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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 (욥42:12-17)

본문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나게 될 때, 특히 그 문제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때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지, 사랑하신다면 왜 고난을 허용하시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는 일이 다 그렇습니다만 인간의 이해력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고난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여간 고통스런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고난받을 이유가 없는 것같은데도 고난을 받을 때 무척 당황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사람들이 고난을 받는 이유는 네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심판의 형태로서 나타나는 고난이 있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올바른 삶을 살지 못할 때 주시는 징계로서의 고난이 있으며(히12:6-7),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부분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바울이나 베드로가 받았던 것처럼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서의 고난이든지 고난을 받는 것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고난 가운데 특별히 세 번째 의미로 주시는 고난에 대하여 욥기서의 결론 부분에 있는 내용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비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우리는 첫 번째로는 욥기서의 주제와 특징,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욥기서의 주제와 특징 우리는 이 본문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욥기서가 어떤 책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의 본문이 다 그러합니다만 한 부분만 가지고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전체 문맥 가운데 그 본문의 의미를 결정해야 합니다. 특히 욥기서는 항상 전체 문맥에서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방법으로 욥기서를 읽을 때 많은 영적 유익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욥기서를 이해하는 중심된 관점은 이 책이 성도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지혜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교회역사에서 욥기서는 잠언, 전도서와 함께 성도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고 하여 지혜서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래서 욥기서가 지혜서이기 때문에 지혜문학이 가지는 공통적인 관심을 가지고 욥기서를 이해해야 합니다. 즉 욥기는 "지혜란 무엇이고 이 지혜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책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기서의 주제는 참된 지혜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라고 할 때 우리 인간을 가장 행복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꾀나 적당한 거짓말, 권모술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인데, 욥기서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 결론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궁극적으로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기서에서 보여주는 성도의 중요한 지혜입니다. 우리가 "욥"이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 우선적으로 머리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까 그것은 아마도 아무런 죄도 없이 고난을 받은 사람으로 머리 속에 연상될 것입니다. 욥기서를 읽을 때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세상에 고통이 있을까 왜 병과 고통이 있는가 마귀는 왜 악한 일로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괴롭게 하는가 왜 악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는 성도들에게 찾아오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전부 다 알 수는 없지만 욥기서를 공부하면 이러한 문제들을 보는데 있어서 한 관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욥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욥기 1:1에 욥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더라."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셔서 크게 번창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욥에게 왜 고난이 오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그 원인을 욥기 1-2장을 읽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욥기 1장을 보면 하루는 하나님의 전에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있는데 사탄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너는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1:8)고 하셨습니다. 그 때 사탄은 말하기를 "욥이 어떻게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다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주께서 그 소유물을 치시면 정녕 그가 여호와를 대면하여 욕할 것입니다."(욥1:9-11)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의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인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라"(욥1:12)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욥이 그의 소유물들을 다 빼앗겼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1:22에 욥의 태도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그러자 사탄은 다시 하나님께 말하기를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주님에게 욕하게 될 것입니다"(욥2:5)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그를 네 손에 붙이겠다. 그러나 그 생명은 해하지 말라"(욥2:6)고 하시면서 욥이 고난을 받도록 사탄에게 허락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볼 때 욥이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이 물질적인 축복을 해 주었다거나 건강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하는 것을 사탄에게 증명해 보이려는 거룩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욥은 이러한 하나님의 보좌에서 일어난 일과 그가 고통받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중요한 것은 욥이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가 당하던 고난이 다르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욥에게 있어서는 그가 당하고 있던 고난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신자에게도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 신자들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욥은 그에게 일어난 재앙의 원인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세 친구들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데만 사람이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는 사람입니다. 욥기서는 욥과 이 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친구들이 욥을 찾아와서 욥이 당하는 고난을 자기 방식대로 설명하였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엘리바스는 "너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아니하느냐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아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가 끊어지는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욥4:6-7)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망하게 한다든지, 정직한 자가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닷은 "하나님의 통치행위가 어떻게 잘못될 수 있겠느냐 그는 공의로 판단하실 분이시다."라는 전제하에 욥의 일곱 아들과 세 딸의 죽음을 하나님께 범죄한 연고라고 지적하였습니다(욥8:4). 그리고 빌닷은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욥8:5-7에 이렇게 제시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여러분! 욥이 그의 친구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정직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의 믿음을 어떻게 칭찬하였는지 아세요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정직하고 순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욥1:8) 그러면 욥의 친구들의 말을 들은 욥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요 그의 친구들은 그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욥의 죄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욥의 친구들은 이러한 방식으로만 욥의 고난을 이해하였을까요 그들은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온다는 한 가지 사상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대로 악을 행하는 자는 벌을 받고 선을 행하는 자는 상을 받는다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어떤 행위와 결과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법칙을 인과응보(因果應報, retribution)의 법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법칙은 대개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 책에서 욥의 세 친구들은 이 원칙만 가지고 욥의 고난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무덤에 갈 때까지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가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다가 고통 가운데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다른 법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태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욥이 고난을 당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간단하게 나마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욥의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증명하려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욥의 세 친구들 역시 몰랐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신자로서 처신할 수 있을까요 대개의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려주시고 설명해 주시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텐데"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계획을 알려주시고, 우리의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알려주시면 잘 믿을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믿음의 태도는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해도, 거기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단순하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섭리 욥은 그의 고난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원망하지 않았던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장래에 어떻게 될 지를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왜 그러한 고통을 허락하셨는지는 몰랐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개입하시며 만물을 그들의 지정된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신적인 능력의 지속적인 실행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쉬운 말로 바꾸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세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셔서 원래 계획하신 목적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 그러면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욥기서의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이야기를 마치 우리 가정의 아이들이 즐겨있는 동화의 마지막 장면같습니다. 동화의 마지막은 대개가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그 끝은 일반적으로 "그들은 오래 오래 장수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욥의 마지막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가 전에 소유하였던 것보다 두 배로 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1만 4천의 양, 6천의 약대, 2천의 소, 1천의 나귀입니다(욥42:12). 그리고 욥의 많은 친구들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욥은 일곱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들을 더 두게 되었습니다. 그 딸들은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욥기 42:16-17을 보면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축복은 동화의 마지막처럼 행복한 결혼생활과 아름다운 자녀들, 장수하는 복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지킨 욥의 행복한 결말입니다. 그러면 욥기서의 마지막에 이러한 행복한 결말을 기록하고 있는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도 믿음을 지키면 욥처럼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욥처럼 이러한 부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욥기의 결론을 통하여 보여주시려는 것은 욥처럼 아무런 이유없이 고난이 닥쳐도 어리석게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기서가 말하는 지혜입니다.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성경의 분명한 증거가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야고보서입니다. 야고보는 당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오래 참고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욥의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야고보서 5:11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주는 가장 자비로우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결말을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것인데, 그것이 곧 성도의 유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피조물에게 미치지만 가장 특별한 방법으로 교회를 보호하며 모든 일을 교회에 유익하도록 처리하신다"(제5장 7항)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성도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인간의 이해력으로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는 것이고, 성도에게 유익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은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요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가장 많이 갈등하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예기치 않은 고난을 만날 때입니다.
기독교 신문 가운데 기독교연합신문 7월26일자에 서안복음병원 원목이신 이태경 목사님이 쓴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체험적인 글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봉사하고 있는 병원에 한 젊은 부인이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이 부인의 남편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 병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요청을 받고 갔을 때 그 남편은 뇌를 다쳐 이미 뇌사 판정을 받은 상태였고 인공호흡기를 통하여 간간히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는 결혼한지 1년이 조금 넘었고, 부인은 임신 7개월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부인의 남편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남편은 죽었습니다. 그 남편의 주검 앞에 부인은 울부짖었습니다. 그 부인에게 여러분이라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이 부인에게 목사님은 "자매님, 자매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자매님, 힘을 내십시오."라는 말 외에 달리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 대답은 들은 부인은 "다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다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으로서는 이 말밖에 달리 어떤 말로 할 수 없었답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고난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시련과 좌절의 순간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궁극적인 목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욥이 고난의 순간에 보여준 것처럼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에게 보이신다는 것을 믿으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일을 어리석은 행동으로 비난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8:28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에게 고통스러운 고난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을 때 아름다운 결말을 주셨던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고통스럽게 느껴지던 그 일 조차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 무슨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가장 자비로우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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