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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계속되어야 한다 (삼하11:1-5)

본문

사무엘하 8, 9, 10장에 보면 다윗이 주변 국가들을 점령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8, 10장에 보면 블레셋으로부터 메덱암마를 빼앗고, 모압과 소바와 다메섹과 하닥에셀과 에돔과 암몬과 모든 주변 국가들을 평정하고 점령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삶에 있어서 이 시기는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 정말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11장에는 이렇게 연승을 거듭하는 다윗에게 가장 치욕적인, 씻을래야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삶에 있어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오면서 받은 연단과 고통은 우리가 지나간 말씀들을 통해서 이미 상고한 바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기름부음을 받고난 다음부터 그는 계속해서 사울왕의 미움을 받고, 또한 그로 인해 연단을 받았습니다. 가정을 떠나야 했고, 친구를 떠나야 했던, 그래서 사람들에게 시기의 대상,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배신과 멸시를 당해야 했던 다윗의 삶을 우리는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통해 상고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삶이 어느 정도 끝난 이 시점. 그러한 연단의 과정들이 마감되는 순간, 다윗은 또 다시 철저하게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오랜 연단의 과정을 겪은 후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고난 후에 몇 년을 지나서도 이스라엘 전체의 왕은 되지 못하였습니다. 왕이 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비로소 이스라엘 전체의 위대한 왕이 되었고, 남북 왕조를 통일시켰고, 그리고 주변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모든 족속들을 평정시켜 나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마감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해가 돌아와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해가 돌아왔다는 말은 전쟁하기 어려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다는 말입니다. 봄이 오니까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전쟁의 상황은 8, 10장에 이미 기록된 대로 주변 국가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암몬 자손을 도왔던 아랍 족속들이 이때는 손을 다 들어 버리고 도와 주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는 다윗이 직접 출전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암몬의 수도 랍바를 점령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직접 출전하지 않고 군대장관인 요압을 보내어서 랍바를 치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예루살렘 왕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건은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다윗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밖을 나가 보니까, 담 너머에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 모습을 본 다윗은 그만 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신하를 불러서 보냅니다. 저 여인이 누구인가 확인해 보라고 지시합니다. 다윗은 그 여인이 처녀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맞은지 아닌지 알아 보고 오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보고를 들어 보니,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유부녀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유혹을 받은 다윗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불렀습니다. 불러 보니까 아름답습니다. 4절에 보니, “저가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했습니다. 여기 “저가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자들의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보고, 그때 접촉을 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여인은 그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범죄를 하는 순간이면서도 그것 하나는 묻습니다. “네가 월경 중이냐, 아니냐” 아니고 깨끗하다는 소리를 듣고는 동침을 하고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니까, 이 여인한테서 소식이 옵니다. 잉태하였다는 소식입니다. 그 남편은 지금 전쟁터에 나가 전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편이 없을 때 잉태하였으니, 이 여인은 지금 어떤 입장에 처해 있습니까 배가 불러 사람들에게 노출되기만 하는 날에는, 이 여인은 율법에 따라 끌려 나가서 돌에 맞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빨리 조치를 취합니다. “왕이여, 내가 잉태했으니 빨리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내가 이대로 가다가는 돌에 맞아 죽겠으니, 빨리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라는 애원이 담긴 전달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우리아를 불러 들입니다. 우리아를 집에 가서 쉬도록 휴가를 주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아가 동침하고난 다음에 임신한 것처럼 가장하려고 편법을 썼습니다.
그런데 우리아가 얼마나 충신이었던지 왕 앞에 보고를 끝내고 나서도 집에 가지를 않습니다. “나의 상관인 요압이 전쟁터에 있고, 우리 이스라엘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는 이 시간에 나 혼자 편히 집에 가 쉴 수 없나이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충신입니까 다윗이 이틀 동안 말미를 주는데도 집에 가지를 않아요. 이틀째는 술을 잔뜩 먹여 가지고 취한 김에 집에 들어가게끔 하는데, 그 날도 안 들어 가고 맙니다. 그래서 다윗이 마지막으로 요압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 우리아를 제일 앞장 세워서 전쟁터에 나갔다가, 갑자기 후퇴 시켜서 적군에 의해 사살되게 만듭니다. 다윗의 일생에서 이와 같이 비열하고 간악한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자만과 안일에 빠질 때 실패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왜 종교개혁이 필요했습니까
그 원인은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그 시대적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철저하게 타락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타락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로마 바티칸에 가 보았습니다. 그냥 한 30-40분 휙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그 안을 자세히 돌아보고픈 마음이 없었습니다. 원래 바티칸과 박물관은 하루를 돌아봐도 아쉽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예술품으로 가치가 있는 곳이지요. 아침 이른 시각부터 저녁 늦은 시각까지 발디딜 틈이 없이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웠습니다. 모든 기둥과 모든 조각들이 다 대리석이더군요. 이태리 대리석, 아시죠 참으로 아름다워요. 얇디 얇은 옷자락 같은 것도 다 대리석으로 조각해 놓은 것입니다. 그것 하나만 갖다 팔아도 우리 교회 열 댓 개 짓고도 남지요. 바로 그것 때문에 교회가 망한 것입니다. 왜 교회가 타락했습니까 전 로마에서 제일 보고 싶은 곳이 카타콤이었습니다. 그래서 카타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목숨을 걸며 그 신앙을 유지했던 장소. 들어가 보았습니다. 완전한 지하 무덤이지요. 지하 무덤은 벽돌로 쌓은 무덤이 아니고, 그냥 야산을 파고 들어가서 만든 공동 묘지입니다. 그 안을 보면 시체가 썩어 있는 무덤이지요. 그 동굴 속에 교인들이 들어가 살았습니다. 로마 시내에 있다가는 잡혀 죽으니까요. 신앙을 지킬 수 없고, 예배를 드릴 수 없으니까, 그 썩어 가는 시체들 옆에서 살았습니다. 전깃불을 켜 놓았는데도, 한번 길을 잃으면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습니다. 그런 속에서 그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거기엔 바울이 왔다 간 기록이 적힌 토판이 있었고, 베드로가 와서 설교한 내용도 토판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그 안에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콜로세움에서 수 많은 성도들이 사자의 밥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그들의 신앙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나니, 교회가 부흥되었고, 따라서 전도하지 않아도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재정적으로 넉넉해 졌고, 또 지도자들이 기도하지 않아도 되었고, 성도들도 어렵게 신앙생활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편해지다 보니 영적으로 죽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고, 말씀 묵상하지 않고 신앙생활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들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 갈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메말라 가는 영혼을 붙잡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의식이었습니다. 엄숙한 의식을 통해서 그 메마른 심령을 붙잡으려고 시도했던 교회, 그래서 의식이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도 엄숙한 모자와 까운이 나왔습니다. 황금 빛으로 까운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 몸과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영혼은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이기에 그 심령들이 메말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결국 죽고 맙니다. 바로 그런 배경으로 인해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가 스코틀랜드에 가서 존 낙스의 집을 가 보았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인 존 낙스의 집에서 제일 먼저 제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층에 올라가 보니 그의 서재에 칼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존 낙스의 칼이었습니다. 저는 그 칼을 보는 순간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시대에 종교개혁이라는 것은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칼을 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싸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다윗의 삶에 나타나는 이 비극적인 실패가 무엇입니까 만약 다윗이 그 시간 침상에 있지 아니하고 신하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 있었다면 다윗이 이와 같은 실패를 했겠습니까 만약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 있었다면 실패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때 전쟁터에 나가 있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왜 1절에 “왕이 출전할 때”라는 말을 기록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아시겠지요 지금 다윗이 있어야 할 곳은 전쟁터였습니다. 침상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한국 교회가, 우리 강성교회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 곳에 있지 아니할 때에는 죽는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보다 믿음이 적은 사람입니까 우리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입니까 그는 우리보다 영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경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경험, 어느 때는 슬펐고, 어느 때는 기뻤던 경험, 모든 경험이 우리보다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실패하고 있습니다. 왭니까 그가 이제는 됐다 하고 마음을 놓고 자만감에 빠진 것이 바로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되는 위치에 왔다. 이제는 장군 한 명만 보내도 끝나는 문제다.”라고 생각하고는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직접 나가서 진두지휘를 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는 강박감과 긴장감이 있었으며,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다윗을 이끌고 온 힘이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어떤 상황입니까 내가 직접 나가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는 말 아닙니까 정권이 안정되고, 나라가 안정됐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사탄의 유혹은 찾아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가 혹시나 우리 강성교회가 자만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할만큼 했다고 자만해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이 교회를 이루기 위해 수고한 여러분들, 그동안 눈물과 땀과 기도로 진을 뺐던 여러분, 모래를 져 나르고 벽돌을 져 나르고 시멘트를 져 나르며 수고하던 여러분,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과 땀방울과 눈물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강성교회는 죽을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한 가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 생각에 우리 강성교회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신 분 계십니까 어제도 한나호 선교사님들이 왔지요. 저녁에 한나호 선교사님들 식사 대접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해요. 목사님이 오시자 마자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고. 우리 목사님은 일거리를 몰고 다니는 분이라고. 그래서 제가 “다시 갈까요”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제, 우리 강성교회가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수고해 오셨는데, 지금까지 열심히 하셨는데, 혹시나 우리 마음 속에 이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때에는 죽어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때는 그때고, 이제는 뭐”하는 마음이 제 마음 속에나 여러분들 마음 속에 생긴다면, 우리는 그 순간 바로 사탄의 유혹 아래 쓰러지는 교회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한 가지만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얼마나 수고해 오셨습니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갈등해 오셨습니까 몸부림을 치셨습니까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보아 왔습니까 교회 안의 분란과 성도들 간의 다툼과 시기와 질투를 보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 보려고 했지만, 어느 때는 목사님한테, 어느 때는 장로, 집사님들한테 실망을 느끼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받아 왔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것들 때문에 “이제는 내가 나서지 않겠다. 이제는 내가 편히 신앙생활하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이 바로 죽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이라면 아마 이가 갈렸을 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쟁에, 그 칼 빛 아래서 몸서리를 치며 살던 다윗이 아닙니까 그저 도망다니고, 어느 때는 사울왕의 칼날 앞에, 어느 때는 블레셋 왕의 칼날 앞에 두려움 가운데 낙심하던 그가 아니었습니까 이제 왕이 되었습니다. 아마 전쟁과 칼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났을 겁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이제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만큼 되지 않았나고 생각하고 물러나 앉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많은 연단들이 있었을 겁니다. 고통도 있었을 겁니다. 정말 기도도 많이 했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 때문에 주저 앉아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쉬는 게 아니라, 죽는 것입니다. 투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 나 자신을 말씀 안에서 지키기 위해, 우리 교회가 말씀 안에서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내 생명을 걸고 나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오늘도 그 자리에 서지 않으면, 그 전쟁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전쟁 아닙니까 영적 싸움 아닙니까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 하나가 바르게 살아야 된다고 몸부림쳐 본들 한국 교회가 다 그렇고
그런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다 부정 부패로 가득한데, 나 하나만 말씀대로 산다고 뭐 효과가 있겠는가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해야만 할 일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모른다 해도, 나 하나라도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무릎을 꿇읍시다. 우리 다시 한번 마음을 다짐하고 신앙을 지킵시다. 사실 제가 이번에 유럽을 돌아보면서 제일 마음에 와 닿고 마음이 아팠던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제가 그리스를 가서 고린도교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리스가 지금 우리나라 50-60년대 상황이에요. 경제가 아주 뒤떨어졌습니다. 기차를 탔는데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나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지. 기차가 털거덕 털거덕 거려서 내려다 봤더니, 레일 밑에 자갈 하나도 못 깔아 놓은 나라에요. 지금도 그러니 사도 바울이 전도하던 때는 어떠했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지중해의 뙤약볕이 내려 쬐지요, 흙먼지가 날아오지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먼지가 없는데, 거기는 지금도 먼지가 많아요. 그런 곳을 걸어서 전도하던 바울이 생각이 나더군요. 눈물흘리면서 땀 뿌리면서 전도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입니다. 그리스에는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고린도교회에 가 보고 마음이 아팠던 것은 다름이 아니에요. 바울이 세운 고린도교회 자리에 교회는 아름답게 세워져 있는데, 그 안에는 희랍정교 교회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온 벽이 다 성자들의 그림 투성이입니다. 제가 가장 깊이 느낀 게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있었던 나라는 지금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유럽의 교회가 거의 다 쇠약해 가고 있습니다. 몇몇 교회들은 그렇지 않지만, 거의 다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찬송이 힘이 없습니다. 주일 낮 예배 한 번만 드리는 교회가 대다수입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칼을 들고 목숨을 걸고 신앙을 위해서 싸우던 나라가 아니었습니까 그런 교회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왜 이렇게 변했는지 저는 그걸 보면서 오늘 한국 교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10년, 50년, 100년이 지난 후에 어떻게 되어 있을까 문이 닫힌 교회들. 교회 건물이 다른 용도로 쓰여지고 있는 모습들. 교회가 순전히 관광명소로 바뀌어 있는 모습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한국의 교회들이 그렇게 아니 될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싯점에서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지켰던 그 신앙들을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우리 강성교회는 자칫 안일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이제는 특별히 더 하지 않고도 우리의 신앙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이제는 교회 건물도 있겠다. 그러니 이제 열심히 기도 생활이나 하고, 내 개인 신앙생활만 제대로 하면 되겠지.” 이런 생각에 빠져 있다면, 우린 그 순간 죽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안일에 빠져 있다면, 이 자리에서 만족한다면 현재의 신앙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죽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의 실패를 기록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가 오늘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동시에 기억하시면서, 우리가 다시 한번 마음을 바로잡고, 50년 전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키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도 다시 한번 이 한마디를 외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50년 전 한국 교회를 지켰던 성도님들이 누구나가 말씀했던 한 마디가 있습니다. “일사각오.” 사람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번 죽는데, 어떻게 죽으시렵니까 교통사고로 죽으시렵니까 암으로 죽으시렵니까 어떻게 죽으시렵니까 가장 멋진 죽음은 주님을 위해 죽는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아, 이대로 있다간 우리가 죽고 우리 교회가 죽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김으로, 칼을 들고 나가서 싸우면서까지 신앙을 지켰던 그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을 오늘 우리의 모습으로 바꾸어 볼 수 있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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