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다 (왕하7:9-10)
본문
I. 엘리사 시대 때 아람 왕 벤하닷이 자기 나라 모든 군대를 다 모아서 이 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 왕의 항복을 받기 위 하여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사마리아 성이 완전히 포위되자, 성 안에는 큰 주림이 찾아 왔습니다. 밖에서 물건들이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먹을 것이 다 떨어졌습니다. 성 안에는 큰 주림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나귀 머리 하나가 은 80 세겔 했습니다. 합분태 1/4 갑에 은 5 세겔 했습니다.
너무나 어려우니까, 어떤 일까지 있었느냐하면, 오늘은 내 아들을 삶아 먹고, 내일은 네 아들을 삶아 먹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큰 어려움에 취하자, 왕은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자가 입는 상복을 왕이 입었습니다. 나라가 마치 부모가 돌아 간 것과 같은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다급해진 왕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사람들을 보내었습니다. 이 절망에 빠진 자들이 엘리사의 집에 오자, 엘리사 선지자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희망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하셨느니라" (왕하7:1) 이런 놀라운 구원의 소식이 선포되자, 왕이 보낸, 왕이 가장 의지하는 한 장관이, 엘리사에게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 으리요"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그에게 엘리사는 이런 저주를 예언했 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이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성 안에서 버림 받은 문둥이 4명이 있었습니다. 성안에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이들에게도 먹을 것이 떨어졌읍니다. 그러자 그 문둥이들은 아람군대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성 안에 들어가도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죽더라도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가서 죽자고,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찾아와서 성을 둘러 진을 치고 있는 아람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람군대에 항복하기로 했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살려두며 살고, 죽이며 죽으리라"는 각오로 아람군대진으 로 갔습니다. 이 4 문둥이가 황혼에 아람군대의 진에 가보니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람군대가 있는 곳에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 소 리가 들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이런 큰 군대 소리가 들리자, 아 람군대는 이 소리는 이스라엘이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지원군을 요청했기 때문에 그 군대들이 몰려오는 소리라고 생각을 했읍니다. 그래서 황혼에 아람군대가 황급히 도망을 갔습니다. 이 아람군대가 황 급히 도망을 가다가 보니, 장막과 나귀와 진를 그대로 버려두고 도망을 갔 습니다. 이 4 명의 문둥이들이 한 장막에 들어가보니, 먹을 것이 잔득 쌓여 있었 습니다. 몇일을 굶은 그들은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 고 가서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하였읍니다. 이때 하나님의 성령님이 그들을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바른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그들은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 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고 했습니다. 이들은 사마리아 성으로 가서 성문지기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가 아람 진에 가보니, 한 사람도 없고,사람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이 그대로 있었습니다"라고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문직이는 이 소식을 궁궐에 가서 전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이 소식을 믿지 못했습니다. 왕은 밤에 일어나 신복들에 게 "이것은 아람 군대가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는 꾀를 내기 위하어서, 진 을 그대로 두고, 들에 매복하였다가, 우리가 성에서 나오면 우리를 사로잡 고, 성에 들어가려는 작전을 짠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왕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성중에 아직 5 필의 말이 남아 있으니, 그 말을 보내 서 그 곳을 정탐하게 하옵소서"하고 의견을 냈습니다. 그래서 말 두필을 취하여 그 밤에 아람진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이 정탐군들이 말을타고, 아람군대가 진을 친 곳과 도망간 길을 따라 가보니, 아람 군대가 급히 도망을 가느라고 버리고 간 의복과 군물이 길에 가득하였습니다. 이 정탐군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하자,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아람진으로 뛰어 나가서 노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의심하던 왕이 의지하던 군대 장관은 왕이 그로 사마 리아 성의 문을 지키게 하였는데, 사람들에게 밟혀서 죽었습니다. 이 말씀속에는 놀라운 구원에 대한 진리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이 말씀속에 들어 있는 구원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복음은 꼭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전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사방 팔방 다 둘러싸여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자 들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과 같이 완전히 사방이 다 둘러 싸여서 아무 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너무나 먹을 것이 없어서, 오늘은 내 아들, 내일은 네 아 들을 삶아 먹는 것과 같이 기막힌 일을 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심을 그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구원 받을 길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지난달 폭우 때 교량이 유실돼 열차통행이 중단된 구간으로 화물열차가 달리다 화차 4량 중 2량이 하천 제방으로 떨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2일 오전 10시20분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울 교외선 벽제 -일영 사이 곡릉4교 (능곡기점 14.1km)에서 끊어진 교량 아래로 서울기 관차사무소 소속 2392호 화물열차 (기관사 오민환.27) 가운데 기관차 1량 과 화차 1량이 3m 아래 곡릉천 제방으로 추락했다. 이렇게 철로가 유실된 것을 알면서도 역무원이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 다면 그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영원한 지옥의 불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 실을 그들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아들들을 삶아 먹는데, 그런 것을 알면서도, 먹을 것 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기쁨의 소식을 그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얼마나 큰 벌을 받겠습니까 그들은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려는 자들 주에는 혹시 그들이 그 소식을 안받아 들이면 어떡하나 하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그 소식을 받아들이던지, 안받아들이던지 그것은 그들의 책 임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 소식을 전할 책임만이 있습니다.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죽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죽어서 다 지옥을 갑니다. 지옥은 엄청난 고통의 나라 입니다. 불이 영원히 타는 나라입니다. 그곳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려고 해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자들을 보고도 그들에게 이 사실과 그 고 통의 나라로 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알면서도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 게는 큰 화가 임하게 됩니다. AEshop 시대에 어떤 국민학교 어린이가 학교에서 친구의 아동학습용 글 씨판(horn-book)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을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잘했다고 아들을 칭찬해주었다. 그때부터 이 어린이는 죄악의 길 로 빠져들어 갔으며, 급기야는 그의 모든 죄가 발각되고 그는 사형을 당하 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사형당하는 날 어머니늘 불렀다. 그리고 어머 니의 귀를 물어 뜯었다. 어머니의 귀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영 문을 모르는 군중들은 젊은이의 잔인한 행동에 그 젊은이에게 욕을 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조용하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원인은 이 여인에게 있다. 내가 친구의 학습용 글씨판을 훔쳐와서 이 여인에게 보였을때 이 여인이 나를 책벌하기만 했었 더라면 나는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젊은이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이 잘 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이런 비극이 생깁니다. 마찮가지로 우리가 알면서도 전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불행을 다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퍼붓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소식을 빨리 전해야 합니다.
4 명의 문둥이들은 "내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 지라"고 했습니다. 이 기쁨의 소 식을 속히 전하지 않으면 벌이 임합니다. 오늘 밤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 어 죽는 자가 있다면 그 책임은 이 4명의 문둥이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소식을 듣자 마자, 곧바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의 소식을 속히 전해야 합니다. 내가 늦게 복음을 전하여 이 복음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죽어서 지옥에 갔다면, 그 책임 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라 고, 먼저 우리에게 이 기쁨 소식을 들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늦 기전에 이 기쁨의 복음의 소식을 죽어가는 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 전하라고 명령하셨읍니다. 늦기 전에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한 젊은 화가가 절망 가운데 버려진 불쌍한 어머니와 아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런데 그 그림에 그 화가는 인간적으로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파레트와 붓을 집어던지고, "나는 버림받은 절망적인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보다는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신학교를 갔다. 그리고 목사가 되어, 도시 빈민가에서 목회를 했다. 그 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는 드디어 그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저 세계의 버림 받은 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고 결심을 하고는 선교사로 갔다. 이 젊은 화가가 아프리카 우간다의 유명한 감독이 된 터 커(Bishop Tucker)이다. 복음의 소식이 꼭 필요한 자들에게 우리는 꼭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이 땅의 많은 것을 희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이 복음의 소식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사마리 아 성에 온통 죽음의 먹구름이 몰려올때,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 해 준 자는 엘리사 선지자이며, 엘리사 선지자는 그 말씀을 하나님으로 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절망속에 빠져있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오직 하나님께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으로 왕이 지나갈때, 한 여인이 왕에게 도와 달라고 소리쳤읍니다. 그러자 왕은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너를 도우 랴"(왕하6:27)하고 소리쳤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왕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학자들에게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사마리아 성과 같이 사방이 꽉 막혀 있고, 죽음의 먹구름이 밀려오는 자 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구원의 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자들에게 모든 문제의 해 답이 되시는 예수님을 열심히 저내향 합니다.
2. 의심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엘리사가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할때, 왕이 의지하던 장관은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왕이 의지하던 장관이기 때문에 상당한 지위에 있던 자 입니다.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 장관에게 내린 벌은 구원을 눈으로 보기는 보나 그것을 맛보지는 못 하는 것이였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 장관에게 "네가 네 눈으로 보리 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저주를 했습니다. 그 장관은 엘리사의 저주대로, 구원의 날 아침에 온 사마리아 성 사람들 이 구원의 기쁨을 만낀하고 있을때, 그는 성문을 지키다가 그것을 구경만하 고, 사람들에게 밟혀서 죽었습니다. 복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결과가 찾아 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죽어서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보나, 자기는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고 맙니다. 제가 고등하교 영어책에서 읽은 희랍신화가 있습니다. 희랍신화에 나 오는 오르페우스(Orpheus)와 유리디스(Eurydice)의 이야기가 있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던 유리디스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통해 하던 나머 지, 지하의 나라에 가서 지하 왕국의 플루토(Pluto) 왕을 만나 간청한다. 애인 유리디스를 세상에 다시 돌려보내 달라는 요청이었다. 플루토 왕 은 오르페우스의 뼈에 사무치는 간청을 들어 주기로 하면서 다음과 같은 조 건을 걸었다. "너의 애인 유리디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그런데 이 곳을 출발하여 흑암 속을 전진해 가는 동안 지상의 광명을 볼 때까지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내가 약속하지만 유리디스는 언제나 너의 뒤를 달 려 가고 있으니, 그를 믿고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오르페우스는 희망에 넘쳐 기쁜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처음 얼마 동 안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르페우스 의 마음에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유리디스가 정말 자기를 따라오고 있을까 플루토 왕이 거짓말을 했거나 자기를 놀리는 것은 아닐가 한 번 죽은 사람이 정말 다시 살아 나서 자기를 따라 지상으로 환원될 수 있을까 의심하기 시작하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확대 되었으 며, 결국은 지상에 도찾하기 직전에 그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의심이란 말을 영어로 다우트(doubt)라고 한다. 이 말은 두비타르 (dubitare)라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이 두비타르는 "둘"이란 의미의 아리안(Aryan) 말에서 온 말이다. 즉 믿는 것은 진리로 받아 들인 것에 대하여 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의심은 진리로 받아 드리고 싶은 마음과, 그 것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 둘이 한 마음속에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하는 자는 진리로 받아 드리고도 싶고, 거절하고도 싶은 두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하는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자기 뒤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유리디스를 발견하였지 만, 이미 때는 늦었으며 플루토의 말대로 유리디스는 다시 지하의 나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문 둥이들이 이 기쁜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전했을때, 왕이 그 사실을 믿지 않 고 의심하여, 정탐군을 보내서 정탐하게 한 것과 같이, 복음의 말씀은 이해 할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진리 중에 진리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오직 구원을 구경만할 뿐입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구원은 무조건적으로 얻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공적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얻는 것은 더욱더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얻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그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원 받은 데 그들이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들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성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아람 군대를 몰아 낸 것은 하나님 이셨습니다.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 소리를 들리게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활하나 쏘지 않았습니다. 전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람 군대로 하여금 그 소리가 이스라엘 군대들이 헷 사람의 왕 들과 애굽의 왕들에게 돈을 주어 저들이 오고 있는 소리라고 착각하게 한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 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람 군대를 몰아 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람진에 가서 먹을 것을 노략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가서 먹을 것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은 양식을 가져오기만 했습니다. 구원은 이렇게 거저 얻습니다. 우리가 천국 들어가는 것은 이렇게 무 조건 적입니다. 천국 들어가는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은 혜로 천국에 들어 갑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예수 믿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천국에 들어 갑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기차여행을 하는데, 믿지않는 자 옆에 앉았다. 목사 님은 그에게 영적인 것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격이나 행 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 을 얻는 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차장이 와서는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 사람이 그의 기 차표를 보여주자, 차장은 그 표를 들여다보고는 날자와 좌석번호를 체크하 고는, 그 표에 구멍을 뚫고는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다음 사람에 게로 갔다. 갑자기 목사님께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사람에게 "차 장이 본 것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차표지, 당신의 인격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았지 않느냐 차장은 네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상관하지 않았다. 네 가 좋은 사람인지, 도덕적인 사람인지, 죄인인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았다. 구원이 꼭 그와 같다.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는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도장찍힌 천국에 가는 하나님의 표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구원은 값없이 얻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읍니다. 그래서 (엡2:8-9) 말씀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 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은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왕의 말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선물은 거저 받는 것입니다.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 값없이 거 저 받습니다. 우리에게 이 구원을 값없이 주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어려우니까, 어떤 일까지 있었느냐하면, 오늘은 내 아들을 삶아 먹고, 내일은 네 아들을 삶아 먹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큰 어려움에 취하자, 왕은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자가 입는 상복을 왕이 입었습니다. 나라가 마치 부모가 돌아 간 것과 같은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다급해진 왕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사람들을 보내었습니다. 이 절망에 빠진 자들이 엘리사의 집에 오자, 엘리사 선지자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희망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하셨느니라" (왕하7:1) 이런 놀라운 구원의 소식이 선포되자, 왕이 보낸, 왕이 가장 의지하는 한 장관이, 엘리사에게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 으리요"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그에게 엘리사는 이런 저주를 예언했 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이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성 안에서 버림 받은 문둥이 4명이 있었습니다. 성안에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이들에게도 먹을 것이 떨어졌읍니다. 그러자 그 문둥이들은 아람군대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성 안에 들어가도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죽더라도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가서 죽자고,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찾아와서 성을 둘러 진을 치고 있는 아람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람군대에 항복하기로 했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살려두며 살고, 죽이며 죽으리라"는 각오로 아람군대진으 로 갔습니다. 이 4 문둥이가 황혼에 아람군대의 진에 가보니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람군대가 있는 곳에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 소 리가 들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이런 큰 군대 소리가 들리자, 아 람군대는 이 소리는 이스라엘이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지원군을 요청했기 때문에 그 군대들이 몰려오는 소리라고 생각을 했읍니다. 그래서 황혼에 아람군대가 황급히 도망을 갔습니다. 이 아람군대가 황 급히 도망을 가다가 보니, 장막과 나귀와 진를 그대로 버려두고 도망을 갔 습니다. 이 4 명의 문둥이들이 한 장막에 들어가보니, 먹을 것이 잔득 쌓여 있었 습니다. 몇일을 굶은 그들은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 고 가서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하였읍니다. 이때 하나님의 성령님이 그들을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바른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그들은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 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고 했습니다. 이들은 사마리아 성으로 가서 성문지기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가 아람 진에 가보니, 한 사람도 없고,사람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이 그대로 있었습니다"라고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문직이는 이 소식을 궁궐에 가서 전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이 소식을 믿지 못했습니다. 왕은 밤에 일어나 신복들에 게 "이것은 아람 군대가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는 꾀를 내기 위하어서, 진 을 그대로 두고, 들에 매복하였다가, 우리가 성에서 나오면 우리를 사로잡 고, 성에 들어가려는 작전을 짠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왕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성중에 아직 5 필의 말이 남아 있으니, 그 말을 보내 서 그 곳을 정탐하게 하옵소서"하고 의견을 냈습니다. 그래서 말 두필을 취하여 그 밤에 아람진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이 정탐군들이 말을타고, 아람군대가 진을 친 곳과 도망간 길을 따라 가보니, 아람 군대가 급히 도망을 가느라고 버리고 간 의복과 군물이 길에 가득하였습니다. 이 정탐군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하자,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아람진으로 뛰어 나가서 노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의심하던 왕이 의지하던 군대 장관은 왕이 그로 사마 리아 성의 문을 지키게 하였는데, 사람들에게 밟혀서 죽었습니다. 이 말씀속에는 놀라운 구원에 대한 진리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이 말씀속에 들어 있는 구원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복음은 꼭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전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사방 팔방 다 둘러싸여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자 들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과 같이 완전히 사방이 다 둘러 싸여서 아무 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너무나 먹을 것이 없어서, 오늘은 내 아들, 내일은 네 아 들을 삶아 먹는 것과 같이 기막힌 일을 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심을 그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구원 받을 길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지난달 폭우 때 교량이 유실돼 열차통행이 중단된 구간으로 화물열차가 달리다 화차 4량 중 2량이 하천 제방으로 떨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2일 오전 10시20분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울 교외선 벽제 -일영 사이 곡릉4교 (능곡기점 14.1km)에서 끊어진 교량 아래로 서울기 관차사무소 소속 2392호 화물열차 (기관사 오민환.27) 가운데 기관차 1량 과 화차 1량이 3m 아래 곡릉천 제방으로 추락했다. 이렇게 철로가 유실된 것을 알면서도 역무원이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 다면 그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영원한 지옥의 불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 실을 그들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아들들을 삶아 먹는데, 그런 것을 알면서도, 먹을 것 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기쁨의 소식을 그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얼마나 큰 벌을 받겠습니까 그들은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려는 자들 주에는 혹시 그들이 그 소식을 안받아 들이면 어떡하나 하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그 소식을 받아들이던지, 안받아들이던지 그것은 그들의 책 임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 소식을 전할 책임만이 있습니다.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죽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죽어서 다 지옥을 갑니다. 지옥은 엄청난 고통의 나라 입니다. 불이 영원히 타는 나라입니다. 그곳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려고 해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자들을 보고도 그들에게 이 사실과 그 고 통의 나라로 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알면서도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 게는 큰 화가 임하게 됩니다. AEshop 시대에 어떤 국민학교 어린이가 학교에서 친구의 아동학습용 글 씨판(horn-book)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을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잘했다고 아들을 칭찬해주었다. 그때부터 이 어린이는 죄악의 길 로 빠져들어 갔으며, 급기야는 그의 모든 죄가 발각되고 그는 사형을 당하 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사형당하는 날 어머니늘 불렀다. 그리고 어머 니의 귀를 물어 뜯었다. 어머니의 귀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영 문을 모르는 군중들은 젊은이의 잔인한 행동에 그 젊은이에게 욕을 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조용하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원인은 이 여인에게 있다. 내가 친구의 학습용 글씨판을 훔쳐와서 이 여인에게 보였을때 이 여인이 나를 책벌하기만 했었 더라면 나는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젊은이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이 잘 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이런 비극이 생깁니다. 마찮가지로 우리가 알면서도 전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불행을 다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퍼붓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소식을 빨리 전해야 합니다.
4 명의 문둥이들은 "내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 지라"고 했습니다. 이 기쁨의 소 식을 속히 전하지 않으면 벌이 임합니다. 오늘 밤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 어 죽는 자가 있다면 그 책임은 이 4명의 문둥이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소식을 듣자 마자, 곧바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의 소식을 속히 전해야 합니다. 내가 늦게 복음을 전하여 이 복음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죽어서 지옥에 갔다면, 그 책임 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라 고, 먼저 우리에게 이 기쁨 소식을 들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늦 기전에 이 기쁨의 복음의 소식을 죽어가는 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 전하라고 명령하셨읍니다. 늦기 전에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한 젊은 화가가 절망 가운데 버려진 불쌍한 어머니와 아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런데 그 그림에 그 화가는 인간적으로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파레트와 붓을 집어던지고, "나는 버림받은 절망적인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보다는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신학교를 갔다. 그리고 목사가 되어, 도시 빈민가에서 목회를 했다. 그 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는 드디어 그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저 세계의 버림 받은 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고 결심을 하고는 선교사로 갔다. 이 젊은 화가가 아프리카 우간다의 유명한 감독이 된 터 커(Bishop Tucker)이다. 복음의 소식이 꼭 필요한 자들에게 우리는 꼭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이 땅의 많은 것을 희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이 복음의 소식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사마리 아 성에 온통 죽음의 먹구름이 몰려올때,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 해 준 자는 엘리사 선지자이며, 엘리사 선지자는 그 말씀을 하나님으로 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절망속에 빠져있는 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오직 하나님께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으로 왕이 지나갈때, 한 여인이 왕에게 도와 달라고 소리쳤읍니다. 그러자 왕은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너를 도우 랴"(왕하6:27)하고 소리쳤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왕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학자들에게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사마리아 성과 같이 사방이 꽉 막혀 있고, 죽음의 먹구름이 밀려오는 자 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구원의 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자들에게 모든 문제의 해 답이 되시는 예수님을 열심히 저내향 합니다.
2. 의심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엘리사가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할때, 왕이 의지하던 장관은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왕이 의지하던 장관이기 때문에 상당한 지위에 있던 자 입니다.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 장관에게 내린 벌은 구원을 눈으로 보기는 보나 그것을 맛보지는 못 하는 것이였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 장관에게 "네가 네 눈으로 보리 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저주를 했습니다. 그 장관은 엘리사의 저주대로, 구원의 날 아침에 온 사마리아 성 사람들 이 구원의 기쁨을 만낀하고 있을때, 그는 성문을 지키다가 그것을 구경만하 고, 사람들에게 밟혀서 죽었습니다. 복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결과가 찾아 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죽어서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보나, 자기는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고 맙니다. 제가 고등하교 영어책에서 읽은 희랍신화가 있습니다. 희랍신화에 나 오는 오르페우스(Orpheus)와 유리디스(Eurydice)의 이야기가 있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던 유리디스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통해 하던 나머 지, 지하의 나라에 가서 지하 왕국의 플루토(Pluto) 왕을 만나 간청한다. 애인 유리디스를 세상에 다시 돌려보내 달라는 요청이었다. 플루토 왕 은 오르페우스의 뼈에 사무치는 간청을 들어 주기로 하면서 다음과 같은 조 건을 걸었다. "너의 애인 유리디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그런데 이 곳을 출발하여 흑암 속을 전진해 가는 동안 지상의 광명을 볼 때까지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내가 약속하지만 유리디스는 언제나 너의 뒤를 달 려 가고 있으니, 그를 믿고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오르페우스는 희망에 넘쳐 기쁜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처음 얼마 동 안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르페우스 의 마음에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유리디스가 정말 자기를 따라오고 있을까 플루토 왕이 거짓말을 했거나 자기를 놀리는 것은 아닐가 한 번 죽은 사람이 정말 다시 살아 나서 자기를 따라 지상으로 환원될 수 있을까 의심하기 시작하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확대 되었으 며, 결국은 지상에 도찾하기 직전에 그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의심이란 말을 영어로 다우트(doubt)라고 한다. 이 말은 두비타르 (dubitare)라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이 두비타르는 "둘"이란 의미의 아리안(Aryan) 말에서 온 말이다. 즉 믿는 것은 진리로 받아 들인 것에 대하여 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의심은 진리로 받아 드리고 싶은 마음과, 그 것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 둘이 한 마음속에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하는 자는 진리로 받아 드리고도 싶고, 거절하고도 싶은 두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하는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자기 뒤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유리디스를 발견하였지 만, 이미 때는 늦었으며 플루토의 말대로 유리디스는 다시 지하의 나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문 둥이들이 이 기쁜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전했을때, 왕이 그 사실을 믿지 않 고 의심하여, 정탐군을 보내서 정탐하게 한 것과 같이, 복음의 말씀은 이해 할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진리 중에 진리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오직 구원을 구경만할 뿐입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구원은 무조건적으로 얻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공적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얻는 것은 더욱더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얻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그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원 받은 데 그들이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들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성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아람 군대를 몰아 낸 것은 하나님 이셨습니다.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 소리를 들리게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활하나 쏘지 않았습니다. 전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람 군대로 하여금 그 소리가 이스라엘 군대들이 헷 사람의 왕 들과 애굽의 왕들에게 돈을 주어 저들이 오고 있는 소리라고 착각하게 한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 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람 군대를 몰아 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람진에 가서 먹을 것을 노략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가서 먹을 것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은 양식을 가져오기만 했습니다. 구원은 이렇게 거저 얻습니다. 우리가 천국 들어가는 것은 이렇게 무 조건 적입니다. 천국 들어가는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은 혜로 천국에 들어 갑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예수 믿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천국에 들어 갑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기차여행을 하는데, 믿지않는 자 옆에 앉았다. 목사 님은 그에게 영적인 것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격이나 행 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 을 얻는 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차장이 와서는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 사람이 그의 기 차표를 보여주자, 차장은 그 표를 들여다보고는 날자와 좌석번호를 체크하 고는, 그 표에 구멍을 뚫고는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다음 사람에 게로 갔다. 갑자기 목사님께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사람에게 "차 장이 본 것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차표지, 당신의 인격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았지 않느냐 차장은 네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상관하지 않았다. 네 가 좋은 사람인지, 도덕적인 사람인지, 죄인인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았다. 구원이 꼭 그와 같다.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는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도장찍힌 천국에 가는 하나님의 표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구원은 값없이 얻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읍니다. 그래서 (엡2:8-9) 말씀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 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은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왕의 말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선물은 거저 받는 것입니다.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 값없이 거 저 받습니다. 우리에게 이 구원을 값없이 주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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