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의 일에 힘쓰자 (삼하11:26-12:13,엡4:1-16,요6:24-35)
본문
우리 속담에 똥 뀐 놈이 성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방귀를 자기가 뀌고 서는 안 뀐 척하려고 먼저 성질을 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어떤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을 때에 그 잘못을 얼버무리려고,잘못을 한 당사자가 먼저 더 큰 소리를 치는 것을 일컬을 때에 쓰는 속담입니다. 요즘에는 자동차 추돌 사고가 났을 때에 그런 예가 흔하다고 합니다. 자기 차로 다른 차를 들이받아놓고는,냅다 큰 소리를 치면서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기가 죽어서 자신의 과실로 인정하고 처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가 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감추어보려고 타인의 실수를 지나칠 정도로 문제삼고 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죄가 크면 클수록,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서 더 큰 소리로 정죄하면서 비판합니다.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이웃 집 일에 꼭 끼어들고 참견하기를 좋아합니다.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 면 제일 앞장서서 큰 소리치고 따지는 사람은 대개 자기 집안 일은 엉망으 로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오늘의 말씀인 사무엘하 12장은 너무나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의 영웅인 다윗의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내어 기록했다는 점도 위대한 일이지만,다윗 자신이 자기의 잘못을 분 명하게 밝힌 점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임금이라는 체 면과 위신도 있고, 어쩌면 끝까지 숨기고 싶었을 아주 챙피스러운 일이기도 해서,왕의 권력을 가지고 얼마든지 고발자를 억누를 수 있었던 다윗입니다. 수 틀리면 나단을 아예 죽여서,자신의 죄를 까발리는 그 입을 봉쇄할 수 있 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윗은 하나님이 보내신 나단 선지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토설하고 있습니다. 나단이라고 하는 일개 보통 인간 앞에 무 릎을 꿇은 것이 아닙니다. 나단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 앞에 머리를 숙인 것 입니다. 결국 오늘의 말씀은, 다윗처럼 훌륭한 사람도 큰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쓰임을 받게 된것은,그가 자신 의 부족과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훌륭한 것이 아니라,계속 자신의 잘못을 고쳐 사는 사람이 훌륭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서 고쳐 살 수 있도록 인도하게끔 특별히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베 소서 4장 11절에 기록된 대로, 그들은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도자, 또는 목사와 교사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할 만한 그런 자격이 갖춰 져 있거나 인격이 있어서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술을 빌려서 말씀하시려고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일이란,
1성도들을 가르쳐서 온전케 하고
2성숙하게 된 성도들을 통하여 주의 일을 하게 하며
3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엡4:12)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베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일이 다 인간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만,조금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가뭄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 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음을 알 수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를 이모저모로 도와 주시고 있습니다. 지난 가뭄에 1 시간 동안 내린 비를 돈으로 따져 보니, 2천억이 훨씬 넘는 계산이 나온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2천억원이라는 돈을 지원한 셈 입니다. 그러나 어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고마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 보이지 않게 도와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적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삶 을 살기보다는
1.주께서 악하게 여기는 일에 더욱 열중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7-9절에서 하나님은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1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2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해 주었다.
3왕궁과 여자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내가 너에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 서 너는 내 말을 가볍게 여기고,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이 말씀은,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풀만큼 베풀었는데,왜 엉뚱한 짓을 했느냐고 하는 질책성 질문입니다. 정말,왜 그랬을까요 왕궁에는 수 많은 여자가 있고,원하면 얼마든지 나라 안에서 밧세바보다 훨씬 더 예쁜 여자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유 부녀를 범했을까요 그것도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서 충성을 다하고 있는 우리아를 죽이면서까지 그 아내를 빼았었을까요 우리 인간은 이처럼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복이 되는 길을 열심히 가르쳐 주어도,굳이 죄가 되고 해롭기만 한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이 터져라 주일성수의 중요성과 성도의 바른 삶을 알려 주건만, 못들 은척 자기 고집대로 사는 이상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1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닮지 않고 거짓된 자를 따라갈 염려가 많습니다. 다행히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 지자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에 그에 순응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다윗은 왕이라고 하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단 선지자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잘못 빠져든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많은 사람들은 그 잘못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식상의 지도자는 있어도,실제로 믿고 따르는 지도자는 없다는 것이 대다수 현대인의 불행입니다. 각기 다 제 잘난 멋에 살지, 누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라치면 곱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제도 에 순응하고 그 명령과 지시를 잘 따라야,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가 있 어서 복이 되는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자신이 멸망으로 가는 죄의 길에 서 있어도,그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인도하는 지도자를 갖 지 못하게 됩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에는,그 부르신 뜻이 있었습니다.에베소서 4장 13 절에,그 뜻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ㄱ.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ㄴ.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ㄷ.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게 하려는 데 있다 고 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
2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그래서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려면 어느 정도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성경을 잘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게 되면,교회는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서 주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야 진정으로 성숙한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좀더 알고 배우려는 진지한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에,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27절에서 썩을 양식이 아닌,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 고 하셨는데,우리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에 대해서는 너 무나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까닭으로,마음에도 평화가 없고,가정에 도 평화가 없으며,교회에도 참된 평화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좋은 신앙, 성 숙한 신앙인이라면 그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아직도 입에서 불만 과 불평이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신앙이 미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일입니다. 이런 말씀이 주어졌을 때 에, 다윗처럼 속히 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시인하고 고쳐 살려고 노력을 해 야,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2.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우리가 좀더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낳았는데,그 아들이 몇 해가 지나도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얼마나 답답한 노릇이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히 부르셨는데,우리가 믿음 안에 서 성장하지를 못하고 늘 그타령이라면, 그 얼마나 괴로워하실까요 교회 옆 밭에 태화네가 약혼(고구마와 같이 먹는 뿌리 식물)을 심었는데, 그만 가 뭄으로 인해서 얼마 크지를 못하고 말라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주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저도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에게는 그 죽어가고 있는 약 혼이 교인들로 보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의 일을 하고 교회를 세우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1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말씀을 듣고 우리의 잘못을 깨달아 고쳐 살 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면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갈 수가 있다 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려면 성경 말씀을 읽고 배워서 우리 각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 살아야, 주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면,다윗과 나단은 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면,나 단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교회는 하나가가 될 수 있고, 성도들은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2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주의 일에 힘쓰게 됩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 에서 예수님은, 주의 일이란,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라고 했 습니다. 그렇습니다.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그에 앞서서 하나님의 아들이 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마음으로 만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있어서 우리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3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를 이룬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주장을 앞세우지 말고,주인이 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3.성숙한 성도가 되어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다시 한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진리를 따라 진실되이 말하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생활 을 해서,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성도가 되어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교회를 이루려면,
1진리를 따라 진실되이 말해야 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죽음이 무서워서 거짓되이 말했다면,다윗 왕조는 쉽게 멸망 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물론 나단 선지자도 책임을 감당치 못했으므로 무서 운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진실되이 행동한 나단 선지자가 있었기에,그처럼 훌륭한 다윗 임금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이것 하나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함부 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주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명자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혹 평신도가 말씀을 전하게 되어도 담임 목사의 명령을 받고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2진실한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처음에는 거짓되이 행동을 했으나, 곧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바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말한 대로 실천에 옮기 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진실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되면 점차 주님을 닮아 진실되이 살 수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신의 잘못은 감추어 두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 물고 늘어지는 거짓된 행동 은,교회와 사회에서 암적인 요소가 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려고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듯 싶으면,속히 자신을 향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고 소리치시기 바랍니다. 아뭏든 다른 사람의 허물 한 가지를 말하면, 자신은 열가지 허물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온전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려면,그리스도만 바라보아 야 합니다.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온전한 사람을 찾으려는 헛수고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내 잘못을 말해 줄 수 있는 지도자는 꼭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진정한 지도자요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을 풍성케 하실 수 있는 진정한 양식이 됩니다. 아무쪼록 생명의 양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모하여 구함으로 써,말씀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가시는, 복 된 인생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이웃 집 일에 꼭 끼어들고 참견하기를 좋아합니다.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 면 제일 앞장서서 큰 소리치고 따지는 사람은 대개 자기 집안 일은 엉망으 로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오늘의 말씀인 사무엘하 12장은 너무나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의 영웅인 다윗의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내어 기록했다는 점도 위대한 일이지만,다윗 자신이 자기의 잘못을 분 명하게 밝힌 점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임금이라는 체 면과 위신도 있고, 어쩌면 끝까지 숨기고 싶었을 아주 챙피스러운 일이기도 해서,왕의 권력을 가지고 얼마든지 고발자를 억누를 수 있었던 다윗입니다. 수 틀리면 나단을 아예 죽여서,자신의 죄를 까발리는 그 입을 봉쇄할 수 있 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윗은 하나님이 보내신 나단 선지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토설하고 있습니다. 나단이라고 하는 일개 보통 인간 앞에 무 릎을 꿇은 것이 아닙니다. 나단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 앞에 머리를 숙인 것 입니다. 결국 오늘의 말씀은, 다윗처럼 훌륭한 사람도 큰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쓰임을 받게 된것은,그가 자신 의 부족과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훌륭한 것이 아니라,계속 자신의 잘못을 고쳐 사는 사람이 훌륭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서 고쳐 살 수 있도록 인도하게끔 특별히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베 소서 4장 11절에 기록된 대로, 그들은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도자, 또는 목사와 교사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할 만한 그런 자격이 갖춰 져 있거나 인격이 있어서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술을 빌려서 말씀하시려고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일이란,
1성도들을 가르쳐서 온전케 하고
2성숙하게 된 성도들을 통하여 주의 일을 하게 하며
3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엡4:12)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베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일이 다 인간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만,조금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가뭄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 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음을 알 수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를 이모저모로 도와 주시고 있습니다. 지난 가뭄에 1 시간 동안 내린 비를 돈으로 따져 보니, 2천억이 훨씬 넘는 계산이 나온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2천억원이라는 돈을 지원한 셈 입니다. 그러나 어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고마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 보이지 않게 도와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적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삶 을 살기보다는
1.주께서 악하게 여기는 일에 더욱 열중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7-9절에서 하나님은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1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2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해 주었다.
3왕궁과 여자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내가 너에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 서 너는 내 말을 가볍게 여기고,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이 말씀은,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풀만큼 베풀었는데,왜 엉뚱한 짓을 했느냐고 하는 질책성 질문입니다. 정말,왜 그랬을까요 왕궁에는 수 많은 여자가 있고,원하면 얼마든지 나라 안에서 밧세바보다 훨씬 더 예쁜 여자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유 부녀를 범했을까요 그것도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서 충성을 다하고 있는 우리아를 죽이면서까지 그 아내를 빼았었을까요 우리 인간은 이처럼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복이 되는 길을 열심히 가르쳐 주어도,굳이 죄가 되고 해롭기만 한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이 터져라 주일성수의 중요성과 성도의 바른 삶을 알려 주건만, 못들 은척 자기 고집대로 사는 이상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1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닮지 않고 거짓된 자를 따라갈 염려가 많습니다. 다행히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 지자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에 그에 순응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다윗은 왕이라고 하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단 선지자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잘못 빠져든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많은 사람들은 그 잘못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식상의 지도자는 있어도,실제로 믿고 따르는 지도자는 없다는 것이 대다수 현대인의 불행입니다. 각기 다 제 잘난 멋에 살지, 누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라치면 곱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제도 에 순응하고 그 명령과 지시를 잘 따라야,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가 있 어서 복이 되는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자신이 멸망으로 가는 죄의 길에 서 있어도,그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인도하는 지도자를 갖 지 못하게 됩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에는,그 부르신 뜻이 있었습니다.에베소서 4장 13 절에,그 뜻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ㄱ.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ㄴ.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ㄷ.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게 하려는 데 있다 고 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
2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그래서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려면 어느 정도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성경을 잘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게 되면,교회는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서 주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야 진정으로 성숙한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좀더 알고 배우려는 진지한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에,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27절에서 썩을 양식이 아닌,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 고 하셨는데,우리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에 대해서는 너 무나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까닭으로,마음에도 평화가 없고,가정에 도 평화가 없으며,교회에도 참된 평화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좋은 신앙, 성 숙한 신앙인이라면 그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아직도 입에서 불만 과 불평이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신앙이 미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일입니다. 이런 말씀이 주어졌을 때 에, 다윗처럼 속히 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시인하고 고쳐 살려고 노력을 해 야,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2.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우리가 좀더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낳았는데,그 아들이 몇 해가 지나도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얼마나 답답한 노릇이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히 부르셨는데,우리가 믿음 안에 서 성장하지를 못하고 늘 그타령이라면, 그 얼마나 괴로워하실까요 교회 옆 밭에 태화네가 약혼(고구마와 같이 먹는 뿌리 식물)을 심었는데, 그만 가 뭄으로 인해서 얼마 크지를 못하고 말라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주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저도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에게는 그 죽어가고 있는 약 혼이 교인들로 보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의 일을 하고 교회를 세우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1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말씀을 듣고 우리의 잘못을 깨달아 고쳐 살 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면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갈 수가 있다 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려면 성경 말씀을 읽고 배워서 우리 각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 살아야, 주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면,다윗과 나단은 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면,나 단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교회는 하나가가 될 수 있고, 성도들은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2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주의 일에 힘쓰게 됩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 에서 예수님은, 주의 일이란,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라고 했 습니다. 그렇습니다.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그에 앞서서 하나님의 아들이 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마음으로 만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있어서 우리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3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를 이룬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주장을 앞세우지 말고,주인이 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3.성숙한 성도가 되어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다시 한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진리를 따라 진실되이 말하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생활 을 해서,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성도가 되어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교회를 이루려면,
1진리를 따라 진실되이 말해야 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죽음이 무서워서 거짓되이 말했다면,다윗 왕조는 쉽게 멸망 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물론 나단 선지자도 책임을 감당치 못했으므로 무서 운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진실되이 행동한 나단 선지자가 있었기에,그처럼 훌륭한 다윗 임금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이것 하나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함부 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주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명자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혹 평신도가 말씀을 전하게 되어도 담임 목사의 명령을 받고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2진실한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처음에는 거짓되이 행동을 했으나, 곧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바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말한 대로 실천에 옮기 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진실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되면 점차 주님을 닮아 진실되이 살 수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신의 잘못은 감추어 두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 물고 늘어지는 거짓된 행동 은,교회와 사회에서 암적인 요소가 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려고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듯 싶으면,속히 자신을 향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고 소리치시기 바랍니다. 아뭏든 다른 사람의 허물 한 가지를 말하면, 자신은 열가지 허물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온전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려면,그리스도만 바라보아 야 합니다.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온전한 사람을 찾으려는 헛수고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내 잘못을 말해 줄 수 있는 지도자는 꼭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진정한 지도자요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을 풍성케 하실 수 있는 진정한 양식이 됩니다. 아무쪼록 생명의 양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모하여 구함으로 써,말씀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가시는, 복 된 인생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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