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에서 (삼하7:1-14,엡2:11-22,막6:30-34,53-56)
본문
오늘 전해드리는 말씀에서 빈들 이란,하나님이 없는 세상을 말합니다.주 예수를 인정치 않고,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의 세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빈들에는 먹을 것도 없거니와 소망이나 기쁨조차 없는 황량한 들판입니다. 날은 저물어서 어둠이 깃들어 있고,괴괴한 짐승들의 울음소리 가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흑암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자신들의 영혼 세계가 이러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한 채,세상 즐거움에 탐익하고 있습니다.언뜻 보 면,먹을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은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그래서 진지하 게 인생 문제를 놓고 고민하기를 꺼려합니다.어느 순간 갑자기 생명 줄이 끊어지리라는 것을 조금은 예상하고 있으면서도,당장 지금은 즐겁게 지내 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면 세계에 대한 관심을 외면한 채,세상 일로 바쁘고 즐기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자연히 영혼 세계는 날로 황폐되어 가게 마 련입니다.겉보기에는 번지르한 모습이지만,자세히 살펴 보면 아무 것도 없는 빈껍데기 인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목자없는 양처럼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셨 다고 했습니다.그래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먹을 것을 공급하셨던 것입니다.그야말로,영과 육의 양식을 다 함께 먹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순 서는 분명히 영의 양식이 먼저였습니다.사람이 먼저 구해야 할 것은,육의 양식이 아니라 영의 양식임을 본문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 게 먹고 살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이냐 하는 생 의 목적부터 분명히 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목적 의식 없이 사는 인생을 성경에서는 버려진 인생 이라 합니다.그리스도를 떠나 아무 소망 없이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설교 제목을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했고,오늘은 빈들에 서 라고 했습니다.서로 대조되는 제목입니다.사실 상 오늘의 설교 제목은 더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해야만 옳습니다.
왜냐하면,다윗이 왕위에 오른 이후 가장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이미 삶의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흔들림 없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여러 시련과 환난이 있었지만,목표가 분명한 그 에게는 그러한 고통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해드리는 것이 피조물된 인간이 가져야 할 인생의 목표임을 알고 있었 던 고로,그는 주 안에서 살려고 애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복된 약속의 말씀을 들으며 살았습니다.오늘의 말씀인 사 무엘하 7장을 보면,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다윗 편이 되어서 그가 무엇을 하든지 잘되게 도 와 주었다고 했습니다(7:9).
2그리고 그 이름을 빛나게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7:9). 3뿐만 아니라,악한 사람들로부터 억압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7:10).
4원수들로부터 보호하여 평안히 살게 해 주고(7:11) 5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지켜 주겠다고 했습니다(7:14). 주 안에서 인생의 목표를 굳건히 했을 때에,실질적으로 복받은 예를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겠습니다.기독교 사상 7월호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는 초기의 일입니다.황해도 장연에 사는 '안성은' 이라고 하는 여자분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이분은 전직 대감 부인이 었습니다.마침,이 분이 사는 동네에 미국 선교사가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그 선 교사와 왕래를 하던 중에,이 부인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째 서 저 선교사들은 생활과 풍습이 다른 이곳까지 와서 저토록 고생을 할 까 저들이 믿고 전하는 내용이 도대체 얼마나 귀한 것이기에, 저렇게 힘써 전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까 이 부인은 그러한 점에 관심을 갖고 알아보던 중에, 드디어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남편인 전직 대감 에게 핍박을 받기를 머리까지 뽑히는 고통을 겪었지만,그는 목표를 확실히 했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아들 둘을 두었는데,큰 아들은 우리 나라 최초 교회라고 하는 솔래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고,
둘째 아들은 의사가 되었습니다.네 딸 중 하나는 의사와 결혼했고,
둘째 딸은 서병호 장 로와 결혼했으며,
셋째 딸은 그 유명한 김규식 박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막 내 딸은 정신여고 교장을 지냈습니다.손녀 중에는 김마리아라고 하는 독 립운동가도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하지만,이 땅 위에는 그리스도와 상관 없이 사는 버려진 인생들이 참 많습니다.
1.그들은 주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그들 스스로가 주를 부인하고 떠났 기 때문에 버림받은 것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리 크고 넓을지라도 그들을 품에 안을 재간이 없습니다.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라면 강제라도 끌어다가 우리 안에 가둘 수 있겠지만,어쨌든 그들도 자유 의지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6장 30-56절 사이에는,두 종류의 버려진 인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아직 주님을 잘 몰라서 목표 없이 방황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예수께서 보실 때에,그들은 목자 없는 양 과 같다고 했습니다.양 스스로는 먼 곳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양은 근시(近視)라서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 부인 것처럼 생각합니다.그래서 맹수가 나타나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눈 앞에 보이는 먹을 것만 탐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하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적들이 나타났을 때에 막아내고,어느 곳으로 가야 먹을 것이 많으며 쉬기에 안전 할지 살펴서 이끌어 줄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목자가 없으면,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방황을 하게 될 것입니다.다 행히 먹을 것이 많고 물이 있는 곳에 혼자서 가게 되는 양도 있겠으나, 대개는 야수에게 잡혀 먹히거나 골짜기에서 굴러넘어지고 맙니다. 예수님 눈에 띤 수 많은 무리들은 뭘 확실히 알고 주님을 찾아온 것이 아 니었습니다.남들이 몰려가니까,덩달아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그들 중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인생일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겠 지만,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따라 온 이들입니다.
2또 다른 사람들은,바로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예수님에게서 아직도 멀리 있는 사람들입니다.몸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나,생각은 세상 식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예수님께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 라고 제자들을 향하여 명령했을 때,제자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계산하고 있었습니다.여기서 굳이 인간적인 계산 방법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겠습니다.여러분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다만 한 가지,결과가 그들의 생각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못하고 빈들에서 사는 사람들은 1그 인생이 쓸쓸하고 허무합니다.겉으로는 아닌 척하려고 요란스럽게 치 장을 하며 허풍을 떨지만,갈 곳 없는 나그네 인생의 처량함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거는 목표란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이리 갔다 저리 갔다가 하면서 유리방황(遊離彷徨) 하는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2세상에 마음을 빼앗겨,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마음이 정해져 있고 안정되어야,평안을 누릴 수가 있고,평안을 누려야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있게 됩니다.그렇지 않으면,술취한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매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그럴 경우,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공부하는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마음을 뺏기게 되면,그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혹 우리 성도들 중에,목표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 틀림없지 만,그 마음이 세상에 치우쳐 살고 있는 분은 안 계신지요
그렇다면 속히 마음을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미적거리고 있을 동안에 주 님 오시면,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요체는,좀더 적극적으로 주께 매달릴 때에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魚) 의 사건을 우리는 흔히 기적이라고 합니다만,이 사건도 잘 살펴보면 우연히 일 어난 기적이 아닙니다.제자들이 빵값을 계산하고 있을 때에,한 아이의 적 극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기적은 일어났던 것입니다.어른들은 그 아 이의 행동을 비웃었을지 모르나,하나님은 그 아이의 순수한 믿음을 통하 여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2. 주를 열심히 찾고 믿는 자를 도와 주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인간에게 자율권이 주어지고 있지만,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섭리되고 있습니다.그래서 그 섭리에 끝까지 반항하는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거니와, 그 섭리에 순응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자가 있는가하면,그 섭리하심의 참 뜻을 깨닫고 열심히,그리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복이 주어지겠지만, 오늘의 말씀을 보니 좀더 열심히 주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려는 자들 에게 엄청난 하나님의 복이 베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 뜻을 찾는 자들에게,주님은 분명히 함께 하 셔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엘리엇 이라고 하는 사람은 말 하기를, 우리가 앉아서 기적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일어나 일하라. 그러 면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리라.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와 노 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 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다윗이 누린 복은 기적이 아닙니다.믿음의 눈으로 보면,주 님의 은혜 안에서 당연히 이루어질 일이었던 것입니다.다윗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그와 같이 좀더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찾아서 열심히 믿고 행 하면,우리에게서 그러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그리스도 안에서 좀더 적극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생활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활을 구분지어 말하고 있습니다. 1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 소망도 없이 산다고 했습니다(2:12).무엇을 기대하고 성취하려는 노력을 해 보지만, 뜻 대로 되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이루었다 하는 순간,다시 허물 계획을 세 우는 것이 인간의 일입니다.그래서 바울은 하나님도 모르고 희망도 없는 사람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특히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무척 서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을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짧은 인생 기간 동안에 많은 것을 이루어보려는 욕심 때문에,자신의 힘으로 다 감당치 못할 일들을 신속히 끝장내려하는 무리를 하고 있습니다.신속히 서두를수록 그 인생은 신속히 끝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더군다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전혀 남남이던 사람들이 주 안에서 한 형제가 되는 기 이한 일이 벌어집니다.그래서 친형제 간에도 맛보지 못했던 일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 가까이 있으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훼방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 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큰 성전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2:21). 각기 제 나름 대로의 성전을 이루려 하면, 주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누가 인도자이 고 누가 봉사자인지 알 수 없는 교회는 주의 큰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지도자의 인도를 따라 각자 자기 분야에서 성전의 한 부분을 이루려 할 때에,한 개인이 이룰 수 없는 일들이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나타날 것입니다. 성전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잘 연결되려 면,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하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생각을 가지고 상대를 제압하려는 권위 의식이 교회 안에 있으면,결코 주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하늘 나라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주 안에서 하나님의 돌보심 을 받음으로써 하루 하루 풍성한 삶을 이루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코 빈들에서 방황하는 심령이 성도 여러분 중에는 한 분도 없으시기를 간절 히 바랍니다.
그러나 순 서는 분명히 영의 양식이 먼저였습니다.사람이 먼저 구해야 할 것은,육의 양식이 아니라 영의 양식임을 본문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 게 먹고 살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이냐 하는 생 의 목적부터 분명히 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목적 의식 없이 사는 인생을 성경에서는 버려진 인생 이라 합니다.그리스도를 떠나 아무 소망 없이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설교 제목을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했고,오늘은 빈들에 서 라고 했습니다.서로 대조되는 제목입니다.사실 상 오늘의 설교 제목은 더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해야만 옳습니다.
왜냐하면,다윗이 왕위에 오른 이후 가장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이미 삶의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흔들림 없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여러 시련과 환난이 있었지만,목표가 분명한 그 에게는 그러한 고통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해드리는 것이 피조물된 인간이 가져야 할 인생의 목표임을 알고 있었 던 고로,그는 주 안에서 살려고 애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복된 약속의 말씀을 들으며 살았습니다.오늘의 말씀인 사 무엘하 7장을 보면,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다윗 편이 되어서 그가 무엇을 하든지 잘되게 도 와 주었다고 했습니다(7:9).
2그리고 그 이름을 빛나게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7:9). 3뿐만 아니라,악한 사람들로부터 억압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7:10).
4원수들로부터 보호하여 평안히 살게 해 주고(7:11) 5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지켜 주겠다고 했습니다(7:14). 주 안에서 인생의 목표를 굳건히 했을 때에,실질적으로 복받은 예를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겠습니다.기독교 사상 7월호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는 초기의 일입니다.황해도 장연에 사는 '안성은' 이라고 하는 여자분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이분은 전직 대감 부인이 었습니다.마침,이 분이 사는 동네에 미국 선교사가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그 선 교사와 왕래를 하던 중에,이 부인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째 서 저 선교사들은 생활과 풍습이 다른 이곳까지 와서 저토록 고생을 할 까 저들이 믿고 전하는 내용이 도대체 얼마나 귀한 것이기에, 저렇게 힘써 전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까 이 부인은 그러한 점에 관심을 갖고 알아보던 중에, 드디어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남편인 전직 대감 에게 핍박을 받기를 머리까지 뽑히는 고통을 겪었지만,그는 목표를 확실히 했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아들 둘을 두었는데,큰 아들은 우리 나라 최초 교회라고 하는 솔래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고,
둘째 아들은 의사가 되었습니다.네 딸 중 하나는 의사와 결혼했고,
둘째 딸은 서병호 장 로와 결혼했으며,
셋째 딸은 그 유명한 김규식 박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막 내 딸은 정신여고 교장을 지냈습니다.손녀 중에는 김마리아라고 하는 독 립운동가도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하지만,이 땅 위에는 그리스도와 상관 없이 사는 버려진 인생들이 참 많습니다.
1.그들은 주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그들 스스로가 주를 부인하고 떠났 기 때문에 버림받은 것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리 크고 넓을지라도 그들을 품에 안을 재간이 없습니다.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라면 강제라도 끌어다가 우리 안에 가둘 수 있겠지만,어쨌든 그들도 자유 의지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6장 30-56절 사이에는,두 종류의 버려진 인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아직 주님을 잘 몰라서 목표 없이 방황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예수께서 보실 때에,그들은 목자 없는 양 과 같다고 했습니다.양 스스로는 먼 곳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양은 근시(近視)라서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 부인 것처럼 생각합니다.그래서 맹수가 나타나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눈 앞에 보이는 먹을 것만 탐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하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적들이 나타났을 때에 막아내고,어느 곳으로 가야 먹을 것이 많으며 쉬기에 안전 할지 살펴서 이끌어 줄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목자가 없으면,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방황을 하게 될 것입니다.다 행히 먹을 것이 많고 물이 있는 곳에 혼자서 가게 되는 양도 있겠으나, 대개는 야수에게 잡혀 먹히거나 골짜기에서 굴러넘어지고 맙니다. 예수님 눈에 띤 수 많은 무리들은 뭘 확실히 알고 주님을 찾아온 것이 아 니었습니다.남들이 몰려가니까,덩달아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그들 중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인생일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겠 지만,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따라 온 이들입니다.
2또 다른 사람들은,바로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예수님에게서 아직도 멀리 있는 사람들입니다.몸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나,생각은 세상 식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예수님께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 라고 제자들을 향하여 명령했을 때,제자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계산하고 있었습니다.여기서 굳이 인간적인 계산 방법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겠습니다.여러분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다만 한 가지,결과가 그들의 생각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못하고 빈들에서 사는 사람들은 1그 인생이 쓸쓸하고 허무합니다.겉으로는 아닌 척하려고 요란스럽게 치 장을 하며 허풍을 떨지만,갈 곳 없는 나그네 인생의 처량함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거는 목표란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이리 갔다 저리 갔다가 하면서 유리방황(遊離彷徨) 하는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2세상에 마음을 빼앗겨,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마음이 정해져 있고 안정되어야,평안을 누릴 수가 있고,평안을 누려야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있게 됩니다.그렇지 않으면,술취한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매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그럴 경우,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공부하는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마음을 뺏기게 되면,그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혹 우리 성도들 중에,목표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 틀림없지 만,그 마음이 세상에 치우쳐 살고 있는 분은 안 계신지요
그렇다면 속히 마음을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미적거리고 있을 동안에 주 님 오시면,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요체는,좀더 적극적으로 주께 매달릴 때에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魚) 의 사건을 우리는 흔히 기적이라고 합니다만,이 사건도 잘 살펴보면 우연히 일 어난 기적이 아닙니다.제자들이 빵값을 계산하고 있을 때에,한 아이의 적 극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기적은 일어났던 것입니다.어른들은 그 아 이의 행동을 비웃었을지 모르나,하나님은 그 아이의 순수한 믿음을 통하 여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2. 주를 열심히 찾고 믿는 자를 도와 주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인간에게 자율권이 주어지고 있지만,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섭리되고 있습니다.그래서 그 섭리에 끝까지 반항하는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거니와, 그 섭리에 순응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자가 있는가하면,그 섭리하심의 참 뜻을 깨닫고 열심히,그리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복이 주어지겠지만, 오늘의 말씀을 보니 좀더 열심히 주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려는 자들 에게 엄청난 하나님의 복이 베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 뜻을 찾는 자들에게,주님은 분명히 함께 하 셔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엘리엇 이라고 하는 사람은 말 하기를, 우리가 앉아서 기적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일어나 일하라. 그러 면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리라.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와 노 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 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다윗이 누린 복은 기적이 아닙니다.믿음의 눈으로 보면,주 님의 은혜 안에서 당연히 이루어질 일이었던 것입니다.다윗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그와 같이 좀더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찾아서 열심히 믿고 행 하면,우리에게서 그러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그리스도 안에서 좀더 적극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생활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활을 구분지어 말하고 있습니다. 1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 소망도 없이 산다고 했습니다(2:12).무엇을 기대하고 성취하려는 노력을 해 보지만, 뜻 대로 되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이루었다 하는 순간,다시 허물 계획을 세 우는 것이 인간의 일입니다.그래서 바울은 하나님도 모르고 희망도 없는 사람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특히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무척 서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을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짧은 인생 기간 동안에 많은 것을 이루어보려는 욕심 때문에,자신의 힘으로 다 감당치 못할 일들을 신속히 끝장내려하는 무리를 하고 있습니다.신속히 서두를수록 그 인생은 신속히 끝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더군다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전혀 남남이던 사람들이 주 안에서 한 형제가 되는 기 이한 일이 벌어집니다.그래서 친형제 간에도 맛보지 못했던 일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 가까이 있으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훼방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 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큰 성전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2:21). 각기 제 나름 대로의 성전을 이루려 하면, 주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누가 인도자이 고 누가 봉사자인지 알 수 없는 교회는 주의 큰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지도자의 인도를 따라 각자 자기 분야에서 성전의 한 부분을 이루려 할 때에,한 개인이 이룰 수 없는 일들이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나타날 것입니다. 성전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잘 연결되려 면,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하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생각을 가지고 상대를 제압하려는 권위 의식이 교회 안에 있으면,결코 주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하늘 나라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주 안에서 하나님의 돌보심 을 받음으로써 하루 하루 풍성한 삶을 이루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코 빈들에서 방황하는 심령이 성도 여러분 중에는 한 분도 없으시기를 간절 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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