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뚝발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길 (삼하9:1-13)
본문
I.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왕의 말기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읍니다. 이 때 사울 왕과 그의 3 아들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가 전쟁 터에 나가서 싸우다가 길보아산 전투에서 다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가가 몰락을 하고 맙니다. 이 소식이 사울의 집안에 전해지자, 사울의 집안이 다 도망을 갔습니다. 이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5 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므비 보셋이였습니다. 이 므비보셋을 유모가 급히 안고 도망을 가다가 그만 떨 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므비보셋은 이때 떨어질 때 양 다리를 다쳐서 두 발을 다 저는 절뚝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사울왕과 그의 3 아들이 다 죽고나자 사울의 집안은 점점 기울어 졌고, 대신 이스라엘 2대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 왕의 집안은 점점 더 강성하여 갔습니다. 나중에는 사울의 집안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대신 다윗이 이 스라엘 제 2 대 왕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온전한 왕이 된 후에 다윗 왕은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던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생각이 났습니다. 다윗이 궁궐에서 사울 왕을 섬길 때, 사울 왕의 아들이였던 요나단은 다윗을 좋아했고, 그래서 둘은 좋은 친구지간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할 때, 다윗을 도와서 도망을 가게했습니다. 만약 그 때 요나단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윗은 사 울 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왕자인 자기 대신 다윗보고 왕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이 좋은 친구 요나단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비록 사울 왕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의 아들 요나단의 은혜 때문에, 사울의 집안에 은혜를 베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시켜서 사울 의 집에 남아 있는 자를 찾 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울의 집안은 다 죽고,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숨 어 있는 자가 하나 있는데, 그는 양발을 다 저는 절뚝발이 므비보셋이였읍니다. 다윗 왕은 그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그의 조부 사울 왕의 모든 재산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아 들들과 같이 자기 상에서 먹게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아들을 삼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이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들을 살펴 보 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절뚝발이 므비보셋은 죄인된 우리 인간을 상징합니다. 므비보셋은 정상적인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절뚝발이가 된 것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삼하4:4) (대상8:34) 말씀을 보면 므비보셋의 원래의 이름은 므립바알이였습니다. 므비보셋은 원래는 왕손이였습니다.
그런데 떨어져서 므비보셋이 되었읍니다. 므비보셋은 "부끄러운 추방자"란 뜻입니다. 한번 떨어진 것이 므비보셋의 운명을 이렇게 바꿔 놓았습니다. 왕손 이 부끄러운 추방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이 "떨어진 것"은 (창
3)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을 뜻합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이 떨어졌다는 말이나 (fell) 인간이 타락했다는 말이나(fall)다 같은 말을 사용했습니다. 한번 떨어진 것이 므비보셋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이 인간의 타락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상적인 인간을 양 발을 저는 절뚝발이 불구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우리는 양발 절뚝발이와 같습니다. 양발 절뚝발이 된 인간은
1)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듯이, 탁락하여 죄 인이 된 인간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바르게살려 고 해도 이미 절뚝발이가 되었기 때문에 바르게 살 수가 없습니다. 죄를 범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절뚝발이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 이 성경에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갈5:19-21) 말씀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 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우리의 육체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의 육체가 이러한 일 을 행할까요 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러한 일을 하게 될 까요 우리가 그런일을 하고 싶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천국에 들어가는 삶을 살 고 싶지만, 죄악으로 인하여 절뚝발이가 되어서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지옥에 들어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비극을 사도 바울은 (롬3:23)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 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하여 절 뚝발이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가려고 해도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7:15-25)에서 이렇게 탄식을 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 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 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 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 을 행하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죄를 범하여 영적인 불구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그 원죄의 피가 우리 속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악으로 떨어져서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인격 이 저는 불구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원죄의 피가 흐르는 우리 인간은, 왕손인 므비 보셋이 "그의 유모가 그를 떨어 뜨린 것 때문에" 양발을 저는 불구자가 되 어 불행한 인간이 된 것과 같이, 아담이 우리를 죄악의 수렁으로 떨어뜨렸 기 때문에 영적인 절뚝발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 을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 불행한 자가 되었습니다. 콜로라드 주립대학(Colorado State University)의 교수이자 작가인 제럴 드 캘러한(Gerald Callahan)이 쓴 책 중에 "오디세이의 강"(River Odyssey) 이 있습니다. 캘러한은 이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한탄 섞인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지나치게 먹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이면 과음과 과식으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 대학 교수까지 된 사람이 분명히 잘 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하면서도 똑 같은 일을 하게 될까 요 그것은 우린 인간은 우리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서 죄악으로 우리를 떨어뜨려서 우리 모두가 죄인인 절뚝발이가 되었기 때 문입니다. 우리는 양발이 다 절뚝발이인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상적 인 삶을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절뚝발이가 된 인간은
2) 자기의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므비보셋은 왕손입니다.
그러므로 왕이였던 그의 할아버지 사울 왕의 소유를 다 물려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의 권리이지 의 무입니다.
그런데 양발을 저는 절뚝발이가 되자 그 재산을 하나도 차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그는 절뚝발이기 때문에 그 재산이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읍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들 절뚝발이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영적인 절뚝발이가 된 우리들도 마 찬가지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이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는 그 모든 것 을 우리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 하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즐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되어 절뚝발이가 되자,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귀 사단들이 그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읍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과 기쁨과 평화와 풍부함들을 다 마귀 사단들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들이 가 난하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빼앗긴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범하여 영적인 절뚝발이가 되 자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버 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행복도 버렸습니다. 기쁨도 버렸습니다. 평화도 버렸습니다. 풍부함도 버렸습니다. 이렇게 죄를 범하여 영혼의 절뚝발이가 되면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복 을 다 빼앗기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절뚝발이가 된 인간은
3) 죽어야하고, 왕을 만나는 것이 두렵게 되었습니다. 예로 부터 권좌에 앉았다 물러나면, 그 집안을 다 죽이게 되어있습니다. 권세를 잡은 자들은 후한을 없애기 위하여 전 왕족을 다 죽입니다.
그러므로 므비보셋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을 만나기를 두려워 했습니다. 비록 그의 아버지 요나단과 다윗 왕은 절친한 친구였으며, 자기 아버지가 다위 왕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윗 왕을 만나기를 두려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므비보셋이 다윗 왕을 만날 때 굉장히 두려워 떨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므비보셋보고 두려워 떨지 말라고 했습니다. 죄를 범한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
리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3:3)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롬6:23)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한 자들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아와는 죄를 범한 후에 그 사랑스런 하나님 얼굴 뵙기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 었나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죄을 범하여 죽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뵙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여 죄악으로 영적인 절뚝발이 가 된 우리들은 죽어야만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은혜의 하나님, 사랑스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여 숨는 불행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절뚝발이가 된 인간은 4) 로드발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피하여 도망을 간 므비보셋은 숨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다윗의 부하들은 자기들의 용맹성과 충성심을 다윗 왕에게 보여 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사울 왕의 집안의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죽였읍니다. 그래서 사울 왕의 아들들 중에 하나 남은 이스보셋을 그의 군장이였던 바아나와 레갑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렇게 사울 왕가가 몰락했기 때문에 그의 집안에 남아 있는 자들은 눈 에 띄는 대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절뚝발이가 된 이 므비보셋을 로드발에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 의 집에다 숨겼습니다. "로드발"은 외딴 곳입니다. 초원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로드발이 란 말은 "초원이 없다"는 뜻입니다. 떨어져서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은 왕손이지만 오지 초원이 없는 로드 발에서 숨어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의 삶의 형편을 뜻합니다. 에덴 동산 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영혼의 절뚝발이, 즉 죄인이 된 우리 인간의 삶을 의미합니다. 죄를 범하여 영혼의 절뚝발이가 되면 우리들의 삶은 로드발에서 사는 불 행한 삶이 되고 맙니다. 푸른 초장이 아니라, 초장이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 사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에덴동산과 같은 푸른 초장 맑은시냇 물이 흐르는 곳에서 살아야 할 자가,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 에 거하게 되었습니다.(렘17:6) 이것이 바로 떨어져서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의 불행이며, 아담과 하와 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여 죄인이 된 우리 인간의 불행입니다.
2.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불렀습니다. 다윗 왕은 왕의 자리가 든든해 지자, 사울 왕의 집에 남아 있는 자를 찾 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찾으시는 우리 주님을 뜻합니다. 우리 주님 지금도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떨어져서 두발을 저는 절뚝발이 된 므비보셋과 같이 죄에 떨어져서 영적인 절뚝발이가 되어서 불행하게 된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수고하고 죄악의 무 거운 짐진자들을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 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막 간조한 곳에 거하여 목마르고, 푸른 초장이 없는 사막에 거하여 목마른 자들을 보고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럼 다윗 왕은 왜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라고 했을까요 왜 우리 예수님은 우리보고 오라고 하실까요 그를 찾아내서 그를 죽여서 후환을 없게 하기 위해서 그랬을까요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를 심판하기 위하여 우리를 데리고 오라고 하 셨을까요
1) 하나님의 은총을 주시기 위하여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v.3)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라고 하면서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 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다윗 왕은 자기도 받은 하나님의 은총을 므비보셋에게 나눠주기 위하여 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받을 자격이 없는 없는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 앞에 온 므비보셋은 다윗 왕에게 "이 종이 무엇인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하고 감격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주기 위하여 므비보셋을 불렀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주시기 위해 서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롬5:6-8)에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 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요, 경건치 못한 자요,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이요, 하나님께 불순종한 불순종의 자식인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서 우리의 모든 죄 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2)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록 친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부르셨읍니다.(v.6) 다윗 왕은 므비보셋이 나아와서 엎드려 절을 하자, "므비보셋이여"하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아주 친한 친구사이를 뜻합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first-name basis라고 합니다. 친한 사이 중에가장 친한 사이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이 므비보셋이여 하 고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은 왕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친한 친구 사이로 생각한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도, 주님과 종의 관계로 우리를 만나기 위 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친한 친구 사 이가 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요10:3)에서 예수님은 예수님과 신자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과로 비유하시면서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하셨읍니다. 이것은 양과 목자의 비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친구와 친구의 인격 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이렇게 예수님과 친한 친구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입니다. 그래서 (눅12:4)에서 예수님은 우리보고 "내가 내 친구 너희에 게 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 15:14-15)에서는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 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 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 게 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를 친한 친구로 삼아서 하나님 의 모든 비밀을 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런 친한 관계를 유 지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3) 두려움을 떨져 버리게 하기 위하여 불렀습니다.(v.7) 므비보셋은 왕손이 절뚝발이가 되는 불행한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할아버지가 실각을 했기 때문에 다윗이 권좌에 앉아 있는한 불안하게 살아야만 합니다. 언제든지 자기 자신이 발각되기만 하면 그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하루가 하루가 얼마나 가슴졸이는 삶이겠습니까 다윗 왕이 므비보셋을 부른 것은 바로 이 불안을 몰아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평안한 마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도 우리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 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범하여 죽어야 한다는 두려움 속에, 언제 죽을 지 모르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두려움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살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죽은 후에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의 얼굴을 뵐 것을 생각하고 두려움 속 에 사는 우리들의 두려움을 몰아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 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리라"(요 3:16)고 하시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의 죽음에 대한 두 려움을 몰아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 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 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고 하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서서 받아야 할 심판이 이미 지나갔음을 말씀하시면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몰 아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이와 같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4) 잃어버린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입니다.(v.7)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부른 후에 그의 할아버지 사울 왕의 소유였으나, 그의 후손이 다 죽고 므비보셋은 절뚝발이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차지한 잃어버린 재산을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불렀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보자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과 사울에게 속하였던 모든 것을 다 네게 도로 주겠다"(vs.7,9)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다 시 회복시켜 주시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회복시켜 주시 고,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자, 다시 아버지 의 아들의 명분을 회복하고, 그 아버지의 부자집을 다시 회복하게 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명분과 이 우주 의 모든 아버지 하나님의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 습니다.
3. 믿음과 순종의 결과 다윗 왕이 므비보셋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려고 하니 궁궐로 오라고 할 때 그 말이 믿어지겠습니까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사람들 은 다 그를 찾아서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려고 그런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 므비보셋보고 피하여 숨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자기 아버지 요나단과 절친한 친구였던 다윗 왕을 믿 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순종하여 왕 앞 에 나아갔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았읍니다. 다윗 왕이 약속한 대로 되었습니다. 그 약속 보다 더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진 것이하나도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재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왕의 식탁에서 먹게 되었읍니다. 왕자들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왕자들과 같이 식탁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왕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로데발 즉 초장이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에서, 푸 른초장 맑은 시냇물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 양발을 절는 절뚝 발이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식탁에 앉은 후로는 그의 그 부끄러운 절뚝발 이 발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부끄러움이 다 가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순종하면 성경에 약속 된 모든 복을 다 받게 됩니다. 바벧론에 끌려간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벧론에서 도 높은 지위에 앉게 되었습니다. 3명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3명 의 총리 중에도 가장 뛰어나서 다리오 왕은 그를 제 1 의 총리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총리들이 시기질투하여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말 도 되지 않는 한시법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은 왕이 만든 신상 외에 다른 것에게 구하는 자들 즉 기도하는 자들은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도 하나님을 믿고 매일 하루 3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발각되어 사자굴에 던져 넣어졌습니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사자들이 다니엘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다리오 왕이 사자굴 에 다려가서 다니엘을 부르자 다니엘이 대답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구조 되었고, 그 후에 모든 정적이 다 사라지고 바벧론의 유일한 2인자가 되었읍니다. 예수님 당시 게네사렛 호수에서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와서 깊은데로 가 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지난날 밤 밤새 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피고했읍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 을 듣고는 그 말씀을 의지하여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 랬더니 두배에 가득차는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순종을 하면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한 모든 복을 다 받게 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주님이 약속한 모든 복을 다 받으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생각이 났습니다. 다윗이 궁궐에서 사울 왕을 섬길 때, 사울 왕의 아들이였던 요나단은 다윗을 좋아했고, 그래서 둘은 좋은 친구지간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할 때, 다윗을 도와서 도망을 가게했습니다. 만약 그 때 요나단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윗은 사 울 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왕자인 자기 대신 다윗보고 왕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이 좋은 친구 요나단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비록 사울 왕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의 아들 요나단의 은혜 때문에, 사울의 집안에 은혜를 베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시켜서 사울 의 집에 남아 있는 자를 찾 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울의 집안은 다 죽고,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숨 어 있는 자가 하나 있는데, 그는 양발을 다 저는 절뚝발이 므비보셋이였읍니다. 다윗 왕은 그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그의 조부 사울 왕의 모든 재산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아 들들과 같이 자기 상에서 먹게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아들을 삼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이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들을 살펴 보 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절뚝발이 므비보셋은 죄인된 우리 인간을 상징합니다. 므비보셋은 정상적인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절뚝발이가 된 것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삼하4:4) (대상8:34) 말씀을 보면 므비보셋의 원래의 이름은 므립바알이였습니다. 므비보셋은 원래는 왕손이였습니다.
그런데 떨어져서 므비보셋이 되었읍니다. 므비보셋은 "부끄러운 추방자"란 뜻입니다. 한번 떨어진 것이 므비보셋의 운명을 이렇게 바꿔 놓았습니다. 왕손 이 부끄러운 추방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이 "떨어진 것"은 (창
3)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을 뜻합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이 떨어졌다는 말이나 (fell) 인간이 타락했다는 말이나(fall)다 같은 말을 사용했습니다. 한번 떨어진 것이 므비보셋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이 인간의 타락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상적인 인간을 양 발을 저는 절뚝발이 불구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우리는 양발 절뚝발이와 같습니다. 양발 절뚝발이 된 인간은
1)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듯이, 탁락하여 죄 인이 된 인간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바르게살려 고 해도 이미 절뚝발이가 되었기 때문에 바르게 살 수가 없습니다. 죄를 범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절뚝발이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 이 성경에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갈5:19-21) 말씀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 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우리의 육체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의 육체가 이러한 일 을 행할까요 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러한 일을 하게 될 까요 우리가 그런일을 하고 싶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천국에 들어가는 삶을 살 고 싶지만, 죄악으로 인하여 절뚝발이가 되어서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지옥에 들어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비극을 사도 바울은 (롬3:23)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 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하여 절 뚝발이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가려고 해도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7:15-25)에서 이렇게 탄식을 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 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 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 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 을 행하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죄를 범하여 영적인 불구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그 원죄의 피가 우리 속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악으로 떨어져서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인격 이 저는 불구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원죄의 피가 흐르는 우리 인간은, 왕손인 므비 보셋이 "그의 유모가 그를 떨어 뜨린 것 때문에" 양발을 저는 불구자가 되 어 불행한 인간이 된 것과 같이, 아담이 우리를 죄악의 수렁으로 떨어뜨렸 기 때문에 영적인 절뚝발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 을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 불행한 자가 되었습니다. 콜로라드 주립대학(Colorado State University)의 교수이자 작가인 제럴 드 캘러한(Gerald Callahan)이 쓴 책 중에 "오디세이의 강"(River Odyssey) 이 있습니다. 캘러한은 이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한탄 섞인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지나치게 먹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이면 과음과 과식으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 대학 교수까지 된 사람이 분명히 잘 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하면서도 똑 같은 일을 하게 될까 요 그것은 우린 인간은 우리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서 죄악으로 우리를 떨어뜨려서 우리 모두가 죄인인 절뚝발이가 되었기 때 문입니다. 우리는 양발이 다 절뚝발이인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상적 인 삶을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절뚝발이가 된 인간은
2) 자기의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므비보셋은 왕손입니다.
그러므로 왕이였던 그의 할아버지 사울 왕의 소유를 다 물려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의 권리이지 의 무입니다.
그런데 양발을 저는 절뚝발이가 되자 그 재산을 하나도 차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그는 절뚝발이기 때문에 그 재산이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읍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들 절뚝발이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영적인 절뚝발이가 된 우리들도 마 찬가지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이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는 그 모든 것 을 우리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 하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즐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되어 절뚝발이가 되자,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귀 사단들이 그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읍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과 기쁨과 평화와 풍부함들을 다 마귀 사단들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들이 가 난하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빼앗긴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범하여 영적인 절뚝발이가 되 자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버 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행복도 버렸습니다. 기쁨도 버렸습니다. 평화도 버렸습니다. 풍부함도 버렸습니다. 이렇게 죄를 범하여 영혼의 절뚝발이가 되면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복 을 다 빼앗기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절뚝발이가 된 인간은
3) 죽어야하고, 왕을 만나는 것이 두렵게 되었습니다. 예로 부터 권좌에 앉았다 물러나면, 그 집안을 다 죽이게 되어있습니다. 권세를 잡은 자들은 후한을 없애기 위하여 전 왕족을 다 죽입니다.
그러므로 므비보셋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을 만나기를 두려워 했습니다. 비록 그의 아버지 요나단과 다윗 왕은 절친한 친구였으며, 자기 아버지가 다위 왕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윗 왕을 만나기를 두려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므비보셋이 다윗 왕을 만날 때 굉장히 두려워 떨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므비보셋보고 두려워 떨지 말라고 했습니다. 죄를 범한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
리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3:3)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롬6:23)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한 자들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아와는 죄를 범한 후에 그 사랑스런 하나님 얼굴 뵙기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 었나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죄을 범하여 죽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뵙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여 죄악으로 영적인 절뚝발이 가 된 우리들은 죽어야만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은혜의 하나님, 사랑스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여 숨는 불행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절뚝발이가 된 인간은 4) 로드발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피하여 도망을 간 므비보셋은 숨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다윗의 부하들은 자기들의 용맹성과 충성심을 다윗 왕에게 보여 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사울 왕의 집안의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죽였읍니다. 그래서 사울 왕의 아들들 중에 하나 남은 이스보셋을 그의 군장이였던 바아나와 레갑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렇게 사울 왕가가 몰락했기 때문에 그의 집안에 남아 있는 자들은 눈 에 띄는 대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절뚝발이가 된 이 므비보셋을 로드발에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 의 집에다 숨겼습니다. "로드발"은 외딴 곳입니다. 초원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로드발이 란 말은 "초원이 없다"는 뜻입니다. 떨어져서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은 왕손이지만 오지 초원이 없는 로드 발에서 숨어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의 삶의 형편을 뜻합니다. 에덴 동산 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영혼의 절뚝발이, 즉 죄인이 된 우리 인간의 삶을 의미합니다. 죄를 범하여 영혼의 절뚝발이가 되면 우리들의 삶은 로드발에서 사는 불 행한 삶이 되고 맙니다. 푸른 초장이 아니라, 초장이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 사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에덴동산과 같은 푸른 초장 맑은시냇 물이 흐르는 곳에서 살아야 할 자가,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 에 거하게 되었습니다.(렘17:6) 이것이 바로 떨어져서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의 불행이며, 아담과 하와 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여 죄인이 된 우리 인간의 불행입니다.
2.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불렀습니다. 다윗 왕은 왕의 자리가 든든해 지자, 사울 왕의 집에 남아 있는 자를 찾 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찾으시는 우리 주님을 뜻합니다. 우리 주님 지금도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떨어져서 두발을 저는 절뚝발이 된 므비보셋과 같이 죄에 떨어져서 영적인 절뚝발이가 되어서 불행하게 된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수고하고 죄악의 무 거운 짐진자들을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 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막 간조한 곳에 거하여 목마르고, 푸른 초장이 없는 사막에 거하여 목마른 자들을 보고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럼 다윗 왕은 왜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라고 했을까요 왜 우리 예수님은 우리보고 오라고 하실까요 그를 찾아내서 그를 죽여서 후환을 없게 하기 위해서 그랬을까요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를 심판하기 위하여 우리를 데리고 오라고 하 셨을까요
1) 하나님의 은총을 주시기 위하여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v.3)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라고 하면서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 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다윗 왕은 자기도 받은 하나님의 은총을 므비보셋에게 나눠주기 위하여 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받을 자격이 없는 없는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 앞에 온 므비보셋은 다윗 왕에게 "이 종이 무엇인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하고 감격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주기 위하여 므비보셋을 불렀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주시기 위해 서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롬5:6-8)에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 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요, 경건치 못한 자요,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이요, 하나님께 불순종한 불순종의 자식인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서 우리의 모든 죄 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2)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록 친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부르셨읍니다.(v.6) 다윗 왕은 므비보셋이 나아와서 엎드려 절을 하자, "므비보셋이여"하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아주 친한 친구사이를 뜻합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first-name basis라고 합니다. 친한 사이 중에가장 친한 사이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이 므비보셋이여 하 고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은 왕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친한 친구 사이로 생각한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도, 주님과 종의 관계로 우리를 만나기 위 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친한 친구 사 이가 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요10:3)에서 예수님은 예수님과 신자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과로 비유하시면서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하셨읍니다. 이것은 양과 목자의 비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친구와 친구의 인격 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이렇게 예수님과 친한 친구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입니다. 그래서 (눅12:4)에서 예수님은 우리보고 "내가 내 친구 너희에 게 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 15:14-15)에서는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 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 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 게 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를 친한 친구로 삼아서 하나님 의 모든 비밀을 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런 친한 관계를 유 지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3) 두려움을 떨져 버리게 하기 위하여 불렀습니다.(v.7) 므비보셋은 왕손이 절뚝발이가 되는 불행한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할아버지가 실각을 했기 때문에 다윗이 권좌에 앉아 있는한 불안하게 살아야만 합니다. 언제든지 자기 자신이 발각되기만 하면 그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하루가 하루가 얼마나 가슴졸이는 삶이겠습니까 다윗 왕이 므비보셋을 부른 것은 바로 이 불안을 몰아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평안한 마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도 우리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 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범하여 죽어야 한다는 두려움 속에, 언제 죽을 지 모르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두려움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살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죽은 후에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의 얼굴을 뵐 것을 생각하고 두려움 속 에 사는 우리들의 두려움을 몰아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 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리라"(요 3:16)고 하시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의 죽음에 대한 두 려움을 몰아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 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 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고 하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서서 받아야 할 심판이 이미 지나갔음을 말씀하시면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몰 아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이와 같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4) 잃어버린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입니다.(v.7)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부른 후에 그의 할아버지 사울 왕의 소유였으나, 그의 후손이 다 죽고 므비보셋은 절뚝발이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차지한 잃어버린 재산을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불렀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므비보셋을 보자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과 사울에게 속하였던 모든 것을 다 네게 도로 주겠다"(vs.7,9)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다 시 회복시켜 주시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회복시켜 주시 고,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자, 다시 아버지 의 아들의 명분을 회복하고, 그 아버지의 부자집을 다시 회복하게 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명분과 이 우주 의 모든 아버지 하나님의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 습니다.
3. 믿음과 순종의 결과 다윗 왕이 므비보셋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려고 하니 궁궐로 오라고 할 때 그 말이 믿어지겠습니까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사람들 은 다 그를 찾아서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려고 그런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 므비보셋보고 피하여 숨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자기 아버지 요나단과 절친한 친구였던 다윗 왕을 믿 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순종하여 왕 앞 에 나아갔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았읍니다. 다윗 왕이 약속한 대로 되었습니다. 그 약속 보다 더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진 것이하나도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재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왕의 식탁에서 먹게 되었읍니다. 왕자들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왕자들과 같이 식탁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왕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로데발 즉 초장이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에서, 푸 른초장 맑은 시냇물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 양발을 절는 절뚝 발이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식탁에 앉은 후로는 그의 그 부끄러운 절뚝발 이 발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부끄러움이 다 가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순종하면 성경에 약속 된 모든 복을 다 받게 됩니다. 바벧론에 끌려간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벧론에서 도 높은 지위에 앉게 되었습니다. 3명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3명 의 총리 중에도 가장 뛰어나서 다리오 왕은 그를 제 1 의 총리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총리들이 시기질투하여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말 도 되지 않는 한시법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은 왕이 만든 신상 외에 다른 것에게 구하는 자들 즉 기도하는 자들은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도 하나님을 믿고 매일 하루 3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발각되어 사자굴에 던져 넣어졌습니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사자들이 다니엘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다리오 왕이 사자굴 에 다려가서 다니엘을 부르자 다니엘이 대답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구조 되었고, 그 후에 모든 정적이 다 사라지고 바벧론의 유일한 2인자가 되었읍니다. 예수님 당시 게네사렛 호수에서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와서 깊은데로 가 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지난날 밤 밤새 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피고했읍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 을 듣고는 그 말씀을 의지하여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 랬더니 두배에 가득차는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순종을 하면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한 모든 복을 다 받게 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주님이 약속한 모든 복을 다 받으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