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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삼하7:1-17)

본문

오늘 우리가 맥추감사절을 맞이해서 다윗왕을 앞에 놓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인가 또 하나는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같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는 성도가 해야할 가장 고귀한 의무 중에 하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베소 5장 20절에 말씀 하시기를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 명령은 우리에게서 떠날 수가 없는 명령입니다. 만약에 이 명령을 지키지 않고 생활한다면 그것은 살인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 하는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나 별다름이 없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생활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대지 소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다윗의 생활을 하나하나 놓고 우리 자신의 입장을 거기에다가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야기를 여러분이 들으시면서 아,내가 다윗과 비교할 때 어떠 한가 고 스스로 한번 검토해 보세요. 그럴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고, 분명히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다윗왕은 그의 화려한 경력에 못지 않게 험난한 인생경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수년동안 정치망명을 다니면서 갖가지 수모와 고통을 맞보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나중에 왕좌에 올라서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만, 왕위에 오른 몇년 동안은 늘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의 칼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조용히 쉬면서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늘 복잡하고 아우성치는 분위기 속에서 그는 생활을 했습니다. 드디어 수년이 지나자 하나님이 주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고,평안히 왕궁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1절에 하나님이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셨다.그랬습니다. 이제는 몸과 마음을 부담없이 쉴수 있는 시기가 왔습니다. 요사이 말로 하면 생을 즐길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다는 말입니다.
이럴때에 다윗이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하는 것은 대단한 관심의 촛점입니다. 성공을 손에 넣고, 행복을 마음에 담아 즐기면서 하루하루를 살수 있는 형편이 되었을 때에 그 사람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 또 나 자신에게도 내가 가장 많이 마음을 쏟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저울질 하는 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같이 산이나 바다에서 폭풍과 싸울때는 그 생각이 단순한 법입니다.어떻게 하면 살아 남을까 그것 밖에 생각이 없어요. 인생 밑바닥에서 부터 한푼두푼 모아 가면서 그야말로 하루하루 사는게 지겨운 생활을 할 때는 생각이 단순한 법입니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떨어지지 않고 살까 어떻게 하면 처자들을 굼기지 않고 살까 그저 단순한 이런 생각을 갖고 인생의 파도와 싸웁니다만, 그저 좀 환경이 한가롭게 바뀌고,여유가 있고, 행복을 즐길수 있는 그런 여건이 되면 생각이 바뀝니다. 다윗도 마찬가집니다. 전쟁터에 있을 때의 다윗하고,궁에 평안히 거하게 되었을 때의 다윗하고 생각이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는데, 다윗에게서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평안하게 궁에서 지내게 되자, 그에게 관심사는 자기 자신도 아니었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즐길까,어떻게 하면 좀더 자기의 영광을 과시할까 하는 이런 생각에 몰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평안해지자 그의 생각은 하나님께로 쏠렸습니다. 그는 느부갓네살처럼 거드름을 피우면서 배를 내 밀며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감히 나의 권세와 영광에 누가 도전을 할 것이냐 하고 과시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왕은 궁에 평안히 거하게 되자,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의 시를 통해서 그가 무슨 생각에 잡혀 있었는가를 금방 알수 있습니다. 시편 116편 12절에 여호와의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바로 이것이 다윗이 평안하게 되자 생각하게 된 관심사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나님,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해야 합니까 평안하게 된 사람, 생을 즐기게 된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는 설혹, 그렇게 남보다 앞 섰다고 할수 없고, 또 그렇게 여유가 있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고도 볼수가 없지만, 그러나 지금부터 몇십년 전에 살던 부모들에 비하면, 궁중생활과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전쟁없는 생을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국가가 이런저런 위기를 당하면서도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을 보아왔고, 그것이 실제로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우리 나름대로 많이 체험해 왔습니다. 옛날처럼 고무신을 끌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옛날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릿가루를 절구로 찧어 가지고 개떡을 해 먹는 그런 일도 없습니다. 다 그런대로 풍족하게 먹고 마시고, 때가 되면 새 옷을 해 입고 합니다. 이럴 때에 나의 주된 관심은 무엇이냐 여러분 스스로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궁에 거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생겼는데, 하나님이 다 주셨구나, 내가 손에 들고, 보고,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구나. 그야말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 모든 것을 다 부어 주셨구나. 감사하구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교법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비교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방법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집과 자기집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자기의 영광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감사하는 마음이 이제는 송구한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왜그런고 하면, 다윗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는 그 당시의 최고의 건축자재라고 할 수 있는 백향목으로 아름답게 궁을 지어서 살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성막에 거하셨습니다. 즉 텐틉니다. 그 텐트에는 법괘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기 위해서는 그 텐트로 나와서 제사를 지내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와서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아 갈 때는 그 텐트로 갔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있을 때에는 그런거 저런거 몰랐는데, 자기가 백향목으로 지은 궁에 드디어 평안하게 살게 되자,이것 무언가 잘못됐다 하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초라한데 자기 집은 너무나 화려하고, 하나님은 텐트에 거하시고 자기는 백향목집에 거한다. 이것이 어떻게 될 말이냐
그러므로 밖에서 사람들이 와서 볼 때에 무엇이라고 할까 하나님의 이름이 높다고 할까 다윗의 이름이 높다고 할까 다윗의 이름이 분명히 높다고 찬사를 보낼 것이요,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 사절들이 와서 보았을 때에 다윗의 영광이 더 위대하다고 할까 하나님의 영광이 더 위대하다고 할까 다윗의 영광이 더 위대하다고 말하게 될 테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구나. 하는 송구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다윗처럼 이렇게 비교하는 생각을 한번 가져 보셨어요 제가 비교하는 내용을 두가지를 드리지요! 먼저 예수님과 나 둘을 한번 비교해 보세요. 오늘 이시간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한번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좀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8장9절-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한번 비교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나 자신의 부요함을 한번 비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하늘의 모든 영광과 축복을 다 안겨 주시기 위해서 자기는 하늘의 영광을 포기 하신 분이요, 하늘의 축복도 포기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는 죄인이 되신 분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복 받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한번 비교해 보세요. 이것은 영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비굡니다. 현대와 같이 세속주의에 물든 기독교,현대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 안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발견할 수 없는 비굡니다. 목회자들이나,다른 교회의 성도들하고 대화를 해보면, 교회가 많이 세속화 되었구나 하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을 볼 줄을 몰라요! 멀지 않은 저의 어릴 때만해도, 저의 부모님들과 저의 선배들만 해도, 현실적으로는 가난하고 어떤 경우에는 끼니를 이어 갈수 없는 고된 삶을 살면서도 예수님이 자신이 가난해 지심으로 자기에게 안겨 주신 보이지 않는 하늘의 축복, 영광, 특권,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마룻바닥에 엎드려 눈이 붓도록 하나님 앞에 감격스러운 눈물을 흘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런 일들이 저의 어린 눈에도 비일비재하게 발견이 되었지만, 오늘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은 보이지 않는 그런 축복에 감격하는 사례가 별로 크지를 않아요 여러분 어느 편에 속합니까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이 참 소망 이라고 한다면 여러분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믿음의 눈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셔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예수님이 나의 종이 되셔서 대신 내가 얼마나 큰 축복과 부요함을 누리게 되었는가를 보실 줄을 압니까 땅에서 쥐고 누리고 있는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 허무한게 인생입니다. 그 천하의 김일성이도 죽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흔들고, 남한을 몇번이나 삼킬듯이 떠들던 김일성이도 말없이 갔습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인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데도 유언하나 없이 가버렸습니다. 세상에서 부귀권세로 말하면 김일성이 만큼 누려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성경의 다윗도 김일성이에 비교할 수가 없을 거에요. 그의 건강을 위해서 몇천명의 의사가 매달리고,기쁨조라는 젊은 여성들이 수백수천이 그를 위해서 희생당하고 10만의 병력이 그를 호위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는 갔습니다. 범부와 조금도 다름없이 갔습니다. 저는 김일성이의 죽음이라는 뉴스를 처음으로 들으면서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는 조그만 긍휼도 베풀지를 않으시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평생에서 지금 가장 생각이 바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남북정상 회담을 위해서 진심으로 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더 이상은 폐쇄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개방을 하면서 한국,미국,일본 등과도 국교를 맺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의 방향을 바로 본 것이지요.
그런데 그 시점에서 하나님이 불러 가셨으니, 그의 생은 그야말로 조금의 자비도 베풀어보지 못한 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인생의 엄숙함과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김일성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면서 몇번이고 되새겨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여러분, 오늘이라도 내 생명이 떠나면 모든 것은 휴지조각입니다. 그러나 기뻐하십시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아니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충성된 그의 백성들에게는 그때부터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축복이 내 앞에 전개됩니다.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나에게 허락하신 엄청난 부요를 내가 보게 됩니다. 하늘의 왕궁에 거하게 되는 나의 신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꼭 내가 생명이 떠난 다음에 발견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말씀을 들고 신앙생활 할 때부터 그것을 볼 줄 알고, 비교할 줄 아는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오, 주여, 주님은 가난하게 되었는데, 내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니, 주님께서는 여우도 머리 둘 곳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그 집이 있는데, 머리 둘 곳이 없이 가난하게 사셨는데 나는 오늘날 이렇게 평안하게 살게 되었으니 주여, 감사합니다.
이런 감정이 마음 속에서 우러 나올때 비로소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산돌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으로 찾아 오심으로 내가 영적으로 얼마나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날마다 날마다 생각하고 감격하는 신자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 없어도 좋아요.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산돌교회의 성도된 여러분만은 세속적인 신앙생활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무슨 축복만 있으면 그것으로 감사할 줄 알지, 영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는 전혀 눈이 멀어 버린, 영적으로 비교를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비교하실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입니다. 여러분 정도의 연세에 다다르면 여러분의 사업,여러분의 직장생활,또는 여러분의 여러가지 생업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오게 됩니다. 이미 안정권에 들은 사람들이 많다고 볼수가 있지요.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더 축복하시고 번창케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나의 계획들이 성취가 아직 안 된 것도 많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 기대 이상으로 내 능력 이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과 한번 비교해 보세요! 여러분 하나님의 일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산돌교회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청주 일대에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라고 세워 주셨지만, 아직도 우리 교회 밖에는 70% 이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 지역에 산돌 교회를 세우신 것은 이 지역에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람들에게 의롭게 사는 것이 무엇이며, 경건하고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 줌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며, 그들이 자기 생활을 반성하며 돌아오게 하는데 있는데, 오늘 우리를 통해서 자기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며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몇사람이나 생겼습니까
하나님이 이 곳에 산돌교회를 세워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자, 정말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마음을 열고 조금이라도 도와 줄수 있는 사랑의 봉사를 하라고 세워 주었는데, 우리 주변에는 사랑에 갈급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어떤 면에는 병들고 굶주리고 세상에서 길바닥에서 헤메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이 잘 되어 간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나라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그래서 교회의 숫자는 5만개요, 교인수는 전국민의 4/1이요! 하는 통계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를 한번 보세요!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간다고 생각합니까 왜 단군신전을 건축하자고 하는 망령된 소리들이 왜 나옵니까 왜 이와같은 악령의 역사가 머리를 들기 시작합니까 요즈음에는 모이기만 하면, 무슨 행사가 있기만 하면 고사를 지내는 것이 당연시 되어져 버렸습니다. 젊은이들이 심심풀이로 사주를 보고, 점을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점이 인기가 있습니다. 왜 이런 악한 일들이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교회의 십자가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는 한국에서 고개를 들고 있습니까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안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왜 이 땅에 데모들이 그치지 않습니까 열심히 일해야 할 직장에서,공부해야 할 학교에서, 평화스럽게 다녀야 할 거리에서, 심지어는 교회와 성당에서 아귀다툼을 하며 머리가 터지고,심지어는 젊은 생명이 죽는 일까지 생깁니까 남의 나라가 통치하던 일제 밑에서도 하지 않던, 6.25의 공산치하에서도 안하던 일들을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 우리들의 형제자매들이 함께 사는 이 나라 이 강산을 흔들어 놓습니까 누구의 책임이에요.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자기의 이기심 만을 만족하려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 밖을 한번 보세요.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일본의 사또시모리아 목사님이 한 말을 인용하지요. 일본에는 기독교 신자가 전 국민의 1%도 안됩니다.
그런데 1982년 3월23일 NHK T.V에서 여론 조사를 해 본 결과-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만약에 종교를 택한다면 무엇을 택하시겠소 그러자 국민의 36%가 대답하기를 기독교를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본국민 4320만명이 기독교를 믿겠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 나라 국민수와 같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원하면서 왜 그들이 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오지 않고 있습니까 일꾼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정적인 써포트가 없는 것입니다. 헌신적으로 교회가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을 보세요. 가까운 가장 이웃나라를 보세요!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습니까 아니요! 4320만명의 영혼을 구원해야 할 일이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타일랜드의 방콕에 있는 기독교인 교수부부가 한국에 온 적이 있습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 가서 목사님을 만나고 그 교회를 소개하는 스라이드를 보면서 그 점쟎은 교수부부가 목사님과 교인들이 민망할 정도로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을 닦느라고 그림들을 제대로 보지를 못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왜 우리 타일랜드에는 이런 축복을 주시지 않는지! 우리 나라에는 언제 이런 예배당을 지어 불 수 있을지!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이 잘 되고 있습니까 타일랜드 뿐이 아닙니다. 중국! 그리고 이제는 독재자가 죽고, 그야말로 목자없는 양같이 온 세계의 미아처럼 되어 버린 우리의 동족 저 북한은 그야말로 사방이 다 벽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싶어도 어떻게 하실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이 캄캄 절벽입니다. 버어마에서 온 어떤 목사님은 한국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렇게 간청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버어마 하면 첫자가 B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생활 할 때에 B로 시작하는 글자가 여럿 있는데, 아침 식사를 할 때, 아침은 영어로 블랙훠스트-첫자가 B니다. 아침식사를 할 때마다 우리나라를 생각하면서 기도해 주십시요.
잠자러 갈 때 침대-배드의 첮자도 B니다. 잠자기 전해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요! 하나님의 일이 잘 되고 있습니까 나의 집은 필요 이상의 평수를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의 집은 좁아서 바둥거리고있어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요! 우리 집은 넓고,우리의 집은 화려한데 하나님의 집은 아직도 성막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 송구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은 진정 감사가 없는 삶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흥하여야 하겟고, 그는 망하여야 합니까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말한 것처럼 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런 태도가 되었을 때에 바로 되는 것인데, 엉뚱하게도 나는 흥하는데 하나님은 쇠하고 있어! 여러분 이럴 때에 우리의 마음이 평안 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이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성전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다윗은 이런 의미에서 짓겠다고 했습니다. 역대상 22장 5절을 보면 성전을 지으므로 만국에 하나님의 명성과 영광을 얻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다윗이 왜 성전 지을려고 생각했느냐 온 천하 모든 사람들이 그 성전을 봄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그의 이름을 찬양! 하나님께 경배! 드리기 위해서 이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성전 짓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우리도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나만 잘 살고 나만 평안하면 됩니까 아니요, 하나님이 영광 받아야지요.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내가 무엇을 할 것이냐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희생이었습니다. 왜 그런고하면 성전을 짓는데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 놓았습니다. 역대상 22:14절에 내가 환란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10만 달란트와 은 100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다 그랬습니다. 전부 다 바쳤어요! 환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쳤어요. 이게 다윗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감삽니다. 여러분의 감사는 어떤 감삽니까 평안하게 궁에 거하게 되었을 때에 참 모든 주신 것 감사하다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과 자기를 비교하다 송구한 생각을 갖게 되었고, 송구한 생각을 갖게 되자 그 다음에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해야 되겠다. 그것이 무엇이지요. 전을 짓겠다. 전을 짓는다는 것이 무엇이지요. 자기 것을 전부 드린다는 말입니다. 이게 감삽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감사의 마음이 있어요! 자, 보세요. 다윗의 마음에 이런 마음이 생기고,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되자, 하나님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한번 보세요. 9절 한번 보세요.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겠다. 하나님께 감사하겠다는 마음 가지고 그 감사를 자기 희생으로 표현할려고 할 때에 그 사실이 아직도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이 그 마음의 생각을 보시고, 너무 기뻐서 내가 네 이름을 존귀케 해 주시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존귀케 하는 사람을 누가 욕되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높이는 자를 누가 끌어 내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존귀케 한다! 우리도 그런 축복 기대해야 합니다. 왜 그런 축복을 못 받을까요 다윗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못 가졌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또 하나님이 무엇을 축복해 주시기로 했나요 11절에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참 좋으신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내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내 환경에 평안을 주시면 누가 그 평안을 빼앗아 가겠어요 하나님이 나를 평안케 하시면 누가 흔들자가 있습니까 왜 우리에게 평안이 없나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나에게 충만하게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평안이 오지 아니할까 다윗을 놓고 가만히 생각하면,내 마음 가짐이 이런 축복을 받을 만큼 되어 있지를 않아요.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 중심이지, 하나님 중심으로 다윗처럼 어린애처럼 하나님 만을 위하는 이런 마음이 없으니 평안이 없지요. 또 어떤 축복을 주셨습니까 16절 끝에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그 다음부터 쭉 내려 가면서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세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만세토록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다윗의 집을 세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여러분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아멘! 아무리 우리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면서 東奔西走하고 벌고 일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집을 세워주고,지켜주고, 하나님이 그 집을 형통케 하지 아니하면 하루 아침에 폭싹 무너질수 있는 것이 인간세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집을 붙들고 세워 준다면 누가 무너트릴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집에 복을 주시고 형통케 하신다면 누가 그 집을 향해서 저주할 자가 있습니까 다윗이 왜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까 여러분, 성경을 놓고 보세요. 다윗 만큼 존귀케 된 자가 없습니다. 다윗 만큼 축복을 받은 자가 없습니다. 다윗만큼 부요케 된자가 없습니다. 다윗의 집안만큼 복 받은 집안이 없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우연한 것인가요.
그러므로 다윗을 놓고 볼 때에 진정한 감사는 가장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감사를 주님께 드리세요. 그 감사는 나의 희생을 동반하는 감삽니다. 내 것은 무엇이든지 주께 드리겠나이다. 이러한 감사를 통해 주님께 드리는 거기에는 그야말로 하나님이 그 대신 주시는 축복이 대단합니다. 여러분, 다윗을 가만히 보면요, 마태복음 6:33절의 원리대로 했다고 봅니다.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더하시리라. 무슨 뜻입니까 얘들아, 너희는 나를 먼저 걱정해 달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걱정해 주리라. 이런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가 하나님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우리 일을 생각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다윗의 경우는 무엇이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관심을 갖고 궁리를 하고 있고,그 대신 하나님은 다윗의 집을 짓겠다고 관심을 갖고 분주하십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러면 누가 더 유익입니까 다윗이 유익이지요.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걱정하는 것이 보잘 것 없는 내가 하나님 걱정해 주는 것 하고는 상대가 안 되지요. 그러니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어요. 우리가 먼저 다윗처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능력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해서 무엇을 드릴까 하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 대신 내가 어떻게 하면 네 이름을 좀 존귀케 해 줄까 내가 어떻게 하면 네 집을 든든히 세워 줄까 내가 어떻게 하면 너희에게 평안을 줄까 하나님이 우리집 걱정합니다. 여러분, 다윗과 같이 되세요! 이런 원칙에서 볼 때에 진정한 감사는 가장 확실한 투잡니다. 하나님을 우리 집으로 끌어 들이는 거에요. 여러분, 앞으로 남은 한해동안, 아니 남은 우리의 삶동안 감사를 하되 다윗처럼 합시다. 처음에는 주여, 내 손에 있는 것 감사합니다.하다가 나중에는 비교를 해보면서 송구한 마음이 생기고, 송구한 마음이 생기자 말자, 아이구, 나 하나님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되겠어! 하고는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려고 할 때에, 드디어 하나님이 우리 집 편이 됩니다. 내가 네 집을 세워 주리라! 내가 너를 평안케 하리라! 내가 네 이름을 존귀케 하리라!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을 받으면서 이 험한 세상을 승리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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