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삶이 주는 교훈 (욥1:1-12)
본문
욥은 '완전하다'는 의미의 순전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간절히 찾으신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진실하고 열려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어쩌면 바로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찾고 있는 그런 사람일 수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만을 위해서 묵묵히 살아온 성도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찾으신 욥과 같은 사람이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있더냐 없느니라"(욥 1:8). 하나님께서 찾으신 욥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이다. 굳이 내가 내 자랑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모두 아신다. 현대는 자기 PR시대니 뭐니 하면서 말들을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들은 절대로 이런 달콤한 마귀의 유혹에 속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내세를 믿는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기 원한다면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무슨 상을 받을 것인가 속지 말자. 마귀는 우리를 속이고 있다.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을 이해하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 하나님이 사탄에게까지도 자랑했던 믿음의 사람 욥은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욥이 받은 축복에 나타난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욥은 어떠한 삶을 통하여 물질의 풍성한 복을 받았는가 상고해 보자.
1.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혼자 가는 길은 외롭지만 함께 가는 길은 즐겁다. 아담의 독처를 안스러워하신 하나님은 돕는 배필 하와를 통하여 동행하는 벗을 삼으셨다(창 2:20-25). 악하고 패역한 세대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노아의 삶이 외로울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이었기에 그는 즐거울 수 있었다(창 6:9). 비록 정든 고향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외로워 보였을지 모르나 그의 마음은 즐거웠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과의 동행"이었기 때문이다(히 11:8).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성도의 삶은 외로워 보이는 삶이다. 온갖 불법과 악이 관영하는 세대에서 세상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는 사람은 결국 세상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날 외로운 아담을 위해 하와를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길 떠나는 아브라함과 동행하신 하나님은 오늘의 성도들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욥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다. 욥이 '순전'(純全)한 사람이라는 것은 인격과 도덕적 차원에서 완전무결하고 결코 탓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욥이 죄가 없는 인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외식하지 않는 진실된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시 51:6의 말씀처럼 남들이 알든 모르든 상관할 바 없이 자신의 진실을 지켰다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성도들이 지녀야 할 신앙의 성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실한 자를 상대해 주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대체로 초신자 일수록, 구원받은 직후 일수록 구원의 감격과 은혜에 대한 순전함이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도 모르게 교회 생활이 깊어지고 직분이 주어질수록 순전은 잃어 버리게 되고 '외식'만 남게 된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순전한 마음이 있는가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다. 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되고 정직한 삶에 대하여 모범을 제시한다. 욥은 대 재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정직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들었다. 욥은 거대한 재물을 관리하면서도 정직한 사람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 또한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욥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했던 대표적인 사람 '에녹'을 보게 된다. 그는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한다(창 5:22).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 가운데는 '심판'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져 있다. 즉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라는 이름의 뜻처럼 므드셀라를 부를 때마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했을 것이고 그러기에 그는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썼을 것이다. 어느 성경 학자는 말하기를,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두려워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두려움이란 깊은 의미에서 볼 때 존경심과 경외하는 마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움과 사랑은 함께 자라게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결코 악에 속할 수가 없다. 악에서 떠났다는 욥의 삶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와 동행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2.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의 삶이나 행동이 곧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가르치셨다(마 7:20). 나무는 그 열매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욥의 삶, 욥의 가정이라는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수많은 열매를 보게 된다. 욥에게는 10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녀 교육에 남다른 신경을 쏟았다. 그야말로 교육 학자들이 추구하는 가장 완벽한 교육을 행한 사람이다. 또한 욥은 정직한 삶의 결과였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그에게 많은 재물을 허락했다. 성경은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자에게 소유의 복이 있음을 말씀하셨다(막 10:30). 뿐만 아니라 욥은 명예의 복도 함께 누렸다.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나님께서는 신실히 당신을 섬기는 욥에게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는 명예를 주셨다. 우리의 진실은 반드시 하나님이 보상해 주신다.
3. 가정의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욥의 화목한 가정에 대해 성경은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셨다”고 증거한다. 이 말씀은 형제간에 화목했다는 말씀이다. 이들은 1년이면 최소한 7회 정도는 형제들의 집을 번갈아 가며 모였을 것이다. 문제는 형제간에 화목코자 하는 정신자세이다. 성경은 형제간의 화목을 모든 화목의 제일로 꼽는다(마 5:24). 우리 모두 욥의 자녀들이 지녔던 형제간의 화목하는 자세를 배우자. 여기에 욥은 아들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는 예식을 행했다. 즉, 욥은 그 자녀의 명 수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욥의 자녀들은 모두가 순종했다. 욥의 가정은 부자간에 화목했고, 형제간에 화목했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었다. 욥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이유는 ‘혹시’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 그것이 욥으로 하여금 번제를 드리도록 한 것이다. 나의 자녀들이 혹시라도 하나님께 범죄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시 내가 부지중에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항상 ‘혹시’를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성도가 늘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룰 것을 권면한다(롬 5:1; 욥 22:21; 고후 5:20). 내가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갈 5:22). 십자기의 피가 있는 곳에 하나님과의 화목은 이루어진다(골 1:20).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룰까 예수님께서는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했다(막 9:50). 소금은 영원히 썩지 않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 곧 언약을 상징한다. 욥은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이겼고 고난을 극복했다. 그는 승리했다. 무엇이 그를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했는가 바로 그의 신앙과 그의 생활이 고난을 극복하게 하였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였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세상이 주관하지 못한다. 욥이 누렸던 은총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가능하다. 이제 우리들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맡기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자.
사랑하는 성도들은 절대로 이런 달콤한 마귀의 유혹에 속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내세를 믿는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기 원한다면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무슨 상을 받을 것인가 속지 말자. 마귀는 우리를 속이고 있다.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을 이해하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 하나님이 사탄에게까지도 자랑했던 믿음의 사람 욥은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욥이 받은 축복에 나타난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욥은 어떠한 삶을 통하여 물질의 풍성한 복을 받았는가 상고해 보자.
1.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혼자 가는 길은 외롭지만 함께 가는 길은 즐겁다. 아담의 독처를 안스러워하신 하나님은 돕는 배필 하와를 통하여 동행하는 벗을 삼으셨다(창 2:20-25). 악하고 패역한 세대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노아의 삶이 외로울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이었기에 그는 즐거울 수 있었다(창 6:9). 비록 정든 고향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외로워 보였을지 모르나 그의 마음은 즐거웠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과의 동행"이었기 때문이다(히 11:8).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성도의 삶은 외로워 보이는 삶이다. 온갖 불법과 악이 관영하는 세대에서 세상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는 사람은 결국 세상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날 외로운 아담을 위해 하와를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길 떠나는 아브라함과 동행하신 하나님은 오늘의 성도들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욥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다. 욥이 '순전'(純全)한 사람이라는 것은 인격과 도덕적 차원에서 완전무결하고 결코 탓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욥이 죄가 없는 인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외식하지 않는 진실된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시 51:6의 말씀처럼 남들이 알든 모르든 상관할 바 없이 자신의 진실을 지켰다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성도들이 지녀야 할 신앙의 성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실한 자를 상대해 주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대체로 초신자 일수록, 구원받은 직후 일수록 구원의 감격과 은혜에 대한 순전함이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도 모르게 교회 생활이 깊어지고 직분이 주어질수록 순전은 잃어 버리게 되고 '외식'만 남게 된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순전한 마음이 있는가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다. 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되고 정직한 삶에 대하여 모범을 제시한다. 욥은 대 재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정직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들었다. 욥은 거대한 재물을 관리하면서도 정직한 사람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 또한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욥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했던 대표적인 사람 '에녹'을 보게 된다. 그는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한다(창 5:22).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 가운데는 '심판'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져 있다. 즉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라는 이름의 뜻처럼 므드셀라를 부를 때마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했을 것이고 그러기에 그는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썼을 것이다. 어느 성경 학자는 말하기를,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두려워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두려움이란 깊은 의미에서 볼 때 존경심과 경외하는 마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움과 사랑은 함께 자라게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결코 악에 속할 수가 없다. 악에서 떠났다는 욥의 삶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와 동행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2.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의 삶이나 행동이 곧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가르치셨다(마 7:20). 나무는 그 열매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욥의 삶, 욥의 가정이라는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수많은 열매를 보게 된다. 욥에게는 10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녀 교육에 남다른 신경을 쏟았다. 그야말로 교육 학자들이 추구하는 가장 완벽한 교육을 행한 사람이다. 또한 욥은 정직한 삶의 결과였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그에게 많은 재물을 허락했다. 성경은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자에게 소유의 복이 있음을 말씀하셨다(막 10:30). 뿐만 아니라 욥은 명예의 복도 함께 누렸다.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나님께서는 신실히 당신을 섬기는 욥에게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는 명예를 주셨다. 우리의 진실은 반드시 하나님이 보상해 주신다.
3. 가정의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욥의 화목한 가정에 대해 성경은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셨다”고 증거한다. 이 말씀은 형제간에 화목했다는 말씀이다. 이들은 1년이면 최소한 7회 정도는 형제들의 집을 번갈아 가며 모였을 것이다. 문제는 형제간에 화목코자 하는 정신자세이다. 성경은 형제간의 화목을 모든 화목의 제일로 꼽는다(마 5:24). 우리 모두 욥의 자녀들이 지녔던 형제간의 화목하는 자세를 배우자. 여기에 욥은 아들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는 예식을 행했다. 즉, 욥은 그 자녀의 명 수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욥의 자녀들은 모두가 순종했다. 욥의 가정은 부자간에 화목했고, 형제간에 화목했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었다. 욥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이유는 ‘혹시’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 그것이 욥으로 하여금 번제를 드리도록 한 것이다. 나의 자녀들이 혹시라도 하나님께 범죄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시 내가 부지중에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항상 ‘혹시’를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성도가 늘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룰 것을 권면한다(롬 5:1; 욥 22:21; 고후 5:20). 내가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갈 5:22). 십자기의 피가 있는 곳에 하나님과의 화목은 이루어진다(골 1:20).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룰까 예수님께서는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했다(막 9:50). 소금은 영원히 썩지 않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 곧 언약을 상징한다. 욥은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이겼고 고난을 극복했다. 그는 승리했다. 무엇이 그를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했는가 바로 그의 신앙과 그의 생활이 고난을 극복하게 하였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였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세상이 주관하지 못한다. 욥이 누렸던 은총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가능하다. 이제 우리들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맡기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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