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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발산의 저주와 그리심산의 축복 (수8:30-35)

본문

추석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올 추석을 풍요롭게 보내지 못한 것 같다. 특히 농부들의 마음은 심란한 가운데 추석을 보냈을 것이다. 올해도 풍년이라고 좋아들 했지만 몇 일 동안 내리는 비로 많은벼들이 쓰러졌고 물 속에 잠겨서 썩어가고 있다는 슬픈 소식이다. 저는 지난 주일 청아대 열린 정부 통신란에 들어가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글을 보냈다. 단군 신상 건립을 중지하고 단군상을 철거해주고 우상 종교 정책을 중지해 달라고 글을 써서 보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상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는지 이 민족은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이 민족이 깨닫지 못하고 계속 우상 섬기는 일에 정신을 쏟고 산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더 계속 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 두 산이 나오는데 에발산과 그리심산이다. 이 두 산은 서로 남. 북으로 마주 보고 있다. 에발산은 저주를 의미하는 산이었고 그리심산은 축복을 의미하는 산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운데 두고 저주의 산과 축복의 산으로 나누어져 서 있으면서 축복의 말씀과 저주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여호수아는 외쳤다. 이 나라 이 민족이 서야 할 산은 어디입니까 내가 어느 산에 서 있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수아가 두 산으로 나누어진 백성들에게 외친 축복과 저주의 하나님 말씀은 어떤 말씀이겠습니까 우리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순종하지 못하는가 나는 지금 어느 산에 서 잇습니까 에발산 입니까 그리심산 입니까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이 민족이 아니 내 자신이 어느 산에 서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 34절 =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힘든 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 그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라고 했는가 (신11: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 왜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셨는가
 에발산 = 원어로 "벌거벗은 산" 이라는 뜻이다. 에발산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벌거벗은 신앙을 의미한다. 즉 벌거벗은 신앙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에발산에 서 있는 지파들이 어떤 지파 였습니까 (신27: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 이 6 지파를 우리가 성경에서 보아도 무슨 일 했습니까 사고만 치고 다녔지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들을 하지 못한 지파들이다. 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저주의 산과 축북의 산으로 나누어 서라고 했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축복의 말씀과 저주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교회 나오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교회 나와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신7: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 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 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라고 했다.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말고 어떤 약속도 하지 말고 그들의 우상을 모두 찍어 깨뜨리고 불살라 버리라고 하셨다.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낼 때 너희가 쫓아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쫓아 내어주시겠다고 했다. 너희들은 통해서 하나님이 일곱 족속을 쫓아내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여호수아 다음장인 사사기서 1장을 보면 그들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 내지 못했다는 말이 일곱번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임했습니까 세계 역사중 가장 이방 세력에 시달린 민족이 이스라엘이다. 세계 강대국이 생길 때마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 속국이 되었다.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땅은 평화가 없는 땅이다. 대 낮에도 군인들이 총을 메고 다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라이다. 이스라엘은 세계의 화약고라고 말하고 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교회 다니는 것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들어가서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살 때 그 땅이 축복의 땅이 되었습니까 교회 다닌다고 구원이 보장되는 것입니까 교회가 우리를 구원시켜줍니까 교회는 우리를 구원시켜 주기 위한 역할을 할 뿐이지 우리를 구원하여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서도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지만 그 예수는 반드시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고 완성시켜 나가고 계신다 그 예수를 더욱 알기 위해서 우리가 교회를 나오고 있는 것이고 그 예수를 더 알기 위해서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배우고 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저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 불순종 신앙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에발산에 서 있는 6지파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저주의 산에 서있는 이 민족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교회 안에 거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멀리하고 살아가는 자는 아닙니까 이제라도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저주의 산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서 하나님의 축복의 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주신 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에발산에 단을 쌓아라 ! 30-31절 =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 광야 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최초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사람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를 위한 제사였다. 여호수아는 말씀에 기록된 대로 순종하여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단을 만들어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왜 저주의 산 에발산에서 제사를 드렸는가 깊은 뜻이 있다.
 돌단 =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뜻한다 새 돌단 =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드릴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에발산에 단을 = 오직 예배 받으실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돌 = 우리의 예배가 사람의 생각과 수단과 방법으로 드려져서는 안된다. 오직 성령님의 인도로 드려져야 한다. 번제, 화목제 =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의 마음을 뜻한다 저주받은 백성이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려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가나안 땅에 들어선 여호수아는 맨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에 놓고 양 쪽 산에 백성들을 나누어 놓고 저주의 말씀과 축복의 말씀을 선포했다. 노아가 방주에 나와서 맨처음 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먼저 드렸다.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배이다. 예배를 신앙의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배를 제치고 그 어떤 일도 우선이 될 수 없다. 예배 신앙이 무너지면 다른 신앙은 자동적으로 무너져 버린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올바른 신앙을 절대로 가질 수 없다. 우리를 죄악된 세상에서 빼내어 구원하여 주신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예배는 우리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드리는 자를 지금도 찾고 계신다. 우리가 복 받기 위한 전제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잘못된 예배이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는 나를 위해서 드리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위해서 마음과 정성을 다 해서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한 예배이다. 그러한 예배가 될 때 그 다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특권은 하나님 자녀들에게만 주어져 있다. 이 특권을 우리는 마음껏 누려야 한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의 단을 축복의 산 그리심산에서 두지 않고 저주의 산 에발산에 두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매우 중요힌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저주받은 신앙의 해결책은 예배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큰 죄라도 예배 참석하여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하나님께서는 100% 용서해 주신다. '
 예화 ' 육지에 더러운 오물들, 썩은 것들이 바다로 들어가지만 신가하게 바다는 그 더러운 것들을 다 포용하여 없애 버린다 교회는 바다와 같은 곳이다. 우리들의 각종 죄악된 모습, 냄새나는 죄를 다 없애주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사람을 새사람으로 만든다. 이 시대 교회 해체를 외치는 목사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목사가 민중 신학자 김진호 목사이다. 그는 경기도 과천시에서 한백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을진정한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교회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서슴없이 "교회 박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삶이 가능할 뿐 아니라 교회가 발전시켜온 기독교의 교리를 입으로 주절거리지 않아도 충실항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고 떠들고 있다. 교회 해체를 그렇게 원한다면 한백교회라는 교회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목사라는 칭호를 쓰지 말아야할 것이다. 목사의 사명도 목사라는 뜻도 모르는 자들이다. 목사가 무엇입니까 목(牧) = 먹일 목, 사(師) = 스승 사 하나님의 양들을 먹이고 가르치는 것이 목사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교회 이름 붙이고 말고 떠들고 목사라는 칭호를 띠고 떠들으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싫다면 잠잠히 교회에서 양들을 잘 양육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 교회의 예배도 타락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우리 신앙의 생명선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우리를 만나주신다. 오늘날 무섭게 번지고 있는 열린 예배 우리는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 할지라도 과정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 목적은 절대로 선한 목적지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절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배제하고서는 드릴 수 없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한 예배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적인 형식적인 의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영적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내 심령을 드리고, 내 삶을 드리고, 내 물질을 드리고, 내 생명을 드리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예배는 받는 것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온전히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갑절로 주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예배에 참석했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가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어떻게 교회를 다니느냐 어떠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잘못된 예배의 4가지 모습을 지적한다면
1) 기복적인 예배이다 복 받기 위해서 예배 드리고, 문제 해결 받기 위해서 예배 드리는 모습이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이지만 복 받기 위한 것이 우선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절대로 잘못된 예배이다. 철저하게 먼저 드리는 예배가 되지 않고서는 어떤 복도 받을 수 없다.
2) 지옥면제 예배이다. 예배 드리지 않으면 지옥 갈 것 같아서 드리는 자의 모습이다. 지옥 가는 것이 두렵다면 열심히 신앙 생활 해야 할 것이다. 신앙 생활이 엉망인데 예배 참석했다고 지옥 안 갈 것 같습니까
3) 습관적인 예배이다 교회 직분 때문에.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라서.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드린 예배라서 드리는 습관적 예배가 있다. 좋은 습관이지만 형식적인 외식적인 예배가 될 수 있다.
4) 억지 예배가 있다. 아내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누구 때문에 억지로 나와서 드리는 예배가 있다. 이런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수많은 시간을 드린다 할지라도 이런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벌거벗은 민둥산 에발산에서 예배를 드린 것은 우리의 벌거벗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예배를 통해서 회복되고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치료함 받고 힘을 얻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신 크신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라 ! 33절 =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운데 두고 두 산은 마주보고 있다. 그리심산에는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 6지파가 섰다. 여호수아는 6지파에게 축복을 받으라고 선포하였다. 왜 이 곳에 서 있는 지파에게 축복을 하였을까요
 그리심산 = "베다자르다" 라는 뜻이다. 에발산은 민둥산이었지만 그리심산은 나무가 울창하였다. 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 사용하였다. 나무가 울창한 그리심산의 모습은 벌거벗지 아니한 신앙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행함이 뒤따르는 신앙을 말한다. 행함있는 신앙에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나무가 울창한 그리심산 속에 서 있는 6지파의 모습과 시뻘건 민둥산 에발산에 서 있는 6지파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여러분은 어느 산에 서 있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모두그리심산 쪽에 서 있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그리심산 쪽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행위가 있는 자만이 그리심산 쪽에 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선언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 나무가 울창한 그리심산 쪽에 서 있어야 한다 나무가 울창한 그리심산의 모습은 믿음의 행위가 있는 신앙인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보고 우리의 신앙을 판단하시고 축복을 선언하신다. 우리가 산을 바라볼 때 시뻘겋게 벌거벗은 산을 볼 때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러나 숲이 울창하고 나무의 푸르름으로 가득찬 산을 볼 때 우리는 산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을 보낸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볼 때 우리의 신앙이 벌거벗은 모습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겠는가 그러나 믿음의 행함이 있는 푸르름의 신앙을 하나님이 보시고 너무 기뻐서 축복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복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상이 주는 복은 진정한 복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한다 그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리심산에 올라서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행함이 뒤따르는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한다 (약2: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죽은 믿음에 어떻게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있겠는가 에발산과 그리심산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놓고 축복과 저주를 선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면 축복이고 불순종하면 저주가 임할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말씀에 순종하며 신앙 생활하는 것이 행함 있는 믿음이다. 왜 이 나라에 3년 동안 계속해서 여름에 큰 홍수 피해가 오고 있는가 자연의 재앙이라고만 돌릴 것이 아니다.
이 민족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살기 때문이다. 벼 수확을 얼마 안 남긴 올 가을 대 풍작이라고 했지만 며칠간의 계속된 비로 농부들의 마음은 심란하다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왜 하나님의 축복은 오지 않고 고난과 어려움만 오는지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도 고난은 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는 고난이다 그런 고난은 엄격히 말해서 고난이 아니고 축복이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말씀에 순종하지 못해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신28:15-16)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고 있다.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 축복의 산에서 "축복을 받을지어다!" 소리를 듣고 싶으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축복의 산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축복의 산에 오를 수 있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가 생각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 왔는가 " 생각하시길 바란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 눈 앞에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이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에발산과 그리심산의 두 산은 성도의 신앙의 두 모습과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에발산 같은 벌거벗은 부끄러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이제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벌거벗은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했다고 주님은 책망하였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지금 벌거벗은 모습으로 교회에 앉아있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 입니까 우리의 영적인 모습이 지금 벌거벗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흰 옷으로 우리의 수치를 가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교회에 모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해야 한다 왜 저주의 에발산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까 회복할 수 있는 길은. 거룩한 흰 옷을 입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에발산에 있는 자도 얼마든지 축복의 산 그리심산에 올라갈 수 있다. 하나님은 저주받은 인생들은 복된 자들로 만들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세상 속에서 머리가 되어야 한다. 세상속에서 위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다 (신28:13-14)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붙들림 받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에발산의 저주는 우리의 삶 속에서 떠나가고 그리심산의 축복이 우리의 삶 가운데 놀랍게 역사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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