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가 큰 사람입니다 (욥38:1-7,34-41,히5:1-10,막10:35-45)
본문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진인사(盡人事) 대천명(待天命)'이라는 한문 숙어가 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있는 힘을 다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모사(人間謀事)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 일의 계획은 사람이 하되, 그 일의 성공 여부는 하나님 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암병 치료 의사인 원종수 권사도 하는 말이지만, 제 주변의 의사들 도 "의사가 최선을 다하여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지만, 그 병을 낫게 하는 힘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천의 김현중 집사도 환자를 열심히 치료해 준 다음에는, "제가 할 일은 다했습니다. 이제, 새 살이 돋아나게 해서 완전히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병 낫 기를 원하시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하고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영춘보건지소에 있다가, 지금은 인천 세브란스병원에서 정형외과 전 문의로 활동하는 류주형씨가, 지난 주 이곳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형제와 점심을 들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수련의(修鍊醫)로 있을 때에는 주저했지만, 지금 전문의가 된 다음에는 자신 있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마친 다음, 환자나 보호자 에게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손에 달렸 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욥기를 보면, 하나님은 욥에게너는 누구이기에, 뭘 안다고 떠드는가하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질 존재 인 미미(微微)한 인간이, 어찌 영원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무슨 항의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38장 2절에서 하나님은,잘 알지도 못하면 서 허튼 소리를 하여, 나의 일을 방해하지 말라고 타이르십니다. 욥은, 하나님께서도 인정한 의인(義人)입니다.
그러나 그 의(義)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끝까지 신뢰하고 따를 때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의(義)지, 일단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면, 그 의(義)는 깨어지고 마는 것 입니다. 욥이 고난 초기에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니 어련하랴 싶어서, 그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이 한없이 계속되자, 욥은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날 버리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뵙고, '도대 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하 고 따져볼 생각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 하나님께 잘못 한 일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동서사방으로 다니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산에도 가고 바다로도 가봤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자신의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주변에서 늘 가까이 계셨건만, 욥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뵙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두운 죄 가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는 누구인가하는, 주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태초부터 시작 하여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계실 하나님 앞에서, '과연 너는 어떤 존재 인가' 하는 것입니다. '너는 비를 내리게 하고 번개를 치게 할 수 있는 가' '너는 티끌을 모아 흙덩이가 되게 할 능력이 있던가' 계속되는 질 문에, 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의(義)를 내세워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시련과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께 따져보려고 했던 욥은, 오히려 더욱 비참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바르게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철저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1.한없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요즘 정치계에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이 얼 마나 많이 배운 사람들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 들입니까 변호사, 대법원 판사, 경제학 박사, 그리고, 시장과 도지사라 고 하는, 참으로 우리들로서는 감히 넘보지 못할 명예를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 높아져 명예롭게 되려는 욕심 때문에, 상대방의 허물과 비리를 캐내어 밝히면서 헐뜯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이제는 사법 당국에 서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잘 났는지, 한 번 견주어 보자는 것입니다. 누가 더 힘이 센 지, 죽을 때까 지 싸워보자는 것입니다.
1자신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죄가 그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행하 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한 때, 대통령 꿈을 꾸었던 김동길 교수가, 지난 해 11월, 어느 세미 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이 부정 축재 혐의로 교도 소에 가 있는데도, 여당에서는 대통령이 되겠는 사람이 9명이나 나섰다. 자신들은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하고, 한탄 하듯이 말했습니다. 물론 자신도 포함해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사실, 지금 현직 대통령이나, 앞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사람도, 미래를 장담치 못할 형편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빈손으 로 간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돈 벌고 명예를 얻는 일 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마치 불나비가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에 뛰 어들 듯이, 사람들은 욕망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은 결코 그런 일이 없으리라 장담하지만, 어느 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의 늪으로 깊이 빠져 들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막10:42에서,권력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그 권 력으로 내리누른다고 하시면서,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타이 르십니다. 오히려,남을 지배하려 할 것이 아니라, 겸손히 자기를 낮춰 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교훈을 늘 배우고 있는 우리들이건만,
2겸손히 섬기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조차, 그런 잘못에 빠져 있었습니다. 과거 그들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로서, 주의 제자가 된 건만 해도 큰 영광이로되, 그들 은 엉뚱한 욕심까지 품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왕이 되면,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선수(先手)를 쳤습니다. 주께서는 머지 않아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입니다. 두 사람은 예수 곁에 와서 조용히 부탁을 했습니다.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우리는 주님 다음의 자리에 앉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은 낌새를 눈치 채고 두 제자에 게 화를 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제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원래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계셨던 예수께서는,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서, 종과 죄인의 자리에까지 내려가고 있는데, 제자들은 한없이 높아질 생각만 했습니다. 밥을 하려 고 쌀을 일 경우, 충실치 못한 낟알들이 물위로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3이와 같이, 내적으로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며 뽐 내는 법입니다. 물론, 자기가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사는 사람들 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부족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과제이나, 참으로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큰 소리를 내고,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불만과 불평을 더 많이 털어놓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자신의 부족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큰 소리를 내게 마련입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탓하게 되는 것도, 결국은 그 속이 좁아졌을 때에 나오는 버릇입니다. 인격이 온전하며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기보다는, 잘 덮 어주며 이해하려고 힘 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그는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었으나, 스스로 자신을 낮춰 섬기는 자 가 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노래하기를,우리 하나님, 위대하고 강하고 두렵고, 한 번 세운 언약은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9:32)이라고 했습니다.
1하나님은 전능하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머리로는 도무지 다 헤아려 알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께서는 당신에 관한 것을 약간 계시(啓示)하셨는데,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것 중, 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합니다. 시간적으로, 한 치 앞의 일도 예단(豫斷)할 수 없거니와, 공간적으로 도 지구 저 편의 일들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는 배(胃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조차 잘 모릅니다. 꾸르륵 소리 가 나면, 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짐작만 할뿐이지, 내시경으 로 들여다보기 전에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다 알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 왜소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이런 인간에 비해서,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 십니다. 성경의 한 부분만이라도 잘 이해한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 하심과 위대하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 신 것입니다.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당신 발 밑에 두고 호령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종이 되어 섬기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크고 높은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종이 되어 섬기는 삶 을 사셨으니, 우리가 어찌 높고 큰 자가 되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뭘 잘났다고 큰소리치고 불평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주께서 그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에, 그가 누구신지 확실히 알았어야 했습니다. 낮고 천한 종들이나 하는 일을, 주께서 자청하고 나 섰을 때, 제자들은 예수가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 어야 했습니다.
3예수님의 그런 삶이, 주를 따르는 모든 이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구세주가 되시는 것은, 그가 높은 지위에 올라 큰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무후무한 부자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아니 면,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가 되는 까닭은, 그가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그의 말씀과 삶이 우리 인생의 영원한 사표 (師表)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삶이란, 겸손과 온유를 갖춘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도, 결국은 우리 인간을 아끼고 섬기려는 마음에서 나온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이런 예수의 삶이 옳은 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구원함을 받습니다. 주를 따르는 것이 좋고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결심한 대로 살지 못하는 까닭에,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 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도 잘 알고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히 5:2에 보면,그도 연약한 인간이라,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을 동정한다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줄 성령님 을 보내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3.주 예수를 본받아서,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를 향하고 있으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렇다면, 주 를 향하고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1주님 앞에서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보면, 그 뒷 부분이 꺾여 있는 경우 가 많습니다. 그것은, 몸을 굽혀서 손으로 운동화 뒷부분을 잡아당기기 가 귀찮으니까, 몸을 굽히지 않고 신발을 신으려다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능은, 몸과 마음 모두, 굽히기를 싫어합니다. 불교인들은 비록 쇠붙이로 만든 우상일지라도, 그 앞에 수없이 엎드 려 절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히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몸을 굽히기를 싫어 하는 것이 본능이지만, 그 본능을 이겨내야 합니다. 아무튼, 몸을 굽혀 숙이는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는 승리하는 인생 을 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큰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 야 한다(막10:43)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렇게 사셨습니다.
2우리도 예수의 뒤를 성실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지혜는, 권력을 갖고 남은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굽혀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고 종이 되어 섬기는 삶입니다. 그런 삶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에는 어리석은 짓이지만, 말씀에 비 춰볼 때에는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하늘의 진리는
3종이 되어 섬기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길은 어렵습니다. 고난의 길입니다. 왜 고난인 고하니,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저하지 마십시오. 우리 인생은 짧습니다. 짧은 인생이 끝나고 나면, 누가 더 지혜로운 인생 을 살았는지, 금방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신촌 세브란스에서 전도 활동을 하고 있는 김복남 씨가 '교회와 신 앙'이라는 잡지에 쓴 글 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하는 최장로님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디 스크 수술 후유증 때문입니다. 수술이 잘못되어,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의사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를 상대로 고소를 하려다가,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더 클 것 같아서, 소송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수술하기 전에 열심히 기도했으니, 잘못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태도가 세브란스 병원 의사들을 감격시켰습니다. 그러나, 최장로님이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병실 창가 자리를 새로 입원한 환자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입구 문 쪽 을 택했습니다. 그는 여러 사람이 쓰는 병실에서 언제나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양보를 했습니다. 그런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환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최장로님은 많은 환자들에게 전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병실 식구를 모두 전도해서 함께 참례했습니다.
그런데, 김복남 전도사를 정말 감동시킨 것은, 최장로님의 다음과 같 은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비록 하반신은 움직이지 못하 지만, 병원에 입원한 후, 영혼이 치료가 되어, 내 영혼은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장로가 되어 일한다고 하면서도, 전도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라도 만들어서 전도시키는 것 같아, 오히 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일어서서 걸을 수 없을지라도, 이렇 게 병원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면, 제 영혼은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후 최장로님은 조금씩 걷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전도사 님의 글은 이렇게 마쳐지고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이기적인 사람보 다는, 남을 나보다 높게 여기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성도 여러분! 최후의 승리를 할 때까지, 세상 유혹을 잘 이겨내십시 오. 그래서, 천국에서 영원히 천사들의 시중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그 의(義)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끝까지 신뢰하고 따를 때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의(義)지, 일단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면, 그 의(義)는 깨어지고 마는 것 입니다. 욥이 고난 초기에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니 어련하랴 싶어서, 그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이 한없이 계속되자, 욥은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날 버리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뵙고, '도대 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하 고 따져볼 생각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 하나님께 잘못 한 일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동서사방으로 다니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산에도 가고 바다로도 가봤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자신의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주변에서 늘 가까이 계셨건만, 욥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뵙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두운 죄 가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는 누구인가하는, 주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태초부터 시작 하여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계실 하나님 앞에서, '과연 너는 어떤 존재 인가' 하는 것입니다. '너는 비를 내리게 하고 번개를 치게 할 수 있는 가' '너는 티끌을 모아 흙덩이가 되게 할 능력이 있던가' 계속되는 질 문에, 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의(義)를 내세워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시련과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께 따져보려고 했던 욥은, 오히려 더욱 비참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바르게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철저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1.한없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요즘 정치계에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이 얼 마나 많이 배운 사람들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 들입니까 변호사, 대법원 판사, 경제학 박사, 그리고, 시장과 도지사라 고 하는, 참으로 우리들로서는 감히 넘보지 못할 명예를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 높아져 명예롭게 되려는 욕심 때문에, 상대방의 허물과 비리를 캐내어 밝히면서 헐뜯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이제는 사법 당국에 서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잘 났는지, 한 번 견주어 보자는 것입니다. 누가 더 힘이 센 지, 죽을 때까 지 싸워보자는 것입니다.
1자신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죄가 그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행하 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한 때, 대통령 꿈을 꾸었던 김동길 교수가, 지난 해 11월, 어느 세미 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이 부정 축재 혐의로 교도 소에 가 있는데도, 여당에서는 대통령이 되겠는 사람이 9명이나 나섰다. 자신들은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하고, 한탄 하듯이 말했습니다. 물론 자신도 포함해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사실, 지금 현직 대통령이나, 앞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사람도, 미래를 장담치 못할 형편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빈손으 로 간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돈 벌고 명예를 얻는 일 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마치 불나비가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에 뛰 어들 듯이, 사람들은 욕망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은 결코 그런 일이 없으리라 장담하지만, 어느 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의 늪으로 깊이 빠져 들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막10:42에서,권력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그 권 력으로 내리누른다고 하시면서,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타이 르십니다. 오히려,남을 지배하려 할 것이 아니라, 겸손히 자기를 낮춰 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교훈을 늘 배우고 있는 우리들이건만,
2겸손히 섬기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조차, 그런 잘못에 빠져 있었습니다. 과거 그들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로서, 주의 제자가 된 건만 해도 큰 영광이로되, 그들 은 엉뚱한 욕심까지 품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왕이 되면,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선수(先手)를 쳤습니다. 주께서는 머지 않아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입니다. 두 사람은 예수 곁에 와서 조용히 부탁을 했습니다.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우리는 주님 다음의 자리에 앉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은 낌새를 눈치 채고 두 제자에 게 화를 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제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원래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계셨던 예수께서는,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서, 종과 죄인의 자리에까지 내려가고 있는데, 제자들은 한없이 높아질 생각만 했습니다. 밥을 하려 고 쌀을 일 경우, 충실치 못한 낟알들이 물위로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3이와 같이, 내적으로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며 뽐 내는 법입니다. 물론, 자기가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사는 사람들 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부족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과제이나, 참으로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큰 소리를 내고,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불만과 불평을 더 많이 털어놓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자신의 부족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큰 소리를 내게 마련입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탓하게 되는 것도, 결국은 그 속이 좁아졌을 때에 나오는 버릇입니다. 인격이 온전하며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기보다는, 잘 덮 어주며 이해하려고 힘 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그는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었으나, 스스로 자신을 낮춰 섬기는 자 가 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노래하기를,우리 하나님, 위대하고 강하고 두렵고, 한 번 세운 언약은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9:32)이라고 했습니다.
1하나님은 전능하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머리로는 도무지 다 헤아려 알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께서는 당신에 관한 것을 약간 계시(啓示)하셨는데,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것 중, 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합니다. 시간적으로, 한 치 앞의 일도 예단(豫斷)할 수 없거니와, 공간적으로 도 지구 저 편의 일들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는 배(胃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조차 잘 모릅니다. 꾸르륵 소리 가 나면, 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짐작만 할뿐이지, 내시경으 로 들여다보기 전에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다 알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 왜소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이런 인간에 비해서,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 십니다. 성경의 한 부분만이라도 잘 이해한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 하심과 위대하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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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 신 것입니다.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당신 발 밑에 두고 호령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종이 되어 섬기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크고 높은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종이 되어 섬기는 삶 을 사셨으니, 우리가 어찌 높고 큰 자가 되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뭘 잘났다고 큰소리치고 불평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주께서 그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에, 그가 누구신지 확실히 알았어야 했습니다. 낮고 천한 종들이나 하는 일을, 주께서 자청하고 나 섰을 때, 제자들은 예수가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 어야 했습니다.
3예수님의 그런 삶이, 주를 따르는 모든 이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구세주가 되시는 것은, 그가 높은 지위에 올라 큰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무후무한 부자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아니 면,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가 되는 까닭은, 그가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그의 말씀과 삶이 우리 인생의 영원한 사표 (師表)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삶이란, 겸손과 온유를 갖춘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도, 결국은 우리 인간을 아끼고 섬기려는 마음에서 나온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이런 예수의 삶이 옳은 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구원함을 받습니다. 주를 따르는 것이 좋고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결심한 대로 살지 못하는 까닭에,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 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도 잘 알고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히 5:2에 보면,그도 연약한 인간이라,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을 동정한다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줄 성령님 을 보내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3.주 예수를 본받아서,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를 향하고 있으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렇다면, 주 를 향하고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1주님 앞에서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보면, 그 뒷 부분이 꺾여 있는 경우 가 많습니다. 그것은, 몸을 굽혀서 손으로 운동화 뒷부분을 잡아당기기 가 귀찮으니까, 몸을 굽히지 않고 신발을 신으려다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능은, 몸과 마음 모두, 굽히기를 싫어합니다. 불교인들은 비록 쇠붙이로 만든 우상일지라도, 그 앞에 수없이 엎드 려 절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히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몸을 굽히기를 싫어 하는 것이 본능이지만, 그 본능을 이겨내야 합니다. 아무튼, 몸을 굽혀 숙이는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는 승리하는 인생 을 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큰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 야 한다(막10:43)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렇게 사셨습니다.
2우리도 예수의 뒤를 성실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지혜는, 권력을 갖고 남은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굽혀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고 종이 되어 섬기는 삶입니다. 그런 삶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에는 어리석은 짓이지만, 말씀에 비 춰볼 때에는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하늘의 진리는
3종이 되어 섬기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길은 어렵습니다. 고난의 길입니다. 왜 고난인 고하니,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저하지 마십시오. 우리 인생은 짧습니다. 짧은 인생이 끝나고 나면, 누가 더 지혜로운 인생 을 살았는지, 금방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신촌 세브란스에서 전도 활동을 하고 있는 김복남 씨가 '교회와 신 앙'이라는 잡지에 쓴 글 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하는 최장로님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디 스크 수술 후유증 때문입니다. 수술이 잘못되어,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의사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를 상대로 고소를 하려다가,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더 클 것 같아서, 소송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수술하기 전에 열심히 기도했으니, 잘못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태도가 세브란스 병원 의사들을 감격시켰습니다. 그러나, 최장로님이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병실 창가 자리를 새로 입원한 환자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입구 문 쪽 을 택했습니다. 그는 여러 사람이 쓰는 병실에서 언제나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양보를 했습니다. 그런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환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최장로님은 많은 환자들에게 전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병실 식구를 모두 전도해서 함께 참례했습니다.
그런데, 김복남 전도사를 정말 감동시킨 것은, 최장로님의 다음과 같 은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비록 하반신은 움직이지 못하 지만, 병원에 입원한 후, 영혼이 치료가 되어, 내 영혼은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장로가 되어 일한다고 하면서도, 전도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라도 만들어서 전도시키는 것 같아, 오히 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일어서서 걸을 수 없을지라도, 이렇 게 병원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면, 제 영혼은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후 최장로님은 조금씩 걷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전도사 님의 글은 이렇게 마쳐지고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이기적인 사람보 다는, 남을 나보다 높게 여기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성도 여러분! 최후의 승리를 할 때까지, 세상 유혹을 잘 이겨내십시 오. 그래서, 천국에서 영원히 천사들의 시중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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