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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을 따르는 제자 (왕하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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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공원 안에는 큰 나무 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맨 끝에 있는 나무만 말라 죽어 있습니다. 전해 내려온 이야기에 따르면 그 열 두 그루 나무 하나하나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이름을 써붙여 놓았는데 맨끝의 나무는 가롯유다 나무였습니다. 사람들은 가롯유다 나무만 보면 배은 망덕한 나쁜 제자라고 욕을 하고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저주하기 때문에 나무가 견디지 못하고 말라 죽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던 그들을 불러 “나를 따르라 내가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함께하셨던 주님을 배반하여 선생님을 죽게 했던 가롯유다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선생님의 죽음의 문턱까지 끝까지 따라가는 엘리사는 대조적인 것 같습니다. (왕상19:10)과 14절에 엘리야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영정으로 암흑의 시대를 발히려고 했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 생을 마칠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둔 엘리야는 제자 엘리사를 동행하고 선지학교가 있는 길갈로 또 벧엘로 또 여리고로 그리고 요단으로 다니며 제자들을 독려하여 신앙에 굳게 설 것을 당부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참다운 제자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선생을 끝까지 따르는 제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수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예수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예수님께 대하여 직분을 맡아서 일하면서도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마7:21-22절에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또 (눅9:57)“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눅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눅9: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눅9: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눅9: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여기에서 주님은 제자의 자세와 각오를 세가지로 말씀하십니다.
1)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과 같이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며,
2)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육신의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제자는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은 롯의 부인처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는 세속적인 욕망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길갈에 가면 거기 머물러라고 하고 벧엘에 가면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 합니다. 이제 그정도 열심이면은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선생님을 끝까지 따라갑니다. 엘리사는 선생님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엘리사 뿐만 아니라 선지생도들도 모두 하나님이 자신의 선생님을 대려가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자리까지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열심 때문입니다. 많은 선지 생도들도 있지만 엘리사가 선생님의 따르는 것은 그의 열심입니다. 그의 열심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왕하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엘리사와 같이 선생님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자가 있으며, 다른 선지 생도들과 같이 관망하는 자가 있으며, 가롯유다와 같이 선생님을 배반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분류는 주님을 따르는 각오와 자세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십니까 그러면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그러면 참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욕망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늘에서 축복이 클 것이며 참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 고 하십니다. 주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내 몫에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는 자가 참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까지 주님과 함께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가는 우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엘리사가 선생님을 따르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권세와 명예를 얻기 위해 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육신의 질병을 치료 받기 위해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주님께 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왕하2:9)“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왕하2: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엘리사는 선생님의 영감을 갑절을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갑절을 두배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엘리사가 선생님 보다 더 큰 사역을 하기 위하여 이렇게 갑절를 구한 것이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모순이 있습니다.
1그것은 실제로 엘리사가 받은 능력은 엘리야의 능력의 두 배가 뒤지 못합니다. 엘리사의 생애의 길이나 기적의 수나 모든 것을 보아도 두 배가 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2(마10:24) “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엘리사는 그 선생님보다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신21:17 에 말씀 한 것같이 맏아들에게 주는 분깃을 말합니다. 일반 형제들보다 장자는 아버지로 부터 유산을 받을 때에 두 몫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선생님의 뒤를 이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 것이며, 영적인 장자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믿음의 장자가 되고자 선생님께 구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실제로 엘리야의 뒤를 이어 이 직분을 잘 감당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마지막 종말에 유언으로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왕상2: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왕상2: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왕상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왕상2: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장 강조 하십니까 무엇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으십니까 믿음에 관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세상 물질이나 없어질 것을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원수를 값아 달라고 할 것입니까 여러분과 가정이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대장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으로 부요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적 장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는 장자가 되었으면서도 그 축복을 얻지 못한 사실이 있습니다. 에서가 쌍동이 동생에게 그 직분을 팔므로 야곱이 장자가 되었습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간통하여 그 축복을 빼앗겼습니다. (히12:16) “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히12: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 고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가 얻는 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제자들 중에서도 그 선생님의 열심처럼 열정적으로 구하고 찾는 엘리사가 그 장자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 능력 받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세상의 것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지금 가진 것으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신앙의 욕심을 가지십시요. 믿음에 졸장부가 되지 말고 대장부가 되십시요. 믿음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나 지지말고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부요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주후 68년 네로 박해때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서 죽었고, 안드레는 헬라국 밧으라에서 X형으로된 형틀에서 못박혀 죽었다. 큰 야고보는 주후 44년 예루살렘에서 헤롯에 의해 목이 잘려 죽었으며, 요한은 끊는 물에 넣어졌다가 살아나 밧모섬에 유배 당했다가 주후100년경 에베소에서 죽었고, 빌립은 부루기아에서 기둥에 매인채 맞아 죽었다. 그리고 바돌로매는 산채로 가죽이 벗겨져 죽었으며, 도마는 인도에서 쇠몽둥이와 창에 찔려 죽었고, 마태는 애굽에서 칼에, 다대오는 버시아에 서 활에 맞아 죽었으며, 작은 야고보는 주후 62년 유대인들에 의해 성전에서 밀쳐진 뒤 돌과 망치에 맞아 죽었고, 시몬은 예루살렘에서 못박혀 죽었다. 주님은 이들을 이렇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실지 주님의 뜻에 우리의 삶이 달려 있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 나라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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