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사랑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 (수5:9-12,고후5:17-21,눅15:1-3)

본문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왜 사느냐'고, 그 삶의 목적 을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자식을 위해서 산다'고 말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의 '자식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 합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위해서는 용돈 얼마 드리는 것 조차 아까워하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는 막대한 빚을 지면서까 지 희생하며 헌신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부모를 섬기는 일에는 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롭 지만, 자식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마, 자식 위하는 마음의 십분 지 일만이라도, 부모를 위하여 마음을 쓴다면,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여준 그대로, 자식들도 매양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 그러니, 혹 우리의 자식이 우리에게 섭섭하게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어찌 자식을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고 로, '자식을 열심히 가르치고 키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고 하는 소리는, 할 필요가 없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누가복음 15장 말씀은, 그 유 명한 '탕자의 비유'입니다. '자식 낳아서 키워봤자, 무슨 소용 이 있겠느냐'고 하는, 한탄의 소리가 저절로 나올 법한, 어느 불효자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리 분명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비유의 주인공이, 탕자가 아닌 그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작은아들이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회개하고 돌 아왔다는 것이, 이 비유의 중심 내용이 아닙니다. 사실은, 자 식이 아무리 몹쓸 짓을 하다가 돌아왔을지라도, 그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잘못을 깨닫고 바르게 살겠 다고 하는, 자식의 결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이 그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식은 그 부모의 사랑을 그대로 믿지 않 습니다. 무슨 섭섭한 일이 있으면 꼭 기억하고 있다가, 부모 에게 그 사실을 기어이 털어놓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분명히 그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극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믿어달라고, 그 자식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 러면서도, 자신의 부모가 갖고 있는 자식 사랑은 잘 믿으려 하지 않고 있으니, 참 모순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공통된 문제점입니다. 이 문제 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탕 자의 비유'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지은 죄를 털어놓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은 용서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 용서 와 사랑을, 본인이 직접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 효과가 나 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재산 분배를 요구할 때, 그 아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벌써,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소행을 다 이해하고 용서했을 것 입니다. 말려도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들 의 소원대로 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아들이 자신의 어 리석음과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는 기다렸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아들에게, 무 슨 핀잔이나 꾸지람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버 지는, 돌아온 작은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아버 지는, 작은아들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갖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서,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 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부모의 마음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이 사랑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그리고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하 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그 자식을 위하여 자나깨나 염려 하고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노심초사 늘 걱정하며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처음에 말씀드리기를, 부모된 사람들에게 '왜 사느 냐'고 물었을 때, '자식을 위하여 산다'고 대답할 사람이 많 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식이 잘 된다는 보장만 확실 하다면, 목숨까지도 내놓을 부모가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을까요 물론, 우리는 그 공식적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얼마나 진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그 죽음을 감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리 많지가 않습니다.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큰아들이 불평했습니다. "저는, 지금까 지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저에겐 한 번도 잔치를 해 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계집질하는데 돈을 다 써버린 동생을 위해서는,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십니까"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늘 나와 함 께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더냐" 이 말은, '나는 너를, 늘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었다. 내 목숨까지 라도, 너를 위하여 줄 수 있다는 것을, 너는 알지 못하고 있 느냐'하는 뜻입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언제나 덧입고 살 아가면서도, 1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후 5:20에서주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사랑을 의심한 나머지,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 고 있습니다. 작은아들은, 자신이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아들된 자격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닌 일꾼으로서, 아버지 밑에 서 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죄를 지었다고, 그 아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었다는 기쁨에 못 이겨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를 팔아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그 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겠습니까 그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짓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가 있다면, 그 것은 다른 죄가 아니라,
2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살면서도, 그 사랑을 깨닫 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작은아들은 하마터면, 아버지의 사랑 을 포기하고 살아갈 뻔했습니다. 다행히, 일꾼이 되어 살 생각으로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 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는, 집을 나간 자녀들이 어서 돌아오 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의 본질 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처럼, 큰 죄 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어서 속히,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갑시다. 큰아들처 럼, 몸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살아 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정말 불충스러운 일입니다. 3그런 사람은, 자녀된 특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 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사랑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 죽게 된 것입니다. 그 후손들이, 이제 가까스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 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길갈'이라는 곳에서 진을 치고 머무 르면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 할례는, 새 인생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애굽에서 당한 수치는 물론, 광야에서 하나님께 저지른 모든 죄를 벗어버리 고, 이제 새롭게 살아가겠다는 결의로,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만이 행할 수 있는 특권 이었습니다. 물론, 할례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고, 그에 따른,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주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표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고, 주 안에서 바 르게 살겠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세상 중심으로 살 아간다면, 그것은 주의 자녀된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마치, 돌아온 탕자가 그 자녀된 품위를 잃어버리고, 일꾼처럼 행동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전히 계집질이나 하고,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산다면, 정말 아버지의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집을 나가 살 때보다, 아버지의 속을 더 상하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왕, 예수 믿고 새 인생을 살기로 하고, 세례 까지 받았으니, 이제부터 주의 자녀답게 살지 않겠습니까 바울 선생은, 고후 5:17 이하에서, 새로운 인생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 사람이 된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전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로 하여금 새 인생을 살게 하려고, 하나님 께서는 그 아들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결심과 의지 때문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께서 사랑이 많으신 까닭이다. 우리는 주님께 사랑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그 사랑의 빚 을 갚는 방법은, 먼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에 게 나눠주어서, 그들도 그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새 인생은 사랑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에 흔해빠진 사랑 타령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 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2.우리가 받아들여, 우리도 그 사랑을 널리 전파하며 실천 하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로서 부탁하는 말이라고 하 면서, 예수께서 주신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화해하 라(고전5:20)고,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서, 자신의 지난 죄를 뉘우친 후, 주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1주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품꾼이 되겠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함께 살면, 풍성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것 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품꾼이 아닌 아들' 로 탕자를 받아주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품꾼이 아닌 자녀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면 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아직까지 큰아들과 같은 경우는 없습니까 하나님을 의심한 나머지,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분은 없는지 요 어서 속히, 주님께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2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아와야 합니다. 형제를 원망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 한 불평이나 섭섭함도 버려야 합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와 함 께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건만, 자기 아우에게는 사랑을 베풀지 못했습니다. 아우가 잃어버린 재물을, 친동생 의 인생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고 있습니 까 인간입니까 아니면, 물질입니까 만일, 내가 사람보다 물 질을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도 나를, 물질보다 더 귀하게 여 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했던 죄, 세상 즐거움을 사랑한 나머지 교회를 멀리했던 죄,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던 죄를, 이런 모든 죄를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죄를 깨달아야만, 그런 죄까지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길갈에서 할례를 행함으로써, 그 모든 수 치를 벗어 던졌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 앞에서, 그 모든 죗짐 을 벗어 던집시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수치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 이 행동을 하여, 그 동안 얼마나 부끄럽게 살았습니까 3이제, 우리는 주 안에서 새 인생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기본적인 틀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 하시는 까닭에, 죄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입은 사랑을, 우리의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사는 것입니다. 옹졸한 큰아들처럼,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용 서할 줄 모르고 사랑할 줄 모르면,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 에 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미워하고 정죄하는 옛 생활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난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을 때,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의 사랑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늘 새롭게 살 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1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