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와 그의 가정 (수24:14-15)
본문
오늘은 수 24:14-15를 중심으로 해서 ‘여호수아와 그의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구약의 여호수아의 가정과 신약의 고넬료 가정을 규범적 신앙 가정으로 보고 싶습니다. 이는 두가정 다 모두 군인의 가정이면서 여호수아의 가정은 가나안 정복에 지대한 공헌과 영향력을 주었던 가정이었고 고넬료의 가정은 로마 제국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여호수아의 가정에 대한 세밀한 기록은 없지만 여호수아의 지도적으로 볼 때 그의 가정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첫날부터 일생을 믿음과 충성으로 일관한 좋은 가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여호수아의 가정은 온 가족이 그의 가부장적 신앙 지도를 잘 따른 가정이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신앙 가정은 가장의 영적 신앙 지도를 잘 따르며 순종하는 가정입니다.몇 가지 실례를 든다면 인류의 시조 아담의 가정의 실패 원인은 아담의 가부장적 영적 지도를 하와가 무시하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롯의 가정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가정의 그의 딸들과 결혼한 사위들과 롯의 아내가 그 가정의 가장의 영적 지도를 받지 않고 세상 재리와 향락에 탐닉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구약 시대에 살았던 노아의 가정은 신약의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온 가족이 아버지의 신앙적 지도를 잘 받고 그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한 번 상상해 봅시다. 노아는 120년간을 날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그 가족 중 자부나 아들이나 아내가 오늘도 똑같은 일을 계속하느냐고 물으면서 휴일도 없냐고 불평했다면 어찌 그 거대한 공사를 마칠 수 있으며 어찌 방주가 완성되었겠습니까 고넬료의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고넬료는 군인이었습니다. 군인이 로마 나라에 충성하기보다는 매일 식량이나 구제 물자를 어깨에 메고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러 다닌다고 가족 중 아내나 아들이 빈정대거나 반대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 가정 예배나 드리고 전도나 하고 돌아다닌다고 반대하고 불평했다면 어찌 가이사랴의 전도 운동이 성공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군대 장관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고도 14년간을 수십 차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때야말로 매일 전쟁이요, 그것도 주야가 없는 무서운 살육전이었습니다. 이 때 만일 여호수아 가정의 단 한사람이라도 가정의 권위와 지도력을 받지 않고 오늘도 싸움이요, 오늘도 살육이요, 오늘도 전쟁이요 라고 했더라면 가나안 정복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가정은 가장의 영적 권위와 그 신앙적 지도에 말없이 잘 순종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점령은 끝이 났고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곳에 선민의 신국을 세우셨습니다. 여호수아의 가정은 모든 식구들이 가부장적 신앙 지도를 잘 따랐습니다.
2. 여호수아의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같은 믿음, 같은 꿈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물론 한 가족의 믿음이 같으면 그 가족의 꿈도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가족들도 여호수아와 같은 꿈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힘써 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곳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선민의 신국을 건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꿈이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 11:1). 믿음이 있으면 꿈이 있고 꿈이 있으면 믿음도 있습니다. 가장 모범적인 가정은 온 가족의 믿음도 같아야 하고 바라보는 꿈도 같아야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회와 제직과 교우들의 믿음과 꿈이 같아야 합니다. 매주일 예배 전에 하나님 앞에 사도신경으로 믿음의 일치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일치한 믿음으로 예배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같으면서도 꿈이 같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인들의 믿음은 같은 것 같은데 꿈이 다르기 때문에 분규하는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당 건물을 신축하느냐, 개축하느냐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분규를 하는 교회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믿음과 같은 꿈을 지니고서 매진해 나갑시다.
3. 여호수아의 가정은 한 사람의 불평도 없는 순종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범 가정은 불평없이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반복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만 남편이 하는 일을 아내가 불평하고 아버지가 하는 일을 자녀들이 불평한다면 어찌 가도가 설 수 있으며 가풍이 확립될 수 있겠습니까! 여호수아의 가족들은 불평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나안 전쟁에 참전하여 땀과 피를 흘려 싸웠습니다. 가정의 어떤 일도 온 집안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여의사가 목사와 결혼하였습니다. 그 여의사는 나는 당신과 결혼한 것이지, 목사와 결혼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내 수입으로 능히 생활할 수 있으니 사표를 내라고 목사에게 계속 졸라대었습니다. 그 가정은 마침내 파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5월은 일년 중 가장 아름답고 복된 신록의 계절입니다.
그렇다면 5월은 불평 없는 감사의 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정 주심을 감사하고 자녀와 부모를 주신 것을 감사하며 우리 모두에게 건강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은 힘이 들지만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는 이 사실만 가지고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몇 일전에 헬렌 켈러에 대한 기사를 읽고 새삼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눈 못 보는 소경,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말 못하는 벙어리의 3중고의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일 내가 3일간 만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
첫째 날은 그 동안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들을 만나 그 고마운 얼굴들을 마음껏 보고 실컷 얘기를 나누며 그리고 갓난 아이들의 얼굴도 보고 남은 시간은 되도록 많은 책을 읽겠다.
둘째 날은 일찍 일어나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박물관에 가서 인류가 이루어 놓은 역사의 발자취를 보고 꼭 미술관에 가서 인간의 놀라운 창조력을 음미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고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소리와 저 바다의 웅장한 파도 소리를 듣겠다. 그리고 사람들의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네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밤에는 극장에 가서 한편의 연극을 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예술성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겠다. 이 헬렌 켈러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 될 일이 많이 있습니까
4. 여호수아의 가정은 노아의 가정이나 갈렙의 가정이나 고넬료의 가정처럼 전혀 물질의 탐심이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사람마다 권력을 잡으면 제일 먼저 생기는 것이 물질에 대한 탐심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만을 여호수아의 가문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아간처럼 재산과 물질에 눈을 떴더라면 가나안의 모든 땅이나 재산을 마음껏 자기소유로 만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가나안 전 영토를 전 국민에게 분배하고 자신은 에브라임 산지인 딤낫 세라라고 하는 박토를 분배받고 마침내 죽어서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수 19:49-50). 물질에 탐심이 없는 청렴한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재판하고 싸우는 가정을 보십시오. 부정 축제 때문에 망신을 당하는 한국의 정치 고관들을 보십시오! 요즈음 한국에서는 재산 안 주기 운동을 벌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참된 인간의 행복은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나 권력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혼을 위한 절대요소는 인격이고 바로 성격입니다.
5. 여호수아의 가정은 오로지 일편 단심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한 가정입니다. 우리도 금년 가정의 달에 이 한가지를 분명히 작정하고 지나가야 할 줄 압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유럽에 가면 가는 곳마다 교회당 판다는 광고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시카고에서 한때 4만 명을 수용했던 무디 기념 예배당을 위시해서 기독교 전성기에 지어졌던 큰 교회당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있으나 청년들이 없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들은 항상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하는 가정들이 됩시다. 또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학박사가 되신 분들이나 사업해서 거부가 되신 분들도 하나님 잘 믿고 하나님 잘 섬기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가정은 신앙 지도를 잘 받고 믿음과 꿈이 같은 가정이었습니다. 항상 불평이 없이 감사하는 가정이었고 물질적으로 청렴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다짐한 가정이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 말씀을 생각하고 믿음의 길을 정진해 가는 가정들이 됩시다.
1. 여호수아의 가정은 온 가족이 그의 가부장적 신앙 지도를 잘 따른 가정이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신앙 가정은 가장의 영적 신앙 지도를 잘 따르며 순종하는 가정입니다.몇 가지 실례를 든다면 인류의 시조 아담의 가정의 실패 원인은 아담의 가부장적 영적 지도를 하와가 무시하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롯의 가정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가정의 그의 딸들과 결혼한 사위들과 롯의 아내가 그 가정의 가장의 영적 지도를 받지 않고 세상 재리와 향락에 탐닉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구약 시대에 살았던 노아의 가정은 신약의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온 가족이 아버지의 신앙적 지도를 잘 받고 그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한 번 상상해 봅시다. 노아는 120년간을 날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그 가족 중 자부나 아들이나 아내가 오늘도 똑같은 일을 계속하느냐고 물으면서 휴일도 없냐고 불평했다면 어찌 그 거대한 공사를 마칠 수 있으며 어찌 방주가 완성되었겠습니까 고넬료의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고넬료는 군인이었습니다. 군인이 로마 나라에 충성하기보다는 매일 식량이나 구제 물자를 어깨에 메고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러 다닌다고 가족 중 아내나 아들이 빈정대거나 반대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 가정 예배나 드리고 전도나 하고 돌아다닌다고 반대하고 불평했다면 어찌 가이사랴의 전도 운동이 성공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군대 장관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고도 14년간을 수십 차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때야말로 매일 전쟁이요, 그것도 주야가 없는 무서운 살육전이었습니다. 이 때 만일 여호수아 가정의 단 한사람이라도 가정의 권위와 지도력을 받지 않고 오늘도 싸움이요, 오늘도 살육이요, 오늘도 전쟁이요 라고 했더라면 가나안 정복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가정은 가장의 영적 권위와 그 신앙적 지도에 말없이 잘 순종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점령은 끝이 났고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곳에 선민의 신국을 세우셨습니다. 여호수아의 가정은 모든 식구들이 가부장적 신앙 지도를 잘 따랐습니다.
2. 여호수아의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같은 믿음, 같은 꿈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물론 한 가족의 믿음이 같으면 그 가족의 꿈도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가족들도 여호수아와 같은 꿈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힘써 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곳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선민의 신국을 건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꿈이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 11:1). 믿음이 있으면 꿈이 있고 꿈이 있으면 믿음도 있습니다. 가장 모범적인 가정은 온 가족의 믿음도 같아야 하고 바라보는 꿈도 같아야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회와 제직과 교우들의 믿음과 꿈이 같아야 합니다. 매주일 예배 전에 하나님 앞에 사도신경으로 믿음의 일치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일치한 믿음으로 예배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같으면서도 꿈이 같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인들의 믿음은 같은 것 같은데 꿈이 다르기 때문에 분규하는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당 건물을 신축하느냐, 개축하느냐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분규를 하는 교회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믿음과 같은 꿈을 지니고서 매진해 나갑시다.
3. 여호수아의 가정은 한 사람의 불평도 없는 순종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범 가정은 불평없이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반복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만 남편이 하는 일을 아내가 불평하고 아버지가 하는 일을 자녀들이 불평한다면 어찌 가도가 설 수 있으며 가풍이 확립될 수 있겠습니까! 여호수아의 가족들은 불평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나안 전쟁에 참전하여 땀과 피를 흘려 싸웠습니다. 가정의 어떤 일도 온 집안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여의사가 목사와 결혼하였습니다. 그 여의사는 나는 당신과 결혼한 것이지, 목사와 결혼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내 수입으로 능히 생활할 수 있으니 사표를 내라고 목사에게 계속 졸라대었습니다. 그 가정은 마침내 파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5월은 일년 중 가장 아름답고 복된 신록의 계절입니다.
그렇다면 5월은 불평 없는 감사의 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정 주심을 감사하고 자녀와 부모를 주신 것을 감사하며 우리 모두에게 건강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은 힘이 들지만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는 이 사실만 가지고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몇 일전에 헬렌 켈러에 대한 기사를 읽고 새삼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눈 못 보는 소경,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말 못하는 벙어리의 3중고의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일 내가 3일간 만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
첫째 날은 그 동안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들을 만나 그 고마운 얼굴들을 마음껏 보고 실컷 얘기를 나누며 그리고 갓난 아이들의 얼굴도 보고 남은 시간은 되도록 많은 책을 읽겠다.
둘째 날은 일찍 일어나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박물관에 가서 인류가 이루어 놓은 역사의 발자취를 보고 꼭 미술관에 가서 인간의 놀라운 창조력을 음미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고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소리와 저 바다의 웅장한 파도 소리를 듣겠다. 그리고 사람들의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네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밤에는 극장에 가서 한편의 연극을 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예술성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겠다. 이 헬렌 켈러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 될 일이 많이 있습니까
4. 여호수아의 가정은 노아의 가정이나 갈렙의 가정이나 고넬료의 가정처럼 전혀 물질의 탐심이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사람마다 권력을 잡으면 제일 먼저 생기는 것이 물질에 대한 탐심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만을 여호수아의 가문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아간처럼 재산과 물질에 눈을 떴더라면 가나안의 모든 땅이나 재산을 마음껏 자기소유로 만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가나안 전 영토를 전 국민에게 분배하고 자신은 에브라임 산지인 딤낫 세라라고 하는 박토를 분배받고 마침내 죽어서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수 19:49-50). 물질에 탐심이 없는 청렴한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재판하고 싸우는 가정을 보십시오. 부정 축제 때문에 망신을 당하는 한국의 정치 고관들을 보십시오! 요즈음 한국에서는 재산 안 주기 운동을 벌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참된 인간의 행복은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나 권력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혼을 위한 절대요소는 인격이고 바로 성격입니다.
5. 여호수아의 가정은 오로지 일편 단심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한 가정입니다. 우리도 금년 가정의 달에 이 한가지를 분명히 작정하고 지나가야 할 줄 압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유럽에 가면 가는 곳마다 교회당 판다는 광고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시카고에서 한때 4만 명을 수용했던 무디 기념 예배당을 위시해서 기독교 전성기에 지어졌던 큰 교회당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있으나 청년들이 없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들은 항상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하는 가정들이 됩시다. 또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학박사가 되신 분들이나 사업해서 거부가 되신 분들도 하나님 잘 믿고 하나님 잘 섬기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가정은 신앙 지도를 잘 받고 믿음과 꿈이 같은 가정이었습니다. 항상 불평이 없이 감사하는 가정이었고 물질적으로 청렴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다짐한 가정이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 말씀을 생각하고 믿음의 길을 정진해 가는 가정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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