 경고해 줍시다. 악인의 종말은 멸망 뿐이라고, 또한 악을 도모하는 알에는 결코 참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가집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작정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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