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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을 입은 므비보셋 (삼하9:1-13)

본문

오늘 본문에 지극히 약하고 천하고 불행한 사람 한사람이 나라의 임금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므비보셋 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므 비보셋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사울 왕의 손자였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 거역하고 불순종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었습니다. 그가 불순종하고 거역함으로 그의 집이 망하고 말았 습니다. 사울 한사람의 불순종이 온 집으로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롬5:15, 19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 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롬 5:19)"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 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 리라" 한 사람이 범죄 함으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하고,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 아 많은 사람이 살기도 합니다. 여기서 "범죄 한 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한 사람 아담을 말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 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죄가 들어오고 결국 인생은 죽게 되지 않았습니 까! 또 "순종한 한 사람"은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라 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셔서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때에 수많 은 영혼들이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이 한 공동체를 일으키 기도 하고 헐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 가는 종들이 되시 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8장의 계속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 라엘의 영토는 확장이 되고 이스라엘이 평안해 졌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평안한 나라가 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 심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삼하8:6, 14에 기록한대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여호와께서 함 께 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대선 교회가 늘 승리하는 가정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이기는 공동체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께서 함 께 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습 니까! 요14:21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3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 라" 다시 말하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노래를 불러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런 사람은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 속에 거처를 정하시고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이 때 다윗과 같이 늘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28: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복이 네 게 임할 것이라(신28:2)고 하시면서 "대적이 한 길로 치러 들어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하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고 거역 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라."(신28:15)고 하셨으며, 모 든 대적으로부터 백전 백패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다윗 그는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은혜 베풀 사람을 찾았습니다.(삼하9:1) 그 은혜 베풀 사람은 다름 아닌 사 울의 손자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울의 집에 유일한 생존자 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다윗의 생명과 같은 친구 요나단의 아들이었습니다. 사울의 집이 망하고 다윗의 새 정권이 바뀌자 므비보셋은 자기도 죽을까 봐 산 속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숨어 지내던 터이었습니다. 드디어 므비보 셋이 왕 앞에 불려왔습니다. 다윗 앞에 선 므비보셋은 개 떨 듯이 떨고 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이 부드럽게 말합니다. "므비보셋이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아버 지 요나단으로 인하려 내가 네게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신 것이 바로 이런 점입니다. 다윗은 용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사람이 자기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6:12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함 같이 우리의 죄도 용서를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거 꾸로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도 용 서받지 못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삼하16장에 보면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그는 너무나 화급해서 신도신지 못한 채 머리를 가 리우고 맨발로 감람산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 길에서 시므이라는 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다윗을 저주하면서 돌팔매질을 합니다.(삼하16:6) 그 때 다윗의 군대장 관 수루야가 죽은 개 같은 시므이를 단 칼에 베겠다고 흥분을 합니다. 사실 죽이 려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다윗이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이 아니겠느냐 저로 저주하게 내 버려두라"고 하면서 말립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말씀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로 돌려버리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다윗입니다. 이 압살롬과의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하였습니다. 이제 시므이는 살아 남기 어렵 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안 시므이는 다윗에게 나아와 용서를 빕니다. ".패역한 일 을 기억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합니다.(삼하19:19) 그 때 다윗은 시므이를 아무 조 건 없이 용서 해주었습니다. 눅17:3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 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 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이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 서하라"고 하십니다. 돌아 와서 "내가 잘 못했습니다"라고 하거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돌아와서 "내가 잘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18장21절에서는 예수님 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 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연약하기 때문에 실수 할 수 있고,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못된 줄 알고 돌아와 잘못했다고 하면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잘못한 줄 알고 뉘우치는데도 용 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회개하는 자가 되고, 용서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에 용서함과 관용함과 온유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엡 4:32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2) 다윗은 약속과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과 므비보셋과의 관계는 원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므비보셋은 임금의 은총 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집에 모든 재산을 그에게 돌려주고, 그렇게 하고도 므비보셋을 왕과 함께 궁궐에서 왕 자처럼 함께 먹고 마시게 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은혜입니다. 그 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그에겐 없었습니다. 오히려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물론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므비보셋의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하고 그렇게 했 다는 말씀이 있습니다.(삼하9:7) 삼상18:1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 하니라" 삼상18:3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삼상20:17에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 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다윗은 자기가 환난 받을 때 요나단의 희생적인 사랑과 그와 약속 한 것이 생각 나서 사울의 집에 은총을 베풀고자 했다. 이제 그 약속을 생각하면서 요나단과 맺 은 신의를 굳게 지킵니다. 비록 므비보셋 이 절름발이며 원수의 아들이지만 그런 감정, 기분, 조건을 초월해서 약속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를 항상 왕의 상에서 함께 먹게 합니다. 끝까지 신의와 언약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 습니다.
3) 다윗은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므비보셋은 소망 없는 죄인인 우리를 보여 줍니다. 사울의 집의 사람인 므비보셋도 분명히 죽어야 마땅했습니다. 이것을 안 므비보셋은 로드발 암 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숨어 지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바라는 사람에 의해 서 다윗 앞에 끌려 나온 것입니다. 다윗과 원수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는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살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림 받을 무슨 근거가 우리에게 있 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롬5:10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 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 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원수 되었던 우리를 살렸다고 했습니다. 므비보셋과 다윗은 어떻게 원수가 되었습니까! 할아버지, 사 울의 죄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죄 때문이었습니까! 우리 조상 아담 할아버지의 죄로 말미암아 이었 습니다. 아담 한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든 것입니다.(롬5:12) 4) 구원받은 자의 축복 이렇게 해서 므비보셋은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를 보여 줍니다. 그런 므비보셋을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합니다. 그리고 영접합니다. 삼하9:7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말합니다.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풀리 라." 므비보셋이 은총을 입은 것은 그 자신 때문이 아님이 들어 났습니다. "그 아 비 요나단을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 얻은 것은 우리의 무슨 공로나 행한 선을 인하여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흘리신 보혈로 인하여 구원을 얻 은 것입니다. 찬송가 545장 3절을 보면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 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 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수 있게 된 것은 이미 영광 나라에 계신 우리 구주 예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은총을 베푸는 다윗과 은총을 받는 므비보셋을 보면서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얻는 우리를 발견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한번 정리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1) 죄를 없이 하시려고 오심. 요일3:5에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 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인이 죄인을 위하여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계시지만 그는 죄가 없으신 분이 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대속 할 수 있으신 것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2) 죽음을 없이 하시려고.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 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들어 내신지라" 사 망을 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요11:25,2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 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살겠고, 무 릇 살아서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 하면 성도들에겐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이 저주스러운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성도들이 죽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는 것이 아 니라 잠을 잘 뿐입니다. 성경은 죽는다 하지 않고 잔다고 표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던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벌써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 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2)라고 하셨습니다. 잠들었다 고 했고, 그래서 깨우러 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죽음입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입니다.(살전4:13) 그러면 언제 잠자던 영혼이 깨어나게 됩니까! 장차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입니다.(살전4:16) 그 때 잠자 던 영혼들이 일제히 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해 서 다른 이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든 사람은 반드시 깰 때가 있듯 이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 것입니다.
(3)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요일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창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 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했는데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뱀의 후손은 마귀를 가리 킵니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론은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 것이 십자가 위에서 성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세상과 마귀를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 가 결단코 없으리라"(눅10:19)라고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신자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환난도 시련도 슬픔도 만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뱀이 여인 의 후손의 뒤발꿈치를 조금 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따끔할 수는 있습니다. 좀 쓰리고 아풀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4) 생활의 풍성함을 주시려고 삼하9:7절 중반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므비보셋은 생명의 살림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조부 사울이 가지고 있었던 땅까지 그에게 주고 있지 않습니까! 막10:29,30을 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복음을 위하여 희생하고 드린 모든 것을 백배나 허락해 주시겠다고 좝으니 여러분이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에 또 하나는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시려 고 오셨습니다. 요10:10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94장에 보면 예수님이 누구 신가하고 노래하는데 "예수님 은 우는 자에겐 위로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없는 자에겐 풍성이 되십니다. 천한 자에겐 높음이 되십니다. 잡힌 자에겐 놓임이 되십니다. 약한 자는 강하게 하시고, 눈먼 자에겐 빛이 되시고, 병든 자에겐 고침이 되시고, 죽은 자에겐 부활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죽을 자의 생명이 되시고, 멸망할 자들에겐 구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시고 생명도 얻으실 뿐 아니라 풍성함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가난해 지셨습니다. 이 땅에 머리 둘 곳도 없으실 정도로 말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가난한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난해 지셨습니다. 그 이유는 나와 여러분을 부요케 하시려고 그렇게 가 난해 지신 것입니다.(고후8:9)
그러므로 예수 믿으시고 믿음의 부요한 자 뿐만 아 니라 생활의 부요한 자들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삼하9:7절 하반 절을 마지막으로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라고 하셨 습니다. 자격 없는 므비보셋이, 그것도 두 발을 다 저는 절뚝발이의 부정한 몸이! 원수 되었던 사람이, 지금 왕 다윗과 식탁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 럽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이며, 이것은 현재에 누리 고 있는 우리의 축복이며, 축복의 계속이며, 장차 받을 축복의 예표입니다.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 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러분!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가 만 왕의 왕이신 주님과 식탁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다윗은 이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워 고백하기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23:5,6입니다. 여러분 마치 보란 듯이 원수 앞에서 잔치 상을 베풀어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결론입니다.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이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악인은 반드시 심 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악인은 절대로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할 것입니다. 악인은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시1:5,6) 그러나 그 때에 의인 들은,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여 믿는 선한 백성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13:43) 할렐루야! 모쪼록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으며, 주의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 같은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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