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왕하2:1-2,6-14,갈5:1,13-25,눅9:51-62)
본문
어떤 목사님이 먼 도시로 여행을 갔다가 옛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교회의 교인 수가 얼마나 되나천명쯤 되지그래 대단한데!" 놀라워하며 친구가 계속 물었습니다. "그들 중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가그들 모두가 다 적극적일세. 약 2백명은 주님을 위해 적극적이고 나머 지는 악마를 위해 적극적이지"라고, 그 목사님은 친구에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을 부르셔 서 복음 전도자로 삼으셨을까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주의 일에 열심인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는 법인데, 어째서 하나님은 그와 반대로 복음 전파에 큰 방해 자였던 사울을 기독교 역사의 가장 위대한 사 역 자로 삼으셨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그의 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열심을 보시고, 기독교를 반대하는데 열심 이던 그를,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열심을 내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처음 들 려 드린 그 목사님의 말씀대로 악마를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 겠지요 우리는 오늘의 본문 말씀인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사의 열심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는, 세번씩이나 따라오지 말라고 만류하는 엘리야의 말을 듣 지 않은 채, 끝까지 스승의 뒤를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스승의 뒤를 따르면서 곱절의 영감과 능력을 구한 목적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열왕기하 2장 9절에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 님의 남은 사역을 수행하게 해주십시오 한 것을 볼 때에, 그는 스승인 엘 리야의 뒤를 이어 주의 일을 하고자 다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목적의식이 분명했기에, 그는 선생님이 여러 번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뒤를 바짝 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 사역자로 일한다고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꼭 목사가 되어 복음 전하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지 주님 의 뜻에 따라 행하면, 주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일이 든지 세상 일이든 지간에,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점 입니다. 오늘의 제목을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했는데, 이 말은 엘리사 가 스승이 죽고난 다음에 낙심이 되어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중에서 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현 실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대로 살기를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는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힘들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은 열심히 찾고 있으면서도, 그 생활이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기에,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 냐'고 물어봐야만 하는 형편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을 열심히 찾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야 편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살면, 무 슨 일이든지 잘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삼풍의 사장인 이 준 집사가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살았다고 한다면, 어찌 그런 엄청난 부정 을 저질렀겠습니까 오히려 그는 애써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 런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께 십일조만 잘 내면 되겠지 하고, 자위했 을지도 모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곧 주님의 일이 무엇 일까를 잘 모르고 있었기에, 그처럼 돈 벌기에만 급급한 채 불의를 행했는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9장 57-62절에서, 주님의 뒤를 따르려면 세 가지 선결 사항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저 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눅9:57).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은 엉뚱하 게도 "나는 머리 뉘일 곳도 없다. 이 땅에서 편히 쉴 집이 없다"는 것이었 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따르려면 편히 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 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그리 힘들어하지는 않습니다. 자식 을 더 가르치려고, 아니면 더 잘 살려고 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르게 살기가 더욱 힘들어진 세상입니다. 지난날 에는, 먹고살기는 힘들었으나 어느 정도 양심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하지 만, 오늘날에는 돈 몇 푼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웃까지도 속이는 예가 드 물지 않습니다.
2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먼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59). 그러자 그 사람은 "가서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오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무나 가혹한 말씀을 그에게 합니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의 소 식을 전하여라 고 말입니다. 다른 성경(현대어 성경)에 보면, 이 말씀을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기고, 너는 하나님 나라가 온 것을 온 세상에 전파 하라 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세상일보다는 주의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장례가 주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오해가 있으나, 오늘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신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일은 다 주의 일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비록 교회 일일지라 도 세상 욕심을 가지고 세상 방식으로 하면, 하나님의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 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주를 온전히 따르려면, 우리의 생활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천국 을 향한 믿음의 생활이냐, 아니면 이 세상에서 끝장 낼 심산으로 사는 세상 중심의 생활이냐, 하는 것중 택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3앞만 보고 살아야 합니다. 미래 지향적인 삶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가서 허락을 받고 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고 하셨던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아주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일 때문에 삶의 발전 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과거가 자신의 삶에 거울이 될지언정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사로 인해서 얼마나 많이 손해를 보는지 모릅니다. 좀더 좋은 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일을 잊지 못 하여 원수처럼 불편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로, 주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일을 바로 지키지 못하는 까닭에,
1.우리는 스승이신 예수의 뒤를 열심히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외면한 채 주의 뜻대로 살겠노 라고 하기 때문에 세상일에 더욱 집착을 하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주의 도우심이 없으면 되는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노라고 하지만, 끝에 가서는 후회할 일에 열심히 내 고 있을 뿐입니다. 삼풍백화점 사장이, 그 몸은 늘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물질 의 노예가 되어 살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고 자신도 패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의 제자가 되어 사는 삶이란, 머리 뉘일 곳도 없이 편히 쉬지 못한 주 님의 뒤를 따르는 것인데도,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세상 풍조에 휩쓸려 좀더 멋있게, 좀더 화려하게, 좀더 으시대면서 살겠노라고 발버둥치고 있으니, 어떻 게 주의 뒤를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하기사 세상에서도 멋있게 살고 예수도 잘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 만, 일찍이 주님께서는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거나 사랑할 수가 없다 (마6:24)고 하셨습니다. 만일 물질에 여유가 있게 된다면, 그 물질을 자신만을 위하여 쓸 것이 아 니라 주의 일에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외면하고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게 되 면, 말씀대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1세상일에 얽매인 나머지, 주의 일을 전혀 돌아보지 않거나 소홀히 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 말씀에 육체의 욕망은 성령님을 거스르고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기 때문에, 자꾸만 주의 일보다는 세상일을 우 선 먼저 하다가, 그만 주의 일을 번번히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하고자 할 때에는 별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일을 하고자 하면,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지 않아야 할 이유들이 술술 생각이 납니다. 아무리 머 리가 나빠도 적당한 핑계가 생각이 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그런 지혜 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게 되면, 남을 헐뜯고 비난합니다. 내가 하지 못하면, 남이 하는 일이라도 도와주고 응원을 해야 하는데, 그렇 지 못한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외면하게 되면 사탄 편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좋은 일하는 것을 칭찬하기는커녕, 비난하고 흉보며, 할 수만 있으면 방해하여,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선과 악의 싸움을 한 결과, 악이 승리하게 되면, 그 악의 세력은 다른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 속에 있는 악의 세력을 돕게 되는 것입니다. 갈5:19-21에서는, 그 악의 세력이 일으키는 죄악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더 러운 생각, 육신의 쾌락을 찾는 마음, 우상 숭배, 마술, 헐뜯음과 싸움, 질투 와 분노, 언제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 불평과 비판적인 태도, 자기의 작은 당파 외에는 모두 나쁜 것으로 인정하는 배타주의, 시기, 살인,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등.
3이러한 행위는 자기 본성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악한 본성을 극복하고 주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 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번 악령의 말을 따르게 되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가 참으로 힘 듭니다. 분명 악한 길을 가면서도 더욱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면서, 악 령이 시키는 대로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원하여 이곳에 나왔습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사는 길이 참된 삶의 길이요 영생의 길임을 믿어, 이와 같이 이 자리에 나와 주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일이 잘되지 않습니다. 옛날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지 않고 자꾸만 사탄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체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괴롭습니다. 말씀대로 살자니 너무 힘들고, 주님을 부인하고 살자니 사람다운 삶을 포 기하는 것이기에 더욱 힘든 선택입니다. 엘리사가 스승인 엘리야를 열심히 따를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다른 사람 보다 곱절이나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욕심에서가 아니라 스승의 뒤를 이어 스승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확실한 능력을 얻기 전에, 스승인 엘리야는 하늘로 올림을 받 고 말았습니다. 이에 엘리아는 실망이 되어서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면서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단강이 둘로 갈라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른땅이 드러나,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2.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유를 가지 고 주 예수처럼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배반하는 일이 다반사이나, 하나님은 약 속하신 말씀대로 꼭 이루어 주십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확신과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까닭에, 쉽게 낙심을 하고 세상 길 로 빠질 때가 많습니다. 엘리사가 실망을 한 나머지 옷을 찢어 강물을 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엘리사와 항상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곁을 떠난 채 내 욕심만을 이루려 고 안달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 곁을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입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주 앞에 나와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1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2또한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3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많은 은혜와 여 러 가지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3.주를 열심히 따르면서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서 말하기를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자유 를 주신 것은, 그 자유로 서로 사랑하며 섬기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헐뜯거나 비난하는 일을 계속하게 되면, 피차 파멸을 당할 뿐(5:15)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선생님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이란 어떤 이를 말하는 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ㄱ.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5:24).
ㄴ.그래서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5:25).
ㄷ.그 결과,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5:22). 아무튼 엘리사나 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열심을 가지고 주를 따랐음 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를 따르기 이전에도 열심이 있었지만, 그 열심을 좋은 목적에 사 용함으로써 그들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욕심에 마음 을 빼앗기면, 주를 따라 사는 일에 열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세상일에만 열심 을 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하고 물을 수밖 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지금이 그런 상황입니다. 교인은 많이 있는데, 진실한 예수쟁이는 드뭅니다. 이제 누구를 말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실한 예수쟁이가 되도록 열심 을 내야 합니다.
1우선은 주를 알고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 주를 알고 섬기는 우선해야 합니다. 삼풍 사장이 조금만 더 예수를 바로 알았다면,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바로 삼풍 사장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지 살고 있 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보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보고 기도를 하게 되면,
2악한 본성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악을 이겨내면, 성령님이 가까이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이겨내려는 순간, 이미 성령님이 오셔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3성령님의 인도하심은, 나만을 위한 삶에서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자유는, 일종의 방종으로써 내 멋대로의 삶을 위한 자유이 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후의 자유는 사랑하고 섬기는 자유입니다. 결국 기독교인의 삶은,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기쁨을 누리고 다른 사람 에게서 사랑을 받음으로써 보람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삶의 자리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됨으로써, 삶의 실존, 곧 사람이 사는 이유와 그 목적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주를 섬기는 기쁨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유를 누림으로써, 멸 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힘껏 달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는, 세번씩이나 따라오지 말라고 만류하는 엘리야의 말을 듣 지 않은 채, 끝까지 스승의 뒤를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스승의 뒤를 따르면서 곱절의 영감과 능력을 구한 목적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열왕기하 2장 9절에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 님의 남은 사역을 수행하게 해주십시오 한 것을 볼 때에, 그는 스승인 엘 리야의 뒤를 이어 주의 일을 하고자 다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목적의식이 분명했기에, 그는 선생님이 여러 번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뒤를 바짝 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 사역자로 일한다고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꼭 목사가 되어 복음 전하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지 주님 의 뜻에 따라 행하면, 주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일이 든지 세상 일이든 지간에,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점 입니다. 오늘의 제목을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했는데, 이 말은 엘리사 가 스승이 죽고난 다음에 낙심이 되어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중에서 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현 실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대로 살기를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는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힘들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은 열심히 찾고 있으면서도, 그 생활이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기에,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 냐'고 물어봐야만 하는 형편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을 열심히 찾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야 편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살면, 무 슨 일이든지 잘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삼풍의 사장인 이 준 집사가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살았다고 한다면, 어찌 그런 엄청난 부정 을 저질렀겠습니까 오히려 그는 애써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 런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께 십일조만 잘 내면 되겠지 하고, 자위했 을지도 모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곧 주님의 일이 무엇 일까를 잘 모르고 있었기에, 그처럼 돈 벌기에만 급급한 채 불의를 행했는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9장 57-62절에서, 주님의 뒤를 따르려면 세 가지 선결 사항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저 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눅9:57).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은 엉뚱하 게도 "나는 머리 뉘일 곳도 없다. 이 땅에서 편히 쉴 집이 없다"는 것이었 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따르려면 편히 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 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그리 힘들어하지는 않습니다. 자식 을 더 가르치려고, 아니면 더 잘 살려고 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르게 살기가 더욱 힘들어진 세상입니다. 지난날 에는, 먹고살기는 힘들었으나 어느 정도 양심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하지 만, 오늘날에는 돈 몇 푼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웃까지도 속이는 예가 드 물지 않습니다.
2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먼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59). 그러자 그 사람은 "가서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오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무나 가혹한 말씀을 그에게 합니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의 소 식을 전하여라 고 말입니다. 다른 성경(현대어 성경)에 보면, 이 말씀을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기고, 너는 하나님 나라가 온 것을 온 세상에 전파 하라 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세상일보다는 주의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장례가 주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오해가 있으나, 오늘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신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일은 다 주의 일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비록 교회 일일지라 도 세상 욕심을 가지고 세상 방식으로 하면, 하나님의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 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주를 온전히 따르려면, 우리의 생활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천국 을 향한 믿음의 생활이냐, 아니면 이 세상에서 끝장 낼 심산으로 사는 세상 중심의 생활이냐, 하는 것중 택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3앞만 보고 살아야 합니다. 미래 지향적인 삶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가서 허락을 받고 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고 하셨던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아주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일 때문에 삶의 발전 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과거가 자신의 삶에 거울이 될지언정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사로 인해서 얼마나 많이 손해를 보는지 모릅니다. 좀더 좋은 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일을 잊지 못 하여 원수처럼 불편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로, 주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일을 바로 지키지 못하는 까닭에,
1.우리는 스승이신 예수의 뒤를 열심히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외면한 채 주의 뜻대로 살겠노 라고 하기 때문에 세상일에 더욱 집착을 하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주의 도우심이 없으면 되는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노라고 하지만, 끝에 가서는 후회할 일에 열심히 내 고 있을 뿐입니다. 삼풍백화점 사장이, 그 몸은 늘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물질 의 노예가 되어 살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고 자신도 패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의 제자가 되어 사는 삶이란, 머리 뉘일 곳도 없이 편히 쉬지 못한 주 님의 뒤를 따르는 것인데도,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세상 풍조에 휩쓸려 좀더 멋있게, 좀더 화려하게, 좀더 으시대면서 살겠노라고 발버둥치고 있으니, 어떻 게 주의 뒤를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하기사 세상에서도 멋있게 살고 예수도 잘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 만, 일찍이 주님께서는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거나 사랑할 수가 없다 (마6:24)고 하셨습니다. 만일 물질에 여유가 있게 된다면, 그 물질을 자신만을 위하여 쓸 것이 아 니라 주의 일에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외면하고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게 되 면, 말씀대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1세상일에 얽매인 나머지, 주의 일을 전혀 돌아보지 않거나 소홀히 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 말씀에 육체의 욕망은 성령님을 거스르고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기 때문에, 자꾸만 주의 일보다는 세상일을 우 선 먼저 하다가, 그만 주의 일을 번번히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하고자 할 때에는 별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일을 하고자 하면,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지 않아야 할 이유들이 술술 생각이 납니다. 아무리 머 리가 나빠도 적당한 핑계가 생각이 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그런 지혜 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게 되면, 남을 헐뜯고 비난합니다. 내가 하지 못하면, 남이 하는 일이라도 도와주고 응원을 해야 하는데, 그렇 지 못한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외면하게 되면 사탄 편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좋은 일하는 것을 칭찬하기는커녕, 비난하고 흉보며, 할 수만 있으면 방해하여,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선과 악의 싸움을 한 결과, 악이 승리하게 되면, 그 악의 세력은 다른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 속에 있는 악의 세력을 돕게 되는 것입니다. 갈5:19-21에서는, 그 악의 세력이 일으키는 죄악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더 러운 생각, 육신의 쾌락을 찾는 마음, 우상 숭배, 마술, 헐뜯음과 싸움, 질투 와 분노, 언제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 불평과 비판적인 태도, 자기의 작은 당파 외에는 모두 나쁜 것으로 인정하는 배타주의, 시기, 살인,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등.
3이러한 행위는 자기 본성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악한 본성을 극복하고 주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 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번 악령의 말을 따르게 되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가 참으로 힘 듭니다. 분명 악한 길을 가면서도 더욱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면서, 악 령이 시키는 대로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원하여 이곳에 나왔습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사는 길이 참된 삶의 길이요 영생의 길임을 믿어, 이와 같이 이 자리에 나와 주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일이 잘되지 않습니다. 옛날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지 않고 자꾸만 사탄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체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괴롭습니다. 말씀대로 살자니 너무 힘들고, 주님을 부인하고 살자니 사람다운 삶을 포 기하는 것이기에 더욱 힘든 선택입니다. 엘리사가 스승인 엘리야를 열심히 따를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다른 사람 보다 곱절이나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욕심에서가 아니라 스승의 뒤를 이어 스승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확실한 능력을 얻기 전에, 스승인 엘리야는 하늘로 올림을 받 고 말았습니다. 이에 엘리아는 실망이 되어서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면서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단강이 둘로 갈라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른땅이 드러나,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2.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유를 가지 고 주 예수처럼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배반하는 일이 다반사이나, 하나님은 약 속하신 말씀대로 꼭 이루어 주십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확신과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까닭에, 쉽게 낙심을 하고 세상 길 로 빠질 때가 많습니다. 엘리사가 실망을 한 나머지 옷을 찢어 강물을 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엘리사와 항상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곁을 떠난 채 내 욕심만을 이루려 고 안달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 곁을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입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주 앞에 나와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1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2또한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3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많은 은혜와 여 러 가지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3.주를 열심히 따르면서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서 말하기를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자유 를 주신 것은, 그 자유로 서로 사랑하며 섬기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헐뜯거나 비난하는 일을 계속하게 되면, 피차 파멸을 당할 뿐(5:15)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선생님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이란 어떤 이를 말하는 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ㄱ.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5:24).
ㄴ.그래서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5:25).
ㄷ.그 결과,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5:22). 아무튼 엘리사나 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열심을 가지고 주를 따랐음 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를 따르기 이전에도 열심이 있었지만, 그 열심을 좋은 목적에 사 용함으로써 그들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욕심에 마음 을 빼앗기면, 주를 따라 사는 일에 열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세상일에만 열심 을 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하고 물을 수밖 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지금이 그런 상황입니다. 교인은 많이 있는데, 진실한 예수쟁이는 드뭅니다. 이제 누구를 말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실한 예수쟁이가 되도록 열심 을 내야 합니다.
1우선은 주를 알고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 주를 알고 섬기는 우선해야 합니다. 삼풍 사장이 조금만 더 예수를 바로 알았다면,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바로 삼풍 사장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지 살고 있 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보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보고 기도를 하게 되면,
2악한 본성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악을 이겨내면, 성령님이 가까이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이겨내려는 순간, 이미 성령님이 오셔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3성령님의 인도하심은, 나만을 위한 삶에서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자유는, 일종의 방종으로써 내 멋대로의 삶을 위한 자유이 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후의 자유는 사랑하고 섬기는 자유입니다. 결국 기독교인의 삶은,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기쁨을 누리고 다른 사람 에게서 사랑을 받음으로써 보람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삶의 자리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됨으로써, 삶의 실존, 곧 사람이 사는 이유와 그 목적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주를 섬기는 기쁨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유를 누림으로써, 멸 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힘껏 달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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