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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것 (삼하1:1-16)

본문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서 사울왕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울왕의 죽음에 대해서 2시간에 걸쳐 말씀을 상고했습니다. 오늘은 사울왕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다윗의 이야기로부터 사무엘하 1장이 시작됩니다. 사무엘하 1장부터는 다윗의 치세가 시작되는데 역대상.하로 죽 내려가면서 계속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사울왕의 미움을 피해서 블레셋의 아기스왕의 휘하에 가서 피신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번에 우리가 보았듯이 이 블레셋의 전쟁에 아기스왕은 다윗을 함께 데리고 나가서 이스라엘을 치는데 한쪽을 담당시키려고 했지만 아기스왕의 측근들이 반대함으로 다윗이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왕과 아기스왕과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편으로도 참전할 수 없었고 블레셋 편으로도 참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돌아왔지요. 돌아와 보니 아말렉 족속이 자기들의 처자식을 다 사로잡아 가 버린 것입니다. 다윗은 아말렉을 추격하여 쳐부수고는 잃었던 처자식을 도로 찾았으며 또한 많은 재물을 빼앗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시글락성에서 이틀을 유합니다. 실질적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은 몇 일 되지 않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갈 때, 삼일 길을 갔다 왔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결국 삼사일 지나서 이스라엘 진영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마자 삼사일이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패전을 하고 왕을 비롯해서 왕자들이 다 죽고 이스라엘 군대가 다 도망을 쳐 버리는 결과를 우리는 봅니다. 이때 제 삼일에 한 사람이 다윗왕을 찾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 군인의 모습을 보니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시글락성에 있는 다윗을 찾아와서 전쟁 결과를 보고합니다. “이스라엘이 패전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 보니 사울왕의 왕관과 팔찌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스라엘이 패전했고 왕과 왕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다윗왕이 묻습니다. “어떻게 네가 사울왕이 죽은 것을 아느냐” 그 군인이 하는 말이 “내가 길보아 산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는데, 사울왕이 죽어가면서 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죽어가고 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하니 자기를 쳐서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이고 그 증거로 이 왕관과 팔찌를 가져왔나이다.” 다윗이 이 보고를 받고 심히 통곡하면서 기름부은 여호와의 종을 쳐서 죽였느냐 네가 말한 대로 기름부은 종을 죽였다고 하였으니 너도 죽어야 되겠다. 그리고는 그 군인을 죽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을 읽다보면 사무엘상에서 나오는 사울왕의 죽는 장면과 오늘 이 군인이 보고하는 장면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앞 장에서는 사울왕이 자기가 화살을 맞고 이미 죽게된 것을 알고 고통이 심하니까 호위병에게 죽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 호위병이 감히 하나님이 기름부은 왕을 죽일 수가 없어서 두려움 가운데 망설이고 있으니까, 사울왕이 그가 망설이고 있음을 알고는 자기 칼을 거꾸로 세워 놓고 거기에 엎드려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누가 죽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까 사울왕이 누구에게 부탁했어요 기록된 바에 의하면, 사울왕이 이 군인에게 “네가 어디 사람이냐”고 물었으며, 이 사람은 자기가 아말렉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뭔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실은 기록이 잘못 된 게 아니라, 아말렉 군인이 다윗왕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추측하건데 이 아말렉 사람은 이스라엘에 노예로 잡혔다가 아마도 함께 전쟁에 참가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함께 도망을 치는거죠. 도망하는 길에 길보아 산을 지나다가 사울왕이 죽은 것을 보게 되지요.
그런데 이 사람은, 사울왕과 가장 반대되는 세력 그리고 차기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바로 다윗이라고 생각하고는 이런 거짓말을 꾸며내는 겁니다. 내가 사울왕을 죽였다고 하고 이 왕관과 팔찌를 증거로 내보여야 하겠구나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어떤 후한 보상이 있으리라 생각한 거죠.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울왕이 죽는 마지막 순간에 왜 자결을 했습니까 가만 있어도 죽어요. 이미 살 가망이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자기도 알아요. 왜 급하게 자결하면서까지 죽습니까 블레셋 군대가 추격을 하는데 이방인의 손에 죽임당하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겁니다. 사울왕이 지금 블레셋 사람의 손에, 이방인의 손에,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의 손에 죽을 수가 없다고 미리 생명을 자기 스스로 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군인이 어디 사람인지 물어보고 그가 아말렉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를 죽여달라고 그랬겠습니까 아말렉은 이방인입니다.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이 아말렉 사람이 다윗을 생각할 때, 다윗이 사울과 원수지간이라고 생각했고 또 차기 대권의 주자는 다윗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윗에게 와서 자기의 공로를 세위기 위하여 이와 같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런 공로를 인정받고 상을 받기는 커녕 죽임을 당하고 말아요. 다시말하면 다윗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미움을 받고 지겹도록 도망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은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몇 차례 왔지만 그는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주변의 측근들은 단칼에 사울왕을 죽이자고 했습니다만 그러면 안 된다고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 아니었습니까 왜 반대했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기 때문에 내가 죽일 수 없다는 말이죠. 사울왕을 제거하는 것은 누가 할 일입니까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하나님이 제거하신다는 말이지요. 그와 동시에 다윗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무슨 믿음이었죠 “하나님이 나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겠다고 사무엘 선지자들 통해서 기름을 부어 주셨다. 사울왕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절대권력을 가지고 아무리 나를 죽이려 해도 하나님이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을 약속했기 때문에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지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손에 모든 문제를 맡겼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다리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다윗의 입장이라면, 사울왕이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력과 절대권력을 가지고 그렇게도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이런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지금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합니다. 다윗이 알아요. 이미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죠. 그리고 아말렉을 쫓아가서 잃어 버렸던 처자식을 도로 다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시글락성에서 몇일을 유했다고 되어 있습니까 이틀을 유했다고 되어 있죠 지금 상황을 보십시오. 처자식을 아말렉에게 빼앗긴 상황에서는,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이 아무리 급한 문제라 하더라도, 처자식을 구하는 것이 더 급하니까,
아말렉을 추격해서 아말렉을 죽이고 처자식을 도로 찾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회복하고 돌아왔습니다. 지금 다윗의 입장에서는 모든 신경이 어디로 가 있겠어요 전쟁터로 가 있겠지요.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기기를 원하겠습니까 죄송한 말입니다만, 이 아말렉 군사의 판단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내릴 수 있는 정상적인 판단입니다. 제가 다윗이라 할지라도 이번 전쟁에서 사울왕이 좀 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왜죠 사울왕은 전쟁만 끝나면 또 자기 잡으러 올 사람이니까요. 기회만 있으면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사람 아닙니까 이런 기회에, 내 손으로는 직접 죽일 수는 없으니, 사울왕이 좀 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내심으로 기대하지 않겠어요 여러분 중에 “아이고, 목사님, 그런 생각을 하면 됩니까 나도 그런 생각 안 하는데요.”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천만에요.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죽 보아온 바에 따르면, 우리 성도님들이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집사님이 은혜를 좀 받았다, 어떤 집사님이 하나님의 복을 좀 받았다 하면 제일 가깝게 지내던 집사님들이 더 배아파 하고 더 시기하고 험담하더군요. 저쪽 다른 동네 교회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교회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픈 겁니다. 사람의 본성은 누가 잘되면 배아파요.
그런데 이건 배아픈 정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나를 모략하고 나를 시기하고 험담하고 기회만 있으면 없는 말을 지어가지고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 있다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합니까 다윗이 처한 상황은 극한 상황입니다. 오죽했으면 블레셋까지 도망했겠습니까 자기 원수의 나라로 말입니다. 사울왕이 얼마나 그를 핍박했으면 말입니다. 제가 다윗이라면 아마 부하 몇명을 전쟁터로 보내어서 상황을 정탐하게 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울왕이 죽고나면 그 다음 왕은 바로 다윗 자신이 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가질 수 있는 본성적인 마음은 아마 사울왕이 죽기를 기다리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은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표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위대한 일면이요, 오늘 은혜 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강성교회에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각 개인에게 각 가정에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주셨단 말입니다. 그 사명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하기를 원한다. 네가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 네 가정이 이렇게 쓰임받는 일꾼의 가정이 되기를 원한다.”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지요. 다윗은 소년 때에 철없을 때에 사무엘이 와서 자기 머리에 기름부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상황을 보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울이 자기를 사랑하고 후계자로 지목해줘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지금 상황은 오히려 사울이 그를 죽이려 하고 그는 쫓겨다니는 신세인데 이게 될 일입니까
그런데도 그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 약속을 부여잡고 있단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서두러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 것이다.” 오늘 분문에 보면 다윗의 모습은 서두러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의 기회는 절호의 기회이며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기회인데도 거기다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믿고 나아가면서도 너무나 조급할 때가 많아요. 성경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봅시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을 봅시다. 그는 손자인 요셉보다 믿음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아브라함하고 요셉하고 누구의 신앙이 더 좋습니까
자, 보세요.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니 갔어요. 왔다가 기근이 든 것을 보고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실패했던 사람입니다. 아들을 주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믿고 나가다가 1년 2년 그냥 지나가다가 의심이 생겨서 첩을 취해서 아들을 낳죠.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실패를 했습니다. 그 이스마엘 때문에 지금까지도 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 순종함과 동시에 실패가 있어요.
그런데 요셉의 기록을 보면 실패한 부분이 없어요. 요셉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노예로 잡혀가도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어요. 강간미수죄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인생 끝난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니,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세우십니다. 아브라함과 요셉의 신앙을 보면 누가 신앙이 더 성숙합니까 요셉의 신앙이 더 성숙하죠 그러면 아브라함은 왜 실패했습니까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만큼 대단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급함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기다릴 줄 몰랐던 이 조급함 때문에 아브라함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다윗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가정에 주시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아무리 변하고 그 환경이 우리의 약속과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열매 가운데는 인내가 들어가 있습니다. 동시에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해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급해서 그 약속을 빨리 앞당기려고 나서다가 실패해 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포기해버려요. “하나님 약속이 잘못된 약속인가 보다. 이 약속이 우리 가정과 상관이 없는 약속인가 보다. 내가 응답을 잘못 받은 모양이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서두러지 않음과 동시에 포기하지도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약속들과 여러분 가정에 주신 약속들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함과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믿음의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마십시오. 믿음이라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적극적으로 그 일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함께 생각하려는 것은 본문에 나타난 아말렉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아말렉 사람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거짓말 때문에 망하고 맙니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거짓말의 내용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전도하면서, “할머니는 죄인이예요. 그리고 죄가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 갑니다. 그러니 예수 믿으시고 죄를 용서받으셔야 해요.”하고 말씀드리면, 우리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얘야, 나는 죄가 없다. 남한테 못할 짓 한 번도 안 하고 살았다.” 그러셨어요. 마지막에는 믿고 돌아가셨습니다만, 그 전에는 제가 전도하면 꼭 그렇게 말씀하시곤 하셨지요. 누구한테건 못할 짓은 한 번도 안 하고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안 하긴, 뭘 안 해요. 오늘 본문에서 아말렉 사람은 거짓말 때문에 망한 게 아닙니다. 거짓말의 내용 때문에 망한 거지요. 다른 거짓말을 했으면 살았을 텐데. 그 거짓말의 내용이, 기름부음 받은 종을 죽였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가 죽게 되지요.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오늘날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약에는 왕, 선지자, 제사장들을 기름부어 임명을 했지요. 기름을 부어 세운 종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왜, 그 사울왕은 패역하고 하나님이 이미 버려 버린 왕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칼을 대지 않습니까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즉, 하나님께서 자기 것으로 구별하셨다는 뜻입니다. 기름부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한다구요 “이것은 내것이다”고 구별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것은 나의 소유라고 선언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사울왕이 아무리 패역했어도, 그는 하나님이 한번 내 사람이라고 선언하셨던 사람이기 때문에 칼을 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말렉 사람은 자기가 칼을 댔다고 하니, 다윗은 그 상황을 모르니,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너는 죽어야 한다고 하고 그를 죽인 거예요.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것을 이 사람이 건드렸으니, 이 사람이 죽는 거예요. 다윗이 그를 죽이면서 하는 말이, “네 죄값을 네가 치르는 것이다.” 그래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레위기 27:28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원하고 하나님 앞에 바쳐진 물건에 대해서 그것을 다시 회수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요, 옛날은 농경사회였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은 주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바쳐 놓고난 다음, 마음이 바뀌는 거예요. 아쉬워요. 그러니까, 그걸 취소하고 그 땅에다가 자기 농사를 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그 땅값의 1/5을 더 내고 회수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회수하면 백성 가운데 끊어진다 그랬어요. 여러분, 여호수아 6:17-18에 보면,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을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가 보낸 사자를 숨겨 주었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 하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 7:10-13에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희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무엇이냐 하면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여리고성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러니 하나도 너희가 취하지 말고, 다 나에게 바치라.” 그랬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여리고성에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 것이니다 바치라 그랬을까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처음 만난 성이 바로 이 여리고성입니다.
그런데 그 성이 너무도 장대한 성이기 때문에 전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저히 함락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매일 한 바퀴씩 아침마다 돌아라. 그리고 일곱째 되는 날에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질러라. 그러면 무너진다.”고 그랬어요. 이 성을 점령하는 것은 누구다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은혜로 된 것이다. 그 말이지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 네가 잘나서 출세하고, 네가 잘나서 돈 잘 벌고, 많이 배우고, 잘사는 게 아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니까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불러가면 그 모든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먼저 여리고성을 점령한 다음, 하나님이 이것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힘과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복으로 된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성에 있는 것을 너희가 취하지 말라. 너희 것으로 인정하지 말라. 너희 소유권으로 인정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오늘날로 말하면 오늘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환경과 모든 것들을 네 것으로 소유권을 인정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가 네 영혼을 불러가면 네가 쌓아 놓은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인생은 내 것이 없어요. 여러분들 가운데 내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죽는 순간에는 다 놓고 갈 것들이예요. 그 다음에는 다음 세대 사람들이 그걸 또 씁니다. 지금 땅, 땅, 땅 하면서 땅들을 사 모으는데, 참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살만한 집 하나 있으면 됐지, 사 모아서 뭘 하겠다는 겁니까 차라리 남은 여생 하나님 앞에서 멋있게 살다 가지. 참 미련한 인생입니다. 내가 죽으면, 그 땅은 명의가 바뀝니다. 여러분, 가지고 있는 토지의 등기부등본 한번 떼어 봤죠 보니 이름이 몇 개 있지요 소유주란에 이름들이 바뀌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이름으로 바뀐다고요. 여러분들 것이 아니예요. 이것을 알고 살아라 그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오늘 이 아말렉 사람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네가 어찌하여 기름부음 받은 자를 건드렸느냐” 그것은 단순히 어떤 한 인간을 죽인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 소유로 생각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그래서 여리고성에 들어갈 때에는 아무것도 너희들 소유로 인정하지 말고 다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지요. 바친다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여리고성의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죽이는 것입니다. 그 다음 물건들을 다 하나님께 바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 가운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여리고성에 들어가서 점령하면서 집집마다 수색을 하면서 무엇을 훔쳤습니까 돈하고 외투를 훔쳤지요. 가서 보니까 정말 멋있는 옷이 하나 있단 말입니다. 아내에게 갖다 주면 참 좋아하겠구나고 생각하고 훔쳤지요. 남자들이 여자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아담부터 그랬지요. 조상이 그러니, 대대로 그러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아간은 물건을 훔쳤습니다. 여리고성은 간단하게 점령을 하고, 그 다음 아이성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성을 점령하려고 나갑니다. 금방 점령할 줄 알고 들어갔는데, 이스라엘이 거기서 패전을 했지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왠 일입니까 왜 잘 나가다가 우리를 망하게 합니까 여리고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리시더니, 왜 아이성을 통해서 우리를 망하게 합니까” 엎드려 있으니, 하나님이 7장을 통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왜 엎드려 있느냐 너희 백성 가운데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의 대적이 아무리 약한 대적이라 할지라도 너희는 당할 수가 없다. 너희 가운데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보십시오. 여기 보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이라 그랬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에게 바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취했다가 바친 물건이 아니라, 취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내 것이다”하고 선언하신 그런 물건이예요. 그렇습니다. 여리고성의 물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취한 후에 하나님께 감사해서 바친 물건이 아니라, 취하기도 전에 “이건 내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왔으니, 하나님께서 뭐라고 표현하시죠 “너희가 바친 물건을 도둑질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간이 일단 바쳤다가 다시 그 바친 물건을 훔쳤습니까 아니지요. 이것은 하나님께 바쳐 본 적이 없는 물건입니다. 바쳐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내것이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미 “바친 물건이다” 그러시는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이 내 것이다고 하신 날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쳐야 될 날입니까, 아니면 이미 바쳐진 날입니까 바쳐진 날이지요. 개념을 바로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일을 지키건 안 지키건, 이미 그 날은 하나님께 바쳐진 날입니다. 내가 지키면 바쳐지는 것이고, 안 지키면 안 바쳐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날은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벌써 바쳐진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바쳐진 날을 바치지 않으면, 뭐가 되죠 내가 바치겠습니다 해 놓고 안 바치면, 거짓말하는 것이 되겠지만, 이 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날은 이미 하나님께서 내 날이라고 받아 놓았기 때문에 내가 바치기 전에 이미 바쳐져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날을 떼어 먹으면 내가 이 날을 도둑질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내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않겠다.” 그러셔요. 성물을 건드린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말라기서에서도 마찬가지의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는데, 사실 십분의 십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지요. 우리에게 주신 물질은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중에 십분의 일을 내게 바침으로 너희가 믿음을 고백하라.”고 하십니다. 십일조의 개념은, 1/10만 하나님의 것이고, 그 나머지 9/10는 내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십분의 십,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생명을 주셨고, 건강을 주셨고, 일터를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수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고백으로 1/10을 드립니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내것이라고 구별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십일조를 드리건 드리지 않건 그것은 이미 바쳐진 것입니다. 바쳐져 있는 거예요. 내가 드릴 수도 있고, 드리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가능성의 영역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드리지 않으면, 뭐가 돼요 도적이 된다 그 말입니다. 오늘 본문과 말라기 3장에 보니 분명히 너희가 도둑질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는 어떤 개념으로 바뀌죠 더 확대 되죠. 우리의 삶은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내게 속한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가운데 주님 앞에 드려지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 생각하고, 또한 일 주일 중에 주일 하루는 하나님의 날이니까 하나님께 드리고, 예배드리고난 다음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내 마음 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뭐라 하시는 줄 아십니까 네가 도둑질했다 그러십니다. 왜요 주님이 피로 값주고 나를 사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제 주님의 것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나 죽으나 주님을 존귀하게 하기 위하여 사는 존재가 되었다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영역 가운데 주님을 존귀하게 하는 일과 반대되는 삶을 살 때에, 바로 그것이 도둑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물을 건드리는 것이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너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니 몸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니라.” “너희가 창기와 짝하여 네 육체를 더럽히느뇨 너희 육체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인 줄 알지 못하느뇨”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이것이 바로 신약의 개념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내 마음 대로 내 주관 대로 살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말씀에 비추어서 말씀 안에 살아가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문제가 나오면, 제일 먼저 부딪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말씀이 나오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럼, 나는 뭐냐” 이런 생각이지요. “나는 뭔가” “나는 죄인이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내가 내 생각 대로 내 주관 대로 살면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가끔 이런 말씀을 드리지요. 사과가 하나 있는데, 한 쪽이 조금 썩었다고 칩시다. 아주 작은 부분이 썩었어요.
그런데 그 사과를 가만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죠 부패한 부분이 다른 성한 부분까지 오염시켜서 완전히 썩어 버리지요. 이상합니다. 싱싱한 부분이 더 많은데, 어찌하여 싱싱한 부분이 썩은 부분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그 조그만 썩은 부분이 나머지 싱싱한 부분을 모두 썩게 만듭니까 썩은 부분이 나머지 부분을 오염시킨다면, 같은 논리로 싱싱한 부분도 썩은 부분에 영향을 주어서 회복시켜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말은 못 들어 보았죠 우리 인생은 이미 본성적으로 죄인입니다. 썩어 있단 말입니다. 내 인생을 내 마음 대로 살도록 가만 내 버려 두면, 죄짓고 살다 지옥 갈 백성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인군자가 없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성숙해 있다 할지라도, 내 본능 대로 살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에게서 완전히 떠날 수는 없어요. 신앙의 성숙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훈련하고, 얼마나 자제하고 사느냐가 신앙의 성숙인 것입니다. 죄된 본능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신앙의 성숙이 아닙니다. 성숙한 만큼 절제가 된다는 것 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인간임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 대로 살지 아니하면 나는 썩어질 수 밖에 없고 죽을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존심 상할 필요 없어요.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아야 될 인생이라고 그럴 때, “나는 뭐냐”하고 자존심 상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자존심 내세우다가는 그 인생 망하고 맙니다. 다 벗겨 놓고 보십시오. 옷을 벗겨 놓고 보란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을 벗겨 놓고 보란 말이지요. 내 사상과 감정과 의지를 벗겨 놓고 봐요. 자랑할만한 게 뭐가 있는가 더러운 것 밖에 없잖아요 여러분들의 순간 순간의 생각을 벗겨 놓고 보세요. 떳떳합니까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가운데에서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다윗의 믿음의 기다림입니다. 믿음은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신뢰는 평안이요 확신입니다. 다윗은 조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의 순간을 기다리며 자신의 사명만을 감당했습니다. 믿음은 조급하지도 않고 지체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환경과 상황을 보면서 낙심하지 맙시다. 조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맙시다. 인내하며 기다릴 때, 최선을 다해 준비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울왕을 죽였다고 보고한 아말렉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성물을 건드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신 그의 백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임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과 일생을 그분 뜻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신 대로, 믿음으로 기다리며 승리하는 삶과, 또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성물을 훼손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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