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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서 한 형제된 우리 용서못할 일이 없다 (삼하18:5-9,엡4:25-5:2,요6:35)

본문

자식 사랑은 본능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자식을 낳아 버리는 경우도 있다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자식 사랑이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식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빗나간 자식 사랑도 많습니다. 하지만 자식 사랑 그 자체만큼은 나무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는 그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서로 만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이 그 부모에 대해서 죽을 죄를 지었을지라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변함 없듯이,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말할 수 없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은,어떻게 계산할 수도 없거니와 논리적으로도 따질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인 사무엘하 18장에서,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자식입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그 왕관을 빼앗아 쓸려는 욕심으로 칼을 들고 대든 압살롬을,아버지 다윗은 그 부하들에게 그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실,아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에게 있어서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쫒겨서 도망가는 아버지 다윗의 심정을 한번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챙피스럽고 부끄러우며 비통했겠는지를 말이지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으로 도망갈 때에는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면서 갔다고 했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왕의 체면은 어떠했을 것이며, 이웃나라에 대해서는 얼마나 망신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까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미 예고한 바 있는 시련이었지만, 다윗으로서는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윗은 그 고통을 안겨 준 아들 압살롬을 아무 조건없이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그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압살롬에 대한 아버지 다윗의 심정은 이러했지만, 다윗의 직속 부하인 요압 장군에게 있어서 압살롬은 가차없이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요압 장군으로서는 압살롬에 대해서 손톱만큼도 애틋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는 불효막심한 놈이요 천하에 죽일 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상수리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압살롬의 목을 단칼에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에 의해서 제일 큰 피해를 본 당사자는 다윗입니다.
그에 비해서 요압의 피해는 아주 미미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압살롬을 살려주기를 간청하고 있고, 요압은 여지없이 그를 쳐죽이고 있습니다. 이토록 차이가 날 수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는,다른 사람에 대해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친형제를 대하듯 너그럽게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된 우리 성도들은,어떻게 보면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피보다 더 영원하고 값진 하나님의 말씀을 나눈 식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그러한 관계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음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제의 잘못에 대해서 부모나 친형제의 입장을 가지고 너그럽게 용서할 것이냐,아니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냉정하게 심판할 것이냐 하는 것 중,주저없이 전자(前者)를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했으니,우리는 하나님이나 부모의 사랑을 가지고 믿음의 형제를 대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느 정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도록 노 력해야 할 것이니다. 하지만,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주 너그럽지만,사촌만 되어도 그 잘못을 여간해서는 이해할 줄 모르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교회 안에서 관용과 사랑이 넉넉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지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이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만,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한 지체라고 하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하고 아내는 모든 게 다릅니다. 얼굴 생김새에서 성격,나이와 성장 배경 등. 같은 게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여보 당신 하면서 떨어져서는 못 살 것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혼이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에 따라 그렇게 되었습니다. 결혼 초에는 사실 상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가정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이제는 안팎으로 하나의 부부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남남이 아닙니다. 아내의 허물을 남편이 속속들이 알고 있으나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남편되는 제 약점을 아내가 알고 있지만,그것을 꼬투리 삼아 따지지 않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따져보았자,이익될 게 없음을 서로가 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상대방의 부족을 채워주려는 노력만이 있을 뿐입니다. 상대방이 힘들어 하는 일을 어떻게 해서든지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삽니다. 이렇게 도와 살라고,하나님께서 가정이라는 제도를 마련하셨던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따지고 보면, 좋은 점도 많고 나쁜 점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보통 사람 눈에는 상대방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이 띄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어려운 세상 살이 속에서 서로가 힘이 되어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게끔 만들어진 것이,교회라는 제도입니다. 말씀을 알기 전에는,서로 상대방의 잘못만 발견하기가 쉽기 때문에,서로 심판하고 따지며 다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상대방의 눈 속에 있는 티끌만 보지 말고,자신의 눈 속에는 대들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지혜가 있다고 한다면, 상대방의 잘못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더 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상대방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합니다. 혹 말씀을 듣고 배워도,그 말씀을 잘 소화하지 못한 채 지식으로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닌 경력이 많아질수록,더욱 겸손해지기보다는 교만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을 조금만 이해하고 있어도 그리 쉽게 타인을 정죄할 수 없을텐데,상종을 안할 정도로 미워하는 것을 보면 말씀을 너무 모르고 있는 우리 자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한 까닭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지금이라도 자신의 부족과 잘못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도움을 청하면 인생을 풍요롭개 살 수 있도록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1절에서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양식이다. 이 양식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라고,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이나 허물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잘못이나 허물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을 아시고 도와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실패를 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도와 주실 뿐만 아니라,그 이상으로 채워주시는 분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본능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본성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의 본질 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자기 몸을 제물로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예화입니다. 그 내용은 전하는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지만,주제는 같습니다. 어느 어머니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아들이 어머니께 졸라서 재산을 일부 팔아, 사업을 하겠다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어머니 홀로 시골에 남겨두고 서울로 가는 아들의 마음은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꼭 성공을 하여,자기 하나를 위해서 일생을 바친 어머니를 편히 모시리라는 각오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사업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내려갈 수가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지만,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버틸 때까지 견디어내다가,할 수 없이 어머니께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밝히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내려가겠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염치가 없어서 내려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편지 끝부분에, ‘어머니께서 제 잘못을 용서하신다면 집 앞에 있는 대추나무 끝에 흰 천조각을 매달아 주십시오’하고 적었습니다. 마침 그의 집은 열차 안에서도 바라다 뵈는 곳에 있었습니다. 드디어 낙향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 아들은 열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고향이 가까울수록 가슴은 더욱 세차게 뛰었습니다. 혹시나 실패한 아들에 대해서 실망한 나머지,흰 천조각을 매달지 않았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고향 역에 가까이 다달을 때쯤 눈길을 자기 집 쪽으로 향했습니다. 아!
그런데 어쩌면 좋지요 대추나무에는 흰 천조각 하나만 아니라, 아예 대추나무 전체를 흰 보자기 같은 것들로 뒤집어 씌워 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눈이 별로 좋지 못한 아들이 흰 천 조각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 염려하여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할 수만 있다면,온 세상을 하얗게 뒤집어 씌우실 것입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이 예화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잘못이라도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고로 용서받지 못할 뿐이지, 아 무리 흉칙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면 두말없이 용서하십니다. 아니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다만 이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석방 선언은 오래 전에 내렸건만, 이 소식을 듣지 못했거나,듣고서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감옥 안에 남아 있어서 신세 한탄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숙희 라고 하는,유명한 여성학자요 방송 사회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을 아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분은 자식을 둘 가진 이혼녀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결혼할 때에, 그의 친정 어머니가 상대 남자와의 결혼을 극구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굳이 결혼을 하겠다는 딸의 고집에,그 사람과의 결혼을 더 이상 말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숙희 씨는 결혼 생활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친정 어머니한테 단단히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오히려 딸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어머니가 하는 말씀이 ‘네가 시집갈 때에 이미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노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친정 어머니는 딸이 시집 갈 때,딸의 잘못된 선택을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그 잘못된 선택의 결과까지도 용서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더더욱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부족으로 인한 잘못가지도 용서하실 준비를 하고 계심이 틀림없습니다. 그런고로,우리의 잘못이 문제가아닙니다. 잘못이 없는 척하고 그냥 지나가려는 위선이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하셨는데도,나는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 채 미워하고 있다는 데,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3.우리는 생명의 양식을 나누고 있으므로 한 식구입니다 한 솥밥을 먹는다고 해서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육신의 양식만 아니라,영혼의 양식을 함께 나누어 먹어도 한 식구인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생명의 떡이나 빵이라는 표현은 잘못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생명의 밥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간식으로 먹는 빵이나 떡이 아니라,주식으로 먹는 밥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양식은 어쩌다가 먹어서는 안 됩니다. 끼니 때마다 걸르지 말고 먹어야 합니다. 혼자서 먹는 밥이 아니라,성도가 같이 먹어야 더 밥맛이 좋아지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한 솥밥을 먹는 식구는
1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간혹 다툴 때도 있지만,하룻 밤 자고 나면 웃으면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 식구입니다(엡4:3).
2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깁니다. 같은 식구라고 해도 위 아래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웃사람은 아랫 사람을 아끼고 아랫 사람은 웃사람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형제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불쌍히 여깁니다.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돕기 위하여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닙니다(엡4:32).
3참된 말을 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더우기 부모가 자식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자식이 부모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한 식구라면,식구끼리는 진실을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식구끼리는 서로 거짓말을 하거나 속여서는 안됩니다(엡4:32). 저와 여러분은 모두 한 식구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나누고 있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너도 진실되이 말하고 나도 진실되이 말한다면, 용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같은 식구끼리는 무슨 일이든지 숨길 수가 없거니와 용서 못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진실하고 변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히 평화를 누리게 하는 양식이 됩니다. 그래서 이 양식을 함께 먹는 사람은 정말 서로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진정한 식구가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 안에 서 좋은 믿음의 식구가 되어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고,연약할 때에 힘이 되어줌으로 해서,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이 풍파 많은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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